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진 아웅산 테러범…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반세기가 넘도록 이뤄온 한반도남북의 대치상태과정에서 수천수만명의 비밀요원들이 희생품으로 되어 쌍방 공중의 시야에서 “말소”되었다. 이 중에는 1983년 버마(지금의 먄마) 양곤 폭파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북한 공민 강민철도 있다.
강민철은 워낙 북한에서 가장 치명적인 특공대원이 한명이었다. 1983년 10월 9일, 강민철은 다른 2명의 동료와 함께 버마 양곤 박물관 앞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당시 이 곳을 방문하는 한국 전두환 대통령을 폭사시키려고 시도했다. 헌데 당시 전두환 일행이 이 곳에 늦게 도착했기에 폭탄은 목표물을 폭사시키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당시 17명의 한국관원(4명의 내각부장)이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번의 행동은 강민철로 하여금 그의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하였다. 그의 조국인 북한은 그번의 사건은 북한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한국측의 꾸며낸 자작극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버마감옥에 갇혀있는 강민철을 포함한 북한의 특공대원들에 대해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2008년 강민철은 감옥에서 병사, 당시 53세였다. 수감생활을 하는 25년 사이 그의 고향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그를 방문하러 오지 않았었다.
아웅산 폭발사건 30여년 후인 오늘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뜻밖으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최근 한국 국정원 전 부원장이던 나종일이 강민철에 관한 책 한권을 출판, 제목은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였다.
작자는 비록 구두상에서는 강민철을 “잔폭한 죄범”으로 불렀으나 책에서는 어느 정도 그 인간세상에서 지워진 사람의 “고혼”에 안위를 주려는 시도가 보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남북한 쌍방 냉전시기에 훈련받은 희생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작자는 남북당국의 모든 행위를 규탄하면서 임무의 실패와 함께 희생품으로 되어야 하는 특공대원들의 존재와 이를 이들 가족들마저 알 권리가 없게 하는 실정을 폭로하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결속된 후 수십년간 남북한간의 소규모 충돌은 끊임없었다. 쌍방은 서로 스파일과 자객을 상대측에 파견, 1996년 북한의 잠수함이 한국 동해안에서 좌초, 잠수함에는 당시 26명의 인원이 타고 있었는데 후에 한국측에서는 11명의 시체가 산꼭대기에서 서로 뭉쳐있는 것을 발견, 이들의 머리에는 모두 총탄자국이 있었다.
1998년 북한의 또 다른 잠수함 한척이 동일한 해역에서 좌초, 후에 이를 발견한 한국관원들이 잠수함 뚜껑을 열자 9명 사내들의 시체가 있었으며 모두 머리와 흉부 등에 총탄자국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한국측 관원들은 이들 북한인원들이 포로가 되기 싫어 스스로 자결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공대원을 훈련시키고 파견하는 것은 북한뿐이 아니었다. 냉전시기 약 6200명에 달하는 한국 특공대원들도 북한지역에 침투되었으나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 최근 이들 실종자들의 동료와 친인척들의 오랜 신소끝에 서울측은 아주 적은 액수의 보상금을 이런 희생자 가족에 전했으나 그 때까자 부분적 가족은 자기의 남편이나 아들 또는 아버지가 일찍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종일의 저서는 강민철에 대한 심문기록 및 그의 감방친구 및 감옥장에 대한 탐방 등에 기초하여 집필한 것이었다. 이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강민철이 감옥에서 복역할 때 그한테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이었다.
한편 강민철 등이 폭발사건을 저지를 당시 이들의 주요 상대자는 당시 한국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었다. 헌데 당시 버마 외교부장 일행이 전두환이 투숙한 호텔에서 전두환을 영접하느라고 몇분간 지체하였기에 중대사고를 피면할 수 있었으며 폭탄이 폭발당시 전두환이 탔던 차는 1마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일정 거리에서 폭발소리를 들은 강민철과 기타 2명의 특공대원들인 김진수와 신기철은 즉시 양곤강쪽으로 뛰어갔다. 그 쪽에는 워낙 쾌속정 한척이 대기하고 있다가 이들을 태운 뒤 먼 곳에 있는 북한화물선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나종일은 당시 버마정부의 서류 및 기타 정보들을 통해 당시의 정경을 묘사하였다. 당시 이들은 쾌속정이 없자 부득불 양곤강 하류쪽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북한 화물선마저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이들은 추격해 온 버마의 군경들과 조우, 총격전 중에서 신기철은 총탄에 맞아 죽고 이어 김진수와 강민철은 이외로 터진 수류탄에 의해 중상을 입고 포로되었다. 포로당시 김진수는 팔 하나와 한쪽 눈을 잃었고 강민철 역시 한쪽 팔을 잃었다.
한편 포로가 된 뒤 김진수는 그 어떤 함구무언으로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았기에 인차 처형되었고 강민철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기에 사형유예집행에 언도되었다.
기나긴 철창생활속에서 강민철은 버마어를 배웠고 또한 늦게나마 기독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저자 나종일이 강민철의 정황을 수입한 것은 아주 우연적이었다. 1998년 그가 양곤을 방문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읽던 중 한건의 정보를 장악, 그것인즉 강민철이 복역시 그 어떤 방문객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극도로 실망했다. 이러자 나종일은 충동적으로 당시 버마 정보부문의 책임자를 설복, 그 책임자가 바로 후에 총리로 된 킨 뉸 장군이었다.
킨 뉸 장군의 도움으로 나종일은 감방으로 찾아가 강민철과 대면, 그한테 먹을 것도 갖다 주고 남북한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당시 강민철은 만약 석방되면 한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2004년 킨 뉸 장군이 총리직에서 해임된 후 이 한국외교관의 강민철 탐방도 중단되었다. 나종일은 줄곧 한국정부가 나서서 강민철로 하여금 자유를 찾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으나 당시 서울당국은 평양과의 화해를 목적으로 “해빛정책”을 실행하면서 이를 그닥 탐탁해하지 않았다. 당시 강민철이 감옥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남과 북 모두가 바라던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이는 나종일의 지적마따나 북한이 부인하고 한국이 홀시한 바로 그것이었다.
병사하기 몇년전부터 강민철은 매우 소침한 상태었다 한다. 그는 늘 자기의 생명위험을 느끼군 한 것이었다. 특히 2007년 후 양곤 폭파사거으로 중단되었던 북한과 버마의 외교관계가 회복되자 그는 늘 자신의 음식물에 독약이 들어있지 않나를 의심하면서 감옥장과 감방친구들한테 자기는 석방되더라도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2008년 강민철이 간암으로 죽었지만 나종일은 아주 오랫동안 먄바관원들한테 강민철의 행방을 수소문, 모두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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