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기고

실시간뉴스
  • [김정룡 칼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한국 이념논쟁
    ●김정룡(다가치 포럼 대표) 현시대 유명 정치학자로 손꼽히는 하버드대학교 샤무엘 헌탕턴 교수는 1996년 저서 『문명의 충돌』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2년 후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냉전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냉전 시대 인간은 대체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진영의 이념에 각각 속해 있었다. 냉전이 종말 된 미래사회에서는 이념이 무의미해졌고 따라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면서 다른 귀속처를 찾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 귀속처가 바로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라고 제시하였다. 그가 말한 귀속처는 새로운 문명이 아니라 과거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실제로 탈냉전 후 지구촌의 인간무리들은 민족문화, 전통문화, 종교문화에로 재편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전 해외 화교 화인들 중 고국을 못 마땅해하는 사람들도 개혁개방 이후 즉시 돌아서서 고국에 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아세아 최고 부자 리카싱(李佳成)이 투자에 나서자 주변에서 ‘사기당하면 어쩌냐?’고 말리자 그는 ‘사기당해도 고향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인데 사기라 생각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벌은 남다른 배포가 있는 법이다. 싱가포르 리콴유(李光曜) 전 총리는 본래 반공자였다가 개혁개방 이후 유교 전도사를 자칭하고 나서 중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이념을 탈피하여 민족문화에로 회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 주제가 공자였는데 이것은 전통문화에로의 회귀를 뜻한다. 1990년 초 동구권에서 있었던 코소보 인종청소 전쟁은 종교문화에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아무튼 세상은 헌팅턴 교수의 예언대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미 새로운 역사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구촌의 흐름을 역행하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반도이다.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남북 베트남도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문화로 굴러가고 있다. 오로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것은 남북한이다. 1990년 베이징아세아게임 때 한국관광객이 대량 백두산투어에 나섰다. 그때 한국여행사 에스코트 00사장이 한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참 세월이 놀랍게 변했어요. 우리가 중국 땅을 밟으면서 백두산 구경을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되었어요. 이 추세대로라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남북통일도 10년이면 되지 않겠어요!” 그 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북한을 방문하자 매체들이 ‘1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그 후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현재 남북통일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요원해지다못해 요즘은 아주 적대관계가 심각해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게 이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전에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시중에서는 모두 뜬금없는 발언이라고 하기도 하고 때아닌 이념타령이라고 공격하기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이 확실히 케케묵은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이게 무슨 시대인데 아직도 이념타령이라니?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홍범도 장군의 정체성을 갖고 논쟁 중이다. 양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1943년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에는 침략당한 약소국가들에서 나라마다 민족주의가 우선이지 이념과 사상이 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강대국들도 마찬가지로 이념을 떠나 미국과 소련이 협력하여 반파시스 전쟁에 돌입하였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 이념논쟁을 일으킬 사안이 아니다. 한국 정치는 할 일이 하도 없어서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문제는 왜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을 최대 이슈로 들고나왔는지? 맥락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 일부 진영에서는 아직도 빨갱이타령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종북좌파타령을 70년 동안 벌여오다가 요즘에는 종북좌파 타령이 질리기도 하고 그 실체도 주목을 받기가 조금 약발이 떨어져 친중좌파 공격으로 방향을 틀고 화살을 돌리고 열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에 한국 지인의 소개로 한국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톡방에 가입한 적이 있다. 카톡방은 흔히 그렇듯 좋은 정보도 나누고 서로 필요한 교류도 하고 인맥도 넓히고 등등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인간무리에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 취향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면 골머리가 아파난다. 어느 한 분은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하는 ‘윤비어천가’를 올렸는데 조선 창시자 이성계를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수령을 찬양하는 ‘어천가’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로 현직 대통령을 찬양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이렇게 신을 찬양하듯 하는 것을 처음 본다. 일각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이 극명하게 나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은 빨갱이고 북한 간첩이다. 나라를 북한에 팔아 먹는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무리 좌파 성향을 지닌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설마 나라를 팔아먹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상식을 벗어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면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친미를 확실하게 하면 다른 분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문재인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굳건하게 박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신을 찬양하듯 하는 행위는 필자와는 하도 상관없는 일이라 개의치 않고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일은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름 개구리를 산 채로 끓는 기름에 넣어 튀기다가 물을 넣고 끓여 먹는다. 한 분은 친중좌파들을 개구리 산 채로 튀겨먹고 끓여먹듯이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으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있다. “미친 아낙네의 악담보다 더 저질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기를 해 버렸다. 종북좌파 타령이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친중좌파 타령이든 모두 같은 이념타령이다. 이런 이념타령이 시중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념논쟁을 때가 아닌 것이라 하거나 뜬금없는 일이라는 지적은 헛발 짚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공산주의 빨갱이 타령이 심각한데 진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무엇을 대상을 공격하려면 그 대상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서 공격해야 마땅하나 한국에서 공산주의 빨갱이 공격은 실체를 모르는 막무내식이어서 안타깝다. tvn방송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강연프로그램이 있다. 몇 년 동안 출연을 가장 많이 했던 최진기 강사가 있었다. 그는 자칭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이다. 액면 그대로 믿기로 하고 그가 이해하고 있는 공산주의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르크스의 노동 분배 원칙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이다. 최진기 강사는 이 공산주의 핵심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아마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이 있고 그 돈을 자녀가 학비로 사용하는 케이스에서 힌트를 얻어 내놓은 이론일 것이다.” 이어서 그는 유명 스타 연예인 강동원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어떻게 수요에 의해 분배할 것인가?”고 희죽거리면서 공산주의를 형편없는 애들장난처럼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만약 공산주의가 최진기 강사의 말처럼 그렇듯 유치한 것이라면 어떻게 지구촌 반 되는 인간무리가 추종했겠는가? 능력에 따라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고도의 의식을 갖추면 타인의 능력과 비교하지 않고 또 타인의 노동기여도와 비교하지 않고 나의 능력껏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에 의해 분배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사회는 물질이 풍부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되어 불필요한 물질을 탐내지 않고 사치를 탐내지 않는 전제하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점은 물질이 풍하고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실천가능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뜻은 사상이 빨갛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필자의 부친은 평생 당지서를 맡았는데 사상이 붉다못해 둘째 아들이 휴학하는 해에 참외 밭을 대신해 보게하고는 아들이 생산대 참외를 먹었다고 하여 장부에 가을에 떼어내게 기입해 놓았다고 한다. 필자가 자랄 때 동네 어른들이 늘 저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의 부친은 진짜 빨갛다.’는 말을 반복했다. 최진기의 자칭 최고 강사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대한민국 최고 인문강사의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이 수준이라면 진짜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서강대 00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는 제도로서 실천은 실패했지만 그 이념과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이직도 케케묵은 이념논쟁에 빠져 있는 이 민족의 현실. 언제 가야 통일되고 하나가 되어 부질없는 다툼에서 벗어날 것인지? 민족의 운명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3-09-04
  • 일본 핵폐수 해양 방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는?
    ● 철 민(논설위원) 한·중·일 해양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던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처리 문제가 24일 일본 정부의 바다 방류 개시와 더불어 또 새로운 논쟁거리를 몰아오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행위를 두고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라들로는 일본의 이웃 국가들인 중국과 한국(정당과 사회단체 등), 북한 등과 거리가 멀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의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기 시작해서 240일이면 중국 연해에 도착한다며 정부로부터 국민 매 개인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방류 결정을 국제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전면 중단을 발표하였다. 한국 언론도 한국의 여러 해산물 시장이 거의 텅 비어 있어 어부들은 미래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주도 동문어시장에서 20년 넘게 해산물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예전에는 오전 10시경과 오후 5∼7시(두 시간대)에 장사가 안될 때도 시장은 붐볐지만, 요즘은 손님이 없는 텅 빈 고속도로”라며 “코로나19 기간에는 장사가 더 잘됐다”라고 우려했고 한국 서부 해안 도시 군산 출신의 한 어민은 “내일 해산물 경매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라며 “해산물 소비량이 4분의 1로 줄었고 가격도 더 낮아질 것 같다”라고 탄식했다. 부산종합어시장에서는 조기 한 박스가 보통 4만 원 또는 5만 원에 팔리는데, 전국 해산물의 약 30%가 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번 주 수요일(23일)에는 조기 한 박스가 정상가의 절반 이하로 판매되었으며, 한국인들의 주요 해산물인 멸치는 평소보다 10~20% 정도 가격이 저렴하게 판매되었다. 2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일본이 이날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 오염수 방류를 개시한 것은 지구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하면서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인류에게 핵 재앙을 초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외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한 일본의 결정을 알게 된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있는 한 비정부기구가 공개적으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으며 또 피지 수바에서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은 해외의 국가와 사회단체의 규탄은 물론 일본 자국 내 어민 단체와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1945년 원폭 피해자 후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교도통신은 24일 원폭 피해자 후손들로 구성된 일본-전국 원폭 피해자 2세 단체 연락 협의회가 나가사키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항의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히로시마가 견딜 수 없다며 성명을 발표했고, 이 성명은 총리 관저에 우편으로 발송됐다. 성명은 “원폭 피해자 2세들은 부모들이 방사능 영향으로 고통받는 것을 오랫동안 목격했고, 자신들도 유전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어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라며 “정부와 도쿄전력이 책임을 지고 육상에서 보존·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외에도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이루다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고도 높다.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은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감찰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IAEA의 권위성과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이 기구의 분석과 결론 모두를 믿는 건 아니다. 특히 IAEA 역시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계획에 대해 명확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다. IAEA 역시 사상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수치나 분석을 통해서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은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시작이나 과정을 통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례로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는 그 위력이 그 정도로 강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자료도 있다. 다음 우리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더군다나 믿을 수 없다는 추리가 나온다. 일본인을 두고 말하자면 좋게 말하면 “총명하다”하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잔머리를 잘 굴린다” 혹은 “비열하고 간교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조선과 중국 그리고 기타 태평양 지역 국가와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그것도 아주 음융하고 비열하고 잔혹한 수단과 명분 등으로 말이다. 조선 왕조의 명성황후 음해 사건, 중국 대만 강점과 한일 합방 그리고 지난 세기 30~40년대 조선에서 위안부를 모집할 때는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등 감언리설로 순진한 소녀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1920년대 말의 만주에서의 황구툰(皇姑屯) 사건과 루거우차오(卢沟桥) 사건 등을 분석 조명해보면 당시 일본이 강하다기에 앞서 음흉하고 뻔뻔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시 일본은 한편으로는 미국과 담판함과 아울러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일본을 함부로 믿어서는 큰 코 다친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종합적으로 일본을 평가하면 일본인의 겉면을 보면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생활이 아주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일본인의 속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겉과 속이 같은 한국인과는 달리, 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중국인과는 달리 또한 거만하지만 우쭐대지는 않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한테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해국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역대의 독일 총리들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오늘 현재도 기나긴 침략 역사에 대해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교과서까지 뜯어고치면서 군국주의의 침략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을 두고 각국은 여러 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는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 두고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속 궁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일종의 전략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고 한국은 자국민들한테 미칠 손실보다는 일본과 정부 사이의 마찰을 우려하는 듯한 양상이다… 한편 일본의 핵 오염수 바다 방류 강행에 대해 지금 과학적이고 안심할 수 있다는 학술적 수치는 있으나 그 영원성을 장담하는 언사는 한 마디도 없다. 어찌 됐든 일본의 핵 오염수는 방류하지 않는 것이 방류하는 것보다는 ‘명지한 선택’이라 보여지며 방류하는 것으로 나쁜 결과가 있을지언정 반대로 좋은 결과는 제로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가령 앞으로 방류 과정에 혹시라도 일본 자국 혹은 주변국들에 피해 사례라도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아무리 미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라 해도 결코 일본을 위해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일본이라는 이 섬나라의 위망은 일락 천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기 2023년 8월 24일, 이날은 인류 역사상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3-08-25
  • 독도는 ‘무주지(無主地)’ 섬이 아니었다.
