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4(토)
 


편집자의 말: 6월 3일, 중국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은 탐방기 <장백산하의 새 노래 편 ㅡ 길림성 연변주 탈빈공략 관찰(长白山下唱新篇——吉林延边州脱贫攻坚观察)>를 큰 편폭으로 할애하여 실었다.

 

연변 조선족의 <탈빈공략> - 이는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프로젝트였지만 잘 안되던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환경적으로 그닥 부유하지 못한 북한이나 러시아와 인접되어 있다. 이런 나라들과의 무역에서는 상품가치 등가교환에서만 이익을 볼 뿐이지 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상 조선족에 한해서만은 큰 중시를 돌리지 않는다고 해도 큰 과언이 아니었다. 조선족이 <당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들으니 말이다. 그제 날의 항일전쟁과 해방전쟁 시기에는 그 어느 민족에 비해도 공산당을 위해 목숨을 잘 바치는 민족이 조선족이었고 신 중국이 탄생한 후에도 <대약진>, <인민공사> 등 당의 총 노선을 가장 잘 관철한 민족이 조선족이었으며 <문화혁명> 시기에는 또 <계급투쟁>에 제일 앞장선 민족도 우리 조선족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나라에 공량을 바칠 때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그 임무를 초과 완성했었고 나라에서 <계획생육정책>을 제정하자 어느 여성이 임신했다고 하면 쫓아다니면서까지 낙태시키군 하던 우리 조선족이었다. 그래서 아주 영예롭게도 연변주는 거의 해마다 전국의 <모범자치주>로 되기도 했다. 그럼 아주 잘 살았는가? 글쎄다. 굶어죽었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번영하는 우리 연변>, <살기 좋은 조국 변강>이란 어구들이 기사를 통해, 노래를 통해 많이 나가기도 했다. 이렇게 <당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들으니 나라에서 특별히 달래줄 필요도 없었을 것임은 불 보듯 번연했다.


연변에 대한 보도기사ㅡ 이전에 우린 그걸 잘 믿지를 아니했다. 수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아무깨 기자가 뭘 좀 받아먹고 허풍을 떨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은 보도기사를 믿어서가 아니라 연변 농촌 사람들의 말에서 이전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농촌의 주택건설이며 도로건설이며가 확실히 잘 되어있고 국가에서 연변농촌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나마 기쁘고 좋은 일이며 앞으로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현재 연변 조선족들한테는 산재되어 있는 문제들이 많다. 인구의 마이너스 성장 문제, 이로 인한 학교들의 폐교되는 문제, 노총각들이 장가가지 못하는 문제와 조선족들이 개변해야 될 음주문화 문제 등으로 수두룩하다. 단꺼번에 다 해결할 사항들도 아니다.


그럼 오늘 신화통신의 탐방기를 실으면서 연변의 애로사항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더 좋은 앞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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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시 <진달래> 민속촌 전경ⓒ신화통신


아래의 글은 신화통신의 탐방기 <장백산하 새 노래편 ㅡ 길림성 연변주 탈빈공략 관찰>이다.

 

봄 파종철이 지나자 장백산하 해란강반에는 나뭇잎들이 푸르고 꽃들이 만개하면서 생기로 차 넘친다. 50여년 전, 연변에서 태어난 노래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红太阳照边疆)>는 전국인민들로 하여금 변강건설에 뛰어든 연변의 각민족 아들딸들의 앙양된 투지에서 감동을 받게 했다.

 

당의 18차 대표대회 이래 이곳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각민족 인민들은 지속적으로 분투하여 오늘날 모든 <빈곤현(贫困县)>들이 <빈곤모자>를 벗어던졌다.

 

전통 맛 여전하나 삶의 나날 날로 풍족해져


화룡시 동성진 동광촌은 포장이 된 마을길과 집집마다의 울안이 매우 깨끗했다. 조선족촌 박춘자 여성은 주방에서 작으마한 밥상을 들고 나왔다. 상위에는 배추김치, 된장과 소고기, 명태 등이 깨끗한 접시에 담겨져 있었다.


"우리의 생활은 아직도 된장을 떠날 수 없어요. 하지만 삶의 나날은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죠. 모든 것이 날로 풍족해지고 있는거죠."


