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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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남편은 2004년 2월 한국에서 돈벌이 하다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가족사망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갔던 저는 장례를 마치고 그냥 한국에 불법체류자로 눌러 있으면서 남편대신 돈을 벌어서 두 아들의 대학공부 뒷바라지를 했습니다.한국에서 일자릴 찾아서 일하는 내내 저는 누구한테도 남편의 사망사실을 밝힌적이 없습니다. 아저씨는 중국에서 집을 지키고 있다고 몸이 안 좋아서 한국에 못 나온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남편없는 과부로 누구에겐가 보이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예측대로 남들은 저를 아주 단정하고 유복한 여자로 봐 주었습니다. 두 아들은 북경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고 남편은 착하고도 순하게 아내가 떠난 빈집을 지키고 있단다. 그렇게...그러다가 아이들이 다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에서 직장까지 찾은데다 오랜 불법체류자 생활에 병원검사 한번 받아보지 못한고로 몸이 아파서 저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지난해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집에 와서도 저는 남들한테 과부로 보이는게 싫어서 고향집을 처리하고 살기좋은 조선족지구에 새 아파트를 마련해서 이사했습니다.이번에는 그래서 남편이 한국에 "살아 계십니다." "애들 아빠는 한국에서 돈벌이 하고 있다."그렇게요........ 애들은 북경의 다들 알아주는 좋은 직장에 취직들을 해서 걱정이 없고, 한국에서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저는 역시 이웃들이 부러워하는 정직하고 유복한 여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족사진도 멋지게 커다란 액자를 해서 보란듯이 객실에 걸어 놓았으니 누가 봐도 제말이 거짓말 같질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조금 이상해 할것 같으면 북경에 아들한테 잠깐씩 다녀옵니다. 그러고는 또 남편보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불법체류자였던 저한테 F-4비자가 있을수 없는터에 대한민국에 그리 뻔질나게 다닐수 있다는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 되겠죠!?물론 거짓말을 하는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과부인 것이 들통이 나서 박복한 여자로 살기보담은 훨씬 나은것 같은걸 어떡하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전 남편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기가 싫습니다.내 사랑 그이께서는 2002년 8월 12일, 저한테 "따악 3년간만 애들을 지키고 있으라 잉? 이제 한국가서 내가 돈을 이따만치(그러면서 그이는 두팔을 크게 벌려 저한테 한아름을 시늉해 보였습니다.) 벌어다가 당신을 호강시킬 기라!" 그렇게 말하고 비행기 타기 직전 저를 마지막으로 포옹해 주셨습니다.그런 그이의 체취가 아직도 저의 코끝에서 맴돕니다. 그이의 말소리도 제 귀가에 쟁쟁합니다.한데 그것이 끝이 될줄을 뉘라서 짐작이나 했을까요? 아!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글짜들이 안보이네요......한국간지 일년반만에, 매일 한번씩 저한테 전화를 주시던 그이가. 그날도 마지막 통화를 한지 두 시간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소식이 왔습니다. 대학공부중인 두 아들의 어마어마한 등록금 때문에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년 반 동안을 쭉 야근만 했던 남편은 지나친 무리로 심혈관 파열이 와서 그리 된 것이랍니다. 아 불쌍해서 어떡합니까?! 실로 하늘땅이 뒤집히나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집 대들보가 내려 앉고 우리집 하늘이 무너지고 우리집 대통령님께서 돌아 가신 것입니다. 일년 반 동안을 제가 얼마나 그리워하던 그인데 만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영영 가시다니! 며칠을 울며불며 제정신도 없이 출국수속을 해서 저는 한국에 갔었고 친척들의 옹위하에 남편의 장례도 물론 치렀지만 그때는 제 정신이 들지 않아선가 그이의 시신을 손으로 직접 만지기도 했건만 그냥 꿈같이 아리숭하고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 계실 때의 정경이 더더욱 뚜렸해 질뿐.....어차피 그냥 살아 있을때도 한국과 중국에 그렇게 서로 헤어져 있다가 세상 뜬거니까.... 그래서 그것이 거짓말의 근원이 된것 같습니다. 아 그이는 살아계신다. 절대로 세상 뜬게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거기서 자아위안을 얻게 되고..........거짓말을 하는 내내 저는 늘 몹시도 흥분이 되고 행복합니다. 남편은 내내 살아 계시니깐요. 살아있어도 한국과 중국은 자유왕래를 할 수 없는 두나라이고 그래서 서로가 만나지 못하는 점만은 살든 죽든 똑같은 게 아닙니까? 그럴바엔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게 낫겠죠.그래서 저는 제가 죽는 날까지 쭈욱 남편의 사망 사실만은 숨기면서 살 겁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저만 좋으면 그만이니깐요. 그리고 제가 거짓말하는 동안 남편은 내내 제가 만날수 없는 어떤 곳에 건강하게 살아 계셔 주어서 차-암 행복하답니다. 언젠가 저도 그곳에 가는 날이 오겠죠..... 그날까지 남편은 하늘나라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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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9
  • 두만강, 관광특구지역 전망
    [동포투데이]동북아시아 첫 관광포럼 개최지인 훈춘시에서 오늘 정부측과 여행사간의 공동회담이 열린다. 두만강 프로젝트와 관련해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중국을 비롯해 조선, 몽고, 한국, 러시아 및 유엔 관광기구 대표들이 참석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역관광개발계획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이와 관련 여행사들간의 공동협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관광상품 계획안 및 전망 등에 대해 거론될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시아지역 공동협력문제해결을 위해 1995년에 발족한 두만강 프로젝트 기구는 유엔의 '두만강 수역 개발 프로그램' 프로젝트 하에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도에는 관광지역개발을 위한 정부자문기관으로서 관광기구의회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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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8
  • "연변조선족자치주 해체설"에 관하여
