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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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빈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로 위촉
    [동포투데이] 현빈이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영수)는 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프레스센터에서 위촉식을 가졌다.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는 역대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하는 이번 대회를,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인 모두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한류스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현빈을 홍보대사로 위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영수 AG조직위원장은 "현빈의 평소 모범적인 이미지와 폭넓은 아시아권에서의 인기를 통해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아시아 전역으로 널리 알려져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자리에서 현빈은 "지난 해병대 자원입대시 서해 최북단인 인천시 백령도에서 첫 복무를 시작하면서 인천과 인연이 된 계기로 개최도시 인천의 축제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싶던 차에 이렇게 인천아시안게임의 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영광이며 국내외 팬들에게 아시안게임과 개최도시 인천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이날 위촉식에서 현빈은 온라인 성화봉송 행사인 스마트 토치 릴레이 행사와 함께 인천AG 기념주화 발행을 축하하면서 기념주화 전화종 세트 1호 구매 예약을 신청하였다. 인천AG 기념주화는 디자인과 소장가치로써 최고인 이번 기념주화에 대하여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 스포츠
    2014-07-05
  •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11)
    ■ 김철균 아버지가 감추고 있었던 비밀 “이 애비는 너 엄마한테 잘해주지 못했다. 미안한 일도 많이 했다. 그러니 후에 엄마한테 잘해드려라. 이 애비의 부탁이란다…” 어렸을 때 나는 이러한 아버지의 말씀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 그냥 술주정을 부리고 밥상을 뒤엎고 하여 미안하게 생각하는줄로만 알았었다. 헌데 크면서 타인들한테서 듣고 또한 지난 세기 80연대에 조선으로부터 누나라는 분까지 찾아오면서 다시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노라니 어디 뭔가 짚이는데가 있었다. 일찍 1950년 가을, 교하에 있는 조선인민군 제2야전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버지의 상처는 너무 중한 건 아니었으나 얼마든지 퇴역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퇴역은커녕 상처가 낫자마자 재차 탄원해 전선으로 나갔다 한다. 지어 교하에 입원해있는 동안 처자가 있는 집으로 와보지도 않았고 편지 한통 쓰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맘에 없는 엄마와 사는 것이 전선으로 나가기보다도 싫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전선으로 다시 나간 아버지었건만 그 뒤 많은 전투도 겪었으련만 용케도 아버지의 몸은 번마다 적탄을 피해갔으며 1953년 7월 27일 정전이 될 때까지 크게 부상도 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헌데 전쟁이 끝났건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정전 이듬해엔가 나의 넷째할아버지와 다섯째할아버지가 조선으로 나가 아버지를 붙잡아 끌고 왔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가 조선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고 또한 노인네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끌고 왔는지는 알 바가 없다. 노인네들이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 또한 함구무언하니 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다투거나 싸울적마다 어머니는 “왜 조선에서 계속 살거지 돌아왔는가”, “당신은 몸만 집에 있지 속은 조선에 가있다”고 하면서 하소연하군 했었다. 하다면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보면 아버지의 생각도 그렇게 되리라는 짐작이다. 당시 조선상황을 놓고 보면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은지라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터라 다리 한쪽이 없는 잔페군인도 새파란 처녀한테 장가를 갈 수 있었다고 하니 가뜩이나 집으로 돌아오기 싫어하는 아버지로 놓고 보면 이른바 “봉건식 혼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한 “자유혼인”을 지킬 수는 없었다. “봉건통”이라고 할 수 있는 넷째할아버지와 다섯째 할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어머니곁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항상 조선의 그 여자분한테 있었을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 자꾸 술마시면 주정하고 또 어머니한테 트집을 잡군 했는가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며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저주하기 앞서 아버지가 봉건혼인의 희생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아 생기게 된다. 