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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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사령탑 조긍연, 과제 이뤄낼가
    부담감 있지만 소신있고 차별화된 리더십 앞세워야 연변축구(연변팀)의 새 수장으로 지목된 조긍연감독은 올시즌 연변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키잡이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록록치 않다. 로장들의 퇴역, 주전들의 팀 리탈 등 영향으로 현재 해남 전지훈련에 남은 선수가 고작 16명뿐인 현실이다. 일단 조긍연감독을 믿고 사령탑으로 앉혔으면 축구결책층과 연변구단이 사태 수습과 해결 전면에 나서 그에게 능력을 발휘할 무대를 마련해줘야 할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연변축구(연변팀)는 현재 기로에 서있다. 위기는 역시 기회로 이어질수 있다. 시스템을 통한 행정과 창의적이고 제도화된 구단운영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가야 할 시점이다. 조긍연감독이 올시즌 성과를 내자면 부담감이 있지만 소신있고 차별화된 리더십을 앞세운다면 팀 면모 일신을 이끌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말 연변구단과 1년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조감독은 한국 스포츠전문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취약 포지션에 한국선수 3명을 데리고 갈 예정이다. 동계훈련에서 잘 준비한다면 연변팀이 충분히 슈퍼리그 진입을 노려볼만하다”고 말했다. 안정보다 과감한 도전을 좋아하는 조긍연감독이 연변축구(연변팀)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된다. 일단 전임들이 끝내 풀지 못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주목된다. 김광주감독, 정상룡감독이 과감하게 4-4-2 카드를 꺼내들어 조직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어느 정도 구사했지만 정작 안정적인 수비진을 찾지 못해 다소 애를 먹었다. 조긍연감독도 지난해 중앙수비진을 계속 시험하고 조직력을 다지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련속되는 일곱껨 홈장경기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고야말았다. 박만복, 최동섭 등 축구원로들과 고종훈 등 축구명장들이 연변축구가 해결해야 할 첫번째 과제로 수비안정을 지적한만큼 조긍연감독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외적공격수외에 공격수들이 꼴을 제대로 넣지 못했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낼지도 문제이다. 지난해 연변팀은 이반 보직선수를 고정으로 세우고 고만국, 허파, 리훈, 홍진섭 등을 파트너로 내세웠지만 어떻다 할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미드필더와 달리 전술적인 움직임에서 공격수 파트너지간에 호흡이 잘 맞지 않았던 점, 꼴결정력 같은 마무리가 부족했던 점은 항상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짧은 패스워크를 통해 공격기회를 만들어가는것을 중시하고 한방을 갖춘 선수를 좋아하는 조긍연감독이 자신이 골라잡게 되는 외적선수로 살릴지 아니면 팀내 새로운 자원을 발굴해 스트라이커(공격수)를 키우는 수완을 발휘할지도 관심있게 볼 부분이다.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세대교체가 얼마만큼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지도 관심사이다. 똑 같이 능력위주로 출전선수 선발을 하는 조긍연감독이 팀 전력 안정을 위해 초기부터 젊은 선수들을 키워낼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세대교체를 꾀할것인지도 지켜봐야 할것이다. 지난해 수차의 단독인터뷰를 통해보면 “조긍연감독은 기본적으로 패스워크를 중시하는, 짜임새 있는 조직축구를 구사하고 멀티플레이를 잘하는 선수를 키워내 보다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생각한다”는 판단이다. 과연 선수단운영 전권을 넘겨받은 조긍연감독이 선수들의 능력을 잘 살려 연변축구(연변팀)의 해묵은 과제를 화끈하게 풀어내고 최은택감독 이상의 “명장”다운 지도력을 보여줄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3-01-14
  • 조긍연감독 연변팀 정식 사령탑 맡는다
    연변주체육국 우장룡국장에 의하면 한국인 《털보》 조긍연 감독이 중국축구 갑급리그 연변팀 정식 사령탑을 맡게 되였습니다. 조긍연감독이 연변과 인연을 맺는것은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2012 시즌이 한창이던 2012년 6월 조긍연감독은 연변구단의 요청으로 림시 사령탑에 부임했습니다. 조긍연감독은 부임이후 두달동안 팀을 8위까지 끌어올렸지만 건강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몇년전 당했던 허리 부상이 크게 도지면서 도저히 팀을 계속 이끌수 없었고 아쉬움속에 2개월만에 귀국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긍연 감독이 돌아간뒤 연변은 다시 하위권으로 처지며 2012 시즌을 13위로 마감했습니다. 결국 2013 시즌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구단은 다시 지도력이 검증된 조긍연감독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2012시즌 조감독과 같이 하였던 정성훈코치도 조감독과 함께 1월 5일부터 중국 해남도에서 열리고 있는 겨울철훈련에 합류한뒤 2월에는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갖는 방안도 추진하고있습니다.
