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2(화)
 
● 박철원
 
세상에는 두 눈 뜨고 앞 못보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두눈은 실명했어도 밝은 마음으로 널리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맹인에게 있어서 지팽이는 생활필수품이며 몸과 마음을 지탱할 수 있는 첫째로 공구이다.
 
나는 “지팽이”감수를 남 다르게 체득하며 자신의 노후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는 올해78세인 맹인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신다. 내가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5년전부터이다. 방송애청자인 나도 “연변방송”을 들으며 늘 “가요 다이데트”나 “이 밤을 함께 합시다”프로에 열심히 참여하시는 김봉숙노인을 알게 되었다.
 
노인 뇌봉반 반장을 맡으시고 매일 매일을 사랑의 마음으로 애태우는 김할머니는 자신보다 남을, 돈보다 정을 더 중히 여기며 사랑나누기를 생의 낙으로 삼고 지내면서 웃음을 만들며 즐겁게 살아가시는 분이다.
 
2010년 6월 “뇌봉할머니”가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을 때 나는 그이가 열사기념비 앞에서 한 대학생 처녀와 함께 선서하는 사진을 배합한 글을 썼고  7월1일자 연변 “노인의 벗”신문에 실렸다. 그 때로부터 나는 이 할머니의 소행이 우리 노인생활의 특수한  활력소임을 감수하게 되었다.
 
그 때 이 할머니의 생활은 80고령의 뇌봉반 고문인 한무길 선생과 80세 박연희 노인이 전담하고 있었다. 연장자 노인들이 맹인을 모시고 다니는 그 정경이 나에게는 특별한 모습으로 빛났다.  그들이 김봉숙 노인의 남편을 이어선 제2대 “지팽이”라 하겠다.
 
“나젊은 내가 김노인의 제3대 ‘지팽이’로 되어보자.”
 
김할머니를 돕거니와 다른 노인들의 힘도 덜어줄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어린시절  큰 아이들을 따라 길가에서 맹인을 만나면 재수가 없다며 “퇴!”하면서 침을 뱉고 달아나군 하였고 절음발이를 만나도 흉내내며 기시하였지만 지금 너무도 마음에 찔리며 미안함이 그지없어 마음속으로 다시 다시 속죄하군 한다. 그 옛날의 시대는 장애인들이 업신당하던 험한 세상이었다.
 
독거노인인 이 할머니에게 믿음을 주면서 할머니의 생활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6살에 공장일터에 나선 그는 29살 나는 외동딸을 잃은 비통으로 두눈이 실명되고 남편도 페암으로 저 세상에 갔으며 지금은 언니의 자식들이 조선땅에 있을 것이고 계모로 들어와 알뜰히 성가시킨 두 이붓 아들이 흑룡강성 그 어디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집도 땅도 저금도 없는 청빈한 노인이었다. 나와 아내는 이런 노인을 모시기로 작심했다. 그 무슨 재산이 있거나 직계친인이 있다면 시속의 편견 때문에 시끄러움이 두려웠지만 근근히 퇴직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이 불쌍한 노인이 우리의 마음에 꼭 다았다.
 
2010년 음력설을 맞으며 나는 아내와 아들딸, 두 손군을 이끌고 할머니 집에 가 설을 쇠게 되었다.  뇌봉반 노인 몇분도 참석한 자리에서 나는 맹인노인 김봉숙을 “고모”라 부르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이유:
 
1. 우수한 분이기에 존중하며 선생님으로 모시고 따라 배워야 한다. 노인 뇌봉반 반장을 맡으신 할머니는 밝은 마음으로 널리 내다 보신다.
 
결혼반지를 팔아 지진이재민을 지원해 사천을 울렸고 전국을 감동시킨 분이다.  2005년 3월 유체기증도 선참으로 등록하였다. 언제나 자비를 앞세우고 사랑의 마음을 전해가며 사회에 기여하는 분이다. 매일 매일 사랑으로 들끓는 본보기 노인이다.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이다.
 
2. 불쌍한 분이기에 도움이 수요된다. 정상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참아가며 정신으로 살고 즐거움을 만들며 살고, 기쁨을 찾으며 산다.
 
