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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남방 지역 연속 강우, 홍수피해 심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연속 퍼붓는 큰 비로 장강 중상류의 수위가 지속적으로 경계수위를 초과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남방 지역의 홍수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1일 이래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저장(浙江)과 충칭(重庆)의 강우량은 1961년 이래의 최고량을 기록, 이 중 안후이와 후베이의 평균 강우량은 이미 500밀리미터를 초과하였다. 한편 이에 따라 안후이의 써현(歙县)은 홍수가 범람하여 현성이 물에 잠겨 도로가 막히었고 황산시 둔시(屯溪) 노거리 입구에서는 500년 역사를 가진 다리가 끊어지었으며 후난의 상탄시(湘潭市), 화이화시(怀化市), 장자제(张家界市)와 상시(湘西) 토족묘족 자치주 등 지역에는 14.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6427명 주민들이 전이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가 홍수방지 총 지휘부에서는 7일 오후 4시부터 홍수방지 급수를 Ⅳ급에서 Ⅲ급으로 상향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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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8
  • 러시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미 입장 선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4일, 러시아 언론 <코뮈니케(Communiqué)>는 <러시아는 중미 사이에서 이미 입장 선택>이란 제목으로 된 글을 발표, 중미 사이의 마찰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문장은 트럼프가 러시아를 초청하여 서방진영에 복귀하게 하려는 목적은 모스크바로 하여금 중국을 저지하는 체계 내에 끌어들이려는 것이기에 러시아는 G7 확대회의(서방 7개국 그룹 수뇌 회의) 참가를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글은 다음과 같이 썼다. 모스크바는 트럼프의 재삼으로 되는 외교적 창의ㅡG7 확대회의에 참가를 묵살해버렸다. 러시아에 G7 확대회의에 복귀하라고 요청한 건 이전부터 트럼프가 제출한 것이다. 트럼프는 러시아, 인도,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요청하여 미국에서 거행하는 G7 정상회의 참가를 건의했다. 또한 4개 국가의 정상은 방청자로 요청해 10개 국 그룹 혹은 11개 국 정상 그룹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번 회의의 목적은 미국과 모든 발달 중 나라들에서 직면한 전 지구적 문제로, 이전에는 G7이 자체로 해결했지만 지금은 G7 역시 힘이 모자라고 있는 상황이 됐다. 세계적인 문제를 토론함에 있어서 이런 나라들은 힘이 모자라기에 자기의 뜻대로 문제해결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나라들은 타국들이 해결하는 것도 불허하고 있기에 허다한 문제는 의견통일을 가져올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중 영국과 캐나다는 모스크바가 G7에 복귀하는 것을 견결히 반대하고 있었다. 이 외 미국여론은 러시아가 제 3 세계 나라들과 파트너로 되는 것에 반대를 표하고 있으며, 후자는 클레물리궁이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더러 서방진영에 복귀하라는 요청을 받은 후 다극화 세계의 이념을 포기할까봐 의심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러시아로 하여금 서방진영에 복귀하게 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로 즉 러시아를 끌어들어 중국의 체계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한국,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 등 국가는 이 체계가 수요하는 나라들이긴 하나 꼭 필요한 나라는 아니었으며 유독 러시아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미국으로 놓고 볼 때 러시아는 반드시 G7에 필요한 나라였다. 하지만 워싱턴은 러시아가 왜 미국의 이 요청이 수요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렇게 양측의 사고가 교차될 무렵, 소위 모스크바가 지지하는 타리반무장이 아랍에메리트 군을 기습했다는 보도가 미국을 놀라게 했으며 미국이 러시아를 G7 복귀로 요청하려던 사항은 복잡하게 변했다. 최종 모스크바는 자신의 선택을 결정, 러시아는 중국을 저지할 준비를 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소위 11개 국 그룹의 해당회의에 참가해 토론할 타산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전 러시아 외교부 부부장 리아코프는 오늘의 세계에서 중국이 없이는 이런저런 토론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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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 몽골국 연속 6일간 코로나 19 확진 사례 無
    ▲몽골국ⓒ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몽골국 전염병 연구센터 니마호 센터장이 5일 위생부에서 주최한 보도 브리핑에서 밝힌데 따르면 연속 6일째 몽골국에서 코로나 19 확진 사례가 없었으며 지금까지 나타난 확진 사례는 누계로 220건, 완쾌 퇴원 사례는 누계로 185건이었으며 현재 병원에서 치료중인 사례는 35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몽골국 울란반토르에서 신화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몽골국에서 장기비자로 외국에 거류하는 공민은 19만 명을 초과, 2월 1일 이래 몽골국 정부는 해외거류 공민들의 청구에 의해 철도, 도로와 전용기 등 운수수단으로 만여 명에 달하는 해외거류 공민들을 귀국시켰다. 목전 약 만여 명에 달하는 몽골국 공민들 또한 귀국을 시청했으며 정부는 육속 전용기를 파견해 해당 국가로부터 자국 공민들을 귀국시킬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월 12일, 코로나 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몽골국에서는 코로나 19 예방 통제를 위하여 고밀도 계엄 상태에 들어갔다. 3월, 22일, 4월 28일과 5월 25일, 몽골국은 코로나 19 예방 통제의 계엄 상태를 각각 1개월씩 연장, 이 기간 동안, 모든 집중적 활동을 금지하였고 모든 국제 항공편과 국제 여객열차편을 중지시키면서 외국인들이 몽골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엄금하였다. 그리고 지난 6월 30일에는 재차 계엄 상태 기한을 7월 15일까지 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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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中 검은 들창코원숭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3일, 중국 윈난성 디칭 주(云南省迪庆州) 문화관광국과 디칭 주 관광그룹이 주최한 <세계의 샹그릴라(世界的香格里拉)> 수석고문 초빙의식에서 귀염둥이 검은 들창코원숭이들이 <인터넷 스타 문화관광국(网红文旅局)>의 <수석고문> 신분으로 참가했다고 당일 15시, 중신망이 보도했다. 검은 들창코원숭이ㅡ 영장유 동물 중 빠져서는 절대 안 될 품종이다. 그것의 두꺼운 붉은 입술, 동그랗고 큰 눈,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칼과 빛을 발산하는 함초롬한 몸매, 이들은 샹그릴라의 <쉐이징링(雪域精灵)>으로 중국의 1급 중점보호 야생동물이며 목전 3000여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1급 중점보호 야생동물 검은 들창코원숭이.ⓒ중국망 검은 들창코원숭이 사랑스런 <인터넷 스타> 디칭 주 워이시현 타청진(迪庆州维西县塔城镇)의 백마설산 국가 급 자연보호구는 중국에서 면적이 가장 큰 검은 들창코원숭이 국가 급 자연보호구이다. 지난 3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네티즌들은 <윈난여행(游云南)> 통해, 그리고 생방송 팀을 따라 보호구 내의 검은 들창코원숭이 가족을 탐방, 검은 들창코원숭이 군 중에서 8마리의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손으로 새끼를 가슴에 꼭 껴안고 있는 <다섯 자녀>의 원숭이 엄마 <언덩(恩登)>은 솟구치고 뒹굴고 하던 지난날과는 달리 안전한 길로 조심스럽게 다녔고 원숭이 <보배둥이>는 <주인공 가정>의 엄마 품에 안기어 있으면서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사위를 관찰하고 있었다. 90분에 달하는 생방송 <국보 검은 들창코원숭이를 만나다>가 방영되자 시청인이 대뜸 190만 인차에 달했고 생방송 다시보기가 누계로 10.3만차에 달했으며 댓글 수는 1.2만 차에 달했다. 