    • 스포츠
    2013-01-14
  • 한국의 숨결 조선족동네 연길(옌지)
    연길시내를 관통한 부르하통하 강변야경 ◈ 중국속의 작은 한국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이 4만 3547㎢, 인구가 219만 5000명 정도로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이곳을 개척하였고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이후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어 1955년에는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연길(延吉)·도문(圖們)·돈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칭(汪淸)·안도(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도문강·송화강(松花江)·목단강(牡丹江)·소분강[綏芬江] 등이 있고, 도문강 유역에는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불리는 국제개발지, 훈춘경제개발지가 있다. 조선 말기 우리 민족에 이주하면서부터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 때문에 청산리 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勝地)·봉오동(鳳梧洞) 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 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 연길(延吉 : 이엔지) 연길은 2,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 전부터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며 중국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로 백두산과 가까워 매년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연변에서는 사람들의 옷차림, 집, 길거리를 둘러봐도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 나라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자치주 스스로 그 민족 나름대로의 지역을 가꾸어 나가도록 하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연변자치주 내의정부기관이나 신문 광고 등에 조선족 자체의 문자를 우선적으로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연변의 거의 모든 옥의광고가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글이 공용어로 되어 있다. 연길은 중온대 반습윤기후에 속해,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이 길고 춥고 뚜렷한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5.7℃, 최저 -32.7℃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연길의 면적은 390㎢, 인구는 약 35만 8000명(1993)에 달하며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이곳은 청(淸)나라 말기에 간무국(墾務局)이 설치된 뒤 발달하였기 때문에 국자가(局子街)라고도 불렀다. 1902년 옌지청[延吉廳]이 설치되고 1909년 부(府)가 되었으며, 1913년 중화민국 수립 후 현(縣)이 되었다. 1909년 간도협약(間島協約:젠다오협약) 이후에 교역주로서 개방되자 많은 한국인 이민이 이주하여 시의 주변지역을 개척하였다. 부근에 석탄·금 등의 광산이 있고 광공업이 발달해 있다. 한국어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으며, 의과대학·연변대학 등이 있다. ◈ 연길을 여행할 때 주의할 점 연길시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일용품 생산지로서 가구와 한복을 비롯하여 전통 악기, 식기 등 60여 가지의 제품이 생산, 공급되고 있다. 연길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에게는 단순한 여행의 의미 이상의 느낌을 갖게 하므로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도처에서 조선족 동포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초청이나 현지 투자 등을 쉽게 약속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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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뉴스
    2013-01-14
  • 중국동포 새해 화두는?