할머니는 방송과 함께 산다.  때문에 세상만사를 빨리 알고 많이 알면서 시대를 따른다.  정상인들인 우리가 하루 방송을 몇 분 간 들으며 신문은 얼마를 읽는가? 우리가 할머니의 눈이 되고 “지팽이”가 되어야 한다. 
 
3. 할머니는 전주 김씨이고 봉선(아내)이도 전주김씨이다보니 민속적으로도 “고모”로 모시고 살펴 드려야 한다.
 
앞으로 할머니의 생활을 살피며 뇌봉반 사업을 협조하는 “비서”로,  생활의 “지팽이”로 나서야 한다.
 
동정하여 돕고, 우수하여  돕고, 친척되여 모신다.
 
이어 우리는 차례로 큰 절을 올리며 할머니의 승낙을 받았다. 할머니는 날따라 늘어나는 “식솔”들의 정성에 감격하며 아이들에게 의미심장한 덕담도 들려 주었다.
 
그 날로부터 나는 정식 김할머니의 “지팽이”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영광스러운 승진에 마음부터 설레며 충실히, 알뜰히 살펴 드리리라 작심했다.
 
몸이 불편하신 한무길 선생도 내가 제3대 “지팽이”로 나서는 것을 기꺼히 승낙하여 주며 구체적인 일들을 인계하여 주었다..
 
단산사회구역에서 노인대학을 세울 때 할머니는 첫 사람으로  학잡비를 냈다. 이 “지팽이”도 가이드학원이 되어 아침에 모셔가고 하학 후에 모셔오면서 열심히 배웠고 어떤 날에는 다른 행사가 있다 보면 학교에 모셔다 드리곤 달려가 행사활동을 마치고 다시 모시러 가군 했다.
 
할머니의 마음은 그렇게도 순결하고 사랑으로 넘쳤다.  언제나 감사를 앞세우고 자비부터 생각하는 분이다 보니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할머니 신변에 있는 나의 마음도 늘 정화된다. 이것이 “지팽이”가 된 첫째 수확이다.
 
“삶을 웃음으로 살고 베풀줄 알며 살아야 한다.”
 
이는 이 “지팽이”가 할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방식이다.
 
하루는 아내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너의 남편은 왜 소경할머니의 팔장을 끼고 다니느냐?”, “너의 복을 다 떼간단다”하는 친구가 있다고. 
 
그 때 아내는 “우리 남편은 기자이다!” 라고 한마디 대꾸했단다. 참 잘한 대답이다. 너무도 감사한 대답이다!
 
사회의 편견에 대항하며 이해가 따라가지 못하는 친척들께 해석하는 압력과 고민을 이겨가며 나를 떠밀어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상에는 장애자를 기시하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으니 가슴 아프다.
 
퇴직 후의 나는 정의를 호소하고 시대 선봉을 홍보하며 사악한 기풍을 폭로하는 기사를 다루며 여러 매체의 “특약기자”로  초빙되어 활약하고 있다. 하기에 74세 맹인노인의 입당선서장면도 취재하고 애심의연현장도 많이 다녀온다.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서 도움이 수요되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성에 맞는 행위이거늘 자기만 자기, 돈만 돈이라는 경향은 저주받아야 한다.
 
한번은 할머니를 모시고 버스에 올랐는데 두 사람이 일어서면서 자리를 내주어 인차 앉게 되었다. 그런데 옆에 앉았던 한 중년여성이 할머니를 쳐다 보더니 대뜸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무서워”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온역”이라도 만난듯 피하는 그녀의 거동에 나의 심장이 짜릇해 났다.
 
나는 가는 곳마다에서 “지팽이” 주인인 “뇌봉할머니”의 사적을 소개하며 사회문명을 호소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마음의 정화를 받으라고.
 
2011년 8월,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구태시 신립촌을 방문하였다.  그 곳의 노인들은 “연변뢰봉”의 사적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연변의 맹인할머니가 저렇게 자랑찬 삶을 사시는데 몸 성한 우리들이 왜 못하는가? 하면서 그들도 노인뇌봉반을 뭇고 불우이웃 돕기에 나서며 사회에 열심히 기여하고 있다.  나는 이로서 또 한번 “지팽이”활약의 희열을 느꼈다.
 
