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지배굽이와 개산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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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굽이와 개산툰

기사입력 2017.08.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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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운

캡처.JPG
어릴 적에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이 수백 년 전에 출발한 것이고 또 지금 별에서 출발한 빛이 수백 년 뒤에야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글을 책에서 읽어 본적이 있다. 그 옛날 샘물터에 내려앉은 총총한 별빛들이 파묻힌 개산툰 땅들을 두루 밟으며 걷고 있노라면 땅속에 묻힌 샘터 별빛들은 두만강 강물처럼 흘러 흘러서 마음속에 흘러든다. 재난과 가난이 먹장구름처럼 드리워 캄캄했던 그 옛날에 가진 것 하나 없이 빈주먹으로 꿈 하나를 보따리에 넣고 별빛처럼 깜빡이는 삶의 섬광(閃光)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연변 땅으로 퍼져 들어와 함경도 사람들의 특유의 그 끈질긴 노력으로 메마른 땅을 기름진 옥토로 가꾸어왔다. 오늘날 다시 되돌아보면 그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첫 발자국을 들여 놓았던 곳이 바로 개산툰이다.

사람들은 흔히 개산툰(开山屯)이란 지명을 산이 열린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자를 풀이하여 단순하게 해석하여 왔다. 석문에서 형제봉이 돌문처럼 서있고 그 돌문을 나서면 산이 쫙 열린 듯 광소, 광종, 선구 자동 등 마을들이 별처럼 널려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허나 개산툰 지명은 사실 20세기 2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쓰이기 시작한 지명으로서 1933년도 광궤철도로 바꿔 놓으면서 역 명칭으로 정식으로 불리였고 그 후 차츰 역전 부근 지역을 뜻하는 지명으로 고착되었다.

그 시기 개산툰 지명은 절과 관련되어 있는 명칭으로 풀이 된다. 개산툰 역에서 산 굽이를 에돌아 들어가면 애민촌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나타나는데 옛날에는 이 골짜기를 절골 이라고 불러왔고 사료에서는 개문사 사동으로 표기되어 있다.  두만강을 사이 두고 행인평(애민1대)과 마주하여 있는 조선 상삼봉 형제바위 밑에도 절이 자리 잡고 있어 이 두 곳 사람들의 발길이 서로 끊이지 아니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거기에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두만강 양안의 이런 큰 절과 이름 모를 암자들 이를테면 20세기 초에 탄앞 (애민7대)마을에 있었던 개인 절집 같은 암자들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웠었던 적이 있었다. 절이 세워지기 전에도 산이야 그 가슴을 열고 있었지만 특히 절이 세워진 후에야 산이 열렸다고 하는 开山 의미를 짚어보면 그것은 어두운 산에 문명의 등불을 밝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산툰 지명을 절골의 이름 있는 사찰 혹은 이름 없는 암자의 기와 파편에서 찾을 수도 있으나 보다 과학적으로 풀이한다면 빛이 밝아온다는 뜻으로 통하는 불교적 색채를 지닌 지명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원적으로 한자 개(开)를 풀이하면 열리다 는 단순한 어미로 풀이 되지만 북방언어체계에서 바라보면 개(开)자 음은 빛(光)을 뜻한다. 개똥벌레는 몽골어에서는 gerelt horhoi 빛이 나는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만주어에서 gerhen은 빛을 말하고 만주어 gehun는  햇빛이 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우리말에서 날이 갠다는 뜻과 동일하다. 이제 다시 개산툰 지역 지명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광서 연간에 이 지역에 녕원보를 세우고 그 아래에 개운사 개태사 개화사 개문사와 같이 개(开)자로 시작되는 사(社)들과 광소사 광종사 광덕사 광화사와 같이 광(光)로 시작되는 사(社)들 지명이 나타난다. 맨 앞 글자에 개(开)와 광(光)자가 절묘하게 대응되어 붙여진 이 지역 지명들은 모두 빛을 나타내는 의미가 유난히 돋보이며 한 계열을 이루어 정체성을 띤 지명으로 보여 진다. 이런 맥락에서 광복 전 광개촌 명칭과 해방 후 광개향 이라고 부른 지명이 이런 의미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과거 두만강 양안은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그 경치가 아름다웠다. 두만강에는 강을 따라 이동하는 뗏목이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산수풍정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펼쳐 놓았다. 거기에 달빛 밝은 밤이면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이 두만강 강변에 어리여 아름다운 야경을 이루었다. 
 
뫼(山)가 열리여(开) 두 팔을 쫙 벌리고 뭇 중생을 품 안으로 받아들여 힘없이 사는 백성의 삶을 어루만진다. 산이 열리고 절이 서니 꽃이 더 아름답게 피고 생명이 더 화사하게 움트는 법이다. 우리가 그 시기 개산툰을 희망의 빛 동네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호천개의 김영렬 선교를 중심으로 북관(北關, 북간도) 12종도로 부르는 이들이 별빛처럼 간도 각지로 퍼져 나가 최초로 서구문명을 연변 땅에 전파였기에 가능하다. 연변 최초의 천주교는 개산툰의 호천개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기틀이 마련되어 연변 전역으로 뻗어나가 대교동이 세워졌고 삼원봉본당과 용정본당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리동촌 강백규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 일찍이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문명의 등불을 켜놓았기에 개산툰은 어두운 세상에 수많은 이주민들의 발길을 밝혀주는 빛의 등대로 거듭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개산툰이란 지명해석은 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개산툰 원래의 지명은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천도경편철도 변천사는 개산툰 지명 연혁과정을 밝혀주는 유익한 자료가 된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개산툰은 최초에 地坊으로 표기되고 그 후 図們江岸으로 적혀 있고 나중에 開山屯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192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쓴 여행기에서는 地坊洞 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작가 이문열이 쓴 불멸2에서는 안중근이 처음으로 간도에 들어선 지점을 화룡현(和龍縣) 지방전(地坊典)이라고 쓰고 있다.
 
