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2(화)
 

 

● 김경화(재중동포작가)

 

 

소천수편


오늘 아침, 나는 강가에 세수하러 나갔다가 녀자 하나를 만났슴다.

 

보라색치마에 기인 생머리의 날씬한 녀자의 뒤모습이라니. 

 

녀자는 아리도록 하아얀 손으로 눈처럼 하얀 수건을 강물에 헹구는것이였슴다.

 

순간, 나는 마술에 걸린듯 선자리에서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슴다.

 

녀자, 나리꽃처럼 싱싱한, 꿈에서나 그리던듯한 그런 녀자가 내 앞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것이였슴다.

 

꿈인가? 환각인가?

 

그때, 녀자가 돌아섰슴다.

 

나는 그만 숨이 따악 멎는 것만 같았슴다.

 

하이얀 얼굴에 가느다란 눈,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반듯한 이목구비의 녀자였슴다.

 

나이는 어림잡아 스물서넛?

 

까만 블라우스에 보라색치마의 녀자는 허리가 개미처럼 가늘었슴다.

 

《천수오빠 맞죠?》

 

어데서 흘러나왔을가.

 

맑은 샘물이 바위우에 잔잔히 부서지는듯한 맑고 명쾌한 구을음.

 

어데서 본듯한 얼굴의 녀자였슴다.

 

혹시 나는 꿈에 이 녀자를 봤을지도 모르겠슴다.

 

《저 정혜예요.》

 

허벅지를 가만히 꼬집었슴다. 아파났슴다.

 

《야 너, 정혜구나. 야 너 언제 이렇게 처녀가 다 된거니? 참 오래만이구나. 사범학교에 붙었다고 니네집에서 초두부하던 날 보고는 아마 처음이지? 야...》

 

나는 과장되게 야 하고 소리지르며 정혜의 어깨를 툭 쳤슴다. 두서없이 내뱉은 인사말이 나 스스로도 어이없어서 그랬는지두 모르겠슴다. 

 

정혜의 어깨가 꿈틀했고, 나는 손을 오므려 주먹을 쥐였슴다.

 

《네. 4년만에 왔어요. 그럼 나중에 또 보죠.》

 

손을 마주 비비며 정혜가 고개를 까땍했슴다. 그래서 보니, 시린 강물에 정혜의 손은 빠알갛게 되여있지 않겠슴까.

 

《어. 그래. 나중에 보자.》

 

나는 아름답고 싱싱한 녀체가 내 앞을 지나쳐서 저멀리 점점이 사라질때까지 넋을 놓고 있었슴다.

 

가슴이, 웬지 까닥없이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꿀을 먹은듯 마음 한구석이 달착지근해났슴다.

 

벌렁벌렁 뜨거운 가마솥안에서 끓고있는 콩비지처럼 가슴이 작은 부품으로 가득 차 오르는 이 설레임,

 

먼가 달라질것 같고 좋은 일어날것 같은 기분,

 

얼마만임까

 

나는 괜히 신이 나서 푸덕푸덕 세수도 여느때보다 걸싸게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까닥없이 돌멩이도 툭툭 차면서 꼭 철없는 개구쟁이가 되였슴다.

 

그러면서 아까 어깨를 너무 심하게 치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했슴다. 정혜가 아프지 않았을가? 에익, 우둔한넘.

 

청산리 여기는 녀자가 금싸래기보다 더 귀한 존재임다.

 

개혁이요 개방이요 하는 바람이 시골에까지 불더니 녀자들이 잘 나가는 세상이 갑자기 돼버렸슴다.

 

누가 먼저 선코를 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둘, 떠나가는가싶더니 이제 마을에 젊은 녀자란 찾아볼 수 없슴다.

 

마을에 남은건 할머니들이나 나이 지숙한 아줌마들, 그리고 부우연 떠꺼머리총각들과 안해를 바깥세상에 내보낸 새시대 홀애비들뿐임다.

 

마을 어데를 가나 온통 가고 간다는 이야기들뿐임다.

 

누구도 이제 어데로 간다오. 우리도 빨리 어데 가야겠는데. 어데로 가려구? 글세 모르지. 가긴 아무데나 가야겠는데. 글세 어데루 갈지?

 

한숨과 신세타령뿐임다.

 

누구는 어떻게 목돈 벌고 누구는 한국에, 일본에 가서 몇년있더니 몇십만원 쥐고 와서 시내서 식당을 꾸리고 경리가 되고 그런 소리만 여기저기 란무함다.

 

이 황량한 시골,

 

그러나 나의 꿈은 결코 황량하지 않슴다.

 

나의 별명이 무엇임까. 백번 넘어지면 백한번 일어선다는 불사조 오뚜기 천수가 아님까?

 

여섯살때인가. 엄마는 마을로 다니는 트럭운전수랑 눈이 맞아서 야밤도주를 했슴다.

 

얼굴도, 뒤모습도 아무것도 기억에 없슴다. 

 

냄새, 알싸한 살구씨같은 냄새만 코끝에 아직 쟁쟁하게 매달려있을뿐임다.

 

청산리 소만국의 아들로 태여난 죄로 하고싶은 공부도 못하고 초중을 중퇴하고 여기 청산리에서 소궁둥이를 두드리게 된 나임다.

 

그렇지만 나는 여느 농촌총각들과 다름다.

 

힘들어도 슬퍼도 묵묵히 혼자서 울고, 혼자서 모든걸 이겨내야 했던 나는 기인 어둠의 턴넬같은 세월속에 순금처럼 단단해진것임다.

 

나한테 이제 더 큰 시련이 무엇이겠슴까.

 

남은건 오직 오기뿐임다.

 

죽지 않으면 살기라는 악에 가까운 오기, 그것이 있는한 나는 결코 씩씩하게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소천수일것임다.

명마는 앞만 보고 달린다는 말도 있지 않씀까?

 

작가, 작가가 될것임다.

 

이 시대의 별같은 존재로, 혜성처럼 반짝 떠올라서 적어도 연변문단을 놀래우고, 조선족문단을 뒤흔들것임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녀자와 사랑할것임다.

 

8년째 제대로 된 결혼식한번없고, 아이울음소리 없는, 전 주 산아제한모범촌인 청산리에 획기적인 사변을 일으킬것임다.

