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고훈 감독편

1.png
 

을급리그 현념 깨어지기 시작한다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과의 인터뷰

올들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5 연승을 거듭한 고훈 감독, 일전 기자는 세기팀이 제6라운드가 경기공백인 기회를 타서  그를 만나 올 을급시즌 전 5 라운드 경기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문: 5라운드까지 세기팀은 5전 5승의 불패의 기록으로 북방경기구1위에 있다. 지금까지 대결한 팀과 이제 남은 팀들의 실력에 대한 분석이라면?

답: 올시즌에 뛰어들 때 우리 팀은  필승의 자신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중시도를 낮추지 않았다. 제1라운드부터 진공을 위주로 하면서도 수비를 홀시하지 않았으며 제5라운드까지 치르면서 보면 차면 찰수록 성숙되는 기미를 보였고 상대방 팀들은 우리가 예견했던 것처럼 강하지 못햇다.  특히 북경굉등팀이 그랬다. 상대방이 약한 점, 이는 우리가 쉽게 이기고 대승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불리한 점도 없지는 않다.  

아직까지 진짜 강팀과 대결해보지 못했고 또한 이제부터는 원정경기도 많아지기에 성적이 이상적이겠는가 하는 것은 장담하기 어렵다.
예견되는 강팀이라면 요녕청소년팀, 하얼빈협력팀이라고 느껴지지만 매체들에서 을급팀에 관한 보도를 적게 하고 이에 대해 장악한 정보도 많지 못하기에 큰 파악은 없다. 하지만 팀실력을 볼 때 그 어느 팀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심이 생긴다. 어찌보면 올 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현념은 이미 깨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잇다

문: 올들어 가장 진보가 빠른 선수들이라면?   

답: 선수들이 모두가 정도부동하게 진보가 잇다. 돌출한 선수라면 좌조개, 한송봉, 최영철, 정림국 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림국은 시즌 초기에 좀 부진을 보였지만 인차 경기상태에 진입하여 컨디션에  회복하였고 새로운 도약을 가져왔다.

문: 원 오동팀을 지휘할 때에 비해 현유팀의 총체실력을 평가한다면?

답: 출중한 선수를 꼽으라면 아직은 좀 이르겠지만 총체적으로 정식맴버와 후보들 사이의 차이점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아 기쁘다. 원 오동팀을 지휘할 때엔 고종훈이나 이광호같은 선수들이 경고누적이나 상처로 결장할 시엔 자리를 메꿈할 선수가 없어 매우 골치 아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거의 없다.

문: 이번 휴전기간의 훈련슈케줄은 ?

답: 매일 오전 오후로 4시간 정도씩 훈련하며 주로 체력회복에 정진한다. 며칠 전에는 등산도 해보았는데 선수들한테서 체력하강현상을 크게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동기전지훈련이 잘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로 코치인 전영춘 지도가 수고 많이했다.

문: 연변축구팬들과 외지축구팬들의 차이점이라면?

답: 차이가 선명하다 제2라운드 경기 때 북경에 가보았는데 관람석에 50명 정도가 앉아 구경했다. 그 분위기도 우리가 원정팀이라는 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연변의 축구장분위기는 슈퍼리그경기장 분위기 못지 않고  한편 연변의 축구팬들은 저마다 축구전문가라 할 수 있다

하긴 이 때문에  감독과 지도 및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많고 가끔씩 욕도 먹지만 그것이 우리에 대한 깨우침이고 계발이라고 할 때 고까운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다.  총적으로 연변팬들은 너무나도 고맙기만 하다. 《스포츠》 2004년 5월 24일

2.PNG
 
공격형 축구와 고훈 감독의 전술풍격

조선족축구인 고훈, 선수시절엔 중앙공격수로 자리매김을 했고 축구지도생애를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한국행 연수와 은사인 최은택 교수로부터 현대축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익혔으며 1999년엔 갑A의 5 개 강팀을 선두주자 자리에서 끌어내려 “거물사냥군” 지휘자로, 축구협회컵 4강까지 이룩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 병마로 쓰러진 뒤 오동팀을 강급시킨 “장본인”으로 비난받기도 했던 고훈 감독, 그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훈 감독이 다시 연변축구의 사령탑을 잡았다.

어찌됐건 필자는 고훈 감독의 기전술풍격을 긍정하는 일원이라는 것을 분명 밝히는 바이다.

팀 실력에 맞는 과학적인 진영배치

갑A의 감독시절 고훈 감독은 352포메이션의 공격형 축구를 자주 구사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 실력에 따라 진영배치를 해야 하는데 352진영을 너무 고집한다”, “최은택 교수한테서 배운 것이 352진영뿐이니 그걸 벗어날 수 없다”고 책망하기가 일쑤였다.

필자가 알건대 그 시기 고훈감독이 구사한 352포메이션은 이광호, 장경화, 황경량(때론 학위동, 텔렉, 남호 등도 포함됐음) 등 3명의 수비와 고종훈, 현춘호, 김청, 황동춘, 천학봉(노주섭, 송소우, 박순배, 왕광위 등도 포함) 등 5명의 미드필더라인 그리고 졸라, 정동칠(이찬걸, 오영군, 테니 등도 포함) 등 2명의 공격수로 배비된 진영이었다. 이는 1997년 최은택 감독의 시대부터 자주 운영해온 것도 있었지만 그것이 비교적 선수들의 특성에도 맞았고 짜임새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기 오동팀이 수비선을 볼 때 비교적 나이와 경험이 많은 선수들로서 이광호의 침착하고 온당한 중앙수비, 완강하고 끈질긴 장경화와 황경량의 대인수비 및 김청, 송소우이 협력수비 등은 442진영의 4명 수비보다 못지 않게 견고했기에 공방조직의 고리인 미드필더라인에 1명의 선수를 더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무리 352포메이션을 주장한다는 고훈 감독이었건만 무턱대고 그 진영을 고집한 것만은 아니었다. 홈장 아닌 원정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가끔씩 졸라 한명만 톱에 내세우고 361포메이션을 구사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고훈 감독이 올들어부터는 442포메이션을 구사, 올들어 첫 몇경기를 구사한 442포메이션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백승호, 한광화, 조명, 좌조개 이 4명의 수비선수 중 2번 백승호와 5번 좌조개는 수비선수면서도 보조공격에 적극 참여한다. 포메이션을 말하면 352이든 442든 선수구성과 특정에 따라 배치하는바 지금 442포메이션은 백승호, 좌조개, 최영철, 고만국 등 4명의 ‘변선공격’이 맹활약적인 특점에 따라 공격망을 넓히자는데 목적이 있다. 현시점에서 해결할 과제라면 이 4명의 ‘변선공격수’가 공을 중앙에 정확히 패스해주는 것, 이 과제가 풀리면 팀의 득점력은 크게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공격형축구 – 상대방이 나의 리드대로 움직이게 한다”

