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2(일)
 

2. 공단에 꽃이 피어요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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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동포 비자가 일년후이면 만기가 된다. 한국에 계속 체류할수 있는 재외동포 비자를 받기 위해 천안의 한 자동차부품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1월 말이라 많이 내린 흰눈이 땅위에 수북히 깔렸다.

이런 추위가 언제 지날까하며 무척 겨울이 지겨웠다. 천안 성거읍의 자그마한 공단의 길가에는 누가 오지가 아니랄가봐 드릅나무들이 앙상하게 자라고 있었다.

 
출근 첫날 나는 여섯시에 일어나 간밤에 내린 공장의 눈을 치우는 일을 도왔다
. 작동하는 사출기의 소음과 녹아내리는 플라스틱제품의 매캐한 냄새가 공장안을 꽉 메웠다. 날씨가 추워 한사람당 전기난로 한 대씩 사용할수 있었다. 한국에서 흔한건 전기와 실장갑이였다. 한국에선 거의 대부분 주민들이 겨울철이면 전기로 난방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국민의 소득수준에 견줘볼 때 전기요금은 많이 저렴했다. 또한 공장 도처에 성한 실장갑들이 버러져 있는것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있을수 없는 광경이였다.

공단에는 동남아사람들이 많았다. 후에 나의 친구들이 된 스리랑카의 미트라세나씨, 다미가씨, 나르크씨 그리고 미얀마의 쪼우씨, 태국의 위칫씨 등은 생산팀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다. 미트라세나씨와 다미가씨는 스리랑카는 인도 남부의 섬나라이고 바다가 청정수여서 낚시하


는 최적지이고 병원과 학교는 전부 무료라고 하면서 자기나라야말로 제일 살기좋은 지상락원이라며 홍보를 아끼지않았다
. 쪼우씨는 내가 마시는 자스민차가 떨어져 쩔쩔매는 것을 보고 미얀마차를 가져다주는 인정이 있는 젊은이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물건을 사달라는 심부름도 잘 부탁하는 스스럼없는 사람이여서 한편으로는 번거로우면서도 좋았다. 차를 즐겨마시는 나는 여러 가게를 찾아다니며 차를 몇번 샀으나 모두가 짝퉁이었다. 한국에도 주의하지 않다간 나처럼 짝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할것이다. 한번은 커피도 짝퉁을 사서 못마시고 그냥 버려야 했다. 공단에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동남아 사람들과 조선족들도 더러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자동차는 더는 사치품이 아니고 그저 편리한 교통수단일뿐이였다.


하루 열시간이상 꼼짝 않고 서서 환한 전등불아래서 한손에 무거운 드릴을 쥐고 제품조립을 해야하였다
. 새로 입사하여 분쇄실에서 일하는 이ㅇㅇㅇ씨는 처음에는 실한 몸집때문에 쭈크리고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오는듯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일은 우리가 다하고 땀은 네가 혼자서 흘린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의 손발이 부어 있었다.


일요일날 이
ㅇㅇ씨를 데리고 경기도 송탄보건소로 데리고 가서 무료로 진단을 받고 약까지 공짜로 받았다. 그는 한국에 이런곳도 있느냐며 감탄했다. 송탄보건소는 한달에 두번씩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의료봉사를 하고 있어서 외국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었다.


ㅇㅇ씨는 중국에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부모님은 일찍이 젊은 나이에 병환으로 모두 돌아가시고 나어린 동생과 단둘이 세상에 남았다. 중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부모를 대신하여 농사를 지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못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쟁기보다 작은 네가 논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 많이 했으나 악착스레 견뎌냈다고 한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90년도에는 대련의 한국신발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그리고는 신발회사를 따라 산동 청도로 가서 몇년 하다가 복건성까지 내려갔다. 나중에는 부산 칸두칸등 산화 회사의 중국직원으로도 있었다. 공장 기숙사의 한 친구가 일요일마 다 서울에 사시는 어머니를 보러 가는 것을 힘들어해 하는 것을 본 이ㅇㅇ씨는 나라면 매일 찾아가겠다면서 자신의 어머니는 아직 미성년이었을 때 과부였던 외할머니가 시집가는 것이 싫어 오빠의 손을 잡고 단연히 가출해 한번도 외할머니를 다시 찾아가지 않았던 강인한 여성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 장가를 안간 이
ㅇㅇ씨에게도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가 있었다. 고향에 사랑을 나눈 처녀가 있었으나 십년전인가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시집을 갔다. 그후 한국에 간 이ㅇㅇ씨는 동창생모임에 참석했다가 극적으로 그 여자를 만났다. 이미 한국인 남편과 별거중이었고 남편의 괴롭힘을 피할려고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꾸고 거처도 자주 옮기고 있다는 사연에 이ㅇㅇ씨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였다. ㅇㅇ씨의 메신저 아이디는 ㅇㅇ아이다. 남방에 있던 자신의 조선족친구가 한족처녀와 결혼하고 잘 산다면서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월급을 타는 날 그는 길림시에 이발사로 있는 동생에게 미용원를 차리는데 보태라고 100만원을 송금하였다. 그는 잔업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며 악착스레 돈을 모으고 있다.


