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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피습 피의자, 60대 전직 공무원
    [동포투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1월 2일) 부산에서 괴한의 흉기에 목을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공무원 출신 부동산 중개업자 김씨(66)가 인터넷에서 18cm 길이의 칼을 구입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이 밝혔다. 용의자의 이웃과 전 동료는 용의자의 성격이 조용하고 진지하며 지역 사회에서 매우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용의자 김씨는 오늘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을 당시 마스크를 쓰고 손이 가려져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현재 충남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 15년 동안 김씨를 알고 지낸 이웃 주민 A씨는 김씨가 민주당원이지만 정치를 논하지 않고 진지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주말에 혼자 일하는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민주당 당원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B씨도 퇴직 공무원인, 김씨는 자신이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성실한 사람이며, 평소 정치른 잘 논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무실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 C씨는 동네에서 김씨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한겨래신문은 김씨는 범행 후 이재명을 죽이려 했다고 보도했다. SNS에 따르면 이재명이 지난달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에 참석했을 때도 김씨는 만년필 들고 현장에 있었다. 부산경찰청 형사과는 김씨의 범행 동기와 사전 범행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피습 후 이재명은 내경정맥 손상으로 혈관 재건 수술을 받고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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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아이오케이, 아동복지시설 신망원과 크리스마스 파티 개최
    [동포투데이] 배우 명가 아이오케이컴퍼니(이하 아이오케이)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전했다. 아이오케이는 지난 연말 경기도 양평의 사회복지법인 신망원 어린이들을 방문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했다고 2일 밝혔다. 신망원은 1952년 설립된 아동보육시설로 사회적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들을 보호하고 양육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워내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아이오케이 임직원들을 비롯해 김태우, 데니안, 문채원 등 가수 및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아이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날 파티에는 아이들의 소감문 작성 시간도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방명록에 게재된 소감문에는 "성탄절을 맞아 맛있는 고기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잊지 않고 저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딸기도 먹고 싶어요" 등 후원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다. 아이오케이는 김성태 전 회장의 신념에 따라 신망원 봉사활동을 해마다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을 비롯한 회사 임직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연말 파티는 물론, 기부금 모금을 위한 일일 카페 등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김 전 회장은 평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개인적으로도 아이들을 후원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그는 지난 2015년부터 신망원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 아이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왔다. 현재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기부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아이오케이 관계자는 "올해도 신망원 어린이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며 "해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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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2
  • 일본 강진으로 건물 100여 채 파손
    [동포투데이]1일 오후 6시(현지시간)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해 100채가 넘는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일본 NHK 방송이 현지 행정당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이시카와현과 인접한 도야마현에서는 주민들의 피해가 보고되었다. 이시카와현 자체의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와지마시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자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 밖에 부상자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부상자는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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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1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4년 신년사 발표
    [동포투데이] 31일 중국 국제방송에 따르면 2024년 새 해에 즈음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중국이 걸어 온 범상치 않은 노정과 발전의 성과를 총화하고 2024년 국가의 번영과 창성,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걸어온 발걸음"이라는 말로 2023년 중국이 걸어 온 노정과 성과를 개괄했다. 시진핑 주석은 따뜻한 생활적 분위기와 다시 돌아온 분망함은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추구를 보여주는 동시에 활력과 뜨거운 기상으로 넘치는 중국을 보여 주었다면서 중국 경제는 계속 좋은 회복세를 보이며 고품질 발전이 착실하게 추진되고 현대화 산업체계가 더욱 완비되고 첨단화∙지능화∙녹색화의 새로운 기둥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했다. 또한 식량생산이 ‘20년 연속 풍작을 거두었고’ 녹수청산의 바탕색이 더욱 짙어 졌으며 향촌진흥에 새로운 기상이 나타났다고 시진핑 주석은 회고했다. 시진핑 주석은 C919 대형 항공기가 상업 비행을 시작하고 중국산 대형 크루즈선이 시험 항행을 완료했으며 선저우(神州) 우주비행선들이 새로운 도전에 연속 성공하고 ‘분투자’호가 극한수심의 잠수에 성공했다. 자강불식의 정신으로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중국의 곳곳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적극적으로 세계를 포용" 이라는 말로 중국이 대국의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와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일련의 홈장외교를 통해 세계 각지의 벗들을 맞이했다고 했다. 시진핑 주석은 2024년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5주년이 되는 해라며 중국식 현대화를 드팀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웅대하면서도 소박한 중국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백성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즐거운 기분으로 멋진 인생을 살고 꿈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변화하는 현 세계속에서 평화발전은 시종 주된 흐름이고 협력상생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치라고 했다. 현재 세계에는 여전히 전쟁 중인 곳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인민은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으며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인류의 전도를 마음에 품고 인민의 복지를 염두에 두고 인류운명공동체의 구축을 추진하여 더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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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31
  • 세계 최초 AI 여배우 ‘다이나믹 영상’ 공개...성인계 충격
    [동포투데이] 세계 최초 AI 섹시 아이돌 키하나 아이의 데뷔작이 어제(22일) 정식으로 공개된 가운데, 영화사 에이치엠피가 그녀의 '다이나믹 영상' 을 최초 공개했다. 키하나 아이는 지난 22일 커뮤니티에 'AI와 인간의 융합'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흰색 민소매 상의, 검은색 투명 무릎 길이 치마를 입고 있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윙크나 몸짓 모두 자연스럽고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 165cm, 몸무게 55kg, 가슴둘레 G컵으로 설정된 키하나 아이는 이미 IG, X(트위터) 등의 SNS계정을 개설해 현재 X의 팔로워 수가 만 명을 넘고 IG도 7천여 명이 팔로우하는 등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데뷔작은 어제 발매된 후 도쿄 아키하바라의 AV샵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작품들은 눈에 띄는 곳에 배치돼 다른 여배우들을 무색하게 했다. 이와 관련하여 대만 AV 전문가 일검완춘추는 "AI 미녀가 촬영한 AV가 조만간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키하나 아이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기술이 항상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느낌이 들지만 미래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져 사람들을 어리석고 불분명하게 만들지 모르겠다.〜"고 논평한 바 있다. 대만 PTT 네티즌들의 반응은 지지, 기대가 대부분이었고, 너무 가짜이고 의욕이 없다는 반응은 소수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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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3-12-23
  • '현대해상' 강훈식 의원과의 약속 불이행. 국감 면피용 발언으로 가입자들 뒷통수
    [동포투데이] 지난(11/29) 현대해상과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이하 가족연대)의 좌담회가 있었다. 이날 만남에는 강훈식 의원실과 최혜영 의원실도 동석하였다. 발달지연아동 치료비 실손 부지급 사태는 국정감사에 2번이나 오를 만큼 중대한 사안으로 강 의원과 최 의원실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사태해결을 위해 주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현대해상은 '작업치료사와 언어재활사가 시행한 치료에 대해서만 지급하겠다.', '최초 청구자 대상 고객 안내 후 최대 6개월 전원 준비기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판단됨으로 최초 청구자에 한해 최초 청구일로부터 최대 6개월 동안 자격정보 상관없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 와 '기존 청구자는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앞서 현대해상 이성재 대표가 강훈식 의원과의 좌담회를 통해 약속한 "발달지연아동 치료 관련 제도 안착될 때까지 치료사 자격과 상관없는 우선 지급하겠다."는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정감사 이후 강 의원실에서도 현대해상에게 제도적 마련안을 제출할 것을 여러차례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았고, 일방적인 언론보도를 내보낸 후 좌담회가 끝날 무렵 강 의원실에 최종 확정안을 제출하였다. 일각에서는 현대해상이 강 의원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감 출석을 면피해준 꼴이 되었다며 강 의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국회 상임위에서라도 다시 이대표를 소환하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족연대는 이날 만남에 대해 "부모들이 지난 5월부터 문제 제기하고 있는 현대해상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근거자료, 객관적인 통계 자료 등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현대해상은 '가족연대 및 의원실, 그리고 금융감독원까지도 지급 기준에 대해서 관여할 수 없다. 우리는 협상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며 "현대해상 측이 이야기를 충분히 듣겠다고 하여, 협의를 위한 자리인줄 알았으나 일방적 통보만 받았을 뿐"이라고 분개했다. ■ 계약자는 납득할 수 없는 의문점, 현대해상 답변 못해 앞서 금융감독원 뿐만 아니라 현대해상에서도 민간치료사가 의사의 지도하에 '단순보조'한 경우라면 실질적으로는 의사의 의료행위로 실손보험의 보상 대상에 해당될 수 있다 판단한 바 있다. 가족연대는 현대해상에게 '의사의 주도적 치료 기준'에 대한 재차 질문하였으나 기본적인 답변 조차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현대해상은 여러 언론사를 통해 발달치료비 지급률이 98%라며 억울함을 내비친 바 있어 이에 대한 증빙을 요구하자 현대해상 관계자가 '작업치료사가 한 신경발달중재치료 대한 수치'였음을 언급하였다며 '이는 대부분 작업치료사가 행한 감각통합 치료에 대한 수치일 뿐으로 보인다. 통계를 이야기 하려면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월별, 치료과목별 청구금액과 지급금액을 제공해야 맞다.' 이는 언론사를 통한 말장난에 불과 한 것이라 주장했다. 가족연대는 그 밖에도 전체 계약자들이 '민간자격사의 치료일지라도 대학병원은 추가서류 요구없이 지급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바 있는데 불구하고 이번 만남에서는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과 의원급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하는 등 어느 것 하나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탄식하였다. ■ 현대해상, '불법vs정상병원의 기준도 없어' 현대해상은 일부 불법 사무장 병원의 사례를 내세우며 민간자격자의 실비보험 부지급의 정당성을 내세워왔다. 이에 가족연대측은 "보험계약자는 병원의 불법적인 내부 계약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현대해상에서 불법 브로커병원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자 현대해상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병원은 보험계약자인 부모님들이 잘 아실 것, 회기기록지상 치료사가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민간가격자가 치료를 하는것을 (확인하여 불법임)알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했다. 현대해상은 다수의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보험계약자들을 정상적인 의료기관으로 전원 안내할 것이라며 '정상적인 의료기관은 현행법상 의료행위 근거가 있는 의사, 치료사(언어재활사·작업치료사)가 치료하는 기관'이라고 자의적으로 정의하였다. 이에 한 병원 관계자는 "민간치료사가 근무하는 병원이 대부분인데, 놀이치료를 시행하는 병원을 모두 잠재적 불법 병원이라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심각한 의료권 훼손을 우려했다. 가족연대는 환자가 의사를 선택하여 치료를 받을수 있는 치료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개탄했다. ■ 민간치료사의 국가자격화 발달지연 치료비 실손 부지급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 발달치료를 중단하거나 의사가 처방한 치료횟수보다 적게 줄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가족연대측은 "현대해상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등의 치료사 자격이 국가자격화 될 경우 실손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며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등 민간치료사 단체에서도 국가자격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지연아동들의 치료 골든타임은 속절 없이 흐르기만 해서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읍소했다. 가족연대는 사태를 해결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겠다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및 강 의원실과 민간자격치료사의 국가자격화를 위해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고 밝혔다. 매년 대규모 성과급 파티로 이름을 올렸던 현대해상은 이러한 논란속에서도 3분기 당기순이익은 2,89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1.1% 증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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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4
  • 5060 신중년 페스티벌 '동행' 힐링콘서트 성황
    [동포투데이] 서울시와 트로트 황태자 '신유', 강연계 BTS '김창옥' 교수 등 스타들이 함께한 5060 신중년 페스티벌 '2023 동행 힐링콘서트'가 서울 중랑구 소재 진광교회에서 성황리에 폐막했다. 서울특별시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5060 신중년 및 어르신들에게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하고 이웃과 '동행'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시민참여 문화축제로, 지난 9일 진광교회 이성주 위임목사, 서영교 국회의원, 이영실 서울시의원 등 관계자들과 지역사회 주민들, 취약계층, 어르신 등 1,000여명의 관객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개회사를 맡은 진광교회 이성주 목사는 "서울시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에게 더 높은 퀄리티의 문화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며 "마련된 여러 프로그램들이 많은 분들에게 따뜻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마음치유 토크콘서트'는 EBS 60분 부모, TVN 어쩌다 어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TV방송·유튜브 스타강사로 활약중인 '강연계 BTS'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특별강연이 펼쳐졌다. 김교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자'는 주제로, 중장년층 인간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 극복 방법에 대해 특유의 재치있는 화법으로 관객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냈다. 이어서 축제 메인행사인 '트로트 힐링 뮤직콘서트'에서는 국민가수 임영웅의 롤모델로 알려진 원조 트로트 황태자 '신유'가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 속에 무대에 올랐다. 마음을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로 '시계바늘', '일소일소일노일노', '잠자는 공주' 등 대표 히트곡과 미공개 신곡을 발표하며 열창해 관람객들의 떼창과 파도타기가 이어졌다. 노부모님과 참여한 신영숙(47세·여·가명)씨는 "부모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가수의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돼 행복하다"면서 "코로나 이후로 이웃과의 왕래도 줄어들면서 많이 적적해 하셨는데, 좋은 이웃주민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올해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웃들과 동행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화제다. 가장 인기 있었던 체험은 △향초공예, △바둑 원포인트 레슨, △실버 목공체험으로 시민 참여도가 높았다. 어르신들이 심신안정에 좋은 시나몬 캔들을 직접 만들어 보고, 이웃주민들과 함께 원하는 모양의 편백나무 도마도 제작해 보는 이번 힐링 이벤트는 어르신들과 중장년층으로 북적였다. 이번 '동행' 힐링콘서트는 5060 신중년층과 어르신들이 하나 되어 서로 공감하고,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는 희망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 마련한 세대화합 축제로,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사회 통합 축제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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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 연길국제공항 이착륙 시간표
    연길국제공항 이착륙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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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2
  • [포토] 연길조선족민속원
    [동포투데이] 왕홍챵(网红墙)부터 조선족민속원까지, 연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정교한 화장과 색다른 민족의상, 웃음 가득한 젊은 얼굴들은 소도시 연길의 아름다운 풍경선이 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왕홍도시(网红城市)’로서 연길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현지 당국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현재 이곳 한복대여점은 연초 102개에서 현재 573개로 증가했다. 민족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변방의 소도시는 싼야, 리장 등 도시에 이어 국내에서 또 하나의 여행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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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역사유물-청자학구름무늬박이병
    [동포투데이]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적재능이 깃들어 있는 역사유물 중에는 청자학구름무늬박이병도 있다. 청자학구름무늬박이병은 고려시기의 어깨가 넓은 매병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맑은 유약이 입혀진 병에는 풍만하고 넓은 공간에 어울리게 구름과 학이 무늬박이기법으로 훌륭히 장식되었다. 뭉게구름들이 피여오르는 사이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학의 힘찬 모습을 실감있게 묘사하였는데 이는 이 작품이 무늬박이청자의 전성기에 창작된 것임을 보여준다. 청자학구름무늬박이병은 11~12세기 고려청자기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의 하나이며 중세도자기공예사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적재부이다.(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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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5

사람들 검색결과

  • 세계급 중국 조선족 무용가 김성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많은 사람들이 중국 유명 무용가 김성(金星)을 알지만, 그녀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 무용수 중 한 명인 김성은 25세의 나이에 벨기에 왕립 무용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1995년 이미 유명해진 김성은 군구(軍區)예술단에서 퇴직하고 북경향산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은 장원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김성'으로 촬영되었다. 23세에 장가들어 28세에 여자로 태어난 김성은 38세에 독일인 한스와 결혼했다. 현재 54세인 그녀의 인생에는 전설로 가득 차 있다. 김성은 1967년 선양의 한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남자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시키자 김성은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이때부터 김성은 자신의 성 인식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아홉 살 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학교 문예선전대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군구(軍區)예술단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로부터 김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던 미에 대한 향수가 늘 여성스러움을 깨닫게 되었다. 1985년 군사훈련 멘토 송소원이 제1회 전국 타오리컵(桃李杯) 무용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대회 경험이 전무했던 김성은 탄탄한 기반과 뛰어난 재능으로 400여명이 출전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용 ‘목가’로 청소년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에서는 최초로 발레화 없이 발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됐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겠다는 결심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성별의 정체성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내가 언제 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1986년 광둥현대무용학교에서 국비유학생을 미국에 보내려 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그는 무작정 광둥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2년 뒤 뉴욕으로 건너가 무용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캐롤라인과 첫 결혼을 했다. 1993년 김성은 귀국 후 중국문화부가 주최하는 전국 현대무용수련반에 초빙되어 중국 현대 무용의 창시자가 되었다. 1995년 영혼과 육체의 분열은 그에게 큰 문제를 가져왔다. 김성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장악하기로 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결심 했다. 김성의 결정은 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같은 자식이라며 수술이 건강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말했다. 1999년 김성은 개인의 이름을 딴 중국 최초의 민간 무용단인 '상해김성무용단'을 창단했다. 중국에서 국제 공연 티켓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은 '상해김성무용단'과 '중국곡예단' 두 곳뿐이다. 2004년 무용단을 이끌고 유럽 순회공연을 마친 김성은 귀국길에 독일 신사인 한스를 만났다. 한스는 독특한 동양 여성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다. 1년간의 소통 끝에, 그들은 결혼의 궁전에 들어갔다. 결혼 후 세 아이를 입양한 김성은 이젠 엄마와 딸, 그리고 아내가 되어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성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는 심리적 인내를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지침을 제공하는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심리의사와 같다. 김성은 오직 실력만이 유언비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진지하게 춤을 추고 있으며 그녀의 유럽공연 티켓은 구하기 어려울정도다.
    • 사람들
    2021-07-12
  • 조선족 환자 위해 한국어 배운 의사 선생님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최근 베이징 지슈이탄(積水潭)병원 안과 병동에 특수 백내장 환자가 입원했다. 환자는 90세 고령의 조선족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지 않으며 중국어 대화도 불가능하다. 할머니는 입원하는 동안 딸에 의해 보살핌을 받아왔다. 환자의 딸은 의료진과의 소통을 돕는 '번역기'로 활용할 수 있지만, 가족은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어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에는 언어 장벽이 큰 문제가 된다. 언어 부족으로 수술에 협조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담당 의사 우이(吳怡)는 수술 전 가족들과 반복적으로 소통하며 수술 중 환자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 환자가 수술 과정을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의 가족들 또한 환자에게 협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종이에 필요한 문구를 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안구 수술의 경우 수술 전 소독을 하려면 환자가 눈을 감아야 하고 수술 중에는 수술 도구가 환자의 눈 안에 있기에 환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므로 유일한 방법은 언어 소통뿐이다. 고민 끝에 우이는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수술 중 환자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는 단어를 정리한 후 가족들에게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어 기초가 전혀 없는 그는 발음을 중국어 병음으로 표기하고, 어구의 악센트와 멈춤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 연습한 뒤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며 환자와 소통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가족들은 억양 때문이라고 우이에게 말했다. 우이 역시 중국어 병음을 병음해 만든 음조가 원음과 크게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우이는 조선족 친구에게 연락해 '보충수업'을 부탁하며 한마디씩 공부했다. 몇 마디가 아니었지만 정확한 발음을 만들고 모두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날 저녁 공부를 마친 우이는 친구들에게 각 문장의 정상 속도와 느린 버전을 녹음해 검토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수술 당일 우이는 중국어 병음으로 표기한 한국어 문구가 적힌 종이를 수술실 벽에 붙이고 친구가 녹음한 '한국어 속성 교재'를 몇 차례 복습한 뒤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들은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온 할머니에게 수술 침대로 옮기라고 손짓했지만 할머니는 간호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침대차 위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술을 집도한 탕사오화(唐少華)는 우이에게 그동안 학습 성과를 시험해 보라면서 한국어로 환자와 소통하라고 했다. 우이가 환자에게 한국어로 말하자 할머니는 그녀를 쳐다봤지만 옮기지 않았다. 이에 우이는 한국어로 계속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탕샤오화는 우이에게 다시 해보라고 격려했다. 할머니가 청력이 좋지 않아 잘 못 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탕샤오화의 격려에 우이는 환자의 귓가에 대고 두 번 더 큰소리로 말했고 할머니는 결국 움직여 침대차에서 수술 침대로 옮겼다. 이어진 소독과 수술 도중에도 수시로 한국어가 울려 퍼졌고 환자는 우이의 지시에 따라 긴장을 풀고 의사와 호흡을 맞춰 가면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 사람들
    2021-06-30
  • 中 성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동포투데이]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 짜기 노래’,‘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붉은 해 변강 비추네’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원로가수 방초선 선생은 지난 7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국가 1급 성악가인 방초선 선생은 연변에서 북경, 전국, 나아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높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국무원에서 수여하는 “정부 특별예술가”칭호를 받은 방초선 선생은 “중국 예술가 사전”과 “중외 여성 명인 사전” 등 사전에 약력이 수록될 만큼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1932년 조선 김책시에서 출생한 방초선은 여덟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왕청현으로 이주했다. 마을의 꾀꼴새로 불리던 그는 일본유학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외국 노래를 배우고 불러 늘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15살 나이의 방초선은 길동군분구 문공단의 선전대원으로 성장하였다. 1949년 연변가무단 전신인 연변문공단이 세워지면서 방초선은 연변문공단에 전근하여 독창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에서 화려한 데뷔를 했다. 1957년, 방초선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청년연환축제 음악콩쿠르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삐어난 목청과 춤사위로 방초선은 ‘처녀의 노래’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은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 후 방초선 선생은 공장, 광산, 병영, 향촌 그리고 변방의 방방곡곡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겼고 열정과 희망을 안고 북경 최고 음악학부에서 성악공부를 계속하였다. 방초선 선생의 음악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을 말하면 인생 동반자인 남편 왕개평 선생이다. 1975년 방초선 선생은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중앙방송예술단에 전근되어 독창 가수와 성악교원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갔다. 이 기간 방초선 선생은 북경, 연길 등 지역에서 개인 독창음악회를 가졌고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북경, 상해, 남경, 중경, 연길, 카나다, 미국, 일본, 한국 등 국내외를 순회하면서 80차의 음악회를 개최했다. 많은 사람들은 방초선 선생을 보고 선천적으로 좋은 목청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그는 한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목소리 가꾸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방초선 선생은 음악은 자신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무대위에서 빛났던 그의 70여 년의 예술 생애를 돌이켜보면 실로 수많은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그의 고운 목청을 타고 ‘명곡’으로 탄생했다.