    ●허 훈 [동포투데이]요즘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 매체에서 한국 언론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해체위기”에 대한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민족정책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인구 비율 감소는 자치주 수부 도시 연길의 도시 면모를 바꾸고 있다. 원래는 연길시내의 광고판을 모두 조선어와 한어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으나 관련부문의 단속에도 중국어로만 쓴 광고판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녕파와 온주 등 한족기업들이 육속 연길에 진입해 백화점을 설립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예 건축물 밖의 전체 벽을 모두 중국어로만 된 광고판으로 커버하고 있다.. 공항안내도 점점 조선어사용이 감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경과 연길을 연결한 동방항공회사도 중국어와 영어를 두 가지 언어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상가나 식당가게주인, 종업원은 조선족을 찾아보가 힘들 정도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보아온 연길의 최근 몇 년의 변화이다. 한국 언론은 “1952년 설립돼 이미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뿌린 돌멩이 하나가 일파만파를 일으킨다고 인터넷상에서도 이 소식이 광범하게 전해졌다.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는 이 소식을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가 알아본데 의하면 연변 조선족자치주 해체에 관한 소식은 정확하지 않은 걸로 판명났다. 하지만 조선족자치주는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한때 전체 인구의 70%에 달했던 자치주조선족 인구는 최근 36%대로 뚝 떨어져 현지 조선족인구하락세는 사실로 밝혀졌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1952년 자치구 설립초기만 해도 지역 총인구의 62%를 점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시작하여 조선족인구 비율은 급한 하락세를 보였다. 2000년에는 84.2135만 명으로 자치주총인구의 38%를 점했으나 2005년에는 33%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였다. 한국언론은 중국 현지 동포 언론에 게재한 문장을 인용해 “중국 국내 조선족인구가 계속하여 감소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세로 계속 내려간다면 2050년에는 50.1397만 명이 감소될 것이며 2090년에는 19,4227명으로 감소될 것이다. 22세기에 가서는 중국 국내 조선민족은 철저하게 사라질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조사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자치주 인구증가율은 국내 56 개 민족 가운데서 제일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부터 마이너스 증가추세가 나타났는 바 조선족이 제일 많이 집중한 룡정시, 화룡시, 도문시의 조선족인구 감소폭도가 아주 컸다. 조선족인구 하락세원인을 분석할 때 연변당지매체의 관계자는 기자에게 “연변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주요하게 조선족은 받은 문화교육 정도가 비교적 높고 또한 교육을 중시하고 아이를 많이 낳기 싫어하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은 자고로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1949년, 중국의 첫 번째로는 되는 민족대학인 연변대학이 설립되였으며 자체로 모금하여 100여 개의 소학교를 건설해 1952년에 벌써 소학교육을 보급했다. 다음으로 조선족인구 유동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족 거주지 중국의 제일 북쪽인 흑룡강(黑龍江省)으로부터 남쪽 끝인 해남성(海南省)까지는 S형으로 확산되어갔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삼성의 농촌지역 조선족들은 한국기업군단의 중국 대도시 진출을 따라 중국의 각 대도시들에 확산되여짐을 풀고 있다. 현재 내지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음식점에 갈수록 많은 조선족 여성들이 취업하고 있다. 이런 여성들은 대부분 생육기에 처한 부녀들로 이는 조선족인구가 감소되는 한 개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90년대 이후 해마다 2000 ~ 3000명의 조선족들이 출국하던데로부터 2007년 방문 취업제가 시행됨에 따라 해마다 수만 명의 조선족이 출국하고 있다. 이중에는 조선족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일본에 유학가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현재 취업을 목적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58만 7천732명 가운데 방문 취업 중인 조선족 수는 28만 9천981명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한국언론은 소수민족 자치주내 소수민족 인구가 전체의 30%를 밑돌면 자치행정권이 취소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는 정말 30% 최저선이 있는가? 통상적으로 말하면 한 개 민족자치지방의 설립은 특수한 역사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또 당지 소수민족결구도 아주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북경경제무역대학인구경제연구소 소장 황 룽칭(黄荣清)은 기자에게 중국은 30% 최저선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자치구, 자치주를 건립할 때 당연이 소수민족이 점하고 있는 인구 비례를 고려하며 역사인소, 및 기타 정황도 종합적으로 돌본다”고 말했다. 민족자치구, 민족자치주는 단순이 인구 비례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인구가 보편적으로 많은 민족은 능이 자치를 할 수 있으며 인구가 비교적 적은 민족도 능이 자치를 할 수 있다. 즉 인구가 많은 민족만이 자치권을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된다. 중국의 민족자치지방은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 3개 등급으로 나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의 1947년, 중국 몽고족 거주 지역에 중국에서 첫 번째로 성급에 해당되는 내몽골 자치구가 건립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은 155개의 자치정부를 건립하였는 바 여기에는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 120개 자치현(기)이 포함된다. 중국 민족사무위원회관 방사이트에서 공포한 통계에 따르면 내몽고자치구의 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18.6%, 녕하회족자치구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34.1%, 광서 자치구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38%를 차지한다. 이 세 개 자치구 중 한족은 인구점유율에서 절대적 우세를 차지한다. 그러나 의연히 자치구로 남아 있다. 연길에서 사업하고 있는 한 한국인은 “연변의 면적은 4만여평방키로메터로서 한국국토의 절반에 해당된다. 