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전체기사보기

  • 中 대륙 뜨겁게 달군 4대 여인의 합영사진
    [동포투데이] 시나(新浪)망에 따르면 섣달그믐날인 15일, 한 장의 보기 드문 사진이 중국의 많은 사이트들을 도배해 전반 대륙의 눈길을 끌었다. 산시 사범대학(陕西师范大学)의 한 여학생은 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사진설명으로 “오른쪽으로부터 20살인 나, 42세인 어머니, 65세인 외할머니, 89세인 증조 외할머니”라고 달았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8-02-16
  • 中 가출녀 23년 만에 가족과 상봉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4일, 동방망(东方网)에 따르면 최근 23년 전 연인을 따라 가출했던 우훙(吴红)이라는 여인이 경찰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와 집사람들과 상봉하여 화제로 되고 있다. 1995년, 상하이시 칭푸구(青浦区) 잉중(盈中)향의 주민 우워이(吴伟)가 딸이 주택내에 들어 있는 세입자(租客) 남성과 함께 실종되었다고 경찰에 신고, 경찰은 즉시 조사에 들어갔으나 당시의 기술수준의 제한으로 큰 진전이 없었다. 이를 두고 경찰은 유괴 범죄일 가능성은 아닌 것으로 판단해 우훙으로 하여금 잠시 실종인구로 등록했다. 한편, 가출한 우훙은 함께 도망한 남친(우씨집의 세입자)과 함께 안후이 우후 우워이현(安徽芜湖无为县)에서 실제상 가정을 이루었으며 이듬해 딸을 출산했다. 당시 우훙은 자기의 신분증명을 할 수 없었기에 결혼등록을 할 수 없었고 직업도 찾지 못했으며 경제 내원이란 남자가 밖에 나가 품팔이를 하여 번 수입뿐이었다. 그러던 중 2008년 우훙은 재차 자식 한명을 출산, 그 뒤 2011년 가정에 보관했던 돈을 도둑 맞혔고 이로 인해 우훙의 동거은 정신이상에 걸리면서 노동능력까지 상실하여 가뜩이나 어렵던 가정생활에 설상가상이었다. 2016년 안후이 당지 경찰은 인구보편조사를 진행하던 중 우훙의 신분이 모호한 것을 발견, 경찰이 추궁 끝에 우훙은 자기는 상하이 잉중향 사람이며 부친의 성명은 우워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이 정보는 인차 상하이시 칭푸구 샹화교(香花桥) 파출소에 전달됐고 파출소 일군은 우훙이 가능하게 우워이의 실종된 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뒤이어 경찰은 각각 상하이와 안후이로부터 우훙과 오워이의 생물 샘풀을 수집해 비교 검사, 이상하게도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자 상하이 경찰은 안후이 경찰과의 소통 중 안후이 경찰이 수집한 생물 샘플은 수집해서부터 화험하기까지 교통이 불편한 등 원인으로 4개월이란 시일이 걸렸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첫 측검 결과가 정확할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그 뒤 상하이 경찰은 직접 안후이에 가서 우훙의 생물 샘플을 수집, 빠른 시일 내에 상하이시 공안국 기술검사실에 기탁하여 검사하게 하였다. 검사결과 우훙은 진짜 우워이의 실종된 딸임이 밝혀졌다. 한편, 딸 우훙이 실종되자 그녀의 부모는 신문에 <사람찾는 광고>를 여러 차례 게재하면서 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종무소식이었고 딸 우훙 또한 가출 후 부모의 질책이 무서워 줄곧 연계하지 않았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당지 생활에 적응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얼마 전, 경찰의 도움으로 23년 만에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우훙은 그 동안 갖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부모한테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보도에 따르면 우훙이 부모와 상봉하기 얼마 전 그녀의 동거남은 전간작업 중 한차례의 사고로 사망, 이는 그녀로 하여금 더욱 부모와의 상봉을 재촉하게 했으며 상하이 공안 또한 이미 실종으로 동결했던 우훙의 호적을 회복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8-02-16
  • 시대가 무색해진 상해탄의 절색미인- 엄인미(严仁美)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17년, 그의 나이 102세를 맞으며 사람들 앞에서 선보인 옛 상해의 절색미인이었던 엄인미(严仁美) 여사는 여전히 숱이 많은 머리칼로 세월이 무색케 하였다. 비록 흰 머리칼이 조금씩 보이긴 했으나 윤기가 흐르고 잘 정리된 엄인미의 머리칼을 보고 모발분야의 연구일군들은 분분히 그녀한테 머리칼 보호비법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엄인미 여사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오히려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여러분들의 질문에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어릴 때 저는 머리에 모발 몇 대 자라지 않아 늘 중머리를 하고 있은 <못난 새끼 오리>였답니다…….” … 엄인미의 인생을 밝히자면 그에 앞서 그 조상부터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엄인미의 증조부 엄소방(严筱舫)은 이홍장(李鸿章)의 참모로서 상해에서 중국의 첫 은행인 중국호시은행(中国互市银行)을 세웠고 제1임 총재로 되었으며 또 상해 총상회(上海总商会) 및 호번관 사영기업(浩繁官)을 창립, 녕파방(宁波帮)으로부터 <개산의 창시자(开山祖师)>로도 불렸다. 