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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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가 영어에 비해 표현력이 4.5배란다. 하긴 한문자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뜻글자(표의자, 表意字)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중국을 이웃한 우리 말 어휘 중 75%가 한자어라고 하니 한문 신세를 단단히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자어를 제외한 순수 우리 낱말들은 삶의 정서를 표현하는 기능이 너무 풍부해서 세상에서 으뜸이라 나는 생각한다. ‘맛’, ‘멋’, ‘판’ 우리민족 삶의 정서를 대표하는 낱말을 타언어로 번역해보라. 의역은 가능하나 직역은 영 안 된다. 억지로 의역할 수 있어도 본래의 ‘멋’과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우리말 의성의태어는 더욱 기가 막히게 맛깔 난다. 더해서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말들이 우리에겐 많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는 말, 한 인간이 세상에 나온 생일을 ‘귀 빠진 날’이라고 하는 말, 우리 선조들의 기막힌 창의성에 의해 생겨난 우리만의 언어들이다.

 

우리만의 언어들은 나름대로 선조들의 삶의 정서가 깊이 배어 있어 그 유래를 추적하다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게 된다.


‘귀 빠진 날’에서 귀는 머리 양쪽에 달고 다니는 그 귀이다. 왜 인간이 태어남을 귀가 빠졌다고 말할까? 궁금하지 않는가.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서 책을 읽지 않고도 컴퓨터만 만지작거리면 웬만한 지식정보는 다 얻을 수 있다. ‘귀 빠진 날’이란 말의 뜻도 네이버 선생한테 물으면 똑똑하게 대답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정보’를 접하는 순간 나의 옛 기억을 소환해내어 그때 그 시절 추억에 잠시 아련히 잠겨본다.


나는 헤는 나이로 18세에 고중(고등학교)을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일에 종사했다. 당시는 대학입시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유일한 길이 곧 시골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 농부가 된 지 8개월 만에 시골위생소(시골보건소)에 취직했다. 일단 호미자루를 벗었으니 시골사람치고는 크게 출세하여 신분상승한 셈이었다. 더 운이 좋은 것은 위생소에 취직하자마자 6개월 만에 용정현병원에 가서 ‘용정현 제4기 맨발의사 강습반’을 다니고 맨발의사(赤脚醫生) 면허증을 취득했던 것이다. 당시는 최연소 맨발의사 기록이었다.


그때부터 이 세상 다른 총각들이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들이 나의 인생길에 펼쳐진다.


에둘러 말할 것 없이 나는 이마에 피도 채 마르지 않은 19세부터 아이 낳는 현장을 쌔빠지게 다녔다. 한창 이성에 대해 몹시 싱숭생숭할 나이에 그런 장소를 다녔으니 그때 있었던 일들이 지금도 영화필름처럼 생생하게 나의 머리에서 맴돌고 있다. 그저 그냥 맴도는 정도가 아니라 집요하게 추억을 소환하여 뇌리에서 재생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애를 낳지 못하는 지구상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려면 산파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출산을 돕는 코끼리 같은 짐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끼라도 덩치가 커서 누군가 받아주지 않으면 맨땅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늙은 코끼리들이 산모를 둘러싸고 상아로 아이를 받아준다. 그렇지만 분만을 집적 돕는 것은 아니니 그 코끼리들을 산파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간은 직립 보행하는 바람에 골반은 자꾸 작아지고 머리통은 반대로 커졌다. 원숭이나 북극곰처럼 네발로 다니는 짐승들은 넓은 산도(産道) 덕분에 2분이면 분만이 끝나는데 인간은 하루, 길면 며칠씩 산통을 겪어야 한다.


또 다른 포유동물들은 탯줄이 있지만 출생한 뒤에는 그냥 없어진다. 소와 말은 새끼가 나올 때 체중이 무거워 자연히 탯줄이 끊기고 개나 고양이는 어미가 씹어서 자른다. 그런데도 탯줄은 말라서 떨어지고 배꼽은 남지 않는다. 인간만이 배꼽이 있는데 역시 산파가 탯줄을 끊어줘야 올바로 정착된다.


산파의 역할은 이렇게 아이를 받아내고 탯줄을 끊어 배꼽을 올바르게 정착시키는 것이다. 옥황상제로부터 명주실 세 묶음과 은가위를 하사받았다는 삼신할머니가 우리민족의 최초의 산파이자 영원한 산파이다.


그런데 인간이 모여 사는 데는 아이를 낳기 마련이고 그 신생아들을 받아내고 탯줄을 끊어줄 산파들이 있어야 하는데 모택동의 의료노선에 의해 당시 중국 시골마다 산파가 있었다.


산파가 따로 있는데 왜 젊은 총각이 아이 낳는 장소에 나타날까?


시골 산파들은 산모가 순산으로 낳으면 그냥 받아주고 탯줄을 끊으면 그만이지만 만일 경우 순산이 아니고 난산에 부딪히면 곤경에 처하게 되며 해결책이 없다. 예하면 아이 낳는 도중 정신을 잃는 쇼크가 온다거나 지나치게 기진맥진하여 힘을 쓰지 못한다거나 하면 혈관 주사도 놓을 줄 모르는 시골산파의 능력으로는 구급이 안 된다. 그래서 이 맨발의사 총각을 불러 대기시켜 놓거나 미리 부르기 민망해서 사전대기는 못하고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야 부르곤 하였는데 아무튼 아이 낳는데 수없이 많이 다녔다.