그리고 <윈난여행> App가 추천한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검은 들창코고양이>가 보도되자 2개의 짧은 동영상을 본 관중은 350만차를 초과했다. 세계의 샹그릴라, 천생 자연지대의 <인터넷 스타>의 유전자 중국의 국보 검은 들창코원숭이, 설산협곡, 삼강의 합류, 후보폭포(湖泊瀑布), 초원전경, 옛 성의 촌락…세계의 샹그릴라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대자연의 선물로 하여 천생 자연지대에서 <인터넷 스타(网红)>의 유전자로 되고 있다. 디칭 주 문화 및 관광국은 이 우세를 이용, <윈난에서 하나 밖에 없는 경관, 이 경관은 곧 윈난(在云南只有一个景区,这个景区叫云南)>이라는 전역 관광발전의 방침 하에서 문화관광 판촉 라인을 개발, 디칭 주로 하여금 중국 전국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은 명소로, 신흥의 <인터넷 스타 관광 목적지>로 만들어 <세계의 샹그릴라>란 관광지명도와 브랜드의 영향력을 계속 승화시키면서 전 지구적인 검은 들창코원수이의 태닝 IP <인터넷 스타> 형상창조를 위해 양호한 토대를 닦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해 4월, 디칭 주 문화 및 관광국에서는 <세계의 샹그릴라>란 제목으로 전국적인 <15초 음악 동영상> 도전 콩쿠르를 개최, 메리 설산(梅里雪山), 파라거중(巴拉格宗), 쑹짠린사(松赞林寺), 검은 들창코원숭이 풍경구, 후툐우샤(虎跳峡) 및 푸다춰우(普达措 ) 등 8대 왕패 풍경구와 공동으로 전면적인 선전보급 활동을 가동했다. 도전콩쿠르는 5000만 + 인차를 초과, 우수한 동영상의 참여 수는 5만 여건에 달했으며 화제 방송량은 6.2억 차, 댓글은 1000만 건 이상에 달했고 디칭 주에서 추천한 방송동영상은 24편이 되었다. 디칭 주 문화 및 관광국 명실에 부합되는 <인터넷 스타 단위>로 지난 해 첫 시험에서 단맛을 보자 디칭 주 문화 및 관광국에서는 중합라인에 자원을 등록, 즉 인터넷 브랜드 플랫그숍(旗舰店) 구축하기와 양질의 관광촬영, <디칭 72시간> 달인만들기 활동, 샹그릴라 <인터넷 스타 문화관광국> 새로운 판촉개념 등 다방면이 한 보조로 노력하여 <세계의 샹그릴라>란 브랜드를 심도있게 보급, 디칭 주의 문화 및 관광국으로 하여금 판촉 분야의 명실에 부합되는 단위로 되게 하기로 하였다. 올 들어 디칭 주 문화 및 관광국에서는 자아 플랫폼의 판촉보급에 대해 고도로 중시, 권위성 있는 주류 매스컴과 장기합작의 플랫폼을 건립하는 동시에 웨이버, 위챗, 15초 음악동영상, 관광촬영 등 화이라이트 플랫폼으로 디칭 문화관광 관방계좌와 각 풍경구의 관방계좌를 건립, 지속적으로 샹그릴라에 대한 정보, 도편 및 동영상 등을 추천하여 디칭 주의 문화관광 브랜드형상을 진정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홍보활동을 펼치군 했다. 특히 2020년부터 <검은 들창코원숭이 수석고문>이란 이 브랜드는 디칭 주의 문화 및 관광에 있어서 판촉의 길을 이끌 것으로 세계의 샹그릴라는 할 일이 많아질 것이며 세계의 샹그릴라는 <인터넷 스타의 목적지>로 그 미래가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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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4
  • 中 '중국인민지원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장 발급키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올해는 중국인민지원군이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이다. 이에 즈음하여 최근 중공중앙, 국무원과 중앙군위가 <중국인민지원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장을 발급하기로 결정했다고 3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중국공산당과 국가공훈 영예 표창사업위 집무실 책임자에 따르면 <중국인민지원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장을 수여받을 대상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ㅡ 항미원조 출국작전에 참가했으며 현재 생존해 있는 노전사 및 노전사 ㅡ 출국하여 항미원조 전쟁을 위해 봉사한 사람, 현재 생존해 있는 노 의무병, 노 철도병, 노 운수병, 노 번역일꾼, 정전담판 등 사업에 참가한 인원, 노 민병, 노 민공, 노 신문기자, 노 작가와 노 촬영사 등 인원 ㅡ 1953년 7월 정전협정 후부터 1958년 10월 지원군이 전부 조선에서 철거하기까지 조선에서 복구건설에 참가했던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 2020년 1월 1일 후에 사망한 사람도 이번 발급범위 내에 속함 이번 기념장을 수여받을 인원은 조직통계와 개인 신청을 결합화는 방식으로 진행, 조직통계를 위주로 개인신청을 보충으로 하게 된다. 조직통계에서 빠졌지만 발급조건에 부합되는 인원은 2020년 7월 25일 전으로 <중국인민지원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장 신청표에 알맞게 기재한 후 본인 혹은 대리인이 호적 소재지 현급인민정부의 해당부문에 신청 자료를 교부해야 하며 기념장은 2020년 10월부터 조건에 부합되는 인원한테 육속 발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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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3
  • 中 깐쑤 천년 방목장 만마 내달리는 진풍경
    ▲ 치렌산(祁连山) 북쪽 기슭에 있는 깐수 장예의 산단 방목장(甘肃张掖山丹马场)에서 말떼가 질주하는 모습.ⓒ인민망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6월 29일 치렌산(祁连山) 북쪽 기슭에 있는 깐수 장예의 산단 방목장(甘肃张掖山丹马场)에서 말떼가 질주하는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산단 방목장은 허시(河西) 지대의 중부에 위치, 중국에서는 물론 아시아 최대의 우량 말 번육기지이다. 산단 말 방목장은 지세가 평탄하고 수초(水草)가 무성하여 우량 말의 번식과 성장의 이상적인 장소로 <산단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단마 방복장은 기원전 121년 전 시한(西汉)의 표아오치(骠骑) 장군이 지정한 것으로 2130여 년이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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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 中 '슈퍼대교' 후쑤퉁 장강대교 정식 개통 운영
    ▲장쑤성(江苏省)의 쑤저우시(苏州市)와 난퉁시(南通市)를 잇는 후쑤퉁(沪苏通) 장강대교ⓒ신화통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에서 장강을 사이에 둔 장쑤성(江苏省)의 쑤저우시(苏州市)와 난퉁시(南通市)를 잇는 후쑤퉁(沪苏通) 장강대교가 1일 10시에 정식으로 개통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교는 고속도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달리는 혼선철로 및 고속철로로 된 <삼합 일체>의 대교로서 일명 <슈퍼대교>로 불리기도 한다. 후쑤퉁 도로철로대교는 후쑤퉁 철로의 관건적인 절점과 통제성이 집중된 프로젝트로서 북쪽의 난퉁으로부터 남쪽의 장자강(张家港)에 이르는 다리이며 총 길이가 1만 1072미터이다. 이 다리의 건설은 중국 국가철로 그룹 유한회사를 선두로 중국 철로대교원이 설계하고 중국 철로 대교국에서 시공, 그 시일이 6년 4개월이 걸렸다. 후쑤퉁 장강대교가 개통된 후 장강을 넘나드는 철로 운수능력이 진일보 제고되고 장강 삼각주 지구의 철로망 배비 및 이 영역의 종합교통운수 시스템이 대폭 개선되어 상하이(上海)와 난퉁 등 쑤베이 지구의 시공간 거리가 대폭 단축되어 장강 삼각주 지역의 일체화 발전에 중요한 의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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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 中 공산당원 수 9191.4만 명, 기층 당 조직 468.1만 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6월 30일, 중국공산당 중앙 조직부에서 발표한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말까지 중국공산당 당원 총 수는 9191.4만 명으로 그 전년에 비해 132만 명이 증가했고 공산당 기층 조직은 468.1만개로 그 전년에 비해 7.1만 개가 증가했다고 당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당원 수는 안정하게 증장, 전국의 당원 총수의 증장 폭은 1.5%로 그 전년인 2018년에 비해 0.3% 증장했다. 지난해 입당한 신 당원수는 234.4만 명으로 그 전년에 비해 28.9만 명이 증가, 이 중에는 산업 노동자, 청년 농민과 고지식 군체의 비공유제 경제조직, 사회조직 등에서 가입한 당원 수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당원대오 결구 지속적으로 최적화되었다. 