그리고 엄인미의 조부 엄자균(严子均)은 환전실무를 취급하는 금융업자로 크게 이름을 날렸으며 상해 성황묘(城隍庙)의 물화루금점(物华楼金店)과 남경로에서 유명한 아홉째 장주장(老九章绸庄) 모두가 엄자균의 하청업체였다. 한편 엄인미의 부친 엄지다(严智多)는 당시 절강성 호주(湖州)지구의 4대 재벌거물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유용(刘镛)의 손녀 유승의(刘承毅)를 부인으로 맞이, 첫 출산한 아이가 바로 엄인미었다. 헌데 임신 8개월만에 고고성을 울린 엄인미는 머리에 머리카락 몇대 없었다. 이는 엄지다 부부한테 큰 실망을 주었다. 반대로 엄인미의 조부는 아주 개화된 사람으로 아기의 이름을 <엄인미>라고 지었으며 아기가 자라면서 그 이름처럼 점점 아름답게 숙성하기를 희망했다. 그 뒤 엄인미의 어머니는 머리칼을 빡빡 깎으면 모발이 잘 자란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딸한테 실험, 2살이 될 때까지 엄인미는 무려 7차례에 거쳐 <아기여승(婴儿女僧)>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거의 효과가 없었으며 후에 병원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던 한 친척이 엄인미를 데리고 영국으로 가 수차에 거쳐 치료하면서 비로서 효과를 보게 되었으며 귀국할 때의 엄인미는 새까만 모발로 뒤덮이었다. 6살부터 엄인미는 조모를 따라다니면서 생활, 7살이 되자 계모의 고모가 교장으로 있는 계수여자학교(启秀女校)에 입학하면서 학업의 첫 발자국을 뗐고 10살에는 대학을 졸업한 다섯째 고모가 임직하고 있는 중서여자중학(中西女中)에 학적을 옮겼다. 당시 중서여자중학교는 명망 높은 귀족서당이었는데 엄인미가 다니는 학급에 도합 90명의 학생이 있었으며 이 중 엄인미를 포함한 8명 여학생이 가장 절친한 사이었다. 그 때, 엄인미 외 7명의 자매 역시 모두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명문가정의 규수들로서 이들 중에는 국민정부 재무부 차장으로 있는 장수용(张寿镛)의 딸 장함분(张涵芬), 중국 서약업의 선구자 황초구(黄楚九)의 딸 황혜보(黄惠宝), 중국 주 프랑스 대사의 딸 당민정(唐民贞), 복건의 거상 임씨 가문의 규수 임앵(林樱) 등이었다. 엄인미의 회고에 따르면 그 시기가 그녀한테 있어서 가장 천진난만했으며 즐겁고도 유쾌한 시절이었다. 바로 이때 엄씨 일가에는 한 규수가 봉건식 결혼에 반항해 타지로 도망하는 사건이 발생, 이 사건은 이 일가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엄인미의 부친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그는 여자애들의 반항심은 공부를 하면서 현시대 물정을 너무 많이 알아서이고 이런 여자애들을 잘 단속하려면 공부를 적당히 시키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 때 엄인미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처음에 엄인미는 공부를 그만둘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한테 맞섰고, 이에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딸이 과목마다 90점 이상을 맞아야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다. 이어 기적이 생겼다. 아버지의 뜻밖으로 엄인미는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험에서 과목마다 90점 이상을 맞은 건 물론이고 전 학급의 1등까지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이제 중학교만 졸업하면 공부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 이유인즉 이미 딸의 결혼상대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1929년 엄인미의 여섯째 고모가 결혼, 고모가 결혼한 마씨 가정은 상업에 종사하는 아주 부유한 가정이었다. 바로 그럴 즈음, 고모의 출가와 더불어 마씨 가정에서는 인편을 통해 또 다른 기별을 보내왔다. 즉 마씨 가정에서는 엄인미까지 며느리감으로 점찍고 있으며 그 어떤 요구도 다 들어 줄테니 재삼 혼약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마씨 가정으로 놓고 말하면 첫째, 당시의 엄인미가 천하절색이었고 둘째는 당시 마씨의 부인이 중병으로 앓고 있는 상황으로 엄인미를 며느리로 맞아들여 <액막이(冲喜)>하려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이에 엄인미의 부친 엄지다는 마씨 가정의 외부배경만 보고 흔쾌히 그 혼인을 허락했으며 엄인미가 불복하자 그 때부터 딸을 집안에 가두어 놓고는 서당에 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엄인미는 단식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강요에 대항, 단식이 지속됨에 따라 영양실조가 왔으며 나중에는 폐병에 걸리기까지 하였다. 그 뒤 사태의 위태로움을 느낀 엄인미의 외조부는 급히 외손녀를 항주로 데리고 가 치료하기로 작심했다. 엄인미의 외조부를 놓고 말하면 그야말로 외손녀를 애지중지하던 어른이었다. 그는 외손녀의 병 치료를 위해 좋다는 약을 다 구해왔고 용하다는 명의는 다 청해오기도 했으며 거처 옥상에 유리방(玻璃房) 하나를 가설하여 엄인미로 하여금 경상적으로 햇볕 쪼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외조부의 정성이 지극해서일까? 과연 약 1년 뒤 엄인미의 병세는 근본적으로 호전되었다. 그 때로부터 그녀는 부친과의 마라톤식 타협 끝에 양보와 주견을 병행한 협약을 맺었다. 