    ▲사진은 1월 4일 저녁 안산 원곡동 거리, 중국동포가 기술학원 홍보물에 무관심한 체 걸어가고 있다. 2013년 새해 들어 방문취업(H-2) 5년 만기자가 지난해 보다 많은 8만여명에 이르는 가운데, 5년 만기 출국을 앞둔 중국동포 대다수가 방문취업(H-2) 체류자격을 그대로 유지하느냐? 아니면 기능사자격시험을 보고 재외동포(F-4) 자격으로 변경하느냐를 놓고 크게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월 10일부로 국가기술자격증(기능사 이상) 소지자에게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해준다는 법무부 발표가 나자마자, 기술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중국동포 대상으로 ‘따기쉬운 자격증’ 운운하며 자격증 취득 붐을 조장하였다. 그 결과 5년 만기를 앞둔 많은 동포들이 기술학원에 등록하고 3, 4개월간 기능사시험에 열중, 시험에 합격해 F-4로 전환한 사람도 있고, 시험에 불합격해 돈과 시간만 허비했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어렵게 기능사 자격증 취득해 F-4 됐지만, H-2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못해 그런 가운데 기능사 자격증 취득으로 인한 재외동포(F-4) 체류자격자들 사이에서도 기능사 자격과 관련된 일만 할 수 있고, 기존의 방문취업(H-2)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면 재외동포 자격이 되어 출국하지 않아도 되고 일도 편하게 할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업소개소를 찾아서 물어보면 F-4라 안된다고 해요, 식당에서도 쓰고 싶은데 F-4라 안된다고 그러는 거예요.”지난해 9월 정보처리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해 F-4로 변경한 김화숙(59,여)씨의 하소연이다. 건설현장에서 설계일을 7년 넘게 일해온 이영옥(46,여)씨도 힘들게 정보기기운용기능사자격증을 지난해 11월 취득해 F-4로 변경했지만 전문가 수준에 이른 건설 설계일을 못하고 전단지 배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재외동포(F-4)자격을 부여받게 되면 더 이상 방문취업(H-2) 체류변경도 안되고 H-2전산추첨 대상자로 신청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19세~24세 미만의 동포자녀들의 입국이 늘어나면서 기술학원을 다니며 기능사시험을 준비하는 조선족 젊은이들이 많다. F-4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이들이 F-4로 전환하면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만 25세 이상되면 H-2 체류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도 박탈되기 때문에, F-4로 전환한 조선족 젊은이들에겐 최소한 제조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F-4체류자는 단순노무일을 할 수 없다"면서 "불법취업시 상항에 따라 강제추방까지 당할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F-4 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11만5천853명으로 1년 전의 6만9천723명에 비해 66.2%인 4만6천130명이 늘어났다. 실제로 H-2 체류 중이던 중국동포는 2011년 11월 말 29만7천48명에서 2012년에는 23만5천542명으로 6만1천506명이 줄었다. 이는 H-2체류자가 F-4로 자격변경을 많이 했음을 알게 해준다. /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 제284호 2013년 1월 8일 발행
    • 화제뉴스
    2013-01-09
  • 금속재창호기능사시험, 중국동포들 대거 응시, 무엇을 남겼나?