또한 아버지 역시 나이가 썩 많아진 뒤에는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고 나한테 어머니에 대해 많이 말해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 양심적 가책도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에 두고온 그 여자분한테도 양심적 가책을 느끼긴 마찬가지었을게 아닐까? 같은 남자로서, 또한 아들로서 나 역시 당시 아버지의 심정에 대해 헤아려 보게 되기도 한다. 말그대로 아버지를 나쁘다고 할 수 없는가 하면 어머니를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에 있었다는 그 여자분을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특수한 시대에 생겨난 특수한 혼인비극이라고 해야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다음기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7-05
  • “철의 감독” 이장수 中 프로축구 복귀
    “철의 감독” 이장수가 재차 중국 프로축구무대로 복귀하게 됐다. 일전 텐센트넷에 따르면 이장수는 중국프로축구 갑급리그(2부리그)에 속한 청두톈청(成都天诚)과 계약을 맺고 곧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텐센트넷은 “양측은 최후 협상에서 이미 의견이 일치된 상황”이라며 “이같은 소식은 클럽의 공식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청두톈청은 지난 1996년 창단된 중국 프로축구 2부리그 팀으로 2014년 현재 승점 8점으로 리그 꼴찌를 기록해 3부리그 강등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장수 감독은 부임 후 리그잔류를 목표로 팀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중국에서 “철의 감독”으로 유명한 축구인 이장수는 충칭룽싱(重庆隆鑫),칭다오중넝(青岛中能), 베이징궈안(北京国安), 광저우헝다(广州恒大) 등 중국 프로축구팀을 조련해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등으로 이끌어 중국 프로축구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 스포츠
    2014-07-05
  • 러시아 전문가 : 중국의 관심, 이제는 한국이다
    [동포투데이/러시아소리방송] 7월 3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틀간의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 안전강화 문제가 중국 시진핑 주석과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회담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이에 앞서 전날, 중국 외교부는 조선(북한)이 시진핑의 한국방문을 의식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추측을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새로운 외교술이 전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태지역에서의 중국과 한국의 협력관계와 관련해 알렉산드르 바론초프 러시아 전문가는 일본의 역할이 한중협력을 굳히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한관계에 있어 일본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일본은 역사, 영토 문제로 중국, 한국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다. 특히, 최근 일본정부가 ‘해외 군사력 적용’ 법안을 채택한 상황에서 중국과 한국은 한 마음으로 일본을 배격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과 중국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주기적으로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북한이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정부를 향한 중국의 성명이 전체적으로 비난조라고 인정한다면서 북한은 전보다 더 비합리적인 행보를 단행하고 있으며 때론 중국 지도부에 대한 비난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최근 해외 정보원들의 조선(북한) 노동당 관련 기밀문서들에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실행되는 미사일 발사, 핵실험, 군사적 성명 등은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에 대한 첫 방문을 북한이 아닌 한국으로 한 것은 이례적이고 상상외의 일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과 관련해 중국 외교관들은 한국과의 관계가 북한과의 협상수단 이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확실히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북한과의 형제애보다는 세계정세상 전략전술을 우선시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안전문제에 있어 한국과 중국은 상당 부분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다. 