    • 사람들
    2020-09-20
  • 12년의 젊음을 과외교육에 바친 오미화 씨
    [동포투데이] 오미화 교원(41세)은 조선족 교육사업에 대한 불타는 신념과 의력으로 장장 12년동안 과외교육에 몸과 마음을 이바지하고 있다. 1997년 9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사범분원 한어문(중국어)전업을 졸업한 오미화는 선후로 왕청림업국 조선족학교에서 4년,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6년동안 활약하면서 번 돈으로 연변자치주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대한 일편단심과 전력투구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어 학부모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 오미화 교원 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한 첫해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양부모가 없는 어린이 8명, 홀부모어린이 10명, 한족 어린이 9명으로서 한족, 결손가정 어린이는 인수의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결손가정 어린이들은 친척 집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우울하고 괴벽했다. 오미화는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늘 사랑으로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하나하나 녹여주고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이를 가고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늘 집에 가 거짓말을 하여 노인이 교원을 오해하게 하였고 노인이 간혹 어린이의 필기장을 들여다보고는 전후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담임교원만 탓했다. 오미화는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보다 우선 어린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부터 찾기에 노력했으며 정황을 상세히 요해한 후에는 평소보다 더 따뜻한 사랑을 몰 부었다. 차츰 우울하던 어린이는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고 학급활동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하루는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오면 꼭 선생님께 고운 옷을 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오미화의 마음을 울려놓기도 하였다. 오미화는 어린이들의 정황을 요해하기 위해 늘 여유시간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이들 특히 결손가정 어린이들의 심리를 장악하였으며 자그마한 우점이라고 보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주먹이 세고 남의 음식을 잘 빼앗아먹고 수업시간 규율을 지키지 않았으며 다른 애들이 벗어놓은 신을 변기에 처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반급 청소와 좋은 일을 하는 습관도 있어 오미화는 이와 같은 우점을 칭찬하면서 남을 때리고 욕하는 나쁜 습관만 고치면 반장감이라고 하였더니 그 애는 신심과 용기가 생겨 나쁜 습관을 차차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 어린이가 된 감기에 걸려 학습센터에 오지 못했을 때에도 오미화는 학급 어린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담은 과일 구럭을 들고 찾아가 집단의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이 어린이는 학습과 생활면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왔으며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제껏 반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미화의 엄마와도 같은 사랑에 받들려 많은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제 궤도에 들어섰고 마음껏 배움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의 매 하나의 성적과 진보에 학부모들은 너무도 고마워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오미화의 좋은미래강습과외학습센터는 처음의 50평방미터로부터 300평방미터로 늘어나고 어린이도 처음의 50명으로부터 지금의 150명으로 늘어났으며 교원대오도 처음의 2명으로부터 지금은 10명으로 늘어났다. 이외에도 오미화는 빈곤 어린이들의 학비는 면제해 주거나 1년에 300, 500위안씩 면제해 주어 학부모들의 뒷근심을 덜어주고 있으며 왕청현회중아동애심협회, 왕청현애심어머니협회에도 해마다 500, 1000위안씩 기부하고 있다. 오미화는“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교원 사업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고 학부모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백배로, 천배로 되는 힘을 얻게 된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후대 양성사업에 혼신을 다 바쳐가고 있다.
    • 사람들
    2020-07-11

오피니언 검색결과

  • 사람들은 왜 좋은 이름에 집착할까
    ●김희수(중국)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개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초에 그 이름을 지었을 때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아름다운 축복이 깃들었을 것이다. 부모가 고민하면서 숱한 이름 가운데서 골랐을 좋은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놀려준다거나 흔한 이름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남이 고치니 덩달아 고친다거나 또는 이름을 고쳐야 출세한다는 점쟁이의 말을 믿는다거나 등등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겠지만 과연 이름을 고친다고 운명이 달라질까? 모택동은 1947년 3월 13일에 호종남(胡宗南)이 쳐들어왔을 때 연안을 떠나야 승리한다는 뜻인 리득승(离得胜)과 음이 같은 리덕승(李德胜)으로 개명했기에 전국을 해방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대립(戴笠)은 사주팔자에 좋다는 우롱(雨农)이라고 개명했지만 결국 좋은 끝장을 보지 못하고 1946년 3월 17일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빗속(雨中)에서 죽었다.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들은 이름을 잘 지어서 출세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이름을 지을 때 출세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으면 출세는 근심하지 않아서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동성동명이 많다. 그러나 같은 성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 해도 운명은 서로 다르다. 동성동명이라고 해도 출세한 사람과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장수한 사람과 단명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이름 탓이 아니다. 한마디로 성공한 사람들이 이름을 잘 지어서 출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이름 하나 잘 지어서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이 없다. 물론 개명한 후 성공했거나 출세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개명한 후 손 놓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면 출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이름을 지어서 출세한 것이 아니다. 반면에 개명 후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부모의 마음 지극히 옳은 것이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명하려는 사람의 마음도 나무람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름에 너무 집착해 자주 개명하려고 하고 일이 뜻대로 안되면 이름 탓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만은 바꿔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고 충족시키는 좋은 이름은 없다. 절대적으로 좋은 이름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름이 좋다고 너도나도 그 이름을 지으면 중복이 생기고 개성이 없어지게 된다. 작명소가 생겨나고 이름 짓기에 도움을 주는 이름 짓기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좋은 이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은 이름일 뿐 운명을 개변하지 못한다. 운명을 개변하는 것은 좋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두 손이다. 이름 없이 마당쇠로 살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이름 석 자로도 모자라 자, 호까지 달고 숱한 별명까지 길게 붙여서 자신을 나타낸 사람들도 있다. 이름이 없건 이름이 하나이건 이름이 여러 개이건 또는 좋은 이름이건 수수한 이름이건 모두 죽으면 후세에 이름이 남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그 이름도 사라진다. 이름을 바꾼다고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이름으로 개명해도 자신의 노력이 없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명의 좋은 점도 있다. 이름을 바꾸면 자신심이 생겨날 수 있다. 이제야 자아를 찾은 것 같고 이제야 진정한 내가 된 것 같아 날것만 같은 심정 일수 있다. 이런 자신심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려면 자아도취에 취해 꿈만 꾸지 말고 꾸준한 노력의 날갯짓을 힘차게 해야 한다. 개명이 헛되게 되지 않으려면 원대한 포부는 아니어도 자신만의 당찬 포부를 품고 참다운 인생관을 세우고 자신의 웅대한 목표를 위해 꾸준히 날갯짓을 해야 좋은 이름에 걸맞은 결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3-21
  • 연변조선족자치주부련회 초대주임 김찬해
    ●림승학 김찬해는 1905년 4월,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2년 가을에 서울 동덕여자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그 학교의 진보적인 교원 권태희는 학생들에게 여성해방과 사회주의 사상을 비밀리에 선전하였다. 이것은 김찬해가 처음으로 접수한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권태희교원의 지도하에 김찬해는 점점 각성하기 시작했으며 “여성동지회”,“여자청년동맹” 등 진보적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1926년 봄 서울 동덕여자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8년 봄까지 2년 동안 동덕여자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이 기간에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초기 혁명 활동가였던 고광수였다. 그의 직접적인 교양 하에 김찬해는 1926년 조선공산주의청년회에 가입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맑스-레닌주의를 알게 되었고 소련 사회주의혁명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조직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독서회와 웅변모임을 조직하였으며 이련 모임에서 청년들과 특히 여성청년들에게 반일민족독립에 관한 선전활동을 적극 벌리였으며 소련 10월사회주의혁명에 대해 많이 선전하였다. 하여 그는 점차 공산주의 혁명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28년 겨울의 어느 날, 조선조선공산주의청년회의 책임자 고광수는 김찬해를 찾아 담화하였다. “조선공산주의청년회에서는 동무를 모스크바동방대학에 보내어 학습시키기로 하였소. 모스크바는 우리들이 동경하는 무산계급의 서울이요, 그곳에 가서 학습을 잘하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혁명사업을 본때 있게 벌리기를 희망하오” 이 말을 들은 김찬해는 몹시 격동 되였다. “꼭 조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혁명의 진리를 학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고광수의 손을 굳게 잡았다. 조직의 희망과 기대를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기고 그는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동방대학은 제3국제에서 동방 각국의 혁명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간부학교이다. 이 학교에서는 주로 동방 각국 공산당에서 추천한 우수한 혁명가들에게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가르치고 지하공작에 필요되는 각종지식과 기술을 배워주었다 김찬해는 1932년까지 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그 기간 동만 지구에서 들어간 청년혁명가 림민호동지와 한 반급에서 공부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1929년 겨울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1932년 9월, 김찬해와 림민호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조선의 함흥과 흥남지구에 나가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라는 비밀임무를 맡았다. 조선에 진정한 맑스-레닌주의 당을 건립하자면 우선 그 기초로 될 수 있는 노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김찬해와 림민호는 먼저 조선에 나가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을 지도하여 이 과업을 완수하여야 했다. 1933년 2월, 김찬해는 한살 반 밖에 안 되는 첫 아이를 국제고아원에 맡기고 모스크바를 떠나게 되었다. 3월 22일 김찬해는 울라지보스또크에 있는 연락부로 사업보고를 왔던 남편 림민호를 만났다. 그때 김찬해는 자기 이름을 최성려로 고치고 농민차림을 하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함흥과 흥남지구로 들어갔다. 림민호의 지도하에 함흥과 흥남지구의 적색노동조합의 조직사업은 활기를 띠였고 그 대오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처럼 사업이 한창 진척되고 있을 때 한 반역자의 밀고로 림민호는 일본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김찬해는 울라지보스또크로 들어가 연락부에서 사업을 하다가 조직의 파견을 받고 다시 조선에 나가 지하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1월 그도 한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경찰서에 체포되어 4년징역 언도를 받았다. 1939년 만기 석방된 김찬해는 그 이듬해 만기 석방된 림민호와 함께 중국 길림성 화룡현 등지에서 생활하면서 당 조직과 항일유격대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있다가 해방의 날을 맞게 되었다. 1945년 8월 9일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소련군이 연변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일본침략자들이 망할 날이 닥쳐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감격과 흥분에 넘쳐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때 그들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8월 12일 밤, 돈화의 일본헌병대놈들이 김찬해네 집에 뛰어들어 그들 부부를 체포하여 돈화감옥에 가두었다. 그놈들은“전시치안법”에 근거하여 이른바“위험분자”들을 구류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세 살밖에 안 되는 둘째 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유치장에 구류되어 고생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은 무조건투항을 선포하였다. 이날 감옥에서 나온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홍군이 돈화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쳐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그들 부부는 몇몇 진보적 인사들과 함께 소련홍군을 환영하는 활동을 벌리고 돈화 중심거리에다 “위대한 해방자 소련홍군 만세!”,“쓰딸린 만세!” 등 구호를 러시아어로 써서 붙이였다. 8월 19일 소련홍군이 돈화에 들어오자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군사령부에 찾아가 자기소개를 하고 소련군을 협조하련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 소련홍군사령부에서는 일찍 모스크바동방대학에서 학습하였고 러시아어를 잘하는 김찬해와 림민호에게 사령부의 번역원 겸 연락원 직무를 맡겼다. 이때로부터 그들 부부는 소련홍군을 협조하여 일본군과 위만군부대의 무장해제, 치안유지, 토비숙청 등 사업에 바삐 보냈다. 해방직후 시국이 혼란한 시기에 괴뢰만주국경찰과 그 주구 등 사회의 찌꺼기들이 돈화현 각지에서 토비무장을 조직하여 행패를 부리면서 국민당 중앙군이 돈화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호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무장대오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인정한 그들은 진보적 인사들로 돈화에 “해방동맹”이라는 혁명군중조직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1945년 9월 20일, 돈화영화관에서는 림민호의 사회 하에 100여명 대표가 참가한 돈화현 민중대표회의가 열리였다. 대회에서는 림민호를 위원장으로 하는“돈화현해방동맹”의 성립을 선고하였다. 그때 김찬해는 해방동맹 산하의 여성해방동맹의 책임자로 당선되었다. 그는 광범한 여성들을 조직, 동원하여 토비숙청, 전선지원사업에 모든 심혈을 몰 부었다. 1945년 10월, 김찬해는 상급의 지시에 의해 길림시에 들어가 길림성부녀동맹과 길림시 부녀동맹에서 지도사업을 맡고 부녀사업에 종사하였다. 1946년 11월에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 후 중공길림성위와 길림성정부가 연길시로 옮길 때 김찬해도 연길로 전근되어 연변의 부녀사업을 책임지고 진행하였다. 1949년 12월, 그는 중국공산당 연변지방공작위원회 부녀공작회 부서기로 임명 되였으며 1952년 9월부터 1955년 5월까지 연변조선족자치주부련회(부녀연합회)주임사업을 맡았다. 하여 그는 연변주부련회의 초대주임으로 되었다. 이 기간 그는 중공연변지방위원회 지도하에 광범한 여성들을 조직, 동원하여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을 지원하고 생산을 복구 발전시키고 증산절약운동을 하는 가운데서 연변여성의 위력을 충분히 과시하였다. 하여 연변여성들 가운데는 리옥금, 김신숙, 동정숙 등 이름난 여성모범과 영웅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그는 여성해방사업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바 남녀평등을 쟁취하고 여성들의 주인공적 의식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리였다. 1950년에 공화국 첫 혼인법이 반포되자 그는 각급 부녀조직을 발동하여 혼인법을 관철하고 실시하는 가운데서 매매혼인, 일부다처제, 민며느리 등 봉건적인 속박에서 괄시받고 천대받던 많은 여성들의 각성을 높여 주었으며 그들에게 출로를 주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줌으로서 연변여성들의 인격상 존중을 받고 남녀평등을 실시하는데 토대를 닦게 하였다. 그리고 각급 당 조직과 정부에 의거하여 야학을 꾸리고 문명퇴치활동을 활발히 벌려 연변의 부녀사업이 활기를 띠도록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부녀사업에 종사해온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김찬해동지는 여성 활동가로서 사업책임심이 강하고 소박하며 많은 여성간부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1955년 5월, 김찬해는 조직의 수요로 연변사범학교의 제1부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벌써 50세가 넘었었다. 매일같이 한복 옷차림을 하고 학교로 출근할 때면 많은 교원과 학생들은 숭경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곤 하였다. 한것은 그가 연세가 많은데다 또 덕망이 높고 사업을 빈틈없이 밀고나가 학교를 명실이 부합된 “원예사의 요람”으로 꾸린데 있었다. 특히 그는 나젊은 교원과 학생들을 친 자식마냥 따뜻이 대해주고 그들의 애로를 제때에 풀어주어 많은 교원과 학생들은 그를“어머니 교장”이라고 다정하게 불렀다. 김찬해가 사범학교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양성해 낸 학생은 무려 1000여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지금 연변은 물론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각지에서 교육사업골간으로 활약하고 있다. 1960년 여름 그는 사업의 수요로 학교를 떠나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정처 부처장, 자치주 시찰실 시찰원 등 직무를 맡았다 이때 그는 벌써 60이 가까운 할머니였지만 당의 사업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기층에 내려가 조사연구 사업을 하면서 걸리는 문제는 제때에 풀어주어 기층간부들의 환영을 받았다. “문화대혁명”기간에 그는“반역자”,“소련특무”라는 얼토당토한 감투를 쓰고 박해를 받다가 1972년 12월 22일, 그 억울한 누명을 벗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중공중앙위원회 제11기 제3차전원회의 후 당 조직에서는 그에 들씌였던 누명을 벗겨주고 장중한 추도회를 진행하였다. 추도회 후 김찬해의 유골은 림민호의 유골과 함께 화룡현 흥성촌 뒷산에 모셔졌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12-26
  • 송미령이 사귄 남자들
    미국 웰즐리대학의 기록보관소에는 송미령의 처녀시절 서한들이 소중히 간직되어있다. 그 서한에 따르면 송미령이 장개석과 결혼하기 전에 적지 않은 청혼자들이 있었으며 송미령자신도 좋아하던 남자들이 있었다. 이 서한들은 송미령이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의 동창생 이였던 밀스(米尔斯)에게 보낸 것이었다. 송미령보다 4살 연상인 밀스는 그녀의 일생에서 단짝 친구였다. 송미령의 처녀시절의 편지 중에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고 언급했던 남자들이 지금에 와서 누구인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출현으로 하여 송미령은 사랑과 혼인에 대해 많은 사고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인생가치를 추구한 마음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1917년 6월에 송미령은 웰즐리대학을 졸업한후 오빠 송자문과 함께 귀국했다. 여객선에서 송미령은 “Mr.Van Eivigh”이라는 “운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 남자는 건축사였는데 아버지가 화란사람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사람이였다. 배우에서 10여 일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가 송미령에게 청혼했을 때 19세의 송미령은 마음이 움직였다. 상해에 돌아온 후 그녀의 혼인문제는 부모의 간섭을 받았다. 송미령의 아버지 송요여는 비록 미국유학을 다녀온 선교사였지만 어머니 예계진은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여성으로서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독교신자였다. 그들은 19살밖에 안되는 딸을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외국인에게 시집을 보내고싶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 때문에 송미령은 정서가 저락되어있었고 혼인문제에서 매우 비관적이였다. 1917년 8월 16일에 밀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송미령은 이렇게 썼다.“나는 집에만 있고 싶었고 결혼하고도 싶지 않았어요. 특히 제가 전번 편지에 언급했던 배위에서 만난 그 운명의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남자들과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명성과 금전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부모의 반대 때문에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남자와의 연애가 끝나버렸다. 그 때문에 부모와 크게 싸운 송미령은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갓 귀국한 송미령은 자신에 대한 부모의 “관심”에 적응되지 못했다. 그녀는 토라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시했다. 사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송미령은 한 남학생에게 호감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대학 2학년에 올라간 후에는 더는 그 남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10년간의 유학생활을 하면서 송미령은 독립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 후 며칠이 안 되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성친구 HK와 양선생이 북경에서 송미령을 찾아왔다. HK군은 2년동안 송미령을 추구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언약을 한적이 있었고 송미령도 상대방을 좋아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귀국 후 송미령은 그와 헤어졌다. 1918년 1월말에 HK는 또 북경에서 송미령을 보러 상해로 왔다. 송미령의 어머니는 딸이 그에게 시집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몇번 대면한 후 송미령은 다시 그와 만나는 것을 거절했으며 HK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파티에 출석하는 것을 피했다. 송미령이 냉대했지만 HK는 포기하지 않았다. 송미령을 접근하기 위해 그는 송씨가문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당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검질기게 달라붙자 송미령은 화가 나서 교회당으로 다니지 않았다. 후에 두 사람은 만나도 서로 말도 걸지 않았다. 이렇게 친구가 낯선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HK의 끈질긴 애정공세는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송미령의 반감을 야기시켰다. 그때로부터 송미령의 편지에는 그녀를 골치아프게 한 HK가 다시는 언급되지 않았다. HK를 거절한 시기인 1918년에 두 남자가 선후로 송미령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중 한 사람은 미국유학을 다녀왔지만 이미 결혼한 남자였다. 