    ● 김정룡 (多가치포럼' 대표) 민간속설에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가령 이웃집에서 경사가 생기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안 좋은 일에는 같이 슬픔을 나누고, 급한 일이 생기면 이웃이 가장 먼저 달려와 돕는 등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삶을 영위해온데서 생겨난 속담일 터. 민간백성들의 삶은 대개 이웃끼리 화목한데 비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구성된 국가의 경우 이웃나라끼리 사이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다. 바다를 사이 두고 이웃으로 살아온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좋은 때도 있었지만 서로 반목하는 일들이 더 많았고 지금까지도 해묵은 갈등들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일본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하여 오랜 갈등들에 얹어져 가뜩이나 썰렁한 냉기를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갈등도, 새로 생겨나고 있는 갈등도 모두 일본 측의 책임이 크건만 정작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아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느 한 착실한 역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는 서너 차례 모자라는 1천 번의 침략을 당해왔다고 한다. 무려 1천 번이나 침략을 당해왔으나 남을 침략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니 얼마나 착한 민족인가? 누구인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백의민족은 맞기만 하고 때릴 줄 모르니 선천적으로 DNA에 문제가 있다”고. 아무튼 그 1천 번 가운데서 일본의 침략이 다수였다. 일본은 지진이 많고 태풍이 많기로 지구촌에서도 이름난 곳이다. 게다가 땅이 척박하여 먹을 것이 늘 부족했다. ‘제집’ 내에서 해결책이 안 보이니 눈을 ‘옆집’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오는 약탈행위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가에 왜구의 노략질이 들끓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곡식도 빼앗고, 옷도 강탈하고, 여자도 납치해가고 등 눈에 보이는 쓸 만한 ‘물건’이면 전부 빠트리지 않고 싹쓸이해갔다. 백의민족의 전통인사말은 ‘무사한가?’인데 그 유래가 바로 빈번한 외침을 당한데서 생겨난 것이다. 일본은 왜구의 노략질도 빈번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침략도 감행하였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식민화였다. 1592년 풍신수길이 발동한 임진왜란이 좋은 근거이다. 명나라 조선 파병 때문에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실패했으나 그 후 결코 한반도 식민화 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큰 전쟁을 피하고자 조선정부는 동학농민운동 측과 협상하여 평화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청나라 군과 일본군 모두 철회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난 일본이 철회할 리가 만무했다. 청나라와 군대 철회로 갈등을 빚다가 드디어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바로 ‘중일갑오전쟁’이다. 일본을 ‘쌰오르번(小日本)’으로 하찮게 여겨왔던 청나라가 생각 밖으로 일본한테 패배한다. 조선을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립문’까지 세워준 일본이지만 정작 조선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호랑이가 나간 자리에 승냥이가 들어온 셈이었다. 일본은 강대했던 청나라를 물리쳤으나 또 다른 강대한 적인 러시아와 맞붙어 싸워 이겨야 만주와 조선에서의 이권을 모두 독차지할 수가 있었다. 1904년 일본은 한반도에서 자기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어디든 군사기지를 세울 권리가 있었다. 러시아와 맞붙으려면 동해바다 섬에 군사기지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하여 일본의 레이더망에 독도가 들어왔다. 1905년 일본은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 주장하면서 영토편입을 시도하고 시마네현(島根縣)에 지방고시를 알린다. 남의 나라 땅을 침략하고 그 땅을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드는 수법은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활발하게 써 먹었던 수법이었다. 즉 일본이 유럽열강들한테서 배운 것을 조선침략에 활용했다는 뜻이다. 독도는 1905년 전에 과연 ‘무주지’였을까?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열강들이 지구촌에 이르는 곳마다 모두 ‘무주지’ 땅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무주지’라 주장하는 것일까? ‘발견자우선주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활용했던 것이다. ‘발견자우선주의’의 본뜻은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소유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인데 백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고 개척할 당시 수많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결코 백인들이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다. 분명히 그 땅엔 인디언이라는 주인이 이미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개척한 그 땅들에 주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발견하고 삶을 영위해온 원주민들이 거주해왔다. 그렇다면 왜 유럽열강들이 ‘발견자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기네 소유로 만들었을까? 주인이 이미 있었는데 ‘무주지’라 주장하고 거기다 한 술 더 떠 ‘발견자우선주의’를 떠드는 근거는? 유럽열강들은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인류 집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 땅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C’ 즉 기독교(Chrisianity), 문명(Civilization), 상업(Commerce)을 통해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했다. 1455년 교황 니콜라오5세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영토에 대한 포르투갈의 권리를 승인했다. 최초의 탐험시대부터 이미 그 땅에 인류가 살고 있든 말든 국가가 있든 말든 유럽열강들 중 그 누가 먼저 그 땅에 도착하면 자기네들이 주인이라는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를 적용했던 것이다. 독도는 1905년 이전에 조선의 소유이고 조선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 공부에 가장 모범생이었던 일본이 서구열강들이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정당화로 써먹었던 ‘무주지’와 ‘발견자우선주의’ 무기를 휘둘러 독도 영유권을 시마네현에 편입하는 고시를 알리는 수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있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일본 소유로 편입되었던 것들을 바로 잡는 조항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등 제도들이 조선의 영유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선의 지리는 육지와 3170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섬마다 일일이 모두 표기할 수가 없었고 그때 독도가 빠져있었던 것을 일본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즉 이것 때문에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한국정부가 독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군대가 주둔하여 관리하고 있다. 6.25 전쟁 때 한국군 36명의 용사가 독도를 굳건하게 지켜냈고 지금까지도 한국이 독도에 주둔하고 관리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존재의 일차적인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2016년 세월호사건과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이태원참사사건에 전체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정부가 국가의 존재이유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다음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도 국가존재의 주요 이유이다. 영토를 잃는 것은 안전을 잃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으로 명백한 우리 소유의 영토이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아간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다. 일본정치주류세력인 우익이 줄곧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 올해만 세 번 한일 양국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아무 언급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과거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대일외교방침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이대로 나아간다면 일본이 독도를 완전히 빼앗아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관리 주장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독도분쟁은 대한민국의 자존심 문제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나라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만큼 국민의 사기가 저하된다. 그러므로 독도만은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3-05-31
  • [기고] 전주국제영화제 정준호-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 투톱체제 성공을 바라며
    독립영화의 요람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정체성 확립과 대중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는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정준호 영화배우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의결했고, 지난 26일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은 시장실에서 위촉장을 전달했다. 마력은 동력의 단위로 높을수록 좋다. 이번 쌍두마차 체제가 앞으로 3년 동안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교수인 민성욱 신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출범부터 조직위의 사무국장 및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지킴이'이고, 정준호 신임 집행위원장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배우이기 때문. 어떤 조직이나 더 큰 발전과 생존을 위한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세계 초일류 전자제품 회사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삼성이 만일 제일제당 시절처럼 사카린을 밀수해 설탕을 팔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비경쟁 위주로 실시됐고 올해 2022년 23회 영화제는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특별부문(한국 장편 다큐멘터리, 지역공모작품, 비경쟁 아시아 영화)로 진행되며 업그레이드 됐다. 2023년 24회부터 3년간 시행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다 더 대중성을 일으켜 더욱 큰 소통을 통해 영화계 발전과 주최지인 전주 지역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영광이 실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쌍두마차 체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민의 선택을 받은 우범기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이끄는 마차다. 우 조직위원장이 전주시 발전을 위한 고뇌 끝에 내놓은 묘수라고 풀이된다. 시장은 시민의 행복과 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과 반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이사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 체제가 수립되자, 권해효 배우, 방은진·한승룡 감독이 이사직을 사퇴했다.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의결되었다고 사퇴하는 것이 영화제에 대한 진정성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고 자니윤(고 윤종승) 코미디언은 2013년 2월28일 해외동포들과 판문점을 방문한 후 가진 뒷풀이에서 "한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이XX 안돼, 저XX 안돼 하는거에요.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계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그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조국 대한민국 관광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으나 좌절된데 대한 의견으로 들렸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나라다. 지난 80년간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속에서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을 게 자명하다.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는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임기는 3년이다. 3년간 응원하고 3년 후 큰 성공과 발전을 이루면 박수를 치고, 변화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한국언론인연대 박상진 대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2-12-30
