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축구산업의 서막 열어가며
연변의 첫 사영축구클럽 연길OK축구구락부

해동이 된 산과 들에 봄빛이 넘치던 지난 4월초의 어느 날, 연변 주 축구협회에서 조직한 특별취재팀은 “미래축구스타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연길OK축구구락부를 찾았다.

취재팀이 연길시 연집향, 연변제1농아학교 울안에 있는 이 구락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원 연변대학 체육학부 주임이었으며 현임 이 구락부 고문인 이광수 선생이 반겨 맞아주는 것이었다.

이광수 선생의 피로에 따르면 연변의 축구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지난해 9월에 설립된 이 구락부는 연변축구계에서 명망높은 정종섭, 허경수, 김석주, 최규철 등 고급감독들로 지도진영을 뭇고 동북3성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일정한 규모와 체계를 갖춘 축구산업실체었다.

교육체제와 방법에 대하여 언급할 때 이광수 선생은 연집향에 있는 중학교와 소학교에서 이 구락부의 학생들을 책임지고 교수하기에 덕지체가 전면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또한 “중국축구학교 심양분교”와 손잡았기에 졸업생들은 중등전문학교 학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훈련장 3개, 식당, 숙소와 샤와실 등이 구전하게 갖춰져 있어 모든 훈련과 생활 환경이 매우 우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취재팀은 금방 일보고 들어온 이 구락부의 박운철 이사장을 통하여 이 구락부의 운영방법에 대하여 알아 보게 됐다.

“우리의 이 구락부는 주식제를 실시하는 사립축구학교인만큼 학생들한테서 일정하게 수금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돈을 받는다고 하여 소질이 안되는 학생까지 받아들이는 건 결코 아니며 또한 축구소질은 출중하나 특별곤란호에서 온 학생에 대해서는 절반값을 면제 해주거나 장학금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일찍 북경체육학원을 졸업한 박운철 이사장은 연변축구가 발전이 굼뜨고 후비력양성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모했다. 그러다가 몇해간 해외생활에서 자금을 일정하게 모으게 되자 다시 고향축구에 눈길을 박고는 북경체육학원의 동기동창생 김철웅씨와 손잡고 연길OK축구구락부를 일떠세우게 되었다.

이 축구구락부가 개교되자 박운철씨와 김철웅씨는 연변축구계에서 명망높은 지명인사들을 초빙해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었다. 그들은 우선 입학한 학생 60여명을 연령별로 5개급 팀으로 나누고는 강유력한 기본공훈련과 경기훈련을 들이댐과 아울러 여러 형제구락부와 학교팀들과의 평가전도 자주 치르군 하였다. 지난해 겨울철이 닥쳐오자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우리 나라 북방의 이름난 축구기지인 청도로 가서 동기전지훈련을 조직하였다. 거기에서 그들은 청도해우축구구락부의 3선팀을 비롯한 많은 축구팀과 40여경기에 달하는 평가전을 벌여 투지와 기술면에서 현저한 제고를 가져오게 되었다. 돌아온 후엔 그 어떤 소년팀들과도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는 훌륭한 구락부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주식제구락부형식에 대하여 언급할 때 박운철 이사장은 그 누구든지 구락부에 자금을 투자하면 곧 주주로 되어 그만한 부문의 주권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느 한 학생한테 투자해도 그 학생이 프로선수로 팔릴 때면 중국축구협회에서 규정한 퍼센트의 주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례로 외지직업축구팀의 한 선수가 이 구락부의 두 학생한테 전문 투자하고 있는데 그 두 학생의 현상태와 전망도 아주 좋다고 했다. 이런 투자인에 대하여 박운철 이사장은 허락할뿐만아리라 두손들여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사업이 다 그러하듯이 연길OK축구구락부가 걷고 있는 길도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학생내원이 결핍한 것과 사회상에서 축구에 대해 큰 소리 치는 이는 많지만 실제로 축구를 해보려는 이들이 적은 것도 애로였고 학부모 중에서 축구에 대한 의식이 결핍한데서 자식들이 하고 싶어하는 축구를 못하게 하는 것도 축구의 발전을 저애하는 요소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운철 이사장은 이젠 축구는 우둔하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들이 하는 일종의 산업이라고 역점을 찍어 언급했다. 왜냐하면 축구라는 이 사업을 잘하기만 하면 프로선수로 될 기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축구교원, 지도원, 심판원 및 유관축구사업의 경영인으로도 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업은 전망이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박운철씨와 김철웅씨의 동창생들이 전국 각지에 널여있고 거기에 명망높은 지도들로 진영을 뭇고 있어 연길OK축구구락부이 전망은 더욱 밝다고 할 수 있었다.

계속하여 기자는 이광수 선생의 안내하에 연길OK축구구락부의 이모저모를 돌아보았다. 등록하러 와서 지도교원의 시험을 보는 학생들, 학생들의 입맛을 돋구기 위해 주방에서 분주히 보내는 식당아줌마들 그리고 경기장에서 장연모 지도의 감독하에 열심히 공을 다루는 미래의 축구스타들…말그대로 연길OK축구구락부의 모든 것이 생기발랄한 모습이었고 그 미래도 안겨오는듯 했다.

《스포츠》   1998년 5월 8일
※ 현재 베이징 궈안에서 뛰고 있는 조선족축구스타 박성은 이 OK구락부에서 육성해낸 선수임


민족체육의 진흥길에서 40성상
- 연변대학 체육학원 사업실적

올해는 연변대학 체육학부(체육학원의 전신)가 선지가 40돐이 되는 해이다. 이 40년래 연변대학 체육학부에서는 당의 민족정책의 빛발아래 많은 체육인재를 양성해 냄으로써 우리 민족의 체육발전에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우리 나라는 축구, 배구, 농구를 비롯한 많은 체육종목의 기본체계를 형성함으로써 체육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비교적 훌륭한 토대를 닦아 놓았다. 더불어 우리 민족의 체육도 해방 이래 처음으로 되는 전성기를 맞이 하였다.  축구 한가지 종목에서만 보더라도 중국갑급A의 강팀 중의 하나인 길림성 축구팀이 있었는가 하면 전국의 각 축구팀들에 우리 조선족 선수가 없는 팀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형세하에서 우리 민족한테는 축구면이 아닌 다를 체육종목의 인재도 급격히 수요되었고 많은 지식을 소유한 체육분야의 인재양성이 급선무로 나섰다.

바로 이러한 사명을 안고 1985년에 설립된 것이 연변대학 체육학부였다.

창업초기, 교직원 대오와 교수시설은 매우 보잘 것 없었다. 교직원 대오란 채송철, 최동섭, 윤학주, 김수산, 등 5~6명에 불과했고 교수시설도 낡은 집 한채를 개조하여 사무실 겸 교실로 썼을 뿐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생들을 허다한 체육기자재들을 자체로 만들어 가면서 초창기의 교수와 훈련을 견지하였다.