즉 결혼은 할 수 있으나 공부는 계속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 ▲ 상해 홍구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남긴 엄인미의 사진(제일 가운데 여인이 엄인미임) 엄인미가 결혼한 뒤 과연 마씨네 마님의 병세가 나아졌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엄인미는 임신했고 더 이상 서당으로 다닐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마씨 가정에서는 한 영국인 목사를 청해 집에서 엄인미한테 영어와 사회교제 등을 배우주게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서당으로 다닐 수 없는 엄인미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다. 그 시기 그래도 엄인미의 지인으로 돼 준 것은 <조씨네 넷째 딸>로 불리는 남편의 형수였다. 그녀는 늘 엄인미와 함께 상해 교외로 나가 산책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도 하면서 동반해주었다. 둘은 비록 동서 사이었지만 친자매마냥 아주 자별했으며 그들이 몰고 다니는 승용차 역시 멋지고도 고급스런 무개차로서 한 대는 <조씨네 넷째 딸>이 운전했고 다른 한 대는 엄인미가 운전했다. 이렇듯 결혼 뒤 엄인미는 <조씨네 넷째 딸>한테 많은 것을 의지하며 마음의 평형을 잡으려 했지만 기타의 여건은 여전히 많은 실망을 가져왔다. 마씨네 가문은 비록 부유하였지만 전형적인 봉건식의 가정이었으며, 이는 서양의 문명에 눈을 뜬 엄씨네 가문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들 부부 또한 한명은 봉건전통가정의 <나으리>였다면 다른 한명은 발랄하고도 개방적인 신 여성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유와 관념도 제각각이었고 음식습관마저도 도무지 융합될 수 없었다. 엄인미의 낭군 마령랑(马令郎)은 비교적 소탈하게 생겼지만 성격상 봉건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편으로 개인생활상 여자들과의 관계가 난잡했으며 그의 주위에는 생활습성이 나쁜 친구들이 늘 붙어다녔다. 그러한 그의 생활습성은 엄인미와의 결혼생활이 지속될수록 점점 드러났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엄인미가 주장하는 신문화 및 개방형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엄인미는 결연히 신랑 마령랑과의 이혼을 결심했다. 이 역시 그 때의 시대로서는 흔치 않게 봉건적 혼인에 대한 현대여성의 대담한 도전이었다. 바로 이 시기, 엄인미는 송애령(宋霭龄)의 큰 딸 공녕의(孔令仪)와 각별히 가깝게 지낸다. 명문가족끼리는 세세대대로 교제한다고 공녕의가 비록 엄인미보다 한 살 어렸지만 두 자매는 늘 가슴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공녕의는 엄인미의 불행한 혼인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더러 자주 공씨네 집에 와서 놀도록 하였으며 또한 공씨네 윤선(轮船)에 승선해 홍콩 등지에 가서 유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윤선에서 엄인미는 서양요리사한테서 제빵 기술을 습득, 자신이 직접 만든 빵을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여사한테도 드렸는데 송미령 여사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평소 엄인미는 송애령 여사한테 <부인> 하고 깎듯이 불렀지만 그럴 때마다 옹애령 여사는“너도 녕의처럼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구나”라고 했다. 이는 송애령 여사가 엄인미를 친딸처럼 생각하고 있었음을 의미했을뿐만 아니라 엄씨 가문과 공씨 가문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말해주기도 했다. 또한 송씨 가문과 공씨 가문 모두가 엄인미의 이혼결심을 지지했으며 그녀가 다시 분발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고무 격려했다. 태평양전쟁 전야, 엄인미의 수양어머니 성관이(盛关颐)가 상해를 떠나게 되어 신강화원 15번지(新康花园15号)의 주택이 비어있게 되었다. 상해를 떠나면서 성관이는 엄인미가 이 주택에 기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인부들을 청해 이 주택을 새롭게 수건하게 하였다. 이 시기, 조계지내에서의 일본의 세력은 날로 팽창하였다. 아울러 엄인미가 들려고 했던 신강화원 15번지의 이 주택 역시 일본관원들이 사무실로 쓰려고 노리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하루, 이 주택을 보러왔던 일본인 야마모토는 엄인미의 미모를 보고는 더욱 끈질기게 <주택임대>를 명목으로 치근덕거렸으며 그날부터 매일 이 주택으로 들락거렸다. 이에 엄인미는 재삼 주택을 임대해주지 않는다고 밀막아 버렸지만 야마모토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모 친일주구 한명은 엄인미를 찾아와 “야먀모토는 관직이 높은데다 미혼이기에 그와 결혼하면 낭패될 것이 없다”고 구슬리기도 했다…… 그 뒤 엄인미는 화를 피하려고 더 이상 신강화원 15번지로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러 있었지만 야마모토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친정을 찾아와 치근덕거렸다. 이어 엄인미가 숙부의 집에 가 피신해 있자 야마모토는 또 숙부 집 주위에 감시망을 설치하였다. 그러자 엄인미는 다시 몰래 작은 고모가 출가해 있는 주씨 가정에서 몰래 숨어있어야 했다. 엄인미가 주씨 가문에 숨어있던 그 나날, 주씨 가문의 모든 이들이 가슴을 움켜잡고 숨 죽이며 긴장해하던 나날들이었다. 한편, 송애령의 딸 공녕의는 엄인미의 신변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을 시켜 엄인미를 중경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떠날 날자가 다가오자 뜻밖으로 엄인미의 원 시가인 마씨 가정에서는 그녀가 자식을 데리고 떠나지 못하게 했고 엄인미 역시 아들애와 떨어지기 싫었다. 