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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와 함께 숨쉬는 사람들 (5)

코리아와 함께 숨쉬는 사람들 (5)
기사입력 2015.06.1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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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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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2015춘계대회에 참가한 회원들이 전라남도 완도군 장보고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5월 30일, 일행은 2대의 버스에 나눠앉아 한국의 최남단에 있는 전라남도 완도군으로 향했다. 시간은 약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한반도의 중간지대에서 최남단까지의 노정을 5시간 30분에 달린다? 고속버스의 우월성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땅이 그만큼 작다는 것을 의미할까?
 
예를 들어 한반도의 전체와 중국의 전체를 비한다고 할 때 서울에서 완도까지는 중국의 양쯔강 남쪽 난징에서 광저우까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면적과 거리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2004년 10월, 당시 연변축구팀이 전국을급리그 8강전에 참가할 때 우리는 버스에 앉아 북방의 연길에서 중국의 중심지대인 허난성 정저우까지 가게 되었는데 2박 3일이 걸렸었다. 한반도의 절반 땅 거리와 중국의 절반 땅 거리- 비교될 수가 없었다.
 
한편 고속버스에 앉아서 달리는 동안, 나는 며칠간의 서울생활을 잠시나마 정리해보았다.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문명하며 모두가 예의가 밝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고 다음의 인상은 무엇이나 엄청 비싸다고 여겼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사례로 나와 박정일 선생은 가끔씩 국도호텔 주변에 있는 작은 음식점을 찾아 아침(호텔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밥을 먹군 하였다. 순대국으로 인당 한화로 5000원, 중국의 인민폐로 말하면 55위안 정도로 연길에서 아침밥을 먹자고 해도 이 정도는 들어야 한다. 거기에 밑반찬이 맛있고도 깔끔했으며 식사후 커피 또한 무료로 제공되군 했다. 그리고 뼈다귀해장국은 인당 3000원, 결코 비싼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연길의 음식값이 비싸도 너무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박정일 선생은 서울의 시장에서 옷 몇견지를 샀다고 하면서 연길 서시장의 옷들에 비해 싸다며 연길 서시상에서 한국옷을 가져다 몇배씩 비싸게 팔아 먹는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비싸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는건 아니었다. 바로 택시요금이었다. 기본금이3000위안으로 연길에 비해 많이 비쌌다. 서울지도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주로 택시를 많이 이용, 만원을 벗어날 때까가 허다했다. 하지만 서울의 면적과 연길의 면적을 비해볼 때 이해되기도 했다. 중국도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가면 교통비가 엄청든다는 것은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니 말이덨다.
 
다음 서울 종로구는 서울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종로 4가 큰길가의 골목들을 보면 길이 몹시 좁았다. 사람이 다니는데는 큰 불편이 없겠으나 가령 화재가 발생할 경우 소방차가 어떻게 들어가겠는가 하는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서울의 구석들을 돌아 보노라니 이전에 한국인들이 연길을 돌아보며 하는 말들이 불쑥 머리에 떠올랐다.
 
“연길은 마치 한국의 60연대 초기를 방불케 해요.”
 
“연길은 한국 어느 한 군수준에 미칠까?”
 …
헌데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피차일반이었다. 골목 양측의 건물들을 보면 해방전 용정거리나 연길 아래개방지 지역을 방불케 하는 곳들이 많았으며 가리봉동 시장은 화룡시 투도진 시장보다도 헐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면 장단점이 다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것을 비꼬고는 싶지 않았다.
 
다른 한편 이 날 버스에서 나는 사이판에서 언론사업을 하고 있다는 김홍균이라고 부르는 분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분의 명함은 김홍균, 나의 이름은 김철균- 거기에 우리 둘은 모두 김해김씨어서 어딘가 통하는 것 같았다. 국적은 달라도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날 김홍균씨는 자기는 김해김씨 몇대 후손이고 김해김씨네가 몇개 파인데 자기는 어느 파에 속하며 등등에 대해 설명했지만 나는 김홍균씨의 앞에서 할 말이 궁금해졌다. 같은 김수로왕의 후손이고 김해김씨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실 우리가 몇대인 것은 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김홍균씨는 진나라시대부터의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책을 많이 읽었겠다는 감이 들었다. 하긴 좀 자기가 박식하다는 것을 “자랑한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래도 아는 것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하긴 중국 역사에 대한 그와 우리의 견해가 일정하게 다른 것도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누군가 “완도에 거의 도착했어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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