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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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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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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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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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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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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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실시간 스포츠 기사

  • [연변FC]“포항 전설” 박태하, 갑급판도 위협하나
    [동포투데이/연변일보] “무엇보다 열정을 가진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일이든 열정과 흥미를 갖고 일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믿어요. 선수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들의 열정을 운동장으로 끌어낼수 있는 것이 중요하구요. 앞으로 조금씩 노력하면서 완성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나아갈 겁니다.” 우리 연변이 모신 한국적 박태하감독의 말이다. 현역 축구선수 시절 박태하를 상징하는 말은 “포항맨”이였다. 한국 대구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에 포항에 입단한 그는 200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때까지 포항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다. K리그 통산 261경기를 모두 포항 유니폼을 입고 나섰고 46꼴-37도움을 기록하면서 “포항의 전설”로서 팬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팀을 위해 모든것을 던졌던 그는 인격적으로도 최고의 선수였다. 그렇기에 박태하는 동료 및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을수 있었다. 올시즌 연변팀은 개막전을 승리하더니 두번째 경기에서도 끈끈한 모습을 보이며 초반 갑급리그 판도를 위협할 존재로 등장,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지난 1라운드에서 1대0으로 승리했고 2라운드에서도 2대2 무승부를 거뒀다. 이제 리그는 두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아직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그러나 이 두 경기(원정)에서 보여주고있는 연변팀의 모습은 분명 지난해와 다르다. 이는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이 곳곳에 포진했기에 가능했다. 미드필드의 배육문, 박세호와 윙포워드인 찰튼, 스티브는 빠르게 적진을 침투하는 능력을 갖췄다. 원톱인 하태균도 검증된 간판 공격수였다. 박태하감독은 이들 선수들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전술을 만들었고 조금씩 재미를 보고있다. 최대한 수비를 두텁게 하고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섞어 사용하며 상대를 차단한 다음 재빨리 역습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박태하감독은 “원정경기였고 우리는 수비에서 역습으로 나가는것이 빨라 그것에 중점을 뒀다.”고 두껨 경기의 소감을 밝혔다. 물론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다. 측면 수비수는 뒤공간을 쉽게 내줬고 선수들간에 호흡도 완벽하지 않았다. 공수조율과 경기흐름을 짚어줄 기량이 출중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부족을 실감하게 되고 얇은 선수층도 또 다른 약점이 될수 있었다. 박태하감독은 올시즌 상대에 맞게 다양한 전술을 구상해 매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두 경기를 치른 만큼 완성도를 더 높인다면 올시즌 갑급리그 판도를 흔들수도 있다는 좋은 생각을 가져본다. 글·사진 : 연변일보 리영수 리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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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31
  • [연변FC 특집]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한국용병 박순배 - 제비마냥 날랜 반도사나이 지난 5월 18일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냈던 오동팀의 한국적 박순배 선수가 갑A리그의 휴전기간에 잠간 사라졌다가 다시 연변오동팀 선수로 중국축구갑A시즌 제2단계의 경기에 재출전했다. 날랜 제비마냥 잔디밭 전체를 주름잡으며 수시로 상대방의 문전을 위협하는 반도사나이ㅡ 축구팬들은 그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환성을 올렸다. 올해 30살에 나는 박순배 선수가 축구생애를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시절, 그 때로부터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오면서 줄곧 학교축구팀 선수로 활약했고 한국에서도 인정해주는 체육최고학부였던 인천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후 부터는 할레루야, 포항스릴로스 등 실업팀과 프로팀들을 드나들면서 맹활약했었다. 그 기간 그가 넣은 골만 해도 50개가 실히 된다고 한다. 이는 중앙공격수도 아닌 미드필더 선수라고 할 때 결코 적은 골개수라 할 수 없다. 