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 허 헌
 
(전번기 계속)
샤와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식사를 한다는 호출이 있었다.
 
복도로 나오니 마침 국가청년팀 선수들이 줄을 지어 식사하러 가기에 그들이 들어가는 식당홀에 들어서자 접대원이 우리의 앞을 막으며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었다. 이에 내가 회의하러 온 축구팬 대표라고 말하자 접대원은 대표들의 식당은 저쪽 큰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축구팬 대표들에게 향해지는 접대는 5성급 호텔 차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접대원이 알려준 식당홀에 들어서니 이미 아주 큰 식탁 3개가 준비되어 있었고 상위에 오른 요리 개수를 세어보니 무려 36가지나 되었다. 그리고 매 상마다 미녀 5명씩 차렷 자세로 우리를 맞아주며 곱게 인사하였다.
 
이어 하나 둘씩 자리를 찾아 앉자 위주임이라는 기지의 책임자가 나를 자기의 옆에 앉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연변축구의 현황에 대해 이 것 저 것 물으면서 나한테 맥주를 부어주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조선족은 맥주보다 배갈을 더 즐긴다고 하자 그는 인차 접대원한테 부탁하여 모태주를 올리게 하였다.
 
명주인 모태주는 확실히 기타 다른 싸구려 술과는 근본 맛이 달랐다. 맛도 유유했지만 향기가 더욱 좋았다. 그래서 그 책임자한테 값이 얼마인가고 물었더니 3000위안이라고 했다. 어머, 3000위안? 그럼 내가 반근을 마시면 1500위안어치 마시는 셈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촌 놈이 좋은 술이 생겼을 때나 콱 마셔야지.)
 
아니나 다를가 내가 한잔 마시기 바쁘게 대기하고 있던 미녀 접대원이 계속 잔을 채워주군 하였다.
 
한편 연회의 무드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기지의 위주임은 29명의 대표들을 향해 차례로 자아소개를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맨 끝에 있는 연회상부터 소개되다 보니 위주임의 옆에 앉은 나의 차례는 맨 마지막으로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술기운을 빌어 큰 소리로 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연변에서 온 대표이며 이름은 허헌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 있는 대표들중 유일하게 소수민족으로 조선족입니다. 저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니며 조선족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중국인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수많은 중국인 중의 일원입니다.”
 
나의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박수소리가 터졌다. 여기서 힘을 얻은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제가 노래 한곡 불러드려 되겠습니까? 제목은 ‘나의 중국마음(我的中国心)’입니다.”
 
접대원이 노래방 기계를 틀자 전주에 이어 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산과 강은 이 내 꿈 속에 있고
내 마음 항상 조국과 함께 있다네
타향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의 중국 맘 변할 수 없다네
나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는지 많은 대표들이 눈물을 보이었고 후렴에 가서는 사업인원들과 대표 지어는 접대원 아가씨들까지 모두 기립하여 합창으로 이어지면서 장내의 무드는 클라이막스로 치달아 올랐다.
 …
이튿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빠개질듯이 몹시 아파났다. 아무리 명주라지만 과음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엇다. 하지만 이 날에 있을 행사를 생각하면 정신만은 올똘하게 차려야 했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서니 각종 반찬 중 눈에 확 띄우는 것이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김치가 있었고 된장국은 아니었지만 된장국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국(汤)”이 있어 그나마 쓰린 속을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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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와 광주에서 온 미녀 축구팬 대표들과 함께 )
 
아침식사가 끝나 얼마 안되어 북경으로부터 취재팀이 온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마중을 나가자 몇대의 승용차들이 대문으로 들어와 칙 하고 멈춰서더니 차안에서 기자들이 카메라와 각종 기재들을 들고 내렸다.
 
그들은 바로 중앙TV방송국과 국가급 매체의 기자들이었다. 이어서 중국 축구협회 상무 부주석이며 중국 축구운동관리센터의 위적 주임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두손을 높이 추켜들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각 지에서 온 축구팬 영수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축구팬 대표들을 영수라고 부르다니…
 
영수라고 하면 이전에 떠올려 봤던 중화 인민 공화국 창건자 모택동 주석만이 영수라고 했었는데 우리를 영수라니 우스꽝스럽고도 조금은 당황하기까지 하였다.
위적 주임은 우리 대표 한사람씩 악수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위주석님, 저는 연변에서 온 대표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의 명함장입니다.”
 
나의 명함장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당신은 치과의사입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치과의사가 축구팬협회의 영수라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를 추켜올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념으로 집체사진을 찍을 때 나의 손을 꼭 잡고 중간좌석에서 자기와 나란히 앉게 하였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회의장소에 들어섰는데 맨 앞좌석에 내가 앉을 장소로 “연변대표석”이라고 씌어져 있었고 옆에는 “청도대표석”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청도대표는 여성으로, 청도 해우축구팬협회의 부 회장으로 활약하는 미녀축구팬이었고 성은 서씨였다.
 
회의가 시작되자 먼저 중국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이며 중국 축구협회 위적 부주석이 발언하였다. 헌데 그의 첫 마디 발언이 나를 놓고 시작될 줄이야.
 
“각 지에서 온 축구팬 영수 여러분, 오늘 제가 본 주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제일 먼 곳에서 오시고, 더구나 조선과 러시아가 가까운 변강에서 오신 허헌 대표 말입니다. 그는 치과의사랍니다. 전국에서도 제일 많은 축구팬을 소유하고 있고 전국을 놀래울 정도로 연변축구팬들은 열정이 넘치고 문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연변축구팬 령수가 치과의사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응당 여러 대표분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봅니다.”
 
위적 부주석의 발언이 끝나자 모든 사업인원들과 대표들이 한결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한테 박수를 보냈고 그 답례로 나는 우리 민족이 할 수 있는 분명한 경례로 답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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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축구협회에서 마련한 축구팬대표 좌담회 전경)
 
이날 회의의 주요 내용은 중국축구계의 많은 문제점을 적발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예하면 안보, 비리, 가짜볼, 검은 호르래기 등과 중국축구의 앞날에 대해 심각하고도 투철하게 고민해 보는 것 등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연변축구계에서도 자주 나타나군 하는 현상이였다. 연변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그것도 우리 조선족들로 주로 무어진 축구팀이라는 명칭이 업신여겨서인지 우리 연변축구는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부분적 축구팬들은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심판과 상대방 선수들을 욕해대는 현상도 비일 비재로 존재하군 했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열거하면서,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나의 일가견들을 숨김없이 밝히었다.
 
회의에서 나의 발언은 큰 인기를 얻었다. 비록 한어발음이 서툴고 정확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집어내는 문제들은 확실히 보편적인 문제들이었고 또한 반드시 시정돼야 할 사항들이기 때문에 회의 참가자들은 명심해 청취하고 기록하군 하였다.
 
회의는 오전 오후로 계속 진행되었고 휴식은 오전 중간에 30분, 점심시간 2시간, 오후 30분이었는데 휴식시간마다 각 지의 대표들이 나한테로 찾아와서는 연변축구팀의 현황을 물어보군 하였다. 특히 고종훈은 지금 뭘 하는가고 묻는 사람이 제일 많았고 또한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대표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 청도에서 온 미녀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게 된 나는 기분이 한결 좋았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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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슈퍼축구팬의 수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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