웃마을 강아무개처럼 물건너녀자나 들이지는 않을것임다.

 

중간마을 최아무개처럼 아이 딸린 째보과부를 들이지도 않을것임다. 

 

코방귀를 힝 뀌면서 연길로 간 미숙이나, 한국에 시집간 혜자나, 산동으로 간 금자같은 그런 머리에 든거 없고, 허영심만 잔뜩 차서 청산리총각들은 사람취급도 안하는 녀자애들이 눈자위가 휙휙 뒤집힐만한, 오뉴월 오이처럼 쭉 빠지고, 햇감자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녀자를 한명 찾아서 이 천수의 녀자로 만들것임다.

 

작가가 되고, 그리고 이름을 날리고, 

 

그렇게 되면 어느 모모한 잡지사에서 편집이나 기자로 초빙해줄지도 모르는것이 아님까? 

 

동팔이 나하고는 짜개바지친구로 어릴때부터 단짝이였던 녀석임다.

 

하루살이,

 

오늘 하루 배불리 먹고 즐거우면 땡이라는것을 무슨 신조처럼 수호하고 사는 녀석임다. 녀석은 허구헌날 추렴이고 술임다.

다른건 제쳐놓고 기름개구리가 금값인 봄에도 얼음장 끄고 몇마리 붙잡았다 싶으면 그 길로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개구리탕을 하고 봉지술을 외상으로 가져다가 친구넘들을 불러모으는것임다.

 

늙은 엄마가 전기세 낼 돈이 없어 십원 꾸러 온 동네를 도는판인데 녀석은 그게 목구녕으로 잘도 넘어가나봄다.

 

아니꼬바서 녀석하구의 술자리는 절대 사양임다.

 

맨정신일때 만나면 따끔히 핀잔도 주지만 녀석은 머라는지 암까.

 

《야, 장가를 가거나 잘살기는 백번도 틀린 우리가 아니냐. 넌 뭘 믿고 그리 새파랗게 기가 살아있냐. 미친넘. 너나 나나 빤한 인생 아니냐구. 우리가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무슨 재미에 산다더냐.》

 

고래고래 소리지르는것임다.

 

《누가 너랑 같냐? 지랄하고.》

 

나는 녀석을 한대 패줄 조짐으로 눈을 부릅뜸다.

 

《어휴. 그래 제발 출세해다오. 친구야.》

 

녀석의 푸념질임다.

 

눈 크게 뜨고 기대해라 녀석

 

이제 이 소천수는 작가가 돼고 그리구 청산리에서 제일 이쁜 윤정혜의 팔을 끼고 활보할것이니.

 

《째애액, 꽤애액, 긁긁,》

 

나의 치륜같은 인생상념에 먹물을 뿌리고 비바람을 때리는 소리.

 

《망할넘의것,》

 

나는 마구 갈겨쓴 노트장을 손으로 한번 쓰윽 문지르고는 덮었슴다.

 

들미나무무늬로 된것인지를 손으로 문질러봐야 알수 있을정도로 카아맣게 그을은 옷장의 왼쪽구석에 노트를 깊숙히 집어넣고 부엌으로 가서 솥뚜껑을 열어젖혔슴다.

 

시큼털털한 돼지죽냄새가 코를 푸욱 찌름다.

 

《꿀꿀꿀 앙앙》

 

점심때가 훌쩍 지난때까지 배를 쫄쫄 굶다가 급기야 구유를 딛고 올라서서 괴성을 지르던 돼지들은 한바게쯔 골똑 담아서 훌쩍 쏟아주는 먹이에 너무 감격해서 이상한 신음까지 발하며 마구 탐닉함다.

 

늦가을날씨는 제법 쌀쌀함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로인독보조에 무슨 활동이 있다고 가시고, 지금은 이 푸른 10월의 뜨락에, 나 홀로 서있슴다.

그래, 잘 크거라. 

 

혹시 니넘들이 이제 내 색시감한테 끼워줄 반지가 될지도 모를일이니.

 

갑자기, 마음속에 쓸쓸함이 썰물처럼 밀려옴다. 작가가 되겠다고 이를 앙다문지도, 2년이 훌쩍 넘었슴다. 여기저기 보내놓은 원고들은 전부가 물세태에 밀려간 제방뚝처럼 묘연함다.

 

쓸쓸함다, 외롭슴다. 실의감이 온몸을 엄습함다.

 

작가가, 작가가 아니면 어떻슴까. 

 

그냥 신문한구석에 손바닥만하게 소천수 라는 내 이름 석자가 활자로 찍혀 나오기만 해도 좋겠슴다.

 

그리고, 쭉쭉빵빵이 아니면, 어떠슴까. 그냥 우둥퉁하고 거무틱틱해도 좋으니 제발 녀자를 하나 달라고 하나님께 여쭙고싶은 심정임다.

 

도시가 아니면 어떻슴까. 

 

이 청산리에서 함께 봄이면 나물도 뜯고 겨울이면 낫자루부업도 같이 하고 그러면서 알콩달콩 살아갈 그런 녀자만 있으면, 정말 세상이 살맛 날것 같슴다.

 

자가용승용차에 양복입은 인생만 인생이겠슴까?

 

덜렁거리는 소수레에 나 하나만 사랑하는 안해를 싣고 이 풍요로운 청산리를 누비는 재미도 쏠쏠할게 아님까.

 

그러면, 더는 이 마음이 가을을 끝낸 저 벌판처럼 허전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임다.

 

저 지겨운 소똥냄새도 싱그러울것 같슴다.

 

나에게도 녀자가 있었슴다.

 

천수야, 하고 눈웃음치며 옆구리를 쿡 찌르던 녀자, 작은 키를 감추느라 하이힐을 신고, 엉뎅이가 커서 걸을때면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던 녀자가 있었슴다.

 

황금자, 황금자가 있었슴다.

 

나보다 한살 어리고, 서너집 사이두고 살던 황금자가 있었슴다.

 

함께 소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니고, 함께 청산리에 돌아와서 소궁둥이를 따라붙어야 했던 황금자가 있었슴다.

 

그러나, 어느날부터인가, 내앞에서 금자는 자주 한숨을 쉬였고 신경질적으로 호미를 쥐여뿌리군 하였슴다.