지금 일부 축구인들은 연변세기팀의 첫 몇경기를 보고는 “공격형축구로 경기의 주도권을 쥐려는건 분명하나 감독의 축구이념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킴에 있어서 어딘가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한 감독의 축구이념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키는데는 시일과 선수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1997년 최은택 감독이 오동팀을 자기의 축구이념으로 개조시키기까지엔 첫 5라운드까지 1무 4란 부진을 겪는, 반년 이상의 시간을 소모했고 원 한국국가팀의 히딩크 역시 감독직을 맡은 뒤 근 2년간 유럽강팀들과의 평가전에서 번번히 패하여 “동양계축구를 지휘할 감독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고훈 감독 역시 아무리 선진적인 축구이념을 강조하고 훈련에 주입시킨다 해도 필경 을급축구권에 속하는 연변세기팀을 짧은 시일내에 쇠소리나는 강팀으로 부상시키라는 건 어딘가 무리란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 올들어 세기팀은 을급권에서 자리지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갑급행렬로 진출하려는 팀인만큼 온당한 방어반격보다는 공격형축구로 상대방마다 우리 팀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고훈 감독의 기전술, 상대방 실력여하에 따라 구체적인 제압전술도 체현하게 되는바 제1라운드에선 홈장우세로 감숙중우팀을 전반전에 2 : 0으로, 제2라운드 원정에서는 북경굉등팀이 북구의 강팀이었기에 전반전엔 공방절주를 장악하다가 후반들어 강한 체력과 정신력 우세로 상대방을 몰아붙여 첫 원정승을 일궈냈다.

동시에 고훈 감독의 지도이념은 상대방 역습에 선골을 적게 먹거나 먹지 않는 전제하에 될수록 골을 빨리 내고 많이 내는 다득점 우세로 북구의 우승신분으로 최종결승에 뛰어들어 갑급진출을 성공시키려는 것이다.
 
을급리그 진급방법에 대비한 지도사상과 지도풍격

“갑급권진급방법에 비해 을급리그의 진급방법은 일정한 모순이 있다. 8강전의 도태식이 없고 점수가 높은 팀이 진급하는 방법을 채용한다면 지난해 연변팀이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2단계의 경기까지는 훌륭하게 잘 치렀으나 최후 4강전에서 실력이 한차원 아래인 서안안형원한테 승부차기에서 밀려났다. 억울한 일이다. 한편 이는 평소부터 심태문제를 잘 풀어주지 못한 것으로 보아진다. 올해엔 해남 전지훈련 때부터 강팀과의 경기를 잘 치르기 위한 심태문제 해결에 모를 박았다. 아무리 우리보다 실력이 몇차원 강한 팀이지만 약한 고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들과 이길 수 있는 요소가 30% 정도 있다는 사상을 강하게 심어줬다. 그 외 강팀을 이기자면 방어반격보다는 공격형축구를 펼쳐야 그 가망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하다면 올들어 첫 3경기를 보면 우선 연변세기팀의 풍격이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아래와 같은 몇가지로 보아낼 수 있다.

첫째. 불필요한 뒤패스가 적고 양측 “변선날개”와 미드필더선 공쟁탈을 포함한 공격망이 넓어지고 공격이 보다 날이 섰다. 이는 이왕에 수비선에서 직접 공격선의 정림국이나 문호일한테 롱패스하여 득점하려다가 두 선수가 상대방 수비수들에 의해 발목을 묶이우던 국면을 돌려세웠다. 공격망이 넓어지니 득점수가 단 정림국과 문호일만이 아닌 여러 선수들한테로 넓어지니 득점기회가 많아졌다. 아직 변선에서의 패스처리나 문전배합에서 좀 미숙한 것은 사실이나 이 고리만 풀리면 연변세기팀한테서 골사태가 터질 날은 조만간에 다가올 것 같다.

둘째. 공격형축구는 선수들한테 승전의 자신심을 심어준다. 고훈 감독이 밝힌바와 같이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승전요소가 30% 있다”는 것처럼 자신심만 있으면 반쯤은 이긴 경기를 펼쳐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으로는 1998년 장춘 남령 경기장에서 대련만달팀을 1 : 0으로 제압한 것과 1999년 갑A 선두주자로 달리던 요녕무순, 북경국안, 상해신화, 사천전흥, 중경융흠 및 산동노능을 꺼꾸러뜨린 경기가 가장 좋은 사례가 된다. 그리고 선수들의 자신심은 결승전에 가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심어주고 키워줘야 한다는 설법에 더욱 동감이 간다.

셋째. 공격형축구는 관중들이 좋아한다. 중국 갑A전장에서 소문놨던 한국인 이장수 감독의 주장인 “세번 빅어 3점을 따기보다 두번 지고 한번 이기는 것으로 3점을 따는 것이 훨씬 통쾌하다”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침투하고 쐐기를 박는 등 공격력의 강화는 늘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함과 동시에 그것으로 또한 관중들을 흡인하여 경기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축구란 높은 순위를 따내는 것도 목적이지만 관중들한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면에서 보면 고훈 감독은 과거 중국축구무대에서의 최은택, 싼트라치, 이장수, 카로스 등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비판언론에 대한 소감

연변은 축구운동의 중점지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에 대한 기대도 크다. 따라서 축구감독이나 축구선수들에 대한 언론평가도 많은바 축구를 관심한다는 견지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이런 언론들 중에는 흔히 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깨우침보다는 인격비방이 나올 때가 허다하다. 언론은 자유이지만 인격 모독과 무함, 중상은 삼가해야 할 것이 아닐까? 사람이 로봇이 아닌만큼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잘못을 재차 범하지 않도록 깨우쳐주는 것이 축구인이나 보도분야의 책임이다. 말하자면 이전에 고훈 감독이 쓰러져 오동팀이 강급하니 뭐나 고훈의 잘못이고 지난해 이호은 감독이 갑급진출에 실패하니 또 그 책임을 그한테 몰아붙이듯이 해서는 감독한테보다는 연변축구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없다.