결국 엄인미는 계속 상해에 남기로 했다. 일본인 야마모토가 계속 치근덕거리는 상황에서 상해에 홀로 남아 있는다는 것 역시 장구지책이 못되었다. 이러자 엄인미의 가까운 친척들은 상론한 끝에 유일한 방법은 하루 속히 훌륭한 신랑감을 찾아 엄인미를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그 3개월 뒤, 과연 엄인미와 잘 어울릴 수 있는 신랑감이 나타났다. 바로 엄씨 가문과 세세대대로 가깝게 지내왔으며 역시 상해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이씨 가문의 공자- 이조민(李祖敏)이었다. 광화대학 경제학부(光华大学经济科)를 나온 이조민은 학식이 연박하고도 본분을 잘 지키었으며 대중성냥공장(大中火柴厂)의 보스이자 미혼의 몸이기도 했다. 혼례식 날, 만일의 경우 일본인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울 것이 염려되어 이씨 가문에서는 10명의 경호원을 배치했으며 혼례도 아주 간소하게 치러졌다고 한다.그 일례로 엄인미의 결혼사진 중 신랑와 신부가 나란히 등장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마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는 오늘까지 엄인미가 가장 유감스러워하는 일이기도 했다. 결혼 뒤, 엄인미의 결혼생활은 아주 행복했다고 한다. 둘은 서로 극진히 상대를 사랑했으며 일본인들도 더 이상 찾아와 시끄럽게 굴지 않았었다. 새 중국이 창립된 후 엄인미는 애국운동에 적극 가담, 나라건설을 위해 자신이 솔선적으로 헌금했을 뿐만 아니라 공상업계의 모금계획도 적극 추진했다. 그러면서 이런 애국운동중 공상계의 유념의(刘念义), 영의인(荣毅仁), 성가년(盛康年) 등 거물들의 믿음직한 동반자로 되기도 했다. 한편 미국 하와이에 가서 당시 그 곳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장학량과 조일획(조우쓰 쇼제-赵四小姐)를 탐방했는가 하면 또 워싱턴에 가서 채문치 장군(蔡文治将军)을 만나뵙기도 했다. 미국방문시 엄인미는 그 시기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도 만나 뵐 계획을 하였으나 송미령이 대륙에서 온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하지만송미령은 공녕의한테 부탁하여 엄인미한테 고급옷 한 상자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8-02-16
  • [유래상식] 중국 전통명절 춘절의 세시 풍속
    [동포투데이] 4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춘절은 중국의 최대의 전통명절이다. 중국 민간의 전통적인 춘절은 음력 12월 23일 또는 24일에 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부터 시작해 정월 대보름까지 약 한달간 지속된다. 중국의 춘절은 명절기간이 길 뿐만아니라 설 풍속 또한 아주 다양하다. 부뚜막 신이나 조상에게 제를 지내고 집안 청소를 하거나 집안을 새롭게 장식하고, 주련을 붙이고 섣달 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폭죽을 터뜨리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설 세배를 하러 다니고…그야말로 짙은 민족적 특색을 지닌 세시풍속이 아주 많다. 중국인들은 음력 12월 23일 아니면 24일날을 '소년'(小年)이라고 부르는데 이날부터 설 모드에 들어간다. 새해를 맞아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고 주련을 붙이며 설 맞이 음식과 일용품들을 부지런히 장만한다. 그믐날 저녁이면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앉아 '年夜飯', 제야음식을 먹으며 가족 오락도 하고 설맞이 야회도 시청하며 또 0시를 기다려 밖에 나가 폭죽을 터뜨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 첫날에는 친지나 친구 집으로 설 새배를 간다. 일찍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설 세배의 풍속은 당나라와 송나라에 이르러 아주 성행했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지금은 직접 찾아가 새해 인사를 나누는 설 세배 외에도 전화나 문자로 설 인사를 하는 경우가 날로 보편화되고 있다. 설이면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두둑한 세뱃돈을 받는다. 또 중국 북방의 민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이면 재물신에게 제를 지내는 풍속을 이어가고 있고 남방에서는 정월 초닷새에 재물 신을 맞이해 새로운 한 해의 재운을 기원한다. 춘절의 옛 풍속을 본다면 크고 작은 가게들이 정월 초하루날부터 휴업하다 초 닷새에 다시 개업한다. 이는 재물신이 왕림하는 정월 초 닷새에 개장하면 한 해 동안 재운이 왕성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월 초엿새부터 정월 보름까지 전통적인 세시풍속 행사가 아주 많다. 오늘 까지도 중국인들은 정월 대보름 원소절까지 쇠어야 설명절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원소절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은 등롱을 내거는 것이다.원소절의 등롱구경은 당나라 때에 아주 성행해 전민적인 페스티벌로 됐다. 당현종 시기에는 장안성에 5만여개의 등롱이 내걸리고 황제의 명령에 따라 20칸, 약 450미터 높이의 거대 등루가 세워져 가관이였다고 한다. 원소절에는 일가족의 단란한 모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여러가지 소를 넣어 둥글게 빚은 찹쌀음식인'원소'를 먹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은 송나라 때부터 유행되었다. 섣달 '소년'에서 시작해 정월 대보름 원소절까지, 중국인들의 춘절은 그야말로 명절 인구 대이동을 불러일으킬만큼 즐겁고 성대한 최대의 명절이다. (중국국제방송 번역/편집:주정선)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8-02-15