이렇게 반자력갱생의 방법으로 이 체육학부에서는 축구, 농구, 배구, 스케이트, 체조 등 전업을 설치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해 사회 각 분야에 보내 주었는데 문화혁명 전까지 졸업한 학생만도 200여명이 되었으며 그들 거개가 맡은 분야의 중견으로 되었다.

이 시기 이 학부의 특수공헌자들로는 채송철, 이광수, 최동섭, 등 교원들이었다.

문화혁명후기, 동난으로 하여 정지되었던 사업을 다시 회복하자니 모든 것을 영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가뜩이나 얼마 안되던 체육기자재들은 고쳐 쓸 여지도 없게 파괴되었고 애써 편찬했던 재료들도 찾을 길 없었다. 하지만 이 체육학부의 교직원들은 문화대혁명 때문에 잃어 버렸던 10년시간을 되찾기 위해 낮에 밤을 이어가며 사업하여 몇년 안되는 사이에 교직원대오와 교수시설을 문화대혁명 전의 가장 좋았던 수준에로 끌어 올렸으며 그 토대위에서 모든 사업을 새롭게 추진시켰다. 하여 이 체육학부 선수들이 위주로 된 연변대학의 체육건아들은 전국 대학생운동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따내게 되었다.

1981년 전국 대학생운동대회에서 축구 우승,
1985년 연변대학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 “장백산”컵 축구경기에서 우승.
1989년 전국대학생 “코카콜라”컵 축구경기에서 우승.
1984년 전국 대학생여자배구경기에서 우승.
……
한편 이 시기에 수많은 체육인재들이 용솟음쳐 나왔는바 연변축구팀의 감독이었던 이호은을 비롯하여 이재호, 김광진, 강철수, 박춘산 등 축구인재들과 김옥희, 김복금, 김향화 등 배구인재들이 이 학부를 졸업한 뒤 사회에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연변대학 체육학부는 그 교직원 대오나 교수 시설들이 완전히 체육학원의 최고 수준에 이르러 다른 체육학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여 지난해 “국가 211계획”험수에 통과되어 체육학원으로서의 독립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 연변대학 체육학원은 5명 교수에 20여명 부교수를  포함하여 70여명의 방대한 교직원 대오를 갖고있으며 교수시설도 많이 개설되었다. 그 시설들로는 실험실, 태권도관, 체육관을 망라하여 축구장, 농구장, 배구장, 테니스장 도합 30여개나 된다. 그리고 교수시설도 현대화되여 많은 교수는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 1998년 11월 9일

연길공원 썰매장 견문기 "하얀 눈 흩날리니 썰매놀이 신난다"

겨울이 왔다. 겨울은 썰매타기 좋은 계절, 헌데 여태껏 도시의 어린이들은 연휴일이나 방학 때가 오면 적합한 썰매장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해왔다.

그런 것을 감안하여 세워진 것이 연길공원 썰매장, 어린이들한테 특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자가 연길공원 삭도놀이터 주변에 있는 이 썰매장을 찾은 것은 지난 25일, 기자가 이 주변에 이르니 눈 하나 없는 다른 야산과는 달리 이 곳 썰매장에는 30도로 경사진 하얀 눈세계가 펼쳐져 있었고 직원들은 한창 어린이들의 겨울방학놀이터 제공을 위해 제설기로 인공눈 뿌리기에 분망히 보내고 있었다.

이 곳의 이춘원 총경리가 소개한데 따르면 연길시 풍경원림 관리처에서 기지를 내놓고 말레이시아 대원기업주식회사에서 200만원 가치에 달하는 기자재를 제공하여 공동으로 건설한 것이라 한다.

썰매타기운동은 청소년들한테 추위에 견디고 대담성을 키우게 하는 등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으며 또한 전자유희청이나 록화청에서 느낄수 없는 쾌감을 줄수 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산정을 향해 한발자국씩 톺아오르는 체력올리기운동, 미끌어져내려올 때이 비행기를 탄듯한 느낌, 이는 썰매타기운동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수 있었다.

오전 9시가 좀 넘자 사람들은 포근한 등산복차림으로 오구작작 썰매장으로 모여들었다. 그속에는 부부동행을 한이가 있는가 하면 한창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청춘남녀도 있었다.

“외국에서는 수영이나 등산 등으로 남자들이 약혼녀한테 사나이의 기질을 보여주고있다고 하는데 저도 오늘 썰매장에서 내가 진짜 사나이란것을 미혼부한테 보여줘야지요.”

연길시 모 합자기업에서 일한다는 한 총각이 하는 말이다.

썰매타기가 시작되였다. 누가 더 빠른가 내기를 하는 부부들, 쏜살같은 속도에 새된 소리를 지르는 아가씨들…수요일이라 썰매타러 온 학생들은 거의 볼수 없었지만 썰매장은 의연히 흥성거렸다.

이 썰매장지도부에서는 수금료를 20원으로 규정했으나 학생단체표는 무조건 40% 정도 할인하며 성인단체표도 규모에 따라 20% 내지 30%씩 할인해드린다고 한다. 그리고 썰매장안에 50여명을 용납할수 있는 커피숍을 설치하여 손님한테 휴식할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주고있다.

연변을 놓고볼 때 겨울철이 길다 해도 11월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이다. 하다면 사람들이 썰매타기를 할수 있는 계절ㅇ느 약 4개월 정도, 그외의 봄, 여름과 가을철이면 이런 썰매타기운동을 즐길수 없지 않는가? 아니 있다. 리춘원총경리의 소개에 따르면 여름철엔 이곳에 인공잔디가 깔린 썰매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바퀴가 달린 썰매로 겨울 못지 않게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 썰매장은 겨울과 여름이 따로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인공눈 내린다. 하얗게 내리고 쌓인다. 그속에서 흰 눈갈기를 날리며 즐겁게 웃고떠드는 사람들, 쌓였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면서 인간쾌감의 무아경에 이른다…

쫙 째인 스케쥴로 거기에 가담하여 함께 즐길수 없는 기자는 아쉬운 마음으로 귀로에 오를수밖에 없었다.

《스포츠》 1998년 11월 30일

시간은 짧고 할일은 많고
○오동팀 렬승필감독의 하루

중국축구직업화개시 7년래 제일 큰 곤혹을 겪고있는 오동팀, 사령탑을 잡고 오동팀 상태부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모지름을 쓰는 렴승필감독의16일 하루를 독자들에게 펼쳐보인다.

16일 아침 5시경, 새벽에 일어나“유럽컵”을 봐서인지 렴승필은 머리가 흐리터분한 감을 각별히 느꼈다. 지난 밤 비디오를 보며 태달팀의 전술을 진맥해본 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그는 식전부터 습관적으로 “뇌백금 (脑白金)”을 복용했다.