중국의 정치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측과 모두 균형을 맞추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중국 언론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이유 중에는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하며 보다 더 미국에 붙고 있는 지역들에 과시하는 점도 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아태지역 미국동맹국들인 한국과 일본간 쐐기를 박으려는 속셈도 있다. 일본과의 냉전을 공언하며 중국 시진핑 주석은 한국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정부 역시 같은 심정이다. 한국정부는 전과 같이 중국만이 북한 김정은 제 1위원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며 중국과의 협력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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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중동·아프리카
    2014-07-04
  • 해외견문시리즈(12)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 김철균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항구란 항상 마도로스들한테 로맨틱한 꿈을 안겨주는 곳이다. 그 수많은 “배놈”과 항구의 아가씨들한테 사랑을 주고 짜릿한 쾌감과 더불어 눈물도 주었던 코리아의 제일항 - 부산항구. 여기까지 쓰고보니 여태껏 나는 본선의 아무개가 어느 아가씨와 어떻게 여차여차 했소. 어떻게 징글스러웠소 하며 남들의 로맨스만을 언급했지 나 자신의 사생활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말해서 나 역시 칠정육욕이 있는 인간이며 2년여간 “배놈”으로 있으면서 여자를 점해보지 못했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하다면 30살 푼한 한창 나이에 그 황홀한 세계에서 나 역시 무슨 용빼는 수가 있단 말인가?! 부산항에 입항한 뒤 나는 오랜간만에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것은 본선의 대부분 선원들이 부산출신이기에 부산입항 후 집으로부터 통근하여 밥먹는 선원이 몇 명 안되는데다 또한 회사에서도 3명의 아줌마를 본선에 배치하여 전문 주방일과 청소, 세탁 등을 도맡아주었기에 나는 모든 것에 일절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창의 화물을 하역한 뒤 도크장(선박정비장, 태풍을 만났을 때 부분적으로 크게 파손됐음)에 오른다기에 나는 오래간만에 팔자가 늘어진 셈이었다. 나는 낮이고 밤이고 그 동안 미처 쓰지 못한 일기를 정리하는 한편 “여명의 눈동자”, “장군의 아들” 등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생활이 허전해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는 것만으로는 달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필경은 사내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때 이미 감정파열로 아내와 이혼한 몸, 고향도 아닌 타관향에서 여자를 찾는 것이 딱히 양심에 걸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라도 고향땅으로 휴가를 맡고 갔던 3타수가 불현듯 귀선했다. 덜먹총각인 그가 집에 가봤자 부모외에는 별로 반가와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 부모 역시 하루밤 자고나자 “사내란 녀석이 배만 타고 장가는 안 들려느냐”하며 책망을 하기 시작, 참 누구든 장가들기 싫어 배타러가는가보지. 부모를 따라 농사를 지어봤자 먹을 알이 별반 없고 또한 아가씨들이라고는 쌀독의 뉘만큼도 없는 고향에서 장가는 어떻게 간단 말인가? 그래서 배타고 돈벌어 부산이나 여수 같은 큰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장가를 들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일이 뜻대로 잘되지 않아 오늘까지 끌어왔던 터였다. 그럼에도 무턱대고 장가만 들라는 부모님, 그래서 3타수 김종래씨는 만류하는 부모님을 뿌리치고 귀선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와 그는 술상을 차려놓고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김형, 나 한국서 살지만 장가들어 자식까지 본 형이 한참 부럽능기라. 이 시팔 불알차고 장가도 못가는 이눔의 한국, 선진국은 무슨눔의 선진국인고?” “그런 말 말어. 우리 연변도 마찬가진거야. 인젠 그 곳도 얼굴이 반반한 계집애들은 다 도시로 몰켜들고 머슴애들은 장가들지 못해 지랄염병할 때가 된거라구.” “김형, 나한테 연변아가씨 한명 잡아서 붙여줘, 나 그럼 오늘밤 완월동 가서 술 한잔 사고 형을 즐겁게 해주는기라.” 그날 밤 나와 3타수는 무슨 충동에서인지 약속이나 한듯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름난 완월동으로 향했다. 얼마 후 우리가 택시에서 내리자 미리 대기라도 하고 있는듯 요염하게 치장한 아가씨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아저씨, 잠간 들려 놀다가세요. 즐겁게 해줄게요.” “아저씬 아마 이런 곳에 처음인가 보죠? 어서 오세요. 화끈하게 해드릴께요.” 이렇게 아가씨들이 어깨에 매여달렸건만 김종래씨는 홱홱 뿌리치며 나의 손목을 이끌고 갈 길만을 재촉했다. 