송미령은 자신이 유부남을 사랑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1918년 4월에 송미령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한편 유부남을 사랑하면서 그와 결혼할 수 없는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1918년 5월초에 송미령의 아버지 송요여가 신장병으로 사망되어 온집식구는 한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기간에 송미령은 혼인에 대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는 꼭 결혼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의연히 이성과 정감,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어떤 때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기혼남자한테 시집을 가려고 시도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편벽한 곳으로 가서 원시생활을 하려고도 생각했다. 또 어떤 때는 그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한테 시집 가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도 했다. 물질생활의 풍족과 혼인문제에서의 끊임없는 흔들림이 송미령으로 하여금 무료한 느낌을 받게 했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1918년부터 송미령은 더욱 실제적 의의가 있는 사회사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조건이 우월하고 지식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이 많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송미령이 우수한 남자들을 하나하나 거절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임자 있는 꽃이 아닐가고 의심했다. 요언은 그렇게 생겨났다. 1919년 7월 14일에 송미령이 밀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상해라는 이 도시에서는 가는 곳마다 내가 이미 약혼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게다가 소문마다 내가 약혼했다는 상대는 다른 남자였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내가 약혼한 남자가 도대체 어느 남자인지 몰랐습니다. 더욱 우스운 것은 나와 약혼했다고 소문난 그 남자들은 누구도 소문을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송미령의 어머니 예계진은 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돌자 그해 6월부터 딸이 어떤 남자친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2개월이 지나자 소문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몇몇 옛친구들이 송미령이 약혼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들이대며 귀찮게 굴었다. 그때문에 그녀는 매우 괴로왔다. 그녀는 그 남자들이 매우 좋은 친구라고 여겨 단지 친구로 지내기 싶었을 뿐이지 그들과 우정을 초월한 사이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부터 1921까지 송미령이 밀스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 2년동안보다 적었으며 연애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게 언급했다. 다만 1921년 5월 25일에 보낸 편지만은 예외였다. 그번 편지에서 송미령은 친구에게 버니라고 부르는 남성에 대해 언급했다. 송미령이 버니와 연애한다는 말을 들은 부모는 화를 내면서 견결히 반대했다. 버니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송미령은 버니를 특별히 좋아했다. 전에 만났던 모든 남자들보다 더 좋아했다. 심지어 최근에 약혼까지 한 그 사람보다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송미령은 알고있었다. 버니와의 관계는 우정을 초월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송미령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 가정은 보수적이어서 가족의 순결한 혈통을 유지해야 된다고 엄격히 규정했기 때문에 죽어도 내가 외국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버니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단념했습니다.” 송미령은 버니와의 연애사실을 말하면서 밀스에게 현재 다른 한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바로 그녀가 최근에 약혼한 그 남자였다. 이 편지는 송미령이 처녀시절에 보낸 편지 중 애정문제에 대해 언급한 마지막 한통의 편지였다. 자신이 특별히 좋아한다고 했던 버지는 부모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포기했던 것이다. 그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는 우수한 남자의 사랑을 송미령이 받아들였는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 송미령은 오래동안 사랑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혼인에 대해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돈이 있고 능력이 있고 신분이 있고 교양이 있는 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용기가 없었다. 처첩이 있는 군인출신의 정치인 장개석이 나타날 때까지… 1927년은 바로 송미령과 장개석이 사랑하고 결혼을 한 중요한 한해였다. 송미령은 밀스에게 한통의 편지도 써보내지 않았다. 장개석과 결혼한 후인 1928년 1월에 송미령은 남경에서 “장개석의 부인”의 명의로 밀스에게 한통의 편지를 써보냈다. 편지에서 그녀는 결혼정황과 혼인에 대한 그들부부의 부동한 견해에 대해 언급했다. 비록 신혼시절에 의견차이가 있었고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의견차이와 갈등은 그녀와 장개석의 근 50년에 달하는 혼인생활에 조금마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번역 : 김희수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12-23
  • 조선족이 말하는 '조선족문제'
    ■시냇물/ 그동안 조선족이 누린건 권리가 아니라 특혜였다. 전세계적으로 소수민족언어로 대학시험을 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은 중국이 소수민족에게 베푼 특별혜택이다. 권리가 아니다.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다들 교육정책의 변화를 마치 권리를 박탈당한것처럼 착각하고 떠드는데 제대로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혜택이란 원래 없어질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혜가 없어지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식 문건에 의하면 조선족학교들에서 3가지 즉 중국어(어문), 정치, 역사를 전국통일교재로 교체하고 중국어로 강의하고 기타 과목은 예전처럼 한다고 한다. 중국 입장에선 당연한 조치이다. 조선족은 백년 넘게 중국에서 살았지만 물 위에 뜬 기름방울이었다. 우리의 문화권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조선)이었다. 계속해서 중국에서 살아갈거면 중국 주류사회에 편입돼야 한다. ■백양나무/ 고향이 싫어서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먹고 살기 위해 외국으로 외지로 떠났다. 우리한테는 생계가 우선이다. 뜬 구름 잡는 민족 구호보다 경제적 뉴대감 형성이 정체성 보존에 실질적으로 도움 된다. 전국 곳곳의 각 아파트 단지마다 모두 둥지를 튼 회족의 란주라면을 보라. 이런식의 민족경제 체인점은 연대 역할을 할 뿐만아니라 경제적 실익도 가져다 주기에 동력이 달린다. 동력이 있기에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으며 눈덩이 구불듯 확대와 재생을 반복해 나갈 수 있다. 조선족도 민족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조선족은 외국으로, 외지로 나가서 돈을 벌었지만 이 돈을 크게 부풀리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른다. 벌어서 다 써버리거나 기껏해야 유지할 뿐이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재테크와 투자를 가르쳐야 한다는걸 느꼈다. 조선족은 상업적 두뇌가 미숙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농경민족의 체질이 많이 남아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소나무/ 조선족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는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이다. 조선족은 조선족자치주도 있고 조선족대학도 있는데 왜 무너져가는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공부를 시킬정도로 소문이 자자한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민족이 아니였던가? 허나 결과는 어떠한가? 문제는 우리교육에서 우리민족역사도 없고 조선족역사도 없기 때문이다. 민족혼이 없는데 민족의 미래가 있을까? 우리민족역사를 모르면 제대로 지켜질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읽었던 민족역사책들이 다 사라졌다. 중국 조선족이 항일전쟁에서 큰 역할을 해 신중국 설립을 위해 공헌함으로써 떳떳이 중국 공민 자격을 누릴 수 있었던 역사를 잘 아는 이*인 교수같은 분을 초청해 특별강의를 많이 열어야 한다. 자기민족 역사를 알아야 한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단 조선족단체들이 많지만 조선족역사에 관심가지고 후대들을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는가?... 입이 즐겁고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운 일은 성수나게 잘하는데 영혼과 정신이 즐거운 일엔 관심이 없다.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조선족정체성을 지켜야한다고 큰소리만 빵빵 치니 참으로 무지하고 가소롭게 느껴진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 역사학자나 교육자들은 투철한 사명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사명감이 없다.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 별로 내 세울게 없으면 민족에 대한 열정도 사라진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여 전할 필요가 있다. 후세들이 그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 민족적 자부심이 생기고 민족 언어와 문자의 필요성도 느끼는 것이다. 그다음은 가정교육이다. 큰 틀에서 우리힘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라의 교육정책을 바꿀수 있는가? 없다. 교과서 통일을 막을 수 있는가? 없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오직 한가지, 가정에서 우리말로 대화하고 글을 익혀주고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 더우기 한어(중국어) 교과서 통일은 좋은 일이다. 한어가 약해 바보처럼 살아온 조선족이 어디 한둘인가, 특히 연변출신 조선족일 경우 대학에 입학해서 한어가 약해 모든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조선족은 중국말은 중국사람보다 못하고 조선말은 한국사람보다 못한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언어가 버벅대면 좀 모자라보인다. 조선족역사 공부외에도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중국사람 못지않게 정통하고, 모어를 모국사람 뺨치게 잘하고, 그외에 영어, 일어, 로어까지 4-5개국어를 어릴때부터 기본적으로 배워 구사한다면 그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조선족만의 경쟁력과 정체성이 자리잡으리라 확신한다. 시대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민족만이 살아남는다. 우선 개인적으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야 민족도 지켜진다. 개인이 약한데 뭐로 어떻게 민족을 지킬것인가? ■상수리나무/ 교재를 전국통일교재로 통일하는 걸 찬성한다. 연변에서 쭉 조선족학교를 다니다 대학에 붙고보니 한어를 몰라 손해를 봤다. 선생님이 화학을 강의하는데 화학명사가 전혀 들어도 못 본 것들이고, 조선어로 배운 화학명사와는 발음이 하나도 비슷한데가 없었다. 처음부터 하나씩 익히느라 고생 했다. 외지 대학을 다니기 전까지 중국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중국어를 제대로 못배운게 유감스러웠다. 조선족학교들에서는 조선어도 꼭 가르쳐야 하지만 기타 과목은 모두 중국어로 가르쳐서 학생들의 중국어 능력을 높이기 바란다. 나처럼 대학에 붙은 후 애먹는 일이 없길 바란다. ■버드나무/ 동감한다. 처음 외지에서 대학 다닐 때 한어를 몰라 대화가 안 돼 오해가 생긴 경우도 많고 싸운 적도 있다. 말이 잘 안 통하니 툭 하면 열 받고 제풀에 쌍소리부터 나가더라.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교과서만 들여다 봤다. 그나마 중문 글은 알기에 교과서 내용을 익히며 공부했다. 우리 애는 외지에서 조선족학교를 다녔다. 조선어 과문 빼고 모두 중국어 통일교재를 배웠고 강의도 조선어 빼고 모두 중국어로 했다. 평소 애들끼리는 중국어로 대화하고 집에선 우리말로 한다. 중국어 소통에 막힘이 없고 우리때보다 훨씬 더 잘한다. 우리말도 한다. 대학은 한국으로 유학갔다. 우리 아이 교육에 만족한다. ■봇나무/ 고향이 흑룡강성인데 연변에서 봤다는 민족역사책들을 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우리민족에 관해 배운 거라곤 오직 조선족학교에서 배운 조선어문 교과서 뿐이다. 또한 민족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고민해본적도 없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한족이다. 누가 만약 나한테 설득될만한 논리로 민족성을 지켜야 된다고 설득해 준다면 그 말을 따르겠다. ■비술나무/ 나도 마찬가지다. 길림성의 산재지역에서 살아서 민족역사책들을 하나도 모른다. 지금 민족성을 강조해도 주변에서 관심갖는 사람 하나 없다. 오직 나혼자만 떠든다. 우리애는 외지에서 쭉 한족학교를 다녔다. 집에서는 우리말로 대화하며 나름 애쓰고 있다. 티비에서 조선족이 나오면 나는 환성을 지르는데 우리애는 무덤덤하다. 그게 뭐가 어때서 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름 우리말을 약간 안다고 좋아할 때도 있다. 일본만화를 보면서 우리말과 일어가 비슷한데가 많고 우리말 밑천으로 일어를 쉽게 익힐 수 있어 좋아한다. 한족친구들에 비해 여러가지 언어를 안다는 점이 강점임을 인식하고 좋아한다. ■대나무/ 스위스는 관방언어만 4가지이며 스위스 아이들은 어려서 부터 학교에서 4개국어를 배운다. 유럽에서 스위스사람들은 인기 만점이고 몸값이 비싸다. 여러가지 언어를 안 다는 것은 강점이다. 개인능력을 높여준다. 정체성과 무관하게 언어를 하나 더 배워둔다는 것은 다 약이 되는 일이다. 개인을 위해서라도 우리말을 버리지 말고 잘 배워둬야 한다. ■시냇물/ 인민대표대회를 열 때 동시통역을 조선어로 한다. 대단한 대우이다. 신중국 건립 시 조선족은 항일투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큰 지분을 갖게 되었다. 마땅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대우를 스스로 포기한 건 우리 자신이다. 가장 최근 인구조사에서 조선족은 인구가 10만명 감소됐다. 소수민족자치권리를 누리려면 소수민족 인구 비례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비례를 스스로 깬 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돈을 번답시고 외국으로 외지로 많이 떠났지만 경제 기반은 아직 다져지지 못한 상황이고, 대신 역사를 지키지 못했고,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모국이 있고 모국 문화권에 젖어있는 관계로 나라의 신임을 얻지 못하기에 정치권에서도 큰 제한을 받고 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경제성장이지만 이마저도 아직 기반을 잡지 못한 상황이다. 그동안 기대왔던 한국기업이 유실되면 그다음 조선족 공동체는 또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된다. ■박달나무/ 길림성 산재지역에서 조선족학교를 다닐 때 시험지는 조선어로 나왔지만 답안은 중문으로 썼다. 다들 큰거 얘기하는데 난 작은 거,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거 얘기하고 싶다. 민족어를 왜 배워야 하며, 민족어가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주며, 민족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작게 할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책이나 교재 외 가장 쉽게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지 그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냇물/ 유태인은 가족 중심적이다. 가족 중심으로 정체성을 지켜왔다. 조선족도 가족 중심의 민족 교육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선 민족 역사책이 필요하다. 우리말 도서관도 필요하다. 단체에서 우리말 도서를 기증받은게 있으면 전 구성원에게 개방하고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 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일어도 조선족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항일전쟁 때 조선족 군인들이 일어를 알았기에 전쟁의 승리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말 주말 학교들에서 일어도 가르치면 좋겠다. 그러면 중영조일 4개국어를 장악하게 된다. ■뿌리있는나무/ 언어, 문자, 민족정체성을 왜 지켜야 하며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우리가 지향하는 조선족의 공동체는 어떤 것인가? 구심점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문제다. 특히 구심점은 어려운 과제다. 다른건 모르겠고 한가지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상이 있고 뿌리가 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중국은 근성 없는 사람을 잡종 취급한다. 중국에서 사람 대접 받고 싶으면 꼭 자기 뿌리를 알아야 한다. 주류에 합류하고 동화되면 나라에서 관리하기는 좋겠지만 내심 뿌리를 모르고 근성 없는 족속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다. 중국의 이런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 이미 근성을 잃은 소수민족들이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가? 우리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떠올려 보자. 별로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조선족은 우리세대까지는 정체성을 그나마 보존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진실된 시각엔 "쉽게 동화 안되는 뼈대있는 민족이다, 만만히 볼 족속이 아니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뭐로 벌어먹고 살건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조선족의 우세는 무엇인가? 인구수, 지능, 상술, 정치, 문화의 넓이와 깊이...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민족에 비해 우세가 없다. 단 한가지 언어능력만큼은 '우세'가 가능하다. 우리 아이들은 경계인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 받아 다른 민족에 비해 언어 습득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지하자! 우리 아이들은 다중언어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주류 편입이 모어 포기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언어우세를 살려 주류에 들어가야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모어를 언어능력에 보탬이 되게 하라. 주의! 보탬이다. 아는거라곤 조선말 밖에 없는 경우와 중국어, 영어를 잘 하면서 조선어(한국어) 하나를 더 얹고 간다는 건 다른 얘기다. 후자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날개 하나가 더 달린다. 그게 어디 쉽냐고 하겠지만 가정에서 부모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현재 외지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아이들은 중국어 영어는 기본이고 좀만 부모들이 신경쓰면 모어까지 얹고 갈 수 있다. 동시에 여러가지 언어를 배운다는 건 어쨌거나 일정한 어려움이 존재하기에 언어에 순서를 매기면 된다. 1순위 중국어: 중국이란 대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잘 통달할 수 있는 언어가 중국어다. 필수언어이며 한족처럼 해야 한다. 2순위 영어: 학교 환경이 있기에 2순위로 잘 배울수 있다. 중국어 처럼 통달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숙련되게 할 수 있다. 3순위 모어: 외지에서 한족학교를 다니는 이상 사회적으로나 학교에서 배우지는 못하지만 가정 환경이 있기에 모어도 배움이 가능하다. 중국어 통달, 영어 숙련, 모어 기본. 셋만 가져가도 어딘가. 주변에 이런 아이들이 많다. 그 속엔 우리애도 포함된다. 중국의 여러 중점대학교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남들은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는데 우린 왜 태어날때 부터 갖고 나온 멀쩡한 모어를 버려려 하는가? 왜 남을 주려 하는가? 바보짓이다. 스위스 4개국어의 경쟁력? 멋있다! 중국어, 영어, 조선어(한국어), 일어? 두말 필요없이 매우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가능만 하다면 적극 지지한다. 필요없는 언어는 버려지기 마련이다. 언어는 필요에 의해 존재하지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만들어질때부터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게 언어다. 민족성을 위해 배워야 한다고 창백하게 외치지 말고 우리 어른들이 아래 세대들에게 다중언어(모어포함)라는 경쟁력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모어가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실리를 가져다 준다면 누구나 버리지 않고 잘 배울 것이다. 조선족 아이들이 다중언어 능력을 살리면 기본상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창백한 구호를 외치기 보다 차분하게 따져가며 모어를 실리가 되는 쪽으로 인도하면서 민족성도 함께 살리는 노력을 해보자. ★모두가 인정하며, 실행 가능한, 조선족 구심점 만들기에 도움 되는 일 3가지★ 1) 우리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가정 내 민족 교육 실시하기(언어,역사, 문화) 2) 여러사람의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것: 민족브랜드를 만들어 경제적 뉴대감 형성하기(란주라면 참고) 3) 사회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것: 단체들에서 기증 받은 한국도서를 전 구성원 특히 아이들에게 개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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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8
  • '삼국지' 재해석⑤ 삼국시대의 막을 올린 원소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나관중의 <삼국지 통속연의>에서 원소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 실제로 원소는 당시 대단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한국 작가들의 <삼국지> 여러 버전들에서도 원소를 그저 그런 인물로 취급하고 비중을 두지 않았다. 원작이든 여러 버전이든 원소를 이렇게 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패배자일지라도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원소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 원소의 역사적인 존재와 그의 행적이 어떠한 것이어서 합당한 평가를 그에게 부여해야 한단 말인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후한 말기에 한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이 몇 안 되는 상황에서 원소는 사족(士族)이라는 계급집단의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주나라 때 천자, 제후, 대부, 사인, 서민 등 다섯 계급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다섯 계급 중에 사인(士人)은 공부해서 출세하여 권력을 잡는 집단으로서 사대부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진나라 때 귀족세습 제도를 폐지하고 간부 임명제를 실시하였고 한나라 초기 동중서에 의해 사족집단이 권력층에 대거 진출하게 되었으며 후한시기에 이르러 관료계급을 독차지할 만큼 사족집단이 힘이 컸다. 그런데 후한 시기 황제들이 나이가 어린 탓에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사대부 집단은 제3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환관이 황궁을 관리하는 것은 전례의 법이자 제도인데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하물며 선제가 막 붕어하셔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내가 또 어떻게 노골적으로 사대부의 편에 서겠습니까?”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하를 호령하던 하태후가 환관을 죽이라는 간언에 대해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당시 사대부가 하나의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소 가문이 바로 사대부였다. 고조부부터 4대가 내리 ‘삼공(三公)’의 직무를 맡아서 ‘사세삼공’이라 불렀다. 후한의 삼공은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이었다. 그들의 지위는 구경(九卿)보다 높고 황제 다음이었으며 재상(총리)에 버금갔다. 원씨 가문은 사세삼공이었으니 당연히 전형적인 사족이었다. 원소는 가문이 좋은 덕인지 영제를 지키던 근위군의 두 번째 인물이었다. 첫 번째 인물은 환관 건석(蹇碩)으로서 상군 교위이자 대장이고 세 번째인 포홍(鮑鴻)은 하군 교위, 네 번째인 조조는 전군(殿軍)교위였다. 당시 환관과 외척의 다툼에서 원소는 외척의 손을 들어주었고 자신이 군벌이 아니었으므로 직접 나서 환관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 버거워 동탁을 끌어들인다. 명의상으로는 동탁의 상경을 대장군인 하진이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아이디어는 원소가 낸 것이다. 그 와중에 하진이 환관을 죽이는 일에 머뭇거리는 바람에 오히려 환관들 손에 하진이 먼저 저승으로 가고 만다. 하진이 죽자 눈에 달이 오른 원소가 환관 척살에 의지를 불태운다. 선한 자든 못된 자든 가리지 않고 무릇 환관이면 닥치는 대로 죽여 무려 2천 명의 목숨을 앗았다. 외척도 죽고 환관무리도 몰살되었으니 원소를 대표로 하는 제3의 세력이었던 사족 즉 사대부 집단의 천하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족이 벼슬길을 농단하고 여론을 통제하고 집권자로 변신하는 꿈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냐? 애석하게도 역사는 사족집단의 바람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동탁 때문이었다. 사실 동탁을 수도로 끌어들이는 일에 조조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환관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책임이 군주에게 있고 그들의 죄를 다스리려면 우두머리를 주살하면 된다. 그것은 옥리 한 명만 맡아도 되는 일인데 왜 굳이 바깥의 장수를 부르는지 모르겠군.” 군벌을 조정에 끌어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조조는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소는 남의 칼을 빌어 사람을 잡자는 작전으로 동탁을 끌어들인 것이 결국 늑대를 집안에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상경한 동탁은 힘을 믿고 황제까지 갈아치우려 들자 원소가 결사반대했다. 