박순배 선수는 오래 전부터 중국갑A무대에 조선족 위주의 축구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오고 보니 참말 기쁘다면서 같은 민족이어서 언어와 음식습관이 통하고 선수들이 친 형제처럼 뜨겁게 대해 주기에 제 집에 온듯한 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연변팀에서 원하기만 하면 다른 팀에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연변팀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또 중국 갑A리그에 뛰어든 한국적 선수들 가운데서 자기보다 우수한 선수들이 있을테지만 경기장에서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붙어 연변팀의 한몫을 맡기도 하고 자아가치도 실현할 잡도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와서 볼을 차는 기분이 어떻느냐”는 물음에 박순배 선수는 관중이 많고 축구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으며 특히 경기장 잔디가 볼차기에 제격인 반면 축구계의 부정기풍, 심판원의 “검은 호르래기”에 대해서는 참 어처구니가 없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팀 전체가 똘똘 뭉쳐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를 치른다면 강팀이 아니라 강팀의 할배가 와도 무섭지 않다고 했다. 박순배 선수는 이미 결혼하여 2살짜리 아들까지 있는 몸이다. 얼마전 연변축구구락부에서 아파트를 내주긴 했지만 여기에서 살림을 차릴 타산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8월경에 아내가 와서 맘에 든다고 해야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볼을 찰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직 체능이 별문제이기에 이제 5년은 문제없을 거라며 박순배 선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또한 그는 그 것을 위해 술담배를 절제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1998년 6월 27일 동료들이 보는 인기스타 – 고종훈 연변오동팀 하프진의 고종훈 선수라면 연변은 물론 전국의 축구팬들이 다 알아주는 유명한 인기스타이다. 전반 경기장의 공방절주에 따라 미드필더선을 통제하면서 수시로 오동팀 공격수한테 슈팅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팀의 노장 ㅡ 고종훈, 허나 선수를 떠나서 경기장밖의 인간 고종훈을 아는 이는 별반 없을 것이다 일전 그것을 파헤쳐 보려고 고종훈 선수의 몇몇 친구들을 만나보았다. 1965년 고씨가문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 고종훈은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늘 어른들의 총애를 받군 했다. 특히 축구에 장끼가 있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축구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고종훈이 축구생애를 시작한 것은 소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것을 계기로 늘 학교팀의 미드필더 선수로 활약한 그가 볼을 어떻게 찼는가 하는 것은 두말이면 잔소리었다. 하지만 그는 볼을 잘 찬다 하여 뽐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늘 친구들과 함께 강변에 나가 고기잡이도 하고 씨름도 하군 하면서 어울리군 했다. 씨름을 할라치면 당시 고종훈의 상대가 없을만큼 그는 씨름에도 장끼가 있었다. 그만큼 고종훈은 어릴 적부터 덩치와 기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기운이 세다고 하여 약자를 업신여긴 적이 없었다. 아니 늘 약자들을 돌봐줬다고 해야 더 적절했다. 한번은 서로 한동네에서 사는 한 애가 힘을 턱대고 늘 다른 애의 먹을 것이나 연필같은 것을 빼앗아내는 것을 고종훈이 발견하게 되였다. 이에 고종훈은 그 애를 찾아가서 “너 힘으면 어디 날 한번 건드려봐라. 작은 애들과 으시대는 것도 남자냐?!” 하고 꾸짖으면서 그 애더러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했다. 용정1중을 졸업한 고종훈이 길림성청년팀에 선발돼 연길에 와서 볼을 차기 시작한 것은 1982년부터였다. 그 때로부터 전업선수로 된 고종훈은 그토록 고강도 훈련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일요일마다 집으로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집으로 갈 적마다 부모한테 효도하지 못해 죄송스럽다면서 바깥일이고 부엌일이고 닥치는대로 했다. 그리고 달마다 얼마 안되는 노임을 잘라서는 가난한 부모님한테 섬기군 했다. 어릴 적부터 술담배와 담을 쌓은 고종훈은 워낙 식당같은 곳으로 다니기 썩 달가와하지 않는 성미었다. 또한 웬간하면 친구들이 식당놀이를 하자고 손을 잡아 끌어도 가볍게 거절하군 했다. 허나 일단 식당으로 가기만 하면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줄뿐만 아니라 늘 자기가 값을 치르군 했다. 고종훈은 자기를 배워준 스승한테도 등한시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1985년 그는 처음으로 국가청년팀 일원으로 출국하여 세계청년축구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때 국가청년팀은 8강안에 드는 훌륭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는데 고종훈이 직접 넣은 골을 없었지만 그가 패스하여 고홍파가 넣은 골이 많았음) 돌아온 후 고종훈은 담임교원들을 모셔 오고는 자기의 오늘이 있게 된데는 전적으로 선생님들의 덕분이라면서 술을 따라 올렸으며 그 후에도 선생님들의 곤란에 대해서는 될수록 해결해드리느라 무척 애를 써주군 했다. 친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었다. 1991년 한친구가 가옥사용증 수속을 할 때 돈이 없어 안달아하자 선뜻이 돈을 대주었고 1993년에도 한 친구가 상점을 차릴 때 자금이 딸려하자 선뜻이 자기의 돈을 선대해 주었다. 그것은 고종훈한테 그 무슨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 때 그의 봉급이래야 고장 수백위안일 따름이었다. 또한 고종훈은 매번 홈장경기 때마다 돈으로 수십장의 입장권을 사군 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1년에 10차씩 그러노라면 신경질도 날 일이지만 그는 항상 “나를 믿고 그러는데 고마운 일이지”하며 시무룩히 웃어보이군 했다. 1994년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고종훈은 지금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교원인 아내 김향화씨와 아들 고준익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는 양측 부모한테 효도하는 한편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 매번 원정경기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는 아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한편 꼭꼭 거리쇼핑이거나 가족외식을 마련하는 것으로 그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군 했다. 