 

나는 그런 금자를 새벽이슬처럼 소중히 사랑했었음다.

 

돼지풀도 뜯어다가 마당에 놓아주고, 버들치도 잡아다가 끓여먹으라고 주고, 개암이며 잣도 뜯어다주었슴다.

 

그러나, 금자는 간간히 시내에 드나들면서 싸구려화장품도 사다가 찍어바르고 로천시장에서 파는, 날나리 싸구려치마도 사입고 하더니, 어느날 쪽지 한장 달랑 남기고 증발해버렸슴다.

 

천수야, 넌 참 좋은 남자야. 그런데 난 청산리가 너무 싫어. 지겨워.

 

기음매는것도 지겹고 소울음소리도 지겹고 모든게 진저리나.

 

나 연길로 간다.

 

친척언니가 연길 어느 식당에서 출근하는데 복무원자리는 많으니 오라구 편지가 왔구나.

 

미안해, 천수야.

 

칙칙한 흙냄새뿐인 이 청산리에서 썩고싶지는 않구나.

 

행복해라. 안녕.

 

나는 으드득, 소리를 내며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방구석에 버렸다가 주어들고 앞내가로 달려가서 강물에 쓸쓸히 쓸쓸히 날렸슴다.

 

죽여버릴,

 

순이도 가고, 봉자도 가고 다 떠나가도 너만은 내곁에 남아주리라 했는데.

 

아니, 어쩌면 니가 이렇게 떠나갈것임을 나는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알고있었기에 남아주리라 더욱 굳게 믿으라고 자신한테 강요한것인지도.

 

그리고, 그날저녁 나는 아버지가 마시는 배갈 한병을 그대로 굽내고 방구석에 뻗어버렸슴다.

 

우웩, 우엑, 쓰디쓴 열물이 올라왔다. 눈을 뜰수가 없었슴다. 

 

그날밤, 할머니는 눈굽을 찍으며 밤이 가고 아침이 오도록 손자의 구토물을 닦아내야 했음다.

 

그리고, 그날 그 이후, 나는 황금자를 그 밤의 쓰디쓴 열물과 함께 깨긋이 씻어버렸슴다.

 

첫사랑이라고 첫사랑일수도 있는 그런 아릿한 마음의 추억을 어찌 그리 쉽사리 잊을수 있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아님다.

지나간 감상에 젖어서 연연하는건 나의 인생관이 용납을 못하는 부분임다.

 

그렇게 억지로 망각의 강에 사형을 주고 처넣었던 황금자를 나는 기분좋게 떠올릴수 있었으니.

 

아침에 만난 정혜때문이였슴다.

 

황금자가 무엇이겠슴까.

 

저 한마리의 비둘기같이 상큼한 정혜에 비하면 그야말로 발가락틈새의 무엇에도 못미칠 미물이 아님까.

 

정혜는 마을에 눌러있었고 얼마후에는 책을 끼고 마을에 있는 소학교로 출퇴근하였슴다.

 

거의 페교직전인 학교라 교원이 달랑 두명으로 겨우 버티고있던차라 교장선생이 일본가기직전까지만이라도 애들을 가르쳐줄수 없겠냐고 정혜한테 제의를 해왔다는 소식도 함께 듣게 되였슴다.

 

정혜.

 

아주 어린 아이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얼마나 야무졌는 모름다.

 

박녀인과 일밖에 모르기로 소문난 아버지가 그런 정혜를 극진히 뒤바라지했고 화룡에서 초중을 다니더니 어느날 정혜는 마을의 자랑으로 사범학교에 철썩 붙었지 않슴까.

 

이제 4년세월을 거쳐서 다시 나타난 정혜는 완전 하야말쑥하고 쭈욱 빠진 도시아가씨가 된것임다.

 

괜히 꿀을 먹은듯 마음이 달착지근해남다.

 

농사일도 열심히 하고, 농한기에 채석장에 가서 돌도 캐겠슴다.

 

때갈나는 멋진 남자의 모습을 정혜한테 보여주어야겠슴다.

 

그날저녁, 내 일기장에 녀자이름 석자가 박혔슴다.

 

윤정혜

 

윤정혜편


가을, 하늘이 훌쩍 저만큼 높아진 계절,

 

창문밖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얼굴을 스칩니다.

 

때국이 줄줄 흐르고 학년도 나이도 맞지 않는 애들,

 

교실벽은 언제 회칠한지 모를정도로 거무틱틱해서 더욱 마음이 산란합니다.

 

대학생이 길 가다가 벼락맞기보다 더 힘든 이 산골에서 사범학교로 갈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가요.

 

나는 오직 폼나는 교원이 되여 또 한번 청산리의 자랑거리가 될 야망으로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사범학교문에 발을 디디던 그날, 나는 내가 내 머리우에 보이는 하늘만 파란줄 알았던 시골뜨기 개구리였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내가 가지고있던 옷중에서 제일 근사한 옷을 정성껏 다림질해입고 온 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슴설레며 깃을 세운 다림질마저도 후회해야 했습니다.

 

꼿꼿이 깃을 세운 하얀 셔츠와 칼날같이 주름잡은 깜장바지가 나의 촌냄새를 더해준 격이 되였으니 말입니다.

 

등교 첫날, 그렇게 다림질을 반질반질하게 한 셔츠를 목단추까지 꼭꼭 잠그고 나타난 애는 나 하나뿐이였습니다.

 

눈물이 자칫 보일가봐 신발코를 잔뜩 세워 애매한 땅바닥만 문지르던 그 소녀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합니다.

 

공부를 잘하자, 그것만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우월감은 수업시간외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청산을 떠나 화룡에서 3년동안 중학교을 다니면서 그래도 어중간히 도시물을 먹었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나는 촌뜨기녀자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기숙사에서, 식당에서, 수업없는 시간에 나는 도처에서 작아지고 초라해져야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냥 꾸미지않은듯한 차림같으면서도 묘하게 풍기는 귀티같은것, 그런것땜에 당당해보이고 자신감으로 환해보이는것들.

 

나는 그런것들앞에 심하게 초라해지는 렬등감때문에 코를 높이 세우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렬등감은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더불어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돈, 돈이다. 

