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 같은 방 안에서 누군가 귓가에 속삭인다. 눈보라 속에서는 분명 모닥불이 타오르는데 몸은 오히려 차가워진다. 달려오는 기차를 피해 도망치던 아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선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 민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괴담들이다. 실제 사건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야기 속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바라보던 옛사람들의 두려움과 민간신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둠 속 아내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한 여성이 시어머니와 크게 다툰 뒤 방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 앉아 있던 여자는 분을 삭이지 못하다 문득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때 귓가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죽어.’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일어나 줄을 찾고 의자를 가져왔다.
아내가 걱정된 남편은 창문 너머로 방 안을 들여다봤다.
순간 온몸이 굳었다.
아내가 줄을 매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뒤에 희미한 여자의 형체가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내의 어깨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무언가를 계속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방문으로 달려가 문을 걷어차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아내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남편이 방 안을 샅샅이 살폈지만 조금 전 창문 너머에서 봤던 여자는 흔적도 없었다.
훗날 아내는 당시 누군가 계속 죽음을 부추기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은 이를 죽은 자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는 ‘대신귀신’ 이야기와 연결했다.
눈보라 속 모닥불…그런데 불이 차가웠다
한겨울 밤, 타지에서 일하던 농촌 일꾼들이 일 년치 품삯을 받아 고향으로 향했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다. 술기운은 사라지고 손발의 감각마저 둔해질 무렵 산기슭에서 붉은 불빛이 보였다.
“불이다.”
사람들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모닥불 주변에는 낯선 사람들이 먼저 앉아 있었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불길만 바라봤다.
일꾼들도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앞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손을 가까이 가져갈수록 오히려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일행 가운데 나이가 많은 남자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창백했다.
불빛 앞인데도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진 남자는 동료들에게 떠나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조금만 더 몸을 녹이고 가겠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결국 혼자 마을로 향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모닥불은 어디에도 없었다.
함께 길을 떠났던 동료들은 눈밭에 쓰러져 숨져 있었고, 불이 타오르던 자리 주변에는 오래된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본 것이 진짜 불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산 사람을 현혹하기 위해 만들어낸 ‘귀화(鬼火)’였다고 수군거렸다.
“빨리 나와!”…아이는 선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이야기는 1950년대 중국 스자좡과 타이위안을 연결하는 철길 주변에서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어느 여름 아침, 어린 여자아이가 바구니를 들고 철길을 걷고 있었다.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철길에서 나와!”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차가 가까워지자 그제야 아이가 뛰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달렸다. 선로를 벗어나는가 싶던 순간 갑자기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뛰었다.
다시 왼쪽.
또 오른쪽.
사람들은 이상한 광경을 바라봤다. 마치 선로 양쪽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서서 아이가 밖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다시 밀어 넣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어른들이 농기구를 내던지고 선로를 향해 달렸다.
기적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커졌다.
하지만 늦었다.
열차가 굉음을 내며 현장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 선로 주변에는 아이가 들고 있던 바구니만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고 장소에서 멀지 않은 건널목에서도 과거 열차 사고로 사람이 숨졌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같은 말이 돌았다.
“대신할 사람을 데려간 것이다.”
왜 세 괴담에는 ‘대신할 사람’이 등장할까
세 이야기는 실제 사건으로 입증된 기록이 아니며 초자연적인 존재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 오랜 세월 구전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되거나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비슷한 공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중국 민간 괴담에는 갑작스럽거나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는 이른바 ‘대신귀신’ 이야기가 등장한다. 위험한 강이나 우물, 오래된 길과 철도처럼 실제 사고가 반복되기 쉬운 장소가 이런 전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결국 괴담은 귀신 이야기인 동시에 당시 사람들이 설명하기 어려웠던 죽음과 사고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한겨울에도 따뜻하지 않은 불, 아무리 뛰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철길.
과학으로 설명되는 시대가 됐어도 이런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귀신 그 자체보다 인간이 가진 오래된 두려움을 건드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빛을 마주친다면—
옛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그냥 지나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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