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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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에 대한 단상
    요즘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갈 때 가장 많이 들르는 곳 중에 한 곳이 선양이다. 인구 4백만의 동북지역의 중심으로 유난히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옛 이름은 봉천(奉天),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일찍이 고구려의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심주가 되었다. 그 후 발해에 속했다가 요·금 시대에는 동경로, 원대에는 선양로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도 선양은 중국의 변방에 위치해 수많은 나라들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선양에는 조선족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선양 근처 씨족마을 본계현 주변에 사는 2천명의 한족과 만주족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본적에 기재된 족속(族屬)을 조선족으로 바꿔달라고 한 일이 있다. 중국은 대다수 한족을 제외하고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어 자신이 어떤 민족인지를 등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동북에서 주류인 한족과 만주족으로 살던 사람들이 굳이 조선족으로 바꾸려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게도 이들이 모두 박(朴)씨인데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서 끌려온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 박씨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박씨는 외래 귀화족이 없이 모두 박혁거세를 시조로 삼는다는 데에서 이들이 조선에서 왔음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 기록에서도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많은 양민들 뿐 아니라 소현세자 마저 청국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노예처럼 부려지던 조선인들은 만주족으로 가장하기도 했고, 혁명기에는 한족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모두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핍박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변하자 스스로가 조선족임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본계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선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숨겨놓았던 족보 등을 증거물로 제출했다고 한다. 그동안 조선족임을 감추기 위해 우리말과 풍속은 잊었지만 후손들에게는 자신들이 조선에서 왔음을 가르쳐왔다고 한다. 요즘처럼 역사논쟁이 치열한 때는 조선족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양을 포함한 동북의 역사는 모두 조선족들과는 무관한 ‘중국역사’의 일부라고 집집마다 교양문건을 하달해 공부하라고 한다니 말이다. 물론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 사람들이 고구려의 후손들이라기보다 조선시대 유민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양을 포함한 중국의 동북방은 만주족을 포함한 예맥족의 활동무대 였음이 분명하다. 중국에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자신들의 역사도 국경선으로 나뉘어 버린 오늘날의 정치상황이 조선족들을 더 서글프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중국국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노동하는 조선족을 대하는 우리에 태도를 보면 더 말해 무엇 하랴?/이상엽
    • 화제뉴스
    2012-09-11
  • 오빠는 갔다.
    오빠가 갔다그것두 우리마음속에 긴 슬픔과 한숨만 남겨둔채로 말이다사는게 왜 이다지도 복잡한지 종잡을 수가 없다그의 말처럼 내가 멍청한건지 아님 단순한건지?허나 그의 분노처럼 내 맘속에도 똑같은 분노가 들어있고그처럼 그말들을 마구 내뿜고 싶었지만 훗날 생각하니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뭐가 옳구 그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눈앞에 보이는 대로 다 판단할 수 없지만그렇다고 내 맘에 둔 그 분노 그의 말처럼 마구 내뿜지 못하는 것에안타깝구 성질나기만 한다이래서 내가 늘 스트레스를 받고 풀지도 못하고 사는 듯 싶다하고 싶은 말들 가슴에 차곡차곡묻어만 두니 말이다한국온 지 팔년. 