 

돈이 사람을 빛나게 하고 당당하게 하는것임을 알았습니다.

 

거의 11월이 다가도록 홑잠바를 입고 새파랗게 얼어다니면서 나는 돈의 중요성을 뼈속까지 감지하고있었던것입니다.

돈에 대한 절박감이 이렇게 사무친것은 처음이였죠.

 

성보옷상가,

 

서시장에서 싸구려옷을 살가 했지만 그 싸구려옷을 입고 애들앞에 나설바에는 차라리 홑잠바로 얼어다니는게 나을것 같은 내 자존심.

 

《이 옷 입어봐도 돼요?》

 

장사군아줌마는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마지못해 옷을 내주었습니다. 니 주제에 이런 비싼옷을 살수나 있겠니 하는 야유, 나는 알듯말듯한 아줌마의 웃음을 야유라고 생각했고 거의 오기로 돈을 꺼내뿌렸습니다.

 

기숙사에 오니 애들이 난리입니다.

 

《어머, 너 웬일이니. 셔츠에 잠바만 입고 다니더니, 니네집 농촌에 있다해서 어려운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네? 이거 브랜드인데. 와 이쁘다.》

 

《우리 아버지가 청산에서는 좀 이름있어. 목재장사를 하거든, 내가 워낙에 소박해서 엄마한테 핀잔만 듣지 머. 여기 올때 핸드폰 잃어버린거 아직 못샀는데 아까 보니 마땅한게 없어서 안샀다.》

 

《오, 너 그래서 폰이 없구나. 글세 요즘 폰없는 사람이 어디있나했지.》

 

나는 그날저녁, 처음으로 그애들과 같은 선우에 선 자호감을 느낄수 있었습다.

 

얼마 안지나 내 손에 핸드폰이 쥐여졌고 결국 그렇게 반년치 생활비를 한달반도 안되여 모두 써버리고말았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애들과 어깨를 겨누며 어울려 다니고 핸드폰을 들고 다니고 그러나 마음은 한없이 초조했습니다.

 

돈은 바닥나고, 집에다가 더이상 손을 내밀수도 없고 손을 내밀어봐야 농촌에 이 겨울에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가정교사를 할가고도 했지만 애들앞에 아버지가 목재장사를 해서 부자라고 땅땅 소리친 내가 어찌 그것을 한단말입니까.

설사 한다해도 한시간에 십원되는 과외비로 무엇을 할수 있겠습니까.

 

두 얼굴,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았던 4년입니다. 

 

그 4년동안 내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하는 시골부자집딸과 짙은 화장과 용염한 웃음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삼배동아가씨의 두 얼굴로 살아왔는지 누구도 모를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무덤까지 갖고가야할 나만의 엄청난 비밀일것입니다.

 

청산리사람들에게 나는 공부잘하고 착하고 순수한 천사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나의 하얀 피부에 슴배인 고급로션의 출처를 알것이며 나의 몸을 감싸고있는 브랜드의 아픔을 알것인지요.

 

졸업을 했지만 요즘 사범학교 졸업장들고 어데로 가겠습니까.

 

친구들은 더러는 든든한 뒤심덕분에 모두의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교원이거나 방송국이거나에 취직을 했고, 더러는 연해도시로, 더러는 류학준비로 드바빴습니다.

 

그러나 나는 뒤문도 없지만 4년동안의 아픔으로 달구어진 이 도시에는 더이상 머물고싶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멀리멀리 해외로 류학을 가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류학비용을 농사일하면서 내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집에 땡전한푼없이 된 부모님한테 내놓으라고 할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졸업만하면 동생의 뒤치닥거리까지 내가 다 맡을거라고 큰소리치던 나입니다.

 

나는 어쩔수없는 길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으로 류학을 떠나는 민정이한테 일본에 가게 되면 돈깨나 있는 남자를 소개해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이 시골사람들이 사범학교를 무슨 하늘에 별마냥 크게 보지 요즘 그거 가지고 어데다 견주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우둔하고 무모한것인지를 세상은 압니다.

 

마을사람들이나 부모들한테는 일본쪽 대학교에서 류학으로 모든 학비를 면제하고 데려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고 마을사람들도 모두 부러워합니다.

 

민정이가 일본에 가서 정착하고 남자를 소개해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듯하니 그동안 집에서 조용히 쉴참으로 고향에 온 나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입니다.

 

교장선생님이 애들을 가르쳐달라고 찾아왔습니다.

 

어차피 할일도 없는 터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교원이 하고싶었지 않았던가요?

 

나는 흔쾌히 대답했고 지금은 그렇게 되여 애들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세수하러 나가는 길이나 출퇴근길에 항상 부딪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수오빠.

 

새벽안개를 헤가르며 이백여리길을 달려 집으로 온 그 아침, 짐을 풀고, 강가에 세수하러 나갔다가 돌아서던 그때, 나는 우연찮게 천수오빠를 보게 된것입니다.

 

오빠는 헤벌쩍 나를 향해 웃고있었습니다.

 

참 불쌍하고 괜찮은 남자죠.

 

엄마도 없고 할머니와 아버지손에서 자랐다지만 이 시골에서도 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어느때는 금자언니와 쉬쉬한 소문도 있더니,

 

금자언니는 연길에서 노래방아가씨로 나간다던데 오빠는 그걸 알고있는것일가요?

 

어느새 떠꺼머리총각으로 부옇게 된 오빠를 보고 4년전과는 많이 겉늙고 초라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새, 오빠가 많이 늙은걸가요. 아니면 내 눈이 변한걸가요.

 

천수오빠뿐아니라, 마을에 오빠네또래들을 둘러봐도 하나같이 구질구질한 농부의 모습입니다.

 

하긴 앞뒤가 산으로 꽉 막힌 이 골안, 젊은 녀자라고는 찾아볼수 없으니 그들에게 무슨 활력이 있겠습니까.

 

어제저녁에 천수오빠는 책 빌러 왔습니다.

 

잡히는대로 소설책 한권을 건네주니 오빠는 두통수를 긁적긁적하며 나가버립니다.

 

글을 쓴다고, 소설가지망생이라고 합니다.

 

혹시 오빠가 정말 소설을 써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초중중퇴한 청산리남자라고 소설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글 한편이 술 한끼값도 안되는 이 시대임을 오빠는 과연 알고있는것일가요?