고훈 감독 역시 찬반이 엇갈리는 여론에 대해 참다운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지당한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스포츠》 2004년 5월 24일

자신심 수립과 풍격 발휘는 정비례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의 축구이념 들어본다

11.PNG
올들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있는 전국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9연승을 일구어낸 고훈 감독, 제1순환단계 경기에서 그가 고안해낸 축구이념과 기전술풍격 및 지도사상 그리고 제2순환단계와 8강전에 대비한 훈련과 경기 방안은 무엇일까?

일전 기자는 고훈감독과의 독점인터뷰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었다.

“축구에 있어서 자신심수립과 풍격발휘는 정비례라고 인정한다. 여기서 자신심 수립은 감독앞에 부여된 과제이고 풍격발휘는 선수들을 통해서 체현돼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말 팀을 맡았을 때 느낀 점이라면 선수들한테서 가장 결여되는 것이 바로 자신심 부족이었다. 그래서 해남도 전지훈련시에 첫 한달은 선수고찰과 더불어 자신심수립을 위한 심태훈련을 주로 시켰다. 즉 골을 먹지 않거나 적게 먹자는 사상을 버리고 골을 넣고 이기기 위한 경기력을 키워달라고 자주 강조하였다. 그리고 매 선수들한테는 ‘너는 된다. 기죽지 말고 맘껏 재능을 다 발휘해보라’는 식으로 자신심을 심어주면서 자비심을 철저히 버리게 했다. 결과 전지훈련의 후반단계에 있은 27차례의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은 승전을 위한 득점공간창조에 집중됐으며 또한 이를 통해 공격형 축구를 시도하는 감독의 뜻도 체현될 수 있었다.”

올들어 선수들이 보편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변선진공에 유력한 특점에 근거하여 442포메이션을 도입한 고훈 감독, 하지만 442시스템 역시 상대방 실력의 여하에 따라 구사한 그였다. 즉 비교적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수비진 4명, 하프진 4명, 공격진 2명의 평행선 위치를 기본으로 하는 442포메이션을,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앞 허리께와 뒤 허리께에 각각 한명씩 배치하여 공격과 수비를 돕게 하는 시스템을 구사한 결과 큰 효력을 봤다는 것이 고훈 감독의 일가견이었다. 그 사례로 시즌초기에 변선 공격수였던 최영철을 시즌 중반부터는 앞 허리께에 배치하자 공격력이 많이 강화되어 득점율을 크게 높이게 했고 또한 이러한 공격형 축구를 통해 많은 스타들도 출현, 원유의 한송봉, 정림국 등 기존주력의 토대상 최영철, 백승호, 좌조개, 조명, 김도 등 선수들이 재빠른 진보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었다.

“9연승이란 그 순위나 점수는 그닥 중요치 않다. 현재 선수들의 심태가 온정이 됐고 충만된 승전욕으로 벅차있는 것이 더 중요하며 나 또한 9연승보다도 선수들의 현심태와 자신심과 투지에 더욱 만족한다. 세기팀은 오늘부터 최후 8강전에 대비한 집중훈련에 들어갔다. 8강전에 들어가면 이틀에 한경기를 치르기에 선수들의 체력보완도 중요하거니와 그 때면 모두 강팀들이 모여들기에 전술변화에도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남방경기구 순위를 보면 상해제녕구거룡팀이 제1위로 달리고 있다. 이 팀은 지난해 초 내가 거느리고 있던 원 상해천나팀이기에 대체상 상황파악은 할 수 있으나 그 팀 역시 신화팀으로부터 4명 선수를 영입했기에 실력이 많이 향상된 걸로 알고 있다. 또한 축구에서의 자고자대는 금물인만큼 충분한 준비를 갖고 경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 세기팀의 자세이다.”

현재 세기팀을 보면 공격진의 천학봉, 문호일, 김도, 고만국 등 선수들이 모두 정도부동하게 상한 상황, 그 중 천학봉 선수의 참전이래야 8월 말경에 가능하고 인대상처가 심한 김도 선수는 8강전에 참가할 수 있을지도 미결이다. 하루 속히 정동칠로 하여금 부진상태에서 벗어나 컨디션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고훈 감독의 앞에 놓여진 과제이다. 그리고 여태껏 세기팀이 치른 경기는 그 거개가 약팀과의 경기었던만큼 수비선수들의 단련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제 강팀들과 붙으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허점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에 수비진의 대인방어와 위치메꿈 및 하프진의 적극적인 수비협력이 요청되며 이에 대비한 훈련을 강화해야 함이 필수라고 보아진다.

고훈 감독이 제2순환단계 경기에서 세기팀을 이끌고 더욱 휘황한 전과를 올리기를 미리 기대하는 바이다.《스포츠》   2004년 7월 19일

세기팀 총체적 실력과 고훈 감독의 용병술
  
11전 전승의 연승대행진, 말이 쉽지 그걸 실천화, 현실화 한다는 건 피고름을 짜는듯한 노력을 바탕으로 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축구유럽컵에서 그리스가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서아시아의 아마추어팀인 바레인축구가 아시안컵 4강까지 진출하는 마당에, 현대축구에서 절대적 강자와 약자가 없다는 이론으로 볼 때 고훈 감독이 세기팀을 이끌고 한두경기도 아니고 11연승을 이끌어낸데는 그 어떤 영단묘약이 적용됐을까?

“세기팀을 놓고보면 왕성한 체능에 속도가 빠르고 매개인 실력이 고르로운 장점 외 평균 키가 작고 문전 슈팅에 출중한 선수가 적은 등 약점도 갖고 있다. 어찌보면 튼실한 미드필더실력으로 압박축구를 펼치면서 밀고 들어가는 기세는 좋으나 그걸 골로 연결시키기 힘들어하는 한국팀과 비스한 점이 많다. 이런한 점을 감안하고 보다 효과있는 실리적 축구를 펼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누가 고정된 공격수 혹은 수비수라는 관념을 없애게 했다. 즉 주력멤버를 구성할 때 한 선수의 공격점수와 수비점수의 평균치를 내와갖고 선정, 예하면 한 선수가 아무리 공격선에서의 활약이 100점이라 해도 수비에서 빵점을 맞으면 절대 주력멤버에 들어갈 수 없게 했다. 공격수가 공격에만 골몰하면서 수비를 포기하고 수비수 또한 수비위치만 지키면서 공격에 참여하지 않으면 3선 탈절이 생겨 십중팔구는 상대방한테 허점을 제공해 주기 마련이다.

