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2-05(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 순간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1 – 2년도 아닌 수십 년간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절대 재물을 탐내지 않을 것이고 절대 주색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낙마한 그 조선족 공안국장의 초심이었다. 하지만 35년 뒤 그의 참회록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탐욕을 버릴 수 없었고 수중의 권력을 통제할 수 없었으며 신변 사람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였다…”

 

11월 11일, 중국 산시법제망(陝西法制網)에 따르면 2020년 6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 전 당위부서기이며 부국장이었던 김경일이 수뢰죄로 유기징역 6년 4개월과 벌금 35만 위안 판결을 받았다.

 

김경일 ㅡ 그는 어떻게 당당한 공안국장으로부터 만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수감자로 전락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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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 당위부서기 겸 부국장 김경일


경찰생활 35년, 그제날 경찰계 엘리트의 오늘날

 

1962년생인 김경일, 22살에 경찰에 입문하고 28살에 입당했으며 30살에 파출소 소장으로 됐다. 그 뒤 39살에 일약 화룡시 공안국 당위서기, 국장으로 진급했고 44살에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 부국장 보좌에 앉게 되었다.

 

김경일을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화려하기 짝이없다. 1등공 2차, 2등공 3차, 3등공 3차 세웠고 ‘전국 우수인민경찰’과 ‘길림성 10대 걸출청년’ 칭호를 획득…허다한 영예와 우수칭호는 그로 하여금 앞날이 창창한 경찰계의 엘리트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5월, 당년에 유명했던 김경일은 경찰복장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법과 규율을 위반하고 많은 금액을 받아 챙긴 사실을 주동적으로 털어놓았다. 조사가 심입됨에 따라 김경일의 모든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사사로이 금고를 설치했고 500여 만 위안을 수뢰했고 간부들 내부에서 ‘일언당(一言堂)’ 바람을 일으켰으며… 이는 일파만파로 사회에 파급되었다.

 

브레이크가 없는 탐욕심

 

2006년, 젊디젊은 김경일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 부국장직에 앉게 되었다. 수중의 권력이 커졌고 관리하는 일이 많아졌으며 찾아와 빌붙는 사람도 갈수록 많아졌다. 아울러 그들이 갖고 오는 ‘성의’ 역시 갈수록 잦아졌다. 당초 그가 도와준 것들은 거개가 작은 것이었고 받아 챙긴 것 역시 명품 술 담배가 아니면 기껏해야 현금 수천 위안 정도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김경일의 욕심은 커지기만 했다. 남을 도와줄수록 받아 챙기는 액수가 늘어났으며 아울러 그것은 기하급수로 늘어나 고급승용차나 부동산 그리고 수만 위안 아니면 수십 만 위안으로 차원이 바뀌었다.

 

김경일은 점점 초심을 잃고 다르게 변해갔으며 언행에 스스럼없었다. 지어 그는 노골적으로 “나의 수중에 권력이 있고 당신의 수중에 돈이 있으니 당신이 돈만 주면 나 또한 당신을 위해 시끄러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작게는 차량의 적재량 초과를 무사하게 했고 크게는 오락장소의 검사를 취소하는 것에까지 이르렀다…

 

2007년, 그의 경찰학교 시절의 친구 손 모씨가 찾아왔다. 당시의 손 모씨는 연변 모 상업은행의 이사장이었다. 손모씨는 주동적으로 김경일한테 가치가 45만 위안에 달하는 이 상업은행의 주식을 선사했다. 이 ‘예물’을 받은 김경일 역시 손모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이 은행이 바라는 것은 관건시기 은행에 대한 ‘보답’이었다.

 

“우리는 상호이용의 관계로서 그는 나의 권력을 보았으며 그가 주식을 선사한 것은 자기의 은행을 돌봐달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돈이나 물건을 갖고 오는 것은 갈수록 많아지고 나는 받을수록 브레이크가 없었다.”

 

김경일은 이렇게 점차 법과 규율을 위반하는 심연에 빠지게 됐다.