    • 기존 500명 정도 보았던 시험을 8천명 넘게 응시해 • 불합격자들 '시험관리감독 허술했다'며 한국산업인력공단 대상으로 재시험을 요구하는 소송 움직임도 일어•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F-4로 전환하면 "자격증 관련 일만 할 수 있다 해서 일자리 찾는데 어려움 많다"며 " 이는 동포를 기만하는 것"이라는 불만도 커질 듯 지난 12월 28일 학원가는 바짝 긴장했다. 필기시험이 없는 금속재창호기능사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 있는 이 시험의 응시생은 500여명 수준이었다. 그중 합격률은 50~60% 수준, 그러나 지난해 금속재창호기능사가 재외동포(F-4) 자격변경 종목에 포함되는 과목이 되자, 지난해 하반기때 학원들은 필기시험에 취약한 중국동포들에게 가장 따기 쉬운 기능사시험 종목으로 각광받으면서 일명 ‘뜨는 종목’이 되었다. 그 결과 창호기능사 시험 대비 학원들이 늘어났고, 한 학원에 최소 100명에서 300명이 등록해 12월초에 있는 시험준비를 하였다. 학원비도 학원마다 차이가 났다. 75만원에서 120만원, 상대적으로 재료비값이 많이 들어간다. 그것까지 치자면 100~150만원, 필기시험이 없다하지만 집중력을 갖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험일을 앞둔 한달 전부터는 하는 일도 접고 시험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따지면, 최소 300만원 이상은 투자하는 셈이다. 그래도 동포들에겐 어느 기능사시험보다 수월하다는 것이 금속재창호였다. 그 결과 8000여명이 시험에 응시해 약 40% 합격률을 보였다(이것은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다)고 하여 창호기능사반을 운영한 학원들은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방문취업(H-2) 5년 만기를 앞둔 중국동포들은 국가기술자격증(기능사) 소지자에게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을 부여해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재외동포 자격을 취득하면 출국하지 않아도 되고 자녀초청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특혜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F-4로 자격변경하면 방문취업(H-2) 자격으로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준 곳이 없다. 금속재창호기능사 시험을 본 중국동포 김영철(41)씨는 지난 12월 28일 시험합격소식을 듣고 재외동포 자격변경을 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달려갔더니 ‘재외동포 자격으로 변경하면 금속재창호 분야에서만 일할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자격변경 신청을 보류한 상태이다. 다행히 그의 H-2 체류기간이 1년 더 남아있었다. 김씨는 6년간 용접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용접기능사 시험을 볼 것이지 왜 창호기능사 시험을 보았냐?”는 질문에 그는 “필기시험이 없고 취득하기 쉬운 자격증이라고만 생각했지 재외동포 자격으로 변경하면 이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고 답한다. 김씨는 용접일을 계속 할 거라고 밝혔다. 반면 금속창호분야에서 4년간 일해왔다는 장모씨는 창호기능사 시험에 합격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재외동포 자격으로 변경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고, 재외동포로서 한국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이경호씨는 동포세계신문이 기능사자격시험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간담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왔다. “두달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학원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 불합격되었다”며 그는 불만을 토로했다. 올해 10월이면 5년 만기가 되지만 그는 일찌감치 기능사자격증에 관심을 둔 편이다. 건설업 목수일을 다년간 했기 때문에 창호기능사 시험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험당일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모기장틀을 설치해 보라’는 주문에 당황하게 되어 결국 시험에 불합격되었다는 것이다. 이씨가 다닌 학원은 200명 정도 수강생이 있었는데 다른 곳보다 불합격자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는 “학원이 교포심리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 것밖에 안된다”며 학원의 부실교육을 질타했다. 종목을 수시로 바꿔 운영하는 학원실태도 들을 수 있었다. 평택에서 거주하는 김창수씨(54) 이야기다. 한국생활 10년차 되는 김창수씨는 주로 토목건설에서 일해왔다. 평택에 있는 종합건설회사에서 과장으로 진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토목기계에 자신감이 있어 지난해 8월 농기계기능사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그때 농기계기능사 시험을 가르친 학원에는 중국동포 150여명 정도가 학원비 120만원을 내고 수강을 하였는데, 합격자는 11명에 불과했다. 이로인해 수강생들의 환불소동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학원측은 금속재창호기능사 시험반을 급히 꾸려 환불대신 70만원만 받고 창호기능사 시험공부를 시켜준다는 말로 환불을 요구하는 동포들을 설득하였다. 그래서 동포들 상당수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창호기능사반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본 김창수씨는 “F-4로 변경하여도 농기계 분야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이 제도에 대해서 문제가 많다고 본다. 학원측의 문제도 많다"며 “기능사 취득으로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해준다는 것은 부실 학원들만 생기게 하고 불법취업활동을 할수밖에 없도록 하는 동포를 기만하는 정책이다”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또다른 현상으로는, 수험생이 500명 수준에서 8천명으로 갑자기 늘어난 바람에, 급조하여 마련된 시험장소마다 환경이 다르고 시험감독도 일관적이지 않아서 억울하게 불합격된 수험자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한국산업인력공단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요구하는 소송 바람도 불고 있다는 것이다. @동포세계신문 제284호 2013년 1월 8일 발행
    • 화제뉴스
    2013-01-09
  • 中 CCTV 올 음력설야회 사회자명단 확정
    올 음력설야회 사회자명단 확정 2013년 cctv 음력설야회 사회자 명단이 1월 7일 확정되였는데 주군, 리영, 동경, 필복검,싸베닝,리사사가 뱀띠해 음력설야회사회를 맡게 된다.
