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향수의 시인 정지용 선생이 쓴 시어들이 중국 연변에서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옥천군과 옥천문화원, 중국 연변작가협회가 시인 정지용이 남긴 시세계를 기리기 위해 17회 연변지용제를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일원에서 개최했다.
 
 -중국서 열린 지용제
 
이번 축제에는 옥천부군수를 단장으로 공무원과 주민 41명이 참여해 정지용이 지닌 문학세계를 되짚었고, 지용제에 앞서 시인 정지용을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연변 지용제 방문단은 연길, 돈화, 백두산, 훈춘 등을 방문하고 선인들의 발자취를 흠뻑 느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예술실천극장에서 열린 연변 지용문학상 시상식에는 김일량 시인(56·중국 안도현)의 시 '가을밤'이 선정됐다. 연변 지용백일장에는 훈춘시의 훈춘 제2고급중학교 학생 300여명이 참가해 저학년부에 '가을'과 '친구', 고학년부에 '밤(夜)'과 '시계'가 시제로 주어져 대상에 '돌아오지 않는 가을'로 조진혜 양(고 1) 등 40명의 학생들이 선정됐다. 
 
마지막으로 이동원·박인수의 향수 노래를 연변 가무단 소속 방성길·한선녀 씨의 노래로  시작으로 '그리운 금강산' 등을 부를 때는 축제에 참여한 옥천군 방문단 41명과 연변작가협회원, 동포 등이 박수치고 함께 부르며 한마음이 됐다. 연변지용제가 우리 한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느껴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됐으며, 현지 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연변 지용백일장은 청소년들에게 민족의 혼과 정지용 시인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됐다.
 
-동포들에게 자부심 심어줘
 
정지용은 한국의 대표적 서정 시인으로, 충북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다. 1923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유학 시절 유학생 잡지 학조에 시 '카페 프린스' 등을 발표했고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한 뒤 8·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던 구인회에 가담해 문학 공개강좌를 개최하고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청록파 시인들의 문학잡지 문장지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고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 과장이 됐다.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을 맡았다. 순수 모국어를 소재로 한 현대시의 거장 정 시인의 향기로운 시심과 옥천군민들의 사랑이 연변땅 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계기가 돼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한흥구 옥천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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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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