이러한 축구이념을 팀에 주입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헌데 그것이 하루 한시에 결실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그것이 점차 성숙에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허점이 생기면서 상대한테 역습의 기회를 주어 가끔씩 실점하는 경우가 있다. 필경 레알 마드리드나 AC밀란과 같은 세계급 스타들로 구성된 구단이 아닌 연변팀이니 말이다.”

고훈 감독의 이론대로라면 골키퍼외 선수 모두가 공격과 수비에 교차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는 것, 시즌 초기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이해할수가 없었다. 진영구성이 분명하지 않고 선수선정이 타당치 못하며 특히 수비수가 너무 앞으로 밀고 나가는 문제 등을 놓고 그의 기전술 풍격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훈 감독은 행동을 갖고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그의 축구이론을 긍정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백승호, 좌조개까지 투입되는 공격력, 정림국, 문호일, 최영철, 김도, 현춘호, 한송봉, 좌조개, 송소우한테까지도 득점기회가 주어지는 공격망 강화와 6 : 0, 5 : 0, 8 : 0 등 다득점과 그와는 반비례를 이루는 적은 실점(지금까지 총 4골 실점) 등은 팀 실력에 근거한 고훈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이 일궈낸 화려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은 가장 훌륭한 방어이다.”

이는 무턱대고 들이대는 맹목적인 공격이란 뜻이 아니다. 10명의 선수 모두가 막강한 공격망을 구성함과 더불어 2중, 3중의 수비벽을 구축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주지하다싶이 공격에 들어서는 백승호와 좌조개마저 최전방에 투입되는가 하면 수비에 들어서는 톱에서 뛰던 정림국이나 문호일까지 하나의 육탄방선으로 되는 세기팀의 공방시스템, 그것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키기까지는 긴 시일과 많은 품이 들었지만 효과는 아주 이상적이었다. 미드필더선과 수비수들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의식을 주입시켰는가 하면 아무리 출중한 공격수라 해도 수비의식이 약하면 주력멤버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게 했다. 여기서 가장 진보가 돌출한 선수라면 아마도 좌조개와 백승호를 짚어야 할 것이다.

“현재 연변세기팀 선수들을 놓고 볼 때 이전의 오동팀 선수들에 비해 평균 키가 크고 속도와 개인기의 우세가 있는 반면 이전의 선수들에 비해 자신심이 좀 결핍한 문제점도 존재한다. 이전의 선수들은 강팀과 맞붙는다고 하면 일종의 호기심과 꼭 이겨보겠다는 오기도 강했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그것이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린 선수가 많은 팀이고 큰 경기를 얼마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쯤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지금은 그것이 많이 개변됐다. 어찌됐든 최종 4강전과 결승전에서 현재의 실력에 자신심을 잘 심어준다면 갑급진출쯤은 별문제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2004년 8월 18일

4.PNG
 
세기팀 8강전 대비훈련과 심태조절이 관건
연변세기팀 고훈 감독과의 독점인터뷰

전국축구 을급리그도 이젠 막바지단계에 진입했다. 지금까지 14전 전승으로 을급리그 북방경기구의 챔피언으로 내달리고 있는 연변세기팀, 이미 올린 전적보다는 앞으로 있게 될 최후의 결승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건 이젠 기성사실로 되고 있다. 그럼 요즘들어 세기팀에서 어떤 훈련에 몰두하고 있고 8강전에 대비해 어떤 대책마련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일전 고훈 감독을 찾아 독점인터뷰를 가졌다.

“세기팀은 이미 시즌초기에 계획했던 두가지 목적 중 한가지 즉 북방경기구 챔피언이 된다는 목적에 도달했다. 이제 관건적인 것은 결승전에서 2위안에 들어 갑급진출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는 어려운 과제지만 꼭 짚고 넘겨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12연승까지 하게 되자 8강전에 대비한 계획안을 새롭게 세우고 조선 함경북도팀을 초청하여 훈련경기를 치르는 것과 더불어 2일에 한번씩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체능훈련도 집중적으로 들이댔다.

그 체능훈련은 이제 2 – 3일가량 더하고 10월초 경에 조선의 1급팀 중 앞자리를 차지하는 소벽수팀을 초청하여 훈련경기를 몇번 더 치르기로 했다. 그 경기엔 주로 8강전에 뛰어들 주력멤버들을 출전시키고 리그경기에는 승무패에 상관없이 후보선수들을 출전시켜 단련시킬 예정이다. 헌데 요즘 세기팀이 갑급진출에 성공하면 팔아버린다는 여론 때문에 선수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온 여론인지는 알 수 없으나 팀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것이 갑급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골치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여론을 두고 고훈 감독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찬반표시는 거부하면서 현단계에서는 모두가 똘똘 뭉쳐 상하일심의 정신으로 갑급진출을 위해 투신할 때라고 밝혔다. 한편 세기팀의 조영원 지도가 수차 남방지구를 순회하면서 남방경기구 팀들을 고찰했는데 주로 제녕구거룡팀, 상해구성팀, 강서의 8.1형원팀, 운남의 여강동파팀 등 팀들이 엇비슷한 실력을 소유, 이는 북방구에 세기팀외 그닥 강한 팀이 없는 것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라 할 수 있는바 여태껏 강팀과의 경기를 별반 치러보지 못한 세기팀으로 말할 때 불리한 요소가 한두가지 아니란 것이 고훈 감독의 시각이었다. 그리고 세기팀의 약한 고리로 고훈 감독이 짚는건 여전히 수비선이었다.

그 이유라면 지금까지 약팀과의 경기만을 치렀기에 수비수들이 큰 압력이 없이 주로 공격에만 참여하다 보니 강팀과의 접전에서 그 약한 고리가 허점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큰바 이것을 잘 해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제일 관건으로 짚었다.