만약 연변이 해체되면 우리 민족이 중국 동북지구에서 유구했던 역사, 근거지가 영원이 소실되고 만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인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은 또 “중국 당국은 현재 자치주 수부인 연길시를 포함한 8개현시로 구성된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해체해 연길, 룡정, 도문을 연결한 ‘연룡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한적 있다. . 하지만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관계자는 “연변 자치주 해체에 관한 소식을 모른다. 하기에 무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행정구역의 변동은 모두 국무원에 보고하여 동의를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알다 싶이 1983년, 연길현을 룡정현으로 개명할 때, 그리고 1985년, 돈화현을 돈화시로 개명할 때 모두 국무원의 심사비준을 거쳤다. 연변 자치주를 해체하는 것은 아주 큰 대사이다 “연룡도 통합” 프로젝트 추진은 또한 아주 큰 대사이다. 연변 한 지명인사는 기자에게 “연룡도 통합 프로젝트는 벌써 10여 년 전부터 구상해 왔으며 주요하게 지역경제발전을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며 자원을 합리하게 이용하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해 대기업의 투자를 흡인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연변 자치주 당위원회에서는 “11.5” 계획을 연구 토의할 때 “11.5” 기간 연룡도를 통합해 하나의 경제연합체를 만든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연길, 도문, 룡정은 원래 하나의 행정단위였으며 3 개시의 인구결구도 조선족을 위주로 하는 소수민족 집거지이다. 연길, 룡정, 도문의 조선족인구는 각각 전시 인구의 58.4%, 67.6%, 57%를 점한다. 조선족들의 자치주에 대한 감정은 아주 깊다. 조선족인구 하락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당지의 노인들도 있다. 민족 감정상으로 보아도 자치주를 해체하는 것은 현실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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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5
  • 연변 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
    중국 최대의 조선족 집거지인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구자 3일 창립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했다. 연변 각 민족 군중들은 여러가지 형식으로 이 중요한 날을 경축했다. 이날 오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대회가 소재지 연길시에서 열렸다. 길림성 당위원회 손정재 서기는 연설을 하고 지난 60년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면서 주요한 경제지표가 시종 전국 30개 자치주의 앞자리에 섰다고 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 장안순 서기는 지난 60년동안의 부지런한 노력을 거쳐 연변의 종합실력이 대폭 상승되었으며 민생과 복지가 크게 개선되고 전 주에 경제발전, 정치안정, 문화번영, 사회조화, 민족단결, 변강안전 그리고 각 민족 인민이 평안하게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좋은 국면이 나타났다고 했다. 경축대회에서 대형 광장예술공연 "연변찬가"가 공연되었다. 연변은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와 제일 큰 조선족집거지로서 220만명 각 민족 인민이 생활하고 있으며 그중 조선족이 전국 조선족 인구의 40% 이상인 80만명에 달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또한 "민족단결 보정" 제막식, 중국 연변조선족민속원 개원축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미술과 촬영, 서예작품전 등 일련의 행사를 가졌다. 대형 상모춤 공연 장고춤 공연 풍년의 상징-파도치는 황금물결 가야금 공연 천지를 배경으로 어여쁜 진달래를 배경으로 60주년 맞이 대형공연 일각 여러 민족인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유명가수 한뢰(韓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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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3
  • 경축활동기간 안전보위사업에 진력
    대회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장경찰부대장병들 하나하나 빠짐없이 안전검사 경기장내 안전에 대해 꼼꼼히 체크 교통질서 유지 전력응급차 통신응급차 자치주창립60돐경축활동기간 공안,교통,통신,소방 등 부문에서는 경축활동의 순조로운 진행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물력을 투입해 안전보위사업에 진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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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3
  • 조카 남편의 사망으로부터 떠오르는 생각
    이번 고향 걸음에 한국에서 돌아 온 조카 남편을 만났다. 그는 건장한 체구에 잘 생긴 미남이였는데 눈으로 익힌 일을 곧 잘 하는 재간둥이였다 . H-2비자로 한국의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장마철이 오니 외동딸이 낳은 100일 되는 외손녀도 볼 겸 연태에 왔다. 그날 점심에는 식당에 가 냉면도 같이 먹고 저녁에는 큰 조카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술과 맥주도 마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이틀 후 밤에 자다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갔는데 정밀한 검사를 거쳐 뇌출혈이 왔다는 것이였다. 뇌에 올라가는 혈관 세 개는 막혀 있고 하나는 작은 혹이 있어 뇌수술은 하였으나 희망이 없으니 후사 준비를 하라고 가족에 통보하는 것이였다.7월 4일 여동생 둘과 매부들은 부랴부랴 연태로 갔다. 이튿날, 정각 열 두시에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다. 그때 그의 나이 55세였다. 한창 살 나이에 너무나 아까운 그였다.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을 적으면서 한 마디 적어 본다. 한국행을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건설 업종, 서비스 업종, 간병을 하는 사람들이 의료 보장이 없고 어느 때 무슨 병에 걸릴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 돼 있다. 오늘은 누구는 중국에 갔다가 심장병이 발작해서 돌아 갔다는 일, 혹은 뇌출혈이 와서 세상 떠나는 일도 비일 비재이다. 어떻게 하면 불행한 일도 경감시키고 자기의 건강도 챙기고 정기적인 건강 검진도 필요하다. 적당한 서비스를 해주는 기구를 찾아 서비스를 받으시고 제때에 되는 건강 검진도 받으시며 고국땅에서 돈도 벌고 건강도 지키며 최소한 불행한 일이 적게 발생하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우리의 생활이 좋아지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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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1