아마 단골로 다니던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미구하여 우리가 들어선곳은 “대마도”란 네온싸인이 반짝이는 어느 스탠드바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홀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음악이 흘렀는데 그것인즉 마도로스 - “배놈”의 노래였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 술취한 마도로스 항구가 무정터라 닻줄을 올리며는 기적이 울고 뱃머리 돌리며는 사랑이 운다 아~아~ 항구의 아가씨 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 … 아니나 다를가 홀안을 둘러보니 저마다 아가씨 한명씩 끼고서 술처먹는이들로는 필리핀, 파키스탄, 구소련 등 나라에서 온듯한 사내들로서 그들 역시 “배놈”들임에 틀림없었다. 이윽하여 김종래씨를 알아보고 히프를 내휘두르며 다가오는 40대 초반으로 돼보이는 마담. “아이유, 총각 왔네그려, 그래 언제왔어? 집에는 가보구? 총각이 이런 곳 다니면 망친당께. 왜 자꾸 오능고?” “누님, 무슨 말이 이리 많은고? 빨랑빨랑 술상 차리고 이쁜애들 둬명 붙혀달라잉께. 이 형씨는 중국서 왔는데 우리 동포잉기라 오늘 즐겁게 해주라잉께!” “뭐?! 중국서 온 아저씨. 그렁께 이리두 순지해보이는기라. 참 이런데 물젖으면 안된다잉께.” 그러면서도 “미쓰리! 미쓰신!”하고 부르며 어딘가 사라지는 마담. 보아하니 김종래씨와 마담사이는 한 고향사람 아니면 아주 잘 아는 사이인듯 싶었다. 뒤이어 마담이 아가씨 2명 데려오자 둘은 각각 나와 김종래씨옆에 나누어 앉았다. 미쓰리는 내옆에 앉고 미쓰신은 김종래씨옆에 앉고 헌데 종래씨한테서 들을라니 더 이쁘게 생긴 미쓰신이 나의 파트너라나? 서로 마주앉으면 구애없이 얼굴을 쳐다보기도 좋고 또한 서로 술잔을 마주치는데도 쉽가는데 일리는 있는 것 같았다. 큰 홀에서 술상을 파하자 우리는 서로 남녀 한쌍씩 짝을 지어 3층에 있는 아가씨들의 방으로 올라갔다. 미쓰신의 방은 전기온돌방이었는데 이불궤, 옷궤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살림집 방안을 방불케 했다. 미쓰신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와락와락 벗고는 이불우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거동은 몸을 파는 남미나 동남아의 창여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저씨, 옷 벗지 않고 뭘해요? 자, 어서요! 나 억수로 피곤한데요.” 하긴 서로 돈으로 여자몸을 팔고 사는 이런 교역장소에서 무슨 말과 가동작이 필요하랴. 그저 덮치고 받아주면 되는 판인데. 하지만 남미나 동남아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이 곳 한국에서는 왜 서로 얘기라도 나눌 수 없겠는가. 나는 미쓰신과 그렇게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미쓰신, 급해말고 우리 술 한잔 더 나누고 볼까?” “뭐 할 말이 있다고 그래요? 아저씬 여길 왜 왔어요? 너무 착한체 하지 마세요. 뱃놈들은 다 그 따위들인걸요.” “아니 미쓰신 날 뱃놈들과 동일시하면 안되는거야 하긴 뱃놈무리에 가담했다만 나 금방 배에 승선한 중국조선족이라구.” “뭐 중국교포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앉는 미쓰신. 그녀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는 아래층 카운터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가 중국조선족이라고 나를 내쫓아달라는 영을 내릴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술상주문이었다. 미구하여 뽀이가 간단한 술상을 차려오자 우리는 또 술상에 마주앉았다. 술을 마시는 한편 내가 본인이 신분과 살아온 경력 그리고 “뱃놈”으로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 역시 “그러게 아까 남보다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라고는 자기의 약력에 대해 소개했는데 그것을 간추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그녀 미쓰신은 경남 마산 부근의 어느 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고래잡는 배와 이 업종에 출중한 재간을 갖고 있는 아버지의 신근한 노동으로 미쓰신의 동년은 매우 행복하고 세상에 부러움이 없었다. 헌데 후에 정부에서 고래잡이에 대한 금지령을 내린데서 아버지는 고래잡이배를 아주 헐값으로 처리하고는 조기를 잡는 어선의 말단선원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로 나간 아버지는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를 아니했다. 태풍에 배가 뒤집어져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뒤 살림은 점점 쪼들려갔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엄마는 매일 부두에 나가 물고기를 되넘겨 해물시장에서 팔았지만 그날 그날 입에 풀칠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차 동생이 부산 영도에 있는 해양대학에 붙게 됐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 출세시켜야 하는 법. 그러다가 미쓰신이 생각해낸 것은 여자가 힘들지 않고도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비결은 이쁜 얼굴과 싱싱한 몸뚱아리가 밑천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돈벌어 동생의 뒤를 대주기 위해 엄마를 속이고 나선 것이 바로 이 직업창녀로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몸팔아 동생한테 뒤바라지를 해주었는데 어느 날 동생이 글쎄 누나가 준 돈으로 이 완월동거리에 나타날 줄이야. 미쓰신은 너무도 분하고 억울해서 그날로 엄마한테 달려가 모든 비밀을 고해바쳤다. 그러자 엄마는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더니”하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제야 엄마는 딸한테 아버지의 비밀까지 털어놓았는데 이전에 그토록 존경이 가던 아버지마저 돈을 벌면 하루 건너 여자를 찾아가는 늑대었을줄이야. 아, 세상의 사내란 몽땅 이런 따위들이었구나. 