당원 총수 중 여당원은 1559.9만 명으로 9%를 차지, 그 전년에 비해 0.7% 증장했고 소수민족 당원은 680.3%로 7.4%를 차지, 그 전년에 비해 0.1% 증장했으며 40 이하의 당원이 총수의 3분의 1을 초과, 대오의 연령구조가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당원 대오 중 노동자와 농민 비율이 여전히 주체를 점해 34.8%로 나타났고 당원 대오의 문화정도가 지속 제고되고 있으며 대학 전문학교 이상 학력의 당원이 50%를 초과하는 4661.5만 명에 달했다. 다음 당원에 대한 교육관리가 부단히 강화되고 있다. 각급 당조직은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감을 명기하자>란 주제로 된 교육을 심입하여 전개, 당원교육훈련 역도를 강화했는바 지난 해 훈련 당원 수는 그 전해에 비해 24.3%가 증가했으며 99.7%의 향진이 직접 농촌당원 집중 훈련반을 조직했다. 그리고 당의 조직생활이 더욱 엄격하고도 규범화되었다. 3201개 지방 당위 지도부에서 경상적으로 민주생활회의를 조직했고 400.7만 개의 당지부에서 전문 생활회의을 조직하고 민주평의를 전개하였으며 임기가 끝난 111.5만 개의 기층 당조직에서 적시적으로 기 바꿈을 하였다. 기층 당조직 건설을 부단히 강화하였다. 전국적으로 24.9만 개의 기층 당위, 30.5만 개의 총 지부, 412.7만 개의 지부를 설립, 그 전년에 비해 각각 1.0만 개, 0.6만 개와 5.5만 개가 증가했고 조직설치가 더욱 과학적으로 규범화되었다. 농촌의 기층 당조직은 빈곤탈퇴 공략전에서의 보루작용을 발휘, 선후로 24만 명의 제1서기를 파견하여 빈곤촌과 당조직이 연약하고도 분산된 촌들에 전부 카드제 건립을 실현하였다. 도시 기층 당건설이 창신적인 발전을 가져와 각 영역의 당조직들이 상호 연락하고 상호 왕래하는 기풍이 형성되었다. 또한 사회 구역에 있는 단위들에서의 당건설이 연합건설과 공동건설로 되고 있는 가두와 사회구역이 각각 8123개와 6.5만개로 그 점유률이 각각 3.4%와 2.7%가 향상되었다. 지난해 새로 건립 혹은 확건된 촌급 당조직 활동장소는 5만 개였고 국유기업, 기관, 고등학교, 공립병원과 비 공유제기업 및 사회조직의 당건설 사업도 정도부동하게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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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1
  • 작년 3월 스페인서의 코로나 19 출현 뭘 설명할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7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작년 3월 스페인서의 코로나 19 출현 뭘 설명할까?>란 제목으로 기자 술평을 실었다. 술평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난 6월 26일, 바르셀로나 대학은 공고를 발표하여 이 대학에서 지도하고 있는 한 연구소조가 작년 3월에 채집한 바르셀로나의 오물 샘플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만약 이것이 진짜 사실이라면 코로나 19가 발생한 시간은 국제위생조직(WHO)에 보고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오물 샘플의 검측으로 코로나 19가 전파된 시간과 잠재력 및 범위를 보다 진실하게 요해할 수 있을까? ⓒEPA 코로나 19에 대한 추적 과정 지난 4월 13일부터 바르셀로나 대학 장도바이러스 연구소조의 연구인원들은 매 주마다 당지의 오물 샘플을 검측, 그 과정에서 코로나 19의 종적도 찾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코로나 19 <기정 감측 항목>의 일부분인 이 연구의 목적은 가능하게 출현할 새로운 라운드의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인원들은 또 한 오물처리공장의 냉동 오물 샘플을 검측, 결과는 2020년 1월 15일에 채집한 오물 샘플 중에서 코로나 19가 검출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스페인 본토에서 코로나 19 확진 사례가 보고된 것은 지난 2월 25일이었다. 이 발견은 연구인원들로 하여금 2018년 1월부터 수집했던 모든 오물 샘플을 검사하도록 독촉하였다. 연구인원들이 2018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의 오물 샘플을 검측 분석해본 결과 지난해 3월 12일에 채집한 오물 샘플에서 코로나 19의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으로 양성이 판정되었다. 이 연구결과는 고도로 되는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에서 보고된 첫 코로나 19의 확진 사례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앞당겨졌으며 코로나 19가 바르셀로나에서 작년 3월부터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이 연구를 지도한 바르셀로나 대학 생물학 교수 알베르 보쉬에 따르면 바르셀로나는 상업 및 관광 중심으로 많은 외지 관광객을 맞아들이기에 세계의 기타 지구에서 유사한 상황이 발생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단지 허다한 사례는 인플루엔자로 오진되어 그냥 중시를 일으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시간 판정은 시기상조 스페인 바이러스 학자학회 회장인 보센은 만약 올 1월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더라면 이에 대한 방역수준을 높이는데 유조했을 것이라면서 당시 코로나 19에 대한 인지도가 결핍했기에 코로나 19의 전파초기 인플루엔자로 가능하게 오진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구역에 대한 전파를 가속화했을 수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럼 인류가 코로나 19를 발견하기 전에 코로나 19가 대중들 속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는가? 바르셀로나 대학 측은 이미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동업종 평심기구에 교부했다. 한편 바르셀로나 대학의 연구결과에 대해 질의를 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은 걸로 알려지고 있다. 스페인 공공위생 및 위생관리 학회의 호안 비야르비 박사는 이 연구결과를 두고 오직 이 한가지 연구결과보다는 더욱 많은 데이터, 더욱 많은 연구와 더욱 많은 샘플을 가지고 그 결과를 증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아직은 실험의 착오 혹은 방법에 문제가 존재하는 등 인소를 배체할 수 없고 이 외 결과 또한 가능하게 가짜 양성일 가능성일 수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비아의 생물학 전문가 르비는 이 연구를 긍정하면서 매우 큰 <계발성>이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 오염수 연구소 미생물학자 헤르티앵 메데마는 바르셀로나 대학 연구소조에 소장되어 있는 샘플을 재차 검측하여 코로나 19가 오물 중에 확실히 있다는 것을 증실하라고 건의했고 어떤 학자들은 바르셀로나의 이 연구 샘플에 대한 농축절차 등이 규범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오물에 대한 연구 코로나 19 감측의 새로운 루트로 될 듯 현재 다각적인 연구 결과 코로나 19 환자의 분변 배설물 중에 다량의 코로나 19 유전자 군이 존재, 바이러스 유전자는 최종 오물 중에 혼합되어 흘러들기 마련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지난 2월, 중국 과학원의 중난산(钟南山) 원사와 리란줸(李兰娟) 원사 연구팀은 각각 코로나 19 환자의 분변 샘플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분리추출, 이 발견은 환자가 배출한 분변 중에 확실히 활성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실했다. 이런 연구 실험 결과는 전 사회적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파 경과를 밝혀냄과 동시에 목표성 있게 코로나 19를 예방 통제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편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폭발됨에 따라 많은 나라의 연구일꾼들도 시험적으로 오물 샘플에서의 유행병학 연구를 코로나 19 전파를 감측하는 루트로 삼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일, 핀란드 국가 위생 및 복리 연구소에서는 공보를 발표하면서 오물 중의 코로나 19 핵산 함량은 기본상에서 특정지구의 전파상황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방법은 또 바이러스 유전형을 감정함에 있어서 유조, 연구인원들은 내원이 부동한 코로나 19는 부동한 감염능력이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6월 9일, 싱가포르 국가 발전부 황쉰차이(黄循财)는 전통적인 검측법 외 싱가포르에서는 오물 중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있는가를 검측하는 등 방법으로 모 특정 군체 중에 코로나 19 환자가 있는가를 요해하고 있다면서 그 대상자는 전용 숙소의 외적 인부들이라고 했다. 