이에 아내 김향화씨 역시 남편의 사랑에 무척 감격해하면서 남편이 훈련할 때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달하군 했다. 고종훈은 축구생애가 비교적 긴 사나이다. 그 비결이 첫째, 술담배와 인연이 없는 것이고 둘째, 가리는 음식이 없으며 셋째, 몸관리를 잘한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는 몸관리에 대해 대단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하여 고종훈이 경기에서 상해 치료받은 적은 있어도 병으로 아파 치료받은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고종훈 강하고도 무뚝뚝한 사나이 ㅡ 허나 그 속에는 인정과 후더움이 흐르는 인간이다. 하다면 우리의 매개 선수들은 인간 고종훈한테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까? 권영동 등 구술 《스포츠》 1998년 8월 10일 황동춘- 안해와 함께 려행을 하던 나날 지난 10월 26일, 올해의 갑A보존을 실현하고 비행기에 앉아 심양으로부터 대본영인 연길로 돌아오는 오동팀 선수들은 저마다 솟구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 휴전기간에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 효도하겠다는 선수, 해마다 기다림에 지친 아내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선수 … 순간 기창에 기대어 창밖을 주시하던 황동춘 선수도 무등 가슴이 설레이었다. 아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자신이 아내한테 너무 등한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연애시절에 다정하게 유보도 산책을 한 적도 한번 없고 결혼 후에도 매달 노임이나 갔다 주면서 집을 여관처럼 여겼던 자신, 그는 점점 머리가 뜨거워났다.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아기도 못갖게 하구. 미란이 너무 너무 미안해. 이번 휴전기간에 꼭 잘해줄테야) …… 집으로 돌아온 황동춘은 널직한 집안을 혼자 지키는 아내를 정색해서 바라봤다. 이에 의아쩍어 어쩔바를 모르는 아내 안미란양. “당신 왜 이러죠? 혹시 기분잡치는 일이라도…” “아니,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그래. 이번 기회에 우리 한번 남방여행이나 좀 해볼까? 려행코스는 광주 ㅡ 주해 ㅡ 심천 ㅡ 대련 이렇게 정하고 말이야.” “어머나, 당신 그게 정말인가요? 아이참, 좋아라. 해가 서쪽에 뜨겠네요.” 안미란양은 기쁜 나머지 어린애처럼 퐁퐁 뜀질까지 했다. 11월 1일, 연길에서 비행기에 오른 황동춘/안미란 부부는 다시 북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광주로 향했다. 한없이 맑고 푸른 하늘, 비행기밑으로 밀려 오고 밀려 가는 솜뭉치같은 구름떼들… “여보, 저 구름을 좀 봐요. 마치 솜을 한벌 펴놓은 것 같군요. 뛰어내려도 상할 것 같지 않군요.” “허허허… 그럼 한번 뛰어 내려 보시지.” “나쁜 사람, 왜 저만 뛰어 내리겠어요. 뛰어 내리면 함께 목을 끌어안고 뛰어 내려야죠.” 광주까지의 두시간 동안 안미란양은 쉴사이 없이 재잘거렸다. 광주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이곳 북방과는 딴 모습이었다. 길가의 화원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난 그대로였고 겨울을 모르는 사람들은 울긋 불긋한 여름옷 차림으로 상가와 공원으로 드나들었다. 아빠엄마의 손목에 끌리어 아장아장 걸어가는 애들을 볼 때마다 각별히 귀여워하는 안미란양은 광주에 가서도 마찬가지었다. “여보, 저 애를 봐요. 얼마나 기특해요.” “애가 그렇게 부러워? 우리도 아들을 낳아 나같은 축구선수로 키워볼까?” “쳇, 또 저처럼 색시가 생과부노릇을 하라구요?!” 하지만 그녀의 말속에는 조금도 악의가 담겨 있지를 아니했다. 이렇게 그들 부부는 광주, 주애와 심천에서 수많은 행복의 발자취를 남겼다. 주강의 유람선위에서, 주해의 원명원 모형 건물앞에서 심선의 해수욕장과 민속촌휴가지에서… 11월 8일, 그들 부부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대련으로 왔다. 대련의 발해명주호텔에서 투숙등록을 할 때 황동춘의 신분증을 보던 호텔 카운터의 아가씨는 황동춘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연변오동팀이 황동춘선수가 아닌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요? 황동춘, 얘들아, 이 분이 바로 연변에서 온 축구스타 황동춘씨란다.” 그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몰려드는 호텔홀의 소남소녀들, 싸인해 달라는 이들과 기념사진을 남기자는 이들로 하여 황동춘은 한동안 땀이 날 지경이었다. 한편 축구선수로 된 긍지로 하여 가슴이 뿌듯한 순간이기도 했다. 대련에서 그들 부부는 또 연변팀의 대련적 선수인 오영군과 그의 부친도 만났다. “동춘형, 이전엔 대련에 왔어도 경기 때문에 언제 한번 시름놓고 놀아본 적이 있었소? 이번에 잘됐소. 이 아우가 가이드로 나설테니 우리 한번 통쾌하게 놀아 보기오.” “영군동생, 그 성의가 고맙네만 이제 휴가일도 며칠 남지 않았소. 일찍 집으로 가야 하겠으니 데 폐를 끼치고 싶지 않소.” 이 말에 안미란양도 한마도 덧붙였다. “그래요. 동춘씬 아직 부모님도 찾아뵙지 못했어요.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다리겠어요. 이해하여 주세요.” “그래그래, 사람이란 아무리 잘 되어도 부모를 잊어서는 안되지” 머리를 끄덕이며 하시는 오영군 부친의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오영군의 부친은 손수 차를 몰고 그들 부부를 공항까지 실어다 주었다. 황동춘/안미란양을 실은 보잉 737비행기는 대련공항에서 치솟더니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10여일간의 즐거운 여행, 허나 그 것으로 아내 안미란양에 대한 황동춘의 사랑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판부족이었다. 이제 언제면 이들 부부한테 또 이런 기회가 차례질까? 그것은 아마 황동춘의 2세가 태어난 후에나 봐야 할 일일 것 같다. 《스포츠》 1998년 11월 16일 오동팀 신진 김청 -고향사람들의 축복에 목메여 지난 10월 28일 오후 어슬녘의 화룡시 동성진 홍성촌 제5촌민소조 마을이다. 