  • 힘들고 벅찬 나날들
    힘들고 벅찬 나날들오늘도 삼복간의 더위로 잠 못 드는 밤이다. 한국에 온지도 4년 반이 되여 가는 이 밤에도 고향에서 힘 들게 지나온 세월을 떠 올리며 이 세상 자식의 뒤바라지를 하시는 모든 부모들에게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인사의 말 한마디 전하고 싶다. 1995년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잊혀지지 않는,고난의 한 해이기도 하다. 애들이 중학교까지는 시골 학교에서 다닐 수 있었는데 지식을 더 많이 배울려면 고중은 도회지로 가야 했다.고중 입시 성적이 발표되니 큰애의 성적은 537점이였다. ㄹ시에 있는 고중에 가려면 580점 이하는 만원이란 입학비를 받는데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려워 ㄹ시 일중에 입학하려고 하니 기숙사가 없어 고려하고 있는데 둘째 시누이가 ㄷ시 철도 고중에서 3천 원을 내면 된다고 하여 교육국의 승낙을 얻고 당안을 갖고 새로운 학교로 갔다. 그때 우리 집에는 단돈 백원밖에 없는 처지에 친척들과 마을에서 빌렸으니 그 애탄 심정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었다. 저의 심정은 오로지 아들을 공부 시키려는 일념으로 불 타 올랐고, 애를 공부 시키지 못하면 사는 것이 의미 없고 제 인생도 걸었었다. 제가 못한 공부를 아들한테는 마음껏 시키고 싶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아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부를 잘했다. 아들이 음식에 체해 고생할 때 초약도 정성 들여 달여준 황 할머니가 고마웠고 한 학급을 다니던 김일 학생의 집에서 일년 반이나 돌봐 준 김일이 어머니가 무척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보낸다. 우리 집 사정이 어렵다고 식비만 받고 주숙비는 받지 않으면서 아들과 똑 같이 대해준 그 분이 고맙기만 하 다. 대학 입시가 다가왔다. 그날도문에 계시는 황 할머니 집에서 아침 밥을 먹이고 아들을 바래주는 저의 마음은 아팠다. 남들은 시험 준비 기간에 맛나는 음식도 먹이고 영양 보충도 시키련만 저는 식비 대기도 힘들어 가느다란 허리에 입구창이 나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애를 바라보노라니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왜, 내가 아들을 대학 입시에 내몰았던가?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 안 되는가?>고 하면서 후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후회는 3일 뿐,역시 력사의 한 페이지를 그리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얼마나 아들 일에 정력을 몰부었던지 꿈에 대학 입시 점수가 나왔다고 하여 그날 전용 코드로 전화햇더니 537점이라고 하였다. 고중 입시 성적과 일치했다. 그제야 아들이 손에 쥐고 있던 책으로 구들을 탕 내리치며 "아,인제는 됐다." 자신감에 넘쳤다. 십년 공부 드디여 결실을 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새로운 설계도를 그릴 수 있으니깐, 우리는 두 애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막심했었다. 우린 살기 위해서 밥만 먹으면 되고 고기는 설에나 먹을 수 있었다. 큰 애가 연변대학 과학기술 학원에 입학하고 작은 애의 학비도 마련해야 하는데 향 담배 수매소에 못 받은 돈 3천 원 밖에 없었다. 하여 장씨라 부르는 한족의 담배 영수증으로 3천 원을 쓰기로 하였는데 잎담배회사에 연계하고 여러부문을 뛰여 다니며 해결하는데 9월 7일이 개학인데 전날 오후 세 시에 현금을 쥐게 되였으니 그 애탄 심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여기에서 한 가지 인생의 도리를 터득한 것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애가 대학 간다면 돈이 제절로 해결될 테이지만 평범한 농민 자제는 눈물이 나도록 힘겨웁고 대학에 간다고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고 지냈다. 가난한 집 애가 헴이 빨리 든다고 영어 시간에 남들은 영어로 대화도 하는데 A,B,C부터 배우느라 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해결하느라 ㅂ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컴퓨터를 익히며 홈페이지도 만들며 자립의 길에 나서기도 했다.전 한가지만은 애들한테 확실하게 알려 줬다.<너희 부모는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농민이다. 어디에 기대고 의지할 데도 없으니 제출로는 자기가 찾아야 하고 막노동을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딱 찍어 말하면 홀로 서기라고 알려 주면서 일에는 귀천이 없으니 법을 위반하지 않고 나라에서 규제하는 일 외에는 다 할 수 있다고 신근한 노동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빨리 성숙되게 한다. 오늘도 대학에 진학한 학부형들도 자식의 입학금 때문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이 계실 것이고 부모들이 한국행을 해서 해결 받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고 모든 대학생들이 밝은 웃음으로 새로운 교정에 들어가 지식을 배우고 사회에 유용한 인재로 자라나기를 축원하는 바이다./현만녀
    • 독자기고
    2012-09-01
  • 법원 위명(僞名)여권자 판례
    대한민국에서 강제퇴거되어 입국이 금지되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僞名)의 … 서울지방법원_2012고단3153 위계공무집행방해 - 2012. 8. 10. [내 용]대한민국에서 강제퇴거되어 입국이 금지되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僞名)의 호구부, 중국 여권을 발급받고, 이를 근거로 사증을 발급받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피고인들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한 사안(2012고단3153 위계공무집행방해).피고인들은 대한민국에서 강제퇴거되어 입국이 금지되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국 당국에 손을 써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의 호구부를 발급받고, 중국 외교 당국으로부터 위명의 중국 여권을 발급받은 후 F-1(방문동거), H-2(방문취업) 사증을 발급받아 입국하여 외국인등록을 함으로써, 위계로 사증발급담당 공무원, 외국인등록담당 공무원 및 귀화허가 담당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함. 피고인들이 범죄전력으로 입국이 제한된 상태에서 이른바 신분세탁으로 담당 공무원을 속여 비자를 발급받고 재입국하여 외국인등록을 하거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출입국 질서 등을 해친 점을 참작하여 양형기준의 범위 내에서 실형을 선고함. [주 문]피고인들을 각 징역 10월에 처한다.[이 유]범 죄 사 실1. 피고인 김00(JIN 0000000)피고인은 중국 조선족으로 1999. 5. 19. 산업연수비자(D-3)로 입국하였다가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불법 체류 중 2003. 7. 25.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서 성폭력범죄의처 및 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등)으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었다가 2003. 