  • "일본 Z세대 중국에 호감" 중국 호감도 세대별로 다른 원인
    ●오카다 미츠루(일본 저널리스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일 방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년 만에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악화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기시다는 대중 관계 개선에서 반중 여론과 대중 강경 자민당 우파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반중 여론을 거론하면 일본의 Z세대(18~29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40% 이상으로 다른 연령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Z세대의 정치적 의지가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세계적 흐름을 보면 '반중 여론'과 '우파'에만 의존하는 기시다 외교가 위태롭다. 45분 동안 진행된 이번 일-중 정상회담은 3시간여에 걸친 중-미 정상회담에 비해 일본의 대중국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중 정상은 회담에서 국방부 해상 및 항공 연락 메커니즘의 직통 전화선 조기 개통, 새로운 중일 고위급 경제 대화의 조기 개최, 새로운 중일 고위급 문화교류 협의 메커니즘 회의 조기 개최 등 몇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향후 중일관계 개선의 지표 중 하나로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대중 관계 개선의 한 가지 저항은 '반중(反中)' 여론 고조다. 일본의 대중(對中) 인식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부가 매년 발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수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발표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66%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지난해보다 1.4% 증가)고 답했다.그러나 연령별로는 Z세대 중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1.6%로 전체보다 배 이상 많았다. 60~69세 13.4%, 70세 이상 13.2%에 비해 Z세대는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다. 그렇다면 왜 연령대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싶다. 나는 젊었을 때(저자는 1948년생) 중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고,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속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타자' 위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 기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나 구미의 통치체계를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투영해 일본이나 구미의 기준으로 중국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요즘 60~70대 일본인들이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Z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가르친 대학생의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이 철들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격하는 대국이 됐고 IT 기술에서 일본을 앞섰으며 애니메이션과 게임 품질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있다. 또 Z세대가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곳에서 중국 유학생과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Z세대는 중국을 일종의 '대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환상은 없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버팀목이 될 때 일본인 전체의 대중국 관념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쇠락이라는 역사적 변화, '탈아입구((脫亞入歐)'의식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가 '2선 후퇴'하면 일본의 '반중' 여론도 달라질 것이다. 기시다 정권도 언제까지 반중 익찬 여론에 의존할 수는 없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22-11-23

실시간 칼럼/기고 기사

  • [미니칼럼] 꼬마 축구팬의 눈물
    ● 김 혁(재중동포 소설가)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라는 그림이 있다. 유명 광고나 만화책에서 이미지를 차용 해 작업하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다. 그림은 2002년 뉴욕의 어느 한 경매에서 715만 9500 달러에 경매되였다. 당시 영국 BBC 뉴스는 이 작품이 고가에 판매, 경매 기록을 깼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 있다. 이 그림은 지금 한국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자택에 걸려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품이 인상적이였다기 보다는 그 가격 자체가 충격적이였다. 오래 된 만화책에서나 볼법한 촌스러운 아가씨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수백만대를 호가한다니? 사람들은 과연 이 그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지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머금은 아가씨의 얼굴은 그로서 강렬한 이미지로 모두들의 뇌리에 남았다. 며칠전에도 우리는 행복한 눈물을 목격했다. 4월 16일, "백두의 호랑이" 연변팀 대 하북팀전에서 올 시즌 첫 꼴을 터뜨리자 꼴문을 연 용장 김승대와 그 꼴에 도움을 준 윤빛가람 못지 않게 관중들의 주목을 받은 축구팬이 있었다. 선수와 팬들이 흥분의 도가니로 들끓는 사이 생방송 카메라는 홀연 한 꼬마 축구팬을 포착했다. 부진에 시달리던 우리의 "호랑이"가 올 시즌 첫꼴을 선사하는 순간, 한 꼬마가 격동에 못이겨 그만 눈물 왈칵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였다. 붉은 빛 응원 유니폼을 입은 앳된 얼굴의 소년은 목에 두르고 있던 응원 타올로 얼굴을 감싸고 오열을 터뜨렸다. 곁자리 친구의 다독임에 마음을 안추리고 다시 눈물 머금은 얼굴로 꼬마는 “연변팀 이겨라”를 목청껏 복창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감동과 공명을 자아냈고 그 동영상이 인터넷과 위챗을 달구어 불과 며칠사이에 5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피폐한 환경, 풍토에 "안구건조증" 환자가 속출하고 눈물을 잃어가고있는 요즘 세월 인공눈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느때 부터인가 세상은 진정한 눈물을 잃어버렸다. 대신 위장된 눈물, 계산된 눈물로 넘쳐난다. 돈으로 치환되는 눈물도 있다. 그에 비하면 한 꼬마 축구팬이 자신의 팀을 위해 흘린 눈물을 우리는 그야말로 거금으로도 환산할수 없는 수정같은 눈물이라 높이 사고 싶다. 그것은 정녕 순수한 눈물, 값진 눈물, 행복의 눈물이 아닐가!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4-21
  • [칼럼] 더민주 당원들 "누구를 밀어야 할까"
    ● 소정선 (칼럼니스트) 3일 마지막 경선 투표을 앞두고 민주당원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당내 유력주자 문재인 전대표에 맞선 2위 안희정 충남지사의 국민적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과 대선이 따로 노는 여론의 불일치 현상이다. 호남, 충청, 영남 경선을 끝내고 마지막 격전지 수도권 경선을 앞둔 현재 문재인 후보의 누적득표율은 59%로 수도권에서 득표율 45%만 넘으면 본선 직행이 가능하다. 안희정지사와 이재명시장은 영남경선이 끝난 직후부터 전체 선거인단 3분의2에 해당하는 136만 5천명의 수도권 표를 겨냥한 최후의 선거운동에 나섰다. 다수 전문가들은 그러나 큰 이변이 없는 한 수도권에서 문재인후보가 45%을 넘겨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주자로 2위 안희정 지사가 여전히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는 각각 41.7% 대 39.3%로 오차범위(±3.1%포인트) 내에서 박빙 승부를 벌일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안 지사가 안 전 대표와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각각 44.8% 대 34.8%로 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지사는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지만 본선 후보로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것이다. 이 조사가 가지는 의미는, 안지사는 경선 이전부터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계속 수위를 달려왔는데 경선 막바지인 최근까지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 추세가 변함이 없다는데 있다. 오히려 문대표가 대선주자가 되면 안지사 지지표의 33.3%가 안철수 전대표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물론 다자대결이 될 경우 표가 다소 분산되지만 후보간 우열에는 큰차이가 없고, 또한 향후 대선은 양자 대결이 유력하다. 민주당을 진보로 볼 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지지도가 미미한 가운데 박근혜 전대통령의 구속 등의 영향으로 보수쪽의 지지율은 낮게 전망된다. 이럴 경우 중도 진보나 보수표의 일부가 안철수 전대표 지지로 기울면 문재인 후보는 선거에 패할 가능성도 크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경선이냐, 대선이냐’는 본질적 의문을 던지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경선을 빗대어 ‘안방대세 Vs 국민대세’로 비아냥 대기도 한다. 당내 경선에서는 문재인이 독주하지만 국민여론은 안지사가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대선주자로서 문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선초기부터 안지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대다수 언론에서도 문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조차 ‘절대 투표하지 않을 후보’로 문재인이 27.5%를 얻어 1위를 달리고 있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면서 줄세우기와 무차별 영입, 지역감정 조장 등 스스로 적폐세력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도 댓글부대의 동원 등 문후보측의 더티플레이도 다른 경선주자를 자극하고 있다. 아들 취업비리, 개인 건강문제 등 혹독한 검증을 문후보가 견뎌낼지도 의문이다. 민주당내의 한 인사는 “박정희가 죽고 민주화를 염원했는데 전두환이 나타나 더 강한독재를 했고, 박근혜 탄핵되고 차원높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데 판박이의 더 교묘한 패권정치가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문후보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높아지면서 김종인, 홍석현등 원로그룹들에 의한 대연정론 시도 움직임도 최근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안철수 후보와 일부 보수 세력을 연합할 경우 보수를 안고 가는 후보가 당선될 것을 자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지사의 탈당과 대연정 대선후보 옹립을 거론하는 인사들도 있다. 국민적 지지율이 당내 선두주자 문재인후보보다 높고, 정치역량에서는 안철수 전대표보다 우위에 있어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 실제 지지율이 높을 것이라 장담한다. 지역 정치 경험 등에서 얻어진 자신감으로 다수를 아우를 유력후보이며, 원로그룹의 지지에다 대중적인 표 흡인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탈당 반대론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한 열심당원은“지지자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안지사는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개혁과 정당중심 정치 지도자인 안희정이 원하는 길도 아니다. 대연정은 사회통합과 민주제도.개혁을 위한 방법이지 대연정이 목표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과거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추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경우 새 트렌드인 노무현이 부상하면서 구세대인 이인제가 자연스럽게 탈락하는 과정이었지만 현재의 새트렌드는 안희정 지사라는 주장이다. 대연정론을 비롯한 안희정지사의 ‘정치적 상품성’이 범보수와 양심적 진보층의 지지를 얻을 경우 탈당의 명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탈당파의 한 관계자는 “안지사가 던진 대연정의 파장이 크다. 국민들도 이제 눈치를 채 버렸다. 일당 독주는 옳은 방법이 아니며 다른 방법도 얼마 던지 모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 널리 퍼졌다”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문재인 후보의 지도력에 대한 우려가 현존하는 현실에서 현재 여론 추세가 지속되면 진보진영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지표만 굳은 상태에서 더 이상 표가 들어오지 않고 범보수와 안철수 지지층의 표가 결집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눈앞의 승리를 놓치게 된다. ‘확실한 필승 카드로 갈 것이냐, 관성적인 지지로 또한번 좌절할 것인가’ 민주당의 행로는 3일 고척돔의 선거인단 손에 달렸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4-03
  • [칼럼] 연변말이 창피한가?!