마가을의 땅거미는 한해 농사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마을에 조용히 찾아들었다. 집집의 굴뚝들에서 저녁짓는 연기가 몰몰 피어 올랐고 하룻일에 지친 남정들은 밥상에 마주 앉아 반주술을 기울리고 있었다. 바로 이 때 마을의 조무래기들이 집집들을 누비며 떠들썩해댔다. “김청형이 돌아 왔어요.” “오동팀에서 볼을 차던 김청형이 돌아 왔어요.” …… 뭐, 김청이 돌아왔다구?! 사람들은 수저를 들다말고 김청네 집으로 찾아들었다. 김청의 형이며 촌민소조장 김호를 첫 사람으로 김청의 친구들과 농민 축구팬들 그리고 동네노인들도 몇분 잘 되었다. “얘, 김청아, 온다고 미리 알렸더면 우리가 닭이라도 잡아놓고 기다렸을게 아니야!” “이것 봐라, 우리 촌에 영웅이 나타났는데 어찌 째째하게 닭만 잡겠어? 돼지나 소라도 잡아야지 안그래?!” “그래그래 그렇지, 몇년 전에 보성촌의 김광주가 소문놓더니 지금은 우리 홍성촌의 김청이 또 소문을 놓다니. 우리 동성진은 축구인재가 나오는 고장인 모양이구려.” “글쌔 오동팀에서 경기에 제일 많이 참가한 선수가 이광호이구 그 다음엔 너 김청이더구나. 장하다 장해!” 이렇게 김청을 붙안고 반갑다고 찧고 밯고하던 사람들은 술상에 마주 앉아 술이 한순배 돌아가자 이번에는 축구화제로 넘어갔다. 오동팀이 입은 피해로부터 시작하여 홈장에서 북경국안팀을 2 : 0으로 이긴 것이 제일 통쾌하더라는둥, 오동팀은 왜 강팀하고는 약하지 않고 약팀하고는 강하지 못하냐 하는 질문공세, 그리고 고훈감독, 고종훈, 블라이마, 천학봉… 사람들은 궁금해하는 점이 많기도 했다. 또한 촌민들의 축구관람수준도 이전의 정도가 아니었다. 대련만달팀에 대하여, 한국적감독 차범근과 이장수에 관하여 사람들은 자기나름대로 평가를 했다. “참, 8.1팀은 중국에서 유일한 해방군팀인데 이번에 강급하게 되니 진짜 아쉽더라. 좀 봐주지를 않구 쯧쯧…” “뭐 아쉬울 것 있어? 축구가 발전하자면 그렇게 돼야 해. 자꾸 양보볼, 인정볼을 차니까 ‘검은 호르래기’가 나타나구, 축구팬들은 의견이 많을게 아니야. 그리고 대련, 상해, 북경이 해마다 1, 2, 3등을 하는 것도 어딘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있다구.” …… 낮에 농사일에 지쳤으련만 밤을 새워가며 축구화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그들을 어찌 한낱 땅파는 농민으로만 보랴. 또한 김청이 짬을 타서 잠간씩 집에 다녀올 때에도 밭의 일손을 놓고 달려와 손을 잡아주던 그토록 인정많던 고향의 촌민들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그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김청은 어슬녁에 마을로 들어섰건만… 김청은 눈시울이 축축해나고 가슴이 뭉클했다. 고향사람들의 인정, 고향사람들의 기대ㅡ 그 시각 김청은 오직 연변팀을 위해 축구의 정상에 톺아오르는 길만이 고향사람들의 인정과 기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다지고 또 다졌다. 《스포츠》 1998년 11월 16일 왕광위는 장담한다- 오동팀미래의 장벽 될터 연변오동팀 주전선수들가운데서 가장 신체소질이 좋은 신진선수를 꼽는다면 아마 수비진의 왕광위란 한족선수를 꼽아야 할 것이다. 신장 1.79미터, 체중 74킬로그람 거기에 용수철에 튕길듯한 순발력과 질풍같이 내달리는 플레이 그래서 고훈 감독도 그렇고 수많은 축구팬들도 그렇고 다들 그를 미래 연변팀수비진의 가장 이상적인 적임자로 꼽고 있다. 1978년 왕광위 선수는 길림성 장춘시에서 출생, 어릴 때 그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축구가 아니라 의사나 공정사같은 직업이었다. 그만큼 왕광위는 문화과 학습성적이 뛰어나 늘 전 교 우승으로 비범한 학습재주를 과시했다. 헌데 녀석이 이웃집 조선족 아이와 놀면서부터 축구에 재미를 붙였고 또 학교축구팀 선수로까지 선발될 줄이야. 아버지는 자식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무등 애를 썼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학교 체육교원인 이종기(조선족)선생이 찾아와서 왕광위가 축구스타로서의 싹수가 보이니 부모들이 그의 뒤를 잘 밀어 달라고까지 청탁하자 아버지로서도 더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종기 선생의 예측은 틀림이 없었다. 왕광위는 나이 14살이었던 초중 2학년 때 과연 파격적으로 직업팀인 북경부대 축구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북경부대 축구팀에서 그는 또 염승필(조선족) 감독의 눈에 들었다. 염승필 감독은 장춘에서 온 이 애숭이선수를 엄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어 그가 축구스타로 되는 길에서의 훌륭한 토대를 닦아 주었다. 그러던 왕광위 선수가 염승필감독의 소개로 연변축구팀으로 오게 된 것은 1995년초, 나이가 어린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한동안 잔디밭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가 김청, 천학봉 등 선수들과 함께 1팀 주전선수로 부상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고훈 감독은 원래 공격선의 선수였던 왕광위를 자주 수비선에 배치, 그것은 황경량 선수의 컨디션이 내려간 원인도 있겠지만 수비선수로서의 왕광위의 싹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가 왕광위 선수의 진보는 매우 빨랐다. 그는 수비선의 황경량 선수를 더없이 부러워하고 탄복하고 존경하며 따르는 편이었다. 그는 황경량 선수의 경험과 박투정신을 자신의 속도, 신체소질과 연령의 우세에 맞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출중한 수비수로 자리를 굳힐 야심을 품고 밤에도 녹화테이프를 풀어놓고 황경량 선수의 대인마크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왕광위 선수는 아직 젊다. 잔디밭에서 올린 혁혁한 전과도 없고 경험과 의식 등 면에서도 아직은 부족점이 많다. 하지만 그는 전국에서도 대항력과 응집력이 제일 강하다는 연변팀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어젠가는 김광주처럼, 황경량처럼 전국에 이름을 날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잠담한다. 《스포츠》 1998년 9월 14일 “시련은 있어도 동요는 없다” - 연변축구팀 중추 동량 현춘호, 한송봉 선수 성명: 현춘호 1975년 10월 1일 화룡시 용문 태생 키 : 1.77미터 선수번호 : 6번 이 글에서의 주인공인 현춘호와 한송봉은 모두 한시기 시련을 겪던 선수들이다. 그 중 현춘호는 절강녹성구단에 있을 때 “가짜볼”혐의를 받아 참전권리를 박탈당하는 치욕으로 한시기 잔디밭을 떠났던 선수였다. 타향땅 설음이란 바로 현춘호 자신이 잘 알고 있던 바이다. “축구를 떠났던 나날의 생활이란 말 그대로 괴롭고 지긋지긋하던 하루하루였다. 