7. 30. 강제 퇴거 조치되었다.피고인은 강제 퇴거된 자에 대한 입국을 규제하는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출입국 당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입국이 금지되자 강제 퇴거된 사실을 출입국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꾸는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다시 한국에 입국하기로 마음먹고, 2004.경 중국 불상지에서 사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JIN 0000000(김00), 0000. 0. 00.생’임에도 호구부를 발급하는 중국 당국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을 써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의 호구부를 발급받아, 중국 외교 당국으로부터 위명의 중국 여권을 발급받았다.그 후, 피고인은 2006. 8. 29.경 주선양 총영사관에서 방문동거(F-1) 사증을 신청함에 있어 영사관 소속 사증발급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이 위와 같은 성폭력 범행을 하여 강제 퇴거 되어 입국 금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JIN 000000(김**)’라는 이름과 생년월일(****. *. *.생)을 사용하면서 사증발급신청서 등 관련서류에는 과거 한국에 방문하거나 강제 퇴거된 사실 및 입국 금지된 전력이 없는 것처럼 허위기재하는 방법으로 2006. 9. 4. 위 ‘JIN 000000(김**), ****. *. *.생’ 명의로 F-1 사증을 발급받아 2006. 9. 12. 대한민국에 입국하고, 2006. 9. 18.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외국인등록을 하였다.가. 피고인은 2007. 7. 16. 서울시 양천구 신정6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자격을 F1(방문동거)에서 H2(방문취업)로 변경함에 있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JIN 000000(김**)’ 명의의 사증과 인적사항을 이용하여 허위의 체류자격변경신청서를 작성, 제출하여 같은 달 19. 체류자격변경허가를 받았다.나. 피고인은 위와 같이 ‘JIN 000000(김**)’ 명의의 사증과 인적사항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귀화하기로 마음먹고, 2006. 9. 18.경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귀화 허가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피의자가 위와 같은 성폭력 범죄사실 및 입국 금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귀화허가신청서에 위와 같은 허위의 이름과 생년월일인 ‘JIN 000000(김**), ****. *. *.생’이라고 해당란에 기재하고, 대한민국 거주기간 란에 1999. 5. 19.경부터 입국하여 거주한 사실을 기재하지 아니한 채 ‘2006. 9. 11.부터’ 거주한 것처럼 허위 기재한 다음, ‘JIN 000000(김**)’의 인적사항으로 위와 같이 발급된 외국인등록증, 중국 여권, 거민신분증 각 사본을 함께 제출하는 방법으로 귀화허가신청을 하고, 2008. 1. 23. 국적필기시험, 2008. 1. 31. 귀화면접 등을 거쳐 2008. 4. 15.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이로써 피고인은 위계로써 체류자격변경허가 담당 공무원 및 귀화허가 담당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각 방해하였다.2. 피고인 이00(LI 00000000)피고인은 중국 조선족으로 1999. 8. 25. 밀입국하여 불법체류 중, 2001. 2. 2.경 필로폰 매매 범행이 적발되어 2001. 4. 17. 인천지방법원에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죄로 징역 3년을, 2001. 6. 21. 항소심인 인천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각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어 대전교도소에서 수형 중 2003. 8. 6. 만기출소한 후 외국인보호소로 인계되어 수용되었다가 2003. 9. 8. 강제 퇴거 조치되었다.피고인은 강제 퇴거된 자에 대한 입국을 규제하는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출입국 당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입국이 금지되자 강제 퇴거된 사실을 출입국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꾸는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다시 한국에 입국하기로 마음먹고, 2009.경 중국 불상지에서 사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LI 00000000(이00), 0000. 0. 00.생’임에도 호구부를 발급하는 중국 당국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을 써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의 호구부를 발급받아, 중국 외교 당국으로부터 위명의 중국 여권을 발급받았다.그 후, 피고인은 2009. 11. 24.경 주 선양 총영사관에서 방문취업비자(H-2)를 신청함에 있어 영사관 소속 사증발급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이 위와 같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범행을 하여 강제 퇴거 되어 입국 금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LI 0000000(이**)’라는 이름과 생년월일(****. *. **.생)을 사용하면서 사증발급신청서 등 관련서류에는 과거 한국에 방문하거나 강제 퇴거된 사실 및 입국 금지된 전력이 없는 것처럼 허위기재하는 방법으로 2009. 12. 1. 위 ‘LI 0000000(이**), ****. *. **.생’ 명의로 H-2 사증을 발급받아 2009. 12. 12. 대한민국에 입국하고, 2009. 12. 14.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외국인등록을 하였다.이로써 피고인은 위계로써 사증발급 담당 공무원 및 외국인 등록담당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각 방해하였다.3. 피고인 함00(XIAN 000000000)피고인은 중국 조선족으로 2006. 2. 15. 방문동거 사증(F-1)으로 입국하여 체류 중, 피해자 손찬의 옆구리와 우측 등 부위를 과도로 각 1회 찔러 전치 4주의 상해를 가한 범행이 적발되어 2007. 1. 26.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상해)죄로 징역 1년 6월을, 2007. 4. 12. 항소심인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각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어 수형 중 2007. 10. 26. 가석방으로 출소(형기예정종료일 2007. 12. 21.)한 후 외국인보호소로 인계되었다가 2007. 10. 31. 강제 퇴거 조치되었다.피고인은 강제 퇴거된 자에 대한 입국을 규제하는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출입국 당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입국이 금지되자 강제 퇴거된 사실을 출입국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꾸는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다시 한국에 입국하기로 마음먹고, 2009.