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외몽골 중국으로부터 독립되게 된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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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골 중국으로부터 독립되게 된 내막

기사입력 2020.01.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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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약한 나라한테는 외교가 없다.” 이는 많은 외교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중화민국 주석 장개석이 소련과의 담판에서 수세에 몰릴 때 내뱉은 말이었다.

실제상 외교적 분쟁에서 많은 약 소 국가들은 강대국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세울 수 없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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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인터넷

1945 년 2 월,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곧 승리하게 될 무렵이었다. 당시 세계 강국들인 미국, 소련과 영국 등은 흑해 북부에 있는 크림 반도에 있는 얄타에서 일련의 해당 전쟁 후의 질서 및 동맹국의 이익 분배에 관련된 조약에 서명하였다. 이 중 <일본에 대한 미, 소, 영 3국의 협정(간칭 얄타 협정)>은 당시 동맹국인 중국의 동의도 없이 체결되어 중국의 권리를 크게 침해했다.

얄타 회의에서 극동지구 문제를 토의할 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기하였다.

첫째, 외몽골의 현 상태를 유지한다.

둘째, 중동철도(중국 동북의 철도)를 중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셋째, 소련이 대련 및 그 부근 해역에 불 동항(不冻港)을 건설한다.

당시의 외몽골은 실제상 이미 소련군의 지배하에 있었다. 민국과 과거 청조의 관리들은 이미 축출되어 중국 본토로 돌아갔으므로 스탈린의 현 상태 유지란 기실 세계열강들로 하여금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자는 속심이었다. 동시에 스탈린은 기타 세계열강들에게 이 일을 중국의 장개석한테 알리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로 하여 후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장개석이 파견한 중화민국의 외교대표 송자문을 만났을 때 “만약 출병하여 대일 작전을 한다면 미국은 오직 <얄타협정>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러자 송자문은 이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동맹군 열강들은 이른바 <얄타협정>의 이익 획 분은 세계인민의 자유를 위해 싸운 반파시스트 진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중국의 이익은 염두에도 없었으며 송자문한테는 아무런 태도 표시도 않았다.

그 시기, <얄타협정>의 대부분 내용은 엄격한 비밀에 붙여졌으며 송자문 역시 귀국할 때까지 절반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귀국 후 송자문이 장개석한테 외몽골의 독립 문제를 언급하자 장개석은 크게 놀랐다. 중국은 세계 반파시스트 진영의 일원이었지만 중국의 이익은커녕 손해만 늘어나게 됐던 것이었다. 미국의 허위적인 얼굴에 대해 장개석은 깊이 알 수 있었다.

“미국인은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스탈린과의 담판이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장개석은 송자문을 단장으로 한 중국정부 대표단을 모스크바에 파견, 외몽골 문제를 갖고 소련정부와 담판을 하게 했다.

하지만 이 담판은 근본 상 불평등의 원칙에서 진행된 담판이었다. 스탈린을 위수로 하는 소련대표단은 대일 작전을 하는 대가로 장개석으로 하여금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치적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송자문과 장경국(蒋经国)을 비롯한 중화민국 대표단은 상대를 깔보는 소련의 그 오만한 태도와 중국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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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인터넷

한편 장경국은 장개석의 친필 신을 갖고 <비 정식대표>의 신분으로 스탈린을 배알, 외몽골의 문제를 회피하면서 측면적으로 스탈린의 설복하려고 했다.

장경국이 찾아가자 스탈린은 처음에는 아주 친절했다. 그러자 장경국은 열정적으로 스탈린을 높이 쳐올리면서 반파시스트 전쟁에서의 소련의 승리는 스탈린 동지의 영명한 영도와 갈라놓을 수 없다고 나서 중국 또한 현재 반파시스트 세력과의 결전의 결심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파시스트의 멸망은 이미 시간적 문제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이어 공식적인 협상에 들어가자 장경국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얄타협정>에서 외몽골을 독립시키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면 조국의 영토를 수호하려는 중국정부의 원칙에 위배되며 만약 민국정부가 승인한다면 중국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몽골문제가 언급되자 스탈린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스탈린은 대뜸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한 말의 뜻을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도 이것만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당신들한테 도와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우리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들을 도와 일본을 내쫓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당신들한테 힘이 있어 우리의 도움이 필요가 없다면 나 또한 이러한 요구를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외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스탈린은 장경국 등을 물러가라는 뜻으로 손을 내 저었다.

그 뒤 중국대표단 단장인 송자문은 소련대표단과의 담판 내용을 장개석한테 회보한 다음 장개석의 지시에 의해 외몽골 문제를 해결할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첫째, 소련과 계약을 체결해 결맹 기간 소련이 외몽골에 군대를 주둔할 수는 있게 한다.

둘째, 소련과 계약을 체결해 결맹 기간 외몽골에서 고도로 되는 자치를 실시할 수 있으며 소련이 외몽골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도 허락한다.

셋째, 소련과 계약을 체결해 소련이 외몽골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으며 정치와 외교에서 자주와 자치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삼민주의> 원칙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소련인 영국의 정치성질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양보는 근근히 중국 측의 입장일 뿐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던 중국으로서는 소련을 설득시킬 수가 없었다.

나중에 스탈린은 참을성이 없어졌으며 장경국한테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강요했고 공공연히 소련이 외몽골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장개석은 이러한 담판 결과에 대해 진작 예견하고 있었다. 다만 장경국이 소련에서 유학했고 또한 소련 여자를 아내로 맞았기에 그 연분으로 스탈린이 장경국의 안면을 좀 봐줄 것이란 요행을 바랐을 뿐이었다.

결국 장개석은 마지막 카드까지 포기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어쩔 수 없다. 일본을 내쫓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모든 것은 우리가 약하기에 조성된 악과이다. 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기 마련이다.”

1945년 7월 7일, 장개석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면서 송자문한테 한통의 <굴욕>의 전보문을 날렸다.

외몽골의 문제에서 중소간의 쟁점은 무엇인가를 잘 찾아봐야 한다. 중소간의 공동이익과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을 격파한다는 선제 조건에서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기 바란다.

1945년 7월 9일, 제4차 중소담판에서 중국대표단은 소련대표단의 거듭되는 압력으로 부득불 소련 측이 주장하는 조건에 동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스탈린이 외몽골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압력을 가하게 된 데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일찍 이렇게 밝힌 바가 있었다.

“소련이 외몽골을 독립시키는 것은 단지 정치상에서의 수요와 군사상에서의 우려여서만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외몽골은 시베리아 철도의 복지이다. 앞으로 중국이 강대해진 다음 외몽골로 출병하여 시베리아 철도를 차단해 버리면 소련은 전략적으로 매우 위험해지게 된다.”

당시 소련이 이렇게 우려한 것은 민국정부가 미국과의 관계가 밀접하였기에 향 후 강대해지면 외몽골을 통해 어떤 도발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였다. 다른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이 중국의 만주에 출병한 것은 기실 민국의 요청보다는 미국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장개석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약했기에 외교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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