안정하고 생활할 취미를 찾지 못했다. 장사를 해본다고 했으나 뜻대로 안됐고 술도 많이 마시었다. 아내를 괴롭히기도 했다. 다행히도 올들어 고훈 감독이 손잡아 줬기에 고맙기 그지없다. 나는 고향정이 뭔지 잘 아는 사람이다. 이제 선수생애가 몇해나 되겠는지 연변축구를 위해서 모든 힘을 바치고 싶다.” 올들어 현춘호는 세기팀의 미드필더 조직자로 활약했다. 그는 이전의 고종훈처럼 전반 경기의 공방절주를 조절하는 작용을 했다. 그한테 가장 인상깊은 경기라면 남북 8강전에서의 대 운남여강팀전이었다. 그 때 그는 키가 큰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효과적으로 공방절주를 통제, 특히 제2회합전에서는 경기초반에 상대방의 공세를 기본상 미드필더선에서 견제했으며 고훈 감독의 진공신호가 오르자 미드필더선을 중심으로 전반 공격을 조직하여 팀이 다득점을 함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새해엔 갑급팀들과 맞전을 하게 됐으니 유리한 점도 있고 불리한 점도 있다. 유리한 점이라면 내가 갑급행렬의 많은 선수들의 특점과 허점을 알고 있는 것이고 불리한 점이라면 필경 갑급권인만큼 을급팀과는 실력상 비교할 수가 없이 강하다는 점이다. 대문에 지금부터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훈련에 땀동이를 쏟으련다. 갑급리그에서 발을 잘 붙이는데는 나의 미드필더 중추역할도 중요하다고 할 때 슬며시 어깨의 짐이 무거워난다.” 이름 : 한송붕 1982년 5월 28일 생 키 : 1.77미터 체중 : 65킬로그람 선수번호 : 8번 이 글의 다른 한 주인공인 한송봉 선수 역시 시련이 있기는 마찬가지었다. 우선 그는 부모가 다 정리실업을 당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렵게 축구선수로 커온터였다. 부모가 힘들게 번 돈으로 축구를 전공하던 나날, 남들은 용돈 1000위안씩 갖고 전지훈련을 떠났지만 그는 단돈 100위안을 갖고 근 두달씩 객지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의지를 더욱 굳세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웬간한 시련은 그한테 동요로 될 수가 없었다. 지난해 연변팀이 갑급진출에 실패했을 때 팀의 부분적 주력들은 이적을 신청했으나 그만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연변축구가 언젠가는 꼭 갑급진출에 성공한다고 믿었으며 자기 자신 역시 돈보다는 우선 연변축구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느꼈던 터였다. “팀의 주력이긴 했지만 나한테도 부족점이 많았다. 속도가 빠르지 못하고 몸놀림도 영활하지 못했다. 올들어 나의 특장을 발굴하여 부족점을 미봉하리라 맘먹었다. 그래서 고훈 감독의 지도하에 중거리슈팅에 품을 많이 넣었는데 그것이 이상적으로 잘됐다.” 한송봉은 머리로 볼을 차는 선수였다. 그는 자기가 중거리슈팅에 능하다고 해서 무작정 중거리슈팅을 날리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관건경기인 남북 8강전의 대 운남여강팀과의 1회전 때 그는 자기가 날리는 프리킥을 그대로 문대에 향해 슈팅한 것이 아니라 조금 뒤에 처져있는 김청한테 살짝 패스해줬다. 자기의 앞에 여강팀 선수들이 울바자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김청 역시 그의 생각과 같았고 눈치도 빨랐다. 그가 넘겨준 공을 김청이 슈팅을 날리는 순간 ㅡ 공은 상대방 문대안에 들어가 그대로 박혔다. 상대방이 거둬낼 수 없는 결정골이었고 2회전 승리를 위해서도 유리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지금 한송봉선수는 명년도 갑급전을 위한 훈련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갑급팀 경기에 들어선 우리가 너무나도 경험이 없다. 단지 실력이 한차원 위이고 외적선수까지 참전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이런한 상황에서 현춘호 선수가 본보기이다. 그한테 갑급경기의 경험이 많으니 말이다. 그 밖에 그는 나이가 많지만 젊은 선수들에 비해 더욱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미드필더 통제를 잘하고 골도 잘 넣는다. 패스가 정확하고 실수가 적다. 연변팀에 있어서 현춘호 선수의 존재는 너무나도 행운이다. 어린 선수들한테 현춘호같은 선수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기자가 명년에도 계속 주장을 맡을 수 있는가고 물었을 때 그는 주장을 맡든 맡지 않든간에 주력으로서 최선을 다 하련다고 하면서 현춘호, 김청, 천학봉과 정림국 등 선수들은 주장이 아니지만 주장 이상으로 책임감이 높은 팀의 공신들이라고 피로했다. 가정상황을 보면 한송봉은 아버지 한창훈씨와 어머니 태경애씨의 아들로서 아래로 여동생 한명이 있으며 과외취미로는 음악감상과 독서이고 성격은 비교적 침착한 편이다. 《스포츠》 2004년 12월 13일 (다음기 계속) 김철균 기자
    • 스포츠
    2015-03-25
  • [연변FC] 상대방 심리 파악한 적절한 기전술 운영
    ■ 김철균 3월 22일, 하북성 진황도에서 있은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 2 라운드에서 연변장백산FC팀(이하 연변FC팀)은 2 : 2 하북화하와 무승부로 손을 잡았다. 경기는 초반 상대방의 거의 미칠듯한 파상식 공격과 연변팀의 버티기, 후반초반 연변팀의 주도권 장악 및 선제골 성공…이어 쌍방의 주도권 쟁탈전과 동점골을 위한 상대방의 거센 반격 그리고 마지막 경기종료를 앞두고 있은 “사활”을 건 승부가르기 등으로 흐른듯 싶다. 경기전야 우리는 하북화하팀에 대한 요해가 깊지 못하였다. 제1라운드 홈구장에서 상대방이 “학생군단”인 북경이공한테 0 : 1로 패하자 제 2 라운드에 들어 연변팀이 하북화하를 가볍게 전승할 수도 있겠다는 소홀한 전망도 하였었다. 하지만 상상 외로 하북화하팀은 강했다. 특히 세르비아적 용병 밀리야스와 폴란드적 용병 라도비치 및 노르웨이적 용병 라쟈프로 구축된 스트라이커 라인이 강했다. 경기초반 상대방은 2~3차의 슈팅과 4~5차에 달하는 코너킥 기회를 만들면서 연속 밀고 들어왔으며 연변팀이 경기 개시 11분이 되어서야 겨우 첫 슈팅을 날릴 수 있을 정도였다. 제1라운드에서의 석패를 반드시 설욕하겠다는 각오가 분명했다. 반면에 상대방의 공격은 강했지만 쉽사리 골이 터지지 않았다. 골운이 따르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연변팀의 협력수비 및 육탄수비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하다면 이 점이 박태하 감독이 노린 기전술이 아닌가 싶어진다. - 상대방은 강하지만 조급증이 있을 것이다. 경기초반 미친듯이 날뛰면서 공격을 강행할 것이다. 이 때는 버티는 것이다. 버티노라면 상대방은 조급증으로 허점이 생길 것인바 이 허점을 노려 역습을 펼치면서 득점을 노린다. - 후반들어 상대방의 체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내 방식대로의 공격을 펼친다. 