박춘자 여성의 기억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의 노동과 생활은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그것은 현재 연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에서도 보아낼 수 있다. 가대기에 소를 메워 밭갈이를 하고 바지가랭이를 걷어 올리고 모내기를 하고 또한 낫을 들고 벼 가을을 하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야말로 이 땅에 첫 보습 날을 박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삶의 희노애락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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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민속촌에서 촌민들이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장면ⓒ신화통신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인구는 214만명, 이 중 조선족은 36.3%를 차지하며 길림성 2대 특별 빈곤지구 중 하나였다. 연변의 8개 현,시 중 4개가 국가  부축 빈곤현이었으며 2012년 말에는 빈곤 발생율이 29%에 달하였다.


연변의 변화는 빈곤부축사업의 항목의 겨냥조치로부터 추진되었다. 왕청현 조원 소목이산업원(桃源小木耳产业园)의 넓고 밝은 직장 내에 들어서면 로봇이 물건을 나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왕청현은 장백산 임구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흑목이버섯 천담현(黑木耳千担县)>이란 명칭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날에는 주로 수 작업식 생산으로 이뤄졌기에 생산량이 적고 질 보장이 잘 되지 않았기에 훌륭한 자원으로 훌륭한 수입을 바꾸어 오지 못하였다.

 

최근년래 왕청현에서는 종식표준화 시범기지(种植标准化示范基地)를 하나하나씩 건립, 도합 45개의 기지로 점차 국내 흑목이버섯 고가시장으로 만들었으며 목이버섯을 상품화하여 북경, 상해와 광주에까지 판매, 촌민들의 연 평균 수입이 3000-4000위안씩 증가되게 하였다. 이 외 용정시 동성용진 용성촌에서는 당지 용두기업으로부터 빈곤부축항목의 혜택으로 촌민 유경의가 사육하는 연변황소 고기가 호텔에 납품, 황소고기 매 킬로그램 당 150위안에 달했고 안도현 합신향에서는 <삼림황금>으로 불리는 상황버섯이 온도가 맞춤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 상황버섯은 킬로그램당 600위안 내지 700위안으로 그 비닐하우스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용정시 삼합진 천불지산(天佛指山)은 해마다 송이 따는 계절만 되면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많은 상인들이 찾아와 값은 크게 따지지 않고 적극 주문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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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시 남평진 유동촌의 조선족 주택들ⓒ신화통신

 

다시 화룡시 동성진 동광촌의 박춘자 여성한테로 돌아온다. 충분한 해빛을 받아 이슬 머금고 자라는 농가원의 야채들, 박춘자 여성은 문턱에 앉아 마당 내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매 한포기의 야채를 바라보면서 손가락 꼽으며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 했다.

 

50여년 간 노래소리 울리고 호매한 발걸음은 계속돼


연변 시인 한윤호가 노랫말을 만들고 연변적 작곡가 김봉호가 선율을 만든 <붉은해 변강을 비추네>란 노래는 50여 년간 불리워 왔다. 그리고 이 노래속의 <강물을 끌어올려 산에 올리네>란 놀라운 일은 오늘날 화룡시 숭선진 상천촌에서 현실로 되고 있었다. 당년에 이곳의 촌민들은 <사이펀(倒虹吸)> 원리를 이용하여 두만강의 물을 60미터 높이에 있는 산위에 끌어올려 그 곳을 비옥한 논으로 되게 했다.


상천촌 당지부서기 박동섭에 따르면 지금 상천촌의 입쌀은 브랜드로 되어 높은 가격으로 내지에 팔리고 있다. 하지만 이 촌에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자상거래, 된장 가공과 향촌관광업의 발전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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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석현진 합흠 농민전업 합작사 농민들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하는 장면ⓒ신화통신

 

화룡시 남평진 유동촌에 가보면 85후의 청년 김호가 대졸 후 주동적으로 귀농, 촌민들을 이끌고 오미자 재배, 민속관광지 건설 등을 추진, 촌민들을 위해 농구장과 게이트볼 경기장(门球场)을 앉혔으며 집집마다 수세식 변기를 갖춘 화장실을 갖추게 했고 노인들로 하여금 매일 점심 때마다 노인들한테 영양식을 무료로 제공하군 했다. 그리고 왕청현 천교령진 천평촌에서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작심한 촌 당지부서기 윤학의는 자기의 아내를 촌으로 <초대>했다. 부부가 손잡고 탈빈 목표를 이룩하자는 심산이었다…