경 중국 불상지에서 사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XIAN 000000000(함00), 0000. 0. 00.생’임에도 호구부를 발급하는 중국 당국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을 써 이름과 생년월일을 변경한 위명의 호구부를 발급받아, 중국 외교 당국으로부터 위명의 중국 여권을 발급받았다.그 후, 피고인은 2009. 11.경 주 칭다오 총영사관에서 방문취업비자(H-2)를 신청함에 있어 영사관 소속 사증발급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이 위와 같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상해) 범행을 하여 강제 퇴거 되어 입국 금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XIAN 0000000(함**)’라는 이름과 생년월일(1978. 2. 12.생)을 사용하면서 사증발급신청서 등 관련서류에는 과거 한국에 방문하거나 강제 퇴거된 사실 및 입국 금지된 전력이 없는 것처럼 허위기재하는 방법으로 2009. 11. 30. 위 ‘XIAN 0000000(함**), ****. *. **.생’ 명의로 H-2 사증을 발급받아 2009. 12. 22. 대한민국에 입국하고, 2009. 12. 24.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외국인등록을 하였다.이로써 피고인은 위계로써 사증발급 담당 공무원 및 외국인 등록담당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각 방해하였다.[양형의 이유]피고인들은 범죄전력으로 입국이 제한된 상태에서 신분세탁으로 담당 공무원을 속여 비자를 발급받고 재입국하여 외국인등록을 하거나, 체류자격 변경허가를 받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출입국 질서 등을 해침. 공무집행방해범죄 제2유형의 기본영역에 해당하는 범죄가 경합되었으므로 권고형량의 범위(징역 8월 ~ 2년 3월) 내에서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함. /한국인권신문>
    • 외국인· 출입국
    2012-09-01
  • ‘그들에게만’ 가해졌던 편견과 차별
    지난 4월 영등포와 수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이 사건이 조선족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선족을 국내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언론에서는 연일 사건 수사 경과를 낱낱이 밝히며 잔인한 범죄 내용만을 부각시켰고, 조선족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주민 사회 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뒤,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 대림, 안산 등지의 분위기는 그런 사건이 언제 일어났었냐는 듯 조용했다. 그러나 4월에 일어났던 사건과 이어진 보도를 통해 이주민 사회 전반을 돌이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개인에 의해 일어났던 사건을 이주민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하지 말고, 이주민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거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들에 대해 들끓고 있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 역시 이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4월 살인 사건 이후 조선족에 대한 혐오 게시물이 많이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는 조선족대모임 허을진 대표.조선족 모두는 범죄자가 아닙니다6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중국조선족대모임(조선족대모임)’ 다음 카페는 허을진 대표가 개설한 조선족 친목 카페다. 조선족 사이에서 소식통으로 통하는 이 카페는 오프라인에서도 200명이 넘게 모여 정기 모임을 할 만큼 조선족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지난 4월 다음 아고라 등지에서 조선인 추방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온라인에서 조선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해당 카페에서까지 조선족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이러한 발언을 올리는 네티즌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카페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정기 모임의 참여율도 평소에 비해 낮아졌다. 지난 5월 6일 모임에서는 평소보다 적은 140여 명이 참석했고, 자주 참석했던 한국인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 대표는 “온라인에서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보니 회원들이 모임에 잘 나오려 하지 않았고 서로 어울리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해당 카페에는 ‘조선족을 욕하는 글을 왜 지우지 않느냐’는 회원들의 불만이 담긴 게시물도 많았다. 허 대표는 “실제 회원들이 삭제를 요구하며 항의하기도 했다”며 “누구든지 발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삭제 등의 조치를 자제하고 있지만, 해당 사건 이후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 곤욕을 치렀다”고 전했다.이렇게 외국인에 대한 혐오 게시물이 많아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는 지난 1월 1일부터 4월 17일까지의 게시물과 관련해 심의를 진행했다. 방심위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 8조 제 2호 중 바 목의 ‘과도한 욕설 등 저속한 언어 등을 사용하여 혐오감 또는 불쾌감을 주는 내용’, 제 3호 바 목의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인종, 지역, 직업 등을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 등을 적용해 심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때 삭제나 이용 해지 등의 조치를 받은 게시물은 총 11건이었고, 이 중 이주민에 대한 비방 건수는 6건에 불과했다. 