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강동헌(거주국가 인도네시아)

‘해븐스’는 2005년 인도네시아 Tangerang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아주머니 몇 분이 힘을 모아 만든 단체입니다. 수까르노 하타 공항 뒷길에 위치한 Rumah Sakit Sitanala (한센병 치료 병원) 근처에 모여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와 그들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지 벌써 열두 해가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곳 사람들에게 매주 5Kg의 쌀을 나눠주는 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어 100여 가구의 한센 가정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저와 어머니는 600kg이 넘는 쌀을 함께 나릅니다. 가끔 어머니가 햇살에 반짝이는 땀방울을 흘릴 때면, 그 땀방울이 아침이슬보다 더 곱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븐스 초창기부터 매주 한센병 가족들에게 쌀을 나눠주시는 일을 하고 계신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어 이 일에 스스로 동참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한번도 제게 그 일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이 되어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그린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밥상에서 어머니에게 신부님의 고귀한 삶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순간 “엄마가 이태석 신부님인데…?”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집에도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분이 제 아주 가까운 데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센병. 흔히 문둥병이라 불리는 무서운 천형. 그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들과 섞여 말을 나누고,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고 포옹도 해야 하는 상황을 아들인 제가 온전히 받아드릴 순간을 어머니는 오랫동안 기다려주셨던 겁니다. 그 후로 저는 한센인 마을로 향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5년간 한센병 가족들과 많은 추억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는 사람들은 보통 손가락이나 발가락, 심지여 팔, 다리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혹 쌀을 나눠주다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5kg의 쌀 한 부대를 힘겹게 드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곤 합니다. 힘들게 쌀을 짊어지고 가는 그들 뒤로 아이들이 따라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진흙 위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마음이 짠해지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그곳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고 직접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공부방에서 제일 어린 Fajar 라는 꼬마가 있습니다. 형을 따라서 5살 때부터 공부방 구석의 주인이 된 녀석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하는 귀염둥이 꼬마입니다. 형 공부가 끝날 때까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기다려 주는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형인 Jamal은 머리도 좋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제가 애착을 가지고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Fajar 와 Jamal은 언제나 제가 공부방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반겨줍니다. 특히 Fajar는 달려와 제 품에 안기곤 하는데 찜통 같은 공부방에서 제가 유일하게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꼬마 Fajar는 언젠가부터 얼굴에 흰 파우더를 바르고 나타납니다. 제가 하루는 Fajar 어머니에게 왜 파우더를 발라 아이를 공부방에 보내냐고 물어보니, Fajar는 제가 안아줄 때마다 좋은 냄새가 나는데 자신은 좋지 않은 냄새가 나서 미안하다며 공부방 오기 전에 꼭 목욕을 하고 파우더를 온 몸에 발라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을 한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세상 가장 좋은 향기를 가진 그 아이가 온전히 자라서 그 향기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은 부모가 한센병 환자이지만, 아이들은 정상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위생 시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때문인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피부병이나 호흡기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 증에서 Andre 라는 중학생 아이는 늘 얼굴이 어둡고 피부에도 부스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평소 말 수도 적고, 진지하게 공부만 하는 편이라 어떻게 사는지 사뭇 궁금 했지만 괜히 상처가 될까 싶어 일부러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석을 한 번도 안 하던 Andre 가 몇 주째 공부방에 나오질 않아 물어 물어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갔더니, 일어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제가 찾아온 것이 더 아픈 상황인 것처럼 힘들어 했습니다. Andre 가 살고 있던 움막 같은 집은 악취가 진동하는 큰 하수구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하수구 악취가 집안으로 흘러 들어 처음 그곳을 방문한 저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리 가난해도 화장실과 수도는 있기 마련인데Andre 가족은 대소변은 그냥 옆 하수구에 해결하고, 수도는 옆집에서 물을 얻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평소 이 아이가 왜 얼굴이 어둡고 피부병을 달고 사는 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제 머릿속엔 온통 Andre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6개월 용돈을 부모님께 미리 받아 Andre 집에 작은 화장실과 수도를 놓아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마을 분들이 자신들 일처럼 도와주어 무사히 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Andre 초롱초롱한 눈빛이 잘 어울리는 건강한 모습으로 공부방을 찾습니다. 그 아이 곁에서 이런저런 학업 지도를 할 때면 한 주 동안 있었던 자신의 일들을 주욱 늘어놓곤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원래부터 이 아이가 말 수가 적었던 것이 아니라 낯가림을 하느라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Nunul은 총명하고 예쁜 여자아이입니다. 공부방 초기부터 지금까지 결석 한 번 없이 제 곁에서 배움을 꽃피우고 있는 제 수석 제자입니다. 두 해전 한센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옆에서 한 없이 눈물만 흘리던 이 아이의 모습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한쪽 귀와 코가 없던 그 아버지의 주검을 한참 동안 어루만지던 그 아이에게 절망이라는 단어밖에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Nunul은 제가 가르치는 공부방 외에 현지 학교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 학교 담임 선생님이 Nunul이 어디에서 공부 도움을 받냐고 물어볼 정도로 학교에서도 빼어난 공부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평소 Nunul은 한국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며, 한국은 좋은 나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자신의 가정에 쌀을 나누어 주고,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며, 자신이 훗날 한국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Nunul은 더 이상 절망이 어울리는 아이가 아닙니다. 그 아이 자체가 미래이고 희망입니다. 비바람에 끄떡 않는 야자수. 혼자서 그늘을 드리우고 우뚝 태양과 마주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제 어머니는 해븐스 봉사 활동을 하면서 꼭 지켜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한센병 가족들에게 어설픈 위로와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100 퍼센트 실천이 가능할 때 얘기 하며,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막연한 기대나 희망만을 던져 주는 것이 얼마나 그 곳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해븐스 공부방에서 보낸 시간들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 이후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봉사자가 없어서 큰 걱정입니다. 요즘 저는 그 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영어 문법을 인도네시아어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떠나고 난 후에 제 뒤를 이어 가르치는 누군가가 좀더 수월하게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먼 훗날 누군가 천국에 대해서 물어온다면 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천사였고, 그 아이들과 함께 한 곳이 천국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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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작은 천사들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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