 

한때, 나도 작가가 되고싶었던 아름다운 소녀의 치기다분한 꿈이 있었습니다.

 

백일장에서 무슨 무슨 상이며도 안아왔고, 학교의 벽보란에 자주 내가 쓴 작문이 나붙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시절부터 나에게 글짓기를 가르치던 h선생님, 서른다섯에 겨우 장가를 들어서 코딱지만한 세집에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도록 새물나는 옷 한벌 안해에게 사주지 못하는 그 선생님을 보았을때 나는 까닭없는 회의를 느꼈습니다.

 

어느 양고기꼬치집에서 밤중까지 주방일을 하는 안해의 월급을 쪼개는 h선생님, 

 

그 흔한 금반지 하나 못사주고 조촐하게 치르는 결혼식하며, 결혼한지 삼년만에 찾아온 아이의 흔적에 기쁨보다는 걱정으로 한숨쉬는 선생님,

 

그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글쓰기라는것에, 작가라는것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광고지를 보면 봤지 책을 안보는 이 시대가 아닙니까.

 

작가가 차닭알파는 아줌마보다도 못할수 있는 이 시대, 밉고 저주스럽지만 그러나 그 누가 이 시대를 거역할수 있겠습니까.

 

더러운 돈이고 머고 하지만 그러나 그건 없는자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4년동안 두 얼굴의 생활을 하면서 내가 뼈저리게 느낀것입니다.

 

정승처럼 벌던 거지처럼 벌던 돈은 역시 돈이 아닐가요?

 

이 시대, 작가, 누가 감히 작가이려 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감히 작가의 안해이려 하겠습니까.

 

밤을 패며 눈을 집어뜯으며 어렵게 품은 글 한편으로 근사한 술 한잔 마실수 없는 이 시대에 작가가 되겠다고 덤비는 저 남자.

 

작가가 될테니, 폼나게 상도 받아올테니, 그때 니가 내 녀자친구가 되여줄래? 하고 짓꿎은 롱담을 던지는 저 남자. 

 

철딱서니없다고 할가요. 세상을 모른다고 할가요.

 

저 어이없는 꿈에서 어서빨리 깨였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도시에 가서 짐을 나르면...

 

저 마른 몸에 무슨 짐이나 나를수 있을지...

 

그러나, 아버지는 오빠가 채석장에 가서 뫼를 휘두르는 그 솜씨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합니다.

 

어데서 그런 힘이 솟는지 쉬지 않고 메질을 서른개씩 한다는 남자.

 

남자는 후줄근하고 먼가 실의에 빠져있는 이 청산리 남자들과 분명 먼가 다른듯합니다.

 

패기도 있고 괜찮은 남자라고 여겨집니다.. 나를 향한 그 애모쁜 마음도 가엾도록 지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선우에 설수 없는 사람임을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날마다 노트에 거꾸로 수자를 적어갑니다.

 

지금은 가을이고, 3월, 정확히 래년봄이면 민정이가 일본남자를 데리고 내앞에 나타날거라고 편지가 온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안녕.

 

청산은 영영 나한테서 안녕이라고밖에 할수 없는 그런것이 되여버릴것입니다.

 

앞뒤가 꽉 막히고, 인터넷접속도 되지 않는 청산리.

 

휴대전화도 아예 먹통입니다.

 

수업이라야 학년도 맞지 않고 나이도 맞지 않는 애들한테 상식적인 교재강의나 할뿐입니다.

 

가끔 노래도 배워줍니다.

 

선생이란 나와 늙은 교장선생님과 사모님 셋뿐이니 어쩔수 있겠습니까.

 

남자인 교장선생님이 지리과와 체육을 맡고 사모님이 수학과 력사를 가르치고 내가 한어와 조선어문, 음악을 맡았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체육시간이랍시고 정해놓은 시간이면 아예 자유시간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마음대로 뛰여놀아라. 하다못해 메뚜기를 잡아도 좋다 이것입니다.

 

나는, 음정박자 뒤틀린 오솔길이며, 별과 꽃과 선생님이며를 애들한테 배워주곤 했는데 시골애들이라 그런지 나의 뒤틀린 음정박자를 꼬집지는 않습니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끔 집에서 엄마 일도 거들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뒤산에 들꽃도 꺽어다 물병에 꽂으면서 시간을 달랩니다.

 

밭에 나가서 엄마와 아버지를 돕고싶지만 엄마가 무섭게 제지합니다.

 

니가 어떤 딸인데, 너는 호미자루를 쥐여서는 안된다.

 

이제, 큰일을 할 너인데...

 

머리가 머리가 아파옵니다.

 

나들이를 할때마다 마을총각들이 떼거지로 따가운 눈총을 보내지만 나는 그냥 무시해버립니다.

 

다들 내 뒤모습을 뚫어지게 눈주어보거나, 사람좋은 웃음을 던지긴 하지만. 소천수, 그 황당한 남자외에는 대놓고 사랑할가요를 웨치지는 않습니다.

 

녀자라곤 없는 화량한 마을에서 청춘을 허비하는 저들이 그저 가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각자의 주어진 운명임을 어찌하겠습니까.

 

문화생활이란 캔맥주병이나 구리쇠줄을 엮어서 만든 안테나로 줄이 쭉쭉 건너가게 나오는 텔레비죤프로가 고작입니다.

그것도 길림채널만 나옵니다.

 

118, 99, 95, ...

 

점점 줄어드는 수자의 크기에 간간히 희열을 느끼며 나는 지긋지긋한 이 청산리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 


동팔이편.


이넘의 구질구질한 촌구석을 벗어나, 미끈한 처녀들 다리라도 마음껏 구경할수 있는 도시에 가서 비까번쩍하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운명이 청산리에 던져진 몸들이니 별수 없다.

 

도시로 무작정 출입을 해보기도 했지만 도시에도 실업자가 넘쳐나고는것이다.

 

배운것도 없고 돈도 없고 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빽도 없는 촌넘들이 도시에서 발을 붙인다는게 어디 쉽겠는가.

 

기껏해야 짐을 나르는 일이거나 삼륜차부거나 양고기꼬치집에서 불을 나르거나 하는 일밖에 차려지지 않는다.

