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 김철균

1

기숙사식당의 일군들과 학생과 독신교원 및 해방군선전대의 장병들 속에서 그렇듯 인기가 놓은 순자였으나 그 임시직원일도 그냥 할 수가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면서 남편이 “외국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갇혔지만 일정기간 순자는 학교기숙사식당의 임시직원일만은 계속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학생들의 반란으로 학교지도부 일군이 교체되면서 하루밤 사이에 순자는 그 임시직원의 일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아니, 자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숙사식당 관리원의 입장을 고려하여 스스로 나와버렸다고 해야 더 적절했다.
 
남편 김용환이 “외국간첩”란 누명을 쓰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문화대혁명 전의 어느해엔가 해방전 용정에서 김용환과 소학교 동창생으로 지내다 광복후 조선으로 나간 한철혁이란 사람이 연길로 오게 되었다. 눈과 얼굴 교정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철혁은 조선인민군 군의관이었다. 6.25당시인 1950년의 8월 낙동강전투시에 지뢰를 밟아 터지는 통에 그의 얼굴과 눈이 흉하게 이그러지게 되었다. 그러던 한철혁이 10여년 뒤 조선정부와 중국정부의 소개로 당시 주정부 주장인 주덕해와 연락이 통하게 되었고 결국 연변변원으로 와서 얼굴과 눈을 치료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김용환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중 주장 주덕해의 비서가 찾아와 주덕해동지가 김선생을 보자고 한다기에 부랴부랴 수업을 마치고는 비서와 함께 찦차에 앉아 주정부로 향하게 되었다.
 
용환이가 주정부에 도착하여 비서의 안내로 주덕해 주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웬 중년남자손님이 쏘파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용환이 이 친구야, 나야 나, 한철혁이.”
 
“아니 한철혁이 자네가 어떻게…”
 
둘은 대뜸 서로를 끌어안았다. 거의 20년만에 만나게 된 소꿉시절의 친구, 반갑지를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점심 한철혁은 주정부 외사판공실에서 초대하려는 것도 마다하고 소학교 동창생인 김용환네 집에 가서 식사하기로 하였다.
 
그 날 점심 두사람은 용환이네 집에서 미역쌈을 먹으며 옛추억을 더듬으면서 술잔을 나누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용환이는 주정부 외사판공실에서 차린 파티에 초청되어 몇번 한철혁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 뒤 병치료를 끝낸 한철혁은 인차 귀국하였고 그 후에는 서로가 사업이 빠쁘다 보니 일절 아무런 연계도 없었다.    
 
헌데 그 때의 그 만남이 김용환으로 하여금 주정부 주덕해 주장과 더불어 외국과 내통한 “외국간첩”란 혐의를 받게 되었으며 위생학교의 특실에 갇히게 되었다.
 
김용환이 갇히고 순자마저 위생학교 기숙사식당에서 나온 후 새로 교체된 위생학교 지도부에서는 수차 순자를 찾아와 남편과 철저히 계선을 나누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착한 순자는 워낙 부지런하고 남을 잘 돕는 습관은 몸에 배였으나 함부로 지도일군들한테 대드는 성미가 아니었다. 필경 연약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만은 달랐다. 순자는 강해졌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남편을 쭉 지켜보며 살아왔고 남편의 인간됨됨이와 일거일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자는 남편과 계선을 나눌 일이 없다고 굳게 믿는터였다.
 
“순자동무,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동무의 남편은 오래전부터 한철혁과 잦은 연계가 있었으며 몇년전 한철혁이 연변에 왔을 때 그한테 많은 비밀을 넘긴 한편 구체적인 지령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오. 그리고 그 때 한철혁이란 자가 동무의 남편한테 무전기와 사진기를 넘겨 주었다는 제보도 들어왔소. 그러니 동무는 남편과 철저히 계선을 나누고 남편의 간첩행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몽땅 적발해야 하오. 알겠소?!”
 
하긴 당시 용환이네 집에서 식사를 하던 날 한철혁이 친구간의 우정에서 출발하여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나눈 것은 사실이었다. 헌데 그것이 간첩활동접선이라니. 더군다나 거기에 무전기와 사진기까지 제공됐다고 하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 지도일군이 말하는 무전기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집에 있는 사진기는 한철혁과 만나기 퍽 전부터 김용환한테 있던 물건이었다.
 
학교지도부 일군의 위협에 순자는 강경하게 맞섰다.
 
“우리 나라가 색갈이 변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우리 내부에 숨어있는 간첩이거나 계급이색분자들을 색출해내야 하는 걸 저도 잘 안답니다. 그래서 아마 모주석께서도 문화혁명이란것을 일으켰겠지요. 하지만 조직에서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서 한 전호속의 전우를 적으로 취급하는 것도 아주 위험한 착오랍니다.”
 