  • 헐, 바닥이 드러나네
    ●진 언 국민일보, 뉴스시 등 신문에 “北 선수만 '삼성 올림픽 스마트폰' 못 받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났기에 스쳐보니 기자의 저의도 비리거니와 북에 관한 기사라고 범벅이에 쉬파리떼 같이 달려들어 댓글(1636개)을 단 애국지사들의 쾌거가 어처구니 없다 못해 우습게도 눈물겨워질가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3000명가량 선수들은 삼성 갤럭시 S8 스마트폰과 나이키 유니폼 등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북한 선수 22명은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의 제재 대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북한 선수단에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각종 제재에 위반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이에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유니폼은 미국의 나이키사가 제작한 것이 아닌 핀란드 회사가 만든 유니폼을 사용하도록 했다. 하키 스틱 역시 핀란드 회사가 제작한 것을 사용하는데 ‘임대’ 형식이며 북한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를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 ▲ 북선수단과 응원단 기자씨가 모쪼록 이런 글을 올린 것이 선각자의 발견인지, 악어의 눈물인지 직접 물을 수는 없으나 그 저의가 참 비릿함은 분명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댓글을 다느라 팔을 걷어부친 누리꾼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 경이원지하게 되는데 입을 벌리면 평화통일이니 민족융합이니 떠들어치는 국내상황에 비추어 보면 일본놈들이 이래서 “반도인”은 안된다구, 죠센징은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고 나발분 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래에 참으로 경탄스러운 댓글 1351개 중에서 일부를 베껴본다. ※ 개불쌍 뭐하러 줘? 가면 다 뺏어서 못된일에 사용할텐데. ※. 고마움도 모르고 또 뒤통수 칠 것들이다..줄 필요없다. 우리 국민들 냐눠줘라~~ ※ 줘봤자 외화벌이용으로 수거해 되팔겠지. 아님 고위간부가 가져다 쓰거나. ※ 지상낙원에서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있나 ※ 한창 휴대폰에 관심이 많을 세대인데 마음이 야좋네요. ㅠㅠ ※ 줘도 쓰지도 못하는 동네고 줘봤자 간부들에 뺏겨서 다 팔리고 그돈은 ○○은 사치품 사가는데 쓰이는데 당연하지. ※ 이젠 무상 지원 없애야 한다. 핵무기 만드는 잘사는 나라에 왜 공짜로 주는지 참 알수가 없다. 북한 선수들 잘 먹고 잘 산다. ※ 그렇게 퍼줄돈 있으면 국내어려운 가정이나 불우아동들에게 사용해라! ※ 저것들한테 숙소랑 식사제공하는것도 짜증난다 ※ 구충제나 주자 초코파이좀 던저주고 ※ 줘도 쓸줄도 모르고 가져가봐야 다 뺏긴다 외화벌이 해서 핵탄두 만드는데 보태 겠지,,, ※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하면서 이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건 뭔데? 니가하면 무죄이고 내가 하면 유죄냐? 뭐 이런 개 같은경우가 다 있냐?(량지가 있음) ※ 주지마 가져가봐와 ○○이줄텐데 왜주냐 북한애들주느니 우리영세민주시오 ※ 미친 빨괭이 따위에게 핸드폰이 가당키나 하나 옥수수나 던져줘 ※ 이런 취급을 받는 무리들을 상전으로 주공으로 모시니 나라의 운이 다 되었다.... ※ 걍 돌려보내 시끄럽게 하지말구 ※ 주는거 없이도 너희들 북한은 시르다 ※ 짝짝짝 지금 이라도 ♬♬ 는 쫓아버리자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걸치는 양아치 한테 무슨 대접을 해 ※ 초코파이나 처먹으라고 던져줘라 ※ 줄 필요없다 폰 아깝다 차라리 자원봉사에게 주라 ※ 아니 유니품도 대주냐 북이할수있는것이 뭐냐 그런걸왜 우리가 대주냐 이해불가다 ※ 이럴꺼면 뭐하러 올림픽 불러 참가하도록 한거니(어쩌다 인물났네) ※ 적국인 북한놈들한테 왜 비싼 삼성스마트폰을 준단 말인가? 뺨을 서너차례 때려주고 싶은데..... ※ 비용한푼안들이고 오는주제에도 모가지 힘주고 다니는데 안주는게 맞다.. 여기서 민족이란 단어 씨부리는넘들 아가리를 찟어버린다..민족이 뭐냐??? 족발이냐?? ※ 북한은 외국이라 본다. 언제까지 외국 북한에게 퍼주고 끌려 다닐건지?? ※ 적국국민을 왜 줌? 동맹국 미국민한테나 하나 더 주지 ※ 북괴놈들 폰 못 가져가는 것도 걱정이냐 별 더러운 기레기를 다보겠네 너 문빠냐 북한놈 챙기게 ※ 추운데 고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었으면 좋겠다. ※ 누구누구의 논리라면, 북한 선수단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를 제공하면 밥 먹은 힘으로 ○○은 동지를 위해 충성하면서 핵무기 만드는 데 힘을 합해서 우리의 종주국 미국, 일본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 전세기허용,공연장 무료제공,유니폼 제공,체제비 all 부담하면 됐지,, 갤S8까지 줄 필요는 없어! 문재앙 주사파 촛불폭도들! UN제재 결의안 반하는 꼼수 부리지마라,, 국제신뢰 바닥인데 한미동맹마저 완전 파괴돼 수습불가능한 고립무원 국제왕따 된다! 