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허성운 칼럼] 호천개와 국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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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칼럼] 호천개와 국자개

기사입력 2019.11.0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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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을 열고 들어가면 살구꽃 잎이 보슬비처럼 흩날리는 살구평 마을이 보인다. 그 건너편에 그 옛날 화전 불길처럼 천지꽃이 붉게 피어나는 산 언저리에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추억같이 옛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네가 자리하여 있었다. 멀리 상소 늪데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 끼고 마을이  앉았다고 하여 늪 호자 냇물 천자를 붙여 호천개(湖川街)라고 불리어 졌다고 전해 내려온다.

19세기 80년대부터 조선과 접경지에 위치한 이곳에 청은 선후하여  초간국 무간국을 설치하면서 이주한 조선인 수가 배로 늘어난다. 관에서 발급되는 땅문서는 호천개에만 구할 수가 있었던 금계랍(金鷄蠟) 명약만큼 귀하였다.  커다란 봇짐을 지고 장터를 오가며 펼쳤던 베천지락은 꼬리를 길게 무는 행렬에 묻히고 쾌관(식당)의 시라지 장국 그릇엔 고단한 삶의 거친 숨소리가 땀과 눈물로 얼룩지고 섞여 시끌벅적한 역사를 만들어 갔다.

허나 사람이 사는 집이 세월이 지나면 무너지고 자취를 감추듯 오랜 시간의 퇴적은 땅과 하늘을 바꾸어 놓았다. 광서 25년(1899년) 훈춘부도통아문에서는 공문을 보내 호천개에 있는 장터를 국자개(局子街)로 이전하여 옮긴다.  그 후 20세기 20년대에 철길이 부설되고 거살이역(간이역)이 생기면서 회경개(怀庆街)란 이름을 바꾸면서 호천개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자개는 광서년간에 남강초간국을 설치하면서 이름이 붙여진다. 여기에서 국자개는 관청 사무를 보는 곳을 말하는데 최초에는 토지문서를 취급했던 관가가 자리한 장소를 뜻하였다. 오늘날에 와서 국자개를 국자가 혹은 국자거리라고 부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거리에 초점을 두지만 사실 국자개는 옛 관가가 있었던 곳과 그 둘레를 뜻한다. 한자 街의 표준음은 jie로 발음되나 중국 허다한 방언에서는gai 로 읽는다. 특히 중국 동북지방에서 上街는 shang gai로 말하는데 여기에서 길에 나선다는 뜻보다 장터 백화점이나 상점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는 의미가 담겨있다. 함경도 방언에는 구렁깨(구렁물 자리한 곳) 사무깨 (샘물 나는 곳)절당깨 (절이 있는 곳) 땅낭껄(당나무가 있는 곳 ) 이라는 사투리가 있는데 여기에서 깨 혹은 껄은 거리라는 의미보다 한 지점의 둘레를 아우르는 장소의 의미에 그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

국자개는 최초에 부르하퉁하와 연집강 합수목에 자리한 작은 고장이었지만 호천개 장터가 옮겨오면서 갖가지 상품과 농산품이 집중되고 장 보러 오는 사람들로 차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천개와 국자개 지명은 호적 토지문서 장터로 써진 땅이름만이 아니다. 1880-90년대 폭력이 난무하는 혹독한 세월 속에 힘없이 사는 백성들은 토지문서를 가진 땅임자의 지울군(노비)으로 지팡살이군으로 살다가 빚으로 처자를 팔아가며 혈혈단신 떠돌다 황야에 주검으로 내몰리는 한 많은 삶이 호천개 국자개 땅 곳곳에 묻혀있다.

재난과 가난이 먹장구름처럼 드리워 캄캄했던 밤길에 가진 것 하나 없이 빈주먹으로 꿈 하나를 보따리에 넣고 별빛처럼 깜빡이는 삶의 섬광(閃光)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연변 땅으로 퍼져 들어와 피와 땀과 눈물로 투박한 함경도 사람들의 그 특유의 끈질긴 노력으로 메마른 땅을 기름진 옥토로 가꾸어왔다. 오늘날 다시 되돌아보면 그때 선인들이 진창 같은 과거를 딛고 최악의 실패를 박차고 다시 일어섰던 기점이 바로 호천개와 국자개 땅이름이 불리어졌던 그 암흑기다.

호천개와 국자개 땅 이름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더는 이방인이 만든 낮선 외래어가 아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미래로 안고 가야 할 하나의 귀중한 지명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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