    ● 허연화 연변에서 태여나고 자란 필자는 연변말이 참으로 정겹고 좋다. 일본에서 산지 오래되기에 연변말을 할 수 있는 지인을 만나서 연변말로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하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지역 조선족이거나 한국 지인, 자이니찌분(재일동포)들과 대화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연변말의 특유한 억양을 감추려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연변말의 특유한 억양과 특수한 중국식 우리말 단어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 민족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연변사투리를 혼자 한다는 것이 왠지 낯뜨겁다는 의식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연변말이 정겹고 좋은데 무의식적으로 “표준우리말”과 갈라서 사용하려 하였던 것이다. 아마 독자들 중에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이런 상황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왜 이렇게 연변말을 “표준우리말”과 갈라서 사용하려는 상황이 발생할가? 그것은 단지 편의를 고려해서일 뿐일가? 본래 언어자체는 서렬을 매길 수 없다. 하지만 현실생활에서 의식조사를 해보면 어느 나라에든 낮게 평가되는 방언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동북지역의 방언은 촌스럽고 열등하게 평가되며 이 지역 출신의 사람들은 일본 다른 지역에 갔을 때 방언을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한국 국내에서도 서울 및 서울말의 패권주의가 사회적문제로 논의되기도 한다. 허나 같은 방언이라도 표준말보다 호의적이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교토, 오사카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간사이벤(関西弁)이라는 방언은 현재 일본에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교토지역은 교토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화하고 아름답고 정중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 왜 어떤 방언은 열등감을 조성하고 어떤 방언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일가?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있는 편견에서 온다. 편견이라는 단어는 종종 나쁜 결과와 연계할때가 많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편견이란 어떤 집단의 성원이 다른 집단에 대해 가지고있는 의견이나 태도를 말한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많은 경우 직접적인 증거라기보다 얻어들은 소문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정보를 눈앞에 직면해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같은 편 의식”을 느끼는 집단에는 호의적인 편견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은 집단에는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특정된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집단에 대해 공평하게 대하기를 거부한다. 그럼 이런 편견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가? 우선 매체의 영향으로부터 분석할 수 있다. 연변사람, 연변말의 경우 한국TV의 뉴스와 드라마, 연예프로에서 부각된 모습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사실 한국에서의 “조선족”은 연변출신 뿐만은 아니라 흑룡강성, 요녕성출신도 많다. 연변 이외의 출신의 말투는 연변말투와 다르며 경상도쪽의 말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조선족”하면 연변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부각된다. 문제는 메체에서 보도되는 “조선족”의 표상이 특히 한국 진출 초기에는 사회 밑층에서 사는 폭력적이고 거칠며 도시화되지 않은 모습이 위주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진출 초기 조선족이 종사한 일이 같은 한국사람일지라도 천대받고 기피하는 원향어선이나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이 통하는것 같은데 아닌것 같은, 서로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끼던 적응단계였기에 크고작은 많은 트러블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매체에서 비춰지는 조선족의 이미지도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초기단계의 이미지가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다. 하여 아직도 조선족이 쓰는 연변말은 흔히 조롱의 대상이 되군 하는게 사실이다.  연변말의 한국에서의 마이나스적 이미지의 영향은 한국사회 뿐만아니라 중국사회 및 중국의 조선족사회에도 파급된다. 한국과 만나기전의 연변말은 중국의 조선족들이 쓰는 여러 억양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중국의 조선족사회에서는 중심이였고 연변말은 주류어였으며 연변에서는 “표준어”로 통했다. 같은 연변에서 사는 한족들도 연변말을 따라하거나 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쇼핑중심이였던 서시장일대를 가면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아재, 아재”하고 말을 걸어오군 한다. “아재”란 연변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또한 연변은, 중국의 다른 민족으로부터 자기 민족의 특유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고 춤 잘추고 노래 잘하며 깨끗하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55여개 소수민족 중에는 천만을 넘거나 가까운 소수민족도 많다. 200만명(2010년 인구조사에서는 183만명)도 안되는 조선족이지만 예술에 능하고 교육률이 높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 중국인민해방군국가를 만든 정률성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강경산원사(중국에서 과학기술방면의 최고학술칭호), 중국대지의 각 대학의 조선족교수들, 우리말/우리문화를 유지하려는 모든 조선족들의 노력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붐이 중국대지에 퍼지면서 한국 매체에 비춰지는 조선족의 이미지는 중국에서 알려진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 게다가 중국처럼 큰 땅떵어리에서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조차 없고 조선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없는 지방에서는 되려 한국 매체에서의 “조선족”의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로 자리잡을 때가 많다. 매체의 마이나스적 효과는 연변이미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매체는 소외, 모방살인, 사람들사이의 무관심의 생성, 편견의 강화, 중대하고 복잡한 문제의 왜소화와 간단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물론 시청취자들은 그냥 피동적으로 매체가 보여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시청취자들은 몰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절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별개다. 영국의 어떤 대학의 연구팀에서는 과거 TV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력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뉴스의 객관성보다 화면에 비춰진 폭력적인 기억이 고대로 사람들의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주류매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연구결과이다. 매체가 만드는 것은 부정적인 편견 뿐만이 아니다. 우에서 말한 일본의 간사이지역 방언의 경우가 매체에 의해 전파된 긍정적인 편견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강호동, 류재석으로 통하는 산마, 신스께 등 개그맨거장들이 간사이 지역 출신이고 또한 연예프로그람에서 간사이 출신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함으로써 간사이벤이라는 방언을 전 일본에 침투시켰다. 상업화된 매체가 주류인 현대사회에서 객관성을 가지기란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매체를 비판적 눈으로 관찰해야 할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야 한다. 편견은 또한 한 집단이 처한 경제적위치와도 관련된다. 한국의 여러 동포들 중에서도 연변말투가 유독 촌스럽다고 부각되는 것은 왜일가? 그것은 한국과 중국이 만난20세기 90년대의 중국의 경제적 상황에 의한 것이 많다. 즉 같은 동포라 할지라도 재일, 재미 동포는 한국보다 발전한 나라에서 온 동경의 대상이고 중국, 구소련 동포들은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구소련 지역 출신의 동포, 재미, 재일 동포들은 우리말자체의 보유가 매우 어려운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우리말 자체의 유지가 되어있지 못하고 사투리로라도 우리말을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다. 하지만 중국에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중국소수민족정책이 유효하게 결합됨으로써 소수민족 집중 거주지에서 민족학교를 꾸리고 조선말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대학입시시험도 조선어로 시험을 볼 수 있다. 타향에 이주해서도 우리말로 말하고 글을 쓰는 매우 행운스러운 집단이 조선족인 것이다. 물론 연변말은 다른 모든 방언들과 마찬가지로 조선말에서 나왔지만 또 자기 지역의 특정에 따라 변이를 거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은 것에 대한 자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되려 “고국”에서 그렇게 소중하게 유지해온 우리말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비웃음을 당한격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가난한 동포, “가난하다는건 게으른 것이고 못배워서이다”는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바탕이 되여 조선족이 쓰는 언어마저 가난해지고 천대받게 된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한반도외에서 유지된 소중한 우리말의 변이인데도 말이다. 편견은 또한 역사적, 정치적 요인과도 관계된다. 예를 들면 일본의 동북지역방언이 자타평가에서 열등적으로 평가받는데는 이 지역이 역사상 분단되고 정치적세력이 약화됨으로써 이 지역의 문화자체도 부당한 평가를 받은 역사가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 이유가 아닌가고 분석하기도 한다. 반면 교토는 오랜 세월 일본의 중심이었고 일본스러움의 모든 상징으로서 일본인의 귀속의식이 교토에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언어의 이미지는 그 지역의 역사적인 평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살면서 여러 지역의 우리민족과 접촉해보면 우리말의 다양성과 변이를 느낄 수 있다. 각 지역의 우리말들이 억양이 다르고 쓰는 단어도 다를 때가 있지만 서로 느끼는 우리말의 기본적인 정서는 공통한 것이 너무 많고 정겹다. 작년 3월, 일본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이 있었다. 시인이 남겨놓은 시를 읊는 부분에서 필자는 너무 감동을 먹었다. 우리가 다 아는 윤동주의 시들이 서울억양, 재일동포억양, 조선족억양, 일본인의 우리말발음억양으로 각각 읊어 귀에 들려오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감동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연변말이 낯뜨거웠던 그 시절이 낯뜨겁던 순간이었다. “우리말”이라는 것이 “표준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범주로 의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3-29
  • [김정순 칼럼] '침묵의 나선이론' 노린 졸렬한 꼼수 아니길
    ●김정순 언론학 박사 / 휴먼에이드 미디어센터장  대통령선거일이 47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대선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 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수의 매체와 정치전문가들은 민주당 경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며 핫이슈로 다루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 간 공방전은 각 매체들의 머릿기사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22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현장투표 개표 결과로 추정되는 미확인 자료가 SNS를 통해 유출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당 안팎은 물론 정치권이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괴문서에 의해 압도적 1위로 드러난 문 후보 측은 '이는 가짜'라며 '찌라시'쯤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안희정·이재명 후보 측은 당 지도부와 선관위를 향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어 심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예비경선 유출 정보는 그자체로 파급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선거일이 임박했을 때의 여론조사 발표를 금하고 있는데, 이는 '밴드왜곤효과(Bandwagon effect)'에 의해 여론이 우세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도 있다. 