이번올림픽으로 북한이 얼마나 괴씸하고 이기적인 놈들인지 다시한번 느낀다. ※ 당연하다 ᆢ적국 이라는것 잊지마라 ※ 하여간 희한한 짓거리 해대는 이상한 것들 땜시 대한민국이 엿같은 짓하는 나라가 됐으니...(그래도 생각이 올똘한 사람이 있네) ※ 잘한다 선은 확실히 긋는게 좋다 ※ 빨 개이라 재앙이가 줘라 같은 빨개이 고향 ※ 추접구로 뭐하는짓이고? 선수들한테 그럴거 뭐있냐? 초코파이 던져주라는것들 ~ 저질인지 ,수준이 낮은건지,어린애 인지...( 량지가 있는 사람의 당연한 질타) ※ 그 넘들 먹여 주고 재워 주는것 만도 고맙지 그런걸 왜 줘 ! 주면 그게 걔덜꺼 되니 ? 전부 압수 해서 똥돼지 떨거지 넘들이 가져 가겠지 ! 못 줘서 아쉽냐 ? ※ 주지마라. 임대형식이라도 줘서는 않돼. ※불쌍한 북괴선수!가장 좋은 휴대폰 갖을수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태여난 땅이 문제구나.그래도 몇일간 잘먹고 잘놀았잔여.... 중구난방의 고견들을 여기까지 옮기고 접어두련다. 썩은 나무 몇그루를 보고 온 수림이 썪었다고 말하면 안되지만 일엽지추라고 작은 남녘땅에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고염무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자기 국가앞에 책임지고 나서는 우국지사들이 저리도 많음에 감탄이 묻어나오고 한편 저리도 잘난 똑똑이들이 왜 댓글질이나 하면서 표현욕망을 만족시키는지 곤혹스럽기만 하다. 미운정도 고운정도 정이란다. 미워도 무서워도 한피줄 겨레이다. 장기간의 분단상황에서 이질화되었더라도 피는 영원히 물보다 진하건만 오히려 불구대천의 원쑤로 절치부심하며 이를 뿌득뿌득 가는 양자가 대견스럽지가 않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초야에 묻혀 육도삼략을 썩인다고 생각하니 싱거운 개탄이 나온다. 옆구리 터진 도토리만큼한 그릇들이니 그럴 수 밖에 있겠냐 하면서도… 조선민족의 전통속담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거늘, 주지도 않겠다며 웬 성화인가? 아무리 삼성스마폰이던들 그것으로 일국의 재정을 보탤 수 있단말인가? 스마트폰 22개 값이 얼마냐? 중국에서 웬간만한 사람이면 단번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따위로 네티즌들이 앞다퉈 목에 핏대를 세우고 쾌지나 칭칭하며 멋에 겨워있다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못하는가? 말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고 한다. 그러나 말한마디로 말하는 자의 위인됨이 확인된다. 아무튼 그 놀라운 동족증오병에 열뜬 투사들을 두고 혀가 홰홰 내둘러진다. 트럼프가 알고 찾아와 어깨를 도닥여주고 엄지를 내흔들며 치하를 하지 않으면 공념불이 될듯, 그리고 한다하는 삼성이 고작 22개의 스마폰을 못주는 이유를 무슨 제재타령으로 뭉그리지만 결국 세계인들이 짝이 없는 쪼잔함에 갈채를 보낼만도 하겠다. 유엔총부에서도 유엔결의를 잘 집행한다고 큼직한 상장을 보내줄가? 아무튼 이를데 없이 찌질한 그 작태에서 국민의식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어이 없지만 감탄하던차 동족증오병 환자들에게 곰팡이 낀 말로 일침을 가하고싶다. 알만한 사람이 다들 알고 있고 정설이 아니라 와전된 것이라 하지만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쳤던 “예언”을 여기에 옮기나니 그저 코웃음만 치고 그냥 간과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한번 다시 읽어 보시라. 그래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구제불능이구,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 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아베 노부유키가 패망하면서 조선국민에게 쏜 저주의 화살이 자신으로 향하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여줘야 하건만 오히려 그들과 합창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우리 선조님들이 오늘을 내다 본듯 경계하여 남기는 경세지언일진대 일심전력하여 단합된 배달민족의 홍익인간을 세계만방에 떨친다면 아니 좋은 일인가? 모래알은 아무리 많이, 높이 쌓여도 그냥 모래무지이지 장성이 못된다. 뭉쳐도 어떨가 하는 위태위태한 판에 호시탐탐하는 외세에 어부지리를 마련하려고 광분하며 기세충천하니 타국에 백발로옹이라도 넘 감격해서 즉흥적으로 끄적거려 본다. 시끌한 인간세상 탈도 많다만 분단족 어쩌다 잘해 보자는데 천하에 몹쓸 잡것들 납뜨누나 옆구리 터진 도토리 심통이라 그리 보채며 성화를 부리느냐 뿌리 깊은 노예근성 못말려도 열강들 멋대로 가지고 노는데 자존은 없더라도 치욕도 없냐 ※ 본지에 기고되는 논문이나 나의주장, 칼럼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8-02-15
  • 뉴욕타임스 CEO "종이신문 10년이면 사라진다"
    ▲ 뉴욕타임스 종이신문 [동포투데이] 10년내에 종이신문이 아예 사라질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 CEO 마크 톰슨은 현지시간 13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인쇄물 형태의 뉴스를 접할수 있는 시기는 약 10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종이신문이 최대한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종이신문이 사라진 이후에도 뉴스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회사를 키워갈수 있도록 디지털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신문 발행과는 무관하게, 24시간 온라인 뉴스에 주력한 지 오래다. 현재 구독자 350만명 가운데 온라인 구독자는 250만명으로서 종이신문 구독자를 넘어선 상태이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메리카
