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 허성운
 
도문시의 일광산 지명에는 우리의 어두운 과거사가 숨겨지어 있다. 1933년 소화 8년 만주철도와 조선철도가 도문-남양에서 이어지면서 도문 시가지가 일제 식민 통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같은 해 12월 일본 황실의 시조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신 도문신사가 동경동에 세워진다. 이를 전후로 일본사람들은 원래 남산이라고 부르던 산 이름을 일본 도치키현 닛코시의 일광산(日光山) 이름을 따서 일광산이라 바꾸어 부르고 북강 너머 까을령 가는 산 이름도 일본 도치키현 닛코시의 후타라산二荒山 신사 이름을 따서 개칭한다.

일본 도치키현 닛코시 일광산(日光山)은 원래 일광동조궁(日光東照宮)이라는 신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서 동조궁東照宮은 동쪽의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신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닛코(日光)은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닛코시의 3대신사중의 하나인 후타라산(二荒山)도 일광동조궁 이웃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사 명칭이다.

일찍 1920년부터 일본군 지도에 등장한 동경동(東京洞) 지명 역시 일제의 손때가 묻어 있다. 개척초기 화전민들이 데기 더걱지라고 부르던 명칭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동경동(東京洞)으로 어물쩍 바꾸어 표기한 지명이다. 동경동(東京洞)을 일본식한자 峠(とうげ) 소리에서 뽑아낸 지명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일본어 峠(とうげ)는 단순히 산마루 고개를 뜻하는데 반해 우리말 데기 더걱지는 경사도가 완만하여 밭도 일구는 뉘연한 산등성이를 말하고 있어 옛 지명은 현지의 지형특성을 그대로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산이 많은 연변에는 동경동(東京洞) 동경대(東京台)로 적은 지명이 여럿이 등장한다.

언뜻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일광산 지명을 꼼꼼히 캐고 보면 우리의 땅 이름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킨 일제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가 있다.

해방 후 후타라산(二荒山) 지명은 전안산과 후안산 등 지명으로 바꾸게 되지만 어쩐 일인지 일광산 지명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쓰이었다. 50년 남짓한 일본식민통치역사가 종말을 고하고 그로부터 장장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도 일광산 지명은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수많은 혼선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연변은 고속철이 개통되어 많은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수많은 국내외 유람객들이 밀려들어오는 가운데 이따금 일본인 관광객들도 슬그머니 북적거리는 인파속을 헤집고 들어선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 시절의 회상과 향수를 달래며 소련군 진주시기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와 처참했던 난민 탈출 노정을 재구성하여 여러 매체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그 속에 언급되는 일제시기 잔재지명은 우리 땅 이름의 문화적 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지명은 남의 탓에 돌릴 수는 있겠지만 해방 70년이 되는 오늘날에 와서조차도 일제의 잔재지명이 그대로 작동되어 있고 또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점들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야한다.

자신의 허물을 들춰내 보이면 남 보기가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허나 그 허물을 능히 고치는 사람은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러 해전부터 도문에서는 해마다 두만강문화관광축제가 열리여 다양한 행사를 펼쳐왔다. 이제 우리는 일광산꽃축제와 같은 허물 있는 일제 잔재지명을 지우고 남산꽃축제라는 본래의 이름을 복구하여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남산과 일광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