 

그것도 웬만해선 차려지지 않는다.

 

덩치도 웬만해야 하고 그리고 특별히 양고기꼬치집같은데는 스물대여섯넘었다하면 벌써 볼장 다 본것이다.

 

어렵사리 요행 일을 얻어서 하던 누구누구도 두달을 못넘기고 청산리로 돌아왔다.

 

일도 일이겠지만 그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는 변두리에 석탄불때는 단층집을 세맡고도 밥을 먹기도 힘든것이니.

 

시골을 떠날때 돈을 벌어서 장가도 가고, 도시에 집도 사고, 그렇게 아름다운 희망으로 부풀었던건 다 대낮에 도깨비꿈이다.

밥도 먹기 힘든데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장가를 가겠는가.

 

그리고, 때국이 흐르는 옷차림을 하고 꾀죄죄해서 짐을 나르고 삼륜차를 모는 도시의 최하층총각들한테 누가 련애라도 하자고 하겠는가.

 

행여 농촌에서 도시로 온 처녀애들이면 혹시나싶어서 기웃거려보지만 천만에.

 

그런 녀자애들일수록 눈이 뒤통수에 가 붙어서 인간자체보다는 입은 옷의 상표나, 타고다니는 차가 무엇인지를 바람난 아낙네가 무엇을 밝히듯 밝히는것이다.

 

외국으로 나가서 목돈이라도 쥐고오면 좋으련만 그게 쉬운게 아니다.

 

리자돈을 꿔가지고 달아다니다가 빚만 지고 나앉은게 한둘이 아니다.

 

혹간 운수가 좋아서 한국이나 일본에 가서 떵떵 돈을 버는 총각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 좋은 운수가 아무에게나 차려지는가?

 

녀자라고 생겨먹은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나가는 시대이다.

 

배살이 추욱 늘어진 아낙네건 울퉁불하게 생긴 처녀애건 모두 시내로 나갔다싶으면 환골탈태를 해서 나타나는 세월이다.

 

그리고 이 청산리총각들을 왼눈에도 안본다는듯 할기죽거리며 집식구들까지 모두 휘동해서 도시로 데리구나간다.

 

《아들 낳은 집은 한숨뿐이고 딸 낳은 집은 금빛이 번쩍인다.》

 

요즘 우리 청산리류행가이다.

 

농사군의 자식으로 태여난이상 농사나 곱도록이 지어야겠지만 우리가 열심히 기음매고 가을할 기분이 나겠는가?

모든것은 음양의 리치에 맞아야 잘 돌아가는 법인데 아주 음이 고갈되였으니...

 

아무리 농사가 돈이 안된다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부업도 짬짬이 하면 그런대루 돈은 된다.

 

한족들은 맨몸뚱이 하나만 달랑 끌구와서 거지처럼 자리를 붙이고 남의 삯일을 하더니 장가도 들고 애도 낳고 이제는 아주 이 청산리에 벽돌집을 짓고 오토바이 굴리며 떵떵거리며 산다.

 

마을의 소매점도 한족들이 꾸린다.

 

대신 매상고를 올려주는건 조선족청년들이다.

 

그렇지만 우리 탓만은 아니지 않는가?

 

세월이 그렇구 녀자도 없고, 희망도 비전도 없는데, 뭐하겠는가.

 

술이나 먹자.

 

물론 우리도 저 한족들처럼 지긋이 늘어져서 농사짓고 부업을 하고 그러면은 지금보다는 낫게 살수 있겠지만 저눔들처럼 살기는 싫다.

 

인생이 얼마라구 저렇게 살가.

 

돈을 벌려면 외국돈을, 뭉치돈을 벌어야지 언제 저런 소비돈을 한푼두푼 모으겠는가.

 

일년가도, 맥주상자 한번 들고다니지 않고, 개추렴 한번 안하고 일만 하고 하여간에 이상한 족속들이다.

 

술...그래도 술이 좋다.

 

알콜에 절으면 그 순간만이라도 우리는 캄캄한 기차굴같은 이 삶의 절망속을 벗어날수 있는게 아닌가.

 

이 청산리에 미친넘이 한명 있다.

 

소천수,

 

글쓰기가 무슨 길가에 마구 널려진 돌멩이를 주어모으는것인가?

 

작가라는게 어디 호박꼭지따듯 아무나 할수 있는건가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초중도 제대로 못나온 저 친구는 자기는 세기를 놀래울 작가가 된다고 큰소리를 치는것이다.

 

가끔 술을 먹고 집에 들어박혀 먼가를 끄적거리다가는 우리한테 들키면 덴불에 놀랜듯 이불장안에 감추곤 한다.

 

소설을 써서 크게 이름을 날린다고 한다?

 

제 주제두 모르는 정신빠진 넘.

 

한때는 황금자하고 뛰뛰한 소문이 돌더니 금자가 도시로 가버리고나서 한때는 술에 빠니는가싶더니 이내 오뚜기처럼 발딱 일어서서 정신차리구 다닌다.

 

역시 오뚜기라는 별명에 무색하지 않은 천수다.

 

하두 거저 발딱발딱 일어서서 친구넘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천수아버지는 십년가도 누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아야 소리 한번 안내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어쩌다가 개추렴을 하거나 버들치라도 잡아서 술판을 벌리자고 찾으면 바쁘다고 손사래를 훼훼 내젓는다.

미친넘, 제가 그래봤자지.

 

지가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짓고 아무리 채석장에 가서 뼈가 부서지게 돌을 깨봐두 하루아침에 거렁뱅이가 벼락부자로 탈바꿈하랴?

 

처녀선생, 

 

일본류학을 앞두고있는 청산리의 자랑거리~윤정혜, 그녀와 팔장을 끼고 활보할테니 기대하라고 큰소리를 쳐댄다.

 

아주 개구리가 기러기를 탐내는 꼴이다.

 

정혜가 누구인가.

 

우리같은 촌바우들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아니 비교조차 안되는 녀자다.

 

우리 마을에서는 참 드문 사범학교를 나온 지식인녀자.

 

게다가 얼마나 이쁜가.

