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30(월)
 
 
■ 훈이
 
"중국에는 이런것이 있습니까"내가 한국에 가서 제일 많이 받아본 질문이다.

몇 십년 동안 막혔던 국문이 열려서 사회주의 나라란 그냥 머리에 뿔난 빨갱이들만 사는줄로 알았던 한국인들의 눈에 뿔나지 않은 우리들이 신비하기도 했으리라. 물론 정치인들의 잘못된 오도로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되지만, 한국인들은 유난히도 자아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인것 같다. 갑자기 그많은 교포들이 한국에 들이닥치니까 아마도 어려웠던 한국의 6~70년대를 상상했을까, 그냥 그렇게들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교포자신들이 알다싶이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지 않는가?

그냥 인간이 하도 많은 나라여서 우리같은 중노년들이 일자릴 찾기가 한국보다 어려우니까 고생만 꺼리지 않는다면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한국에가면 돈벌기 하나만은 참 좋더라.그런 생각에 몰려올 뿐인데…….

온양온천의 어떤 일식회집에서 일할 때다. 30대 초반의 홀써빙 김씨와 50대 초반의 주방장 채씨가 참이슬 소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자가 저래도 되나 싶었었다. 그래서 손님상에서 얼마 마시지 않고 남아 나오는 소주는 얼마든지 있는터에 주방장 언니하고 김씨는 일할때를 제외하고 거의 머리 맑은 날이 없이 지냈다. 술이라면 원쑤보다 더 싫어하는 난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들이 보기엔 그게 아닌듯, 어느 날 써빙 김씨가 나한테 묻는다.

"중국에 소주 있어요" 이런!? 천만 뜻밖의 질문이어서 난 조금 당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요것이 날 얼마나 무시하는 질문 인지는 알것 같았다. 중국에서 소주 구경도 못했으니 소주가 좋은줄 모르지, 그렇게..... 한심해서 조금 뜸을 들였다가 내가 되물었다.

"김씨는 제갈량이 누군지 알고 있소? 조조, 류비, 관운장. 장비는?"

"삼국지 인물들이 아닌가요?"

"그래 맞소, 중국에는 말이요 그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두강”이라구 하는 유명한 술이 있소, 그뿐이 아니구 모태주, 분주, 오량액, 북경얼궈터우, 북대창, 그렇게 다가 역사가 몇 천년에서 적어도 몇 백년되는 중국의 명주들을 다 세려면 아마두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껄! 술 좋아하는 김씨가 원래는 중국술을 마시면 더 짱일텐데." 아직 100년 역사도 되지 않는 참이슬을 세상 제일의 소주로 생각하는 김씨한테 역사가 깊은 명주들을 들이대니까 말문이 막히고 기분도 많이 나빴으리라. 그래서인가 김씨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그만둔다. 믿든가 말든가 그냥 그렇게 그녀의 입은 막은 셈인데 그후부터 김씨는 나를 유난히도 미워했었다. 중국언니 아는척을 많이 한다. 있는척도 한다. 잘난척도 한다. 그렇게 자꾸 가게 식구들 앞에서 나를 까주기가 일쑤고.. 주방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그것도 중국언니 사발깨는 소리라고 사장님께 일러바치기도 하고….그러니까 날 삼척으로 모는 판이었다. 한국사람들이 누구를 왕따 시킬때 필수로 하는 조건 즉 있는척, 아는척, 잘난척!

뭐 나는 별로 잘난척한게 아니고 그냥 있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도 그들의 생각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어처구니였던지 하도 어려워서 한국나와 버는 주제에 삼척까지…. 그쯤으로 여기는지 그렇다고 그들의 덜미를 일일이 낚아채서 중국에 데려다가 눈깔이 뒤집히게 만들수도 없고….

그럭저럭 힘든 그해 여름을 그 가게에서 보내고 난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경북의 어떤 두메에 모텔 청소아줌마로 갔었다.

사장님은 60대 초반의 지방 유지인데 전에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국가 유공자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세월에 어렵게 살아서 공부는 많이 못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사장님이 또 날 우습게 보아서 세탁기는 쓸 줄을 아느냐? 전기 밥솥은? 그러루한 이상한 질문을 자주 들이 댔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사장님께서 친구들과 함께 마을의 냇가에서 손가락 굵기의 작은 물고기를 두근정도 잡아 왔었다. 중국에서 하도 배불리 먹다가 간지라 나는 그게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데 그는 그것도 별미라고 밖에 있는 하우스에 술상을 차려놓고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한편으로는 큰돌 세 개 고여놓고 장작불 지피고 직경이 5-60센티되는 옛날 솥뚜껑을 그위에 엎어 놓고서 물고기를 굽는다. 물론 그 별찬에 하나밖에 없는 일꾼인 나도 불렀었는데 구운물고기새끼를 소금에 찍은 술안주에 밥이라 비린내 나서 먹기도 싫지만 그런대로 사모님과 함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구워주는 고기를 받아서 먹었다. 가뜩이나 작은 물고기가 솥뚜껑에 더러는 살이 달라 붙어서 뼈뿐이고 먹을게 없지만 그런대로 인사치례는 해야 할것 같아서 맛있다고 했더니 사장님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은듯이