이에 동탁은 버럭 화를 내며 손을 검에 얹고 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천하의 큰일은 내가 결정하면 그만이지 감히 네가 반대해. 너는 이 동탁의 칼이 얼마나 빠른지 시험해보고 싶으냐?” 원소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 세상 천지에 설마 귀하의 칼만 빠를 것 같소?” 원소는 말을 마치자마자 물러서 퇴장했고 그 즉시로 낙양을 떠나 기주(冀州)로 도망쳤다. 동탁이 원소를 추적하여 죽일 수는 있었으나 주비(周毖)와 오경(吳璟)이 만류했다. “원소는 대세를 못 읽을 뿐이지 사실 큰 뜻은 없는 자입니다.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기보다는 은혜를 베풀어 고마워하게 하는 편이 났습니다. 어쨌든 원씨 가문은 4대가 삼공을 지내서 관련자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동탁은 이 말을 듣고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했다. 어찌되었든 이 사건을 계기로 원소는 문벌이란 신분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군벌과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고 군벌로 변신하려고 마음먹었다. 동탁이 어린 황제를 지 마음대로 갈아치우자 거국적인 반 동탁 연대가 생겨나게 되었고 원소가 연합군의 맹주가 되었다. 세력이 커지면 정치적인 욕심이 생겨나고 커지는 법이다. 원소는 한복과 따로 황제를 세울 것을 모의했고 그들이 점찍은 인물은 유주목(幽州牧) 유우(劉虞)였다. 이는 동탁이 한 짓과 다를 바가 없었으므로 조조는 극구 반대했다. 원소와 조조는 어릴 때부터 불알 친구였고 젊어서 함께 황궁의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잘 지내고 있었으나 동탁이 죽고 나서 사사건건 부딪히다가 나중에 결별하고 만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결단의 전쟁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원소가 조조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조조가 헌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면서부터 시작 되었던 것이다. 당시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한다(挾天子令諸侯).’는 말은 원소 측에서 먼저 지어낸 것이다. 원소의 원망을 알면서도 조조는 원소를 주목으로 임명하는 등 배려하려고 했으나 원소는 조조와의 생사결단을 내고야 마는 결심을 내린다. 한편 원소는 정치적인 감각이 한참 떨어진 인물이었다. 그 일례로 군사의 생명은 군량과 군수품인데 당시 원소의 해결책은 배고프면 약탈하고 배부르면 남은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 군량 부족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포기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원소와 조조의 싸움에 판돈을 원소에게 거는 자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조조는 출신도 그렇고 별 볼꼴이 없는 인물로 보았고 원소는 가문이 좋고 또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각 지방의 사대부 관료들이 대거 원소를 밀어주는 바람에 70만의 대군을 갖는 군벌로 성장하였다. 사족집단 외에도 천자를 등에 없고 천하를 호령하려는 조조의 움직임이 마음에 안 들어 좋게 보지 않고 원소에게 한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원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관동연합군의 맹주였던 원소는 북쪽에 웅거하던 공손찬을 멸하고 기주, 청주, 병주, 유주의 땅을 소유하여 중국의 북방을 대부분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람도 많고 세력도 크며 군사도 강력해서 조조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에 비해 조조는 무척 딱해 보였다. 그가 가진 것은 황제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나라 제국의 그 천자는 땅 한 뙈기, 병졸 한 명, 돈 한 푼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이 다수 사람들이 원소에게 판돈을 걸었던 것이다. 건안 5년(200) 원소와 조조의 생사결단 전쟁이 펼쳐졌다. 역사에서는 그 전쟁을 관도대전이라 부른다. 관도대전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3대 대전 중 하나이자 첫 번째 대전이었다. 관도대전은 원소와 조조의 역량 대비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소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군사적인 작전 원인 외에도 원소의 책사였던 허유가 조조와 대화했던 말을 빌어 원소의 패배 원인을 알아보자. “원소는 첫째 자기만 알아. 일단 아랫사람을 도통 믿으려고 허지 않지.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자초지종 설명도 하기 전에 화부터 낸다네. 둘째 아량 따위는 없어. 수장이면 아랫사람이 실수하고 그래도 때론 넓은 가슴으로 품어 주기도 하고 알고도 모른 척도 해주고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데 사람을 구석까지 몰아세운 다음 집요하게 캐물어 한 번 실수로 목 날아간 책사들 한둘이 아닐세. 한 번은 나도 곤장 200대나 맞았어. 나중에 미안한지 200냥 주더군. 셋째 원소는 자네도 알겠지만 판단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네. 공들여 지략을 짜주면 뭐하나?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는데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온 걸세.” “허허. 나도 곤장 200대 맞아볼까. 200냥 벌게.” 조조의 변죽 좋은 농담이었다. 조조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장난꾸러기였다. 미성년자 신분에 술 마시고 저잣거리에서 여인 희롱하기를 즐길 정도였다. 물론 책도 좋아하고 다독가이기도 했지만 주로 병법서를 읽으며 그것을 직접 실험해보고 싶어 안달 나 있었다. 이에 비해 원소는 어릴 적에 주로 집에서 책만 보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조조의 자유로운 일탈은 그저 부러운 면모였다. 조조는 샌님 같은 원소를 꼬드겨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곤 했다. 원소가 자기로 인해 본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는 게 조조의 즐거움이었다. 이 둘이 어느 하루 막 식을 올린 신부를 야밤에 납치하려던 것이 동네 사람들에게 걸려 줄행랑치는데 그만 원소가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원소가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구덩이가 너무 깊어 나오지 못한 채 버둥대며 진이 빠져 가고 있었다. 이때 조조가 외쳤다. “신부 보쌈한 도적놈이 여기 구덩이에 있어요!” 이 소리를 들은 동네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오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원소는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다. 만약 조조의 꾀가 아니었다면 원소는 동네 사람들 매질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릴 적 샌님 스타일 원소가 꾀가 많은 조조에게 밀렸듯이 어른이 되어도 역시 그 패턴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한편 이렇듯 송아지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함께 황궁에서 일했던 사이였는데 천하를 다투는 원수로 변하였고 결국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하자 피를 토하고 말 위에서 죽었다. 만약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이겼다면 역사는 유가의 패턴으로 흘렀을 것이고 조조가 이겼기 때문에 역사는 법가의 패턴으로 흘렀던 것이다. 동탁, 원소, 조조는 서로 스타일이 현저하게 달랐다. 동탁은 현 질서를 파괴하는 자였고, 원소는 공자를 닮아 옛 질서를 회복하려 했고 조조는 상앙이나 한비자를 따라 새로운 미래사회를 구축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 '삼국지' 재해석④ 황건적(黃巾賊)의 난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가 교체될 따마다 농민봉기가 있었다. 그 중에는 성공한 봉기도 있었고 실패한 것도 있기 마련이다. 봉기가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역모다. 또 봉기를 이끈 지도자들은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 또한 성공하면 봉기라 부르고 실패하면 ‘난(亂)’이다.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후한 말기에 있었던 황건적의 난이다. 황건적의 난은 후한 말 여러 전란 중에 가장 큰 전란이었다. 30만의 대군에 대륙의 반을 휩쓸었으니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한정권(漢政權)이 매우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왜 목숨 걸고 난을 일으켰을까? 앞서 후한 말기 환관들이 천하를 호령했다는 당시 상황을 언급하긴 했는데 여기서 그들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나는 데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영제 때 환관 중 최대 실세인 장양이란 자가 있었다. 이 자가 영제의 신임을 어느 정도 받고 있었느냐면 황제가 일개 환관을 아버지라 불렀다. “황제 폐하, 나라 곳곳에 흉흉한 얘기들로 가득 차 뒤숭숭하기 그지없습니다.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다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겨나서 이런 불길한 일들로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 민심이 말이 아니옵니다.” 상소문을 한 보따리 안고 황제를 알현한 관리의 말이다. “아니 별 일 다 보겠네.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든 수탉이 암탉으로 변하든 그게 짐과 무슨 상관이더냐.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영제는 천하의 흉흉한 민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황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환관 탓이었다. “네, 황제 폐하, 위대하신 하늘의 아들이신 천자 폐하께서 들을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가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려하자 우직하고 충성스런 관리가 죽을 각오로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또 한 마디 간언했다. “하늘의 아들이시라면 제발 이 나라를 돌봐 주소서! 폐하의 아버지는 저 간사한 환관 놈이 아니라 하늘이시옵니다! 하늘이 땅을 굽어 살피듯 천자께서 백성들을 굽어 살피는 것이 순리이지 아니옵니까? 가난과 수탈에 허덕이는 이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까? 제발 저 요사한 환관들을 멀리 하시고 들어야 할 것을 똑 바로 들어주시옵소서.” 곁에서 시무룩하게 듣고 있던 환관 장양이 사악한 맘의 결정을 내린다. “황제 폐하, 또 다른 역적의 무리일 뿐입니다. 저들은 폐하가 행복한 것을 눈 뜨고 보질 못합니다. 처벌하시지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세요.” 충성스런 관리는 곧 끌려 나가 참수 당했다. 당시 장양은 천자를 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는 날마다 뇌물을 싣고 온 가마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마가 없는 자들은 뇌물이 가득 든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찾아왔다. 뇌물을 바치는 목적은 관직을 사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뇌물의 값어치에 따라 관직 등급이 달랐다. 심지어 관직을 외상으로 파는 일까지 있었다. 어느 한 번 가산을 몽땅 털어 갖고 온 한 젊은이의 뇌물이 눈에 차지 않자 장양이 잔머리를 굴린다. “내가 자네 관상이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정말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기회이지만 하나 방법을 마련해 주겠네. 외상으로 관직을 사게. 물론 갚을 때는 원래 값보다 두 배로 갚아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 그 정도는 백성들에게서 충분히 빨아낼 수 있네. 어때 할 수 있겠나? 낙양에 근사한 자리 하나 줌세.” 변변치 않는 뇌물을 들고 온 젊은이는 지옥에서 천당에 옮겨진 듯 갑자기 세상이 훤히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매관매직이라는 비리를 해 먹다 못해 싹수가 보이는 젊은이에게 외상으로 관직을 팔아먹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들의 부정부패는 실로 가지가지였다. 후한 말기는 장양을 비롯한 환관들의 전성기이자 전횡기였다. 환관들은 일족이나 양자를 관리로 중용하고 관료나 호족과 결탁하여 중앙이나 지방의 관계에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정권을 독점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부정한 선거로 관리를 등용하였으며 백성들에게는 혹독한 가렴주구로 일관하여 호화 방탕한 생활을 일삼게 되니, 부정과 부패가 사회에 만연했다. 이것이 결국 황건적의 난을 불러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장각(張角)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관직 등극에 실패한 그는 매일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 것으로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요즘 대한민국 역사 강의자로 가장 ‘주가’가 높은 설민석 선생은 자신이 지은 <삼국지>에서 ‘장각은 과거시험에 실패한 선비출신’이라고 했는데 당시는 과거시험이 없었고 관직은 효와 예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도덕을 갖춘 선비들이 천거(薦擧)에 의해 등용되는 것이 제도였다. 환관들이 이 제도를 무시하고 매관매직했으며 진짜 과거시험은 수나라 때 수 문제에 의해 창설된 관리 선발 제도였다). 장각은 어느 날 산에서 남화노선이라는 산신령을 만난다. 산신령은 그에게 책 한 권을 준다. “이 책으로 도술과 신통력을 익혀 좋은 곳에 쓰게나. 만약 나쁜 쪽으로 쓴다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니 명심하오.” 책 제목은 ‘태평요술’이다. 장각은 태평요술을 익혀 바람과 무술을 관장하는 도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낭야(산동성)의 우길(于吉)이 창시한 것을 이어받아 부수주설(符水呪說)로 질병치료를 행하여 민심을 얻었다. 장각은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자칭하고 병자에게 죄의 참회를 구하고, 돈이나 영수를 마시게 하고 주문을 외워서 신의 용서를 청하는, 그런 방법으로 포교를 했는데 십 수 년 사이, 신자는 중국 동반부의 넓은 지역에 걸쳐서 수십만 명에 이르고, 36의 <방(方)>이라고 하는 집단으로 조직되었다. 대방(大方)은 1만여 명, 소방,(小方)은 6000~7000명인 이 조직을 만들었다. 장각이 만든 이 조직을 태평도라 불렀다. 장각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30여 만이 되는 신도를 모을 수 있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환관의 천하가 된 조정은 백성들의 삶을 살피지 않아 그들은 정권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태평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태평도는 말 그대로 세상을 균등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므로 이것이야말로 백성들이 원하는 바였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둘째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궁핍한 백성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병이 나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민간요법에 의한 치료가 매력적이어서 이에 몰리기 마련이다. 태평도가 바로 이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서방의 파촉 및 한중 지역에서 발전한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 세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는데 좌절과 실의에 빠진 농민들 사이에서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의 광신도가 되었다. 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치적인 욕심이 생겨난 장각은 184년에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일으켰다. 장각이 이끈 이 태평도의 각 지부가 군사조직으로 전환되어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이다. 중국의 전통적 오행설에 의하면 불에서 흙이 생성된다. 이들은 화덕(火德)에 해당하는 한나라는 곧 몰락하고 이어서 토덕(土德)에 해당하는 황건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머리에 새 세상을 상징하는 황색의 띠를 동여매었다.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한꺼번에 36만이 봉기한 이 전대미문의 항쟁은 들불처럼 광대한 지역에 번져나갔다. 장각은 천공(天公)장군이라고 하고, 아우인 지공(地公)장군 장보, 인공장군 장양과 함께 반란의 지도자가 되었다. 황건군은 그해 가을 주모자 장각이 죽고, 동생 장량, 장보 또한 전사하는 등 유능한 지도자를 잃고 주력군이 쇠미해졌으나, 각지에서 약 30년간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 대규모 농민봉기에 봉착한 지배층은 즉시 권력투쟁을 중지하고 당고를 해제하는 등 호족세력을 무마하여 항쟁의 진압에 안간 힘을 썼으나, 유명무실한 왕조체제를 유지할 뿐이었다. 목적이 좋다한들 결과가 좋다는 법은 없다. 장각이 이끈 태평도, 정부 입장에서 말하는 황건적의 난은 1851년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운동처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농지의 균등 분배, 남녀평등, 사회 악습의 철폐 등 구호를 내세운 태평천국운동은 초기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성세호대 하였다. 남경에 정부를 세운 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기강이 해이해졌고 따라서 금욕정신을 제창하던 홍수전은 황제로 등극하고 전통왕조와 다를 바 없는 정치를 펼치려 하였고 그를 따르던 무리는 백성의 지지를 받고 나서 돌아서서 백성을 수탈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14년 세월을 가다보니 중도에 초심을 잃은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장각의 태평도도 홍수전의 태평천국처럼 출발은 좋았으나 30년이나 가는 도중에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나쁜 조직으로 변질되었고 내부 조직이 권력다툼으로 와해되어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것이 태평도의 실패에 있어서 주관적인 원인이라면 외부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와해를 앞당기게 된다. 외부세력이란 진압군이다. 옛 유비의 스승이었던 노식과 황보숭, 주준 등 3명의 장수가 황건적과의 전투 부대로 편성되고 조조도 기도위에 임명되어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한편 강동의 손견도 하비에서 부하 황개, 한당, 정보, 조무와 함께 1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참여한다. 그리고 유주의 탁현에서는 유비가 장비,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수백 명의 장정들을 모집했는데 모집된 용사 500명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삼국지>는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서술하고 나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맺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들은 황건적 난에 맞서 싸우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고 만다. 하지만 그 근간인 태평도는 오두미도와 함께 도교 형성의 토대가 된다. 무슨 말이냐면 본래 공자의 유학이 한 무제 때 동중서에 의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유교로 되었고 노자의 도학은 이렇게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평도와 오두미도에 의해 도교로 변화되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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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0-08-16
  • '삼국지' 재해석③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앞서 2부 말미에 삼국시대가 열리기 전 전란이 당시 시대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전란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크게 나누면 모두 네 가지 전란이 있었다. 환관과 외척의 싸움,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 황건적의 난, 반동탁의 난이다. 앞부분에서 이미 환관과 외척의 싸움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주로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을 다루려 한다. 선진시대(先秦時代)의 관료집단은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무관(巫官)이요, 다른 한 부류는 사관(史官)이다. 독자들은 무속인, 무속신앙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뭔 뜻일까? 무(巫)란 글자의 뜻은 위 가로는 하늘을 뜻하고 아래 가로는 땅이며 내리 줄은 하늘과 땅을 만나 교감을 이뤄내는 것인데 누가 이 역할을 담당하나? 바로 내리 줄 양 옆에 있는 두 사람이다. 뭘 어떻게 역할을 수행하나? 노래와 춤을 통해서, 즉 가무강신(歌舞降神)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민속종목에 그네뛰기가 있는데 이 그네뛰기 유래를 아는가? 농경사회에서 강수의 양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판가름 난다. 오월단오가 되면 파종이 끝나고 천신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거국적인 이벤트였다. 진수의 <삼국지> 고구려 편에 의하면 “매월 오월과 시월이면 나라에서 군데군데 크게 모여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國中大會, 連日飮酒歌舞). 남녀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머리를 땅에 향했다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발로 땅을 힘껏 밟는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이 딴따라민족이 된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적어도 2천년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오월단오에 처녀가 그네 뛰는 것은 여자는 음이고 천신은 양이며 음의 대표자 처녀가 하늘 공종에 치솟아 올라 양신과 결합하면 비를 내를 수 있다는 민속적인 신앙행위였다. 방울을 울리는 것은 처녀가 천신과 교감했다는 것을 대지에 알리는 신호이다. 이 때 여자는 시집갔거나 나이 지긋한 늙은 여인이면 안 된다. 반드시 음기가 왕성한 낭랑 처녀여야 한다. 조선시대까지 기우제 때 거국적으로 300여 명의 무녀(巫女)가 동원되어 속옷을 벗은 채 치마를 벌리고 앞뒤로 가로세로다리를 들었다 놓았다하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춤을 추었다. 무녀들의 음기발산을 통해 양신인 천신이 교감되어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다. ‘바람피운다.’는 우리말의 유래.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련다. 이런 행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천관(天官)이며 <주례>에 의하면 천관은 힘이 센 관직이었다. 천관이 바로 무관이며 무관은 주로 제사를 관장하는 관직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제사행사가 으뜸의 행사였기 때문에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시대였다. 이 제사장인 왕을 보좌하는 관료들 다수가 무관(巫官)이며 무관은 당시 정치무대에서 실세였다. 상나라 때까지 귀신의 일이 사람의 일보다 더 중요해서 모든 일에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점을 쳤으니 무관이 얼마나 굉장한 집단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주나라에 이르러 귀신의 일보다 사람의 일이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즉 귀신의 중심문화에서 인간의 중심문화로 전이되는 과정이었다. 요즘 말하는 ‘인문학’은 여러 가지 세상만사가 내포되어 있으나 실제로 인문학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공자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귀신을 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 而遠之).” 뭘 뜻하는가? 귀신중심시대에서 인간중심사회를 구축하려는 사상과 이념이 담긴 말이었다. 당시 공자 같은 선비들(그의 500년 선배인 주공이 물론 인문학의 창시를 열었던 것), 각 학파들의 논쟁을 통해 확실히 인간중심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관직 중에 사관(史官)이란 관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자보다 더 명성이 높았던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노자 선생이 바로 주주사(周柱史)였다. 지금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중앙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나라에서 기둥역할 하는 사람의 일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높은 벼슬자리였다. 잠깐! 사관(史官)이라면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을 떠올리면서 역사책이나 쓰는 별 보잘 것 없는 관직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노자가 맡은 사관(史官)이란 관직은 역사서를 쓰는 것이 업무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기록하고 관장하는 관직이었다. 갑골문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일 사(事)와 역사를 뜻하는 사(史)는 같은 글자에서 분리된 것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천하를 제패하고 겸병 전쟁을 벌임에 있어서 선비들이 대거 등용되어 각국의 왕의 책사를 맡았다. 공자님도 무려 14년 동안이나 어디 마땅한 감투가 없을까 하면서 여기저기 머리를 기웃거렸던 것이다. 장자는 머리 쓰고 사람과 사람이 아귀다툼으로 부대끼는 것이 싫어 관직을 주어도 팽개치고 거지 삶을 살았던데 비해 가장 휘황찬란하게 자신의 뜻을 펼친 선비는 바로 상앙이었다. 