    2013-01-09
  • 어머님의 마지막 행차
    어머님의 마지막 행차 글/훈이 우리어머닌 아들없이 맨딸만 다섯이지만 딸, 사위들이 한결같이 모두 무던해서 어머니께서만 원하신다면 어느집에 계셔도 무방한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 자신이 팔십고개를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떠돌아 다니시기 소원이니까 말려내는 재간이 없다. 지난봄 우리집에서 떠나가신 어머니께서 사방 수천리 땅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네언니네 집을 차례로 거쳐 다시 우리집에 오시겠다는 기별을 보내 왔을때는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였다. 그러니까 평균 한집에 두달씩도 안있은 셈이다. 이번에나 우리집에 안착 하시려는지 팔십고령 로인을 홀로 내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 해서 번마다 모셔가고 모셔오고 해야하니 출근족인 우리로서 어찌 번거롭지 않을수 있겠는가? 하여 어머닐 만나자 난 다짐부터 받아 냈었다. “어머니, 이번에 우리집에 가시면 어디로도 드티지 마시고 영 있으세요. 누가 보고프면 전화로 오라해서 만나 보시고요.” “응 그러마! 이제 며칠 더살겠다구 오구갈새 있겠냐? 이번엔 너네 집에서 죽어야지.” 한데 우리집에 오신지 석달이 되여오자 또 안절부절 못하신다.그러시든 말든 시침을 뚝떼고 며칠간 모르쇠를 댔더니 아마 참지 못하시겠던지 그날 저녁 식사때 드디여 우리한테 말씀 하신다. “야들아 난 아무래두 연변에 가야겟다. 아들이문 그게 큰 아들인데 간날에 죽어두 큰 딸집에 가는게 원칙이지.” 큰언니네 집에 가시고 싶을 때마다 꼭 방패처럼 내들군 하시는 어미니의 당당한 리유였다. 난 저으기 성이 났다. 아무리 친딸이라 믿고 그럴테지만 어쩌면 이리도 애먹이는가 말이다. 거퍼 백날 시름 놓을새 없으니! “어머니두. 참 답답합니다. 연변이 뭐 문앞이라구 두석달에 한번씩 다니시나요? 왕복 삼천리길에 번마다 차비만 해도 거의 천원씩 널면서… 게다가 또 열흘 청가는 맡아야 하지 어머니 모시고 세네번씩 차를 갈아 타느라면 얼마나 고생이라고 젊은이들 처지두 좀 생각해 주셔야지요.” “그러게 이번엔 거기가 죽는다지 않느냐?” 한풀꺽인 어머니의 말씀이셨다. “이젠 스무번두 더 했을 그소리 누가 믿나요? 어디가두 아들집이 아닌바에 인제 한곳에 정해놓은 집이 있어야지 자꾸 다니니까 마음이 들뜨셔서 어느집두 당신집 같지 않고 그래서 며칠 안계시면 또 떠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끝없이 떠돌다가 객사라두 하시면 어쩔려구 그래요?!”역증이 잔뜩 나던 참이라 난 참지 못하고 생각나는대로 마구 다 내 쏘았다. “글쎄 나두 그래서 한집에 눌러 있자 맘먹었다가두 그게 잘 안된단 말이다. 당장 래일이라두 죽겠는데 생각되문 금시 조급해지면서 어서 바삐 한번씩만 더 보구 싶은걸 어쩌겠냐? 다한번씩 보구나문 죽을것 같다가두 죽어지지 않으니 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구 싶구 너두 나중에 늙어봐라. 자식손군 있는대로 골고루 다 보구 싶단 말이다.. 언제든지 그 마지막이 있으련만 사람 목숨이 왜 이리두 질긴지 후유…”그제는 풀이 완전히 꺾인 어머니시라 련이어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으시며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하신다. 그제껏 말이 없던 남편이 날 나무란다. “야 당신두 엔간하다. 어머니가 뭔죄를 지으셨다구 한곳에서 감옥살이 하시겠나. 가고 싶은데가 있으시문 자꾸 다녀야지. 어머니 괜찮아요. 딸의 말 듣지 말아요. 래일 제가 어머님을 연변에 모셔다 드릴겁니다. 늙구 볼게 있나 제맘대루 할래기지. 나두 늙으문 남의 말 안들을 참인데 어머니가 당신말 꼭 들어야겠구만?” 그렇잖아도 어머니의 처량한 한숨 소리에 내가 너무 심했나 측은한 생각이 들던 참이라 나는 남편의 그소리에 변명조로 말했다. “ 너무 자주 다니려니까 힘든걸 어떡해요?” “그래두 그렇지. 당신 글러 먹었어. 자식 이쁘다구 키웠다가 그런 멋두 없이 뭘 하겠나? 백번이라두 안많다. 어머니가 뭐 천년만년 살아 계실까? 사망해 보라. 모시고 다니고 싶어두 방법 없잖은가? 생전일때 그만치 힘든것두 영광이구 행복이라. 