“아니, 이 동무가 이 자리에서 누구를 함부로 두둔하는거요?! 김용환 교원이 ××의 중앙일군과 만나서 식사도 함께 한 것이 그래 문제가 되지 않는단 말이요? 그 때 구체적으로 어떤 비밀내통을 했을 수도 있단 말이요. ××이란 나라는 수정주의국가란 말이요.”
 
“하지만 그 때까지만도 우리 중국과 친선적인 국가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당시 주정부의 주덕해 주장까지도 그를 소개하여 연변병원에서 병치료를 하게 했고 저의 남편은 그저 그 기회에 한철혁과 만나서 단 한번의 식사를 함께 했을뿐인데요. 그것이 간첩행위라니 정말 말도 안돼요.”
 
“순자동무, 주덕해가 어떤 사람이요. 그는 항일전쟁시기 왜놈들한테 체포된 뒤 변절한 계급이색분자요. 그리고 장백산 천지의 적지 않은 부분과 두만강 하류의 섬 하나를 ××이란 나라에 넘겨준 자란 말이요.”
 
“오, 그랬습니까? 당신 아주 직접 보는듯이 말하는군요. 그럼 당중앙과 모주석께서는 왜 변절자인 주덕해를 연변의 주장으로 임명했을가요? 그리고 또 주덕해어른이 아무리 주장이라지만 과연 장백산천지의 적지 않은 부분과 두만강하류의 섬을 ××나라에 넘겨줄 권리가 있었을가요? 그리고 그 때 왜 모주석과 당중앙에서는 가만 있었을가요?”
 ……
위생학교 지도일군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한참이나 꺽꺽거리더니 제법 으름장을 놓았다.
 
“이 동무가 이거 안되겠구만. 자식도 많고 또 당사자가 아니니까 가두지 않고 교육을 좀 하려 했더니. 그래 동무도 갇혀봐야 정신을 차리겠소?”
 
“당신들 그래 저까지 계급의 적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그럼 어디 한번 가둬보세요. 항일군정대학의 학원생이고 당의 우수한 아들인 김선생을 간첩으로 몰아가두더니 이젠 ‘뢰봉학습표병’인 저까지 가둔다고? 어디 한번 우리 신흥가두의 광범한 혁명적 군중들과 물어보세요. 이 김순자가 계급의 적인가를 말이예요!”
 
순자의 말은 거침없었고 그 지도일군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조리가 있었다.
 ……
말을 마친 순자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저런 저 지독한 아낙네같으이라고…”
 
등 뒤에서 위생학교 지도일군의 악에 받친 욕설이 터져나왔다.
 
2
 
문화혁명에 대해 말할라치면 시초엔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그 문화혁명의 취지에 대해 의심하고 반대한 간부와 군중은 별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순자와 같은 여성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이 그 문화혁명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당중앙의 결책이라면 모든 것이 정확하고 영명하다고 믿고 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화혁명이 지속됨에 따라 그것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혁명이란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인가? 처음에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이른바 가두시위를 벌이고 북경에 가서 모주석의 접견을 받고 외지의 조직과의 횡적연계를 맺는 등으로 그저 소란스럽기만 하던 것이 날이 감에 따라 광범한 노간부들을 붙잡아내고 그들의 집을 수색하는 쪽으로 파급되었으며 나중에는 전반 사회가 무정부상태에 휘말려들면서 조직과 조직 사이의 파벌싸움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그것도 처음에는 고무총이나 몽둥이를 들고 서로가 싸움을 벌이던 것이 어느 날엔가 연길시 거리에 총소리가 울렸으며 건물에 불을 지르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그러던 중 전반 연변에 악명이 자자한 “개산툰 유혈사건”이 터졌고 이어서 해방군이 한쪽 파벌의 켠에 서서 다른 한쪽 파벌을 진압하는 이른바 “좌파지지”행동이 개시되었다.
 
불똥은 순자의 큰 아들 영남이한테도 떨어졌다. 당시 영남이가 가입한 조직은 해방군의 지지를 받는 조직이 아닌 그 반대쪽의 조직이었다. 다시 말하면 해방군의 지지를 받는 조직은 반란이라는 명목하에 주덕해, 요흔, 전인영 등 노일대 혁명가들을 타도하려는 극좌의 노선을 걷는 조직이었고 영남이네가 가입한 조직은 위에서 언급한 노일대 혁명가들 특히 민족간부 주덕해동지를 보호하려는 이른바 “보황파”조직이었다.
 
