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허성운 칼럼] 역섬과 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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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칼럼] 역섬과 간도

기사입력 2019.10.3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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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오랜 마을들에는 역섬집이란 택호가 이례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역섬집 택호의 자취를 따라 추적해 보면 지금의 개산툰 지역으로 좁혀진다. 함경도 방언에는 역새리라는 사투리가 있는데 강기슭이나 우물옆자리와 같이 가장자리 변두리의 의미를 지닌 말로서 역섬 땅이름은 역새리 방언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최초에는 조선 종성 두만강 대안 고섬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쓰이다가 차츰 그 의미가 확대되어 나중에 개산툰 일대를 아우르는 땅이름으로 씌었다. 오늘날에 와서 일본인들의 손때가 묻은 간도 사잇섬 명칭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히 알려져 있지만 정작 우리 역사가 깊숙이 배어있는 역섬이라는 옛 땅이름은 잊혀지어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에 종성을 기점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쌍둥이처럼 양안의 허다한 지명은 서로 닮아 있었다. 종성의 금산(禁山)과 덕신향 큰산(金山 )지명 ,종성 늪데기(함지산)와 회경 막치기 늪데기 지명, 종성 국시고개와 덕신향 상국시 석정향 중국시 월청향 하국시 지명, 종성 상상봉 형제바위와 덕신향 형제봉 지명은 모두 두만강을 끼고 쌍둥이처럼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옛날 두만강은 구불구불 흘렸다. 지배굽이로부터 노째굽이 이르기까지 복새섬이 길게 드러누워 있고 크고 작은 늪이 그 옆에 번갈아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매도래라는 깊은 소 남쪽에 고섬 마을이 자리하여 있었다. 오랜 옛적부터 토굴을 파고 고섬을 일궈낸 선인들은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버텨 살아왔고 지난세기 40년대까지만 해도 호총이 50여 호가 냇물을 끼고 옹기종기 들어 앉아 있었다. 종성과 개산툰을 잇는 길목에 놓인 이곳 수많은 사연을 품어왔던 마을이 지난세기 5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천평벌과 선구촌으로 이주하면서 그 흔적이 차츰 사라지고 어느덧 옛 지명도 망각한지 오래다.

본디 역섬과 고섬 이름은 그 땅 생김새나 성격을 바탕으로 생겨나 오래 동안 우리 선인들이 써왔던 땅이름들이다. 그런데 불과 70년도 안 되는 사이에 한자어에 잠식되어 허다한 고유지명은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있다. 재비탄은 선구로 지배굽이는 개산툰으로 애끼골은 제동으로 사무구팡이는 천평으로 역섬은 간도로 바뀌어졌고 소재데기 오사익트리 국시장거리 붉은재굽이 쌀고방 노째굽이와 같은 고유지명들은 이제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역섬 일대 마을들도 하나 둘 사라진지 오래다. 선구산성 북쪽 명당미 마을 남장골 북장골 돌볏마을 대산 가둑섬 등 수많은 마을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 옛날 이 세상을 살다간 역섬 사람들이 죽어 묻힌 뼛가루는 저 먼지 이는 두만강 허허벌판 모래톱으로 쌓아있다. 물길 따라 비스듬히 고개 숙인 갈대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길을 무심히 걷노라면 모래톱 모래 알갱이들은 선인들의 해골에서 나온 유골 뼛가루처럼 느껴지어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굽이굽이 세상 풍파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버텨온 땅이름이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타향에서 사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삶에서 이어지는 현실이 애처롭다.

하지만 이제 목숨 걸고 국경을 박차고 나온 선인들의 탈출 이야기는 끝났다. 토지라는 칸막이로 경계선 안에 갇혀 살아왔던 농경 정착시대는 기술이라는 칸막이를 차지하고 사는 기술정착시대 자본이라는 칸막이를 차지하고 사는 자본 정착시대로 이어진다. 정착의 고정된 칸막이는 무너지고 바람 속을 고향으로 삼는 세계화시대로 접어든다. 진정한 고향은 거대 자본과 곁 모양을 화려하게 치장한 건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선인들의 역사가 차분히 쌓여지어 있는 마음속 깊이에 살아 있는 고향 본연의 모습이다.

먼 훗날 세월이 흐르고 우리 육체가 하나하나 쓰러지어 버려져도 운명에 굴하지 않고 국경을 박차고 나와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땅 이름 역섬은 숨 쉬며 일어나 드넓은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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