오전 8시경, 아침식사를 대충한 렴승필은 재차 TV앞에 앉아 태달팀 대 해우팀전 록화를 시청, 요즘들어 흔들리고있는 태달팀을 연길홈장서 재껴야 할텐데. 하지만 오동팀은 최근 몇년간 태달팀을 이겨본적이 없다. 그럼 그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것인가?

경기록화를 다 보고 약20분이 지난 뒤 렬승필은 팀의 고문인 리광수원로와  마주앉았다.

“성적부진이 팀에 영향을 준건 사실이나 어제 오후의 훈련 (두팀으로 나눠 치른 교수경기)을 보니 선수들의 승전욕망은  강한것 같습니다. 문제는 경기전 선수들의 정서파동이 없어야 할텐데 어제 조영원, 김광수 두 지도와 얘기를 나눠봐도 저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여하튼 리고문께서 선수들에 대한 사상안정사업을 잘해주십시오.”

이에 리광수고문도 동감.

12시 20분경.

식사후 오침을 청했으나 자주 걸려오는 전화벨소리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한 렬승필이였다. 아직 “하하”소리같은 협박은 없고 모두가 절절한 충고사항을 들으면서 렴감독은 자기가 젊어진 중책을 재삼 가늠해보지 않을수 없다.

오후 3시30분, 경기장적응훈련에 들어간 그는 주로 각 위치에서의 전술포치를 두고 선수들의 표현을 감독.

훈련이 끝나 샤와를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에 리결사부장이 찾아온다는 통지가 왔다.

저녁 7시20분경, 주체육운동위원회 최광륜주임과 함께 온 리결사부주장 “내가 걱정하는건 수준발휘가 잘되지 못하는것이다. 실력발휘가 정상적인 정황에서 지거나 결국 강급하더라도 긍정 혹은 리해를 받을것이다. 태달팀, 해우팀, 무순팀 등도 떨어졌다가 올라왔은즉 오동팀이라고 떨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문제는 현상태에서 자신심마저 포기한다면 기필코 팬들의 용서를 받지 못할것이다.”

그렇다. 목전 오동팀의 급선무는 자신감수립이다. 렴승필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리결사일행이 돌아간것은 저녁 9시직전이였다. 그뒤 렴승필은 “유럽컵”을 보기 위해 자명종을 새벽 1시에 맞춰놓고는 지친 몸을 침대에 실었다. 

《연변일보》   2000년 6월 19일

혈전전야의 모지름, 오동팀 렴승필감독의 오기

마지막 6껨의 혈전을 각오하는 오동팀이 11일을 대본영에서 근엄한 얼굴을 하고있는 렴승필감독.

“이제 남은 게임은 제일 간고한 게임들뿐이다. 료녕, 하문 등 팀은 강급권에서 해탈되려고 생사결단할것이고  대련팀은 우승보좌를 되찾으려고 악을 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경기도 소홀히 대하지 말고 게임마다 최선을 다해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비록 최근들어 “연변영예전”이 펼쳐지면서 장백호랑이의 위풍을 되찾은 오동팀이지만 심리부담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이에 대비해 목하 팀에서는 체능훈련에 모를 박는 한편 압력을 동력으로 전이시키기 위한 사업도 틀어쥐고있는바 렴승필감독에 따르면 인젠 선수들 거개가 팀성적에 구애없이 그 어떤 강팀과도 겨루어보겠다는 자신심으로 다져있다고 한다.

홈장경기가 적고 원정경기가 많은데 대해 언급할 때 렴승필감독은 실력발휘가100%이기만 하면 원정경기라 해서  두려울것이 없으며 특히 지난번 청도에 가서 봤지만 전국 각 경기구마다 기본상 오동팬이 있는것이 다른 팀에 없는 오동팀의 우세라고 했다.

시즌이 막바지에 이르고보니 “외교경기”, “가짜뿔”현상을  피면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비해 렴감독은 다음과 같이 피로했다.

외교전을 벌이는건 비겁한 행위이다. 설사 우리는 이미 실력만 비기고 점수를 비지지 않기로 작심한 이상 그 어떤 ‘소동작’도 하지 않을것이다. 다른 팀에서 갑A보존이나 다른 목적으로 그런 짓을 한다면 별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두렵지 않다. 그들이 그 어떤 교역을 하거나 어떻게 심판의 보호를 받거나를 막론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실력발휘에 최선을 다할것이며 어떠한 최종 결과든지 막론하고 오동팀으로 하여금 중국축구계의 공인을 받도록 하겠다.”

《연변일보》 2000년 8월 14일

외국인들이 본 연변레저스포츠의 현주소

레저스포츠란 새로운 체육용어가 점차 우리 생활에 접근하고있다. 스포츠문화가 사회화 및 대중화에로 침투됨에 있어서 연변의 현주소는?
일전 연길에 거주하는 몇몇 외국인들을 만나 외국과 비교해보면서 연변의 생활체육 현황과 전망에 대하여 화제에 담아보았다.
레저스포츠 녀성들이 이끌어가야

리용성(한국인, 연변외국인학교 바드민톤교원): 한 사회의 레저스포츠 활성화는 녀성들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는 가정주부로 있는 녀성들이 많다. 그들은 시간적여유가 있으니 몸관리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데 그것이 생활체육이 발달되는 주요 원인이 아닌가싶다.

한국에는 체육시설이 많아 녀성들이 주위에 있는 수영장, 볼링장, 테니스장, 에어로빅관 등에 자주 다닌다. 휴일에는 가족을 단위로 운동하러 다니는데 남자들은 자연히 술, 담배와 멀어지고 가족들과 같이 운동을 즐기게 되는것이다.

연변인들을 보면 아직 내가 왜 생활체육을 해야 하는지 하는 의식이 박약한것 같다. 연변에는 아직 체육시설이 미비하고 물론 CCTV-5에서 체육지식을 많이 보급하고있지만 스포츠를 전문 가르치는 지도들이 적어 바드민톤, 테니스 운동을 배우고싶어도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한다.

기실 생활체육이란 참으로 유익한 종목이다. 생활체육으로 몸단련도 되고 여가생활도 풍부해지고 이웃, 가족, 동료 사이가 원활해져 사회가 밝게 되는것이다. 연변에서도 좀 더 사회적으로 중시를 돌려 체육시설에 투자를 하고 녀성들로부터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이끌어나갔으면 레저스포츠문화가 더욱 빠른 발전을 가져오지 않을가.

관념 갱신해야

포타(미국인, 연변과학기술대학 영어교원): 미국은 레저스포츠가 잘되고있다. 유치원때부터 부모들이 자녀들의 애호에 따라 야구, 롱구 등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주일에 2 – 3시간 체육과수업을 받고 또 취미에 따라 주 2회씩 써클에 참가하여 좋아하는 체육종목을 배울수 있다. 또 동네마다 같은 애호를 가진 성인들끼리 모여 클럽을 형성해 아침이면 부근 학교운동장을 리용하여 활동하고 월 5딸라 정도씩 회비를 거두어 학교에 준다. 학교에서는 이 돈으로 운동시설을 확충한다. 이리하여 량성순환이 이루어지는것이다.

