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김혁 (재외동포 소설가.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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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초, 그 찰나의 시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걸가?
국제 도량형 총회는 세슘 원자가 91억 9천 2백 63만 1천 7백 7십번 진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1초라고 정의했다.
1초, 이 칼럼의 제목을 읽을만한 동안인 그 시간내에 지구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있다.
전 세계적으로8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고5명이 목숨을 잃는다.
1대의 승용차가 만들어지고 4대의 TV가 만들어진다.
166병의 콜라와 1200여 개의 달걀이 소비된다.
80가마가의 쌀이 재배된다. 
51톤의 시멘트가 소모된다.
22명의 여행자들이 국경을 넘는다.
인터넷에서는4백만 건의 이메일이 전송된다.
39만 4천여 개의 댓글들이 달린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인 빌게이츠는 1초에 인민폐로 800위안 벌어들인다. 이렇게 추산해보면 빌게이츠는 하루에 인민폐로 600만 위안을 버는셈이다. 
벌이 살아 남기 위한 날개 짓을 200번 한다.
사람들이 134억 8천만 개의 식물, 곤충, 동물을 죽인다.
총구를 떠난 총알이 900m를 날아간다.
헬리콥터의 날개는 125회 회전을 한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486억Kw의 에너지를 받는다.
세계 각지에서420톤의 비가 쏟아진다.
빛이 30만km 즉 지구를 7바퀴 반을 이동한다.
빛의 속도로 우주는 30만 키로미터씩 팽창을 한다. 
그리고 우주에서 79개의 별이 사라진다.
 
그러면 12초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가?
 
 2
 
일전, 연길에서 2시간 40분간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날아갔다. 포동국제비행장에서 29개의 역을 지나 상하이 기차역에 닿았다. 다시 2시간30분동안 고속렬차를 타고 고도(古都) 난징에 닿았다. 난징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5개의 지하철역을 지나 30여 분만에 이른 곳은 난징대학살 기념관이었다. 

굳이 사비를 팔아 난징땅을 밟은 것은 새롭게 집필, 연재하는 장편소설 “춘자의 난징”을 위한 현지감각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의 이 신작장편은 조선족문단 최초로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을 픽션물로 다루고있다. 조선족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연재가 당금 마무리 되어 곧 출간할 예정이다. 
 
난징대학살은1937년 12월 13일부터 다음해 1월까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3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인들의 항일 의지를 꺾기 위해 6주 동안 적수공권의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중국지역 일본군 총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인들은 민간인들을 생매장 하기, 휘발유를 뿌려 불지르기, 칼로 참수하기,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쏴 총알의 관통력 테스트하기…등 잔학한 방법으로 대학살을 자행,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어머니, 3개월 된 아기까지 무차별 학살했고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한 뒤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름다운 고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무간나락에 떨어졌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이 갈파했듯이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이런 잔학상은 처음”이였다.
 
난징시 서쪽 외곽에 자리를 잡은 난징대학살기념관에는 평일에도 관람자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단체로 온 학생들에서 머리발 허연 노인들 그리고 이국적 외모의 외국유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간간이 한국인들의 익숙한 말씨도 들려 왔다.

기념관은 표를 받지 않고 무료 개방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인파에 끼어 한참 줄을 선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넓다란 기념관 정원에 들어서자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300000”이라는 숫자였다. 전시관 곳곳에는 “300000”이라는 수자가 새겨 있었다. 바로 일본군에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숫자이다. 

1985년 8월 15일 개관한 난징학살기념관은 일본군이 학살을 저지른 비극의 현장에 세워졌다. 기념관은 포토전시관과 유골전시관, 파괴된 도시와 살해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부조물, 생존자들의 족적을 탁본 해 만든 동판조각로, 희생자의 명단을 판각한 벽인 “통곡의 벽”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희생자의 유골이 집단으로 발굴된 곳에 만들어진 “만인갱”(万人坑)이라는 전시공간에는 유골은 무려 7단계로 층층이 쌓여 있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음향시설을 갖춘 전시 공간도 있었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12초 간격으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있었다.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한 그 소리는 난징대학살 당시 12초마다 한 명씩 살해됐다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소리었다.
 
3
 
드디어 중국의 난징대학살 문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제12차 회의를 열어 난징대학살 문건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고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추인해 등재가 확정됐다.

난징대학살 문건은 일본 군대가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이후 6주간 난징 시민과 무장해제된 중국 군인들을 학살한 사실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을 아우른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의 이번 결정에 대해  유감을 밝혔다.

등재 신청 자료에 있는 숫자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중국 측에 등재 신청 취소를 요구해왔던 우파 일각에서는 유네스코 분담금을 끊어야 한다는 격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서 “과거사 지우기”에 급금해 하며 국제사회와의 공생에서 스스로 멀어지려 자처하는 일본 아베 내각의 심각한 력사인식의 오류를 보아낼 수 있다. 
 
난징대학살은 종전 후인 1946년 명백하게 확인된 대참안이다. 대학살을 주도했던 전범들은 난징군사법정과 도쿄에서 열린 극동군사법정을 통해 처형됐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도록 일본에서는 일부 양심세력만이 이를 인정할 뿐 “이는 중국인의 환상이다” ,”학살은 없었다”는 뻔뻔한 부인이 계속되고있다. 

일본의 극우분자들은 이 모든것이 “허구 또는 과장”이라 망언하며 발뺌하려 애쓰지만, 난징은 당시의 사진과 세계각지 언론의 기사,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방대한 증언 등을 모아 놓은 이 기념관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과거의 시간”을 지우려는 일본의 시도를 까밝아놓고있다.

누군가 시간이란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는 되돌아올 수 없는 화살”이라고 했다. 

극구광음(隙駒光陰), 문틈새로 달리는 말을 보듯이 얼핏 스쳐지나는 시간이라지만 역사는 인류의 무지, 쟁투, 잔학, 수난을 분초 속에서도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의 필름에 새긴 그 영상물의 테마에는 평화라는 커다란 글자를 새겨 놓았다. 
 
두시간 남짓한 관람이였지만 나지막히 귀에 잡히던 그 촌초 (寸秒)의 소리는 커다란 울림으로 내내 머리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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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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