위(魏)나라 출신이었던 상앙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뜻을 펼치지 못하자 진(秦)나라에 가서 꿈을 펼쳤다. 물론 마지막 인생길은 참혹했지만 이 부분은 논외로 하고 그의 개혁업적 가운데 필자가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관료세습제를 폐지하고 군공에 따라 사회기여도에 따라 간부임명제를 실시한 것이다. 이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에 꼽히는 업적 중 하나이다. 당시 주나라 신분은 천자, 제후, 대부, 사인, 서민 등 다섯 계급이었다. 천자가 전쟁을 일으켜 빼앗은 이민족의 땅과 본래 대대로 내려온 토지소유권을 형제, 친인척, 전공이 있는 자들에게 땅을 나눠주고(分封) 제후를 세워 다스리는(建國) 제도 즉 봉건제에 있어서 천자는 천하의 태평을 도모하고 제후는 절대적 세력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에 힘쓰고 그 밑에 대부를 두어 채읍을 다스리는 것을 제가(齊家)라 하였고 대부 밑에 사인(士人)이 있는데 이들 집단은 공부하여 즉 수신(修身)하여 대부를 도와 제가에 힘쓰고 혹자는 대부를 뛰어 넘어 제후의 책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유교이념이 이렇게 유래된 것이다. 혹자는 제가(齊家)란 한 가족의 집식구를 다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역사에서의 제가는 대부의 채읍을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굳건하던 봉건제 타파에 나선 인물이 바로 상앙이다. 그는 그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 대부 집단의 기득권을 빼앗고 공에 따른 간부 임명제를 실시하였으니 당연히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고 종당에 가서 편안한 천수를 누릴 수가 없이 참형을 당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상앙의 군현제의 꿈은 진시황이 계승하여 능력에 따른 간부 임명제가 실시된다. 그런데 시황제의 태산에 올라 천신에게 제사를 올린 것에 입을 나불거렸다는 이유로 선비들이 변을 당하는 이른바 분서갱유 사건이 있었고 이때 선비들이 고전을 천정에 감추고 땅에 파묻으며 음지에서 연명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그 결실은 한나라 무제 때에 이루게 된다. 그냥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동중서(董仲舒)라는 최고 엘리트에 의해 선비들이 출세의 길이 열린다. 동중서는 오늘날의 상식으로 말하자면 능력이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그는 무제와 다음과 흥정을 건다. 제국이 천년만년 가려면 법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만약 법가에만 의지한다면 앞선 왕조 진나라의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도가의 이념은 어떨까? 무위자연을 이념으로 소국을 지향하는 도가이념으로 한나라 초기 재미를 쏠쏠하게 보았으나 황제는 힘이 없고 주변 오랑캐는 자꾸 시끄럽게 집작 거려 위협이 되고 있으니 강력한 제국 건설이 급선무라고 황제를 선동한다. 황제는 들어보니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임자.” ‘흠, 드디어 황제께서 내가 던진 낚시에 코가 걸렸군.’ 동중서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동중서의 주장은 이렇다. 유가의 선비들이 입을 나불거려 시끄럽긴 하지만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란 삼강과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강으로 강력한 사회질서를 구축한다면 제국이 오래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황제는 결국 동중서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따라서 선비들의 출세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군현과 주에 간부를 임명함에 있어서 우수한 인재를 추천하는 ‘천거(薦擧)’제에 의해 선비들이 대거 관직에 등용되어 세상을 주름잡기 시작하였다. 동중서의 덕분에 후한에 이르면 유교가 뿌리를 내려 낙양의 태학 학생은 3만 명에 달했고, 태학의 건물도 여러 번 증축되어 말기에는 24동에 1,850개의 교실을 갖게 되었다. 아마 요즘 지구촌의 지식분야의 최대 상징인 하버드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방에서도 각각 사숙이 만들어져 이름 있는 학자를 스승으로 하는 동문의 학생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그놈의 환관들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간부로 등용되고 싶다면 뇌물을 바치라고 노골적으로 대놓고 금품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어 유교적 의식에 고취되고 정상적인 관리 등용문이 가로 막힌 이들은 반환관 운동에 앞장섰다. 환관파와 유생을 주축으로 하는 반환관파의 대립은 '당고의 금(黨錮之禁, '당고의 옥'이라고도 불림)'으로 불리는 2차례의 대탄압으로 청류 지식인(유생들은 자신을 청류, 환관무리를 탁류로 여겼음)들이 관계에서 일소되었다. 그 후 원소가 환관학살에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그 자신이 사족가문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환관은 유생집단을 관직에서 씨를 말릴 정도로 몰아냈으나 결국 사족가문 출신인 원소에 의해 다시 자신들이 씨를 말릴 정도로 학살당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당시 시대배경 중 한 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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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1
  • '삼국지' 재해석② 한나라 말기 환관과 외척의 권력 다툼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먼저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실제로 <삼국지>는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을 그리고 있긴 한데 역사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당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삼국지> 재해석 제2편으로 ‘한나라 말기 환관과 외척의 권력 다툼’을 잡았다. 여느 왕조가 다 그러했듯이 왕조말기에 천하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 있긴 했으나 한나라 말기 시대배경은 굉장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중국역사에서 통일제국의 문을 연 것은 진(秦)나라이지만 천년만년 이어가리라던 진 왕조는 15년 만에 홀딱 망해버렸다. 진 제국이 망하고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유방과 항우의 땅 따먹기 게임인 초와 한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자가 되어 한나라를 건립한다. 한나라는 서한과 동한을 전후하여 거의 400년 가까이 수명을 유지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화폐, 도량형, 차바퀴 등 일련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15년이란 세월이 너무 촉박하여 완전한 통일은 한나라에 이르러 이뤄졌던 것이다. 중국문자를 한자, 중국말을 한어, 중국 주체민족을 한족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유방이 세운 한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왕조라는 개념은 왕족혈통의 세습제를 의미한다. 유씨가 나라를 세웠으면 유씨 혈통이 황위(皇位)를 이어받는 것이 바로 세습왕조이다. 그런데 문제가 복잡하다. 황제가 아들이 있는데 너무 어려 황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황제로 등극시키는데 아들이 없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 경우 붕어한 황제의 친동생을 황위에 앉히느냐, 조카 중 서열을 따져 앉히느냐는 쟁투가 벌어진다. 또는 종실의 번왕(藩王)들 중에서 후계자를 찾기도 하였다. 유씨 가문의 왕조를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한의 황제 13명 중 10명이 마흔 살도 못 살았고 4명은 아들이 없었다. 또한 제위를 계승할 때 11명이 20살 이하였으며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가 19살의 장제(章帝), 가장 어렸던 이가 100일도 안 된 상제(傷帝)였다. 충제(冲帝)는 겨우 2살, 질제(質帝)는 겨우 8살이었다. 황제가 나이 어려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 어미인 태후가 섭정한다. 태후가 섭정하게 되면 정권은 자연스레 외척이 잡게 된다. 한 화제(和帝) 때는 두태후(竇太后)가 국정을 맡고 두헌(竇憲)이 정권을 잡았고, 한 안제(安帝) 때는 등태후(鄧太后)가 국정을 맡고 등즐(鄧騭)이 정권을 잡았으며, 북향후(北鄕候) 때는 염태후(閻太后)가 국정을 맡고 염현(閻顯)이 정권을 잡았다. 또 한 환제(桓帝) 때는 양태후(梁太后)가 국정을 맡고 양기(梁冀)가 정권을 잡았고 한 영제 때는 두태후가 국정을 맡고 두무(竇武)가 정권을 잡았으며 소제(少帝) 때는 하태후(何太后)가 국정을 맡고 하진(何進)이 정권을 잡았다. 이렇듯 태후가 여섯 번 국정을 맡고 역시 여섯 번 외척이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태후가 섭정하고 외척이 정권을 잡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황제가 기분이 나쁘다. 어미와 외삼촌한테 휘둘리다 보니 자신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없게 된다. 이 문제는 황제가 나이를 먹어 성인으로 향해 성장해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즉 황제는 자기주장을 세우려는데 어미와 외척이 양보를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권력의 맛이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이렇게 되면 황제는 어미와 외척을 제거하려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한 허수아비가 되기 때문이다. 권력 구조에서 세력이 없는 어린 황제는 누구한테 기대야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바로 환관 무리다. 밤낮으로 황제 곁에 붙어 있는 것은 환관들이이니까 그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관의 역사는 지구상 중국만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물론 이웃나라인 조선에도 환관역사가 있긴 하지만 ‘흉내’를 내는데 그칠 뿐 중국처럼 환관이 역사를 바꿀 만큼의 세력으로 역사무대에서 쥐락펴락하지는 못했다. 진 시황 때 환관 조고는 황제가 궁녀들과 운우지정을 나누는 장소에서 한쪽 모퉁이에서 쪽걸상에 앉아 지켜볼 정도로 하루 12시진(지금의 24시간)을 황제에게 붙어 있었다. 황제가 죽자 결국 조고가 천하를 쥐락펴락하였고 심지어 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장자를 밀어내고 둘째 호해(胡亥)를 황위에 앉힐 만큼 세도를 부렸던 것이다. 그 유명한 사슴보고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 고사의 주인공이 바로 조고였다. 진나라가 15년 만에 망한 이유 중에 환관 조고의 탓이 크다고 필자는 본다. 당나라가 전성기를 달리던 때 당 현종은 양귀비한테 빠져 정사를 뒷전으로 하고 환관 고력사(高力士)가 황제의 옥쇄를 쥐고 국정을 맡아보기까지 했다. 명나라 때는 10만의 환관도 모자라 조선에서 빌려 갔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환관은 생리상 불구로 남자의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력과 재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 왔고 눈에 밟히는 가족(처자)이 없기 때문에 권력다툼에서 마음이 독하다는 속설이 있다. 어찌되었든 환관들은 황제의 신변에 늘 머물고 있기 때문에 황제의 믿음을 얻고 있었다. 한 순제(順帝) 때 외척 두목인 염현을 환관들이 황제와 논의도 없이 자기네들이 알아서 죽였던 것이다. 한 환제의 어미 양태후는 황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독살했다. 뿐만 아니라 황제가 28살이 되도록 국정을 맡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황제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손을 써야 했다. 그런데 외척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황제는 비밀모의를 화장실에서 꾸밀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비밀모의는 성공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외척 양기 부부는 자살했고 양씨 가문은 전부 참수되어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양기와 관련 있는 관리 300여 명을 파면하고서야 정권을 바로 잡을 수가 있었다. 2015년 12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 문건’ 파동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한 자들을 가리켜 ‘십상시’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십상시’의 유래가 바로 한나라 영제(靈帝) 때에 환관(宦官)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 등 10인을 가리키는데 영제는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되어 전혀 통치 능력이 없었으므로, ‘십상시’는 영제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주색에 빠지게끔 만들고, 하진(何進)의 누이를 바친다. 장성한 뒤에도 십상시의 농간에 놀아나 정치를 돌보지 않자,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의 세력이 가장 컸고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는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진다. 십상시가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리자, 하진이 누이의 세력을 빌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게 되고, 하진이 제후(諸侯)들을 불러 모아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다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남을 물에 빠뜨리려다가 자신이 물에 빠진 격이었다. 환관무리와 외척 사이 권력투쟁에 ‘보리알’처럼 끼어든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영제를 지키던 근위군의 두 번째 인물인 원소이다. “장군이 천하를 위해 그 화근을 제거하신다면 틀림없이 길이 이름을 남길 겁니다.” 원소가 환관을 모조리 죽이라고 하진을 선동한 말이다. 그러나 하진은 망설였다. 이유가 있었다. 원래 돼지백정이었던 하진은 누이동생이 황후가 되는 바람에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하진이 환관무리를 몰살할 배포도 그럴만한 간도 크지 못했다. 하진의 누이동생 하태후도 환관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 그 이유는 환관들한테 빚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녀가 유협의 생모 왕미인을 독살했을 때 환관들이 황제에게 사정해 겨우 재난을 모면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하태후는 이렇게 말했다. “환관이 황궁을 관리하는 것은 전래의 법이자 제도인데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하물며 선제가 막 붕어하셔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노골적으로 사대부의 편에 서겠습니까?” 태후가 허락하지 않자 하진은 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권력다툼에서 과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한 하진은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진의 죽음은 일개 대장군의 개인의 목숨이 아니라 사대부 집단과 군벌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하진이 피살된 후 혼란에 빠진 낙양성에서 하씨와 원씨 두 가문이 각기 군사를 일으켰는데 원소가 더 적극적이었다. 군대를 이끌고 성 안에서 환관들을 색출해 죽였다. 수염 안 난 남자만 보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많은 젊은이가 부득이하게 바지를 벗어 보여야 했다. 마치 나치 독일에서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가리는 방법인 ‘바지 벗기 증명’과 비슷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환관 중에도 선행을 베푼 환관들도 있었고 기타 좋은 일을 남긴 환관도 있었건만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여 죽은 자가 모두 2000여 명에 달했다. 환관도 죽고 외척도 죽었다. 이 두 집단의 다툼은 장장 90여 년간 벌어졌다. 매번 외척의 패배로 투쟁이 끝났지만 이번에는 양쪽 다 파멸되었다. 문제는 어린 황제였다. 외척도 환관도 모두 죽었으니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천하지존이었던 대제국의 천자가 졸지에 몸도 의탁할 곳 없는 구차한 ‘난민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때 원소의 부름을 받고 성으로 향해 진군하던 서량(西涼)의 호족 동탁(董卓)이 칠흑 같은 야밤에 황하의 강 언덕에서 우연하게 피난길에서 방황하던 황제 변(辯)을 발견한다. 이 발견이 동탁에게는 로또를 맞은 셈이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동탁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황제를 모시고 입성하여 궁정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리게 된다. 이때부터 천하는 대혼란에 빠지게 되고 지방 호족과 권력의 제3의 세력인 사족(士族) 집단 및 군벌들의 군웅할거의 대전란이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한 나라 말기 시대배경이고 삼국시대가 열리는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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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0-08-08
  • 용이 살던 마을 와룡동
    ●김호림 창동학교는 8.15광복을 맞은 후 다시 와룡동에 부활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서쪽 산비탈의 옛 터를 버리고 마을 북쪽의 평지에 따로 학교 건물을 세웠다. 김동욱옹은 어릴 때 새로 지은 이 창동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 그가 학교를 내놓고 또 과외처럼 즐겨 다니던 곳이 있었다. 그와 또래들은 예배를 보는 날이면 학교 북쪽에 있는 교회당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전 씨 성의 집사가 우리 아이들을 모여 놓고 재미있는 옛말을 들려줬지요.” 교회의 전 집사는 조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일본 전함을 물리치던 이야기 등을 구수하게 풀어놓았다고 한다. 서적이 금처럼 귀하고 별다른 문화생활이 없었던 시골에서 정말 하늘에서 들려오는 복음과 같았다. 조선인 이민들의 최초의 민족계몽운동과 반일운동은 이처럼 신앙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였던 것이다. 간도에서 선교활동은 조선인 간민들의 대량 이주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캐나다 장로회는 북간도에 선교사와 전도자를 파송, 1906년 광제암교회를 설립하였다. 뒤미처 용정의 기독교인이 간도의 조선인 전도를 위해 멀리 함경도 원산까지 가 기독교 서적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도가 본격 시작되었다고 한다. 1907년 남감리회는 이화춘과 이응현, 캐나다 장로회는 김문삼을 간도에 파송한다. 이화춘은 와룡동교회, 이응현은 모아산 교회를 설립하며 장로회는 용정교회를 설립하였다. 모아산은 와룡동 골짜기에서 바로 정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둥그런 산이다. 1915년경 간도에 36개 교회가 개척되며 또 교회의 주도로 많은 학교가 세워진다. 간도 지역 최초의 민족운동 단체인 “연변 교민회”(훗날 국민 회로 개칭)는 기독 인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국민회를 통한 기독인들의 반일운동은 군자금 모금, 독립군 양성 등으로 이어졌다. 바로 창동 학교에 국민회의 외곽단체인 간도 대한 청년회 본부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의 많은 교원과 학생, 졸업생들은 철혈 광복단에 참가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1920년 용정 선바위 부근에서 조선은행권 15만 원을 탈취한 “15만 원 탈취사건”의 골간 임국정, 최봉석, 한상호 등 반일 지사들은 모두 와룡동 출신이다. 와룡동에서 교세는 연변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8.15광복 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미구에 철거의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김신숙(1938년 출생) 노인이 와룡동으로 시집을 오던 1956년에만 해도 와룡동 교회의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김신숙 노인은 바로 와룡동 교회의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목사가 그들의 결혼 주례를 선 것은 아니었다. “그때 교회는 이름뿐 이였지요. 벌써 예배를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십평 크기의 교회건물은 사람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김신숙 노인의 시집은 마침 길 건너 바로 서쪽에 있는 이 널찍한 교회당을 예식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이 발길을 멈춘 곳은 와룡동의 제일 북쪽이었다. 거기에는 고층건물의 휴양소가 땅을 박차고 일어서고 있었다. 이 휴양소 앞마당의 동쪽 귀퉁이가 바로 교회당 옛 터였다. 옛 터에는 시공현장의 철근과 나무쪼각따위가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와룡동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와룡동교회는 그렇게 역사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가고 있었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 민흥촌의 직속 마을이였던 과수마을도 어느덧 집단기억에서 소실되고 있었다. 과수마을은 일명 5대 마을로 서쪽의 고개 너머 산등성이에 있었는데 예전에 동쪽의 와룡동과 짝을 맞춰 와호동(卧虎洞)이라고 불렸다는 속설이 있다. 이쯤 하면 누군가는 대뜸 와룡동과 와호동을 두고 좌청용이요, 우백호요 하면서 풍수설을 들먹거리겠지만 실은 이 지명이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용호상박(龙虎相搏)의 기세를 은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와룡동 마을에 영웅호걸이 많이 배출되였다는 것이다. 옛날의 샘물은 와룡동의 동쪽 골짜기에서 예나 제나 변함없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샘물을 마시던 용은 단지 지명에 화석으로 외롭게 남아있을 뿐이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 '삼국지' 재해석① '삼국지'를 재해석하는 이유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지(志)는 역사를 의미한다. 전국지(全國志)는 전국의 역사이고 지방지(地方志)는 지방의 역사이다. 중국에는 각 지방마다 모두 자체의 역사를 기록한 지(志)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삼국시대 역사를 기록한 책을 <삼국지>라 부르는데 <삼국지>는 본래 진(晉)의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진수(陳壽)가 지은 사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명나라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시대 펼쳐진 이야기를 소설화한 <삼국연의>도 <삼국지>라 부른다. 물론 <삼국연의>가 <삼국지통속연의(三国志通俗演义)>의 줄임말인데 ‘삼국지’에 통속연의를 붙인 것은 사서가 아니라 진수의 <삼국지>를 참조하여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문학적 장르로 창작한 소설이다. 때문에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부르면 진수의 사서인 <삼국지>와 혼동되고 한란이 조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부르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고 너무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도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삼국지>라 칭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삼국지>의 저자 나관중은 중국 원말·명초의 소설가 겸 극작가로서 강담(講談)의 이야기책을 기초로 해 구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및 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연의(隋唐演義)>,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평요전(平妖傳)> 등의 작품이 있다. 나관중의 이 여러 작품 중에서 <삼국연의>가 후세에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유명해졌다. <삼국연의>는 오승은의 <서유기>, 시내암의 <수호전>, 조설근의 <홍루몽>과 함께 중국 4대 명작(역사소설)으로 꼽히며 연대서열을 따지자면 단연 가장 선배 격이다. 현재 중국에는 이 4대 명작을 연구하고 밥 먹고 사는 학자가 1만여 명에 이른다. 그만큼 이 4대 명작이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이 4대 명작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리 대단한 석학이라도 <홍루몽>을 다 알고 읽는 학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물론 기타 3대 명작의 난의도가 <홍루몽>에는 못 미치지만 역시 다 알고 읽는 학자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3대 명작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홍루몽>이라면 가장 대중에게 많이 읽힌 것은 <삼국지>이다. <삼국지>는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삼국지>가 가장 많이 읽혔을 뿐만 아니라 만화로 개작하고 게임소재로 사용하여 벌어들인 돈이 한국에서는 연간 수 천 억, 일본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조(兆)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듯 유명한 소설에 대해 그 내용을 품평하기 전에 이 소설이 탄생된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이 자못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어 중국문학사를 한 번 여행해 보기로 하자. 문자의 기능은 일차적으로 기록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자가 생겨난 것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었는데 얼마 수확했고 얼마 먹어야 하고 얼마 남겨서 재생산에 사용해야 하는지, 농사는 사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천재지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자로 기록해 놓으면 앞으로 시행착오를 덜 겪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농경의 발전에 필요했던 문자는 잠차 인간의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적인 삶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문화적인 삶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은 대체로 시, 수필, 에세이, 소설 등 장르가 있는데 이 가운데서 시가 가장 ‘선배’였다. 