대림역 근처에서 만난 조선족 A씨는 “심의를 한지도 몰랐다”며 “온라인에 그렇게 많은 욕설이 난무했는데 일부만 심의 조치한 것이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A씨는 “조치를 받은 네티즌들이야 경각심을 갖게 됐을지 몰라도, 아무 근거 없이 조선족을 비방한 사람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셈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방심위의 관계자는 “심의의 영향력이나 결과에 대해 조사된 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이렇듯 이주민 사회에서는 특정 사건에 근거해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리봉동 연변거리에서 만난 한 이주민 B씨는 “수원 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것보다 잔인한 살인 수법과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더욱 놀랐다”며 “범인이 조선족이라고 해서 조선족을 싸잡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의 한 관계자 역시 “이런 사건들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은 조선족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한국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까봐 일부 이주민들이 더 조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도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범인이 개인이 아닌 ‘조선족’으로 분류됐다”며 “범인이 개인이 아닌 ‘조선족’으로 다뤄지면서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민 전체가 문제가 되는 것처럼 부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안산이주민센터에는 이들 단체가 마치 그들의 범죄까지도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가리봉동 인근에 모여 있는 조선족 사람들. 이때 만난 B씨는 조선족 전체가 비판받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피부가 ‘흰’ 외국인에게는 우호적인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이주민들에 대한 원색적인 시선이 모든 외국인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 온 흰 피부의 외국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강남 등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영어가 능숙한데도, 일부 학원가에서는 피부가 희지 않다는 이유로 임금을 적게 주거나 수업을 많이 맡기지 않는다”라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백인 선생님의 수업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선생님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노동자’로 인식하는 학생마저 있어 마음에 상처가 됐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특정 외국인에의 우호적인 시각이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더 큰 차별적 시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약 38만 가구로 이들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들은 약 2만여 명이었다. 이는 전체 출생아 100명 중 4명이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자신의 집이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을 알리기 꺼려하기도 한다. 구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동남아 출신의 여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였다. 그는 “엄마가 동남아 출신 외국인이라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알고 괴롭힐까봐, 아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하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편견으로 인해 차별까지 받는 외국인들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많다보니, 이들이 많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한국인들은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을 조선족 문화 거리 등으로 명칭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 곳에 있는 한국인들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해 무산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가리봉동 인근에 사는 주민 D씨는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꺼려질 때가 있다”며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조선족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빨리 지나가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사실 우리가 필요해서 이주민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일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이주민들은 3D 업종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주는 경우가 많다. 또 국제결혼의 비율이 증가하다보니,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는 경우 역시 많다. 그런데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 ‘몸을 파는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임금 체불 등의 노동 문제나 외국인 차별 등 다문화 사회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이주민들을 ‘막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편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법 질서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이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1년 이상 계약을 맺으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6개월 단위로 나눠 외국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들을 사업장으로 파견한 파견 업체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가리봉동에서 만난 이주민 A씨는 “사실 수원 살인사건보다는 오히려 조선족에 대한 차별 대우로 논란이 됐던 영등포 살인 사건이 조선족 사회에서 더 뜨거운 이슈가 됐다”고 밝혔다. 영등포 살인 사건은 조선족 노동자가 직업 소개소장과 밀린 임금을 두고 다툰 끝에 그를 흉기로 찔러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조선족들은 직업소개소와의 관계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해당 사건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물론 그런 환경에 있다고 해서 모두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악덕 직업소개소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주민들이 너무나 많다”며 “‘아쉬운 사정으로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차별적인 대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가리봉동 인근 거리의 모습. 이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점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한다.