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 동포투데이 김철균
 
필자한테는 10여년간 친하면서 여러 가지 거래를 해오던 한국인 친구 A씨가 있다. 그와 거래하면서 필자는 여러번 무안을 당한 적도 있고 “짠돌이, 서울놈”이라고 듣지 못할 욕을 속으로 한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또한 그러면서 자주 “다시는 A씨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벼른적도 여러번 잘 됐다.
 
하지만 필자는 오늘 이 때까지 여전히 그와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제 더는 “다시는A씨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있다.
 
A씨는 한국 성균관대 출신으로 서울의 어느 한 중류급 언론사에서 근무하다가 10여년 전부터 중국으로 진출해서는 어느 한 조선족단체를 돕는 일을 하던 중 필자를 알게 되었다. 필자는 A와의 첫 대면에서 그와의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사람을 만나면 90도 경례를 하면서 지나친 예의와 친절을 보이는듯 싶었고 그런 친절과는 달리 씀씀이는 밥알을 톱으로 켤만큼 “찬돌”인 것 같아보였다. 손님을 청하면 단둘이어서도 요리 4-5가지씩 차례놓고, 맥주도 박스채로 갖다놓고 대접하는 우리와는 달리 어쩌다 필자를 비롯해 손님 여러 명을 청해놓고도 자기의 나름대로 요리 4개만을 상에 올렸고 맥주도 인당 한병씩만 차례지게 했다. 한번뿐이 아니었다 번마다 그랬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는A씨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하다가도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그와 거래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중 “짠돌이”라던 그한테서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 일어났다. 그가 연변의 어느 한 조선족노년협회에 인민폐로 10만위안을 기부했던 것이다. A씨의 말대로라면 “필요한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는A씨한테서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즉 평소에는 극도로 아끼다가도 진정 남한테 도움이 되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도 “통”이 큰 그였다. 이는 또한 평소에는 먹고 놀고 하는 일에 통이 크게 놀다가도 정작 사회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일에는 단 한푼도 내놓지 못하는 우리와는 큰 비교가 되었다.
 
우리와 한국인 사이, 우리는 필경 동족이며 언어를 비롯해 많은 습관상 근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분명 잘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바로 손님접대를 비롯한 소비문화와 여러 가지 예의문화에서 자주 표현된다.
 
최근 몇년간 중국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중국인들한테는 한국을 어딘가 무시할까 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인과 동족인 조선족이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보면 한국인은 “짠돌이”이고 중국이란 나라가 한국보다 훨씬 더 살기 좋으며 이젠 한국인한테서 더 이상 뭘 볼 것이 없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한국과 한국인 ㅡ 우리가 이에 대해 보다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바로 20여년전 우리가 한국과 한국인을 알기 시작했을 때 한국이란 나라는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한국인 또한 대단히 월등하고도 멋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 이전에 생각했던 “썩고 병든 남조선”이 아니었고 “깡통 차고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제식민지 당시 노화교육으로 신음했고 “6.25”의 전쟁포화로 국토의 전체가 페허로, 쑥대밭으로 됐던 한국- 하지만 30여년이 지나 우리가 다시 한국과 한국인을 알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아시아 작은 네마리 용”의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일떠세웠고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까지 개최한 “세계속의 코리아”로 되었다. 예의가 바르고 친절한 말씨 또한 우리 중국조선족보다는 훨씬 개화된 나라와 국민으로 다가왔다. 특히 남성들의 매너와 자상함 등으로 한시기 한국남성들은 중국조선족 여성들이 선망하는 신랑감으로 되기도 했었다.
 
한편 1992년의 중한수교와 더불어 중국은 한국을 향해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한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경제발전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대도시와 연해지구에 한국기업들이 쓸어들어오게 하였고 일련의 우월한 정책을 제공하였으며 한국기업을 선두로 중국의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경제총액이 독일을 추월했고 2010년에는 일본을 따돌리면서 미국의 버금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하였다. 고속철도가 거미줄마냥 중국의 곳곳에 뻗어 나갔고 우주인을 실은 위성이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심해탐사에서도 세계의 기록을 수립했다.
 
중국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중국인들은 부유해졌다. 몇년전부터 일반 국민들의 자가용시대에 들어섰고 머나먼 남극에도 중국인관광객들의 발자국이 찍히게 됐다.
 
그렇게 되자 언제부터인가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과 한국인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중국조선족도 마찬가지었다. 그제날 그토록 갈망하던 “코리안드림”은 무색해지기 시작했고 선망의 대상이던 한국남성도 이젠 “짠돌이”로 취급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20년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중국조선족들이다.
 
그럼 이젠 한국과 한국인한테서 배울 것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인가? 물론 중국의 경제와 문명이 많이 발전했고 반면에 한국에 여러 가지 악성사건이 터져 한국이미지가 흐리게 하고 또한 일부 한국인들한테도 사기치고, 성폭행을 일삼으며 다른 여러 가지 추태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놓고 전반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고 부정한다면 이는 진짜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분명 지적하고 싶다.
 
오늘날 중국 대도시의 경제생활은 한국과 한국인의 생활과 대등하거나 거의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기타의 여러 방면에서 우리와 한국인들 사이에는 아직도 큰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할 바이다. 우선 우리들한테는 한국인 거개가 갖고 있는 정신력이 없다. 페허로 된 땅에 하나 또 하나의 건물을 일떠세우며 분발하던 그런 정신력이 없다. 또한 독일의 노천탄광과 중동의 사막에 가서 품팔이를 하면서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던 정신력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A씨처럼 자신은 극력 아끼다가도 남을 즐겨돕는 기부문화가 우리 모두의 몸에 배이자면 아직 상당한 세월과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외 자각적인 위생도덕, 공중도덕, 상업도덕과 윤리도덕 등 면에서도 우리가 한국과 한국인을 따라잡자면 9만 8000리라는 생각이다.
 
부분적인 것을 갖고 전반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협애한 정서를 갖고 남의 흠집을 찾기에도 열중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한국 따라배우기”란 때가 지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는 일가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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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흉 적게 보기”, “남의 장점 배우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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