먼저 図們江岸이라는 이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천도경편철도는 운행초기에 민간업체들이 주도로 맡았기에 재력이 충족치 못하여 개산툰과 상삼봉 사이의 다리조차도 가설 못하고 배나 도르래로 화물을 운송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콩과 잡곡이 산처럼 쌓여 적치되자 속이 탔던 화물운송사에서 돈을 내여 다리를 놓아 운송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잠간 쓰였던 図們江岸이라는 역명은 사실 콩과 잡곡이 산처럼 쌓인 역이였기에 응당 豆満江岸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예전 로인들은 주장하여 왔다. 북간도지역은 콩의 원산지의 하나로서 중국 역사책인 당서에는 발해 사람들이 메주를 성처럼 쌓아 놓았다고 적고 있다. 천도경편철도를 이용하여 일본은 연변의 콩을 유럽에 대량 수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이제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서로서로 엉키고 설키여 마구 뒤엉키어 있는 개산툰 지명을 풀어낼 수 있는 관건적인 실마리로 地坊이라는 지명을 살펴보자.

도도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두만강 푸른 물은 수많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오랜 세월 두고 천평벌을 무법으로 훑고 지난 간 옛터들은 폐허로 되고 아픈 과거를 흔적 없이 지워놓았다. 과거에 두만강은 웃 물학성과 아래 물학성 사이에 자동물과 호천개 강물을 받아들이면서 두 갈래 물줄기로 갈라지어 흘렸다. 아래 물학성을 기점으로 고섬까지 크고 작은 섬이 이어지다가 노째굽이에 이르러 다시 합치여 흘러 내려갔다.

그 시기에 지명과 더불어 생겼던 많고 많은 이야기들은 두만강의 푸른 물에 씻기어 서서히 잊혀졌다. 지금의 개산툰 기차역으로부터 종이공장일대에 이르는 산굽이를 따라 오랜 옛적부터 초라한 땅굴집과 농막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았는데 그 시기 아래 물학성 쪽을 바라보면 넓은 호수를 방불케 하였고 늙은이들은 이 일대를 지배굽이라고 불러왔다.

오늘날에 와서 지배굽이라는 땅이름은 역사 뒤안길에 사라진 죽은 지명으로 되어 있지만 개산툰 지명 연구에는 관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먼지가 두텁게 쌓인 문헌자료에서 확실한 증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안중근이 1907년 북간도에 들러선 첫 지점 지명을 화룡현(和龍縣) 지방전(地坊典)이라고 적고 있지만 지배굽이(地坊曲)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그리고 192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의 만주 여행기에서 적은 地坊洞은 지배굽이를 저들 나름대로 한자로 옮긴 지명이다.,

한 순간 속에도 천년 세월이 들어 있다는 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편 (1455년) 기록에는 종성(鍾城) 서쪽 20리 강외江外 수주(愁州)라는 지명이 튕겨 나온다. 옛 문헌文獻에 기록에 따르면 강외江外 수주(愁州)가 개산툰 지배굽이로 추정된다. 만주어에서 근심愁 을 뜻하는 말로 jobocun 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 한자 愁의 단순한 근심걱정 뜻을 넘어 염려한다는 함의도 내포되어 있다. 함경도방언 자식 지배 쎄다는 말은 아들딸들에 대하여 어머니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한다는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 뜻으로 만주어 jobocun와 그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개산툰 옛 지명 지배굽이는 수주(愁州)라는 만주어 말로 풀이가 가능하다.

놀라운 것은 함경도 종성은 강내 江内 수주(愁州)로 표기되고 개산툰 일대의 수주(愁州)는 江外 수주(愁州)로 적혀 있어 마치 쌍둥이처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江外 수주(愁州) 지명표기는 16세기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강내 수주는 후에 종성으로 그 명칭이 바꾸게 된다. 종성 시가지에 수항루라는 오랜 건물이 있는데 최초에는 뇌천각이라고 부렸고 장대將台로 썼다. 개산툰에도 장대將台로라는 지명이 있는데 개산툰 종이공장 세워지기 이전에 그곳에 우람진 바위들이 많았다. 그중 북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강가에 들어 앉아있어 고요한 밤이면 귀신 울음소리를 냈다고 로인들은 전하고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강 양안에 쌍둥이처럼 나타난 지명은 종성의 금산(禁山)과 덕신향 큰산(金山 )지명 ,종성 함지산과 회경 막치기골 작은 함지산 지명, 종성 국시고개와 덕신향 상국시 석정향 중국시 월청향 하국시 등 지명들이다.

오늘날 지배굽이란 이름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역사 속에 파묻히어 망각되어 온지도 어느덧 백년 세월에 가까워 온다. 과거의 지명흔적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세월의 무상(無常)함속에 어둡고 우울하고 과묵한 옛 선인들처럼 지배굽이 옛 지명은 광채 잃은 눈빛으로 남산 언덕위에 앉아 물끄러미 천평벌과 개산툰 작은 시가지를 굽어보며 눈가에 그렁그렁한 이슬방울을 맺는다.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바위덩어리보다 더 무거워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연변 개산툰 지명 변천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노라면 오랜 세월 속의 쌓이고 쌓인 옛 선인들의 피와 땀과 슬픔과 한이 쏟아지어 무거운 눈물로 한 방울 한 방울 고여 흐르는 경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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