“중국에서 이런걸 먹어 보았나?” 또 그런 한심한 질문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지 알고 있으라는 것도 되리라. 아 참으로 기분이 개떡 같았다. 사람을 알기는?!! 요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데서 저 버르장머리를 좀 고쳐는 놓아야 할텐데 싶어서 난 조금 궁리하다가 내 뱉았다.

“언제요? 구경두 못했는디, 쌀밥두 한국와서야 먹어봤니더!”

그말에 모두들 눈이 화등잔 같이 커지고 사장님은 원래 기다리던 답이라 의기양양해서 그것 봐라는 식으로 어깨까지 들썩이는데 내가 한마디 덧붙였다.

“중국에 있을 때는 그냥 흙만 파먹구 살다가 왔씸더!”

그 말에 모두들 제정신들이 들어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아이구 나 죽는다. 이모는 차-암 공부 많이 한 사람같아! 어쩌면 그렇게 우스개두 신통할까?!”

그말에 난 또 시침을 딱 떼고 한마디 더 했다. “공산국가두 사람사는 곳이구 우리두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 왔는데 우리 사장님은 저런 무식한 질문을 자주 합니다요. 그래서 화날때가 많습니다.” 그 말에 사장님의 얼굴과 목덜미는 물론 반 벗어진 대머리까지 댓바람에 시뻘건 돼지간 색깔이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아시다싶이 총명한 사람을 보고 멍청이 바보라고 조롱하면 그 사람이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롱을 한 사람과의 친근 정도를 나타내서 기분 좋아하지만 진짜 바보를 바보라고 하면 큰일 난다. 그리고 바람둥이 아닌 사람을 바람둥이라고 하면 또 그냥 로맨틱하다 낭만적이다 뭐 그쯤으로 해석이 되어서 기분 나쁜줄을 모르지만 진짜 바람둥이를 바람둥이라고 하면, 원래 남한테 알리지 못할 구린 구석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터에 어떻겠는가? 그게 그러니까 그런 도리라 하겠다. 가방끈은 짧지만 사장님은 어찌하다 보니 베트남전에서 용케 목숨을 부지해서 돌아온고로 지방유지로 뽐내면서 유식한 냄새를 많이 풍기고 살지만, 사실은 무식쟁이라 무식하다는 말 자체를 제일로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그 많은 친구들 앞에서 귀한 물고기 새끼까지 구워 먹여 놨더니 은혜도 모르고 무식하다고 개망신을 시켰으니 어땠겠는가?

하지만 그 사장님은 사람이 좋은 탓이였던지 아니면 나 스스로의 감각대로 내가 누구보다 일을 더 잘해서였던지 난 잘리울 각오까지 단단히 하고 그날밤 행장을 다 꾸려놓고 기다리고 있었건만 그일 때문에 날 자르지는 않았고 그 후부터는 또 그런 한심한 질문을 절대로 못하게 완전히 버릇이 고쳐졌었다.

사실 우리 교포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내에서 그렇게 못 사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한국에는 집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저마다 아파트 한채씩은 기본이요 좀 더 잘사는 이들은 아파트가 몇 개씩 되지 않는가? 게다가 먹는 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먹고 있는게 우리다.

지난해 귀국해서 나는 참말로 그걸 많이 느꼈었다. 아! 먹을것이 너무 흔해서 쓰레기 취급을 하는구나. 그렇게…..

가을이 돌아오니 조선족지구에 배추들이 시장마다 들어와서 쌓이는데 한근에 40~60전, 데댓근 되는 배추 한 포기에 기껏해서 2~3원(한국돈으로 4~500원)정도다, 게다가 그 아까운 겉잎들을 하얀 속이 나올때까지 발가서는 배추겉잎이 산더미를 이룬다. 한국 같으면 누런 떡잎까지 다단으로 묶어서 한단에 5000원씩 파는데 중국에선 그것이 가을철이면 엄청난 골칫거리요 그래서 누군가 혹시 그 겉잎들 속에서 부드럽고 좋은것들을 골라 시래기감으로 챙기려고하면 장사꾼들이 커다란 주머니까지 갖다가 안겨준다. 하지만 그렇게 챙기는게 1%도 안된다. 그걸 보니까 난 또 귀국하기전해에 있었던 한국의 배추대란이 생각났다. 태풍에 배추농사가 쫄닥해서 배추 한 포기에 만여원! 중국돈으로 6~7십 원 심지어는 백여원씩! 나중에6000원짜리 중국 배추를 들여다가 한사람당 세포기씩만 파는데 어두운 새벽부터 마트에 긴 줄을 서서 그 배추 세 포기를 사겠다고 부스너털면서 기다리다가 그것마저 동이나서 난리들을 했고……

