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사형 직전 여사형수들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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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직전 여사형수들의 모습들

기사입력 2016.06.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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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현재 중국에서 총살형 사형은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10여 년전까지만도 중국에서는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총살형 - 이는 남사형수 뿐만아니라 여자사형수테도 적용이 되었다. 시커먼 총구, 탄알을 장착하는 철걱대는 소리… 이러한 장면은 총살형을 당하는 사형수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한테도 공포였고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었다.

<그럼 아래에 총살당하기 전 여사형수들의 모습을 담은 글과 사진을 게재하면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동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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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설
형장에 나선 여사형수 임설의 모습은 담담하다. 모든 것을 각오한듯한 모습이다.

중국 하남성 낙양사람은 임설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집에는 두 오빠가 있었다. 대학시절 임설은 어느 한 남대생과 연애하다가 임신한 뒤 그 남자의 버림을 받았다. 그 뒤 임설은 성격이 민감하고 괴벽해졌다.

졸업후 임설은 낙양 고향의 한 탄광 지도일군한테 몸을 바치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겨우 여접대원직에 취직했다. 후에 그 지도일군은 탈세루세로 검거되였다. 당시 그 지도일군을 조사하던 조사단의 일군 또한 이쁜 임설의 얼굴에 반해 그녀를 점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문에 그 접대원 직업마저 잃게 되었다. 이에 격분한 임설은 동료 조림림과 함께 자기를 범해버린 그 조사단 일군의 둘째 딸을 꾀어낸 후 살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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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어느날, 고의살인범 임설은 사형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총탄은 그녀의 뒤통수에 맞아서는 입쪽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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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금봉
고의살인범 육금봉(陆金凤), 여 20세, 소학교 학력.

1975년 육금봉은 산서성 운성시 토회향 육가장에서 태어났고 1998년에 섬서성 함양에서 법에 의해 처형되었다.

육금봉이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그녀의 부친과 조부가 선후로 사망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녀의 친척들과 촌민들은 육금봉이 “재앙”을 불러왔다고 인정, 그녀를 생매장하려고 하였다. 당시 육금봉의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딸을 매장하지 못하게 했지만 육금봉은 자라면서 친척과 동네 사람들의 기시와 학대를 받을대로 받았다.

1988년 육금봉의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계부와 외삼촌은 더욱 그녀가 “재앙”을 불러온다면서 몽둥이로 집에서 내쫓았다. 그때 육금봉의 나이는 겨우 13살이었다.

그 때로부터 육금봉은 유랑과 걸식의 길에 올랐다. 1989년 육금봉은 운성 교외의 어느 한 음식점 옆에 있는 음식쓰레기더미를 뒤지다가 음식점을 지키는 개한테 물려 과다출혈로 쇼크했다. 그러자 음식점의 경리 마××는 금봉이가 어느 정도 미모를 갖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집안에 안고 들어와 지혈시키며 치료해주었다. 그 뒤 육금봉은 마××의 폭력과 협박에 의해 매음활동에 종사, 1991년 당시 경찰에 잡혀 1년간 노동교양에 종사하다가 1992년에 석방되었다.

석방 뒤 육금봉은 계부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계부는 먼 친척벌 되는 이××한테 현금 1000위안을 받고 팔아먹었다. 경양쳔 서령촌에서 살고 있는 이××는 홀아비이었고 장애인이었으며 째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육금봉은 이를 악물고 이××와 결혼생활을 시작하리라 맘먹었다.

하지만 운명은 육금봉의 이런 작은 소망마저 이루지 못하게 했다. 얼마 뒤 육금봉은 재차 서령촌의 색마 호××한테 2000위안에 팔여갔다. 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주 술주정도 부렸으며 일단 술만 마시면 육금봉에게 주먹을 휘두르군 했다.