 
때론 할머니가 조용히 “신세”이야기도 들려준다.  남편 생전에 늘 오토바이뒤에 앉아 나들이 하며 그토록 정답게 지냈다고,  임종시 눈먼 아내를 혼자 남겨두고 간다며 그토록 안타까워하시던 정경도 여러번 들려 주었다.
 
할머니의 그리움, 서러움을 덜어 드리려면 더 충실히 “지팽이”노릇을 하여 더 많은 편리를, 더 많은 즐거운 기회를 도모해 드리는 것이 나의 “직책”이라 하겠다.
 
“취재”행사에 참가해야 하고, 올해부터는 또 원 직장에 “출근”도 해야 하는 실정이지만 나는 짬짬히 할머니 집으로 달려간다.  “지팽이”를 기다리는 노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2012년에는 90차,  2013년에는 계획 200차 실제로 272차 내왕하며 지팽이 노릇을 하였다. 연길시 하남에서 자전거로 북대언덕을 올라 할머니 댁에 가고나면 겨울에도, 여름에도 땀벌창이 되군 하지만 부모뵈려 간다는 마음에 힘든줄 모르고, 환한 웃음으로 문을 열어주며 반겨줄 때마다의 그 기쁨은 오로지 이 “지팽이”만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하루는 건너도 이틀은 넘기지 않고 달려간다. 뇌봉반 행사도 설계하고 전화도 눌러 드리며 혈압을 재여드리고 생활쓰레기를 버려드린다. 어떤 때에는 할머니 혼자서는 식미가 없지만 이 “지팽이”를 위해 식사를 갖추며 함께 맛나는 식사도 하는 기분에서도 특수한 감수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반년간 약수도 날랐다. 우리 집에서는 딸이 사다준 정수기 물을 마시고 있지만 할머니는 수도물을 마셔왔다. 나와 아내는 한가족인 우리 할머니도 좋은 물 마시게 하려고 이틀에 한번씩 약수를 날라 드렸다.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오늘 못가면 할머니가 목 말라하신다고 생각하니 짬이 꼭꼭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보건품경영 회사의 경리가 할머니 집에 놀려왔다가“약수사연”을 알고는 할머니건강도 살피고 “박기자”도 해방시킨다며 자기네 회사의 정수기 한대를 무료로 놓아 주었다. “지팽이”의 “약수배달”이 실업당한 셈이었다.
 
2012년10월15일 “세계 시각 장애인의 날” 나는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맹인들의 도우미로 방천유람의 길에 나섯다.
 
예전에는 여러차 입원하였고, 심장병으로 구급까지 받았던 노인이 감사하게도 이 “지팽이”와 함께 다니면서부터 병원출입 한번도 하지 않았다. 보건도 따르고 정신요법도 따르니 건강상황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지팽이”로서 너무나도 기쁘다.
 
할머니의 입당소개인의 한분이신 한무길 선생은 10년간 매일 새벽이면 김봉숙 할머니의 안부전화를 걸어왔다. 그 가운데서 두번이나 병에 시달리는 상황을 발견하고 입원치료를 조직하여 드렸다. 할머니의 세 “양딸”들도 효성이 지극하다. 역시 “연변방송”의 인연으로 무어진 “모녀”들이다. 큰 딸 최혜숙은  5년전 할머니가 입원한 한달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신변에서 살뜰히 보살폈고, 둘째 김명휘는 한국에서 할머니의 사계절복장을 전담하고 셋째 허애자는 할머니의 식생활 생필품을 전담하며 살핀다. 그들도 이 “지팽이오빠”와 함께 “지팽이” 감수를 향수한다.
 
김할머니는 방송과 더불어 살고 이 “지팽이”를 믿고 살며 베푸는 낙을 만들며 사신다.  할머니는 세상소식도 제때에 접하고 사회의 어려운 사연들도 너무 너무 잘 알고 있다보니 언제나 도움의 길에 나선다.
 
고작 1600위안의 퇴직금에서 달마다 1000원은 따로 떼내여 그 누구를 도울 타산부터한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며 할머니의 사랑일기를 적는다. 2012년에는 7500위안의 성금이 나갔고, 지난해에는 1만 2200위안의 사랑의 성금을 내놓았다. 그것도 이 “지팽이”가 많이 설득하며 제한한 실정이다. 아니면2만위안을 넘겼을 것이다.
 