상대방 후방에 공을 수송해 찰튼의 역할 충분히 활용해 득점한다. … 이러한 기전술 구사면에서 박태하 감독은 상대방의 안디치 감독에 비해 한발 앞섰다는 분석이다. 적어도 상대방 공격라인이 강하고, 거기에 원정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태하 감독의 전술방안이 맞아 떨어졌다는 생각이다. 이를 두고 소극적인 실리축구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란 냉혹한 결과를 추구하는 게임인만큼, 그것도 연변팬들이 많이 모이는 홈구장이 아니고 원정경기인만큼 비판보다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아직 연변팀은 박태하 감독의 축구사상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했고 내외적 선수들 사이의 “축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 연변 홈구장 경기가 펼쳐질 때면 박태하 감독의 기전술 운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 때면 홈구장이어서 천시·지리·인화 등 우세가 있는데다 박태하 감독의 축구사상도 어느 정도 매 선수들의 몸에 밸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 가서 박태하 감독 역시 화끈한 공격축구로 연변팬들에게 홈장 첫승을 선물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한편 이번 제 2 라운드의 경기성적을 보면 2개의 경기구(북경, 대련)에서만 홈팀이 이기고 원정팀이 이긴 경기구가 5개(장사, 무한, 심천, 남창, 청도 황해홈장)었으며 빅은 경기구(진황도)가 1개였다. 우연하게 원정팀이 이긴 경기구가 많은 사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중국축구가 “공평경쟁의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는 것에 연결시키고 싶다. 그리고 중국축구도 그 자아발전을 위해서는 조만간에 공평경쟁의 세계화의 흐름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제 2 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마지막 경기보충 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동점골을 만들어 낸 연변팀 선수들의 프로정신에 더욱 박수갈채를 보낸다. ※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 스포츠
    2015-03-23
  • 2015 중국축구 갑급리그 순위표(제2라운드)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2일, 원정 2연승에 도전한 연변장백산팀이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2라운드 하북화하와의 경기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경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골을 주고 받던 끝에 기적적으로 상대방과 2 : 2로 손잡았다
    • 스포츠
    2015-03-22
  • 나이 속인 中 축구선수 3개월 출전금지처벌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20일, 중국 축구협회에서는 전 국가청년팀 선수였던 황제이(黄洁)한테 3 개 월 간 그 어떤 축구경기에도 참전할 수 없다는 처벌결정을 내렸다. 중국 상하이 출신인 황제이 선수는 일찍 중국 U-17국가대표팀, U-19국가대표팀 및 국가올림픽팀의 선수였으며 상하이 연성, 상하이신화, 창춘아태, 상하이중방, 후베이중박 등 프로구단에서 뛰기도 했다. 최근 그는 나이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축구협회 처벌준칙 제65조에 의해 오는 5월 27일까지 3 개 월간 그 어떤 축구경기에도 참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 스포츠
    2015-03-22
  • 연변장백산FC 원정서 하북화하와 2 : 2 극적인 무승부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2일, 원정 2연승에 도전한 연변장백산팀이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2라운드 하북화하와의 경기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경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골을 주고 받던 끝에 기적적으로 상대방과 2 : 2로 손잡았다. 하북성 진황도시에서 있은 이번 경기에서 연변팀은 초반에 상대한테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었다. 제1라운드에서 북경이공한테 0 : 1로 홈장패전을 기록한 하북화하팀은 더이상 홈장패전은 보이어 줄 수 없다는 자세로 경기초반부터 거세게 밀고들어 왔다. 상대방의 강한 공세에 연변팀은 경기초반 3분내 연속 두번이나 상대한테 슈팅을 허락했으나 운좋게 실점을 피했으며 연속 몇차례나 되는 상대의 코너킥에도 역시 의악스럽게 크로스바(球门)을 지켜냈다. 일방적으로 밀리던 연변팀은 경기 11분 경에야 겨우 첫 슈팅을 날리었으며 전반전 내내 우왕좌왕하는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진세를 바꾸고 수비로부터 공격에로 전환, 공을 상대방 후방에 수송하는 기전술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연변팀의 공방조직에는 여전히 브라질적 용병 찰튼 선수가 나섰다. 후반 13분경 연변팀은 한차례의 유효공격을 조직, 후방에서 날아온 공을 한국용병 하태균이 잡아 슈팅했고 상대방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낸 공을 9번 스티브가 달려 들어가며 차넣은 것이 보기 좋게 그물에 걸렸다. 그 뒤 후반 23분경, 교체투입된 연변팀의 7번 고만국이 개인돌파에 성공했으나 최후의 공처리에서 한발 늦은 탓에 연변팀은 추가골을 터뜨릴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냈다. 경기종료가 다가옴에 따라 상대방은 동점골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고 마침내 경기종료 3분을 앞두고 외적용병 라토비치가 동점골, 경기보충시간 3분경에는 밀아리스가 중거리포로 추가골을 터뜨리며 하북화하가 다 이기는듯 싶었다. 하지만 기적은 이 때에 나타났다. 경기종료 1분을 앞두고 연변팀의 18번 하태균 선수가 개인돌파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재차 경기결과를 바꾸어놓았다. 중국축구 갑급리그는 오는 29일 경기가 없다가 오는 4월 4일 재개, 연변팀은 원정에서 귀주지성과 격돌하게 된다.