그때로부터 미쓰신은 결혼같은건 아예 포기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사내들한테서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우려내겠는가에 대해서만 신경을 써왔다… “아저씨가 중국교포이고 또한 이런 곳에 처음 왔다고 하니 말해주네만 이런 곳에 다닐바가 못돼요. 제가 사내들을 곱게 보지 않을듯이 이곳의 아가씨들 모두가 그래요. 여긴 사랑이란 있을 수 없어요.” 나중에 미쓰신은 나한테만은 화대를 받지 않을테니 맘껏 즐기라고 했다. 참 나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지? 또한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끝내 그녀를 점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와 너무나도 일찍 운명에 순종하여 생소한 남자한테 시집가던 누나의 얼굴이 서로 교체되면서 끝내 마지막 양심의 방선을 허물수가 없었다. 그러자 자기를 묵묵히 보며 고민하고 있는 나의 무릎위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미쓰신. “세상에 자기같은 아저씨도 있군요. 사랑해 아저씨. 우리 결혼할 수 없을가요?” 이에 내가 억지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흔들자 그녀는 “그래 그래 집에 사모님 있을테죠? 참 그 사모님 부러워요.” 그러는 사이 7월의 새벽하늘은 일찍이도 밝아왔다. 아침식사로 해장국으로 요기를 끝내자 미쓰신은 기어코 나를 부두까지 바래다주겠다면서 택시를 세내는 것이었다. 헌테 택시는 부두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해운대쪽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시원한 바다공기를 마시며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택시에 앉아 남포동을 걸쳐 부두로 향했다. 그 사이 핸들을 잡은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만을 주시하면 차를 몰았다. 허나 나는 그녀가 눈물을 떨군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두에서 나를 내려놓은 미쓰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르릉 하며 차를 몰고 앞으로 대달렸다. 그 사이 갑자기 내가 미워졌을까? 아니 그것은 분명 내앞에서 연약한 여자의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였을 것이었다. 그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 사이 세월도 흘렀다. 허나 나는 지금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성만 알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미쓰신, 그건 단지 내가 그녀를 점하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뿐만은 결코 아니었다. ※ ※ ※ 사나이와 바다와 그리고 인생 마도로스로 일하던 2년 남짓한 사이, 나는 선박과 더불어 세계의 30여개 나라의 50여개 항구를 드나들어 보았다. 그러노라니 힘들고 짜증나는 일들도 많았지만 재미있고 신기한 현상도 많이 보았다. 풍차로 바다물을 밀어준다는 네덜란드의 로톨담과 암스테르담의 풍경, 도시복판의 다리가 한쪽으로 쭉 밀리면서 그 사이로 만톤급윤선도 지나가는 중남미 알루바도섬의 기이한 현상, 그리고 도마뱀들이 길가나 집주위 지어는 호텔의 천정에까지 붙어서 기여다니는 희한한 일, 이러한 것들은 우리 중국에도 과연 있을가? 또한 한국에서 출항하여 싸이판과 오스트랄리아를 거쳐 남미에 갔다가 다시 대서양과 인도양을 에돌아오노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이론만이 아닌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그외 이전에 TV로만 보아오던 많은 것들을 직접 지척에서 볼 수가 있었는데 예하면 포클랜드군도의 펭긴과 물범, 아프리카해상의 돌고래의 집체무용 같은 헤염동작 이러한 것을 목격할 때면 확실히 배를 헛타지 앟았구나 하는 자부감이 생기군 했다. 한편 선원생활이란 필요시에는 목숨도 내걸어야 하는 모험을 해야 하는 법이다. 작업선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남극주 가까이에서 조업하는 오징어채낚이선은 늘 바다에서 떠다니는 얼음산을 피하면서 조업해야 하는데 그것들과 부딪칠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있으며 일단 부딪치기만 하면 십중팔구는 고기밥으로 되기가 일쑤라 한다. 그럼 다른 해역에도 오징어가 많을텐데 왜 하필 남극주근처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는지? 그것은 단지 그곳의 바다가 오염이 없어 고기가 더 맛있고 그 값이 높다고 해서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남이 개척하지 못한 어장을 자기네들이 재척한다는 뜻과 죽음과 박투하면서 잡은 물고기를 육지에 보내준다는 마도로스의 용감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고기무리를 따라 조업하노라면 알게 모르게 남의 나라 영해에 들어갈 수도 있는바 그러다가 일단 해상경비정한테 발각되어 총포소리를 들으며 쫓기울 때면 바지에 똥오줌을 내싸기가 일쑤라 한다. 그만큼 넋이 떨어졌으면 다시 배를 탈 기분고 나지 않으련만 바다생활에 이골이 튼 “배놈”들은 또 다시 그 일이 언제였더냐 싶게 배를 탄다고 한다. 그만큼 배를 타면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간애를 맛볼 수 있고 또한 바다와 같은 성미를 키울 수도 있는 법이며 바다는 그만큼 사나이들의 육신을 단련시키는 드넓은 무대였던 것이다. 그렇다. 젊은이들여, 배를 타보자. 배를 타고 세계를 돌면서 바다밑세계도 개발하고 바다수수께끼도 풀어헤치자. 그러면 그대는 육지의 그 어느 젊은이보다 도량이 넓어질 것이고 용맹해질 것이며 더욱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7-04