    2018-02-15
  • 평창올림픽 성공기원! ..‘2018 韓·中 설 맞이 문예야회’ 성황리에
    ▲ 민들레사랑예술단 표연창 [동포투데이] 한중포커스신문(대표 문현택)이 주최하고 서울 서남권글로벌센터(센터장 김동훈)와 민들레사랑예술단(단장 이옥희)이 주관한 ‘2018 한중 설 맞이 문예야회’가 11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한 이번 행사에는 재한중국동포·지역민·다문화가정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들레사랑예술단’과 중국 국가1급배우 이옥희, 한국 인기가수 성민호, 아이돌 그룹 허니듀·TMK 등 한중 연예인들과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여 노래, 연창, 단막극, 무용, 후원금 전달 등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주최측 문현택 대표는 대회사에서 “이번 행사는 한중수교 25주년을 기념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기원과 아울러 한중간의 우호증진과 한중동포간의 화합, 지역사회의 공존을 위한 場을 마련하고 우리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해 동포들과 다문화가정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고 말했다. 주관측 김동훈 센터장은 인사말을 통해 “무술년 새해, 동포여러분들에게 어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는 일들이 가득하시고, 소원하시는 모든 일들 다 이루시길 바라며, 서남권글로벌센터와 이주민센터친구의 모든 직원들이 함께 여러분의 힘찬 한 해를 응원하겠다”며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우현 前 고용노동부 서울 남부·관악지청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이 행사가 평창올림픽 기간 개최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고, 또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마련된 이 자리가 동포 여러분들과 다문화가정 등 모든 분들에게 위로의 시간이 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문현택 대표가 어울림주막학교 강성봉 교장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특히 고용노동부 김영주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박영선 국회의원 등이 영상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2부 문화공연은 시종 감격적이었고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였다. 특히 중국 국가1급배우 이옥희 선생님과 김미령 배우의 단막극 ‘못 생긴 나무 산을 지킨다’는 우리사회에 효 문화가 메말라 가는 현실 속에서 인성과 도덕성을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저 멀리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 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관객 전체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무용 ‘백년 아리랑’, 연변가요 연창, 노래 ‘타향의 봄’, ‘처녀의 노래’, ‘바다의 노래’ 등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남녀 표연창 ‘대림으로 놀러옵소’는 그동안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던 동포사회와 밀집지역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아진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중국동포 김모씨는 “한국 온지 15년만에 가장 감동 받은 무대였다”며 “설을 맞이해 우리 동포들에게 이렇게 큰 선물을 주셔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재한동포사회와 지역사회, 그리고 한중문화예술교류에서 더 큰 기여와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단막극 '못 생긴 나무 산을 지킨다'. 출연 : 이옥희, 김미령 한편 이날 행사는 △(사)동포교육지원단 △(주)동북아체인본부 △한중 실크로드 국제교류협회 △김안과병원 △서울 미치과 △대림성모병원 △(주)동성크리너 △한중다문화봉사회 △새별여행사 △법무법인 안민 △크로앙스웨딩홀 △법률사무소 친 △화신부동산 △경성 양꼬치 △안도 중국식품 도매부 △김뚱보 보신탕 △(주)상조1번지 효은 △연길냉면 등이 후원하였으며, △연변TV 한국지사 △동북아신문 △중국동포타운신문 △흑룡강신문 △길림신문 △동포세계신문 △중한뉴스 △동포투데이 △중국동포소식지 등 동포언론사와 △중국동포한마음협회 △(사)재한동포연합총회 △KC동반성장기획단 △한중리더스포럼 △(재)세계합기원재단 △(사)한중경제친선교류협회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 △영등포외국인자율방범대 △CK여성위원회 △재한동포문인협회 △국제문화예술교류회 △신신이민행정사 △북경행정사 △남구로행정사 △동해여행사 △중국재한연변향우연합회 △벌리향우회 △꽃망울회 △목단강조선족중학교동문회 △민들레사랑회 △(주)뚱딴지콘텐츠 △한화성룡예술단 △북경전화국 등 단체 및 업체와 △한국평생교육원 △뉴스직업전문학교 △수원 제일전기직업전문학교 △대림동포기술학원 △서울국제학원 등이 협찬하였다.