선수들의 심태에 대한 고훈 감독의 분석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을급권엔 우리의 적수가 없다. 세기팀이 제일 강팀이다. 자신심을 가져라. 우린 무조건 갑급팀에 올라간다’고 자주 강조한다. 하지만 선수들한테 존재하는 보수사상을 하루 한시에 떨쳐 버리기는 어렵다. 3년째 갑급행이 실패했으니 그런 사상이 남는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팀의 갑급행이 실현된 뒤에야 비로서 철저히 없어질 수 있는 법이다. 그 외 8강전에 들어 최악의 상태 즉 먹지 말아야 할 골을 먹거나 골운이 따르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막론하고 철저히 대비하여 그 어떤 강팀앞에서도 선제골을 넣고 다득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갑급진출의 꿈을 기어코 현실로 만들 결심이다.”《스포츠》 2004년 9월 6일

5.PNG
 
고훈 감독 중원에서의 280여 시간
◎ 긴장과 모지름과 생사박투의 그 순간, 그 장면들

역사는 인간이 쓴다. 또한 전쟁에서는 승자가 쓰기 마련이다. 때문에 역사의 기록 역시 일종의 경향성을 띄기 마련이다. “승자는 영웅이고 패자는 역적”이란 말도 있다 싶이 패자한테 역사는 어쨌든 무정했다. 그 어떤 이유도,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고훈 ㅡ 지나온 반생을 축구와 떠돌이 생활이 몸에 푹 배인 사나이, 성공과 희열과 좌절의 아픔을 동반하면서 이젠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인생반백을 바라보는 그가 재차 한 사나이의 자존심을 내걸고 중국축구무대에 도전장을 내던졌다. 여기서 꺼꾸러지면 그 뒤길은 너무나도 번연한 사실이었다…

고훈 감독이 연변세기팀을 이끌고 상해로부터 중원땅 정주로 달려온 것은 지난 10월 27일, 정주시 중심가에 자리잡은 39호텔 1502방에 행장을 푼 그는 본격적인 8강전 작전방안 짜기에 달라붙었다. 그의 가장 큰 적수는 산동구거룡팀이 아니고 운남여강팀이었다. 그의 앞에는 조영원 지도가 제공한 정보자료와 중국축구협회로부터 가져온 여강팀 경기를 녹화한 VCD자료들로 가득했다.

【렌즈 1】 : 원 운남홍탑구락부의 후비력 팀이었던 여강팀은 대부분 선수들이 4년간 브라질행 전지훈련토대를 닦은데다 상해신화의 부분적 선수들을 영입하여 팀이 구성됐는바 키꼴이 1.80미터 이상이 되는 선수가 20명이 넘으며 선수들의 개인기가 을급행렬에선 1류라고 할 수 있다. 진공속도가 빠르고 공중우세가 뚜렷하며 거기에 왕성한 체능우세까지 있는바 이번 8강전에서는 최종결승에서의 우승다툼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4강전에서 이 여강팀을 꺾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기간 고훈 감독은 그 어던 지도일군들의 구단방문과 기자들의 취재도 사절, 지어는 상해로부터 달려온 아내인 김연화 여사마저도 자기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한편 이번 8강전은 실력전이면서도 지력전이었고 고훈 감독의 지휘능력을 재차 검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고훈 감독은 기전술구사와 더불어 참전멤버배치에도 남다른 알심을 들였다.

경기는 고훈 감독의 작전방안과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제1라운드 제1회합에서 세기팀이 산동구거룡팀을 6 : 0으로 대승하자 고훈 감독은 참전진영을 조절, 제2회합에서는 최영철과 김도외 몽땅 후보들을 출전시켰다. 또한 전반전에 2 : 0으로 앞서자 상대방 문전에서 활약상을 보이던 최영철마저 빼버리고는 진짜 후보멤버들로 구거룡팀과의 경기를 펼쳤다. 결과 2 : 3로 역전패했지만 그건 아무런 수치도 아니었다. 그것은 관건적인 여강팀전에서 상병선수 혹은 레드카드를 받는 주력선수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해 10월 31일은 고훈 감독의 생일날이었다. 이날 연길과 상해 및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생일축하전화가 걸려오자 그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아내인 김연하 여사 역시 인편으로 생일축하케이크를 보냈을뿐이었다. 생일파티도 요리 몇접시 더 올랐을뿐 평소의 상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대 운남여강팀과의 작전방안 ㅡ 고훈 감독은 생일날에도 이것에 대한 신경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렌즈 2】: “운남여강팀이 제1라운드 1회합에서 하얼빈팀과 대결을 펼칠 때 나는 그들의 약점을 발견했다. 변선공격수의 속도가 빠르고 공격이 날카롭지만 뒤를 따르면서 배합해주는 선수가 없었고 3명이 지키는 수비선(그들은 352포메이션을 구사) 역시 빈공간이 가끔씩 보였다.

나는 수비와 공격에서 그들의 허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즉 수비에서는 한광화와 조명 선수로 상대방의 공격수의 발목을 묶고 공격에서는 정림국과 문호일 외 최영철과 천학봉의 영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가 그것이 효과를 보아 전반전에 세기팀은 페널티킥 기회로 한골 앞서게 됐다. 헌데 을급리그 8강전이 이토록 격렬할줄은 진짜 상상밖이었다. 여강팀과의 첫경기 전반전이 끝나자 골키퍼 윤광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좌조개는 눈이 화등잔처럼 되어 긴장해한는 것이 역연했다. 나는 평소의 리그전처럼 치르라고 긴장을 풀어주는 한편 일련의 기술포치를 했다.

후반들어 경기는 더욱 격렬했다. 여강팀이 공격은 노도와 같은 기세였다. 이에 세기팀은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진공을 견제,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기전술을 펼쳤다.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정림국이 강행돌파를 시도할 때마다 3 - 4명씩 막아나서면서 서슴없이 반칙을 했고 한송봉이 공을 잡아도 선수들로 담장을 쌓고 슈팅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도 장악한 정보에 의해 대처방안을 연구하고 포치한 것이 분명했다. 쌍방의 대등한 실력, 여기에서는 완전히 지력상수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판이었다.