  • 시진핑 주석 서울대학서 30분간 강연, 박수갈채 받아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한국 방문중인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4일, 한국 서울대학에서 30분간 강연했으며 무려 30여차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중국 반관영 중국신문사가 4일 전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어로 “안녕하십니까?” 인사로 강연을 시작해 장내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시주석의 문안인사는 한국어 경어중의 최고급별이라고 신문은 소개했다. 시진핑 주석은 강연에서 자기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에 응한 것이고 또 이웃을 방문하여 친구를 찾아보는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강연에서 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사며 좋은 이웃은 거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는다는 사자성어를 인용하기도 했다. 평화수호를 두고 그는 중화민족은 평화를 열애하는 민족인바 지난날에도 그랬거니와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면서 평화, 화목, 조화로움은 중화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 추진에 대해 그는 21세기는 협력의 세기라면서 중국인민들은 각국 인민들과 함께 각자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상호 지지하고 도울 것이며 중국은 각국과 공동으로 발전하고 번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중한의 꿈을 두고 아시아 광활한 대륙과 해양으로 하여금 중한 협력의 대 플랫폼으로 되게 하며 동방의 지혜로 양국의 아름다운 꿈을 더욱 웅위로운 아시아의 꿈으로 되게 하며 아시아 인민들이 함께 위윈의 길로 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지역은 여전히 여러 가지 전통과 비전통의 안전위협에 처해 있는바 문제는 회피할 수 없지만 답안은 다양할 수 있으며 역사는 개변할 수 없지만 미래는 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간의 화목한 관계를 두고 그는 대화와 협상의 방식으로 인식을 같이 하고 상호 이해와 양보로 분기를 해결하며 협력과 위윈의 태도로 공동의 발전을 도모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간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순과 분기를 해결하며 지역의 평화안정을 실현하는데 효과적인 도경과 믿음직한 보장이라고 지적했다. 인문교류를 두고 그는 중국에는 태극문화 유래가 오래고 또 한국의 국기가 태극기로 우리들은 음과 양의 상생,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병존이라는 옛 철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서 만일 정치, 경제, 안전의 협력이 국가 관계발전에서 강한 것이라면 인문교류는 국민들이 감정과 심령을 나누는 부드러운 것이라고 했고 오직 이 두 가지 힘이 다 안받침 되여야만 각 국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년교류를 두고 청년들은 중한 양국의 미래이고 아시아의 미래라면서 양국 청년들이 서로 배우고 우의를 다져가며 함께 중한 우의의 충실한 계승자로, 아시아 진흥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될 것을 희망했다. 강연에서 습근평 주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하나는 중국 문천지진 때 페허로 된 북천중학교에서 한국의 전남 제1고중으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편지는 받고 감동했다는 이야기, 시 주석은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함께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속담을 인용했다. 다른 하나는 다국 골수지원, 중국 지원자가 차 사고를 당하고서도 변함없이 한국인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해 준 감동적인 사연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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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4
  • 펑리위안, 한국 대리 “제1부인” 조윤선의 안내로 창덕궁 참관
    펑리위안,”조윤선의 안내로 창덕궁 참관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3일부터 한국에 대한 공식방문을 진행하고 있다. 펑리위안 여사는 공식적인 환영식과 국빈만찬에 참가하는 외 3일 오후, 단독으로 한국 조윤선 정무수석의 안내를 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을 방문했다고 중국 시나닷컴이 4일 전했다.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단신이기 때문에 조윤선 정무수석을 한국 대리 “제1부인”의 신분으로 펑리위안 여사를 전문 접대하게 했다고 썼다. 