오스트레일아의 연방 과학 및 공업 연구 조직은 6월 19일 발표한 공보에서 누구나의 감염증상을 막론하고 오물 샘플로 사회구역 중의 코로나 19 감염상황을 요해할 수 있었다고 서술했다. 이 기구가 참여한 연구팀은 일종 원가가 저렴하고 효과가 쾌속적인 방법으로 오물에 대한 검측을 통해 코로나 19가 사회구역에 전파하는 상황을 알아내는 <비결>을 찾아냈는바 이는 코로나 19 제2차 폭발을 예방함에 있어서 유조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미국과 네덜란드 등 나라 역시 이런 유형의 연구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인원들은 해당 연구는 과학자들이 관찰하지 못하고 있던 코로나 19가 사회 군체에 전파되는 경로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 특히는 무증상 군체의 전염상황을 포함한 모든 군체에 대한 목표성이 있는 예방과 통제에 파악이 있게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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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 향후 수 개 월 코로나 19와의 공존상태 직면할 듯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9일, 세계위생조직(WHO) 사무총장 탄데세는 세계의 코로나 19 확진사례가 1000만 건을 돌파, 사망사례가 50만 건을 초과했으며 향후 수 개 월은 모든 국가들이 코로나 19와 공존하는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일 제네바에서 중국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보도했다. 당일 탄데세는 코로나 19 관련 데이터를 공포하고 나서 “이는 우리 모든 이들에게 이미 취득한 진전과 섭취해야 할 교훈에 대해 깊이 반성해보게 하고 있다. 아울러 다시 모든 방법을 다해 생명을 구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라고 피력했다. 탄데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6개 월 전 우리는 그 누구도 코로나 19 때문에 세계와 생활이 혼란에 말려 들어갈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미래 수 개 월내 모든 국가들이 직면하는 관건 문제는 어떻게 이런 전염병과 공존하면서 싸우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국가마다 시종여일하게 아래와 같은 5가지 우선 조치로 국면을 돌려세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첫째, 사회구역의 작용을 강화해야 한다. 매개의 개체는 모두 동원되어 자기와 타인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 손 위생, 기침 시 입 가리기, 몸이 불편 시 집에서 격리하기, 장소에 따라 마스크 착용하기, 믿음직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기 등이다. 둘째, 바이러스 전파를 억제하기이다. 모든 국가들은 모두 코로나 19의 전파를 억제하여 의료위생사업자에 대한 개인보호 장비 착용을 보장함과 아울러 해당 훈련을 강화하여 전염병에 관한 식별수준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바이러스 전파 고리를 끊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단지 고신과학기술에만 의거할 것이 아니라 전문 인원들의 병원체 추적과 아울러 밀 접촉자를 격리시키는 등 다종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완성해야 한다. 셋째, 생명을 구원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일찍 발견하고 일찍 치료하는 것으로 생명을 적극 구원해야 한다. 즉 중증환자한테 제공하는 호흡기 및 덱사메사손(地塞米松) 등을 적시적으로 사용하여 사망률을 낮춰야 하며 장기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노년 층을 포함한 고위험 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넷째,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 연구 및 개발를 다그쳐야 한다. 목전 코로나 19에 대해서는 아직도 적지 않은 미스테리가 남아있다. 세계위생조직은 이번 주 내로 재차 회의를 열고 연구 개발의 진전 및 다음 단계의 연구중점에 대해 토론할 계획이다. 다섯째, 정치지도력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의 단결이 코로나 19의 전파를 억제하고 생명을 구원하며 바이러스가 사회와 경제에 주는 영향을 감소시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당일 탄데세는 또 최근의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 시간표를 공포, 모든 사람들이 지난 6개 월 내 세계위생조직에서 한 코로나 19 대응 사업에 대해 잘 요해할 수 있도록 함과 아울러 앞으로 계속 각 나라를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언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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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오피니언 검색결과

  • '중국 특색'과 '미국 예외'의 가장 큰 구별 점
    ● 왈리드 (튀니지) 오늘의 세계는 신흥시장 국가와 발전 중 국가들이 군체적으로 굴기하고 국제역량 대비가 더욱 균형 발전하며 세계의 단극화 구조와 미국 패권의 시대가 몰락하면 다시는 더 이상 그 복귀가 어려운 시대로 되고 있다. 중국은 세계 다극화의 주요한 추동자로 되고 있지만 미국은 도리어 여전히 자아 우월감과 패권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생기는 중미사이의 모델은 서로 충돌하면서 세계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후 냉전시대의 중미모델: 개혁개방과 세계화 추세에 대한 역행 중국은 정확한 발전도로를 모색하고 발전과 번영에 들어서기 전, 허다한 고난에 봉착했다. 이 동방의 거물 사자가 잠에서 깨어나 개혁개방의 도로를 선택하기 전에는 빈곤, 실패, 기아와 동란 등을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냉전의 결속은 중국의 자아반성을 독촉했다. 반대로 미국은 여전히 그 창궐함이 극도에 달했고 맹목적인 자신감으로 거들먹거렸다. 그리고 중국은 구소련 모델의 교훈을 섭취,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모델이 결합된 새로운 것을 탐구,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제기했고 국가 주도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유시장과 사영기업에 대한 제약을 풀어놓았다. 하다면 미국은 냉전이 결속된 후 미국의 우월성을 강조 미국의 모델이 세계 기타 국가들에 계발과 창조적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도록 하고 있다. 냉전이 결속된 후의 수 십 년 래 중국의 주류는 <중국특색>으로 주로 중국의 원소(元素)와 대외개방, 국가의 방대한 통제조정과 자유경제의 상호 결합 및 중국 모델과 기타 국가의 모델이 상호 존중하고 상호 윙윙의 기초상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는 도리어 <역사의 종결(历史的终结)>과 <미국화>로 군사력과 기타의 파워로 자기의 생각에 따라 <동맹이 아니면 적으로 취급>하는 대외정책으로 세계를 개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간섭을 원하지 않는 국가들을 놓고 말하면 미국식 모델은 일종의 압박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이른바 미국식의 자유는 허다한 국가의 눈에는 패권으로 보이었고 소위 그 <안전관> 또한 기타 국가한테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냉전이 결속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의 굴기>와 <미국의 쇠퇴>는 자주 여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충돌 중에서 중국과 미국의 모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등지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예하면 중국과 세계는 날로 밀접해지는 한편 미국은 도리어 고립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은 무역자유, 글로벌화, 투자와 자본의 자유유동 등을 호소하는가 하면 미국은 관세보루를 설치하면서 일방적으로 무역전쟁을 도발하고 글로벌화를 반대하고 있으며 아울러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기업의 투자와 교역을 간섭하면서 더 이상 공평경쟁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이른바 자유의 토대위에서 건립되었다는 미국모델은 그 시작부터 자아모순에 빠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상 미국모델과 중국모델의 행위적 차이는 망상적으로 바닷물을 다 마시자는 사람과 바다를 헤치면서 배를 모는 사람과의 대비이라고나 할까? 