미국에서는 공원이 운동시설이 잘 갖추어져있고 대부분 무료로 리용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고싶은 운동을 즐기게 된다. 연변은 아직 체육시설이 많이 미흡하여 운동할데가 많지 못하지만 관심만 가진다면 누구라도 할수 있다. 연변레포츠가 아직 발전이 느린것은 연변인들의 관념문제라 보아진다.

조깅은 생각만 있으면 그냥 할수 있는것이고 에어로빅도 음악을 틀어놓고 몸만 움직이면 되는것이다. 등산은 큰 장비를 갖추지 않고 도시락만 챙겨든다면 되는것이다. 하자는 자세로 레포츠를 대한다면 투자가 안들어도 건강을 지킬수 있으며 레포츠문화도 발전을 가져올것이다.
전민건강 국력 커진다

엄종윤(한국상품도매센터 신발매장): 올 4월 연변에 왔다. 와보니 사회체육조직망이 이루어진것 같지 않았고 장소도 적었으며 건강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정도가 아직 맹아상태라는 느낌이였다. 경제발전과 사회체육활성화는 정비례이다. 체육시설건설이란 거개가 많은 자금이 수요되기에 우선 정부차원의 중시와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밑지는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체육을 통해 전민건강이 이룩되면 국력이 커지기때문이다.

다음 기업참여와 시민들의 동조가 필요하다. 이전의 기업문화란 직원들을 부려먹고 리익을 올리기에 그쳤지만 지금은 사회로부터 얻은것을 다시 사회에 되돌리는것이 기업취지로 되고있다. 시민들의 동조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를 위해서이다. 건강이 있어야 꿈이 있고 소원성취도 가능하기마련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새에 완벽한 시설로 시작할수는 없다. 연변의 상황에선 하나하나씩 풀어나감이 바람직하다.

운동을 견지하노라면 남성은 절로 술담배를 멀리하게 된다. 술을 마시면 아침 일찍 일어날수 없고  담배를 피우면 운동시 호흡도가 파손되기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축구, 등산, 탁구, 수영, 배구 등 많은 운동을 즐기지만 그래도 축구가 나의 과외애호1번지이다. 연변의 체육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물론 조기축구회같은데도 참여하고싶지만 일단은 매장에 있는 축구화, 등산화 등을 체육인들한테 특별우대값으로 선물하는것부터 펼쳐볼가 한다.

엘리트체육과 레포츠의 관계

송원찬(한국 GNS주식회사 리사): 중국스포츠의 막강함은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 충분히 과시됐다. 헌데 중국의 한개 지역인 연변상황으로 보아 엘리트체육인 오동팀이 존재하기는 하나 기타 사회레포츠는 좀 엉망이 아닌가싶다. 다른 체육시설은 제외가고 제일 쉬운 운동이 조깅인 강뚝달리기였는데 그나마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몇명 볼수 없다. 건강을 홀시한탓인지 모르겠다.

이곳에 고혈압환자와 반신불수환자가 조 좀 많은것 같다. 경제여건에만 민다면 리유가 못된다. 수많은 료리청과 노래방, 사우나 등 유흥업소는 한국에 비해 별로 짝지지 않는데 체육시설이 락후한건 정부와 시민들의 중시도와 의식정도를 탓할수밖에 없다.

한국도 이전엔 엘리트체육만 중시하고 레포츠를 홀시하던 나라였는데 88올림픽후 상황이 많이 개변됐다. 갈수록 사람들은 동네별로, 회사의 부서별로 사시절 상관없이 등산 혹은 야외에어로빅 등을 조직하는데 특히 녀성들이 더 활약적이다. 이러면 스트레스해소는 물론 친구와 동인들과의 친목 및 건강에도 리롭다.

생활체육이 널리 보급되면 엘리트체육도 올라가기마련이다. 이는 량성순환이며 그 대표적나라는 미국이다.

나 역시 생활체육에 취미짙은 사람이다. 예전부터 그 무슨 프로선수로 되자는 목적이 없었다.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서고 취미에 의해서였다.

연변에 온지 몇달밖에 안되다보니 올해 오동팀에 좀 도움을 준것밖에 없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연변체육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려 한다.

《연변일보》    2000년 11월 3일

잠재력발굴 시장계획-자체발전의 길
연변체육운동학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1956년 9월 3일에 창립된 연변체육운동학교는 축구인재육성을 주요 대상으로 한 우리 주내에서 제일 규모가 큰 스포츠인재종합육성기지이다.

근 50년래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는 고차원의 스포츠후비력과 사회에서 수요하는 스포츠인재를 육성하는것을 주요한 사명감으로 삼고 학교건설을 추진, 특히 최근 몇년래 김덕신교장을 비롯한 학교지도층에서는 국내외 고등체육학부 및 사회체육단체들과의 다단계합작을 강화하여 잠재력을 발굴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돌아보는 수십년 황금열매 주렁져

연변체육운동학교의 후비력육성사업을 놓고말하면 우선 축구인재육성에서 가장 성공, 창립 반세기를 거쳐오면서 축구후비력육성사업을 첫자리에 놓고 틀어쥐였는바 원 길림오동팀을 비롯한 연변을 대표해 출전한 축구팀들중 절대적다수의 선수가 연변체육운동학교출신이였으며 현재 연변세기팀의 감독, 지도를 맡고있는 고훈, 조영원, 김광수, 한종국, 리광호 및 주내 체육분야의 많은 축구전문가들도 이 학교가 육성해낸 인사들이였다.

특히 올들어 연변세기팀 선수들중 지난해 이 학교로부터 선발된 4명의 선수가 뛰고있는데 그가운데 수비수 4번 조명선수와 18번 최영철선수의 표현이 출중하여 많은 축구팬들의 눈길을 끌고있다. 한편 축구외 기타 분야에서도 수명의 스타를 육성, 2002년 북경국제마라손초청경기의 4등으로 국가마라손올림픽팀에 입선된 정운산선수와 현재 성륙상팀에 있는 왕택민 등 4명의 선수도 이 학교가 배출한 스타들이였다.

그밖에 각종 전국경기에 참가하여 이룩한 성적도 휘황하다. 대표적실례라면 지난해 제5회전국도시운동회 남자축구경기에서 우승한것과 제7회전국소수민족운동회 그네와 널뛰기 종목에서 금메달4매, 은메달 1매와 우수표연상을 따온것이라 할수 있다.