영남이네 “보황파”조직은 해방군의 지지하에 소총까지 갖춘 상대방 조직과 파벌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어느 한차례의 파벌싸움 아니 파벌싸움이라기보다는 상대방조직의 무자비한 진압행동속에서 “보황파”조직은 풍지박산이 됐고 조직의 많은 책임자들이 붙잡혀 연행되었다. 그 중에는 순자의 큰 아들 영남이도 있었다.
 
상대방 조직에서는 갇혀있는 영남이네 조직성원들한테 밥 한술, 물 한방울 공급하지 않아 그들 모두가 허기질대로 허기진 상태였다. 당시 영남이네는 연변의학원의 어느 한 교실에 갇혀있었는데 바로 학교마당에는 콩밭이 있었다. 어느 날 며칠이나 굶은 영남이와 그의 동료들은 밖에 나와 해볕쪼임을 하는 기회를 타서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콩밭에 쓸어들어가 콩잎을 뜯어먹었고 어쩌다 보니 그 소문은 순자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가뜩이나 아들 영남이 때문에 속을 조이던 순자는 영남이네가 배고파 콩잎을 마구 뜯어 먹었다는 소문을 듣자 쇠꼬챙이로 가슴을 긁어내는듯 했다.
 
아들한테 밥을 날라다주려고 했으나 들리는 말에 따르면 대문을 지키는 상대방 조직성원들이 검사하면서 먹을 것은 일절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영남이와 그의 조직성원들이 굶어죽게 생겼는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순자는 한동안 신통한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을 굴리던 순자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려면 어쩌겠나.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이 아닌가! 발각되어도 뭐 죄를 짓는 일도 아니고…”
 
이날 순자는 기장밥을 한 가마밥솥을 해서 보자기에 싸서는 앞배에다 띠였다. 그러고는 임신부처럼 그 위에 헐렁한 옷을 입고 문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가 얼핏보면 흡사 임신부같은 모습이었다. 이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기미를 보이지 않던 순자가 임신이라니 무척 놀라는 사람들이 한두명 아니었다.
 
순자가 아들 영남이네가 갇혀있는 의학원 대문쪽으로 가니 역시 듣던대로 자식면회를 왔던 몇몇 여인들이 제발 밥만은 들여가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문을 지키는 상대방 조직의 성원은 소리를 꽥꽥 지르며 한사코 들어주지 않았다. 인정같은 것은 꼬물만큼도 없는 인간이었다.
 
“저런 보황파 새끼들은 며칠씩 굶어봐야 정신을 차립니다. 밥같은 것을 해오겠거든 아들을 볼 꿈도 아예 꾸지 마시오.”
 
사정해도 소용없었다. 몇몇 여인들은 울면서 갖고온 밥보자기를 문지기한테 맡긴 다음 빈손으로 아들을 면회하러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아줌마는 빈손으로 왔구만. 잘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무턱대고 가슴이 아파하며 아낄 것이 아닙니다. 저런 새끼들은 좀 혼나봐야 사상개조를 할겁니다. 지금 어느 세월이라고 한줌도 못되는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들이 보호하려고 들다니 말입니다. 지금은 반란의 연대로서 반란에는 도리가 있습니다. 저 그리고 저 새끼들이 죽지 않습니다. 2-3일 굶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랍니다…”
 
대문을 지키는 조직원은 순자의 “뚱뚱한 배”를 희한하게 여겨보며 유달리도 말이 많았다. 이에 순자는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뚱뚱한 배”를 어루쓸었다.
 
“들어가시오. 들어가서 아들을 잘 교육하시오.”
 
순자는 이렇게 대문을 순리롭게 통과하였다.
 
순자가 영남이네가 갇혀 있는 방에 들어서자 영남이는 갑자기 뚱뚱해진 어머니의 배를 보면서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는 것이었다. 미구하여 순자가 배에 띠였던 보자기를 풀자 놀란것 영남이뿐 아니라 방에 있는 영남이네 또래들 모두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영남의 어머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야 있습니까? 아무튼 머리를 잘 썼습니다.”
 
“영남의 어머니 덕분에 오늘 생활개선을 하게 되였네 허허허.”
 
갇혀있는 몸이었지만 젊은이들이라 활발하고 낙천적이었다.
 
순자는 여럿이 똑같이 나누어먹으라고 하면서 손수 둥글게 주먹밥을 만들어서는 여럿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몸을 조심하면서 앞날을 생각하라며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남이와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져나올 때 순자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갈 때는 “뚱뚱한 배”를 내밀며 임신부처럼 가장했으나 나올 때는 그럴게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대문을 지키는 조직원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주라고 순자가 나오면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했으나 “흥”하고 코방구를 뀌면서 대꾸도 없었다.
 
그 조직원은 들어가는 사람들만 중시할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인 모양이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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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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