현재 차별화로 가득한 세계에 직면하여 강대한 실력의 미국은 마치도 익수자마냥 부단히 국제주의적 의무에서 탈퇴하고 글로벌 세계에서 철퇴하려고 발악하면서 고립주의로 향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중국모델은 도리어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면서 큰 파도에 영활하게 대응, 이는 최종적으로 성공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는 수영선수와도 같은 모습이다. 미국은 현재 자기 자신들이 설치해놓은 전 지구적 전략의 미궁 중에서 전전긍긍하면서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도리어 타국에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선박의 항해를 저애, 이것이 곧바로 현재 미국의 대 중국정책으로 되고 있다. 헌데 이런 선박들의 항해는 단지 자신노력의 결과만이 아닌, 이미 세계적인 대 추세로 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시기, 미국의 정책 제정자들은 “미국의 모델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식이란 것이 증명될 것이다”라고 자고자대했다. 이와는 달리 현재의 무역전쟁 중 중국의 지도자들은 반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아 주동성을 상실했고 그 정책 또한 중국굴기에 대한 피동적인 대응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특색>과 <미국 예외>란 모델의 구별 세계의 판도가 다극화로 발전함에 따라 현재 <중국굴기>와 <미국쇠퇴>론이 성행,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중국이 새로운 패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하자면 중국모델과 미국모델을 비교해보면 이 문제에 대한 답안이 나오게 된다. 중국과 미국의 모델을 살펴보면 3대 주요한 구별이 있다. 이런 구별은 중미 각 자의 행위 및 이들과 기타 국가와의 관계를 결정한다. 첫째, <중국특색>과 <미국예외>는 개념상 비슷하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다. 중국의 특색성와 미국의 예외성은 표달하는 것은 동일한 함의를 갖고 있다. 곧바로 타국과는 부동하고 모델이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기실 양자는 완전히 상 반대되는 우의(寓意)를 갖고 있다. 미국의 예외성은 자기 자신을 기타 사회와 문화의 앞자리에 놓는 표현으로 되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미국의 발전사는 다른 국가나 지구와는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다. 자기들은 봉건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나치스주의를 경유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인류자유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특색은 다시 말해 중국모델은 수 천 년 자국의 역사문화와 사회전통 습관 및 본국 특정을 거울로 삼은 특점이 있다. 미국 모델은 미국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중국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미국식 모델이 부동한 문화배경을 갖고 있는 전 인류한테 모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인정하겠지만 중국인들은 도리어 세계상에는 많은 부동한 성공모델이 존재하며 아울러 한 가지 모델을 전 세계에 파급시키려는 생각은 충돌 혹은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 때문에 인류는 부동한 모델 사이에서 평화공존의 방법을 찾고 이를 실현해야지 모종의 특정 모델을 전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서 알 수 있는바 미국식 모델 목표는 확장이고 중국의 모델 취지는 가장 적합한 자아발전방식을 찾으며 아울러 자아 특색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뚜렷하게 반대되는 국가안전관이다. 미국과 중국의 안전관의 구별은 크다. 심지어 완전히 상반대로 된다. 미국 모델의 안전관은 <내부안전>의 사상위에 있으며 이들은 미국을 <산정에 있는 성(山巅之城)>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해 있고 거기에 인국들 또한 공격성적인 나라들이 아니기에 자기의 생명과 재부에 대한 안전감이 십분 만족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줄곧 영토 외에 군사력 확장에 치중하면서 세계패왕의 지위를 지키려 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의 안전관은 <외부의 위협> 위에 있다. 중국은 많은 강국과 미국 군사기지들에 포위되어 있고 또한 내부로는 분열세력들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 해양을 놓고 말하면 아편전쟁으로부터 8국 연합군의 중국침략에 이르기까지 해양은 줄곧 외국세력이 중국을 침략하는 문호(门户)로 되어왔다. 신 중국이 창립된 후의 수십 년간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한 이유로 중국은 시종 외부로부터 거대한 압력에 시달렸고 내부 구세력의 음모를 방지해야 했는가 하면 외부세력의 침략도 막아내야 했다. 그리고 개혁개방 정책을 실행한 후 중국은 여전히 외부세력의 간섭과 내부로는 지구분열주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중국의 안전관은 오직 충족한 군사세력이 있어야 만이 외부세력의 침략을 억제하고 국가의 통일과 현유의 자원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세계 각 국과의 관계이다. 중국현대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매번 중국내부가 더욱 안정할 때일수록 중국과 기타 국가와의 관계가 정비례로 좋아졌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중국은 자기의 모델을 <수출>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동시에 외국모델의 압력도 접수하지 않고 있다. 내부의 안정이 공고화 되고 외부의 위협이 억제되는 것, 이 양자가 평형을 이룰 때 중국은 합작공동이익의 토대위에서 세계 각 국과 관계를 건립하고 있다. 중국은 그 어떤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고 있으며 군사 혹은 의식형태의 연맹으로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왔다. 때문에 중국 모델은 그 운행형식에서 <정수 + 변수(定数+变数)>로 국내적으로는 중국특색을 위주로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합작 상대방의 가치관이 부동하고 주어진 환경이 달라도 여전히 기타 국가와 공동이익을 토대로 한 합작관계를 건립하고 있다. 주지하다 싶이 오늘 날 중국은 조선, 한국, 인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국가와 모두 온건한 합작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上海) 합작조직 및 브릭스(金砖国家) 그룹의 중요한 성원으로 이 두 개의 조직은 모두 문화 혹은 의식형태의 통일로 건립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중국은 자신의 국제이익을 실현함에 있어서 공동이익을 기초로 하고 있지 동맹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외 <일대 일로(一带一路)>의 발기가 파급되는 다양한 문화와 부동한 합작방식은 부동한 국가와 지구의 발전전략에 잘 융합되면서 중국의 희망과 기타 국가와의 합작공동이익이 잘 반영되고 있으며 아울러 이는 결코 확장을 꿰하거나 패권을 노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미국 혹은 서방의 모델은 <정수 + 정수(定数+定数)>의 형식으로 세계 각 국과 거래하기에 이들은 자기네들의 모델이 모범이라고 표방하면서 타국들로 하여금 자기의 복제품으로 되어 자기네들의 가치관을 접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방의 모델을 공동이익, 가치관과 의식형태의 기초위에서 통일로 건립된 동맹과 규칙으로 삼을 것을 호소, 자신의 모델 영향을 확대하고 기타 부동한 모델을 억제하기 위하여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동맹을 통해 패권을 산생시키고 패권으로 하여금 자체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해야 더 적절할 것 같다. 총적으로 중미 모델은 그 개념, 가치관,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 및 기타 국가와 내왕하는 방식 등에서 모두 큰 구별점이 존재한다. 