자금유치, 다단계합작에 박차

시장발전의 변화에 비추어볼 때 단순한 국가재정지원에 의해서는 학교운영을 윤활하게 할수 없는것이 오늘날의 추세라 할수 있다. 자금유치와 다단계합작을 강화해야 시대발전추세에 적을할수 있다는 점, 김덕신교장을 비롯한 이 학교지도층에서는 미리 이를 감안하여 일찍 손써 많은 사업들을 추진해왔다.

2002년초 연변체육학교에서는 남보다 한발 앞서 길림체육학원과 손잡고“3 + 2”전과반 (주:3년 마친 뒤 2년 더 다니는 특수반)을 설치, 졸업생들이 길림체육학원 전과반 졸업증을 타고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었고 올 4월에는 선후로 대련대학 체육학원, 료녕대학 체육학원 등 체육학원 등 체육분야의 고등학부들과 합작해 학생수송협의를 달성했는바 학생들이 이런 학부들을 통하여 한국과 기타 나라로 류학갈수 있는 토대를 닦아놓았다. 또한 이미 왕청과 연길에 각각 분관을 설치한 기초상 올들어 연길에 있는 동방태권도관과 실로암태권도관 등 사회체육단체를 유치, 2006년 길림성운동회와 2008년 북경올림픽을 겨냥한 종합실력제고에 큰 힘을 기울렸다.

그외 자금유치로 국가재정부담을 경감시키고 학생들의 훈련과 생활 및 성장에 푸른등을 켜주기 위해 2003년 8월 중국송경령기금회와 손잡고 연변에 송경령축구학교(국내에서 두번째)를 창립, 제1회합작기한을 5년으로 해마다 송경령기금회로부터 50만원씩 제공받기로 했으면 3월에는 심양응운투자관리유한회사와 공동으로 연변응운축구구락부를 설립, 이 학교의 모든 축구팀마다 령활한 시장운영화의 궤도에서 움직이게 됐다.

오늘 - 어제의 계속, 래일의 받침돌

1956년 몇몇 스포츠선인들이 맨주먹으로 연변의 첫 스포츠후비력육성기지인 연벼체육운동학교를 일떠세웠다면 반세기가 지난 오늘 연변체육운동학교는 주인민정부와 사회 각 분야의 관심과 협력하에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우선 스포츠전문가대오가 막강한바 교직원 65명중 중고급직함을 가진 일군이 43명으로 전체 직원의 68.24%를 차지하며 훈련과 교수 시설 및 기타 모든 시스탬도 높은 차원으로 운행되고있다. 지금 이 학교에서는 각종 대형경기를 겨냥한 모든 훈련을 강화, 우선2006년 길림성운동회에서 남자축구우승과 속도스케이트종목에서의 금메달 3매 그리고 기타 태권도, 권투, 유도, 민족체육 등 종목에서의 다수확목표를 내세웠는데 그중 몇개 종목은 2008년 북경올림픽진출도 겨냥하고있는 상황이다.

그외 특히 주목할만한것은 이제 곧 연변체육운동학교 새 기지건설이 착공, 부지면적 9만평방메터, 건축면적 1만 5000평방메터 되는 이 기지는 주체건물과 1개의 륙상경기장, 5개의 잔디발축구훈련장, 1개의 대형종합체육관 및 테니스장, 야구장, 바드민톤장, 권투관 탁구장 등으로 나누는데 그때면 학교의 훈련교수종목이 보다 많아져 학생모집차원도 다원화방향으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

《스포츠》    2004년 6월 14일

북극의 “고훈호” 증원서 돌풍을
○ 6:0으로 태안구거룡팀을 완파
○ 한송봉 2매의 미사일로 다득점혈로 개척

한껨의 북구 우승과 남구4등의 대결, 호랑이와 룡사이의 자존심결투였다. 10월 30일 하남성 정주에서 펼쳐진 전국축구을급리그 8강전 제1륜 제1회에서 연변세기팀은 막을수 없는 호랑이기세를 발휘해 산동태안구거룡팀을 6 : 0으로 타승하여 갑급고지쟁탈전의 멋진 스타트를 떼였다.

오전 8시30분 공을 굴리기 바쁘게 세기팀은 경기를 대방 문전으로 몰아갔다. 1분도 안되여 조명선수가 길게 뿌린 변선공을 현춘호선수가 멋진 발리슛으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고 5분만에 있는 문호일의 강슛과 8분만에 문대우로 날려보낸 정립국의 슛도 대방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에 민족복장을 차려입고 응원성세를 올리는 30여명의 세기팀원정응원단, 그 성원에 힘입어 세기팀은 좌우측 장거리패스, 변선돌파와 중앙선침투의 기전술로 대방을 제압하며 경기를 리드했다. 13분경 구거룡팀의 문전혼란중 10번 정림국선수가 대방수비수의 발밑에 있는 공을 빼앗아 번개같이 슈팅하여 선제꼴을 터뜨렸다. 그뒤 세기팀은 17분에 있는 문호일의 자유축차기, 26분과 29분에 있은 코너킥 등으로 대방을 금지구역안에 몰아넣는 밀물공세를 들이댔고 한편 쫓기고 두들겨맞던 구거룡팀은 25분에야 겨우 첫 슈팅을 날렸을뿐이였다.

후반 고훈감독으로부터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받은 세기팀은 한층 빠른 절주로 공격력을 강화했다. 경기가 항상 구거룡팀 문전에서 진행되던 후반 7분과 23분경 정림국이 선후로 이끌어낸 자유축을 주장 한성봉선수가 2매의 중거리미사일로 꼴문을 찔러 다득점의 혈로를 열어제쳤다. 한편 세기팀은 송소우, 최영철선수로 백승호와 현춘호선수를 교체시키면서 진영을 조절했다. 이어 파죽지세로 공격에 병력을 투입하던중 후반 33분 최영철이 정림국과의 멋진 배합으로 이날의 네번재꼴에 성공했으며 37분과 39분에 정림국이 동료들의 도움으로 련속 2꼴을 뽑아 해트트릭을 연출했다. 그외 세기팀은 경기종료를 앞두고 김청선수가 경고루적으로 퇴장담하기도 했다.

경기결속후 고훈감독은 전반경기에 만족을 표하면서 전반전보다 후반들어 선수들이 심태조절을 잘한테서 다득점했다고 피로했다.

이날 1호 경기장에서 있은 다른 한 경기에서는 할빈협력팀이 1 : 2로 운남려강동파팀에 패배, 2호경기장에서는 북경굉등팀이 3 : 0으로 남창 8.1형원팀을 격파한데 이어 천진기관차팀이 상해구성에 1 : 2로 덜미를 잡혔다.

1일 세기팀은 하남성체육센터 2호경기장에서 구거룡팀과 2회전을 벌이게 된다.