 

“나한테 잘 보이는 사람은 내가 맘대로 진급시킬 수 있다”

 

국장직이 높고 권력이 커지면서 김경일의 탐욕은 커만 갔으며 공안국은 그가 ‘진급 견장’을 발급하는 장소로 되었다

 

김경일은 직무의 편리를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측근을 ‘진급’ 시켰다. 공안국장으로 임직해 있는 몇 년간 그는 10여 명의 경찰간부를 진급시켜 부임하게 했는바 파출소 소장으로부터 지도원, 대대장에 이르기까지 부임된 후 첫 번째의 일은 모두 김국장을 ‘배알’하는 것이었으며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성의’가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권모술에 있어서도 김경일은 남보다 한술 더 떴다. 그는 남한테서 예물이나 받던 것으로부터 후에는 하급이 그를 위해 주문하고 계산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권력, 금전, 명성과 ‘하급의 충성’ …이러한 부화타락은 이미 이 인민경찰의 마음을 송두리째 뿌리쳐 버렸으며 그로 하여금 이지를 상실하게 했다. 돈 사용의 편리를 위해 김경일은 또 사사로이 ‘작은 금고’를 설치, 뿐만 아니라 아래 소속인 연길시 공안국 건물을 인테리어하는 자금과 파출소의 수건 개조비용 중 270만 위안을 빼돌렸으며 이는 장부에 기입하지 않은 술책을 썼다고 한다.

 

예물로 받은 명품 술을 놓고 말하면 김경일은 그 명품 술을 다 마실 수가 없기에 잘 알고 있는 음식점이나 스탠드바 주인들한테 맡겨 팔게 했다. 조사에 따르면 김경일이 남한테 위탁하여 판매한 술은 800여병, 판매수입은 누적 85만 위안에 달했다.

 

신변의 사람 관리하지 못한 김경일

 

김경일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술에 취해 권력과 재산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때 그의 아내 역시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일찍 김경일이 국장으로 부임할 때 그는 아내 오 모씨한테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아내 오 모씨는 구두 상으로는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모씨 속타산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2008년 음력설 기간, 김경일의 아내 오 모씨는 사사로이 남편의 하급인 한 모씨가 가져온 10만 위안을 몰래 받았다. 그리고 오 모씨가 그 10만 위안을 거의 다 쓸 무렵, 한 모씨가 또 20만 위안을 가져왔다. 이러자 오 모씨는 이번의 금액이 자기의 상상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던지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두 번에 거쳐 한 모씨한테서 30만 위안을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시기의 김경일은 진작 이전의 일반 경찰이 아닌 경찰 국장이었다. 김경일은 이미 돈을 다루는 대해에서 ‘단련된 몸’이라 그만한 액수의 돈 따위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경일은 아내 오 모씨더러 다 쓰지 못한 나머지 돈을 한모씨한테 돌려주게 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 그가 나중에 가장 참회하게 된 사연 중의 하나로 되었다.

 

“제가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아내를 잘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서 평소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근본 별로 큰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었어요.”

 

애당초 김경일을 제지하지 못했던 오 모씨 역시 나중에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일찍 김경일에 대해 통보하는 서류에 오 모씨는 한 마디를 보충,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집안 풍기가 바르지 못해 배우자의 불법 활동을 방임하게 되었다.”

 

한편 오 모씨와는 달리 아내더러 골치 아픈 일을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했던 김경일은 도리어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불법행동에 끌어들였다. 비록 김경일은 친구 손 모씨가 규율검사기관에 의해 심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도 조직에 주동적으로 교대해야 하겠다고 작심, 하지만 이미 ‘돈과 재물에 재미를 본’ 김경일은 자신의 오랜 습관을 버리기가 아쉬웠다.

 

김경일은 남동생과 여동생 등과 공수동맹을 결성, 2006년 이래 수뢰한 523만 위안의 비법수입을 여동생한테 주면서 이 중 200만 위안만이 김경일의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남동생의 것이라고 말하라고 시켰으며 또한 손 모씨가 김경일한테 선사한 45만 위안어치의 주식은 여동생과 남동생이 구매한 것이라고 말하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경일은 강력한 수사 앞에서 그들의 공수동맹도 수사의 일격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렇다. 모든 것이 그렇게 끝장났다.

 

진작 당년의 선서를 망각한 김경일은 이제 와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 김경일은 이상과 본분을 지킬 수 없었다. 결과 권력과 지위가 끝장나고 금전도 끝장났다. 남은 건 오직 끝이 보이지 않는 참회뿐이었다.

 

2020년 6월, 길림성 안도현 인민법원에서는 1심에서 유기형 6년 4개월과 벌금형 35만 위안에 판결했다. 당년의 경찰 엘리트로 수많은 ‘자랑과 긍지’를 남겼던 김경일한테 이제 남은 것은 6년 4개월이란 옥중생활과 일생을 지속하게 될 참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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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선족 공안국장의 낙마 ㅡ 그것이 주는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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