일찍 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등소평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不管白猫黑猫,会捉老鼠就是好猫)>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 모델은 이미 성공한 모델로 활력이 충만하고 현실적 의의가 풍부하며 아울러 국제합작 영역에서도 모두 공동이익을 실현하였다. 이와는 달리 동맹과 공통점을 중시하는 미국 모델이 계속 세계에 대한 미국의 리드와 다양화한 세계의 평화공존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미지수이다. (작자는 중국 베이징 대학 역사학부 졸업생이며 박사학위 획득자이며 현직은 인민망의 아랍문판 편집임) <편역 : 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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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노르망디 해변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포투데이]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장 결정적인 의의가 있는 중대한 전역이었으며 영미동맹군이 상륙작전에서 성공하여 제 2의 전장을 개척한 전역이기도 했다. 하다면 당시 가령 노르망디 해변을 지킨 군대가 일본군이었다면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전역에서 영미동맹군은 도합 288만 명의 군대, 1200척의 작전함정, 4126척의 상륙함정, 5000척의 운수선과 1만 3700대의 비행기를 투입, 8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5개 상륙 지점에서 제1진으로 상륙한 부대는 5개 사의 약 13만 명이었고 상륙지점 후방 즉 독일군 점령지에 공중 낙하된 3개 낙하산병 사는 약 3만 5000명이었다. 한편 당시 노르망디 해안지역을 수비하는 독일군은 352 보병사와 716 해안방어사 그리고 약 16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캉 지역의 제21 기갑사 이렇게 3개 사의 병력을 다 합쳐도 5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또한 동맹군이 진짜 상륙하던 80킬로미터 해변 정면에 있는 독일군은 352 보병사와 716 해안방어 사의 6개 영 19개 소대로 3000명(이 중 6분의 1은 소련군 포로로 구성된 <동방영>이었음)도 되지 않았고 대포와 반 탱크 포 88문, 평균 매 1킬로미터에 배치된 병력은 40명 정도였으며 매 1킬로미터마다 대포 1문씩 배치된 셈이었다. 당시 독일군 716 해안방어사는 기동차량이 배비되지 않은 <고정사>로서 기동능력이 전혀 없었고 중무기도 아주 적었으며 전투력도 아주 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서적과 자료들에서는 제 352 보병사를 놓고 독일군의 최정예 부대라고 했지만 기실 이는 2차 대전 시기 독일군에 대한 요해가 흐리멍텅한 것으로 이런 설법은 자연히 웃음거리라는 설도 있다. 왜냐하면 부대번호가 100번 이내이고 아울러 1939년 제 2차 대전의 폭발 전에 창설된 부대가 진정한 최정예였으며 진짜 독일군의 정예부대는 모두 기갑사 혹은 기계화 보병사였다. 일반적인 보병사 즉 352 보병사 같은 부대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2류 수준의 부대로밖에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제 352 보병사는 1943년 9월, 프랑스 생로에서 창건, 병력 내원을 보면 소수의 골간 군인들이 동부전선의 전장에서 온 노병이었고 절반 좌우는 모두 갓 입대한 20대의 신병이었으며 거의 3분의 1 가량은 동부전선에서 붙잡힌 소련군 포로로 구성된 이른바 <동방영>이었다. 바로 독일군들이 소련군 포로 중의 소수민족 군인을 집결시킨 것으로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그루지아인과 카타르인, 심지어 소수의 조선인도 있었다. 이들 조선인들은 일찍 일본군이었다가 중소 변경지대인 노먼행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고 독소전쟁이 폭발하자 소련군에 보충되었다가 다시 독일군에 포로가 되는 등 곡절적인 경력자들로서 후에 재차 독일군으로 되는 해프닝으로 조직된 부대였기에 이들의 전투력이란 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352 보병사는 병력이 도합 1.3만 명으로 기실 이 사단은 정예부대에 속하지 못하는 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동맹군이 오마하 해변에서 상망한 인수가 전반 상륙한 5개 해변 중 가장 많았다. 사망 약 1500명, 부상 2800명으로 오마하 해변에서의 상망인수가 전체 5개 상륙해안 상망자의 80%를 차지했다. 바로 이것으로 오마하를 수비하던 352 사단이 갑자기 <정예사단>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독일군에서 정예사단이라 하면 제21 사단을 꼽을 수 있다. 이 사단은 룸멜의 아프리카군의 제1번 주력이었다. 하지만 당년의 아프리카 왕패군은 기본상 소실되었고 1943년 6월, 프랑스 북으로부터 철거해온 소수의 부대와 귀국해 치료받던 부상병들을 조직해 재건, 노르망디에 올 때 탱크는 거개가 구식으로 된 것으로 대부분은 III호 탱크였고 가장 선진적인 것이래야 IV호 탱크 조기의 G형이었다. 그리고 돌격포 여기 10문의 II호 G형의 돌격포와 몇 대의 <족제비>호 탱크 저격 차였고 자주포는 III호 탱크 밑바닥을 개조한 105밀리 유탄포와 <황소>호 150밀리 자주포였으며 아프리카 시기의 21 기갑사단은 이미 <넘어간 태양인 격>이었다. 동맹군이 상륙하던 날, 제21사단 역시 반격을 조직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투입된 장비와 인수는 50대의 탱크와 1개의 기계화 영뿐으로 동맹군의 공격에 의해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하긴 소수의 부대가 해변까지 반격하여 5킬로미터에 달하는 돌파구를 개척했으나 후근보급이 단절되어 철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날 동맹군은 5개의 상륙 해변에서 모두 성공, 해안에 오른 병력은 13.6만 명이었고 상망자는 6000명뿐이었다. 그럼 노르망디 해변을 일본군이 수비했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제 2 차 세계대전 중 일본 육군의 방어 작전능력이 출중했다는 건 누구나 다 공인하는 바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미군의 해 공 군 폭격과 포격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지라 이들이 구축한 방어공사는 견고할 뿐만 아니라 아주 은폐적인 것이어서 어떤 요새는 전문 미군이 지나간 다음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노르망디의 독일군 방어공사는 그 자체가 대서양에서의 독일군 요새 중 가장 박약한 고리였다. 만약 당시 일본군이 노르망디 해변을 수비했더라면 그들은 그 방어요새를 기필코 강화했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태평양 전장에서 매번 상륙작전을 펼치기 전야마다 미군은 우선 해 공 군의 화력을 집중하여 목표 섬도를 며칠, 심지어 10여일씩 불바다로 만들 군 했다. 당시 미군은 남태평양의 쾌잘린 섬을 공략한 후 전문 일본군 방어공사를 가상으로 한 함포사격 시험을 진행, 시험결과 반드시 203밀리 이상의 대구경 포로 정조준 해야만 일본군 은폐요새를 날려 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노르망디에서의 동맹군의 해 공 군 포격과 폭격은 몇 시간에 그쳤는 바 이는 근본 태평양 전장과는 비길 수도 있었다. 만약 태평양 전장에서의 미군 폭격과 포격이 노르망디에서의 동맹군의 규모였다면 일본군의 방어시설이 적어도 80%는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미군의 상륙부대는 일본군한테 더욱 골탕을 먹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음, 방어 전술상 독일군은 해변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를 두고 논쟁이 심했다고 하며 최종 절충방안으로 해변을 방어하되 부분적 병력을 근처의 종심지대에 배치하여 반격을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독일군은 이 두 가지가 다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본군은 달랐다. 일본군은 전쟁 중에서 전쟁을 배웠다. 이들은 절대적으로 우세한 미군의 화력 앞에서 아예 해변을 포기하고는 지하 갱도공사를 대대적으로 구축했으며 방어의 중점을 섬도의 종심에 두어 미군의 함포 포환이 근본 일본군 진지에까지 와 닿을 수 없도록 하였다. 이런 시각으로 놓고 말하면 당시 노르망디에서의 룸멜과 룬데슈타이트가 우려한 것은 기갑부대를 종심에 배치했다가 적시적으로 해변에 다닿을 수 없을가봐서였고 또한 장갑부대의 위치가 동맹군 함포의 사정거리 내에 들기라도 할까봐서였다. 그 우려는 적중한 것이었다. 