여론 형성 과정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모습이 마치 나선형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론은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 설립자이자 커뮤니케이션·정치학자인 노엘레 노이만에 의해 이름 지어진 것으로, 이에 의하면 인간은 고립의 두려움이 있어 사회적으로 우세한 여론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지지자가 가장 우세해 자신이 다수편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경우, 지지자를 떳떳이 밝혀 점점 나선모양으로 확장되면서 커지는데, 반대로 자신의 지지자가 열세인 것이 보이면 사회적 고립을 염려해 침묵하다가 마침내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을 경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우리 정치현상에 적용하는 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거의 판세를 가름하는 호남경선을 앞둔 시점에 유출된 것이어서 경선 후보자들은 물론 유권자 입장에서도 여간 김이 빠지는 게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압도적 1위로 밝혀진 문 후보 측은 이번 기회를 통해 '대세론 굳히기'를 펼치기 좋은 호재를 얻었다. 반대로 1위를 추격하는 후발주자들 입장에서는 본게임도 치르기 전에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공개되는, 김이 새고 맥이 빠지는 기분일테다. 2, 3위를 지지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은 투표도 하기 전에 '지는 게임'으로 판단해 자칫 행동하지 않고 침묵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 후보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 이번 괴문서의 내용이 실제 결과이고 이게 유출된 것이 맞다면 정말 큰 문제다. 민주당 지도부와 선관위의 경선 관리에 큰 오점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다시 태어나려는 대한민국의 정치에 희망을 걸고 싶은 국민에게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주도권을 유지하려 불공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졸렬한 꼼수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동지도 벗도 가볍게 저버리는 작태 △권모술수를 '정치의 기술' 쯤으로 여기는 태도 등, 어디서 많이 봤던 것들이다.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이 청산하고자 하는 역겨운 '구악정치' 행태 아닌가. 이번에 벌어진 '괴문서 사건'은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사자들의 이해를 떠나, 새 세상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을 심하게 유린한 행위일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3-24
  • 도시화, 국제화 시대의 조선족과 그 대응
    ●최학송 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이주해온 과경민족이다. 19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인의 중국 이주는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근 200만명에 이르렀다. 일제의 패망을 계기로 이중의 절반 정도가 조선반도로 돌아갔으며 나머지 절반인 근 백만명은 계속 중국에 남아 생활해왔다. 이렇게 중국에 남은 조선인과 그 후손들이 우리가 오늘 말하는 조선족이다. 오늘날 조선족 인구는 근 200만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중의 절반 정도가 또다시 동북을 떠나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조선족은 이주 초기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동북삼성에 모여 벼농사를 위주로 농업생산에 종사하면서 생활해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특히는 1992년의 중한수교를 계기로 조선족은 장기간 생활해오던 삶의 터전을 떠나 해외로 관내로 이주하여 도시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이 7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이나 미국 나아가서는 유럽에도 적지 않은 조선족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마다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일본에만 적어도 몇만명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 북경, 상해, 광주, 청도, 위해 등 중국 연해지역에 진출한 조선족도 적어도 20, 30만명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조선족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동북삼성을 떠나 연해도시나 해외에서 도시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조선족은 더는 농경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라는 말은 불교에서 나왔다고 한다. “세”는 시간을 가리키고 “계”는 공간을 가리킨다. 시간과 공간은 만물이 존재하는 기본형식으로서 사람들의 인식, 즉 세계관도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조선족이라는 군체는 20세기 동북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내포, 다시 말하면 “조선족”하면 떠오르는 이주, 개척, 투쟁, 벼농사, 사과 배, 주덕해 등 사건이나 인물들도 대부분 20세기 동북이라는 시공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20세기라는 시간은 이미 과거가 돼버렸다. 그리고 동북이라는 공간도 지금 바야흐로 과거형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경, 상해 등 연해지역이나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해외에서 새롭게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여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동북은 차츰 과거형으로 돼버리고 있으며 이들의 자식 세대에 이르러서는 동북은 선조들이 한동안 살았던 곳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은 역사를 통하여 되돌릴 수 있으며 공간은 여행을 통하여 체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조선족이라는 군체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조선족”이라는 이 이름 속에 부단히 새로운 공통의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물을 보충해 넣지 않는 한 언어와 문화, 역사를 배우는 것을 통한 정체성 보존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20세기 조선민족이 살길을 찾아 해외를 떠돌면서 중국조선족, 고려인, 재일조선인, 재미조선인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하위분류를 만들어낸 것처럼 21세기 조선족도 그 나름의 하위분류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그리고 그런 하위분류가 외부의 충격과 흡인력에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갖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때문에 조선족 지성인과 매체는 그 힘을 모아 각지에 분산되어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역사를 통한 과거를 배워주는 동시에 조선족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좋은 점들을 공유시키는 것을 통하여 세계를 무대로 하는 21세기 조선족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 “조선족”이라는 이름의 내포를 부단히 보충하고 갱신하여 조선족이라는 군체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전통매체의 전파범위가 오늘날 조선족의 거주공간을 아우르지 못한다면 인터넷홈페이지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위챗 공공계정(微信公众号)과 같은 신흥매체를 통하여 조선족을 하나로 묶을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조선족을 하나로 묶는 매체를 채울 내용물이다. 조선족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호와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콘텐츠의 발굴이 시급하다. 물론 이런 내용물은 조선족이라는 신분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당지 사회와의 거리감과 반감을 조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조선족 후속 세대들에게 정체성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최학송 략력】 성명: 최학송(崔鶴松) 소속: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전공: 조선족문학, 재중조선인문학학력: 한국 인하대학 문학 박사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학사경력: 현재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부교수 주요 론저: 저서로는《재중 조선인 문학 연구》(2013)、《주요섭 연구》(2014), 역서로《1946년 북조선의 가을》(2006)이 있으며, 이 외에 《‘만주’체험과 강경애문학》(2007) 등 론문 2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2-25
  • [허성운 칼럼] 천불붙이 이름을 불러본다
    ◑ 허성운 룡정시 삼합향에 위치한 천불붙이 지명은 순수한 우리말 지명이다. 현지에 살고 있는 토박이 노인들은 오래 전부터 천불붙이라고 불러왔다. 여기에서 천불은 스스로 일어나는 산불을 말하고 붙이는 산간 지대에서 천불로 하여 불살라진 땅을 뜻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고유지명인 천불붙이 지명을 한자로 행정서류에 옮겨 적는 과정에 천불지산이라는 엉뚱한 지명이 만들어 지어 옛 간도지도에 한자로 天佛旨山으로 표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나타난다. 해방 40년이 지난 후에도 불행하게 이런 왜곡된 지명표기가 이어지어 간다. 1985년 6월에 편찬한 룡정현 지명지에 나와 있는 천불붙이 지명해석을 그대로 옮겨본다. 하늘의 법사가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고 이곳으로 내려 왔다기에 천불지산天佛指山이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이런 잘 못된 지명풀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이성계 김종서 무학대사 지장보살 등 성인들의 설화까지 꾸며가며 천불붙이 지명을 천불지산으로 전하고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가리키며 저것은 말(馬)이다 하니까 정말 말이 되어버리는 고사처럼 천불지산이라는 잘못된 지명이 반세기동안 그대로 작동되어 내려오면서 천불붙이란 네 글자는 어느덧 세월의 비바람에 마모 되여 그 판독조차 어려워지게 되는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한심한 것은 최근에 들어와서 천부지산이란 잘못된 지명이 엉뚱한 제사 술 상표 이름으로 둔갑하여 각종 신문 방송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을 때 흔히 상전벽해라는 비유를 쓴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만치 세월이 무상하다는 의미가 되겠다. 아득히 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천불붙이는 원시림으로 빼곡히 들어선 망망한 림해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불명의 천불을 계기로 농토를 빼앗긴 함경도 이주민들이 서래골 마래골로 밀려들어와 화전 밭을 일구면서 천불붙이의 역사가 시작 되였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함경도 화전민들의 파란만장 했던 역사는 아니러니 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것을 꽁꽁 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져 신비한 천불의 발생 기원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천불붙이라는 원래의 지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그 대신 천불지산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굳어지어 가고 있다. 상전벽해라는 말대로 뽕밭이 바다가 되었다면 천불붙이는 망망한 림해가 파란만장한 화전민들의 력사를 거쳐 오늘날에 와서는 송이가 나는 보물 밭으로 바뀌었다. 땅속에 묻힌 이왕지사를 굳이 들춰내어 구구히 늘어놓아 봤자 오늘날에 와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최초의 화전민의 독특한 삼림문화 원형을 간직한 천불붙이에 숨겨진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최초에 두터운 봉금지대 장벽을 뚫고 나온 풀처럼 화전민은 천불붙이 산속에 움터 나온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초들이다. 혹독한 삭풍이 몰아치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드리운 봉금지대에서 얼마나 많은 삶들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삶의 꿈이 허무하게 내버리어졌을까. 허나 오랜 세월을 거쳐 이런 화전민의 진출은 끊임없이 해를 이어 거듭되어 마침내 봉금장벽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연변에로 이주 할 수 있는 위대한 터널로 천불붙이는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온갖 전란과 변란에 휩쓸리어 삶의 터전이 무참하게 짓밟히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화전민의 처절한 몸부림은 천불붙이 심산계곡 곳곳에 묻혀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화전민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존재는 닥치는 대로 빼앗는 마적 떼들이었다. 이런 마적 떼들을 피해 천불붙이에서는 연기가 잘 나지 않은 싸리나무만 골라 불을 땠다고 하여 싸리밭데기라 부르는 마을지명까지 생겨났다. 수많은 화전민들은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 위하여 점점 더 높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아예 입구조차 막아버리고 살아 왔다. 이로 하여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높은 고산지대에 올라와 정착하며 모진 혹독한 추위에 견뎌내야 하였다. 가파른 경사지에서 두 마리 소를 부릴 때 높은 쪽에 서 있는 소의 발이 낮은 편에 있는 소의 등보다 높았다는 지난세기 천불붙이 늙은 농부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오늘날까지 어떤 역사를 거쳐 왔는지 그 밑바탕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과거의 민낯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옛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화전 밭을 일구다 보면 얼굴까지 새까맣게 되어 늦은 저녁 집으로 들어서면 개도 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마구 짖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시기 불을 질러 나무와 풀들이 태우는데 곳곳에 타다 남은 나무 밑둥이 많았는데 이런 덜 탄 나무들을 부대라고 불러왔다. 