번마다 이게 어머니의 마지막 요구라구 생각해 봐. 그래두 짜증이 나겠구만?!” 남편의 일장 훈시에 난 가슴을 탁치는 생각이 있었다. 고향에 있는 큰시형네 집에 가셨던 칠십 고령의 시어머니께서 그해 겨울 우리집에 오시고 싶어 하신다는 기별을 받고서도 우린“이제 따뜻한 봄이 오면…”하고 미루었었는데 그 따뜻한 봄이오자 글쎄 덜컥 시어머니의 사망부고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이와 나는 가슴속에 영원한 유감과 죄책감을 남기게 되였었다. 그렇게 급히 세상 뜨실줄 알았더면 기별 받자 모셔오는 건데…. 하지만 예고없이 가는 인생, 뉘라서 그 앞날을 예측할수 있으랴! 그런즉 어머니라고 례외일까?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이요 서산 마루에 턱을 고인 해와도 같은 신센데. 이제 어머니께서 다니시면 몇번 더 다니실까? 하물며 우리 자매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평생 고생하신 어머님께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그리운 딸 사위 손군들을 얼마만에 한번씩 만나 보시려는게 그리 과분한 요구도 아니잖은가? 누구누구를 불러온대도 어머닌 또 못온이가 그리우실테고. 그러니 어머니 자신이 직접 가셔서 한두달씩 함께 있으시면서 실컷 그립던 정도 나누시고 천륜지락을 누리시기 보담 통쾌 할수가 있을까? 두석달에 한번씩 다닌다고 해야 다섯 자매가 일년에 한번씩만 어머닐 모시고 다니면 그만인걸 어머니더러 참고 한집에 꾹 눌러 있으라 하다니? 수시로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팔십 고령의 로인이 아직도 끝없이 고생 시킬거라 여기고 짜증내는 내가 남편의 말대로 글러 먹어도 단단히 글러 먹은 것이다. 며칠후 나와 함께 길떠나시는 어머닌 어린애 같이 기뻐 하신다.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나한테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행차로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난 코마루가 찡해 나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난 일기를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어머님께서는 그후에도 이년쯤의 늘 마지막 같은 행차를 이어 가시다가 어느날 부턴가 맥이 진하셨고 드디어 99년 2월 2일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저의 남편은 2004년 2월 18일에, 연변에 계시던 저의 큰언니는 2006년 1월 18일에 각각 돌아 가셔서 이글속에 아기자기 등장했던 여러 사람 가운데 지금은 저만이 살아 았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가슴 저리게 느끼고, 있을때 잘해야 한다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울님 여러분. 인생은 그렇게 무상한 것이니 부디 있을때 눈앞에 보일때 잘하시면서 마음 아픈 후회같은 걸 남기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 문학살롱
    2013-01-06
  • 박지성 중국 프로축구무대에 나타날가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중인 한국 축구선수 박지성(32세)에 대한 중국 프로축구의 영입전쟁이 또 시작됐다고 외신이 전했다. 한국의 스포츠동아 등 언론은 다수의 중국 언론들이 3일 중국 슈퍼리그팀들이 박지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현재 박지성에 400만딸라 수준의 년봉을 제시할것이며 2년 계약을 원하고 있는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유럽 빅 클럽에 못지 않은 막대한 자금을 등에 업은 중국 프로축구팀들은 그동안 박지성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실제로 광주 항대프로축구팀은 구단주가 박지성에게 백지수표를 제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이다. 