 

갸름한 얼굴에 호수처럼 깊은 눈, 날씬한 몸매,

 

미인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산골녀자들에게는 보기 드문 박속처럼 하얀 피부가 너무 싱그러운 우리한테는 정말 그림에 떡일수밖에 없는 녀자다.

 

일본류학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떠나기전에 집에 와서 잠간 쉬는것이고,

 

페교직전인 학교에서 애들도 가르치니 참 고향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것이다.

 

젊은 녀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고장에서 정혜의 출현은 정말 거치른 들판에 부는 바람이라고 해야겠다.

 

청산리총각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혜의 뒤모습이나, 사람을 감미롭게 하는 은은한 미소에 반하지 않은 이가 없다.

 

개추렴을 하거나, 이른저녁에 마을의 누구네 앞마당에 모여앉아서도 우리는 온통 정혜의 이야기에 몰입을 한다.

 

정혜의 살얼음우를 걸어가는듯한 상긋한 목소리며 아름다운 자태며에 입을 모은다.

 

그러다가 우리는 하나같이 실의에 빠져 멍청히 굳어버리는 것이다.

 

정혜, 그녀는 우리가 감히 넘볼수 있는 녀자가 아니라는, 그냥 바라보면서 한탄해야 하는 아름다운 무지개같은 존재라는것을 슬프게 깨닫는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슬프게 웨친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정혜는 떠나갈것이라고.

 

가끔 정혜한테 련애편지나 날려볼가? 

 

하고 우리들중에 누군가가 싱거운 소리도 해보지만, 

 

우리는 일제히 주제파악을 하라고 이마빡을 쥐여박아준다.

 

사람이 제 주제꼴은 알아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소천수

 

저 철없는 수송아지같은 넘아를 어찌하랴?

 

농사일만 해도 장난아닌데 전부 한족들뿐인 채석장에 끼여서 돌까지 캐고있다. 돈을 벌어서 커다란 보석반지를 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반지를 정혜한테 끼워주고, 팔짱을 끼고 이 마을을 활보한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는것이다.

 

정혜가 일본류학을 떠난다는데, 그리고 너하고 정혜가 어떻게 한줄에 세울수 있는 공이냐고 누군가가 면박을 줬더니 당장 달려들어 드잡이라도 할 태세이다.

 

일본류학이 대순가고 한다. 보석반지를 사서 끼워주고 정혜랑 결혼한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비까번쩍하게 정혜를 호강시켜준다고 한다.

 

웬 꿈이 저리도 야무지다냐

 

차라리 하늘에 별을 따오겠다고 하지.

 

그러나, 정혜에 대해 말할때 그 단호한 태도며 누구라도 정혜를 사랑하겟다고 하면 단박에라도 결단을 내고야 말듯한 저 비장한 얼굴을 좀 보라.


가을걷이도 다 끝났고, 이제 놀 일만 남았다.

 

그러나, 모든게 다 비여버린 황량한 들판이 웬지 더 쓸쓸하다.

 

날은 점점 추워진다.

 

땔나무를 하는것외에는 일이 없다.

 

우리는 집안에 들어박혀 트럼프를 치거나 마작을 굴리고 술을 마시면서 두더지처럼 동면하고있다.

 

땔나무는 1월에 들어서서 후딱 며칠간 하면 되는것이니. 하고 게으른 위안들을 해가면서 눅거리 봉지술로 속을 달랜다.

 

농사일이 지겹긴 하지만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봄이면 먼가 희망이 생길것 같고, 그리고 파릇파릇한 산등성이에 민들레꽃이라도 망울지겠으니 말이다.

 

이 겨울, 더욱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웃마을, 장일수네 뚱보안해가 돈벌러간다고 떠난것이 종무소식이 됐고, 홀아비 하나가 더 늘어났다.

 

가끔 우리는 순이나, 금이, 금자, 에 대해 이야기를 함다. 괜히 성깔은 드러워도 은근히 정이 가는 순이였는데, 그리고 금이는 이발도 얼마나 이뻤던가 하는것들을.

 

그리고, 그 옛날, 순이나, 금이나, 금자랑 어울려서 들놀이를 갔던 어느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말한다.

 

그리고, 학교시절에 가졌던 우리의 희망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럴때면 괜히 누구나 들뜨고 상기된 얼굴들이고 생기가 넘치기두 한다.

 

마치, 별볼일없이 늙어버린 어느 로인네가 당년에 풍운을 주름잡던 그 시절을 도도히 될수록 멋있게 이야기하며 자아도취에 빠져 행복해하듯 우리는 양념을 쳐가며 좀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내놓고 거기에 즐거워하곤 하는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결국 도로 힘이 풀어지고, 우리의 막막한 신세를 한탄하군 한다.

 

소천수는 느티나무도 쩍쩍 얼어터진다는 이 엄한에도 뫼를 메고 채석장으로 다니는것을 우리는 본다.

 

과연 어쩌자고 저리도 악착을 떠는것일까?

 

워낙 마른 몸은 아주 비쩍 뼈만 남은꼴이 되버렸고, 바람과 해볕에 그슬려서 새카맣게 광부같은 모습이다.

 

하기사 채석장일군이 광부보다 나으라는건 없다.

 

돈을 벌고, 탈퇴환골하고, 그리고 새봄이 오면 거창한 작품으로 우리를 깜짝 놀래게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기어이 정혜의 팔짱을 끼고 활보할 날이 올것이라고, 곧 올것이라고 한다.

 

가끔 만나는 천수는 아주 먹이를 앞에 놓은 야수처럼 눈까지 반짝반짝하고 커다란 희망으로 부풀어있다.

정혜가 과연 가당키나 한가?

 

저러다가 정혜가 어느날 증발하기라도 한다면 천수는 어찌될지 정말 걱정이다.

 

그대로 무너져버리거나 혹시 강물에 뛰여들것 같다.

 

승산없는 전쟁을 앞둔 철모르는 전사같은 저 무모한 놈을 어쩌면 좋은가?


겨울이 가고 드디여 봄이 왔다.

 

아직은 바람이 쌀쌀하지만,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들판도 푸르러가는걸 보면 완연한 봄이다.

 

소천수

 

어떻게, 무엇이라고 말을 뗄가?

 

그의 무모한 열정과 거의 악에 가까운 치기에 대해서, 새봄이 오면 내놓는다고 하던 천수의 엄청난 작품에 대해서 이제 말해야 할것인데.