《스포츠》 2004년 11월 1일


연변축구 중원서 갑급고지 탈환

2000년말 원 길림시오동팀이 매각된 뒤 침침한 저곡에서 진통을 겪던 연변축구가 중원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축구고향의 존엄을 되찾았다. 5일 하남성 정주에서 열린 전국축구을급련맹경기결승단계경기에서 연변세기팀은 운남려강팀과의 관건경기를 4 : 0으로 대승해 4년간 윽벼르던 갑급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세기팀은 제1회합에서 3 : 1로 이긴 기세와 원정응원에 나선 연변팬들의 열과에 힘입어 대방 문전을 향해 맹렬한 공세를 발동, 짧은 패스, 쾌속절주와 령활한 기동력으로 대방을 금지구역안에 몰아넣고 주도권을 잡은 경기를 리드해갔다. 이에 려강팀은 꼭 2 : 0으로 이겨야 하는 심리압력이 큰데다 세기팀의 총체적인 기전술에 대처하기 힘들어 갈팡질파하면서 제10분, 17분, 18분에 련속 세기팀에 자유축과 코너킥기회를 선사하다가 뒤이어 수비반칙으로 페널티킥까지 냈으며 이를 로장 현춘호선수가 가볍게 슈팅하여 선제꼴을 뽑았다. 이때 30여명 운남팬들이 “검은호르래기”라고 광분, 동시에 려강팀 선수들의 집단퇴장으로 경기는 약 5분간 중단됐다가 다시 시작했다.

려강팀에도 득점기회가 없은건 아니였다. 경기 개시8분만에 있은 역습으로 세기팀문전을 위협했고 전반결속을 몇분 앞두고 페널티킥기회도 얻었으나 공을 문대옆으로 흘려보내고말았다.

후반들어 경기는 더욱 화약냄새가 짙은 육박전으로 번져졌다. 쌍방선수들이 엘로카드경고를 받았고 려강팀의 2명선수가 근육경련으로 쓰러지도록 몸싸움이 격렬했다. 그러는 가운데 후반7분경 5번 좌조개선수가 교체멤버로 출전한 김도선수와의 배합끝에 헤딩슛으로 이날 경기에서 자신의 두번째꼴을 기록했으며 26분경엔 문호일선수가 혼전속에서 슈팅하여 마무리꼴을 찌렀다.

총적으로 경기는 줄곧 세기팀의 리드에 따라 진행, 이채록고도 치렬한 투혼전이였다. 경기가 결속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선수들은 고훈감독을 공중에 들어올리는 쇼를 벌인 뒤 팬들한테 달려가 그들의 응원에 경례로 답복했다.

이날 있은 다른 한 경기에서느 상해구성팀이 5 : 1로 승리, 총성적 7 : 1로 북경굉등팀을 물리치고 갑급행렬에 들어섰다.

한편 6일 있은 최종결승, 남북대결에서 연변세기팀은 1 : 2로 상해구성팀에 석패해 올시즌 을급련맹경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운남려강팀이 북경굉등팀을 물리치고 3위에 올랐다.

《스포츠》 2004년 11월 8일


“이겼다. 연변축구는 성공했다”

이겼다. 제1회합에서 3 : 1로 려강팀을 힘겹게 압도한 뒤 제2회전에선 4 : 0으로 대승했다. 전반전 1 : 0의 승리, 상대방이 내준 페널티킥으로 려강팀을 압도했다.

후반들어 좌조개의 헤딩꼴, 현춘호의 호선꼴과 문호일의 마무리꼴은 장백호랑이의 위풍을 충분히 과시, 려강팀의 “구척장신”들은 “공중우세”를 찾아볼수 없었다. 흥미로운 경기장, 환호하는 추구팬들 - 경기가 결속되자 흥분한 선수들은 고훈감독을 공중에 들어올렸다. 한번, 두번, 또 한번… 고훈감독도 격동했다. 출전선수들을 한명씩 축하한 뒤 팬들한테로 다가갔다.

“우리 이겼다. 연변축구는 성공했다. 여러분들의 덕분이다”

환호성, 팬들마다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몇해만이던가. 장장 4년세월이였다. 연변축구는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수 없다.

격정이 극치에 오른 팬들은 고훈감독과 선수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모든 렌즈도 그들을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선수들의 휴식실, 허틈한 텐트였지만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고훈감독의 간단한 축하발언에 이어 주체육국 량창호국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갑급진출의 성공은 우연히 온것이 아니다. 4년간의 피타는 노력이 있었다.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구락부의 정룡준주임, 그밖에 원정응원에 나선 팬들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이뤄졌다”

호텔로 돌아온 팬들은 흥성한 경축파티를 조직, 원정응원단성원외 정주에서 공부하는 10여명 조선족대학생 및 정주로 출장온 연변의 기업인들도 참석했다. “위하여!”의 3창속에 그들은 축배의 술잔을 높이 들었다. 그속에 자리를 함께 한 세기팀 주장 한송봉선수의 어머니 태경애씨, 그녀의 노래는 우렁찬 박수속에서 다 함께 부르는 열창으로 번져졌다. 연변축구구락부의 정룡준주임은 당일 연길로 향발, 고향땅으로 개선하는 세기팀을 맞을 준비와 아울러 연변축구의 갑급진출을 경축하는 연변축구의 갑급진출을 경축하는 문예만회를 개최할 사업을 서두르게 된다.

《스포츠》   2004년 11월 8일


연변팀 갑급리그출전권 초비상 “정씨시대”의 프로축구시장화 의문점 수두룩
◎ 고훈: 구단 일대 혼란, 연변축구사상 처음 있는 일
◎ 정붕휘: 체불로임 즉시 발급, 갑급권등록 문제없어

올 갑급리그를 눈앞에 둔 요즘와서 연변프로축구가 일대 혼란을 겪고있다. 지난 3월 14일 중국축구협회에서는 “선수로임체불문제”로 연변축구팀의 “축구협회컵” 경기참전권을 취소, 다가오는 24일전으로 “로임체불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갑급권참전권까지 취소한다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16일 저녁, 기자가 상해에서 팀을 이끌고 마지막 시즌준비훈련을 하고있는 고훈감독한테 전화련계를 했을 때 그는 “이는 연변축구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현재 선수들의 정서가 매우 불안정상태”라고 하며 “이제 곧 원정서 상해군영과 제1륜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진짜 걱정된다”고 했다.

고훈감독에 따르면 올해도 외적용병영입은 기본상 실패, 조명 대신 수비선수감으로 브라질적 월리엄선수를 영입했지만 1.82메터의 신장에 비해 실력은 너무나도 수수한편이라 했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데려왔으니 당연한것 아니냐는것이였다. 현재 연변팀의 외적용병으로는 월리엄과 지난해 고용했던 졸라, 다른 갑급제후들의 실력파외적용병에 비해 큰 실력차이를 보이고있는 상황에 요즘 또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라고 했다.

한편 선수들의 로임체불에 대한 연변축구구락부 총경리 정붕휘씨의 해석은 다음과 같았다.