ㅇㅇ
국씨는 공장에 들어와 일을 한지 하루만에 잘렸다. 기숙사 친구들과 같이 가서 반장을 찾아가 청을 들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한국말이 서툰데다가 욱하는 성격이 있는 그가 반장의 눈밖에 났기때문이다.


ㅇㅇ
국씨는 한때는불량배이였다. 한번은 무리싸움하다가 대방의 칼에 복부를 찔렸다. 그는 밖으로 흘러나온 창자를 움켜쥐고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가정을 이루자 가장의 책임을 한다며 한국행을 택하였다. 남들은 일자리가 없네, 힘드 네하면서 빈둥대거나 마작놀이를 하는데 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조선족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일자리 구하는데 게을리지 않았다. 마침내 성환에 있는 다른 공장에 취직을 해서 안정을 찾았는가 하였는데 웬걸 아침 출근길로 공장을 찾아가니 공장건물이 간밤에 화재로 재더미가 되여있었다. 한주일도 안되여 다시 실직하였다. 이 공장 화재는 당지 TV방송에 뉴스로 방송되기까지 했다. 운이 되게 없어보이던 그는 지금 한 선반공장에서 월급도 많이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얼마후에는 한쌍의 젊은 커플이 새로 들어와 공장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주었다
. 조선족 ㅇㅇㅇ씨와 한국인 ㅇㅇㅇ씨였다. ㅇㅇㅇ씨는 미끈한 이목구비에 안경까지 착용하고 있어 영낙없는 인테리였고 날씬한 체격의 ㅇㅇㅇ씨는 청초한 한류스타같았다. 왜 이런 사람들이 공장에 왔을가 할 정도로 의문이 갔으나, 후에야 그들이 의류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ㅇㅇㅇ씨는 고된 일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하면서엄살을 좀 부렸으나 ㅇㅇㅇ씨는 아무말없이 꿋꿋이 참으며 일하고 있어 뭇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공장에 가서 잠시나마 일하자고 권유한 것도 ㅇㅇㅇ씨란다. ㅇ ㅇㅇ씨는 두사람의 월급은 ㅇㅇㅇ씨가 다 저축을 한다면서 지난달에는 ㅇㅇㅇ씨가 월급으로 자기에게 비싼 옷과 선글라스를 사주고 자신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하면서 금슬이 쏟아지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공장에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이루어진 커플이 그들 외 한쌍이 더 있었다.


심양에서 온 김
ㅇㅇ씨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불혹의 나이에 이 공장을 찾았다. 그가 항상 나이키같은 고급메이커 티셔츠를 입고 일하러 다녀 우리는 그가 부자인줄 착각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다 내 아들이 입던 낡은 옷들이다였다. 육체노동을 해보지 않은 그는 이 고달픈 생활에 거의 매일 펜잘을 먹으며 견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가련천하 부모마음이라는 중국속담까지 생겼을가. 그의 아들은 지금 한족고중(고등학교)을 다닌다. 조선족학교로 보내지 않은 원인은 자식이 한국에서 고된 일을 하는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고 중국땅에서 좋


은 일자리를 얻게 하기 위해서란다
.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아들이 대학가면 방학 때마다 한국에 데려와 한국어를 배우게 한다고 했다.

공단에 눈이 녹고 메마르고 쓸쓸해 보이던 땅우에 푸른 물감이 서서히 들더니 이름 모를 가로수들이 가지마다 연방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국과 중국에서만 주로 피여난다는 노란 개나리 꽃들도 만발하였다. 기나긴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따스함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현란한 꽃속에서 나는 불현듯희망이라는 단어를 읽어냈다. 춥고 힘든 인생을 참고 견디며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찡하고 해뜰 날 꼭 찾아올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지겹던 공장생활에도 애정이 느껴졌다. 희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이다.


이 화창한 봄날에 신이 난 김
ㅇㅇ씨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 곧 대학시험을 치른다며 희망을 찾아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조선족 한국생활수기 모음집 "빵상과 쭝국애 혀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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