하지만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중국상품은 인기가 없다. 중국에선 저질 상품을 그냥 가짜라고 말하지만, 한국에선 중국산이라고 한다. 그게 오히려 가짜나 짝퉁이라 하기보다 더 저질 상품이라는 뜻과 가깝게 통하니까. 물론 그만치 얌치까진 일부 중국의 장사치들이 저질상품생산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흐려놓았으니 한국인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모두가 중국산을 싫어하는데 그래도 100%가 일률로 다 나쁜건 아니건만 어떤 이들은 그냥 덮어놓고 중국산이라면 부정부터 한다.

내가 불광 어느 모텔에서 일할땐데 밥하는 언니가 또 그런 사람이었다.

“난 도 중국산을 엄청시레 싫어한다고마.”그렇게 늘 우리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그 언니는 배도 꼭 한국산으로만 먹는데 비싸니까 하나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조금씩 쪼개서는 며칠씩을 먹으면서도 늘 그 소리다.

그래서 내가 과일같은 건 중국산이 싸고도 괜찮을건데 했더니 한국은 일년 사계절 기후가 뚜렷해서 한국산 과일이 엄쳉시레 더 맛있다는가?

그 말에 내가 중국은 하루 동안에도 이곳 저곳에서 사계절 기후가 뚜렷이 다 나타나는 큰 나라이고 지금은 그런 곳들에서 산출되는 과일들이 바로바로 비행기로 운송되니까 사계절 내내 햇과일을 먹을수가 있다고 했더니 역시 나를 “삼척”을 하는 미운 존재로 보는가 그 표정이 몹시도 시큰둥했었다.

배 한 개에 사오천원! 그게 어디 궁한 백성이 사먹을 과일 가격인가 말이다. 그 돈으로 내가 출국하기전의 시세로 한다면 중국에선 배 한 박스를 사고도 남을 것인데…..

아 한국가서 8년 세월에 나는 그래서 과일 하나 맘놓고 못 사 먹었다. 돈은 번다지만 그것 역시 중국에서는 큰돈이나 한국에서 먹고 싶고 입고 싶고 놀고 싶은걸 다 해결한다면 기본생활비에 해당하니깐 말이다.

그러다가 귀국해보니 아 중국은 참말로 먹을것이 너무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귀하게 취급을 안 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뭐든 없어지고 모자라고 그래야 귀한 줄을 아는데 중국은 땅덩이가 너무커서 혹시 어느 지방에 흉년이 든 대도 풍년든 곳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먹을것이 귀해질 일은 절대로 없는 나라이다,

나도 출국하기전엔 그래서 중국이 이리도 풍성하고 넉넉한 줄을 잘 모르고 살았었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런거려니 그랬었다. 하지만 한국가서 8년을 지내고 나니까 완전히 눈이 뒤집힌 것이다.

먹을것이 흔하고 싸니까 그냥 식당놀이만 하지 않고 제집에서 밥지어 알뜰히 먹으면 우리 부부의 한 달 식비가 한국돈으로 십만 원, 중국돈으로 5,6백 원 정도면 엎어 씌울 수 있도록 족하다. 우리 부부의 월급의 10%도 안되는 적은 그 돈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물고기 계란과 여러 가지 채소들도 골고루 다 먹을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던가?

그래서 난 지금 아주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 악을 쓰고 벌지 않아도 이리 편하게 배불리 먹고 잘살수 있는터에 왜 손이 발이 되게 그리도 미련했던고! 그래서 돈은커녕 병만 가득 지니고 귀국한 나다. 얼마나 더 잘먹고 더 잘 살겠다고 그리 악을 썼던지 스스로도 미련하게 느껴지고 이해가 안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바다는 메울 수가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다 채울수가 없다고 했으리라. 그렇게 먹지도 입지도 쉬지도 않고 악을 쓰고 벌었으나 돈은 또 번것만큼 쓸 일이 그냥 있는데다 바라보는 인간들도 많아서 영원히 손에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난 또다시 빈털털이로 되었지만 그냥 퇴직금을 타서 먹고 살기가 구차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먹을것이 싸고도 흔한 중국에서 산다는 것이 참말로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우리 중국에 먹을것이 이렇게 지천인줄 모르는 한국인들의 그 어처구니 없는 질문들이 생각날 때마다 오히려 그들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이런 구경을 못해 봤으니까 자기들이 최고로 잘 사는줄 아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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