그동안 나 여직껏 해보지 못하고겪지 못했던 걸 한꺼번에 다 해 본 듯싶다인간들은 다 제 생각만 하고 사는 듯 싶다갈팡질팡하는 오빠의 마음땜에 더 미칠것 같다또한 그런 그의 맘을 바로 잡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더욱더 불쌍하고 안타깝기만 하다나도 눈있고 귀가 있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미치는 생각 역시 그 못진 않을 것이다단지 표현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한다못난 내오빠 땜에 죄없는 그마저 이런 봉변을 당하고속을 태워야 한다는 것에 맘이 아프다더욱이 그런 아들 땜에 사십여 년을 늘 하루같이 송곳방석에앉듯이 안절부절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불쌍하다못해 이젠 자지러지게 아프게만 느껴온다사귀다 사귀다 한심한 여자까지 사귀여갖구몇 달만에 나타난 것이 임신 칠 개월 넘어서 애 낳겠다고나타난 그 여자 땜에 우리집은 말이 아니다진짜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응당 좋은 일이구 기뻐하구축하해야 될 일이지만오로지 오빠한테나 우리한테는 그것이 더 불행으로 다가왔다이젠 칠십을 넘기는 부모님한테 그 부담이 고스란히안겨지니 말이다자립을 하고도 남을 나이에 제 몸뚱이 하나조차 제대로 건사 못하는오빠가 그렇게 사악한 여자를 만나서 끝을 낸다는 판에이런 일이 벌여졌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을수가 있을까?전생에 뭔 죄를 져서 이렇게 사냐구 어머니는 낙누하지만당금 태어날 애를 생각하면서 어쩔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같기도 하다순진하고 단순한 오빠가 불쌍하기도 하지만넘 한심하기도 하다오빠를 놓고 이어지는 나와의 구설수땜에 어머닌 형제의가 다 끊어지게생겼다면서 그기에 한술 더 뜨신다모든게 내탓 같기도 해서 그러시는 같아서 더 맘이 아팠다진짜 가운데서 속이란 속은 다 태우면서 오빠하구 지냈지만돈을 제대로 안 준 그 이유로 내가 얼마나 압력을 받구시달림을 받는지 그도 알지 못할 것이다오빠한테서 받는 것보다 어머니한테서 받는 그 말속의가시가 더 아프게 내 맘을 찔렀다나로 인해 그 화풀이가 다 어머니한테 돌려진다고 생각하시니많이 화나신 듯싶다돈을 아예 안준 것도 아니다소소하게 쓴 돈이 얼마인지 모른다물론 오빠한테 말이다뭉치돈을 안 건네주니 그 돈은 빛이 하나도 없는거다사는 게 아무리 정정해도 돈이 더 큰 듯 싶다개떡같은 세상살이 참 힘들다지겹다, 눈물겹구 억울하다그의 말처럼 내가 야무지지 못하구 똑 부러지지 못해서내가 이렇게 한심한 꼴두 당하는 듯 싶다이모든게 내 팔자일까?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아픈 현실 역시 내 운명일까?그렇다면 애써서 공들은 나의 노력은 다 헛된 것일까?휴.... 한심하고 억울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알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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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1
  • 내 고향 평강벌
    평강벌 곡창에 아침해 찬란하고해란강 맑은 물결 옥답으로 흘러드네금파은 파 넘실넘실 아름다운 내 고향산좋고 물맑아 꽃구름 피어나네아- 아! 사랑스런 내고향서성향이 여양지바른 언덕 아래 과일꽃 만발하고뒷동산 목장에 소와 양떼 살쪄가네............................................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입니다.노래말처럼 아름답고 살기가 좋았던 내 고향-60리 평강벌의 첫동네로 소문났던 화룡현 서성향! 지금은 스산하기가 이를데 없이 변모했습니다. 우리가 다녔던 중소학교와 한족소학교 합해서 전에는 학생수가 수천 명에 달했었는데 지금은 중학교 청사에 모아놓은 세학교의 학생수가 겨우 40여 명밖에 안된답니다. 터전을 버리고 우리민족들이 고향을 많이 떠나서 논농사 지을줄 모르는 한족들이 드문히 들어 와 터를 잡았는데 벼농사로 이름높던 평강벌 논을 개답해서 옥수수 콩을 심은데도 있었습니다. 아 한 두 마디로 이루 다 말 할수가 없습니다. 아주 옛 모습이 다 망가져 버려서 가슴만 아픕니다.한국바람에 우리의 터전들이 삭막해 갑니다. 한국 가서도 돈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하면서도 무시나 당하고 하건만, 터전을 지키면서 가까운데서도 그만한 힘과 노력을 들이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왜 기어이 한국가야 하는줄 아시는지 안타깝습니다.연길시의 그 많은 건축공지들에서 수많은 외지 사람들이 돈을 벌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눈엔 연길이 한국만치 돈벌기가 좋은 곳 아닐까요?! 우리동포들 한국가서도 그냥 그러루한 일들을 해서 돈을 버는데 여기서보다 더 많이 벌지도 못하거니와 이국 타향이라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은 배로 많습니다. 한데도 집 가까이에선 그런 일하는게 창피한 건가요?! 돈 버는데 창피한게 어디 있습니까?내나라 내고향 내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먹고 속이 든든하게 떳떳하게들 돈을 버는게 한국가서 속이 한줌만해서 눈치살이나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일해서 돈버는 것보다 훨씬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우리고향이 다 망가져 간 후에 금산은 산을 쌓아놓고 산들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가슴 아파서 이렇게 바가지 좀 긁어 봤습니다./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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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9
  • 중국 길림-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북아시아의 6개 나라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세계를 상대로 경제무역협력을 전개하는 박람회인 중국동북아시아투자무역박람회가 6일 길림성 장춘시에서 막을 올렸다.중국 길림-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약칭:동북아박람회)는 국무원의 비준을 받고 중국상무부,국무원동북진흥판공실,길림성인민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가급 대형 국제성 지역종합박람회이다.동북아박람회의 개최는 중국정부가 중국과 동북아 여러국가간 경제무역 내왕과 지역협력을 추동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중국과 동북아 여러국가간 공동번영,교류협력,공평경쟁의 장기적인 협력플랫폼으로 된다. 이번 박람회는 11일 막을 내린다. 한국 서울 전시부스 러시아 전시부스 몽골 전시부스 일본 전시부스 일본 전시부스 태국 전시부스 한국 관광전시관 한국 삼성그룹 전시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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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9