변강의 한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지만 연변의 빈곤탈퇴 사업은 고군작전이 아니었다. 2016년 10월, 절강성의 녕파와 연변은 동서부 빈곤부축 협력을 갖기로 하고 22개 기업이 육속 연변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논공유(共享稻田)>란 명목으로 빈곤부축 항목을 제정, 연속 2년간 화룡시 1.4만 뙈기의 논에서 생산된 입쌀을 도맡아 인수하는 것으로 2000여명 빈곤인구의 수입증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9년 4월, 연변의 화룡시, 용정시와 도문시가 <빈곤모자>를 벗었고 올 4월에는 안도현과 왕청현이 <빈곤모자>를 벗으면서 연변의 모든 시현들이 빈곤탈퇴에 성공, 2016년 이래 전 주적으로 304개의 빈곤촌이 <빈곤행열>에서 나왔고 2.9만호, 4.9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나면서 연변의 각민족 인민들은 새로운 출발을 할 기점에 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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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진 유동촌 촌민이 집에서 벽에 장식품을 걸어놓는 장면ⓒ신화통신


피어난 꽃 특별히 붉고 <실크로드(丝路)> 천하로 통한다


빙설중에도 꽃은 피어나고 산비탈의 진달래는 더더욱 아름다워라.


이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조선족 인민들의 무한한 추구를 뜻한다.


용-포 고속도로(용정으로부터 돈화시 대포자하진에 이르는 고속도로)의 한 중간 대교 아래에는 백년 역사를 갖고 있는 조선족 마을 ㅡ <진달래> 민속촌이 있다. 현재 이 마을은 <연변속의 민속촌>보다는 <중국속의 민속촌>으로 더욱 통한다. 이 마을에서는 떡볶이, 냉면과 장고춤, 가야금 등 조선족 특색 관광상품으로 지난해만 해도 국내외 관광객 40여만 명을 유치했다. 이 마을의 촌민 이월순 여성은 원래의 주택을 개조해 민박을 차렸는데 이로부터 나오는 수입은 그야말로 쏠쏠했다.


“반평생 농사만 해오다가 오늘 와서 사장님(老板)으로 불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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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시 숭선진 상천촌 촌민이 밭에서 트랙터로 작업하고 있는 장면ⓒ신화통신

 

화룡시에는 일명 <진달래실크로드(金达莱丝路)>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있으며 실체의 가게에는 상황버섯, 꿀, 목이버섯 등을 진열, 모두 조선족 특색의 <포장>을 하였다. 예하면 입쌀은 월병처럼 조선족 특색의 선물세트로 포장했고 쿠션(抱枕), 벼짚 수공업품 등에도 조선족 특색의 글발이 아주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이는 북경에서 온 어느 한 작은 젊은 지원팀에서 모색해 낸 아이디어로 이들은 당지의 빈곤부축 특산으로 조선족 특색의 브랜드를 창출, 전자거래의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 판매했다. 이렇게 하찮고 고생스럽게만 보이던 것이 빈곤부축의 아름다운 산업과 창업의 낙원으로 되었던 것이다.


연변에는 <진달래 실크로드>만 있은 것이 아니었다. 지난 5월 15일, 220개의 컨터이너에 옥수수를 실은 <바다실크로드 1호>가 청도항에 입항했다. 이는 <훈춘-자르비노(러시아)-청도> 항선의 첫 항행으로 <훈춘-자르비노-주산> 항선이 개통된 후에 있은 또 한 갈래의 국내 무역화물이 국경을 벗어나 운송하는 항선이었다. <항구를 빌어 바다로 나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찍 개방발전의 <제한적 구역>에 있던 연변으로 놓고 볼 때 이는 대해로 향하는 새로운 발걸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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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장백산하 해란강반에 울려 퍼지는 '탈빈공략'의 새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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