올들어서도 첫 달부터 언어장애어린이들을 도우며 애심기여가 이어지고 “6.1”절에도 500위안, 운남노전지진에도 2000위안을 기부하고, 노인절 30돐을 맞으며 자기가 받은 상금 5000원을 주노년협회에 기증하는 등 애심은 식을줄 모른다.
 
“지팽이”도 힘이 든다. 그러나 힘든 뒤의 희열은 따로 있다.
 
“지팽이”는 마땅하다.  수요되는 할머니의 마음과 체중을 모두 의탁받는 기둥은 인간도덕의 최저한 실천이기에 누군가는 꼭 나서야 한다.
 
“지팽이”는 영광스럽다.  더우기 “도덕모범”이며 “연변의 훌륭한 인물”인 김봉숙 노인의 “지팽이”는 더욱 영광스럽다. 지난해 8월 중앙인민방송국과 연길시당위 선전부에서 공동주최한 행사에서 김봉숙 반장과 이 “지팽이”는 나란히 “시대선봉”으로 표창받았다.  나로 하여 한 장애자가 기쁨을 느낄 때 그 속에 이 “지팽이”의 행복도 넘친다.
 
이 “지팽이”는 할머니의 정신에서 힘입고 아내의 뒤받침 속에서 열심히 뛰어다닌다. 아내는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고모”부터 생각하고 가족사랑시간을 할머니에게 많이 돌리라고 떠받들어 준다. 하루는 낮시간에 짬이 없어 할머니 보러 가지 못하고 퇴근하였는데 “오늘 고모한테 못가지 않았어요?”하고 묻는 정성에 늦어서라도 달려가 보게 되었다.
 
할머니도 이 “지팽이”를 너무도 아끼며 사랑한다.
 
취재와 사회활동에 바삐 도는 나를 너무도 잘 아는지라 되도록 적게 부르려고 애를 쓴다.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나부터 챙겨준다. 누군가 닭밥을 보내 왔는데 할머니는 한술도 안들고 나더러 소멸하란다. 장모가 사위사랑을 하듯 주고 받는 사랑이 오가는 감수도 남다르게 체험한다. 때론 매체에서 찾아와 취재할 때면  통역이 수요되어 급급히 부른다. 한번은 저녁에 샤와하시고 미끄러져 팔을 상했지만 이 “지팽이”가 너무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며 온밤을 혼자서 지새우며 알리지 않았기에 이튿날에야 알게 되었다. 믿음과 사랑, 의탁이 앞서는 할머니가 감사하기만 하다.
 
지닌 8월 13일, 할머니는 큰 타격을 받았다. 입당 소개인이며 친밀한 전우였던 한무길 선생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우리는 훌륭한 고문을 잃었다.  제2대 “지팽이”가 쓰러졌지만 제3대 “지팽이”가 드팀없이 지켜드리니 시름 놓으시라고 비통에 모대기는 할머니를 달랬다.
 
국경절을 맞으며 우리 부부는 할머니를 모시고 동천(氡泉)이라는 온천요양지를 다녀올 타산을 한다.  통화지구의 천양( 泉阳)림업국에 있는 동천(氡泉)에는  라돈(氡)이라는 기체가 온수물로 솟아 피부병, 골과부실, 소염효과가 좋다기에 요양지로 소문 높다.  “고모”에게 마음의 슬픔과 몸의 불편도 깨끗이 씻어 버리는 향수를 드리련다. 명년에는 할머니가 그리워하시는 조선바다의 해수욕도 체험시킬 타산도 가지고 있다.
 
우리 부부는 할머니의 “지팽이”가 되면서 인생을 다시 한번 터득하게 되었고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더 생생히 이해하게 되었다. 문명부강한 나라에서 조화로운 사회의 넘치는 사랑으로 베풀며 사는 인간으로 되리라 다시 한번 다진다.
 
할머니의 마음과 체중과 사랑을 모두 감당하는 휘지 않고 꺽이지 않는 합격된 “지팽이”로 되어 한 맹인 “도덕모범” 의 여생을 충실히 살펴드리며 뇌봉정신 고양으로 노후의 꽃노을을 장식하면서 깊고 깊은 “지팽이” 감수를 터득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할머니 시름놓고 이 “지팽이”를 짚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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