 

벌레들도 돌아눕는다는 립춘이 림박하던 날, 싱그러운 바람에 알싸한 향기가 풍겨나오던 그런 날이였다.

 

올해는 이 심산골안에도 먼가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나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그런 아름다운 희망으로 사람을 싱그럽게 하던 날이였다.

 

마을길목에서 이 새로운 봄의 기운에 우리모두 조금씩 들떠있었는데 채석장에서 돌을 캐던 한족눔 하나가 새까만 얼굴로 정신없이 마을로 뛰여들어오는것이다.

 

꼭 몽골등에에 쏘인 둥글소처럼 말이다.

 

《쵄쑤, 타 추썰라.》

 

우리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마을에서 북쪽으로 이리는 되게 떨어진곳에 있는 채석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천수는 이미 없었다.

 

굴러내려온 엄청난 바위돌과, 여기저기 뿌려져있는 검붉은 피자욱과 웅성거리는 사람들뿐이였다.

 

그날도 정신없이 뫼질하던 천수는, 바로 머리꼭대기에서 밑의 돌을 무절제로 캐내는바람에 흔들리던 바위돌이 허망 내리꽃혔고 그래서 어쩔새없이 바위돌에 강타를 맞고 쓰러졌담다. 일하던 한족들이 달려왔을때에는 이미 입가에 검붉은 피가 흥건하더란다.

 

우리는 큰길로 달려나가 마구 차를 막았으나 한시간은 족히 걸려서야 요행 목재차에 오를수 있었다.

 

아, 천수, 이 미친 눔아. 

 

그렇게 악을 쓰고 난리를 치더니 너 결국 이렇게 되는거니?

 

천수야.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그러나, 채석장에서 본 바위돌과 피자욱을 떠올리니 고개만 흔들어졌다.

 

《천수, 천수 어떻게 됐어유?》

 

시병원으로 마악 들어가던 우리는 입구에 멀거니 서있는 채석장에서 같이 일하던 쑈왕을 보았던것이다.

 

《쵄쑤, 쵄쑤 타...타...》

 

쑈왕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병원뜨락 한구석을 가리키는것이였다.

 

거기에는 한족일군들이며 마을의 남정네 몇명이 누우런 황토지빛갈의 가로놓인 주머니를 앞에 놓고 눈굽을 적시고있었다.

 

아. 아.

 

저게 천수란 말인가.

 

그 활기차서 날뛰던 우리의 친구 천수란 말인가.

 

소설가가 되고 부자가 되고 정혜를 자기 녀자로 만든다고 하던 천수란 말인가.

 

우리는 허망함에 정체모를 깊은 나락속으로 꺼져들어가고있었다.

 

오늘아침까지도 우리는 뫼를 메고 구리빛얼굴에 싱싱한 활기를 머금고 채석장으로 향하는 천수를 보았다.

 

그런데, 그 천수가 불과 몇시간만에 저렇게 누우런 주머니에 들어가있단 말인가. 

 

야, 천수야.

 

누가 먼저 달려들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일제히 누런 봉투를 에워싸고 당장이라도 그속에서 웃으며 달려나올것 같은 우리의 불사조오뚜기천수를 주먹을 치며 부르짖었다.

 

그때, 새카만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천수 아버지가 정신없이 병원뜨락으로 달려오는것이였다.

 

산에 갔었는지 롱구화에는 흙이 덕지덕지 매달려있었다. 

 

무작정 사람들틈을 헤집고 우리중 누군가의 어깨를 헤가르며 누런 봉투앞에 멈춰버린 천수 아버지의 두손이 허공에서 떨리고있었다.

 

그리고, 뚤렁뚤렁 떨어지는 커다란 눈물방울, 

 

그렇게 천수아버지와 우리 친구들은 서로의 어깨들을 부여잡고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천수아버지가 한번만 천수의 얼굴을 더 보겠다고 마구 누런 봉투를 헤치려고 했지만 한족들이 막았다. 워낙에 얼굴이 험하게 망가져서 병원일군들에게 돈을 내고 렴섭을 부탁했다는것이다.

 

대체, 사람의 일이란.

 

천수가, 적어도 우리는 보석반지를 꺼내들고 정혜한테 사랑고백을 했다가 멋있게 걷어차였거나 어느날 갑자기 증발해버린 정혜를 두고 실의에 빠진 천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술잔을 부딪쳐줄 준비를 하고있었는데 이게 머란 말인가. 

 

천수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또 한번 전률해야 했다.

 

옷장안 깊숙이 감춰졌던 노트 하나와 한뭉테기의 종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련애편지라고 해야 할, 아니 정혜에 대한 절절한 절규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리고 까만 비닐주머니에 악착스레 세겹네겹 감겨져있는것은 네자리수의 저금통장이였다.

 

천수의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제 한달만 더 고생하면 정혜한테 보석반지를 사줄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정혜한테 사랑한다고 온힘을 다해 말해볼것이다.

 

정혜가 거절할것이라는 생각같은건 하지 않겠다. 나는 정혜한테 고백하는 그 순간만을 영원히 간직할터이니.

 

시내백화점에서 파는 가장 이쁜 보석박힌 금반지는 1만 3000원, 이제 2000원만 모으면 된다. 힘내자, 소천수.

 

아, 아, 천수

 

머라고 더 말할수 있을가.

 

우리는 그저 거의 탈진상태에 빠져 내가 죽어야지 왜 천수를 죽이냐고 악을 쓰는 할머니와 묵묵히 눈물을 훔치는 천수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으스러지게 주먹을 쥐고 눈물을 삼키고 또 삼킬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 정혜가 갔다.

 

천수가 죽고나서 얼마뒤 정혜는 청산리에 올때처럼 보라빛치마에 까만 브라우스를 입고 트렁크를 들고 정혜를 데리러 온 까만 승용차에 앉아 떠나갔다.

 

일본으로 떠난다고 한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것이라고 한다.

 

정혜는 채석장이 있는 북쪽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돌아서서 차문을 열고 들어가는것이였다.

 

그리고 휘익휘익 까만 승용차는 멀어지는가싶더니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것이였다.

 

봄이 또다시 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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