  • 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남편은 2004년 2월 한국에서 돈벌이 하다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가족사망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갔던 저는 장례를 마치고 그냥 한국에 불법체류자로 눌러 있으면서 남편대신 돈을 벌어서 두 아들의 대학공부 뒷바라지를 했습니다.한국에서 일자릴 찾아서 일하는 내내 저는 누구한테도 남편의 사망사실을 밝힌적이 없습니다. 아저씨는 중국에서 집을 지키고 있다고 몸이 안 좋아서 한국에 못 나온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남편없는 과부로 누구에겐가 보이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예측대로 남들은 저를 아주 단정하고 유복한 여자로 봐 주었습니다. 두 아들은 북경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고 남편은 착하고도 순하게 아내가 떠난 빈집을 지키고 있단다. 그렇게...그러다가 아이들이 다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에서 직장까지 찾은데다 오랜 불법체류자 생활에 병원검사 한번 받아보지 못한고로 몸이 아파서 저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지난해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집에 와서도 저는 남들한테 과부로 보이는게 싫어서 고향집을 처리하고 살기좋은 조선족지구에 새 아파트를 마련해서 이사했습니다.이번에는 그래서 남편이 한국에 "살아 계십니다." "애들 아빠는 한국에서 돈벌이 하고 있다."그렇게요........ 애들은 북경의 다들 알아주는 좋은 직장에 취직들을 해서 걱정이 없고, 한국에서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저는 역시 이웃들이 부러워하는 정직하고 유복한 여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족사진도 멋지게 커다란 액자를 해서 보란듯이 객실에 걸어 놓았으니 누가 봐도 제말이 거짓말 같질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조금 이상해 할것 같으면 북경에 아들한테 잠깐씩 다녀옵니다. 그러고는 또 남편보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불법체류자였던 저한테 F-4비자가 있을수 없는터에 대한민국에 그리 뻔질나게 다닐수 있다는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 되겠죠!?물론 거짓말을 하는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과부인 것이 들통이 나서 박복한 여자로 살기보담은 훨씬 나은것 같은걸 어떡하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전 남편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기가 싫습니다.내 사랑 그이께서는 2002년 8월 12일, 저한테 "따악 3년간만 애들을 지키고 있으라 잉? 이제 한국가서 내가 돈을 이따만치(그러면서 그이는 두팔을 크게 벌려 저한테 한아름을 시늉해 보였습니다.) 벌어다가 당신을 호강시킬 기라!" 그렇게 말하고 비행기 타기 직전 저를 마지막으로 포옹해 주셨습니다.그런 그이의 체취가 아직도 저의 코끝에서 맴돕니다. 그이의 말소리도 제 귀가에 쟁쟁합니다.한데 그것이 끝이 될줄을 뉘라서 짐작이나 했을까요? 아! 눈물이 앞을 가려서 글짜들이 안보이네요......한국간지 일년반만에, 매일 한번씩 저한테 전화를 주시던 그이가. 그날도 마지막 통화를 한지 두 시간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소식이 왔습니다. 대학공부중인 두 아들의 어마어마한 등록금 때문에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년 반 동안을 쭉 야근만 했던 남편은 지나친 무리로 심혈관 파열이 와서 그리 된 것이랍니다. 아 불쌍해서 어떡합니까?! 실로 하늘땅이 뒤집히나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집 대들보가 내려 앉고 우리집 하늘이 무너지고 우리집 대통령님께서 돌아 가신 것입니다. 일년 반 동안을 제가 얼마나 그리워하던 그인데 만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영영 가시다니! 며칠을 울며불며 제정신도 없이 출국수속을 해서 저는 한국에 갔었고 친척들의 옹위하에 남편의 장례도 물론 치렀지만 그때는 제 정신이 들지 않아선가 그이의 시신을 손으로 직접 만지기도 했건만 그냥 꿈같이 아리숭하고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 계실 때의 정경이 더더욱 뚜렸해 질뿐.....어차피 그냥 살아 있을때도 한국과 중국에 그렇게 서로 헤어져 있다가 세상 뜬거니까.... 그래서 그것이 거짓말의 근원이 된것 같습니다. 아 그이는 살아계신다. 절대로 세상 뜬게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거기서 자아위안을 얻게 되고..........거짓말을 하는 내내 저는 늘 몹시도 흥분이 되고 행복합니다. 남편은 내내 살아 계시니깐요. 살아있어도 한국과 중국은 자유왕래를 할 수 없는 두나라이고 그래서 서로가 만나지 못하는 점만은 살든 죽든 똑같은 게 아닙니까? 그럴바엔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게 낫겠죠.그래서 저는 제가 죽는 날까지 쭈욱 남편의 사망 사실만은 숨기면서 살 겁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저만 좋으면 그만이니깐요. 그리고 제가 거짓말하는 동안 남편은 내내 제가 만날수 없는 어떤 곳에 건강하게 살아 계셔 주어서 차-암 행복하답니다. 언젠가 저도 그곳에 가는 날이 오겠죠..... 그날까지 남편은 하늘나라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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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9