드디어 경기종료를 앞둔 후반 43분경, 주장 한송봉은 상대방의 물샐틈 없는 방선을 피해 프리킥을 김청 선수한테 살짝 패스, 그것을 김청 선수가 달려들어가며 슈팅을 날린 것이 그물에 걸려 상대방의 동점골 시도를 몰살시켰다.

제1회합에서 상승세를 타자 제2 회합은 완전히 경기의 주도권이 세기팀한테 장악됐다. 전반전에 세기팀은 여전히 상대방의 체력을 괴롭히는 소모전에 진입, 상대방으로 하여금 극도로 긴장과 조급증에 시달리게 했는바 세기팀의 현춘호 선수가 페널티킥에 성공하는 한편 상대방은 가슴이 냉각되어 요행 차려진 페널티킥을 문대옆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드디어 후반전이 개시되자 고훈 감독은 공격신호를 올렸다. 승승장구로 돌격하는 세기팀 선수들, 좌조개의 헤딩골, 현춘호의 호선골과 문호일의 쐐기골이 연속 터지면서 상대방의 경기력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극한의 체력소모로 2명의 선수가 동시에 근육경련으로 쓰러지는 꼴불견의 장면도 출현됐다.

환호하는 경기장, 감동의 도가니 ㅡ 선수들은 고훈 감독을 번쩍 들어 반공중에 올렸고 고훈 감독은 선수들마다를 품에 포근히 안아주기도 했다.

【렌즈 3】: “여강팀은 상해구성팀을 피해 우리와 결사전을 펼치려 했는데 잘못 선택했다. 또한 제1라운드 제2 회합에서 우리가 구거룡한테 2 : 4로 패하고 자기들이 7 : 1로 할빈팀을 이기자 자고자대해졌다. 그리고 우리의 주력들은 3경기를 치렀지만 그들은 4경기에 주력멤버가 몽땅 동원됐다. 우리의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전술도 효과를 봤다. 특히 두번째 게임에서 그들이 공격으로 체력을 소모할 때 우리는 여우가 있게 체능조절을 하면서 상대방을 견제하는 한편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총적으로 선수들이 나의 기전술 사상을 잘 파악하여 경기를 승전으로 이끌었다.”《스포츠》  2004년 11월 15일

“올 갑급시즌 혼전과 혈전 계속될듯”
연변팀 고훈 감독이 분석하는 올시즌 갑급판도

“올 갑급시즌은 마지막 26라운드까지 혼전과 혈전을 피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는 강급제도가 없으니 모두 적게 투자하고 숨을 돌리면서 힘과 재력을 비축했다. 올해의 혈전과 혼전은 주로 제1집단군과 제3집단군내의 사활전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제1집단군이 팀이 비교적 많은바 절강녹성, 광주의약, 강소순천, 남경유유, 청도해리풍, 하남건업 등 팀이다. 그 중, 절강녹성, 강소순천, 남경유유, 하남건업 등 팀은 갑급권(이전엔 갑B)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던 팀들로서 올들어 3000만위안 이상의 거금을 투자하여 일품의 외적선수와 슈퍼권의 유명선수들을 유치, 목표를 슈퍼리그진출로 명확히 규정했다. 다음 제3집단군 팀들로는 우리 연변팀을 포함하여 호남상도, 북경굉등, 산서노호 등 팀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다.”

장장 100여일간의 남방전지훈련끝에 갑급리그 제1라운드 대 상해강부팀과의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고훈감독이 분석하는 갑급판도, 위에서 밝힌 것 외에도 “명년부터 슈퍼권에서 두개 팀씩 강급하기에 슈퍼리그진출을 성사하려면 올해가 가장 좋은 기회”인 한편 제3집단군 또한 올해부터 실시되는 강급권에 들지 않기 위해 그 어떤 강팀과도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고훈 감독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현재 갑급권내의 1, 2, 3집단군이 형성되기 시작, 강소순천, 절강녹성, 청도해리풍, 남경유유, 광주의약이 제1집단군(하남건업)은 아직 제2라운드를 차지 않았음)내에 진입했고 예견대로 연변을 포함한 호남상도, 산서노호, 북경굉등, 남창8.1 등 팀이 꼴지군단에 머물러 있는데 꼴지군단 중 고훈 감독이 보는 잠재력이 큰 팀은 남창8.1팀으로서 두 외적선수의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변팀을 꼴지군단으로 분석한다는 고훈감독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올해가 아무리 슈퍼진출을 성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지만 현재까지 구락부의 경제상황이 어려워 외적 선수란 졸라외 거의 공짜로 데려온 월리엄뿐인데 어떻게 다는 구단과 비길수 있는가? 거기에 올들어 두번씩이나 선수들의 훈련불참사건까지 발생해 선수들의 정서도 아주 불안정한 상태이다. 올해 구락부에 정한 목표는 갑급보존의 기초상 지난해와 같은 순위나 그것을 좀 더 높이라는 것, 이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가령 나한테 강소순천이나 절강록성같은 명품선수만 차례진다면 큰 소리 치면서 슈퍼진출을 꿈꿔볼텐데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해 아쉽다.”

한편 고훈 감독은 “여건이 어떠하든간 연변팀은 매차례의 경기를 열심히 치르는 것으로 연변축구를 사랑해준 팬들에게 훌륭한 경기모습을 선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합신문》 2005년 4월 3일

7.PNG
 
고훈 감독이 보는 세기팀 전력 및 매 선수의 특점
◎ 3선에서의 기둥선수 결핍
◎ 미드필더선 선수 많고 중앙선 골잡이 적어

올 갑급시즌이 이미 제17라운드까지 진행, 시즌초기 미드필더선과 량측변선이 강하고 공격선과 수비선이 약해 원정은 물론 홈장에서도 자주 어이없이 패전하던 연변세기팀이 시즌경기가 심입됨에 따라 성숙되면서 현재까지 6승 2무 9패로 9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갑급권 신참으로서는 양호한 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거니와 광범한 축구팬들도 받아들일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 세기팀의 사령탑을 잡은 고훈 감독이 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일전 전문 이 화제를 두고 고훈 감독과 대담을 나눠봤다.