연로한 할아버지들은 종종 한전 밭을 부대밭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화전민들은 순수 흙만 있는 땅보다 굵은 돌들이 섞여있는 밭을 선호하였다. 더욱이 천불붙이와 같은 고산지대에서는 돌들이 열기를 저장하고 수토유실을 막을 수 있어 천불붙이에는 숲으로 우거진 땅에 가끔 군데군데 돌무더기가 웅크리고 있는 곳들이 많다. 토박이 노인들은 그 자리가 바로 그 옛날 화전 밭을 일구던 곳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천불붙이에 파밭고래라는 땅이름이 있다. 서래골을 거슬러 올라가 석이바위 맞은편에 음달진 곳에 자리한 골 지명이다. 최초에 화전을 일굴 때 땅속에 묻힌 나무뿌리와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기에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에 파헤친 나무 뿌라와 돌들 사이사이로 봄이면 뿌리가 악센 풀들이 새파랗게 고개를 쳐들어 그야말로 파밭을 일군다는 말이 실감나게 맘에 와 닿았다.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가 입버릇처럼 자주 쓰는 파밭을 캔다. 파밭을 맨다는 말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마치 화석 같이 굳어지어 내려오며 일상용어로 정착되어 왔다. 삼합향 비전동은 원래 화전으로 불을 지른 땅에 봄에 되면 빼래풀들이 다른 풀뿌리보다 땅속에 깊이 박혀 있다가 재차 파랗게 고개를 쳐든다고 하여 빼래밭골로 붙인 이름인데 한자로 두리뭉실하게 비전동菲田으로 적어놓았다. 삼합향 문암동은 원래 함경도 전통가옥 바당문 문턱처럼 바위가 들어앉은 곳에 마을 취락이 형성되어 그 옛날 두만강을 자주 건너 제집 문턱처럼 드나들던 화전민의 이주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지명인데 문암동으로 모호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호전户田동은 원래 새밭데기로서 새풀을 뜻하는 한자 구어체 蘆가 약자 卢로 바뀌어 적는 과정에 어처구니없는 户자로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와서도 이런 지명들은 천불붙이가 천불지산으로 둔갑되어 있듯이 여전히 새밭데기 지명은 호전동으로 문턱바위 지명은 문암동으로 빼래밭골은 비전동으로 표기되어 세월의 비바람 속에 그 고유지명의 빛깔을 잃어가고 있다. 천불붙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삼합 공암동에서 서래골을 따라 석마골어귀 돌루게골 석사 동경장 버므장고래 하촌 중촌 상촌 싸리밭데기 수영자 등 마을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었다. 1880년 서래골 농막수가 50- 60호로 적혀 있고1894년에는 346명으로 기재 되었으며 20세기30~40연대에는 농가 300가구 넘게 산재해 있었다고 역사는 서술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산비탈에 북빼기집 땅막집을 짓고 화전 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40년대 초에 접어들어서 산골이 깊어서 비적무리들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부분적인 산재호들을 이주한 한적도 있었다. 해방 후 1958년도에 이르러 마을들을 통합하면서 교통이 불편하고 학교가 먼 서래골 마을들에서는 차츰 학교가 있는 청천 혹은 공사 마을과 수전이 있는 타지방으로 이사하는 집들이 많아 61년도에는 10여호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70년대초에 와서는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90년대에 청천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서래골 마을 흔적은 서서히 역사 속에 깊숙이 파묻혀 들어갔다. 연변에는 천불붙이라고 불리는 지명이 훈춘시 춘화진에도 있다. 훈춘 천불붙이도 삼합 천불붙이와 마찬가지로 화전민들이 최초에 연변에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에 나타난 지명 흔적으로서 이주민들이 이주경로를 파악하는데 관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먼 훗날 이주민들이 연변에로 본격적으로 이주하기를 앞서 절체절명 시기에 접어들어 화전민들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첫 이정표이다. 천불붙이는 화전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환기시킬 수 있는 연변 이주 역사의 풍토를 정착시키는 주요한 문화 아이콘으로서 천불붙이를 떠올리면 화전민이 으레 따라오고 화전민을 말하면 최초의 이주민을 거론하게 된다. 오늘날 분명 시대는 변하고 사라져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한 격이지만 사향(麝香)을 주머니에 감춘다고 그 향기까지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동안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버리고 떠나보내야 하였다. 잘 살아보자고 초가집을 허물어 버리고 길을 넓히고자 고목를 베여버리었다. 경제발전을 다그치고자 송이버섯 자원우세를 내세우며 천불지산자연보호구라는 이름은 가져 왔으나 최초의 이주민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천불붙이란 쟁쟁한 땅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왜곡된 지명을 그냥 그대로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둔 사향(麝香) 같아서 언제고 향기를 풍기어 있기 마련이다. 경관 십년 풍경 백년 풍토 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산천초목의 경관은 선인들의 발자취가 새기여 풍경의 한계를 뛰어넘고 대대손손 이어진 풍토는 천년 세월을 버텨나간다는 도리이다.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선인들이 쌓은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거대한 자본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일어서고 있다. 화전민들이 불굴의 의지로 천불붙이라는 금자탑(金字塔)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도 이렇다 할 역사기록 한줄 남기지 못한 채 불행하게 천불붙이 지명은 정체불명의 천불지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묻히어 있다. 진실한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문화의 유전자를 찾는 관건적인 첫 걸음이며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미래를 여는 비밀의 열쇠로도 될 수 있다. 마치 그 옛날 천불붙이 화전 밭에 심었던 감자 메밀 보리의 토종 씨앗처럼 우리 살과 뼈에 녹아들어 우리 삶속에 새로운 희망으로 움터 자라 날수가 있는 것이다. 천불붙이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그리고 천불붙이 이름이 다시 불리이어 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2-13
  • [칼럼] 연변으로 오세요!
    ◈ 장연하 2년전 중국 호남성 녕향현에 살고있는 한 평범한 농민이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 조선일보에 전면광고를 낸적이 있다. 향하광(64세)이라고 부르는 이 농민은 23만 위안(한화 4000만원)을 들여 조선일보 B4면에 “아름다운 중국에는 장가계도 있고 녕향도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녕향의 대형지도가 들어간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향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많고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고를 내기로 했다”며 “한국 관광객들이 장가계만 가지 말고 우리 마을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녕향은 장가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으며 온천과 표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계곡 등 관광명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향씨는 어렵게 살다가 민박을 하면서 살림이 풀렸다며 “고향을 위해 뭔가 하고싶었다”고 했다. 광고비 23만 위안을 마련하려고 1년 수입을 탈탈 털었고 세 아들도 비용의 일부를 댔다고 했다. 광고문구도 그가 직접 만든 것이였다. 광고가 나간 후 한국의 수많은 여행사들이 녕향 관광과 관련해 문의를 했고 중국 신경보, 환구시보, 호남일보 등 주요 매체들도 일제히 향씨의 이번 광고게재를 크게 보도했다. 중국에서 개인이 고향마을을 위해 자비로 해외 매체에 광고를 낸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였다. 중국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향씨의 이번 광고게재를 보도한 관련 기사가 무려 2만 3000여건이나 올랐고 녕향을 취재하기 위한 국내 매체들의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녕향은 한해에 수천만명의 해내외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 평범한 농민이 고향을 홍보하기 위해 생각한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1년 수입 전부를 해외 매체 1회 광고비에 쏟아부었다는 헌신적이고 담대한 결책에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웬지 남의 일 같지가 않으면서 우리 이곳(연변)에는 왜 향씨와 같은 사람이 없을가 부럽기도 하다. 우리 이곳과 3시간 거리에 있는 장백산은 4계절 수많은 해내외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비해 연변, 연길은 아직도 해외는 물론 국내의 수많은 관광객들도 모르고 있다. 그나마 연변축구의 궐기로 연변의 지명도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중국 13억 인구 중에 연변, 연길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연변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지역특정과 풍성하고 독특한 조선족 음식, 우리만의 색갈이 다분한 따뜻한 풍토인정 그리고 요즘 궐기하고 있는 겨울철 빙설관광 등으로 충분히 관광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룡도 신구 건설은 해란호 풍경구 종합개발, 마반촌 산성고고발굴, 동성용진 국가급 특색진 건설과 월청진 마패특색민속촌 건설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룩하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연변관광 브랜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광브랜드를 어떻게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연변, 연길을 알게 하고 찾아오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봉사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변"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게 먼저이기도 하다. 다양한 홍보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요즘, 우리에게도 향하광 농민처럼 내 고향 연변을 홍보할 수 있는 “한방”은 없을까?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인 것 같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2-07
  • 반기문이 비판받는 이유
    ■ 서재홍 학생기자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하 반기문)이 지난 12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귀국전부터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오르며 화제를 모았고, 반기문 역시 대권도전을 예고하는 듯한 발언을 날이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며 발언함으로서 사실상 대권행보의 길을 걷고 있는 반기문. 하지만 그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국인 최초 UN사무총장이라는 명예와 나라에서의 위상을 생각하고 귀국한 반기문에게 국민들의 차가운 반응은 당황스러웠을 터. 날이 갈수록 많은 비판을 받는 반기문의 비판받는 이유를 살펴봤다. UN사무총장으로서의 업적 반기문은 2006년 한국인 최초로 UN사무총장직에 오르고, 임기가 끝나자 연임에 성공하며 추가로 5년을 더 사무총장으로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연임은 UN에서 능력을 훌륭하게 인정받은 것이 아닌, 무난하게 해냈기 때문에 연임이 가능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전임자 7명중 5명이 연임하는등, UN사무총장을 연임하는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보인다. 하지만 연임에 성공한 UN사무총장으로서의 행보는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다. 반기문보다 앞서 전 UN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코피아난(79)은 2002년 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전 9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 즉시 유엔아동기금(UNICEF)에서 구호물자를 수송하고, 유엔식량계획(WFP)에서 식량을 비축,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피난대책을 세우는 등 즉각 해결방안을 세웠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후 중동의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면서 3,500명의 난민들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반기문은 2015년 9월 21일 성명을 통해 '난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라는 성명을 내놓았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의 '우려한다'라는 발언은 이 뿐만이 아닌 수많은 성명에서 사용되며,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또한, 지난 2012년 2월 2일 반기문이 UN사무총장의 자격으로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 들어가기 위해 에레즈검문소에 들어섰을 때 반기문이 탑승한 UN의 차량으로 50여명의 시위대가 차량의 창문을 두드리고, 신발을 던지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에 잡혀있는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의 가족과 친인척이 대부분이었으며, 반기문이 팔레스타인 재소자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중동에서 신발을 던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최고 모욕으로 알려져있다. 