    • 스포츠
    2015-03-22
  • [연변FC] 첫 경기 승전이 담고 있는 주객관 요소 A·B·B…
    ■ 김철균 연변 장백산팀이 올시즌 첫 경기, 그것도 강서연성과의 원정에서 승리했다. 2005년 연변 프로축구가 갑급리그권에 합류해서 10년만에 생긴 일로 그야말로 이정비로 될만한 첫 경기 승전이다. 비록 강서연성이 을급에서 진급한 팀이고 또 1 : 0이란 미약한 승전이지만 첫 경기의 승리로, 그것에 내포된 함량이 여러 가지라는 분석이다. 연변팀의 승전서막 중국축구 공평경쟁의 신호? 우선 중국축구가 “공평일로(公平一路) ”에 들어선 것 같아 기쁘다. 그제날 연변축구는 늘 심판요소의 피해를 당했다. 이는 경쟁력이 치열한 프로축구가 더욱 그랬고 원정에서는 특히 그랬다. 중국축구는 여직껏 많은 객관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 중 심판요소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때가 많았다. 아직은 뭐 어떻다고 할 화제는 못되겠지만 최근 “중국축구개혁 총체방안”이 출범하면서 감각상 중국축구가 공평경쟁의 기초상 발전하는 객관환경 토대가 다져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어쩐지 이와 더불어 연변축구의 전망도 한결 밝겠다는 기대감으로 흐뭇해진다. 지난해 연변축구는 심판편파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다. 경기에서의 몸싸움중 상대방이 넘어지기만 해도 연변팀 선수의 반칙으로 옐로카드 혹은 례드카드를 받아야 했고 지어는 연변팀 넣은 골도 무효로 판정(제1라운드)될 때가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제2라운드, 제3라운드를 경기하면서 내내 팀정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돌출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26일 갑급리그 제16라운드 대 북경팔희전 홈경기에서는 후반 38분경, 팔희팀의 10번 펠리페가 연변팀의 5번 진효선수를 팔굽으로 가격하여 쓰러뜨리고도 진공을 계속하였고 심판은 경기를 휘슬을 불지 않았으며 결국 북경팔희는 펠리페의 슈팅으로 득점하여 축구팬들의 강한 불만을 자아냈다. 그리고 연변팀은 특히 북경팔희와의 경기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 크나큰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지난해 연변팀은 홈장에서 연속 3차례나 심판의 피해를 입었다. … 올해의 갑급리그는 그런 심판휘슬이 경기승패의 결정요소로 되는 현상이 없으면 좋겠고 이제 몇 경기를 더 지켜 보아야 알겠지만 첫 경기에서는 그래도 큰 심판피해가 없는 것으로 보이어 다소 선수들의 심리안정이 될듯 싶다. 첫 경기의 승전, 연승행진의 촉매제? 첫경기의 승전은 연승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제 연변팀은 원정에서 하북화하와 제2라운드 경기를, 귀주지성과 제3라운드 경기를 펼친다. 필자가 인정하건대 하북화하와 귀주지성의 실력을 분석해 보면 두 상대팀한테 그렇다 할 “령단묘약”이 없는 이상 올 들어 갑급권 제1집단군내로 들어갈만한 실력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하다면 연변팀이 승전여세를 빌어 이 2개 팀도 제압할 수 있다는 십중팔구의 판단이며 원정 3경기에서 적어도 5점 내지 6점 정도는 따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제3라운드까지의 원정연전이 끝난 뒤 연변팀은 대본영인 연변홈구장에서 심천우항과 맞붙게 된다. 심수우항은 원래 그 실력이 갑급권 중상위에 입지를 굳힐만한 구단인 것은 분명하나 지난해 노임체불 등으로 구단 상하가 크게 흔들린 적이 있다. 하긴 심천우항의 실력으로 보아 연변팀의 고전으로 예상되기는 하나 만약 생각처럼 초반의 원정연승만 이룩된다면 거기에 홈구장이라는 우세까지 있기에 첫 홈구장 승전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 뒤 연변팀은 원정에서 북경이공 및 신강천산 등 팀과 2경기를 펼치다가 다시 홈구장으로 돌아와 슈퍼리그 강등팀이며 갑급에서는 역시 강호라고 불릴 수 있는 하얼빈의등과의 격전을 펼치게 된다. 올시즌 들어 연변팀의 순항을 불러오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시즌 초반 원정이 많고 홈구장이 적으나 원정에서의 대결팀들은 상대적으로 강팀이 아니며 이른바 강팀으로 보이는 심천우항과 하얼빈의등과는 홈구장에서 맞붙는다. 이는 지난해 제5라운드까지 북경팔희, 석가장영창, 성도천성, 청도해우, 심천홍찬 등과 대결하던 것과는 달리 올해 초반의 상대팀과는 해볼만한 경기란 판단이 선다. 게다가 올해는 시즌초반의 경기일정이 원정이 5경기던 지난해보다 2경기가 적은 3경기로 잡혀 있어 이것도 유리한 환경중의 하나이다. “탈태환골”한 연변팀의 3선 라인 지난해 연변팀이 부진을 겪던 끝에 강등까지 초래한데는 여러 가지 객관 요소들이 많았지만 주관적 원인도 많았다. 이 중 가장 치명적인것이 실력문제였다. 즉 앞이 약했고 뒤가 강하지 못했으며 중원은 수수했다. 올해 연변팀은 여러 가지 노력을 한 결과 공격라인에 하태균, 스티브, 찰튼 등 기대감이 큰 선수들을 영입하였고 수비라인에서도 조명, 배육문 등을 복귀시켰다. 지난해와는 달리 “탈태환골”의 모습으로 첫 경기를 펼쳐본 결과 공격에서의 하태균과 스티브의 활약이 돋보이었고 중원에서는 찰튼의 공방조직 및 공수송이 아주 정확하고도 빈틈이 없었으며 조명을 비롯한 수비라인 또한 위치선정, 공백메꿈과 협력보완 등이 아주 이상적이어서 말 그대로 사상 최강의 3선 라인을 선보이었다. 하긴 1 : 0이란 작은 승리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박태하 감독이 언급하다싶이 수전(水战)이어서 선수들의 실력발휘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스티브었지만 10번 찰튼 선수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내내 경기장을 누비면서 돌파하고 침투하면서 공격을 조직하는가 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중앙선에서 차단하는 등 왕성한 체능과 발기술이 일품이었다. 꼭 마치 그제날의 고종훈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올해의 연변팀은 3선 라인에 교체선수들도 수두룩한 것으로 보여져 지난해처럼 “상병선수가 많아서”란 안타까운 소리가 적게 나올듯 싶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모두 앞구실을 할 것 같고 또한 신진들의 성숙도 빠르기 때문이다. 