  • 두만강, 관광특구지역 전망
    [동포투데이]동북아시아 첫 관광포럼 개최지인 훈춘시에서 오늘 정부측과 여행사간의 공동회담이 열린다. 두만강 프로젝트와 관련해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중국을 비롯해 조선, 몽고, 한국, 러시아 및 유엔 관광기구 대표들이 참석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역관광개발계획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이와 관련 여행사들간의 공동협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관광상품 계획안 및 전망 등에 대해 거론될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시아지역 공동협력문제해결을 위해 1995년에 발족한 두만강 프로젝트 기구는 유엔의 '두만강 수역 개발 프로그램' 프로젝트 하에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도에는 관광지역개발을 위한 정부자문기관으로서 관광기구의회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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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8
  • "연변조선족자치주 해체설"에 관하여
    ●허 훈 [동포투데이]요즘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 매체에서 한국 언론의 “연변조선족자치주 해체위기”에 대한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민족정책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인구 비율 감소는 자치주 수부 도시 연길의 도시 면모를 바꾸고 있다. 원래는 연길시내의 광고판을 모두 조선어와 한어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으나 관련부문의 단속에도 중국어로만 쓴 광고판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녕파와 온주 등 한족기업들이 육속 연길에 진입해 백화점을 설립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예 건축물 밖의 전체 벽을 모두 중국어로만 된 광고판으로 커버하고 있다.. 공항안내도 점점 조선어사용이 감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경과 연길을 연결한 동방항공회사도 중국어와 영어를 두 가지 언어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상가나 식당가게주인, 종업원은 조선족을 찾아보가 힘들 정도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보아온 연길의 최근 몇 년의 변화이다. 한국 언론은 “1952년 설립돼 이미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뿌린 돌멩이 하나가 일파만파를 일으킨다고 인터넷상에서도 이 소식이 광범하게 전해졌다.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는 이 소식을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가 알아본데 의하면 연변 조선족자치주 해체에 관한 소식은 정확하지 않은 걸로 판명났다. 하지만 조선족자치주는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한때 전체 인구의 70%에 달했던 자치주조선족 인구는 최근 36%대로 뚝 떨어져 현지 조선족인구하락세는 사실로 밝혀졌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1952년 자치구 설립초기만 해도 지역 총인구의 62%를 점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시작하여 조선족인구 비율은 급한 하락세를 보였다. 2000년에는 84.2135만 명으로 자치주총인구의 38%를 점했으나 2005년에는 33%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였다. 한국언론은 중국 현지 동포 언론에 게재한 문장을 인용해 “중국 국내 조선족인구가 계속하여 감소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세로 계속 내려간다면 2050년에는 50.1397만 명이 감소될 것이며 2090년에는 19,4227명으로 감소될 것이다. 22세기에 가서는 중국 국내 조선민족은 철저하게 사라질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조사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자치주 인구증가율은 국내 56 개 민족 가운데서 제일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부터 마이너스 증가추세가 나타났는 바 조선족이 제일 많이 집중한 룡정시, 화룡시, 도문시의 조선족인구 감소폭도가 아주 컸다. 조선족인구 하락세원인을 분석할 때 연변당지매체의 관계자는 기자에게 “연변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주요하게 조선족은 받은 문화교육 정도가 비교적 높고 또한 교육을 중시하고 아이를 많이 낳기 싫어하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은 자고로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1949년, 중국의 첫 번째로는 되는 민족대학인 연변대학이 설립되였으며 자체로 모금하여 100여 개의 소학교를 건설해 1952년에 벌써 소학교육을 보급했다. 