2008년에는 바그다그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이라크 기자가 구두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인 최초 UN 사무총장'이라는 명예뒤에는 아이러니한 평가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2015년 반기문은 공식 석상에서만 '우려한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167번이나 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발언한 것이고, 반기문이 사무총장 당시 받았던 연봉은 22만 7,254 달러, (약 2억 2,636만원) 한번 우려를 표명할 때마다 1,360달러(약 157만원)를 받은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새누리당 2006년 2월 14일, 노무현 정부의 외교부 장관이었던 반기문은 UN사무총장직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이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에서 UN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멋진일'이라며 그의 행보를 적극 지지한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세계 외교질서도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들이 벌이는 턱도 없는 짓'이라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이를 무시한채 노무현 대통령은 반기문의 당선을 돕기 위해 8개월동안 이집트, 알제리, 코스타리카,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등 15개국을 순방하며 (이 중 한국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나라도 다수 포함되어있었다) 그의 지지를 호소한다. 2006년 10월 14일, 반기문의 UN사무총장 당선이 확정된 후 '대통령의 숨은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평가에서 노 대통령은 '그것은 쓸데없는 소리다. 당선되면 된 것이고, 반총장에게 영광을 돌려라'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2009년 5월 23일, 노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반기문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서면 메세지나 추모 영상 메세지 역시 일절 없었다. 2011년 12월 1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반기문은 노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방문,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의롭고 잘사는 사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생 헌신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라는 방명록을 남겼지만, 국민들이 이 일에 대해 바라보는 반기문은 배신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기문은 귀국후에도 '배신자'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이일에 적극 해명했지만, 당시 보여준 반기문의 태도로 받은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또한 새누리당 역시 박근혜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크게 떨어진 당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반기문의 입당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반기문이 UN사무총장 출마 당시 보였던 태도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반기문 역시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 당시 자신에게 쏘아붙였던 비난과 공격을 잊은채 자신의 대권행보를 위해 새누리당 입당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민들이 봤을때, 노무현대통령에게 보였던 태도와 더불어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귀국후 보여주기 식 행보 반기문이 12일 귀국 후, 지하철을 이용하며 민심을 직접 마주할 것을 예고함에 따라 일대가 마비가 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반기문이 보여준 보여주기식 태도였다. 그는 지하철 자동승차권 발매기에서 만원 두장을 한꺼번에 넣었는데, 실제로 지하철을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하지 않는 행동을 하며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반기문측은 '만원이 겹쳐서 두장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말도 안되는 해명은 국민들의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어떻게든 국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반기문 입장에서는 크나큰 실수이자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14일 방문한 꽃동네마을에서 역시 '보여주기 식'으로 의심받는 행동을 했다. 노인이 누워있는 상태로 일으키지 않고, 죽을 먹여, 자칫하면 기도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며 '엄연한 살인 미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그다. 위안부 발언 일본이 한국에게 위안부 사건에 대한 대가로 '10억엔'을 지급하기로 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서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치욕과 고통이 10억엔 밖에 되지 않느냐며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당시, UN사무 총장이었던 반기문은 위안부 합의를 축하하는 발언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했다. UN사무총장직에 올라있는 한국인으로서, 더 많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이 더욱 아쉬움에 남는 이유다. 친박근혜, 친이명박 인사 기용, 친인척 비리 논란 반기문은 귀국 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김두우 전 홍보수석, 유종하 이명박 정부 외교부 장관등 수많은 MB계 인사를 반기문 캠프에 기용하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또한 반기문의 집안 역시 비리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반기문 家의 4대 의혹은 ▲장남 SK텔레콤 채용 특혜 논란(SKT 미국 법인과 별도로 뉴욕 사무소 개설 뒤 2011년 1월 장남 반우현씨 특별채용)▲조카 사기 논란(반기문 조카 반주현씨, 2013년~2015년 경남기업 소유 베트남 랜드마크 72, 카타르 매각 주선 과정에서 계약서 조작해 59만 달러 손해 배상 판결-서울 북부지법 2016년 9월)▲사위 정실 인사 논란(차녀 반현희씨와 결혼한 사위 싯타르트 챗터지를 2016년 8월 UN고위직인 케냐 상무조정관에 임명)▲친동생 반기문 테마주 연루(반기상, 반기호등 동생들 행보에 따라 경남기업, 보성 파워텍 등 '반기문 테마주' 주가 급등락) 또한 반기문은 귀국 당시 인천공항에 특급의전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반기문은 집안 비리와 관련해 적극 부인하고,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은 한국에 대한 침뱉기이며, 정치인들이 자제해줬으면 하지만 그렇지 않아 유감이라는 의사를 전했다. 국민들은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을 통해 분노하고 실망하면서 자신들이 진짜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쳤고, 진정한 지도자를 뽑는 법 역시 알았다. 국민들이 이루는 나라의 목소리를 귀기울이며 국민들을 위한, 국민이 1순위인 나라를 만드는 리더를 뽑는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에 국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다짐한 것처럼, 청장년층의 투표를 적극 독려해 투표율을 높여 모두가 만족하는 리더를 선출해 이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고, 최고 권력자 또한 국민이라는 것을 자신들이 최고권력 인줄 아는, 오만하기 짝이없는 집권층들을 강하게 일깨워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1-25
  • 조선족 노동력 해외수출과 그 사회적 영향
    ◆ 리천국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및글로벌전략연구원) 글로벌경제시대, 경제적 요인은 인구 유동을 야기시키는 가장 주요한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노동력 수출 붐이 일게 된 것도 국내 경제개혁의 진척과 해외 국가의 인구구조와 산업 노동력수요에 기인한 것으로 귀결된다. 1979년부터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의 자주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시범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하였고 1993년부터는 본격적인 현대기업제도의 건립을 목표로, 국유기업의 경영메커니즘을 전환하고 정부와 기업의 경영을 분리하는 국유기업개혁을 진행하였다. 국가의 이런 국유기업 개혁조치에 따라 정부는 수많은 경영상황이 악화되었거나 효율성이 낮은 국유기업을 규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 재조합하거나 파산시켰다. 이는 대량의 실업자를 사회에 배출하였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에 많은 국유기업이 문을 닫게 되었고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대량의 정리해고 인원들의 재취업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였다. 특히 중국 동북지역은 수십 년간 전국의 전통적인 공업기지로 불리우면서 자동차, 강철, 기계, 화학, 석유 등 제반 제조업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경제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경영효휼면이나 생산기술과 전략 등 면에서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이로 하여 많은 중소형 국유기업이 파산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실업률은 사상 최대치에 달하게 되었다.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국가는 1960년대로부터 경제 고속성장을 이룩하여왔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확대와 더불어 빠르게 확대되는 생산에 투입될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커다란 경제소득과 임금의 격차는 초국경의 인구유동을 추진하였고 또 이러한 인구류동은 실제로 실업률 해소와 지역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조선족 지역을 예로 들면 노동력 수출을 통하여 연변지역의 인구당 저축액은 이미 길림성과 전국 평균 인구당 저축액을 훨씬 제쳤고 소비와 문화 등면에서도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하지만 20여 년간 노동력 수출 규모의 확대에 따라 이에 대응된 과학적인 관리와 제도적 설계가 부족하였고 사회적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노동인구의 해외진출은 지역의 균형적인 인구구조를 파괴하였고 노동 가능 인구의 비례를 대폭 감소시켰다. 연변지역을 봐도 조선족의 인구 비중이 연속 10여 년간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는 전 사회적으로 청년의 인구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도시보다도 농촌의 경우 이런 인구구조 특징은 더욱 선명한 바 이러한 인구감소로 인하여 조선족 농촌 마을은 점차 축소되고 있으며 빈 마을과 빈집들이 허다하다. 농촌 마을은 인력의 부족으로 하여 생기가 부족하고 농촌사회경제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청장년 노동력의 결핍은 농업기술의 보급과 응용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농촌경제를 부흥시키고 현대화적인 농촌을 건설하는데에도 불리하다. 노동력수출의 사회적인 문제는 농촌 지역 뿐만아니라 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청장년 노동력 수출로 하여 가정의 자녀교육이 소홀히 되고 있는데 이는 민족사회의 교육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기초교육은 전체 교육구조에서의 기본으로서, 기타 단계의 어떠한 교육이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 없는, 심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단계로 볼 수 있다. 기초교육을 통하여 기본적인 문화, 역사와 민족에 대하여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소질을 키우고 양호한 습관과 품질을 형성할 수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불리울 정도로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만 이를 소홀히 한채 해외 노동력 수출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초교육이 결여되고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면 이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 노동력 수출의 궁극적인 목적이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자녀의 교육을 대가로 치르는 것이 구경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일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리천국 약력]성명: 리천국(李天國) 성별: 남출생년월: 1979.7소속: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전공: 신흥국경제, 한국과 조선 경제, 중국거시경제 등학력: 한국 서울대학 경제학 박사연변대학 경제학 석사연변대학 경제학 학사경력: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조리연구원. 주요 론저: 2008 년 《키움과 나눔을 넘어서—한국경제의 미래설계》 (정덕구 저, 21세기북스, 2006년)를 공동 번역, 2005년 《대두만강지역개발》 부주필, 《新兴经济体蓝皮书: 金砖国家发展报告2014》,《印度洋地区蓝皮书: 印度洋地区发展报告2014》 등 집필에 참여. 《经济管理》,《经济地理》,《人口学刊》 등 국내외 학술지에 30여 편의 경제학 논문을 발표. 이 외에 《경제일보》(经济日报), 《상해증권보》(上海证券报) 등 신문에 경제학 관련 문장을 다수 발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1-17
  • [뒷북칼럼]‘홍콩한국국제학교’ 각종 횡령과 비리…누가 그래쓰까?