왜냐하면 시는 노래가사이기 때문이다. 시는 최초로 제사 시 주술사(呪術詞)였고, 남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랫말이었다. 중국 최초 문학작품은 <시경>이며 그 작품들은 다수가 사랑 타령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노래가사였다. 시에 비해 소설은 가장 늦게 세상의 빛을 본 막내였다. 시와 소설의 ‘나이’ 격차는 무려 3천여 년이나 되니 소설은 시에 비해 까마아득한 후배이다.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알려면 먼저 문화 전성기라 불리는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에는 본래 종교가 없었다. 굳이 외래 종교와 어깨를 겨루기 위해 억지로 종교라는 라별을 붙이자면 유교와 도교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종교’는 미래의 삶, 즉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그래서 신앙이 부족했던 중국인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은 외래종교가 바로 불교였다. 불교가 중국 문을 두드린 것은 후한시기였으니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이 된다. 위·진남북조시기에 탄압받다가 당나라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는다. 당 태종 때에 삼장법사가 서천(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 와 중국에서의 불교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다. 중국역사에서 유일한 여황이었던 무측천은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가축도살금지령까지 내릴 만큼 독실한 불교도였다. 여황은 자신이 불교를 좋아하다 보니 전국에 불교를 대중화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불교의 경전은 매우 어렵다. 스님들의 염불은 그들만이 알아먹을 뿐 일반 민중은 이해불가다. 그래서 불교를 대중화하려면 불교계가 일대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불교를 대중화하는 그 변혁이 우리말로 말하면 바로 ‘야단법석’이다. ‘야(野)’는 도시 변두리 빈 공터이고, ‘단(壇)’은 제단 단이며 공연무대이고, ‘법(法)’은 불교를 뜻하고, ‘석(席)’은 불법을 전파하는 자리이다. 야외에 공연무대를 설치하여 불경을 강연하는 것이 바로 ‘야단법석’이다. 본래 산속의 절간에서 염불하던 스님들이 민중 속에 들어가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즉 어려운 불경을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민중에게 이야기 식으로 풀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강연하는 것이 바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런데 이 ‘야단법석’이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반용어가 되지 못한데 비해 한반도에서는 자주 쓰는 일반 어휘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어찌 된 영문일까? 원효 스님의 덕분이다. 우리말 ‘야단법석’은 시끌벅적 떠든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떠들었나? 경직되어 있던 스님들이 무대에 올라 ‘연예인’이 되어 재미있게 강연하고 스님의 강연이 끝나면 갑돌이 갑순이 모두 ‘각설이’ 되어 무대에 올라 노래와 춤을 맘껏 즐기고 무대 아래에서는 줄넘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연 띄우기, 투호놀이, 패놀이 등 오락을 즐기고 심지어 여성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잠자리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밸 수 있는지에 대한 ‘음담패설’을 맘껏 나누는 자리였다. 이렇듯 한바탕 터놓고 떠들었던 것이다. 이 떠드는 장소에서는 계급이 없고 남녀 차별도 없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신라 원효 스님이 바로 방방곡곡 촌락을 돌아다니며 ‘야단법석’을 벌려 불교를 전파하고 대중화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던 이유로 우리말 ‘야단법석’이 상용어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당나라 때 이 ‘야단법석’을 동양식 그리스 광장민주주의로 비유할 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스님들의 ‘야단법석’ 강연에 의해 강창문학(講唱文學) 이란 장르가 생겨났고, ‘송사(宋詞)’가 발달했고, ‘원곡(元曲)’이 발달하였으며, 명나라에 이르러 새로운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소설(小說)을 천자문 식으로 풀이하면 ‘작은 말’이다. 작다는 의미로 ‘잔’이라고 하는데 소설은 잔말, 잔소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잔소리는 누구를 꾸짖거나 흉을 보는 말이 아니라 잔잔하고 작은 말이라는 뜻이다. 중국에는 수천 년 동안 장터에서 이야기하고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기꾼들이 있었으며 가문대대로 계승해온 집안도 있었다. 이 이야기꾼들의 말이 곧 ‘잔소리’이고 이 ‘잔소리’를 집대성한 것이 곧 소설이다. 역사소설 <삼국지>는 명나라 나관중이라는 글쟁이가 진(晋)의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와 배송지의 <삼국지주(三国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쓴 소설이며 최초 판본은 1522년에 판각한 가정본(嘉靖本)으로,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国志通俗演义)>라 하여 모두 24권 240칙(則)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이에 더해서 나관중은 1천7백여 년 동안 장터의 이야기꾼들이 대대로 전해온 이야기(잔소리)를 근거로 지었다는 것이 매우 설득력 있다. 삼국시대 때 있었던 일들을 1천7백 년 동안 전해오려면 한 사람이 30년 말할 수 있다고 치면 60여 대를 거쳐야 하는데 60여 대를 거치노라면 이야기들이 어떤 대목은 줄어들었고 어떤 대목은 뻥튀기처럼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재미 위주로 없던 스토리를 지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본래 있었던 역사사실과는 거리가 십만 팔천 리나 된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문학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나관중, 나쁘게 말하면 구라가 뛰어난 나관중이라는 글쟁이에 의해 탄생된 문학작품이다. 그런데 아무리 상상의 결과로 지어내는 소설이긴 하나 역사소설이라면 그래도 역사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실이 2~3할이라면 나머지 7~8할은 상상에 의해 지어진다. 예를 들어 중국역사에서 4대 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초선이란 인물도 미안한 일이지만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유비가 제갈 공명을 모시는 삼고초려도 사실이 아니다. 유비야말로 다섯 번이나 주인을 배반한 간신이지만 그를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고 조조는 진짜 괜찮은 인물이었으나 나관중은 그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관운은 무식한 무장일 뿐이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받든다. 한국사극드라마 <미실>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스토리가 있는데 전혀 역사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실이란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으나 법흥왕의 색신(色臣)으로부터 진평왕에 이르는 3대를 거쳐 궁중에서 위세를 부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선덕여왕과 나이 차는 80여 년이 된다. 미실이 살아 있을 때 선덕여왕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드라마 <미실> 뿐만 아니라 한국사극은 다수가 사서나 왕조실록에 기록된 한두 줄의 대목을 근거로 고무줄 늘리듯 늘려 지어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과 비슷하게 한국 시중에 돌아다니는 <삼국지>는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를 비롯해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설민석의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버전이 많아 나관중의 원작에 비해 수없이 개작되고 있다. <삼국지>가 본래 어려운데다 여러 버전이 있어 더욱 혼란스러울 것 같아 <삼국지>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기로 맘먹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4

외국인· 출입국 검색결과

  • 프랑스 외무장관 "중국 유학생, 석사 졸업 후 5년 단기 복수비자 취득 가능"
    [동포투데이] 프랑스에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면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콜론나 프랑스 외무장관이 밝혔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일방적 무비자입국 국가의 범위를 시범적으로 확대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는 2023년 12월 1일부터 2024년 11월 30일까지 최대 15일간 무비자로 중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콜론나 장관은 중국 방문 중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모든 중국 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뒤 최대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아 중국과 프랑스를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중국 국적자들의 비자 처리 시간도 단축할 계획이다. 콜론나 장관은 또한 프랑스와 중국 두 나라가 고등(대학) 교육, 과학 연구, 문화 및 보건 분야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포함하는 5개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11-25
  • 일본,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방역조치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3월 1일부터 완화하고 모든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현재 중국 본토에서 직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출발 전 72시간 이내에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조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마쓰노는 완화 이유에 대해 입국자 양성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항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모두 일본에서 이미 검출된 오미크론 계열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7
  •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입국후 핵산검사 의무 해제
    [동포투데이] 2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는 입국후 핵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핵산검사 의무를 취소하기로 했으나, 출국 전 핵산 검사 음성 소견서로 항공기에 탑승해야 하는 요건은 3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정부는 올해 1월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중국에서 입국하는 승객은 탑승 전 코로나19 음성증명서를 제출하고 입국 후 핵산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조치는 1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2
  • 중국, 일본 국민에 대한 일반 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일본 중국대사관 위챗 공식계정은 29일 자로 주일본 중국영사관이 일본 국민의 중국 일반비자 발급을 재개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 1월 8일부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항하는 승객에게 탑승 전 72시간 내 음성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입국 시 검사도 더 정밀도가 높은 핵산 검사나 항원 정량검사로 변경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10일 주일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이 앞으로 중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일반 사증 발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시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을류을관(乙類乙管)’ 총체적 방안과 중외 인사 왕래를 위한 잠정 조치를 발표한 뒤 여러 나라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국가가 과학적 사실과 자국 내 전염병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를 고집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9
  • 주중 일본대사관 비자업무 정상화
    [동포투데이] 중국은 지난해 12월 26일 2023년 1월 8일부터 국경 방역 조치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내 대규모 전염병 발생으로 12월 말부터 미국, 일본, 이탈리아, 인도 등 많은 국가에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상응하는 통제 조치를 연속적으로 도입했다.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의 정례 브리핑에서 "일부 국가가 중국만을 대상으로 한 입국 제한 조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에 따른 일부 과도한 관행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전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를 조작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상황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1월 10일 정오에 한국 국민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그날 저녁에는 일본 국민의 중국행 일반 비자 발급을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1일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2
  • 법무부, 단기방문(C-3) 및 전자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코로나19의 해외 유입 차단을 위해 2020년 4월부터 잠정 중단하였던 외국인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방문(C-3 자격) 및 전자 비자 발급을 오는 6월 1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의 주요내용으로는 일반국가(Level 1)로 분류한 국가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단기방문(C-3) 비자 발급 및 온라인(on-line)을 통한 전자비자 발급과 그동안 필수목적 방문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하였던 단기방문(C-3) 비자 발급을 일반국가(Level 1) 외국인을 대상으로 법령에서 정한 단체‧개별관광, 친지방문, 상용활동 등 모든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다. 아울러,2020년 4월 6일부로 중단되었던 우수인재, 외국인환자, 단체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자비자 발급도 재개한다. 이밖에도 2020년 4월 13일부로 정지되었던 여러 번 방문 가능한 단기 복수비자 효력을 2020년 4월5일 이전에 발급받은 비자로서 그 유효기간이 남아 있는 경우 별도의 조치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방역당국에서 주의국가(Level 2)로 분류한 국가의 외국인인 경우에는 기존과 같이 인도적 사유 등 필수 목적 방문자에 한하여 비자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이번 완화 조치는 향후 국내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통한 내수진작과 관련 산업 활성화로 국민 일자리 창출과 함께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향후 방역당국과 함께 코로나19 관련 해외유입 상황 등을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며 방역상황에 따라 긴밀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 외국인· 출입국
    2022-05-20
  • 출국 체류중인 중국인, 친인척에 위탁해 신분증 재발급 가능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출국 체류중인 국민들이 신분증 유효기한이 만료되었지만 귀국하지 못하여 신분증을 재발급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길림성공안청은 공안부의 요구에 따라 해당 국민들이 국내에 있는 친인척들에게 위탁하여 신분증을 재발급 받을 수 있도록 포치했다. 보도에 따르면 신분증 유효기한이 만료었지만 귀국할 수 없는 국민은 국내에 있는 친인척에게 위탁하여 상주 호구 소재지 공안기관에서 신분증 재발급 신청 수속을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민법전'에 따르면 친인척에는 배우자, 부모, 자녀, 형제자매, 조부모, 외조부모, 손자녀, 외손자녀 등이 포함된다. 제출서류 신청인(이하 ‘위탁인’으로 통칭)이 서명한 위탁서 (위탁인 성명과 주민신분증 번호 등 기본상황, 주민신분증 유효기간, 위탁접수인 성명과 주민신분증 번호, 위탁인과의 친속관계, 위탁신청사유, 연계방식) 위탁인의 중국여권 복사본 소재국가 비자 복사본 위탁인이 위탁서와 본인 여권을 제시하고 찍은 사진 위탁인 주민신분증 이하 경우 발급 불가 (1) 출국정지자 (2) 입국규제자 (3) 도주범 (4) 주민호구부, 주민신분증, 여권, 면허증을 위조, 변조, 매매, 사기 수령, 도용하거나 위조된 주민호구부, 주민신분증, 여권, 면허증 등 국가기관 증명서를 사용한 자 (5) 얼굴 특징이 비교적 큰 변화가 발생하고 주민신분증에 지문정보를 등록하지 않아 신분확인이 어려운 사람 신분증 발급은 상주 호구 소재지 파출소이다. 접수일부터 1일 내에 제작을 완료한다. 수수료는 20위안이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8-12
  • 中, 4월 1일부터 출입국 편의 조치 실시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은 출입국 증명 발급 편의를 위한 6가지 새로운 조치를 실시하기로 했다. 중국 관영 중신망(中新網)에 따르면 국가이민관리국은 노인들의 출입국관리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 초점을 맞추어 4월 1일부터 출입국 증명 발급 편의를 위한 6가지 새로운 조치를 실시한다. 조치는 노인들의 출입국 증명 발급 편의를 위해 출입국 기관에서는 노인 전문 ‘녹색 통로’를 설치해 인터넷 예약을 거치지 않고 노인들이 직접 출입국 증명 발급 대청 창구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노인들에게 자문, 안내 등 서비스와 도움도 제공한다. 조치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들이 일반여권, 홍콩∙마카오 왕래 통행증, 타이완 왕래 통행증을 신청했을 경우, 직접 5년 내 발급한 적이 있는 출입국 증명사진 혹은 주민신분증 사진을 재사용할 수 있으며 현장에서 다시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증명사진 비용 지불 방식을 제공하게 되는데 출입국 증명 발급 대청에서 현금, 카드, 모바일 결제 등 여러 가지 지불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출입국 증명 속달 서비스를 개통하고 국가이민관리국 홈페이지 등 온라인 경로를 통해 속달 서비스, 우편료 지불, 민원 처리 상황 등 조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2-24
  •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시행령·시행규칙 1일부터 시행
    [동포투데이] 외교부가 1일부터 사할린 동포 지원의 대상 범위를 직계비속 1인과 배우자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공포된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시행령·시행규칙이 1일부터 시행된다. 사할린동포법은 사할린동포 지원 정책의 수립·시행 등에 관한 국가의 책무 규정, 기존 시행되어온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및 정착 지원 사업의 법제화 및 대상 범위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사할린동포 1세·배우자 및 장애자녀의 대상 범위가 사할린동포 1세·배우자 및 직계비속 1인과 배우자로 확대됐다. 사할린동포법 시행령은 사할린동포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념사업의 추진, 법률에서 위임한 영주귀국 및 정착 지원의 신청 절차와 지원 여부의 결정 기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담았다. 외교부는 "이번 법령 제정으로 사할린 동포 및 그 동반가족의 영주 귀국과 정착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게 됨에 따라 사할린 동포의 지원 및 피해구제가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1-01
  • 국민인 자녀를 잘 보살핀 ‘한부모 결혼이민자’ F-2 자격 부여
    [동포투데이] 법무부는 21일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이 단절된 후에도 출생한 자녀(국민)를 성년이 될 때까지 국내에서 직접 양육한 외국인 부·모(한부모 결혼이민자)에 대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곧 성년이 되는 자녀를 둔 한부모 결혼이민자에게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거주(F-2) 자격을 부여한다. 법무부는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한부모 결혼이민자에 대한 거주(F-2) 자격 부여시 결혼이민자의 국내 생활기반, 자녀와의 유대감, 기본소양 등의 충족여부 등을 심사할 예정이다. 다만, 직접 양육은 하였으나 기본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도 거주자격을 부여하되 체류기간을 1년으로 하여 한국어 능력 배양 등 자녀의 성장 지원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법무부는 한부모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개선 등 지원을 계속하고, 건전한 국제결혼 및 가족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0-12-22

연예·방송 검색결과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웰컴투 삼달리' 강미나, 가슴 먹먹한 눈물 연기로 시청자 울렸다
    [동포투데이] '웰컴투 삼달리' 강미나가 가슴 먹먹한 눈물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6, 7일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극본 권혜주, 연출 차영훈, 제작 MI, SLL) 11회, 12회에서 해달(강미나 분)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딸 하율(김도은 분)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해달과 하율의 이야기가 공개돼 관심을 집중시켰다. 해달은 스물한 살의 앳된 나이에 남편을 잃고 하율을 혈혈단신 키워왔고, 하율은 이런 엄마를 위해 어리광을 부리는 대신 잔소리를 하는 똑 부러진 아이로 자라온 것. SNS에 하율의 사진을 업로드하던 해달은 자신과는 달리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하율을 보며 금세 행복한 미소를 지어 누구보다 강인하고 책임감 있는 면모를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해달은 "저렇게 속 깊은 아홉 살은 처음 봤어. 할머니 죽으면 자기 엄마는 누가 지켜주냐고 막 울더라고"라는 지찬(김민철 분)의 말에 놀라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이어 그는 곧장 하율에게 달려가 "아무도 엄마 지켜주지 않아도 돼. 엄마는 지킬 게 있잖아. 네가 있잖아. 지킬 게 있는 사람이 더 센 거야"라며 하율을 꼭 끌어안아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처럼 강미나는 깊은 속내를 가진 '해달' 캐릭터를 섬세한 감정 연기로 표현하며 안방극장에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웃음부터 눈물까지 다채로운 감정의 변주를 소화해 해달의 서사에 몰입감을 높이고 있는 그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커진다. 한편 강미나가 출연 중인 JTBC '웰컴투 삼달리'는 매주 토, 일 밤 10시 30분 방송된다. <사진 제공 : JTBC '웰컴투 삼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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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엑소 전 멤버 크리스 징역 13년 원심판결 유지
    [동포투데이] 베이징시 제3중급인민법원은 24일 오전 엑소 전 멤버 크리스(우이판•吴亦凡)의 강간 및 취중음란(聚众淫乱) 항소 사건에 대해 공개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베이징시 차오양구 인민법원은 피고인 크리스에게 강간죄로 징역 11년 6개월과 추방, 취중음란죄로 징역 1년 10개월 등 여러죄를 적용하여 징역 13년과 추방을 선고했다. 1심 판결 후 크리스는 항소했다. 베이징 제3중급인민법원은 크리스가 여성들의 의사에 반해 여러 피해자들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의 행위는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원심판결에서 밝혀진 사실이 명백하고, 증거의 신빙성이 있고 충분하며 재판 절차가 적법하다며 크리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크리스의 가까운 친척들과 중국 주재 캐나다 대사관 관계자들이 2심 판결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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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4
  • 刘亦菲戴4000万珠宝出席活动,生图曝光惨遭网友吐槽:胖的像大妈