    • 뉴스홈
    • 국내뉴스
    • 사회
    2018-02-15
  •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집에서도 학습할 수 있어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2018년 2월 12일부터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 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도 학습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밝혔다. 그 동안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수강중인 이민자들은 본인이 신청한 학습기관에 출석하여 집합교육을 들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학습을 할 기회가 없었다. 임산부나 장애인처럼 거동이 불편하거나, 학습기관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민자들이 교육을 100% 참석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한, 몸이 아프거나 갑작스런 이유로 교육에 참석하지 못한 경우 별도 보충 학습과정이 없어서 해당 교육내용을 혼자서 공부해야 했다. 법무부는 이런 불편을 해소하고자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육과정을 동영상으로 별도 제작하여 사회통합프로그램 홈페이지(www.socinet.go.kr)나 유투브(“사회통합프로그램”으로 검색) 등 온라인으로 스스로 보충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참여자들은 최종 이수 요건인 80%만 출석한 후 나머지 부분은 동영상 강의를 통해 학습내용을 보충할 수 있고,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선택적으로 반복 학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민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진행을 비교적 쉬운 언어로 사용하였고, 강의 내용도 베트남어‧중국어‧캄보디아어‧러시아어‧필리핀어 등 5개 언어로 자막 처리하여 이해도를 높였다. 동영상 강의는 1회 10분 분량으로 총 20차시(정치, 경제, 법 등) 편성되며, 별도 회원가입 절차 없이 학습 가능하다.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임산부나 원거리 거주자들이 앞으로 집이나 회사에서 원하는 시간에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어 영주권이나 국적취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하여 이민자들의 국내 적응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18-02-15
  • "측근 국정개입" 핵심인물 최순실- 징역 20년
    [동포투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삼성 등 대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최순실씨가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13일 선고 공판을 열고 최씨에게 이같이 선고하고 벌금 180억원과 추징금 72억원을 아울러 선고했다. 최순실은 당일 법원에서 상술한 선고를 들었다. 최순실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한국 대기업들이 그녀가 관리하는 재단에 강제로 기부하도록 하는 등 여러가지 죄명이 성립되며 더우기 이런 범죄사실은 전임 대통령인 박근혜와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법원은 밝혔다. 법원은 최순실이 한국 최고권력자의 개인친분을 기초로 직권을 남용해 뇌물수수 및 기업에 대한 협박을 했다면서 측근 국정개입 사건은 국정질서를 혼란에 빠뜨렸고 이는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사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최순실은 조사를 받는 기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끝까지 개인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뉴스홈
    • 국내뉴스
    • 사회
    2018-02-14
  • 中 시진핑, 춘제 앞두고 민생행보..."초요사회 전면 실현" 강조
    ▲ 춘제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은 쓰촨(四川)을 시찰하며 각 민족 간부·군중들을 위문하고 전국 각 민족 인민들에게 아름다운 새봄의 축복을 전했다. (신화통신)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춘제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쓰촨(四川)을 시찰하며 민생행보를 이어갔다. 신화통신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시진핑 주석은 사천성 당위 서기 왕동명, 성장 윤력을 대동하고 량산이족자치주, 아바장족챵족자치주, 성도시 등지를 찾아 촌과 마을, 기업, 사회구역에 심입하여 빈곤해탈 부축 난관공략과 경제, 사회 발전 사업과 문천지진 피해복구 상황을 고찰했다. 시주석은 2월 11일 량산이족자치주(凉山彝族自治州) 삼하(三河) 등 3개촌에서 현지 빈곤 상황과 맞춤형 빈곤 지원 조치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시주석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바로 여러 민족 인민이 모두 행복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초요사회 전면 실현의 가장 간고하고도 무거운 임무가 빈곤지역, 특히는 심층 빈곤 지역에 있으며 곤난이 아무리 커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초요사회 전면 실현의 길에서 어느 민족, 어느 가정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 춘제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은 쓰촨(四川)을 시찰하며 각 민족 간부·군중들을 위문하고 전국 각 민족 인민들에게 아름다운 새봄의 축복을 전했다. (신화통신) 올해는 ‘5.12’ 문천 특대지진 10돐이 되는 해이다. 12일 오후 시주석은 문천 특대지진 진앙지인 아바주 문천현 영수진 선구중학교 유적지를 찾아 문천 특대지진 조난동포와 지진대처와 재해구조에서 희생된 영웅들에게 헌화하고 참배했다. 그는 꼭 지진유적지를 잘 보호하여 중요한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3일 오전, 시주석은 사천성 당위와 정부의 사업회보를 청취하고 사천의 제반 사업에서 이룩한 성적에 대하여 긍정해 주었으며 사천성에서 19차 당대회 정신과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을 깊이 관철하고 당중앙의 결책과 포치를 전면적으로 시달하며 적극 진취하고 열실히 일하면서 사천 관리와 진흥을 새로운 단계에로 추동하기를 희망했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8-02-1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