전장에서 독일군의 가장 예리한 장비였던 기갑부대는 동맹군의 폭풍우와도 같은 화력 앞에서 집중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독일군 역시 일본군처럼 기갑부대를 종심의 먼 곳에 배치하고 아울러 그 기갑부대를 소규모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보병들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역할을 시키면서 방어의 받침역량 및 소규모 반격의 중견으로 돼 줬더라면 그토록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로부터 보아 일본군은 방어전술에 있어서 독일군에 비해 보다 실제적이었고 경험도 많았다. 필경 일본군과 미군은 태평양 전장에서 3년간에 거친 공방전을 해왔던 군대였으니 말이다. 이에 비해 독일군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미군과 딱 한번 소규모의 전쟁을 해봤으니 경험상 일본군에 비해 뒤지기 마련이었다. 이 외 언급할 것은 전투의지에서도 일본군은 독일군에 비해 더욱 완강했다. 더 정확하게 말해 노르망디를 방어하던 독일군에 비해서는 훨씬 더 완강했다. 왜냐하면 노르망디 해변을 방어하던 독일군 3개 사단은 모두 국방군으로 또 재건된 사단 혹은 새로 건립된 사단이었으며 특히 많은 소련군 포로로 구성되었던 <동방영>은 더욱 전투의지가 자연적으로 높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독일군 중의 <완고파>였던 당위 군이였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기 전투에 투입되었던 당위군 제12 <히틀러 청년단> 사단은 대다수가 소년병이었지만 사상 상 매우 완고했고 전투의지도 완강했으며 여기서 영국군은 자주 골탕을 먹군 했었다. 하다면 일본군의 완강한 전투의지를 놓고 보아 당위군에 비해 조금도 차질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노르망디에 상륙하던 미군은 거개가 육군이었다. 해군은 소수의 해변폭파 대대뿐이었고 해군육전대는 없었다. 당시의 미군 부대 중 육군과 해군은 모두 의무병이었고 오직 해군 육전대만이 청일색으로 지원병으로 모두 자기가 자원해서 군 입대를 한 진정한 군인들이었다. 아울러 육전대는 훈련마저도 진짜 전투처럼 진행하는 전투력이 강한 부대였으며 육전대의 전투력이 일반 육군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는 것은 모두가 공인하고 있던 바였다. 태평양 전장에서 거의 모든 가열하고 힘든 전쟁은 모두가 육전대가 맡았으며 육군은 기본적으로 보조전투를 치르는데 그치었다. 가령 태평양 전장에서 이런 가열하고 힘든 전투를 미 육군이 맡았더라면 아마도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고 상망도 엄청 더 컸을 것은 불보듯 번연했다. 또한 반대로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대신 일본군이 지켰더라면 동맹군 육군은 절대적으로 큰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재삼 언급하지만 만약 노르망디의 수비군이 일본군이었더라면 긍정코 방어공사가 더욱 공고했을 것이고 전술도 더욱 합리했을 것이며 전투력도 비할 바 없이 완강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동일하게 일본군 역시 2개의 보병사단과 1개의 기갑사단이라고 할 때 상륙 첫 날은 동맹군이 비교적 순리로웠을 것이지만 그 이튿날부터는 긍정코 애로가 첩첩할 것으로 종심으로 들어갈수록 진격속도가 늦어짐과 동시에 상망자도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컸다. 그 실례를 들자면 태평양의 섬도에 대한 상륙전들을 보면 면적과 종심이 작고 후방 보급이 거의 없는 등 불리한 요소가 많았으나 일본군은 미군으로 하여금 얼굴색이 굳어지면서 혀를 내 돌리도록 했다. 하다면 노르망디 이런 대륙을 끼고 있는 해안을 일본군이 지켰다면 종심이 더욱 크고 후방보급도 원활하기에 동맹군의 상망은 기하급수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편역 : 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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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7
  • 중국의 항일명장 왕일서, 그는 한국인이였다
    [동포투데이]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조선을 강점해 버리자 망국노로 되기를 원치 않는 많은 조선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건너갔으며 이 두 나라를 광복을 위한 기지로 삼고 일련의 굴곡적이고도 간고하게, 그리고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조국광복을 위한 피에 얼룩진 범상치 않는 투쟁을 벌였다. 이들한테는 해당 국가와 군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많은 조선의 망명자들은 중국의 군대에 참가, 이들과 함께 일본 파시스틈을 소멸하는 투쟁의 제일선에 투신하군 하였다. 왕일서가 바로 매우 대표성을 띠고 있는 그런 조선인 중의 일원이었다. 왕일서(王逸曙)ㅡ 그의 조선이름은 김홍일이다. 그는 1916년 18세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길고도 곡절적인 항일구국의 길을 더듬기 시작했다. 당시 약하고 힘없는 망명자로서 왕일서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익사 전야의 사람마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뭘 보거나 듣거나를 막론하고 상대방한테 도움을 청하군 했지만 무수한 실망과 좌절만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거듭되는 좌절 앞에서도 시종 굴하지 않았다. 이는 적지 않은 중국인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1918년 왕일서는 상해에서 귀주의 군벌 유현세(刘显世)의 아들 유강무(刘刚武)를 알게 됐다. 조국광복을 위해 그토록 동분서주하는 왕일서의 일거일동에 탄복했던 것이다. 그 뒤 왕일서는 유강무의 알선으로 귀주 육군강무당에 들어가 군사를 배웠고 졸업 후 유현세의 부대에 들어가 군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중국 군벌은 그로 하여금 크게 실망토록 했다. 그야말로 이 군벌과 저 군벌간의 파벌싸움에만 열중하는 무리에 불과했다. 이는 조국광복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왕일서의 적성에 너무도 맞지 않았다. 조선의 광복을 위해서는 그래도 우리 민족의 투사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그가 상해에 한국임시정부가 들어섰다는 소문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 뒤 귀주군벌의 유혹을 물리치고 상해로 온 왕일서는 곧추 지금의 상해시 황포구 마당로 306롱-4번지(上海市黄浦区马当路306弄-4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당시 임시정부 요원들은 왕일서를 만나자 반겨 맞았으며 그와 함께 대한 독립의 대의를 놓고 여러 가지 의논을 하였다. 그러던 중 왕일서가 군사에 대한 천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임시정부 요원들은 그를 중국 동북에 파견해 대한독립군을 창설하도록 밀어주었고 그 또한 임시정부의 요구에 의해 군대창설 임무를 맡고 만주로 갔다. 만주에서 대한독립군을 조직했다가 후에 항일투쟁의 수요에 의해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러시아 경내로 들어갔다. 당시 이들은 한 가지 크게 잘못 판단하였다.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있은 일러 전쟁으로 러시아와 일본은 숙적이 되었기에 러시아는 이들을 적극 지지해 주리라고 크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이 때 러시아가 내전에 휘말려 들어가면서 그 광활한 러시아 땅에는 소련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게 되었고 대한독립군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상대한테 잘못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러일관계에서 대한독립군은 철두철미하게 러시아 켠에 섰으나 신생의 소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을 같은 종속으로 치부했으며 결국 대한독립군은 러시아 땅에서 축출 당하게 되었다. 대한독립군은 다시 중국 경내로 들어왔으나 거의 붕괴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와서야 왕일서는 조국광복이란 일종 장기적이고도 기나긴 노정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조급정서를 버리고 중국에 뿌리박고 중국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왕일서는 이렇게 인정했다. ㅡ 중국군이야말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주력군이다. 