    刘亦菲以代言宝格丽为名,在高级珠宝晚宴上亮相。不过,她的照片和视频在网络上流传后,却引发了网友们的吐槽。许多人指出刘亦菲的身材变得圆胖,称她的形象已经远离了神仙般的美貌。她的手臂和腰部被网友们戏称为“壮”和“圆桶”,对于刘亦菲近年来不注重身材管理的行为表示不理解。 然而,为什么会有那么多人还在吹嘘她的美貌呢?刘亦菲作为宝格丽的全球代言人,亮相了宝格丽的高级珠宝晚宴。这次活动中,刘亦菲穿着es最新款高定礼服,脖子上佩戴了一条价值4000万的蓝宝石项链。而宝格丽为了给她制造独特的出场效果,安排了迪士尼公主的出场排面。 刘亦菲从迪士尼城堡的背景中缓缓走下台阶,宝格丽的CEO亲自在台阶下等她,并挽着她的手臂将她送入座位。这样的排面可谓是独一无二。然而,刘亦菲的生图和视频在网络上流传后,却引发了网友们的吐槽。网友们纷纷评论刘亦菲的身材,形容她的形象膀大腰圆,甚至戏称她身材“壮”、“圆桶”。 有人表示不理解为什么还有那么多人吹嘘刘亦菲的神仙美貌,认为她已经越来越不注重身材管理。不可否认,刘亦菲的外貌在娱乐圈中一直享有盛誉。然而,随着时间的推移,她的身材似乎出现了变化。网友们对她的吐槽中提到了她的溜肩、龅牙、漏牙龈以及脸型不流畅等问题。 尤其是她的上半身,手臂比其他女明星粗上好几圈,腰部更是被形容为一个整个圆桶。这些问题让人们开始质疑刘亦菲是否还保持着过去的美貌。对于刘亦菲来说,身材管理对于一个女艺人来说是非常重要的。她的美貌和形象是她作为宝格丽代言人的资本之一。如果她继续忽视身材管理,很可能会对她的事业造成负面影响。 毕竟,观众和粉丝们也是对她的外貌有一定期待的。作为娱乐圈的一员,刘亦菲需要时刻保持好的形象。她可以通过饮食控制、定期锻炼以及积极参与健身计划来管理自己的身材。此外,她还可以寻求专业的指导和建议,例如聘请私人教练或营养师,以确保自己的形象始终保持在最佳状态。 总而言之,刘亦菲作为宝格丽的全球代言人,虽然在外貌上曾经受到广泛赞誉,但她近年来的身材变化引发了网友们的吐槽。对于一个女艺人来说,身材管理是非常重要的,尤其是作为一个代言人。刘亦菲应该意识到这一点,并采取积极的行动来改善自己的形象。 对于她的粉丝和观众们来说,他们希望看到的是一个始终保持美丽和健康形象的刘亦菲。最后,我们不禁要问:你认为一个女艺人对于自己的身材应该如何管理?你对刘亦菲的身材变化有何看法?请在评论中与我们分享你的想法。刘亦菲:美若天仙的背后,是她独特的魅力刘亦菲,一个名字让人心生敬意,一个人物让人惊叹。 她身上散发着一种与众不同的魅力,这种魅力不仅仅来自于她的外貌,更来自于她的自信和真实。近日,刘亦菲的一场现场表演引起了争议。有人称她胖了,有人则为她辩护。但是,不管是赞美还是贬低,都不能完全准确地描述刘亦菲的美。因为她的美不仅仅是单纯的外观,更是一种内在的气质。 她的美是珠圆玉润的美,不是流水线式的排骨美。她的美是自信的美,不是被他人定义的美。刘亦菲的出现,给了女明星们一个新的选择。她告诉我们,不需要苛求自己的身材,不需要无谓的身材管理。重要的是,要有自己的风格,要有自己的特色。刘亦菲就是一个活生生的例子,她以她独特的魅力征服了观众的心。 对于那些攻击刘亦菲的人来说,他们是出于酸葡萄心理还是出于对完美的追求?他们是否忽略了刘亦菲的真实与自信?刘亦菲的丰满并不是让人觉得油腻,她的脸也没有双下巴,而是充满着胶原蛋白的光彩。她的状态已经非常好了,而且她还拥有出色的演技和优秀的作品。难道这些不值得我们称赞和喜爱吗? 刘亦菲的美是一种独特的存在,无法用凡俗的标准来衡量。她的美来自于她的自信和真实,来自于她对自己的认同和热爱。她的美是一种灵魂的美,一种内心的美。无论在外观上还是在人格上,她都展现着一种令人动容的魅力。所以,我们应该怎样看待刘亦菲的美?我们应该从她身上学到什么呢? 我认为,我们应该学会接纳不同的美,学会珍惜自己的独特之处。我们不应该被他人的评价左右,而是要相信自己的价值和魅力。刘亦菲的美是一种态度,一种对自己和他人的尊重。她告诉我们,每个人都有自己的美,只要我们敢于展现,敢于接受,就能拥有属于自己的光芒。 所以,让我们一起以刘亦菲为榜样,勇敢地追求自己的美,勇敢地做真实的自己。刘亦菲的美引发了争议,你对此有何看法?你认为美的定义是什么?欢迎留言分享你的观点!
    • 연예·방송
    2023-11-19
  • 배우 강미나, 전북 현대 찐 사랑에서 시축까지! 성덕된다
    [동포투데이] 배우 강미나가 전북 현대 경기의 시축에 나선다. 25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강미나가 오는 28일(토)에 열리는 ‘K리그 파이널라운드’ 전북 현대팀과 포항 스틸러스 팀 경기의 시축에 나서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강미나는 개인 SNS를 통해 전북 현대 팀에 대한 찐 사랑을 드러냈을 정도로 평소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터. 이에 많은 이들이 그의 시축을 기다린 가운데 강미나는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강미나는 2016년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와 구구단으로 데뷔, 통통 튀고 러블리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MBC ‘20세기 소년소녀’, tvN ‘계룡선녀전’, tvN ‘호텔 델루나’, KBS 2TV ‘미남당’ 등 다수의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뛰어난 존재감으로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기도. 뿐만 아니라 11월 22일(수) 개봉을 확정 지은 영화 ‘사채소년’을 통해 스크린으로의 데뷔를 앞두며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한편 강미나가 시축에 나선 전북 현대는 지난 정규리그에서 4위로 파이널 A에서 파이널 라운드를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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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5
  • 올여름 시즌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기록 경신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 영화국 통계에 따르면 18일 7시 기준 2023년 여름 시즌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는 178억 위안으로 2019년 177.79억 위안을 넘어서며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웠다. 또 2023년 여름 시즌 관객 수는 4억35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 톱 6은 현재까지 국산 영화가 차지했다. 이 가운데 '사라진 그녀(消失的她, 소실적타)'가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 1위에 잠정 올랐다. '고주일척(孤注一掷)' , '팔각롱중(八角笼中)', '봉신1부: 조가풍운(朝歌风云)', '장안삼만리(长安三万里)', '원앤온리(热烈)'가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 2~6위에 올랐다. 이밖에 '염염상망(念念相忘.2023)', ' 최후적진상(最后的真相)', '절지추격(绝地追击)', '오펜하이머(奥本海默)' 등 장르가 풍부한 국내외 영화들이 올여름 시즌에 선보일 예정이다.
    • 연예·방송
    2023-08-19
  • 개그맨 이지수 별세…향년 30세
    [동포투데이] 개그맨 이지수가 11일 향년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에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고 사인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지수는 2021년 '코미디 빅리그'에 데뷔해 다양한 유닛에 출연하며 무대에 많은 작품을 남겼고,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코미디 빅리그'는 tvN에서 2011년 9월 17일부터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코미디언들은 그녀의 별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팬들은 "웃겨줘서 고맙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 연예·방송
    2023-07-12
  • 가수 크리스 강간·취중음란죄로 징역 13년 선고, 강제추방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2022년 11월 25일 오전 베이징시 차오양구 인민법원은 피고인 크리스에게 강간죄로 징역 11년 6개월, 취중음란죄로 징역 1년 10개월 등 징역 13년과 추방형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피고인 크리스는 2020년 11월부터 12월까지 거주지에서 3명의 여성이 술에 취해 저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틈을 타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2018년 7월 1일 거주지에서 다른 여성 2명과 함께 음주 후 음란행위를 조직했다. 차오양구 인민법원은 크리스의 행위가 강간죄와 취중음란죄를 구성하였으므로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크리스가 범죄를 저지른 사실, 범죄의 성격, 정황과 위해의 결과에 근거하여 법정은 상술한 판결을 내렸다. 주중 캐나다 대사관 관계자가 선고를 방청했다. 지난해 경찰은 그가 젊은 여성을 유인해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인터넷에 퍼지자 수사에 착수했다. 크리스의 소속사와 변호인은 혐의를 부인했고 크리스 역시 5200만 명의 팔로워에게 미성년자와의 성행위가 없었다고 알렸다. 크리스는 안심하라며 “이런 행동이 있다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차오양구 인민법원은 중국계 캐나다인 32세의 힙합 스타 크리스가 복역 후 추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 연예·방송
    2022-11-25
  • 다문화 가수 헤라, KBS1TV ‘우문현답’ 출연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다문화가수 헤라(한국명 원천)가 KBS1TV '우문현답'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소속사 HERA엔터테인먼트(회장 박대홍)는 지난 20일부터 KBS1TV 우문현답 팀이 하동농부를 찾아 노루궁뎅이버섯 농장 시설하우스동과 버섯재배 현장을 배경으로 한 헤라의 인터뷰 촬영을 마쳤다고 22일 밝혔다. '우문현답'은 KBS1TVrk 제작한 지역 밀착 프로그램이다. 촬영은 경남권 시니어를 소재로 휴먼 다큐를 찍어온 최정우 감독이 했다. 최 감독은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는 15년차의 다큐멘터리스트다. 최근에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부야 나부야’를 개봉해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최정우 감독은 헤라의 현답을 통해 하동농부 농장 주변 마을소개는 물론, 동네 어르신들의 사는 이야기, 이장 인터뷰, 특산물 홍보, 자녀들에게 안부 인사 등 하동농부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예정이다. 중국 국립가무단 출신인 헤라(중국명 웬청쒸)는 대륙에서 영화 ‘첨밀밀(티엔미미)’ OST를 중국 버전으로 불러 이름을 떨쳤다. 이후 한국에 귀화한 '헤라(HERA)'는 현재 (사)한국다문화예술원 원장을 맡고 있다. 2년전 하동군에 귀농해 노루궁뎅이버섯 농장 ‘하동농부’를 운영 중이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는 헤라의 3집 ‘가리베가스’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다문화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집결해 생활하고 있는 서울 구로공단 가리봉동을 비교한 세미트로트 곡으로 작곡가 윤명선이 작사·작곡했다.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에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희망을 노랫말로 담았는데 중국어 버전은 가수헤라가 직접 번역했다. KBS1 TV ‘우문현답’은 오는 9월 7일(수) 오후 8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다.
    • 연예·방송
    2022-08-23
  • 홍콩 언론 “中, ‘연예인 팬덤’ 단속 효과적”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중국 정부는 ‘연예인 팬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주 기준 15만여 건의 악성·유해정보를 처리하고 4천여 건의 불법 계정을 폐기했다. 웨이보는 ‘스타 파워리스트’ 취소를 선언했다. 이 차트는 팬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아이돌의 순위를 끌어올렸다.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불량 팬들이 신상털기나 욕설로 아이돌에 대한 지지를 과시하는 등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다. 마크 태너 인사이트 비즈니스 컨설팅 사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팬 문화는 중국에서 이상현상”이라며 “소비자들은 정말 그들의 아이돌에게 지갑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에 따르면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의 최근 행동이 미성년자의 아이돌 기부 유도와 욕설, 신상털기 등을 억제하고 있다. 신문은 또 해당 기관이 팬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도록 격려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과 이슈를 조작해 여론을 조성하고 좀비팬을 이용해 아이돌의 트래픽을 늘리는 활동도 중단시켰다고 전했다. 팬 문화에 대한 베이징의 엄격한 검열은 ‘팬덤’이 온라인 여론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반영한다. 최근 한 보고서는 ‘팬덤"을 바로잡는 것은 팬들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회색 산업 체인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저장성(浙江省)에 사는 18세 팬클럽 회원은 과거에는 매일 오랜 시간 아이돌이 웨이보 등 SNS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수와 배우 모두 차트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과거에는 내 아이돌이 새로운 광고를 받으면 용돈을 다 써서 (그들이 보증하는 제품) 구매했지만 지금은 유용한 제품만 산다”고 말했다. 그녀는 최근 단속이 시작된 이후로 아이돌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적인 모금 활동을 ‘팬클럽’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광저우에 사는 15세 소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팬클럽’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중일 보이그룹의 팬인 그녀는 같은 앨범을 8번 사서 매출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연예인을 미친 듯이 쫓아가면 돈을 많이 쓰게 되고, 다른 아이돌 팬들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지난 7월 ‘팬덤’의 난맥상이 잦지만 일부 팬덤도 격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이 논평은 “‘팬덤’의 동원력과 조직력은 특히 일부 공개 행사에서 매우 강력하며 국익과 같은 핵심 문제에 대해 큰 결속력과 단결력을 신속하게 보여줄 수 있고 이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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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4

스포츠 검색결과

  • 中 유명 개그맨 “축구대표팀은 해삼처럼 물렁한 것을 좋아해”
    [동포투데이] 개그맨 출신 전국 정협위원 공한린(巩汉林)과 전 중국 남자축구대표팀 선수 펑샤오팅(冯潇霆), 유명 인터넷 논객 동루(董路) 등이 연며칠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원로 개그맨 펑공(冯巩)이 국가팀을 저격해 나섰다. 일전 펑공은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을 조롱하는 영상을 공개하여 웨이보를 후끈 달궜다. 영상에서 펑공은 "아일린 구는 소가 든 구운빵을 좋아하는데 구운빵의 노란색이 금메달과 같은 색이기 때문이고 여자축구대표팀은 면을 즐겨먹는데 이는 중국인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하면서 "남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을 해삼을 즐겨먹는데 해삼은 겉보기에는 온몸에 가시가 돋친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물렁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펑공은 이 영상을 통해 해삼과 남자축구대표팀을 연결시키면서 남자축구대표팀의 무기력한 경기력을 조롱했다. 앞서 중국 남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인터뷰에서 매일 '해삼을 먹으면서 체력을 보충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조롱을 받은 바 있다.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안 최종예선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키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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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0
  • 안녕 베이징! 피겨스케이터 차준환에 네티즌 열광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피겨스케이터 선수 차준환이 20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사진을 게재하며 19만 네티즌의 '좋아요'를 받았다. 차준환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인 레이스를 마치고 오는 3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13일 귀국했다. 20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같은 날 차준환은 SNS '인스타그램'에 "안녕 베이징!, (여기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파이팅!"이라는 글과 함께 경기장에서 관전하는 모습과 오륜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등 4장을 공유했다 게시물이 게시된 후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으며 많은 네티즌들은 "중국에 온 것을 환영해요!", "응원해요!", "퍼포먼스가 멋졌어요!"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 피겨 개인전 남자 싱글에서 총점 282.38점으로 5위에 올라 메달권에는 실패했지만 개인 최고를 경신했다. 이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단식 최고 성적이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공식 SNS를 통해 "경이로운 연기를 펼친 차준환 선수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평창에서 앳된 소년이 단단한 청년이 되어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을 줬습니다. 메달 이상 아름다운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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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23
  • 日 언론, 베이징 동계올림픽 대국 면모 과시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올림픽 개최는 한 국가의 종합적인 국력과 문명을 보여줄 수 있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 중국의 세계 무대 진출과 대국으로의 부상을 의미했다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세계 리더로서의 중국이 국제 규칙 제정에 대한 참여의 상징이다. 미국이 '보이콧'을 외치고 있지만, 이번에 '보이콧'은 표면에 불과하고 미국의 호소력이 예전만큼 좋지 않은 것같다. 중국은 코로나19와 경제적 대가, 기후규제와 외교적 압박을 딛고 흔들림 없이 글로벌 행사를 개최했다. 18일 일본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가운데 구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를 "사랑스러운 중국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했다. '귀엽다'는 이면에는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조용히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올림픽 라이선스 상품점 앞에는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며 '빙둔둔'을 사려는 사람들은 종종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일본 언론이 SNS를 통해 '빙둔둔' 영상을 보도하면서 하루아침에 화제가 됐다. '빙둔둔'은 생기발랄한 당대 중국의 이미지를 과시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빙둔둔' 디자인은 중국 미학과 현대 테크놀로지, 정직한 품질을 구현했다. 중국 언론은 '빙둔둔'을 귀여운 중국의 축소판이라고 치켜세웠다. 세계 각국은 이제 더욱 자신만만한 중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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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20
  • 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중국 남자 축구대표팀
    [동포투데이] 설 연휴 며칠간 중국 축구팬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남자축구대표팀이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일본과 베트남에 연이어 패하며 예정보다 일찍 월드컵에 작별을 고했다.반면 여자축구는 베트남과 일본을 연파하며 기염을 토했고 한국과의 결승전에선 3-2로 승리로 16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 두 국가대표팀을 비교하면 격차가 확연하다. 남자 축구대표팀은 체면을 구긴 반면 여자 축구 대표팀은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이 뿌듯해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전에서 20분도 채 되지 않아 두 골을 잃었다. 장면에서 패하지는 않았지만 1-3의 스코어가 매우 눈길을 끌었다. 리샤오펑으로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였지만 여전히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새해 첫날 패배도 팬들의 분노를 배가시켰다. 중국 축구계의 유명 사회자로 축구에 대한 애증이 컸던 류젠훙(劉建宏)은 중국이 베트남에 1-3 참패를 당한 뒤 개인방송에서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국가대표팀에 들어가자면 누군가의 은행카드에 입금해야하며 금액에 따라 출전회수가 정해진다. 그래서 중국 축구는 정말 문제가 많다!"고 일침을 날렸다. 그러면서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 돈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돈을, 대학교에 입학해도 돈을, 축구장에선 후보와 출전명단에 못든 선수는 더 많이 입금해야 한다"는 한 축구팬의 편지를 낭독했다. 중국 축구가 최근 20년 동안 발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폭적인 퇴보까지 했다. 이런 상황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축구 종사자들 중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생겼던 것을 돌이켜보면 중국이 베트남에 1-3으로 대패한 것도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많은 네티즌들은 류젠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젠훙형의 말을 믿는다. 단지 젠훙형이 창호지를 터뜨렸을 뿐이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젠훙은 대담하다. 할말을 했다. 탄복한다!", "젠훙이 감히 이렇게 말한다니, 정말 영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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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2
  • 한국 첫 금메달 ! 황대헌, 헝가리 리우 형제 꺾고 우승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베이징 올림픽이 계속된 9일 밤(현지시각)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한국 선수 3명을 비롯해 헝가리의 리우 샤올린 샨도르, 리우 샤오앙 형제를 포함한 10명이 A조 본선에 진출했다. 황대헌은 풀타임에서 2분 09초23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이번 대회 한국의 첫 금메달이다. 캐나다의 스티븐 뒤부아가 은메달을,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의 시몬이 동메달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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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9
  • 외신 "김정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축하"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를 축하하고 "양국 관계가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4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5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세계 보건위기와 전례 없는 혹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중국이 거둔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양당과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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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6
  • 중국 첫 금메달! 쇼트트랙 혼성계주 중국팀 우승
    [동포투데이] 5일 저녁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혼성계주 결승전에서 우다이징, 런쯔웨이, 판커신, 취춘위 등으로 구성된 중국 쇼트트랙 계주팀이 2분37초348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동계올림픽 2000m 혼성계주 항목은 총 12개 팀으로 3개 조, 4개 팀으로 나뉘어 각 조 상위 2개 팀이 4강에 직행하고, 성적이 가장 좋은 두 조 중 3위 팀도 4강에 진출할 수 있다. 준결승에 진출한 중국 팀은 8강전에서 한국, 이탈리아, 폴란드와 같은 조에 속했다. 판커신은 중간에 이탈리아에 잠시 추월당했지만, 폴란드와 한국이 출전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조 1위에 올랐다. 준준결승에서 중국이 네덜란드, 캐나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카자흐스탄이 조 3위로 진출했다. 준결승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중국의 최대 상대 네덜란드가 큰 실책을 범하며 무너졌다. 중국은 미국, 헝가리, 러시아와 같은 조에 속했다. 핸드오버 스틱에서 중국이 미국의 방해를 받으며 꼴찌로 추락했다. 중국이 2위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주심이 화상 판독을 통해 러시아올림픽위원회(LOC)팀과 미국팀이 계주봉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중국을 방해하는 동작을 확인했고 중국은 아슬아슬하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초반에는 중국의 상대는 이탈리아, 캐나다, 헝가리였다. 경기 시작과 함께 판커신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중국은 역전에 성공했고 두 번째 스윙에서 우위를 점했다. 캐나다와 헝가리가 넘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탈리아가 추월에 거의 성공했지만 결국 중국이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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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5