    ● 이경옥(홍콩) 홍콩 교민사회는 지난해에 불거진 홍콩한국국제학교(Korean International School, 이하 KIS) 운영과 각종 비리 문제 등으로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지난해 3월에 있었던 한국 교육부 감사 결과, KIS(한국과정)는 ▲정관 변경 및 임원 승인 처리(2008년 개정 정관, 미승인 상태) ▲국고지원금 집행 ▲학교 증축공사 시 계약∙설계∙감리 문제와 용역계약금 ▲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예∙결산 업무 추진 ▲발전기금 회계처리 ▲교원 임명 보고 절차 등 모두 11개 항목에 대해 부적정한 운영으로 징계, 경고, 시정 명령 등의 처분을 받았다. KIS 이사장은 이에 불응해 재심의 청구를 했지만, 교육부는 2016년 12월 13일 이를 기각하고 원처분을 확정(최종 처분)한다는 통보를 학교 측에 했다. 이에 따라 장은명 현 KIS 이사장(전 KIS 운영위원장)과 현 사무처장은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관련자들도 시정이나 처분 명령에 따라야 한다. KIS ‘한국과정’의 문제는 이미 일부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일부 교민신문에 의해 교내에서 일어난 사사로운 일까지 공론화가 됐다. 어차피 불거진 KIS 사태, 이제 모든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 많던 국고지원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 교육부는 재외국민 자녀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 정규과정 교육을 위해 16개국 33개 학교에 교장과 교사를 파견하고 상당한 금액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홍콩한국국제학교도 그 대상 중 하나이며 매년 한화로 10억 원 이상을 지원받고 있다. 원칙적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국고지원금은 KIS 한국과정에 재학 중인 150여 명의 학생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일부 홍콩 KIS 이사회 임원과 직원 등에 의해 이 지원금이 불법적으로 유용되어 왔다. 특히, 지난해 감사 결과 국고지원금 일부가 국제과정 운영비로 편법으로 사용되거나 집행 잔액을 한국 정부에 반납하지 않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고지원금을 빼돌린 정황이 드러나 징계를 받게 됐다. 이 같은 국고지원금의 편법 운용과 횡령행위는 최상의 교육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었던 KIS ‘한국과정’ 학생들의 권리와 기회를 박탈한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를 가로챈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KIS나 한인회(토요학교 포함) 운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교민이라면 이번에 밝혀진 비리, 횡령 행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장은명 현 KIS 이사장(홍콩한인회장), 일부 KIS 이사회 임원과 원로들, KIS 직원 등이 합세해 벌인 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대범하고 방대해져 이제는 모르는 교민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들은 횡령이나 비자금 형성을 위해 일부러 회계를 복잡하게 처리하거나 중복, 누락, 불법적 전용(사용처 임의 변경) 등의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게다가 불투명한 회계를 지적하면 나중에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흐지부지 끝내기 일쑤다. 더욱이 KIS의 경우, 학생과 학교 운영을 도맡아서 하는 학교장이 예산이나 시설 관리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으니 그들의 불법행위를 막을 도리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관이나 한국 정부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과 에너지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이들이 목적 외로 사용한 국고지원금과 집행 잔액을 모두 찾아내 국가에 반납하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현 KIS 이사장이 채용하는 직원에게 더는 KIS 행정과 회계 관리를 맡길 수 없다. 국고보조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관리할 담당자를 한국 정부가 파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KIS 증축공사 관련 비리, 횡령…묻지도 따지지도 마라? 장은명 현 KIS 이사장은 증축 당시 불공정 수의계약 문제를 지적하고 지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교육부에 항의라도 하듯 지난해 6월, 월드코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진행은 현지 실정에 맞춰서 한 일이고 이미 지난 일인데 들춰낸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게다가 (수의계약은 했지만) 당시 다양한 논의를 거쳐서 합리적으로 진행했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2012년 신관 증축공사 시 공개입찰을 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 것과 계약체결 시 계약 담당자를 이사장이나 학교장으로 하지 않고 민간사업자가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사실 등이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되자 다급해진 KIS 이사장(홍콩한인회장)은 언론을 이용해 중징계를 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지 실정에 맞춰서 수의계약을 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공금횡령에 해당하는 국고지원금이나 용역계약금 부당 지출은 현지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면 아마도 실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KIS 이사회에 역차별 당하는 ’한국과정’ 학생…국고지원금 “땡큐”, 교육 “아몰랑” 예전부터 현 KIS 이사장과 이사회 임원들이 교육보다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 보니, 돈이 되는 국제과정(=영어과정)에 더욱 공을 들이는 편이다. 최근까지도 국제과정 학생들에게는 가능하면 최상의 시설과 최신 교육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한국과정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감사 결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에 걸처 발생한 한국과정의 흑자분이 한국과정에 사용되지 못하고 국제과정 경비로 활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과정이 국제과정에 비해 여러 면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 됐다. 매년 한국 정부가 ‘한국과정’ 학생들에게 지원한 국고지원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가정해 보면, 학생들이 내는 학비를 제외하고도 1년에 한 학생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돈이 한화로 1000여 만 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전반적인 교육환경을 볼 때 지금까지 ‘한국과정’ 학생들이 그 혜택을 충분히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교육의 질을 높이고 좋은 시설에서 미래의 꿈을 펼치라고 한국 정부가 홍콩 교민 자녀를 위해 준 지원금이 지금까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였단 말인가?KIS 이사장과 이사회 임원 등은 ‘한국과정’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한국과정을 국고지원금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해왔다. 빠른 시일 내에 한국과정과 국제과정의 회계를 분리하고 학교장에게 재정권을 부여해야 한다. KIS 정관, 이사회, 행정∙회계관리 시스템…”모두 다 바꿔야 산다” 현재 한국과정 학생과 함께 300 여 명의 국제과정 학생이 재학 중인 KIS는 주인 없는 사학재단이다. 어느 한 개인이나 기관이 소유할 수 없는 이유는 1988년 소수의 교사와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가 1994년에 홍콩 정부로부터 10홍콩달러에 부지를 제공 받았고, 한국 정부 지원금과 기업의 디벤처 그리고 일부 교민(현재 보유 비중 10% 미만)들이 마련한 기금을 바탕으로 지금의 국제학교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학교는 복잡한 건립 배경, 한국 정부의 지원 여부, 상이한 교육과정과 학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거버넌스(공동운영) 체제로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운용 체제도 문제지만, 한인회(토요학교 포함) 운영도 제대로 하지 못해 원성을 사고 있는 홍콩한인회장(KIS 이사장)과 부회장(KIS 운영위원장) 1명 그리고 20명으로 구성된 KIS 이사회 임원들이 학교 운영을 도맡아 하다 보니 학교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특히, 오래 전부터 횡령과 비리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현 KIS 이사장과 일부 이사, 원로들이 학교 운영과 회계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국고보조금이나 기금의 안정적 관리는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이들이 KIS의 운영을 맡게 된 이유는 홍콩 교민이 설립한 작은 배움터가 지금의 KIS의 모체가 됐고, 교민들의 기부금이 학교 신축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고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KIS ‘한국과정’의 경우, 2008년 4월 14일 개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정관은 교육부장관의 승인을, 선임된 이사회 임원은 공관장의 승인을 받지 못해 ‘한국과정’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한국 정부 소속인 한국 교육부와 공관은 KIS 신∙증축 지원, 국고보조금 지원, 교장 및 교사 파견 등 KIS 한국과정 학생들의 교육과 학교 발전을 위해 물적∙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KIS의 협력기관인 동시에 관리∙감독 기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정의 경우, 한국 정부(교육부)와 한인회가 공동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두 기관의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KIS 한국과정 정관과 이사회 임원이 해당 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KIS 이사장(홍콩한인회장)과 임원 승인을 못 받은 이사들은 협조는커녕 관리∙감독 기관인 한국 교육부나 공관의 지시도 무시하고 주인 행세를 하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비리를 저질러왔다. 특히, 자격도 없는 일부 KIS 이사회 임원은 한국에서 파견된 학교장을 무시하고 고유권한까지 침해하는 등 각종 위법행위를 일삼아 학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처럼 협력적 거버넌스 체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개선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학교 운영을 맡길 수 없으며, 한국과정의 운영에 불법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공관과 한국 교육부 관련 기관 담당자는 KIS 징계대상이나 관련자들이 확정된 최종 처분 내용을 숙지하고 제대로 이행하는지 철두철미하게 지도∙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홍콩한국국제학교를 공금횡령이나 권력 확보 수단 등으로 이용하기 위해 똘똘 뭉쳤던 일부 홍콩한인회 임원, KIS 임원, 원로, 특정 교민신문, 특정 종교 등이 유착 관계를 깨끗이 청산해야 학교와 교민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지금까지 KIS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온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 공관, 학교장, 교민 등이 홍콩 내 한국국제학교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학교는 곧 정상화될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재외 한국국제학교가 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이 홍콩한국국제학교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7-01-1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