기사제목 모택동 왜 '유소기 제거' 결심했을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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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왜 '유소기 제거' 결심했을까? ②

기사입력 2017.06.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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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당시 모택동과 유소기 사이에 생긴 주요힌 분규는 사회주의 교육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운동의 작법상 모택동은 역량을 집중하여 <대병퇀 작전>,운동을 공작대에 의거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고 대중을 발동하는 것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소기가 작성한 문건에 <동의>란 두 글자도 마지 못해 쓸 때가 많았다.

1964년 12월 북경에서는 제3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각지 대표들은 <4청운동> 중에서 나타난 좌적인 작법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이는 모택동이 극도로 찬양한 대채의 지부서기 진영귀마저도 충격을 받게 했다. 이 역시 유소기에 대한 모택동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당시 모택동은 유소기가 실제적인 우파이고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 모순과 사회주의 교육운동의 성질을 혼돈시키고 있다고 인정, 문제의 성질에 대해 극도로 엄중하게 보고 있었다.

154756fstclltu0u4xm53q.jpg▲ 모택동과 유소기
 
1964년 12월 12일, 모택동은 박일파가 회보한 진정인이 낙양트랙터제조공장에 점을 잡은 보고서를 심열한 후 다음과 같이 비준지시를 내렸다.

나도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현재 관료주의 계급과 노동자 계급 및 빈하중농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두개의 계급이다. 이런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영도자는 이미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자산계급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계급은 투쟁의 대상이고 혁명의 대상이다. 사회주의 교육운동은 절대 이런 사람들한테 의거해서는 안된다.

같은 날, 모택동은 다른 한 보고서를 비준하면서도 역시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간부와 대중 사이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정확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국내의 첨예한 계급투쟁에 대해 무감각하며 많은 관료자산계급의 간부에 대해서도 좋은 간부로 보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료주의 계급> 및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 그리고 <관료자산계급의 나쁜 간부>란 제기법을 통해 당시 모택동은 당내 간부대오 중의 <계급투쟁>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택동은 이런 사람들을 소수의 <분자>로 본 것이 아니라 이미 <계급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혁명과 투쟁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당시 이 비준지시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2건의 비준지시를 본 사람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4년 12월 15일, 중공중앙 정치국은 북경에서 사업회의를 소집, 원래의 계획은 제3기 전국인대회의 기간을 빌어 각지 대표들을 청해 사회주의 교육운동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토론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유소기가 사회하였다. 당시 등소평은 일반적인 사업회보회의기에 모택동한테 회의내용을 알려주면서 ”사업이 분망하니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다. 이것은 모택동으로 하여금 자신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감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어느 한차례의 회의에서 유소기가 보고할 때 모택동이 발언권을 신청했다. 이러자 유소기는 모택동이 많은 걸 얘기하련다는 것을 모르고 모택동이 몇 마디도 하지 않았을 때 유소기는 모택동의 발언을 중단시켰다.

이상의 두 사건은 모택동의 큰 분노를 자아내게 하였다. 회의는 며칠이 되지 않아 모택동의 불참 속에서 결속되었다. 이러자 모택동의 분노는 드디어 폭발하고야 말았다.

회의 후 모택동은 강청을 시켜 도주ㅡ증지 부부를 초청해 인민대회당 소예당에서 경극 <홍등기(红灯记)>를 관람하게 하였다.

휴식시간이 되자 모택동은 도주한테 물었다.

”당신들의 회의가 결속됐다면서? 내가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끝마치다니…지금 부분적 사람들이 나의 머리 위에 올라 똥을 싸려고 하고 있어. 내가 아무리 제 2선에 물러나 있지만 그래도 회의에 참가해 발언을 할 권리는 있는거우다.“

이에 도주와 증지 부부는 그 자리에서 ”누가 감히 주석님의 머리위에 올라 똥을 싸겠어요?!“라고 했으나 속으로는 누군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모택동이 말하는 그 ”부분적 사람들“이란 곧 바로 유소기와 등소평 등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회의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거요?“

모택동이 재차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떠나갔습니다.“

도주가 대답하기 바쁘게 모택동이 명령조로 호통쳤다.

”그들더러 당장 돌아오라고 하시오!“

이렇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다시 북경에 모이었고 회의는 재차 소집되었다.

회의에서 모택동과 유소기의 분규가 공개화되었다.

분규의 초점은 사회주의 교육운동의 중점과 방향에 관한 것이었다.

모택동은 사회의주의 교육운동의 중점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때려 엎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주와 부농은 뒤에 숨어있고 앞에는 4불청 간부(四不清干部)가 나서있으며 4불청 간부는 모두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이다. 계급투쟁에 있어서 지주, 부농과 빈하중농만 획분하면 안 된다. 지금 시급한 것은 간부이다. 지주와 부농은 이미 1차적으로 청산이 되고 처리되었지만 아직 집권파는 청산되고 처리된 것이 없다.“

반면에 유소기는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모순이 있으면 그 모순을 해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3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각각 그물에서 빠져나간 지주부농과 새로 나타난 자산계급, 그리고 부화타락한 간부 등이다. 이 중 어떤 간부는 출신이 좋지만 착오를 범해 지주부농과 나쁜 분자들에게 이용되고 이들의 조종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모택동은 그 무슨 계급이나 계층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부터 때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대중을 발동하여 우리 당을 정돈하게 해야 한다. 사회주의 교육운동의 중심은 바로 정당이며 정당을 하지 않으면 우리 당은 희망이 없다.”

이어 모택동은 정당을 함에 있어서 먼저 <승냥이>를 족치고 나중에 <여우>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승냥이>란 곧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유소기는 현재 당내외 모순, 적아 모순과 4청, 4불청간의 모순 등으로여러 모순이 교차되지만 절대적인 모순은 없다고 주장했고 모택동은 정당의 중점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붙잡아 내는 거이라고 하면서 석탄부의 장림지(张霖之) 부장이 바로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라고 지적했다.

장림지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로 거론되자 이 날 회의에 참가한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긴장과 침묵이 흘렀다.

편역: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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