“선수들한테 체불됐던 2개월간의 로임은 당시 그들이 구락부와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지난해에 밀린 로임 또한 200여만원이 되는데 이때문에 중국축구협회에서 구단등록을 해주지 않는다면 속한 기일내에 주체육국과 토의하여 해결할 타산이다.”

현재 정붕휘는 구락부의 주요 책임자를 북경과 상해에 각각 파견하여 대책마련에 착수, 북경에 간 구락부 부총경리인 조영강은 이미 중국축구협회와 협의해 달라붙어 만족된 대답을 얻었고 구단선수들의 사상사업을 목적으로 상해로 간 다른 한 책임자 장덕중 역시 “선수들의 정서파동이 소문처럼 심하지 않았는바 모두가 열심히 훈련에 정진하고있다”면서 만족감을 표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 현재 “연변팀 ‘축구협회컵’ 참전권 취소”로 연변축구팬들속에서는 정붕휘의 구단운영능력과 그 성의에 대해 질의를 표하는이들이 많아지고있는 상황, “구단관명권협찬유치 미비, 외적용병영입의 실패, 이번에 ‘축구협회컵’ 참전권까지 취소당했으니 이것이 바로 연변축구의 시장화템포인가”하는것이 많은 축구팬들의 질문이였다.

이제 중국축구협회에 갑급권참전권신청등록을 하게 될 최후의 날자는 4일밖에 남지 않았다. 바라건대 정붕휘선생이 “지난해와 올해 사이의 구락부재무 처리문제”는 일단 제쳐놓고 조치를 대여 먼저 선수들의 밀린 로임을 발급하는것으로 올해의 갑급참전권을 따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종합신문》 2006년 3월 19일


“비장”의 공격카드, 극적인 원정역전승
○ 박만철, 최영철 부활조짐, 조선용병과의 배합 점점 성숙
○ 의등팀 홈장 련패, 갑급 간판꼴잡이 왕정현도 어쩔수 없어

눈물겹도록 극적장면이 련속 출현했다. 아니 연변남아들의 투혼과 팬들의 극성에 우리의 “하느님”은 끝내 외면하지 않았다.

선제꼴뒤 1분만에 내준 동점꼴, 후에 허락한 추가실점과 마지막 3분내에 터뜨린 련속 2꼴― 5일 할빈공업대학 그라운드에서 있은 중국축구 갑급권 제5 륜 원정경기에서 연변팀은 고훈감독의 “비장”한 공격카드와 선수들의 불굴의 투혼으로 대방을 3 : 2로 역전승, 올들어 간고한 첫 원정승을 일궈냈다.

경기가 시작되자 홈장련패에 시달렸던 할빈의등팀 조윤환감독과 여직껏 1승의 맛도 보지 못한 고훈감독은 자존심대결의 공격축구를 구사했다.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등팀은 출중한 속도와 체력을, 연변팀 역시 뛰여난 체력과 지혜를 바탕으로 일진일퇴의 불꽃접전을 벌였다.

숨가쁜 공방전중 쌍방은 서로 득점기회가 있었지만 의등팀의 키다리 3번 우희룡 수비와 연변팀 수비들의 악착같은 육탄방어로 오래동안 상대방 방선을 허물수가 없었다. 경기개시 6분, 연변팀의 김성철이 중앙선돌파에 성공해 날린 슈팅과 김영준의 원거리슈팅도 대방에 의해 와해됐고 의등팀이 얻은 3 - 4차례의 프피킥 기회도 여전히 연변팀의 지문일의 방선을 뚫을수가 없었다.

44분까지 경기는 쌍방간의 득점없이 빅는듯 하다가 45분경에 드디여 막혔던 꼴문이 터지기 시작, 연변팀의 조선적용병 김영준이 선제꼴을 작렬시켰고 그뒤 1분도 안되여 의등팀의 간판꼴잡이 왕정현도 동점꼴을 터뜨렸다. 극적인 첫 자존심 대결이였다.

후반들어 쌍방은 여전히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먼저 꼴을 넣는 팀이 승자로 되는듯 싶기도 했다. 그러던중 72분경 의등팀이 한차례의 코너킥기회를 획득, 공이 날아오자 3번 우희룡이 받아 헤딩을 날렸고 그걸 다시 매복해있던 한국적 왕정현이 침투해들어가며 슈팅해 그 자신의 2호꼴을 만들었다.

1 : 2. 그러자 그때까지 주전멤버를 움직이지 않던 고훈감독이 결단성있게 공격카드를 내들었다. 15분 사이에 련속 3명의 공격형선수를 교체투입시키면서 한층 공격의 날을 세웠다.

그뒤 경기장은 “화약냄새”가 풍겼고 의등팀 문전에서의 혼전은 련속됐다. 팬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 절호의 득점기회를 흘려보낼 때마다 아쉬움의 한탄을 내비쳤다. 한편 의등팀은 경기과일을 보호하려고 “시간지연술”을 썼고 경기는 연변팀의 패전으로 끝나는듯 했다.

시간은 1초 1초 흘러 최후의 3분이 남았다. 이때 극적인 장면이 출현, 상대방 문전의 혼란중 천학봉이 챤스를 잡아 동점꼴을 만들어 연변팬을 흥분시키기 시작하여 1분도 안돼 조선적 서혁철이 역시 상대방 문전혼전중 추가꼴을 터뜨려 의등팀으로 말하면 “최후의 흑색 3분”이였지만 연변팀한테는 “최후 3분간의 골든드라마”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편 워낙 경기가 치렬했던만큼 심한 태클도 가끔씩 나타나 쌍방 선수간 엘로카드 경고가 수차 있었고 후반 40분경에는 쌍방 선수간의 물리적행동으로 의등팀의 함도와 연변팀의 김영준이 각각 레드카드를 받았으며 경기후에 있어야 할 소식공개 회가 취소되기도 했다.
돌아오는 12일 연변팀은 홈장에서 남창 8.1팀과 한판승부를 겨루게 된다.       
     
《종합신문》 2007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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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빈행 스케치
● 장장 9시간의 대장정

연변축구팬협회의 “할빈행원정응원단”은 4일 저녁 10시에 연길에서 출발, 소형 뻐스안에 빽곡히 앉은 팬은 도합 30명, 눕지도, 다리를 펼수 없이 9시간의 원정을 떠난 그들은 안도, 돈화, 교하, 길림, 서란, 유수, 오상 등 2개 성의 7개의 현시를 거치면서 5일 아침 7시경 할빈에 도착했다.

연도에서 그들은 길림을 거치며 할빈방향으로 가는 외곽도로를 몰라 역고를 치렀고 길림과 할빈 사이에서는 공사가 한창인 고속도로에 잘못 들어섰다가 10여리나 되돌아온 일도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후 할빈축구팬협회와 저녁련환모임을 가졌고 6일 장춘에 들려 아태팀 홈장전을 관람하고 연길로 돌아오는 과정 재차 10 여시간의 대장정을 한건 물론 그 과정 고속도로 수금료만 1000 여원을 물었다.