‘그들’이 아닌, ‘우리’가 함께 하는 다문화 사회이주민 사회를 한국 사회와 조화롭게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주민들의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 관계자는 “열악한 노동 조건과 시설 등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지만 이주민들이 한국의 법 질서를 잘 지키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며 “이주민의 수와 이주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질서를 지킬 수 있고 다음에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 이주민들이 취약한 신분으로 인해 제대로 된 노동 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만큼, 질서를 잘 지켜야 더 많은 이주민들이 차별없는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관계자는 “특히 마작 등의 도박을 ‘문화’라며 한국에 들어와서 하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한국의 문화를 존중해야 우리도 이들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조선족대모임 허을진 대표는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부 조선족들이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처음 조선족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줬다”며 “조선족들도 한국의 질서를 잘 지키고 모르는 것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안산이주민센터를 비롯한 다문화 단체에서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주민들과 내국인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김영선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행사 위주로 다문화 캠페인을 벌였지만,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문화를 표방하는 행사는 많지만, 제대로 된 다문화의 장을 만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 관계자 역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이주민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직 지원이 미흡하다”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들을 골고루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현재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은 총 200만 명 가량 된다. 그러나 특정 사건으로 인해 이들 전체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피부색에 따라 특정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어린 시선은 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날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져가고 있는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이들을 배제한 일회성 다문화 행사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회가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일 것이다.이지연 기자 / leejy379@snu.ac.kr/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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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9
  • 9.3 축제를 앞두고
    우상렬/연변대학 교수 에루화 둥둥… 연변조선족자치주 세웠네! 올해는 자치주 창립 60돐! 9.3축제, 우리의 가슴은 진작 흥분으로 들떠있다. 사실 연변은 두만강축제, 진달래축제, 배꽃축제… 벌써 축제로 들끓고있다. 우리는 벌써부터 손님맞이 준비에 바쁘다. 길가의 건축물들은 의포단장을 하고 환한 웃음을 짓고있다. 가로수들은 푸르싱싱 여름의 열기를 몰아내고 시원한 가을바람을 저장한다. 9.3, 이제 곧 천고마비의 계절이 아니더냐. 여기에 우리는 구라파거리, 한국거리, 현대프라자, 조선족민속촌… 우리는 고금중외를 아우른다.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도 지천에 깔려있다. 우리 모두 조화로운 사회의 형제들이 아니냐. 오시라! 연변은 그대를 환영한다. 우리 연변은 이번 60돐 9.3축제를 계기로 정말 때벗이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다. 형상공정이 은을 내는것이다. 낮의 깔끔하고 화려한 현대도시의 모습은 더 말할것도 없고 밤에도 오색령롱한 불야성으로 빛난다. 연길의 밤은 하늘의 별과 땅우의 네온싸인이 서로 맞웃음 짓는다. 연길의 강은 하늘의 별이 내려왔는가, 땅우의 네온싸인이 어렸는가 신비한 룡궁세계를 펼쳐보이고있다. 우리는 이제 더는 촌놈이 아니다. 하늘에는 국내선, 국제선이, 땅우에는 고속도로가 쭉쭉 뻗었다. 이제 고속전철도 곧 룡트림한다. 우리는 북경과 직통하는 일일생활권속에 살것이다. 여기에 인터넷고속망을 타고 우리는 세계 곳곳에 가닿고있다. 도시미학으로 볼 때 연길은 훌쩍 커있다. 선남선녀 단계를 넘어 바야흐로 성숙된 어른의 모습을 나타내고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겉의 형상미보다는 실속이 더 중요하거늘! 심령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우리 연길, 연변은 아직 촌스러운데가 있다. 1전이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아득바득하는 택시기사들 그리고 신호등 무시하고 건널목 건너기 그리고 아직도 흥청망청하는 유흥문화… 우리에게 모자라는것은 시민의식, 문명한 시민의식이라는 말이다. 그럼 시민의식이란? 나는 우리 중국의 북경올림픽때 내건 한 모토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를 떠올려본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고대 성인들이 얘기한 인류보편의 가치. 이것을 풀이하면 바로 남에 대한 배려심이 되겠다. 항상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한것이다. 사실 우리가 여직 말해온 “대공무사”,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와 같은 마음 보다 높은 경지에로의 승화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차원의 “대공무사”, “전심력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의 경지에는 못 도달할지라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소박한 마음을 갖도록 하자. 전화 한통 하더라도 남에게 소음이 되지 않도록 빵빵 클랙슨도 좀 적게 울리고 술 마셔도 큰길을 쓰느라 비틀거리지 말고. 연길, 연변은 아직 크고있다. 크고있어 흐뭇하다. 연룡도, 선도구, 두만강, 금삼각구! 우리의 마음은 열려있다. 가자, 모든것을 품어주는 저 바다로! 연변호는 세계로 나아간다. 우리의 뜻은 세계에 있거늘! 조선, 로씨야, 일본…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모두 잘사는 세상을 이루자! 60회갑 청춘이라, 우리네 자치주 청춘 만세! 60갑자 돌고 도나니 우리네 자치주 영원하라!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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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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