  • 시진핑, 세계 고위 인사 초청 만찬 주최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5일 정오 인민대회당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전 세계 귀빈들을 환영하는 연회를 주최했다. 시 주석은 건배사에서 중국 정부와 인민을 대표해 중국을 방문하고 올림픽에 참석한 모든 귀빈들에게 따뜻한 환영의 뜻을 전했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아끼고 지지하는 모든 정부와 국민, 국제기구들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친환경적이고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깨끗한 대회'조직에 헌신한 중국이 코로나19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며 국제사회에 대한 엄숙한 서약을 성실히 이행하여 예정대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원활한 개막을 보장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중국이 3억 명의 중국인들을 빙설 스포츠에 참여시키는 목표를 달성했고 올림픽대의에 새로운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 운동은 예로부터 평화, 연대, 진보를 향한 인류의 열망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또 "중국은 올림픽 운동의 열망을 명심하고 세계 평화를 공동으로 지지할 것"이라며 상호 존중과 평등의 기초위에서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올림픽운동 정신을 고취하고 연대를 통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공동의 도전에 부응하겠다"며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화합과 협력의 국제가족을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평화와 발전, 형평성, 정의, 민주주의, 자유라는 인류의 공통의 가치를 충실하게 지키고 문명 간 교류와 상호학습을 증진하며 인류의 미래가 공유되는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호랑이가 힘, 용기, 그리고 두려움의 상징이라는 것을 주목하면서, 시 주석은 모든 올림픽 선수들이 호랑이의 힘으로 훌륭한 경기를 펼치기를 기원했다. 이어 "우리 모두의 공동 노력으로, 베이징 2022가 분명 합리적이고, 안전하고, 화려한 올림픽 게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연설에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특별하고 화려한 개막식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중국이 예정보다 일찍 3억 명의 사람들을 동계 스포츠에 참여시키는 목표를 달성했고 이것은 세계 얼음과 빙상 스포츠의 패턴을 영구적으로 바꾸고 중국과 세계 모두에 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롭고 건강한 경쟁을 통해 세계를 단결시키는 것이 올림픽 운동의 사명이며 이 또한 모든 나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 사회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차이를 극복하고 공유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희망했다. 왕후닝과 한정 등 중국의 고위 지도자들도 연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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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5
  • 아르헨티나, 중국과 공동으로 축구 학교 설립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바카 나르바자(Vaca Narvaja) 주중 아르헨티나 대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방중 기간에 아르헨티나와 중국이 공동으로 축구학교 설립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카 나르바자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이번 방중 기간에 양국은 공동으로 축구학교 설립을 발표할 것이며 아르헨티나 코치와 기술자들이 중국 축구 선수를 훈련시키고 집중적인 스포츠 교류 활동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 협력은 앞으로 아르헨티나-중국 협력의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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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시진핑,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 예정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월 4일부터 6일까지 베이징(北京) 2022년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개막식에 참석하는 외국 원수와 정부 수반, 왕실 구성원,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위한 환영연회를 열고 관련 외교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화춘잉(華春泳)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8일 밝혔다. 베이징의 2022년 동계올림픽 개막식 및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국제 정계요인들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하모니 캄보디아 왕, 할리마 싱가포르 대통령,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베르디무카메도 투르크멘 대통령, 미르지요예프 투르크멘 대통령, 시시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 카타르 에미르 타밈 카타르 왕세자 아부다비, 폴란드 두다 대통령,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앙리 룩셈부르크 대공, 알베르 2세 모나코 왕자,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루소 에콰도르 대통령, 오윤 에르덴 몽골 총리,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각료회의 의장 테겔티아, 파푸아뉴기니 마라페 총리, 박병석 대한민국 국회의장, 아메도프 아제르바이잔 부총리, 태국 시린돈 공주, 바흐 IOC 위원장,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샤히드 유엔 총회 위원장,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덩훙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사무총장, 트로요 신개발은행(NDB) 총재, 장밍 상하이협력기구 사무총장 등이다.
    • 스포츠
    2022-01-29

포토뉴스 검색결과

  • 고속열차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동포투데이] 최근 중국의 한 고속철도가 춘제 여행의 혼잡 속에서 식당차를 어린이 놀이터로 바꿔 많은 승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1월 29일 푸젠성 샤먼에서 상하이로 출발하는 G1654 열차는 식당차의 일부를 장난감과 동화책이 제공되고 열차 승무원이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어린이 놀이터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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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포토] 연길조선족민속원
    [동포투데이] 왕홍챵(网红墙)부터 조선족민속원까지, 연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정교한 화장과 색다른 민족의상, 웃음 가득한 젊은 얼굴들은 소도시 연길의 아름다운 풍경선이 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왕홍도시(网红城市)’로서 연길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현지 당국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현재 이곳 한복대여점은 연초 102개에서 현재 573개로 증가했다. 민족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변방의 소도시는 싼야, 리장 등 도시에 이어 국내에서 또 하나의 여행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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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2023 문교협카시아국제무용콩쿠르 성료
    [동포투데이] 문화체육관광부 공익법인 사)한국문화예술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한 ‘2023 문교협 카시아(KACIEA)국제무용콩쿠르’ 가 지난 9월 9일부터 상명아트센터 계당홀 대극장에서 개막하여 9월 2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 총 국내,해외 순수무용,실용무용 850명의 참가자가 참여하여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며 150명이 참여한 해외팀은 국내 교수진의 지도로 현대무용,발레,한국무용 연수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023 문교협 카시아 국제무용콩쿠르는 올해 현대무용이 강세를 보였으며 유튜브 카시아TV로 생중계되어 국내,해외 가족들의 열띤 응원도 대회의 활기를 불어넣는데 일조 했다. 특히 K 문화에 관심이 높은 해외 참가자들은 코레오, K-pop댄스 등 2주간 진행된 강도 높은 심화 교육에도 열정으로 임하였고 9월 22일 갈라쇼와 함께 빛나는 시상식, 수료식을 진행하며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문교협 장유리이사장은 참가자들의 기량은 해마다 발전하고 있고,지도자들의 열정적인 교육에도 감사함을 전했으며 24년에는 더 많은 스칼라쉽과 스케일업 된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예술무대와 교육의 장으로 한층 도약할 것을 시사했다. 전 부문 종합대상(그랑프리)과 순수무용 실용무용 그랑프리는 장학금이 주어지며 영예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전 부문 종합대상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한국예술종합학교 1년 정건세 ♣ 전 부문 종합차상 (세미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중학교 2년 고진경 ♣ 순수무용 전 부문 대상 (Grand Prize)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중학교 2년 고진경 ♣ 순수무용 대학,일반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한국무용 창작 - 한성대학교 2년 임종근 컨템포러리 댄스 - 성균관대학교 (졸) 박서현 ♣ 순수무용 고등부 전 부문 대상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여자고등학 교1년 강희수 ♣ 순수무용 중등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한국무용 창작 - 예원학교 1년 위서윤 컨템포러리 댄스 - 명덕여자중학교 2년 정가은 발레 - 예원학교 1년홍수림 ♣ 순수무용초등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서울 강신초등학교 6년 백윤아 에스닉댄스 그룹 – 몽골 / TSAGAAN TEMEELTSEKH SUNDUISUREN TSOLMONERDENE 외 17인 ♣ 유치부 전부문 대상 (그랑프리) Ballet – 그랑드발레학원 최은유 ♣ 실용무용 고등부 전 부문 대상 Dance Sports – 안양예술고등학교 3년 신바다 ♣ 실용무용 중등부 전 부문 대상 Jazz Dance - 환호여자중학교 2년 정휘서 ♣ 초등부 전 부문 대상★ 코레오 그룹 – Mongolia / JANJIN CHOIR AMARSAIKHAN ANIR 외9인 ♣ 교육부장관상 컨템포러리 댄스 –Mexico / Ara Jun (전아라) Colegio Inglés 2년 졸 -Maries Dance Studio 전아라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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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2023 미스홍콩 챔피언, 장쯔쉬안(Hilary Chong)
    [동포투데이] ‘2023 미스홍콩 선발대회’가 27일 TVCity에서 열렸다. 우승은 15번 장쯔쉬안(庄子璇·Hilary Chong)이 차지했다. 예선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장쯔쉬안은 대학생으로 현재 홍콩대학에서 식품영양과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전 미스 홍콩 챔피언 펑잉잉의 후배이기도 하다. 장쯔쉬안은 이미 내정된 챔피언으로 알려지면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고, 심지어 미녀들에게 보이콧을 당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키 168.5cm, 체중 51kg의 완벽한 몸매와 달콤하고 청순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장쯔쉬안은 예선부터 언론과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일부 누리꾼은 그녀를 홍콩판 아이유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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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8
  • 2023 연변관광상품대회·제6회 연길관광상품대회 시상식 개최
    [동포투데이] 6월 30일 2023년 연변관광상품대회 및 제6회 연길관광상품대회 시상식이 연길시에서 개최된 가운데 3개의 디자인상과 21개의 실물상이 발표되었다. 이 중 광동촌 브랜드 조선족 민속음식 자열 즉석식품 포장이 디자인 부문 금상을 엄마 막걸리가 실물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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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01
  • "로봇이 베이징에 모인다" - World Robot Expo 2022 개막
    [동포투데이] 2022년 세계 로봇 엑스포가 8월 18일 베이징 이촨 국제전시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엑스포는 130개 이상의 로봇 회사와 과학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3개의 주요 전시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총 500여개의 로봇이 전시된 이번 엑스포에는 30여개의 신제품이 현장에서 발표되며 로봇 기술의 혁신성과와 응용현황을 중심으로 로봇의 선진 기술과 제품을 집중 조명한다.(Photo by Zou Hong/china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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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0
  • 中, ‘가오카오’ 개시…1,193만 명 응시
    [동포투데이] 중국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산발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의 대학 입시라고도 불리는 가오카오가 전국적으로 6월 7일과 8일 치러진다. 올해에는 전국에서 1,193만 명의 학생이 시험에 응시하였으며 그 중 최소 48,000명이 베이징에서 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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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7
  • 장춘-백두산 고속철도 24일 개통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24일 심양(瀋陽)-가목사(佳木斯) 고속철도 백두산(장백산·長白山)-돈화(敦化) 구간이 공식 운행에 들어갔다. 이로서 백두산 풍경구는 국가 고속철도망과 연결돼 장춘{長春)에서 백두산까지 2시간 18분 소요된다. 심양-가목사 고속철도 백두산-돈화 구간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해 있으며 시속 250km로 설계된 99km의 노선은 원시림을 가로지르기에 '삼림고속철도'로 알려져 있다.(사진 : 중국정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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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4
  • 中 항저우 56개 민족 커플 100쌍 '합동결혼식'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6일 항저우에서 열린 제23회(2021) 중국 시후칭(西湖情) 장미결혼식에서 티베트·신장(新疆)·네이멍구(內蒙古)·윈난(雲南)·광시(廣西)·구이저우(貴州)·쓰촨(四川)·후난(湖南)·지린(吉林)·간쑤(甘肅)·후베이(湖北)·허베이(河北) 등 전국 56개 민족 100쌍의 커플이 참가해 축복 속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중국 시후칭 장미결혼식'은 공청단저장성위원회와 저장성청년연합회, 항저우시당위원회 홍보부가 공동 후원하는 대형 공익 합동결혼식으로 1999년부터 30여개 국가와 지역의 6700쌍이 넘는 커플이 결혼식을 올려 '사랑의 도시'로 이름을 알리면서 상징적인 축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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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9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中 산시성 한 회사 고위 간부, 가정폭력 혐의로 정직 처분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한 남성이 한밤중 자녀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한 비난을 받은 후 회사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산시 공항그룹 계열사인 뉴실크로드무역은 회사 한 부서의 부국장인 왕펑페이(王鹏飞)가 가한 가정폭력을 깊이 규탄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18일 성명을 통해 왕씨를 정직 처분하고 징계 감찰부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왕씨의 아내 병문안을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왕씨가 주먹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의 머리를 한동안 계속해서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시안 공안당국은 20일 성명을 통해 경찰이 왕씨의 아내로부터 신고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조사 결과 왕씨는 지난 18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후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시성 여성연합회는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형태의 가정 폭력을 근절할 것을 촉구하며 왕씨의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또 왕씨의 아내에게 필요한 법률지원과 심리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은 행위의 경중에 따라 행정 또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네티즌들의 강력한 비난을 촉발했다. 시나 웨이보 마이크로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시태그가 18일 밤까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네티즌은 해당 영상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 생활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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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2
  • ‘얼쑤~좋구나’ 추석 맞이 조선족 민속 문화제
    [동포투데이] 조선족 추석 민속행사 겸 중국·안도 제3회 조선족 민속 문화제가 19일 안도현 장백산 문화엑스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현 문화관 배우들과 현지 주민들이 '조선족 농악무'를 선보였고 9개 마을 주민들은 줄다리기 등 경연을 벌였다. 씨름, 윷놀이, 투호 등 경연장에서도 관객들이 즐겼고 전통음식 코너에서는 찰떡, 순대, 막걸리 등 전통음식은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밖에 무형문화재 작품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관광객들이 안투 무형문화재의 매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国润影视航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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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2
  • 헤이룽장, 구조된 동북호랑이 다시 자연으로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밀산시의 한마을에 침입했던 동북호랑이가 구조에 성공한 뒤 18일 무링(穆棱) 임업유한공사 시업구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는 동북호랑이가 생리지표가 정상이고 이상행동이나 질병 위험이 없어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야생 동북호랑이를 구조해 풀어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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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동영상] 중국·화룡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축제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5.1 국제 노동절 연휴 첫날 길림(吉林)성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 화룡(和龍)시 서성(西城)진 진달래 마을에서 제12회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제가 열렸다. 이날 조선족 민속 패션쇼, 전통 씨름, 대형 가무 '고향 진달래' 등 조선족만의 독특한 민속예술 공연이 번갈아 막을 올렸다. 본회장과 분회장에서 열린 '만인 김치 만들기', '백 미터 순대 만들기', '천인 비빔밥' 코너 그리고 '조선족 꽃떡' 등 민속음식 체험부스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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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2
  • 연변, 농가에 내려온 동북호랑이 개 목덜미를 덥썩
    [동포투데이] 지난 1일 연변에서 야생동북범이 마을에 내려와 포식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영상을 보면 동북범이 집을 지키고 있던 개에게 살금살금 다가오다가 순식간에 덮치면서 목덜미를 덥석 물었다. 목격자(촬영) 왕 씨는 “당시 촌민이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은 후 개를 구하러 나왔고 동북범과 7, 8m 떨어진 위치에서 10초가량 동북범과 눈이 마주쳤다”고 전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동북범이 아주 배가 고팠나 보다”, “당시는 격동되었지만 후에 생각해 보니 무서웠을 것 같다”, “이는 생존본능이다. 개가 불쌍하다”, “너무 용맹한데 너무 무섭다” 등 반응을 보였다. 현지 매체는 최근 들어 동북호랑이가 도로나 마을 주변에 자주 출몰하면서 가축을 습격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호랑이가 출몰할 수 있는 곳에서 활동을 자제하고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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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8
  • 앗! 범이다
    [동포투데이] 1월 19일, 연변자치주 왕청현 버스 운전기사 임모씨는 복흥진 두황자촌과 2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야생 동북호랑이와 마주쳤다. 임모씨에 따르면 당일 오후 2시경, 9명의 승객을 싣고 왕청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복흥진 두 황자촌으로 향했다. 오후 4시 40분경, 두황자촌과 2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갔을 때 야생 동북호랑이 한 마리가 길가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모씨는 차를 세운 후 호랑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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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3
  • 신부가 혼례식장으로 향한후…
    최근 결혼식에서 신부가 혼례식장으로 향한 후 눈물없이 볼수 없는 친정집의 화면을 웨딩촬영을 하는 한 네티즌이 영상으로 공개하였다. 손녀의 모습이 사라진지도 오래 되였지만 신부의 할아버지는 쪽걸상에 올라선 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만 보았다. 간신히 눈물을 참은 신부의 아버지 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방에 들어가 몰래 눈물을 쏟는다. 이를 발견한 신부의 어머니는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그리고 남편의 눈물을 닦아주기까지 한다. 이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촬영하고 편집해야 했다. 딸이 있으면 마음속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게 된다!” 아이가 결혼식 날 집식구들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동영상은 많은 네티즌을 감동시켰다. “이런 아쉬움이야말로 딸에 대한 축복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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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6
  • 中 항저우 아내 '토막살해'한 남편 체포
    [동포투데이] 8월 6일 항주시 인민검찰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许国利)에 대하여 체포를 허가하였다. 2020년 7월 5일 새벽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을 겪던 중 항주시 강간구(江干区) 자택에서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내 여러 곳에 나누어 유기하고 부분적인 신체 조직은 변기를 통해 정화조로 흘려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에 따르면 7월 30일 항주시 공안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에 대한 체포를 신청하였다. 항주시 인민검찰원은 심사를 거쳐 쉬궈리는 범죄 수단이 잔인하고 성질이 악랄하며 고의살인죄 혐의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8월 6일 체포 신청을 허가하였다. 7월 6일 20시 07분 항주시 강간구 공안분국은 라이 씨 여성의 실종 신고를 받았다고 항주시 공안국은 통보하였다. 경찰은 아파트 단지 내 6개동 1만여㎡ 등 공공장소의 은밀한 부분에 대하여 전후로 4차례 이 잡듯이 수색하였다. 전담팀 기동대는 정화조에서 뽑아올린 38차량의 분뇨에 대하여 세척하고 걸러낸 결과 인체조직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DNA 검식 결과 라이 씨의 인체조직으로 판명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경우 라이 씨는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인 쉬궈리의 범죄 혐의가 명확해졌다. 경찰조사에서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으로 아내 라이 씨에게 불만이 쌓인 자신은 7월 5일 새벽 집에서 라이 씨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를 살해하고 토막 내서 정화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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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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