다음으로 조선족인구 유동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족 거주지 중국의 제일 북쪽인 흑룡강(黑龍江省)으로부터 남쪽 끝인 해남성(海南省)까지는 S형으로 확산되어갔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삼성의 농촌지역 조선족들은 한국기업군단의 중국 대도시 진출을 따라 중국의 각 대도시들에 확산되여짐을 풀고 있다. 현재 내지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음식점에 갈수록 많은 조선족 여성들이 취업하고 있다. 이런 여성들은 대부분 생육기에 처한 부녀들로 이는 조선족인구가 감소되는 한 개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90년대 이후 해마다 2000 ~ 3000명의 조선족들이 출국하던데로부터 2007년 방문 취업제가 시행됨에 따라 해마다 수만 명의 조선족이 출국하고 있다. 이중에는 조선족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일본에 유학가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현재 취업을 목적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58만 7천732명 가운데 방문 취업 중인 조선족 수는 28만 9천981명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한국언론은 소수민족 자치주내 소수민족 인구가 전체의 30%를 밑돌면 자치행정권이 취소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는 정말 30% 최저선이 있는가? 통상적으로 말하면 한 개 민족자치지방의 설립은 특수한 역사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또 당지 소수민족결구도 아주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북경경제무역대학인구경제연구소 소장 황 룽칭(黄荣清)은 기자에게 중국은 30% 최저선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자치구, 자치주를 건립할 때 당연이 소수민족이 점하고 있는 인구 비례를 고려하며 역사인소, 및 기타 정황도 종합적으로 돌본다”고 말했다. 민족자치구, 민족자치주는 단순이 인구 비례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인구가 보편적으로 많은 민족은 능이 자치를 할 수 있으며 인구가 비교적 적은 민족도 능이 자치를 할 수 있다. 즉 인구가 많은 민족만이 자치권을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된다. 중국의 민족자치지방은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 3개 등급으로 나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의 1947년, 중국 몽고족 거주 지역에 중국에서 첫 번째로 성급에 해당되는 내몽골 자치구가 건립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은 155개의 자치정부를 건립하였는 바 여기에는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 120개 자치현(기)이 포함된다. 중국 민족사무위원회관 방사이트에서 공포한 통계에 따르면 내몽고자치구의 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18.6%, 녕하회족자치구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34.1%, 광서 자치구소수민족인구는 전체 인구의 38%를 차지한다. 이 세 개 자치구 중 한족은 인구점유율에서 절대적 우세를 차지한다. 그러나 의연히 자치구로 남아 있다. 연길에서 사업하고 있는 한 한국인은 “연변의 면적은 4만여평방키로메터로서 한국국토의 절반에 해당된다. 만약 연변이 해체되면 우리 민족이 중국 동북지구에서 유구했던 역사, 근거지가 영원이 소실되고 만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인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은 또 “중국 당국은 현재 자치주 수부인 연길시를 포함한 8개현시로 구성된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해체해 연길, 룡정, 도문을 연결한 ‘연룡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한적 있다. . 하지만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관계자는 “연변 자치주 해체에 관한 소식을 모른다. 하기에 무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행정구역의 변동은 모두 국무원에 보고하여 동의를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알다 싶이 1983년, 연길현을 룡정현으로 개명할 때, 그리고 1985년, 돈화현을 돈화시로 개명할 때 모두 국무원의 심사비준을 거쳤다. 연변 자치주를 해체하는 것은 아주 큰 대사이다 “연룡도 통합” 프로젝트 추진은 또한 아주 큰 대사이다. 연변 한 지명인사는 기자에게 “연룡도 통합 프로젝트는 벌써 10여 년 전부터 구상해 왔으며 주요하게 지역경제발전을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며 자원을 합리하게 이용하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해 대기업의 투자를 흡인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연변 자치주 당위원회에서는 “11.5” 계획을 연구 토의할 때 “11.5” 기간 연룡도를 통합해 하나의 경제연합체를 만든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연길, 도문, 룡정은 원래 하나의 행정단위였으며 3 개시의 인구결구도 조선족을 위주로 하는 소수민족 집거지이다. 연길, 룡정, 도문의 조선족인구는 각각 전시 인구의 58.4%, 67.6%, 57%를 점한다. 조선족들의 자치주에 대한 감정은 아주 깊다. 조선족인구 하락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당지의 노인들도 있다. 민족 감정상으로 보아도 자치주를 해체하는 것은 현실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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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5