세기팀 전력 및 매 선수의 특점 분석

“세기팀을 놓고볼 때 3선에서의 선수균형이 잘 잡히지 못한 상황이다. 예하면 미드필더선 선수가 많고 수비선과 공격선 선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골치거리이다. 그것도 공격선과 수비선에 기둥선수가 없다. 공격선에서 졸라 선수가 큰 활약을 보이지만 다른 팀의 외적공격수들에 비해서는 이미 한물이 간 상태이고 수비선의 조명 선수 역시 육성가치가 크지만 아직은 단련을 더 거쳐야 보다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수비선보다도 공격선이 더 문제인데 수비가 약해 골을 먹더라도 그만큼 골을 많이 넣어야 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공격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국가올림픽팀과 평가전 때 외적선수 채두용을 센터포드로 배치해봤는데 그 역시 정림국이나 문호일처럼 변선활약은 눈부셨지만 중앙선에서는 그 작용이 크지 못했다. 현재 세기팀의 골잡이를 보면 졸라가 8골, 정림국과 문호일이 각각 3골씩이고 한송봉과 김도가 각각 2골씩으로 졸라외 돌출한 골잡이가 없다.”

세기팀이 갑급권에 튼튼히 발을 붙이자면 강급이 없는 올해보다도 명년도 성적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헌데 올해 35살인 졸라가 명년에 계속 뛸 수 없을 경우를 감안할 때 세기팀도 자체의 “간판골잡이 출산”이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현재는 물론 명년에도 연변의 상황에서 장춘아태팀의 이리예같은 골잡이를 영입하긴 어려운 상황, 기존의 선수들중에서 하문남사팀의 전야와 같은 스타가 출현돼야 하는데 그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명년시즌 위한 대책 및 팀전력 조절상황

올시즌 세기팀 경기를 보면 기존주력들이 불참하고 이전의 후보들이 주력멤버에 들어갈 때가 가끔씩 있었다. 그 실례로 수비선에서는 한광화 대신 배육문이 들어가고 공격선에서도 정림국 대신 박만철이 출전하는 등 경우였는데 이에 대한 고훈 감독의 목적은 명백했다. 모든 선수들을 경기중에서 출분히 관찰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한 조치였다.

“단 한차례의 승전을 위해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광화 - 배육문, 정림국 – 박만철 등의 전력조절외에도 미드필더선의 공격조직자인 현춘호를 늘 후반에 출전시키군 했는데 그 목적은 현춘호외 한송봉이나 기타 미드필더선 선수들이 현춘호같은 공격조직자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제 세기팀 상황을 놓고 볼 때 변선공격을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아 누구를 배치해야 할지 고민거리이고 공격선수는 너무 적어 졸라만 빠지면 누가 대신할지 역시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전력조절을 하는데 절대적 보장은 없지만 자주 조절을 하다보면 나아지는 점이 꼭 많으리라 인정한다.”

한편 현재 조선 기관차팀에서 뛰고 있는 정철선수가 공격수로서 세기팀 물망에 올라 있는데 고훈 감독에 따르면 올해내에 그를 데려다 고찰하면서 적응훈련을 하다가 명년부터 기용할 타산이지만 상화에 따라 올해내에 출전시킬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합신문》 2005년 8월 15일

사나이는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2005년 시즌과 연변축구팀 감독 고훈

12.PNG
숨막히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2005년도 이젠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는 올해 ㅡ 그것이 축구인 고훈한테는 결코 평범한 한해가 아니었다.

축구감독을 하다보면 속을 썩이긴 여느 해나 마차가지었지만 올래는 특히 달랐다.  갑급권진출 첫 스타트인 올해에 팀적응력을 높임과 아울러 갑급권 진지구축을 잘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자니 그 어느 해보다도 힘들고 어려웠다.지난해 을급시즌이 끝나 연변세기팀이 갑급진출이 성공한 뒤 연변팀의 새해시즌 준비사업을 두고 연변 주체육국의 양창호 국장이 고훈 감독을 찾았다. 당시 고훈은 양창호 국장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갑급권은 필경 을급권과 다릅니다. 웬간한 투자와 더불어 실력파 국내선수와 외국선수도 영입하고 구단의 훈련 및 생활 조건도 어느 정도 개선해야 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갑급진출의 성공을 그 어떤 임무의 완수보다는 새로운 스타트선으로 간주하고 모든 정비를 빈틈없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고훈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005년 갑급시즌에서의 순위를 어느 정도 높이겠다는 타산은 있었다. 이는 단지 자기가 이전에 갑A시절의 감독이었다는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헌데 2005년 갑급시즌 준비사업이 가동되어 팀이 해남 전지훈련에 들어간지 오래되도록 구락부 후근사업은 아무런 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자금계획이 낙착을 보지 못하니 외적용병은 물론 국내선수에 이르기까지 고찰에만 그칠뿐 그 어떤 협상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구단의 외적용병으로는 연변팬들한테 익숙한 졸라 선수 한명을 공짜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자금줄은 시즌이 개시되어 몇라운드의 경기가 치러질 때가지 좀처럼 해결되지 못했고 뒤이어 노임체불현상이 나타났다. 진작 예견하지 못한건 아니었지만 선수들을 보기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선수들이 다른 구단의 선수들처럼 사단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를 잘 따라주는 것이었다. 고훈은 그것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바로 이 때 아내인 김연화씨가 보다 못해 일본의 모 기업과 연계하여 협찬금 100만위안을 유치해왔다. 그는 그저 아내의 거동이 고맙기만 할뿐이었다.

한편 고훈은 올시즌 계획을 3개 단계로 나누어 적응기, 안정기, 상승기 등으로 알심들여 작성, 시즌 중도에 자금난으로 인한 시련도 수차 있었지만 계획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져갔다. 하긴 그 기간 팀배합과 성적보완을 위해 한국의 고봉근, 조선의 채두용 등 외적용병을 자주 바꾸면서 말못할 고충도 많았으나 홈장에서 청도해리풍, 대련장파와 상해구성 등 팀을 멋지게 압도하여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하문남사, 절강녹성 등 강팀과는 비록 졌지만 거의 대등한 경기로 풍격을 잘 발휘한걸로 팬들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원정경기 또한 연속 패전하던데로부터 점차 상승세를 타면서 비기거나 이기는 경기도 펼쳐 “원정 딱정벌레”란 감투를 벗어 던지게 됐다.