“귀가 보인다. 좀 더, 좀 더.”


“자아~ 이 고비만 넘기면 되니까 힘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해결 보자고.”


아이 낳는 장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태아는 엄마의 배와 헤어질 때 먼저 머리부터 내민다. 머리카락이 보이고 그 다음 이마가 보인다. 이마가 다 나온 다음에는 귀가 보인다. 그런데 귀는 머리 양 옆에 따로 붙어 있어서 나올 때면 애먹는다. 일단 귀가 다 나오면 나머지는 쉽게 마무리 된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는데 있어서 관건은 귀가 빠져나오는 것이다.


우리민족이 생일을 ‘귀가 빠진 날’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렇게 아이 생산 시의 관건적인 생리적인 현상을 뜻하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엄마가 나를 낳을 때 가장 심하게 겪었던 산통을 표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의 생일을 ‘귀 빠진 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아마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생일을 쇠지 않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말은 남자들이 많이 하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엄마가 겪은 산통을 잊지 못해 ‘귀 빠진 날’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를 가장 천시하고 압박한 집단이 바로 이 땅의 조선남자들이었다.


우리민족의 남자들의 삶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삶이었다.


요즘 우연하게 한국 그때 그 시절 자료를 접하게 되었는데 경부고속도로가 뚫려 자동차를 타고 시속 100킬로미터 넘는 스피드로 달리던 197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한국 산모의 75.1%가 자기 집에서 분만했다고 한다. 그것도 거의 반수가 의사나 산파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숨죽이며 출산했다. 도움을 받는다 해도 조산부와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반반이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도시에 시집 간 여성조차도 시골 시집이나 친정집에 와서 분만하다 보니 시골에서 아이 낳는 수가 엄청 많아 이 총각도 빈번하게 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조산소로 조산소로부터 병원으로 변화되고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가 급증하고 있다. 마취하고 배를 갈라 아이를 들어내니 산모는 태아가 귀가 빠지는 산통을 모른다. 이렇게 탄생된 아이들은 장차 자신의 생일을 ‘귀가 빠진 날’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


하여튼 나는 좀 기괴한 인간이라 별거 다 ‘시비’를 걸고 있다.


한편 우리민족 여성들은 아이 낳으면 무조건 미역국을 먹는 풍습이 있다. 또 사람마다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면 그날 아침 미역국을 먹는다. 같은 문화권인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에는 이런 풍습이 없다.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 앞에서 ‘저런 인간을 낳고도 그 어미가 미역국을 먹었겠지.’라고 말하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머리를 갸우뚱할 것이다.


“고려 사람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 당나라 서견이 <초학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근대 실학자 이규경도 다음과 이야기를 기록에 남겼다. “어떤 사람이 물에 들어갔다가 이제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혔다. 고래의 뱃속을 보니 미역이 가득 붙어 있었고 장부의 악혈이 모두 물이 되어 있었다. 고래 뱃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그는 미역이 산후조리에 좋다는 점을 알았다. 이것이 세간에 전해지면서 효력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미역의 약효를 알리는 대목이 있다. “신라 미역, 고려미역이 안팎 종기를 낫게 하는 신비한 약제로 사용된 적이 있다.” 과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출산 후 상처를 아물게 할 뿐만 아니라 몸 안의 피를 맑게 해주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자궁수축과 지혈까지 도와주고 출산 시에 유혈(流血)한 산모에게 피를 공급한다. 그 뿐만 아니라 갑상선 호르몬을 보충해주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역국 먹는 풍습이 삼국 시대부터 오늘까지 천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셈이다.


의학적으로 우리민족이 미역국을 먹는 풍습의 유래가 설명되었다 쳐도 아직도 완전한 설명이라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속설에 의하면 태아는 양수 속에 사는데 양수는 바다의 맛과 같이 찝찔한 맛이 난다. 바다에서 자라는 미역이 바로 양수의 맛처럼 찝찔하다. 미역의 사촌인 김도 마찬가지, 그 맛이 찝찔하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서 나는 낙지도 명태도, 갈치도 등등의 해산물도 모두 양수의 맛과 비슷하게 찝찔한 맛이 난다.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아이들에게 김을 주면 아주 맛나게 잘 먹는다. 나의 손자 녀석도 김을 주면 아주 잘 먹던 기억이 있다. 한국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김은 태아 때의 생명기억으로 그것을 먹음으로써 그 아이는 지금 태내의 세계, 바다로 가는 것이다. 바다에서 온 생명의 습성과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한국인이다.”


우리민족이 산모가 미역국 먹고 아이들이 김을 즐겨 먹는 이유가 이어령 선생의 이 말로 설명이 다 된 것 같다.

 

필자/김정룡(중국동포연구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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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 칼럼] 귀 빠진 날과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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