1992년부터 1993년 사이에 육금봉은 호××한테서 매를 맞다 못해 몇번 도망치려 했으나 번번히 붙잡혀 더욱 호되게 얻어맞군 했다. 1994년 육금봉은 재차 도망치려다가 재차 잡혔고 호××는 육금봉의 오른쪽 다리를 분질러놓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그녀를 집안에 가두어놓았다. 1994년 말 호××는 몇주간 외출하게 되자 자신의 이종동생 당××한테 부탁해 그녀를 지키게 했다. 당××와 호××는 번갈아가며 육금봉을 범하던 일당이었다. 당시 육금봉은 임신이었다. 당××는 육금봉이 임신한 아이가 자기의 아이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호××한테 얼마간의 돈을 주고 육금봉을 아내로 삼기로 맘을 먹었으며 이 생각을 육금봉한테 털어놓았다. 

그 해 말, 육금봉은 당××의 집에서 남자애를 출산했다.

1995년 구정에 호××는 집에 돌아와 설을 쇠게 되었다. 그러자 당××는 호××가 무서워 육금봉과 아이를 호××한테 돌려보냈고 이를 악물고 육금봉과 아이를 포기하리라 맘먹었다.

한편 육금봉이 당××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호××는 육금봉을 나무에 달아매놓고 매질을 들이댔다. 그리고 칼로 그녀의 허벅다리에 “간부(奸夫)”란 글자까지 새겨놓았다.

이렇게 되자 당××는 인명사고라도 날가봐 한마을의 관××와 함께 찾아와 화해에 나섰다. 하지만 호××는 도리어 칼을 휘둘러 당××와 관××가 당장에서 숨지게 했다.

이튿날 새벽, 술에 취한 호××는 거의 냉동상태가 된 육금봉을 풀어주고는 집안에 끌고 들어와 또 한바탕 때려 쓰러지게 한 후에야 침대에 올라가 쿨쿨 거리며 잠들어 버렸다.

얼마 뒤 육금봉이 만신창이 된 상태에서 눈을 뜨고 보니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아들애는 호××에 의해 이미 죽어 있었다. 절망이 극도로 달하고 이지를 잃은 육금봉은 안간힘을 써가며 낫을 들어서는 쿨쿨 거리며 자고 있는 호××를 향해 연거퍼 내리찍었다…

호××가 죽자 육금봉은 집에 불을 질렀다.

불이 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사람들은 온몸에 피투성이인 육금봉이 낫을 들고 마당에 앉아있고 그 옆에 당××, 관××와 호××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자 또 육금봉을 한바탕 때리고는 그녀를 공안국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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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1995년 전반 경양현을 놀라게 한 특대살인사건이었다. 1995년 3월 육금봉은 체포되었다. 심문할 때 육금봉은 자신의 살인사실을 그대로 자백했다. 당시 법원일군들은 육금봉의 공술을 듣고 내심 동정하기도 했으나 그녀의 살인사실만은 감싸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노동개조 전과가 있었기에 형벌은 더욱 냉혹하였다.

1995년 12월 24일, 육금봉은 함양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형은 총살형이었고 정치권리 종신박탈이었다.

이 날 오후 육금봉은 기타 사형수들과 함께 처형되면서 비참했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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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도정은 워낙 천진하고 아름다운 운남의 여자애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친을 잘못 사귀어 남친과 함께 마약밀매를 하다가 잡혀 극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 당시 도정의 나이는 겨우 20살, 중국 역사의 50년 사상 가장 나어린 사형수로 되었다.

일찍 어린 시절에 양친부모를 잃은 도정은 언니의 집에서 자랐고 고중졸업 후 대학에 붙지 못하자 머리방을 개업하게 되었으며 머리방 영업 중 마약운반범 양××와 사귀어 마약밀매에 말려들게 되었다.