한국에서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일상 정치활동을 배치하는 직위로 조윤선은 비록 언론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임에 틀림없다면서 신문은 중국인들이 궁금해하는 조윤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국 대리 “제1부인” 조윤선은 48세,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최대 로펌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은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08년에야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재빨리 박근혜 소재의 한나라당에서 중용되어 한나라당의 대변인으로 되었다. 2012년 한국 대통령선거 기간 박근혜의 유력한 조수로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우기도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첫 인사임명에서 조윤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되었고 수개월 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여성가족부 장관 임직기간 그녀는 위안부문헌 세계기억유산 등재를 적극 추진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며 박근혜정부가 신임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조윤선은 명을 받고 청와대 정무수석에 오른다. 그녀는 한국 대통령부의 첫 “여성고참”이라고 신문은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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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4
  • 펑리위안 창덕궁 탐방..'소프트파워' 내조외교
    펑리위안,”조윤선의 안내로 창덕궁 참관 한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3일 시 주석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별도로 창덕궁을 찾아 적극적으로 '내조외교'에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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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4
  • 사진으로 보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한국방문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은 7월 3일, 한국 서울에 도착해 1박 2일간의 공식방문을 시작했다. 중한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대통령관저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을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가졌다. 7월 3일, 중국 시진핑 주석과 한국 박근혜 대통령이 회담을 가졌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 후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7월 3일 저녁, 중국의 한 네티즌이 한국 서울 동대문 거리에서 우연히 펑리위안 여사를 보았다. 펑리위안 여사가 남편 시진핑을 위해 큰 케이크를 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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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4
  • 한중 간 영화공동제작협정 체결
    [동포투데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는 7월 3일(오후 5시 50분) 청와대에서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장관 차이푸차오(CAI FU CHAO)]과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영화공동제작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과 중국은 2011년 8월부터 영화공동제작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2013년 6월 양국 간의 가서명 이후 국내 절차를 거쳐 이번 중국 시진핑 주석 방한을 계기로 협정 체결을 완료한 것이다. 공동제작협정은 향후 상호 국내 절차 완료 여부 확인을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협정은 공동제작영화로의 승인 절차, 조건, 기술협력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합작영화가 공동제작영화로 승인받는 경우 중국 내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된다. 이 경우 중국의 외국영화 수입제한제도*에 해당되지 않게 되어 한국영화의 중국시장 진출이 지금보다 더욱 증가할 것이며, 영화특수효과기술(VFX) 협력, 현장 스태프 교류 등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 문화콘텐츠 공동제작펀드 조성 등 후속 협력 강화 한편 문체부는 이번 협정 체결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콘텐츠산업 교류·협력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우선 양국 공동으로 ‘문화콘텐츠 공동펀드’ 조성 논의, ‘한중 콘텐츠 전문가 위원회’ 구성, ‘한중 문화산업 포럼’ 개최 등 문화산업 분야의 연구 및 공동 프로젝트 협력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양국의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세계 문화콘텐츠시장에서 아시아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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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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