날카롭고도 잘 배합되는 공격라인ㅡ 공방통제가 리상적인 미드필더 라인ㅡ 고공통제와 육탄수비가 조화를 이루는 수비라인ㅡ 이는 올들어 “탈태환골”한 연변팀의 3선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자신심 수립과 자고자대는 다른 개념 지난해 연변프로축구는 뼈를 깎아 내고 피고름을 짜내는듯한 아픔을 겪었다. 연변팀한테 있어서 2014년 시즌의 교훈은 심각하다. 지난해 시즌전야 많은 축구팬들은 연변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알준한 감독진으로 무어졌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연변팀 실력은 기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창은 도끼등처럼 무디였고 허리께는 좌우로 흔들리었으며 방패는 아주 쉽게 구멍이 뚫리군 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반께 연속적인 홈장 6경기가 있었지만 땅에 떨어진 사기는 춰올릴 수가 없었다. 감독을 수차 교체하고 경기시간을 조절해 보았지만 피차일반이었다. 올해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겠지만 자고자대는 금물이다. 우리가 강해졌다면 남들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경기할 상대방의 실력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며 자체의 폐단에 대해서는 몽땅 장악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올들어 심판피해가 없으리라고는 아직 장담할 수가 없다. 오직 매 경기마다 빈틈없이 계획하여 참답게 치러야 한다. 자신심은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강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술상에서는 상대방을 고도로 중시해야 한다. 절대 상대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총적으로 자신심과 자고자대는 다른 개념으로서 이 양자를 절대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임
    • 스포츠
    2015-03-16
  • 2015 중국축구 갑급 순위 및 성적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지난해 중국축구 갑급리그에서 순위 꼴지로 강등했다 기사회생으로 갑급권에 복귀한 연변장백산축구팀(이하 연변팀)이 한국적 박태하 감독의 지휘하에 3월 14일, 2015 갑급리그 제1라운드 개막전에서 강서연성을 1 : 0으로 물리치며 올시즌 첫경기에서 순항으로 연변축구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2015 중국축구 갑급리그 순위표(제1라운드) 갑급성적표 (제1라운드) 하북화하 0 : 1 북경이공 호남상도 0 : 0 청도황해 강서연성 0 : 1 연변장백산 대련아르빈 4 : 0 신강천산 북경북공 2 : 0 천진송강 무한줘르 1 : 0 훅호트중우 청도중능 1 : 4 할빈의등 심천우항 1 : 1 귀주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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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5
  • [감독 브리핑] 박태하 감독 "선수들 노고에 감사 드린다"
    박태하(연변장백산팀 감독): 오늘 강서연성팀이나 우리 팀이나 시즌 첫 경기이고 원정경기인지라 부담있는 경기었으며 정서적으로 준비는 했지만 비때문에 양팀 다 어려운 경기었다. 사실 일주일전에 일기예보를 듣고 비가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비가 안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보대로 비가 와 굉장히 어렵게 되었다. 비가 오지 안으면 전술변화를 줄수 있지만 오늘같은 경우 전혀 패스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기에 최전방에 있는 빠르고 힘있는 선수를 배치하였다. 후방에서도 어려운 수비를 해준 선수들 노고에 감독으로서 감사드린다. 황암(강서연성팀 감독): 오늘 비때문에 양팀은 절반절반씩 우세를 점했다. 우리 팀은 을급리그에서 올라와 오늘 첫 갑급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하다. 공순전환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경험이나 기회를 잡는 면에서 연변팀보다 떨어졌다. 연변팀은 빠르고 키 큰 점을 이용했다. 우리는 상대방보다 못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팀 선수들은 정신면모를 나타냈다. 비록 경기에서 졌지만 우리 선수들이 노력했다. 이후 훈련에서 보다 노력해야만 갑급리그에서의 잔혹성을 알것 같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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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5
  • 연변장백산FC 아스널 브랜드 유니폼 착복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14일, 중국축구 갑급리그의 개막전은 강서연성과 연변장백산팀과의 경기었다. 이 날, 을급팀에서 진급한 강서연성팀과 대결하는 연변팀은 조금도 위축을 받지 않았다. 특히 이 날 연변팀이 착복한 유니폼은 “아스날(阿森纳)”이어서 더욱 기품이 있어 보이었다. 기실 연변 장백산팀은 잉글랜드의 아스날 회사와 아무런 인연도 없다. 이는 근근히 잉그랜드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 클럽이 인정하는 “아스날” 유니폼 브랜드로서 아스날 축구클럽의 인가를 받고 한국에서 생산한 유니폼으로서 이는 연변축구가 한국과 일정한 명맥이 통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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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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