그렇다면 중국혁명에 참가하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 조선의 광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1926년 왕일서는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혁명군에 투신, 북벌에 참가했으며 후에는 상해 오송요새(吴淞要塞) 사령부의 참모장, 상해 병기공장 군사기계처 주임, 제19로군 후방정보국 국장 등 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1932년 상해에서 <1.28 송호항전(淞沪抗战)>이 폭발하자 왕일서와 상해에 있는 조선의 지사들 그리고 중국 동지들은 국내외를 놀라게 한 한차례의 테러행동을 기획(총책임자 김구), <부두방(斧头帮일명-도끼방)> 두령 왕아초(王亚樵)의 도움으로 조선청년 윤봉길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육군대장 시로가와를 비롯한 일본군 장병 여러 명을 죽이고 중상을 입게 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여기에는 왕일서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그 뒤 왕일서는 또 중국의 동지들과 함께 오송구에 정박해 있는 일본함정 <이즈모(いずも)>호를 폭파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건도 있었다. 1937년, 중국에서 전면 항전이 폭발하자 왕일서는 견결히 자진하여 당시 중국군 중 실력이 가장 막강한 부대의 하나인 백휘장(柏辉章) 장군이 인솔하는 102사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부대는 상해보위전, 만가령 전역, 상고전역 등 중대 전역을 치렀으며 혁혁한 공훈도 많이 세운 부대였다. 이 부대 참모장으로 있는 기간 왕일서는 그의 군사적 재능과 용감성 등으로 장개석의 중시를 받았고 후에는 국민혁명군 육군 중앙대학에 가서 학습하였으며 얼마 안되어 중장참모로 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하자 왕일서는 떠난지 수십년이 되는 조국으로 인차 돌아간 것이 아니라 중국 동북에 남아 일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이 성립된 후에야 귀국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호국군(护国军)국장, 육군사관학교 학장 등 직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파죽지세로 쳐내려오는 인민군 앞에서 전투경험이 없는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이러자 왕일서는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몇 차례의 섬멸전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는 채납되지 않았다. 결과 한국군은 각각 격파되는 대가를 치렀다. 이렇듯 관건적인 시각에 왕일서는 명령에 의해 한국군 제1군단 사령을 맡게 되었고 그가 인솔하는 제1군단은 한강 이남에 견고한 방어라인을 구축해 이를 사수하면서 미군 스미스 부대가 오산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이렇듯 왕일서의 유능한 군사전략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군 수뇌부였다. 당시 왕일서는 소위 <중국파>였기에 친미파와 친일파들이 득실대는 한국 군부 내에서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왕일서는 점차 실세에서 밀려났고 나중에는 군부에서 은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후에 왕일서는 한국 외교부 장관, 한국 광복회 회장 등 직을 맡아하다가 1980년에 사망, 향년 82세였다. <시나망(新浪網) 편역 : 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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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2
  • 아프리카서 가장 아름다운 '흑진주'-로리타
    ▲아프리카서 가장 아름다운 '흑진주'-로리타ⓒ차트망 [동포투데이]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장 인정하는 <미(美)>의 표준요소로 삼아왔다. 그리고 중국에는 <햐얀 피부 한가지로 못생긴 세 곳을 감출 수 있다(一白遮三丑)>는 명언도 있다. 하지만 얼마 전, 피부색깔이 극히 검은 한 소녀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흰 피부를 가져야 비로서 아름답다>는 고유의 관념에 일타를 안기었다. 그럼 이 소녀의 얼굴은 구경 어떤 매력을 가졌을까? 중국 차트망에 따르면 이 소녀의 이름은 로리타(Lolita)로서 진짜 오리지널 아프리카 흑인이다. 절대 다수 사람들의 심미 관념에서 흑인의 미는 진짜 감상가치가 없을 지경이지만 로리타 소녀의 용모는 그야말로 이목 일신(耳目一新)으로 너무도 아름답다. 사진으로부터 볼 수 있다 싶이 로리타의 피부는 여느 아프리카 여성보다도 오히려 더 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녀의 정교롭게 생긴 오관에서 뿜겨나오는 미감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약간 높다란 콧마루, 짙은 눈썹과 사람의 심령을 사로잡는 그윽한 두 눈, 이런 것들을 하나로 조합하여 구성된 얼굴은 피부의 국한 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정교한 얼굴 외 로리타의 몸매 역시 쭉 빠지고도 건강미가 넘친다. 거기에 평소 치장에 아주 신경을 쓰고 있는 로리타이다. 때문에 네티즌들은 그녀를 두고 <가장 아름다운 흑진주>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한편 평소의 로리타는 사교적인 자세로 자기의 일상생활을 친구들과 공유하기를 즐긴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사람들은 점차 이 소녀가 갖고 있는 자신감 넘치는 일면을 보아낼 수 있었으며 로리타 역시 이 때문에 재빨리 많은 팬을 가질 수가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로리타가 남들한테 많이 알려지게 되자 그녀의 부모는 딸의 인신안전을 위해 그녀가 단독으로 집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력 제한, 매번 외출 시마다 배동인이 있어야 가능했다. 또한 로리타의 <미적 매력>으로부터 알 수 있는바 미감이란 정교한 오관 및 하얗고 뽀얀 피부로 과시하는 외에도 다른 요소로 체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많은 사람들 인상 속의 아프리카인은 천성적으로 검기에 아프리카의 여자애들도 모두 이쁘지 않은 것으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인간은 절로 자신의 이모저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예하면 성별, 피부와 용모 등을 말이다. 반면에 평온하게 자신의 숙명을 접수하고 동시에 자신감을 드러낼 수도 있으며 또한 이것이 다른 수확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아프리카의 로리타란 소녀처럼 비록 피부는 검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그리고 오관이 정교하기에 대뜸 18만 명에 달하는 팬을 가지는 <흑진주> 즉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흑인 미녀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한테 보이는 로리타는 용모가 아주 출중한 소녀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쵸콜렛 판>의 <바비소녀>로,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녀한테 잡지 표지의 모델로 시험해 보라고 건의하기도 한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흑인은 흔히 기시를 받고 있으며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로리타만은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검은 색 피부를 가진 것으로 하여 오히려 긍지감과 자호감을 갖고 있다. 로리타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후 그녀한테 차례지는 것은 경멸이나 조소인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네티즌들의 댓글은 모두 로리타에 대한 찬미였으며 그녀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네티즌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피부를 갖고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 로리타한테는 사람을 흡인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교한 오관과 완미한 몸매 등은 미녀 표준 잡기에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조건이다. 아울러 로리타는 아프리카 흑인한테는 그닥 흔치 않은 높다란 콧마루와 아시아인의 심미표준에도 잘 부합되는 조건도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이윽토록 그녀를 뜯어보노라면 역시 일종 아프리카 여인의 독특한 미감을 보아낼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기 때문이다. 편역 : 철민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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