그녀는 마약운반범 양××의 협조범이었던만큼 마약밀매에 말려들게 된 전 과정을 제대로 진술했더라면 극형에 처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정은 이른바 양××와의 “의리”때문에 꽃같은 젊음과 생명을 훼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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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
1991년 10월 26일, 운남의 모 자치주 경내에서는 28명의 마약판매·흡입범들을 심판대에 세워놓고 사형에 언도하였다. 이들 28명중에는 23명의 당지 농민, 2명의 당지 공무원, 2명의 농장직원의 자제와 유일하게 북경에서 온 1명의 범죄자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 국내에서 대표성을 띤 사형범(5명의 여성)들이었다.

이 날 나어린 여사형수 문정(21세)은 사형집행 전야에 마지막 요구를 제출, 체내에 있는 루프(避孕环)를 꺼내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법의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어 그녀로 하여금 임시수술대에 오르게 하였다.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 문정은 어머니를 보자 “엄마”하고 소리쳐 부르며 흐느껴 울었다. 모녀는 대뜸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 사랑하는 엄마”하고 부르며 어머니와 떨어지기 아쉬워하였다. 이를 보는 사법일군들의 마음 또한 몹시 아리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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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취경
문정과 함께 사형된 여죄수들중에는 운남의 풍취경도 있었다. 마약사범인 그녀 역시 당시 21살이었다.

처형되기 전 풍취경은 머리를 들고 맑고 푸른 하늘을 쳐다 보았다. 순간 그녀의 생각은 얽히고 얽힌 참회와 친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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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단
1986년, 송단은 강서성 서창시 남양향의 한 보통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적 기민하고 총명한 송단은 여느 여자애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충만된 갈망과 동경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바로 이럴 즈음 그녀한테는 불행도 소리없이 찾아들었다.

13살이 되던 해, 송단은 남양중학교의 송씨 성을 가진 남자 교원한테 수차례 간음당했고 얼마 후 또 주씨 성을 가진 고모부한테도 여러 차례 얼리워 간음당했다. 비로 이 두 범죄자가 각각 9년과 8년 유기형에 언도받았지만 그녀한테 준 정신 및 육체적 고통은 매우 컸으며 그녀는 점차 탈선의 길을 선택했고 나중에는 마약사범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되고 말았다.

사진은 사형집행 전야 식사를 하며 마지막 웃음을 지어보이는 송단, 그 웃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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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
포구출신인 유여(刘妤)와 왕××는 워낙 소학교부터 초중까지의 동창생이었으나 졸업 후 줄곧 연계가 없었다. 1998년 우연한 기회에 만난 그들 남녀는 순간적으로 사랑의 화염속으로 말려들었다.

하지만 학력의 차이와 왕×× 가정의 압력으로 인해 그녀한테는 점차 왕××한테 염세감정이 생긴 유여는 어느날 아주 지독한 생각을 가졌다.

이날 그녀는 수면제와 과일칼을 구입하고는 왕××와 어느 모텔에서 만나자고 약속, 이날 밤 유여는 왕××와 만난 후 몰래 왕××가 마시는 커피에 약을 투여했으며 왕××가 잠들자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 뒤 유여는 밖에 나가 자살하려다가 경찰에 나포되었고 결국 고의살인죄로 사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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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영
동영은 워낙 청도시 남구가두 판사처의 과원이었다. 그녀는 금전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장홍위, 고도 등과 짜고 들어 모 파출소 경찰의 딸을 출국유학시켜준다는 명의로 꾀여 남경으로 데려가서는 호텔방에서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 피해자의 몸에서 인민폐 6.1만원을 빼냈다.

1995년 동영과 기타 동범들은 고의살인죄로 총살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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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옥경
하옥경은 인신매매범으로 1994년에 사형에 언도되었다. 사진은 사형집행 전야 하옥경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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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상건
뇌상건은 지난 세기 90연대에 사형된 여범죄자로서 간통하던 끝에 그 간부와 짜고들어 남편을 살해했었다. 생을 마감할 때 그녀의 나이는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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