  • 연변 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
    중국 최대의 조선족 집거지인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구자 3일 창립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했다. 연변 각 민족 군중들은 여러가지 형식으로 이 중요한 날을 경축했다. 이날 오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경축대회가 소재지 연길시에서 열렸다. 길림성 당위원회 손정재 서기는 연설을 하고 지난 60년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면서 주요한 경제지표가 시종 전국 30개 자치주의 앞자리에 섰다고 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 장안순 서기는 지난 60년동안의 부지런한 노력을 거쳐 연변의 종합실력이 대폭 상승되었으며 민생과 복지가 크게 개선되고 전 주에 경제발전, 정치안정, 문화번영, 사회조화, 민족단결, 변강안전 그리고 각 민족 인민이 평안하게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좋은 국면이 나타났다고 했다. 경축대회에서 대형 광장예술공연 "연변찬가"가 공연되었다. 연변은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와 제일 큰 조선족집거지로서 220만명 각 민족 인민이 생활하고 있으며 그중 조선족이 전국 조선족 인구의 40% 이상인 80만명에 달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또한 "민족단결 보정" 제막식, 중국 연변조선족민속원 개원축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미술과 촬영, 서예작품전 등 일련의 행사를 가졌다. 대형 상모춤 공연 장고춤 공연 풍년의 상징-파도치는 황금물결 가야금 공연 천지를 배경으로 어여쁜 진달래를 배경으로 60주년 맞이 대형공연 일각 여러 민족인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유명가수 한뢰(韓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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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3
  • 경축활동기간 안전보위사업에 진력
    대회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장경찰부대장병들 하나하나 빠짐없이 안전검사 경기장내 안전에 대해 꼼꼼히 체크 교통질서 유지 전력응급차 통신응급차 자치주창립60돐경축활동기간 공안,교통,통신,소방 등 부문에서는 경축활동의 순조로운 진행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물력을 투입해 안전보위사업에 진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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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03
  • 조카 남편의 사망으로부터 떠오르는 생각
    이번 고향 걸음에 한국에서 돌아 온 조카 남편을 만났다. 그는 건장한 체구에 잘 생긴 미남이였는데 눈으로 익힌 일을 곧 잘 하는 재간둥이였다 . H-2비자로 한국의 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장마철이 오니 외동딸이 낳은 100일 되는 외손녀도 볼 겸 연태에 왔다. 그날 점심에는 식당에 가 냉면도 같이 먹고 저녁에는 큰 조카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술과 맥주도 마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이틀 후 밤에 자다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갔는데 정밀한 검사를 거쳐 뇌출혈이 왔다는 것이였다. 뇌에 올라가는 혈관 세 개는 막혀 있고 하나는 작은 혹이 있어 뇌수술은 하였으나 희망이 없으니 후사 준비를 하라고 가족에 통보하는 것이였다.7월 4일 여동생 둘과 매부들은 부랴부랴 연태로 갔다. 이튿날, 정각 열 두시에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다. 그때 그의 나이 55세였다. 한창 살 나이에 너무나 아까운 그였다.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을 적으면서 한 마디 적어 본다. 한국행을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건설 업종, 서비스 업종, 간병을 하는 사람들이 의료 보장이 없고 어느 때 무슨 병에 걸릴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 돼 있다. 오늘은 누구는 중국에 갔다가 심장병이 발작해서 돌아 갔다는 일, 혹은 뇌출혈이 와서 세상 떠나는 일도 비일 비재이다. 어떻게 하면 불행한 일도 경감시키고 자기의 건강도 챙기고 정기적인 건강 검진도 필요하다. 적당한 서비스를 해주는 기구를 찾아 서비스를 받으시고 제때에 되는 건강 검진도 받으시며 고국땅에서 돈도 벌고 건강도 지키며 최소한 불행한 일이 적게 발생하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우리의 생활이 좋아지길 바라는 바이다.
    • 독자기고
    201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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