현재 박지성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팀은 산동 로능축구팀인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박지성은 5일 밤 11시(중국시간) FA컵 64강전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와의 경기에 출전할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릎 부상때문에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지난 3일 첼시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후반 막판 교체 투입돼 약 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 스포츠
    2013-01-05
  • 인민루니 정대세 한국 수원삼성팀에 이적
    조선축구대표팀의 공격수인 《인민 루니》 정대세(28세)가 한국프로축구 K리그 수원삼성의 유니폼을 입는다. 한국 수원삼성구락부에 의하면 정대세가 빠르면 7일 입국해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뒤 곧바로 입단 절차를 밟게 된다고 피로했다. 수원은 쾰른과 이적료 30만유로에 합의를 봤다. 정대세의 년봉은 4억원(한화)수준인것으로 알려졌다. 정대세는 일본 프로축구 가와사끼 프론탈레를 거쳐 지난해 초 독일 분데스리가 쾰른으로 이적했다. 조선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는 정대세는 소속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새로운 둥지 찾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정대세는 지난해 11월 한국 K리그의 수원과 울산 등 이적료와 년봉을 감당할수 있는 기업형 구단에 이적을 희망하는 제안서를 보냈다. 협상 초기 100만딸라에 이른 이적료는 수원과 협상 과정에서 30만딸라까지 떨어졌지만 중간에 대전 시티즌이 영입전에 뛰여들면서 난항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대세가 수원이외의 팀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수원이 애초 협상액보다 1억원(한화) 가량 오른 30만 유로에 쾰른과 이적료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국 수원삼성에 입단한 정대세는 2013년 아세아챔피언스리그 소조에서 중국프로축구 귀주인하와 한소조에 속해 귀주축구팬들이 현장에서 인민루니의 풍채를 볼수있게 되였다.
    • 스포츠
    2013-01-05
  • 박근혜 한국 력사상 첫 녀성대통령으로 당선
    박근혜 한국 력사상 첫 녀성대통령으로 당선 서울 12월 20일발 신화통신: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일 새벽 공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 새누리당 대통령후선인 박근혜가 19일 거행한 한국 제18기 대통령선거에서 미약한 우세로 민주통일당 후선인 문재인을 이기고 한국 다음 임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였으며 한국 력사상 첫 녀성대통령으로 되였다.한국 중앙 선서관리위원회는 당지 시간으로 20일 새벽 5시에 최종통계결과를 공포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각기 51.6%와 48%의 득표률을 획득했는데 박근혜는 1577.3100만장의 선거표를 획득하고 문재인은 1469.2609만장의 선거표를 획득해 량자의 선거표 차이는 108.0491만장이다. 이번기 대선의 득표률은 75.8%에 달해 17기 대선의 63%와 16기 대선의 70.8%를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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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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