올시즌의 성적은 이뿐이 아니었다. 순위 8등보다 못하지 않은 성적이라면 조명 선수를 유일한 “국자호”로 키워낸 것이었고 최영철, 지문일 등 선수들도 장래의 국가팀 선수로 주목받게 한 것, 이 3명 선수 모두가 지나해부터 자기를 이끌던 선수였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컸다.

2005년 시즌의 전반 과정을 분석하면서 고훈 감독은 다음과 같이 피로했다. “올해는 구단사상 가장 간고했던 한해로 보아진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구단에 낙착된 자금은 협찬금과 경기장수입까지 몽땅 합쳐봐야 300만위안선을 조금 넘은 상황, 터무니 없이 부족한 자금을 갖고 구단운영을 하자니 애로가 많았다. 그래도 선수들이 열심히 싸워줘서 갑급 8위권이란 성적을 냈다. 이 공로의 많은 부분을 선수들한테 돌리고 싶다. 기실 연변팀을 놓고 볼 때 호남상도, 대련장파 등 약팀과 비슷한 실력으로 갑급 하위권실력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은 매차례의 경기마다 100% 이상의 노력을 경주, 이길 경기는 기본상 다 이겼고 상대적으로 강한 팀과의 경기에서 이긴적도 몇번은 잘된걸로 알고 있다.”

다른 한편 올시즌이 결속되자마자 “감독유임위기”를 당했던 고훈이다. 당시 억울한 생각도 들었고 뭔가 잘못되지 않나 하는 우려감으로 연변축구의 장래를 걱정했던 그였지만 인차 냉정을 회복했다. 시장화축구에 진입하자면 감독교체나 감독하학 등을 피면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연변축구에 유익한 일이라면 모든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연변축구팀이 이미 2006년 시즌을 위한 전지훈련에 들어갔다. 명년시즌에 들어 진정 시장화경영에 들어가게 되는 연변프로축구가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 궁금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경쟁시대인만큼 축구감독이란 이 위치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란 것은 고훈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감독위치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오직 최선만이 있다는 것을 고훈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종합신문》   2005년 12월 19일
 
9.PNG
 ▲고훈 감독의 가족사진 뒷줄 왼쪽으로부터 여동생 고성희, 고훈, 고헌 그리고 앞줄 어머니 한채순 여사와 아버지 고자성 음악원로

“아버님, 불효자는 웁니다”
고훈 감독 ㅡ 슬픔과 비통이 엇갈리던 그 14시간

지난 5월 30일 연길 경도능원 추도청에서는 건국 후 연변음악의 개척자 중 한분이신 고자성 원로의 추도회가 장중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열리었다. 추도회에서는 현재 연변축구의 사령탑을 잡고 있는 고 고자성 음악원로의 둘째 아들인 고훈 감독이 가족을 대표하여 답사를 했다.

“… 저의 부친님은 우리 삼남매를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되게끔 키웠으나 우리 삼남매는 제마끔 외지에 있고 또한 분망한 사업 때문에 부모한테 진정한 효도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는 원정경기 때문에 부친님의 임종순간마저도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발언한 고훈 감독은 비통으로 인한 나머지 한동안 아래말을 잇지 못했다…

연변팀 원정경기 때문에 부친의 임종 순간마저 자리를 비워야 했던 조선족 축구인 고훈 ㅡ 올들어 지금까지 그의 “운수”가 자꾸 꼬이기만 했다.

지난해 10월말 2005년 갑급리그가 끝나자 고훈한테는 극히 불길한 소식이 전해왔다.

“정붕휘씨가 1800만위안의 조건부로 연변축구팀을 인수하려 한다.”

고훈은 그것이 불안했다. 갑급진출 1년만에 축구팀을 “축구도박혐의”가 짙은 정붕휘한테 넘기다니? 당시 고훈의 뇌리에는 올해를 “슈퍼권진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던터라 그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 뒤 선수들의 공개신과 보도매체 및 축구팬들의 여론에 의해 정붕휘의 “연변축구인수꿈”이 “임대경영권”으로 바뀌었으나 고훈은 여전히 정붕휘의 부임이 달갑지를 아니했다.

아니나 다를가 정붕휘씨로 인한 선수들의 “훈련불참사건”과 더불어 “축구협회컵”의 연변팀 참전권리가 취소됐으며 갑급리그가 개시된 뒤 경기성적도 줄곧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 5월 17일 고훈 감독의 부친은 오랜 고질이던 심장병이 재돌발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 때 연변 주체육국내에서는 중대한 인사변동이 있었다. 즉 연변 주체육국과 정붕휘 사이에 맺은  “연변축구임대경영계약”이 해제되어 정붕휘와 그의 수행일군들이 연변을 떠남과 아울러 연변축구구락부의 임시경영권이 고훈한테 떨어지는 등이었다.

5월 26일 고훈감독이 팀을 이끌고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항주로 떠날 때 부친은 이미 혼수상태에 처했다. 림종을 앞둔 부친을 두고 원정행을 떠나는 고훈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원정경기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부친께서 버티여줄것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5월 27일 저녁 7시 항주시 황룡경기장 지휘석에 앉은 고훈의 기분은 매우 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부친의 생명이 경각을 다투었고 다른 하나는 경기 상대가 갑급권 제2위로 있는 절강녹성팀이라 철통같은 심장을 가졌다는 사나이었으나 그 순간만은 그 부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선수들이 그의 포치에 따라 육탄투혼을 발휘하여 두번이나 상대방의 앞선 골을 원점으로 되돌려 그의 마음을 다소나마 기쁘게 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 숙소로 돌아간 고훈은 핸드폰을 켜놓은채 새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는 피곤을 달래려고 TV를 켰으나 프로가 시야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드디어 새벽 2시 30분경, 그의 핸드폰 신호가 울렸다. “고훈아, 아버지가 운명했어…”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그의 형님인 고헌씨였다.

고훈은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상해로 향발, 상해에서 연길행 직항선비행기에 올랐으며 연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 30분이었다. 그러니 부친의 심장고동이 멈춘지 14시간만이었다. “아버님, 이 불효자가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딱 한번만 눈을 뜨셔서 이 아들을 봐주십시오…”그러고는 아버님의 유체앞에 무릎을 꿁고 굵직굵직한 사나이의 눈물을 떨구었다.
 
10.PNG
 ▲어머님 한채순 여사의 만년을 지켜주고 있는 고훈 감독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연변FC 특집】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