● 의로운 할빈축구팬협회

연변팬들이 할빈에 도착하자 할빈축구팬협회 최로오 상무부회장이 마중, 그는 연변팬들을 가이드하여 할빈의 유명한 태양도와 상업보행거리 등을 구경시켰으며 경기후 할빈 흘리건들의 란동이 부리자 당지 극성팬들을 지휘하여 연변팬들을 호위, 한명의 피해자도 생기지 않게 했다.

● 의등팀 한국적용병 왕정현의 매너…

경기에서 2꼴 작렬시킨 의등팀의 한국적용병 왕정현은 경기가 끝나자 연변팀 감독진앞에 와서 머리를 숙여 경례를 했다. 그걸 보며 직업선수의 매너에 감동됐다. 중국축구선수들한테 이런 덕성이 있을가?

● 가치풀이

이번에 할빈공업대학 경기장에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쌍(?)의 젊은 남녀가 있었다. 이들 남녀는 근 400원을 팔아가며 할빈행을 했다. 또한 경기 내내 “연변필승”이란 프랑카드를 들고 연변팀을 응원, 원정서 연변팀 감독진과 선수들의 싸인을 받는것이 소망이라 했다. 400원이면 둘이서 홈경기 10차를 관람할수 있겠는데?…

수치뉴스

● 원정팬으로서 자제할 점

연변팬중에는 술 좋아하는 팬이 많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자제할줄도 알았으면 한다. 5일 경기가 있는 날 점심, 할빈축구팬협회에서 알선한 식당에는 손님이 많아 몇몇 팬들은 자리가 없이 식사도 못하고있는 상황에 다른 몇몇 팬들은 술을 권커니 작커니 하며 시간을 끌었다. 술이 그렇게 좋을가? 남이 굶어도 상관없도록 좋을가?!

● “현대화 대형선박” “실은 짐 너무 적어”

일개 대학교 경기장이나 연변홈장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현대적인, 말그대로 멋진 그라운드였다. 헌데 이렇듯 “리상적?”인 경기장에 그날 모인 관중을 말할라치면 할빈축구팬협회, “할빈맥주유한회사의등팀응원단”, “슈팅네트응원팀” 그리고 경기장의 사업, 치안 일군 등 집단외 관중수는 많아서 500명이라 할가? 부럽다, 부러워 우리한테 없는 그 경기장!

● 국가는 주악되나 국기는 볼수 없고

아무리 허술한 소수민족지구의 경기장이지만 연변홈장은 국가연주에 국기게양이 계속 있었다. 헌데 이번에 할빈에 가니 국가연주만 있었을뿐 국기가 오르는건 볼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처럼 근사한 경기장에 국기게양대를 찾아 볼수 없었다.

● 흑룡강의 이미지

흑룡강성에 대해 말하면 예전부터 내지사람들은 좀 무서워했다. 이를 진실이라고 할가? 경기후 할빈의 흘리건들이 연변팀이 앉은 차에 돌과 광천수병을 마구 뿌리며 “포격”헸고 연변팬들한테마저 위협적인 거동을 보여줬다. 다행히도 할빈축구팬들의 “호위”가 있었기에 연변팬들은 피해사례가 없었다. “흑룡강(黑龙江)”의 이미지가 손상 안될가?
《종합신문》    2007년 5월 7일

함께 가자 연길홈장,“고훈군단” 밀어주자!

연변축구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다. 올들어 지금까지의 경기중 1승 3무 4패로 이젠 강급후보권에 들어섰다. 최근들어 강팀과의 맞대결에서 련3패를 기록, 팀전적이 벼랑끝으로 밀려가고있는 상황이다.

팀주력진이 구전하지 못하다. 구락부의 내부혼란으로 인심이 흔들리고있어 더욱 걱정된다. 오죽했으면 고훈감독도 지난 광주의약과의 경기후 “감독이 바뀌는것으로 연변축구팀이 호전된다면…”을 내비쳤다.

고훈감독도 지쳤을것이다. 올해초부터 고훈감독의 계획은 헝클어졌다.

지난해부터 추진했던 조선용병가맹이 리그날자가 다 돼서야 성사됐고 그로인해 시즌초기 엉성한 경기력을 보였다.

그뒤 제6 라운드 할빈의등을 상대로 첫 원정승을 일궜으나 홈장에서 8.1팀과 1 : 1로 손잡았다. 8.1팀이 지난해의 실력이 아니였다. 이번 제10 라운드에 2 : 1로 강소 순천을 격파한것만 봐도 분명했다.

그 다음은 강한 벽에 부딪쳤다. 원정서 중경력범한테 4 : 3으로 패했고 홈장서 광주의약한테 0 : 2로 무릎 꿇었으며 이번 촉도행에서는 0 : 4로 완패됐다. 상대방이 너무도 강했다. 그중 광주의약과 성도오우는 9 라운드에 거쳐 무패행진을 이어왔고 특히 성도오우는 단 1꼴의 실점밖에 없는 팀이란걸 인정해줘야 한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정도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젠 연 팀의 “대반격시대”가 온것 같다.

9일 연변팀은 혜통과의 보충경기를 치른다. 맹목락관은 아니지만 제11 라운드부터 제16라운드까지 상대할 팀은 북경연첩성(홈장), 남경유유(원정), 청도해리풍(홈장), 훅호트혜통(홈장), 상해칠두성(원정), 북경리공(홈장) 등으로 련속 7게임을 실력이 수수한 팀과 대결한다. 적어도 15점 정도의 득점이 기대된다. 거기에 13라운드가 끝난 뒤 한단계(30여일)의 휴전이 있어 조선용병과의 배합이 더욱 원활해질수 있다. 연변팀의 경기를 “스딸린그라드전”처럼 올시즌의 전환점으로 만들자면 이번에 있을 훅호트원정도 중요하겠지만 오는 16일에 있을 연길홈장이 관건이란 생각이다.

2차 세계대전시의 “스딸린그라드전”은 남녀로소 할것 없이 전민이 동원됐다. 숱한 “청년근위대”와 “어머니영웅”도 출현했다.

전민이 동원돼 연변팀을 응원하는 “연변축구보위전”─ 기업의 참여가 요청되고 학생단체응원조직도 기대된다. 축구를 단지 공을 차는 경기만이 아닌 연변의 “얼굴”로, 연변문화의 “브랜드”로 손상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오는 16일 연변팀 홈장이다. 첫홈장승으로 고훈감독을 비롯한 전체 참전선수들께 힘을 주자는 권장이다.

《종합신문》   2007년 6월 4일

동포투데이 기자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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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FC 특집]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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