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완 패퇴 후 시작된 대륙 침투작전…미국 CIA의 지원과 공산당의 역공, 그리고 사라진 정보원들

1952년 11월 29일 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임무를 수행하던 C-47 수송기 한 대가 중국 동북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기내에는 CIA 요원 존 다우니와 리처드 펙토, 조종사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임무는 중국 대륙에 침투시킨 정보원 한 명을 데려오는 일이었다.
그러나 항공기가 약속된 지점에 접근하자 지상에서 총격이 쏟아졌다. 수송기는 추락했고 조종사 두 명은 숨졌다. 살아남은 CIA 요원들은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이들이 구출하려던 정보조직은 이미 중국 측에 장악된 상태였다.
이 사건은 국민당의 대륙 반격과 미국의 대중 비밀공작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949년 12월, 장제스는 중국 대륙을 떠나 타이완으로 건너갔다. 난징과 상하이를 비롯한 주요 도시가 공산당 수중에 들어갔고 국민당 정부는 사실상 내전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타이완을 최후의 피난처로 여기지 않았다. 언젠가 대륙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이를 위해 군대와 정보조직을 재정비했다.
그 중심에 마오런펑(毛人鳳)이 있었다. 국민당 정보기관을 이끌었던 다이리(戴笠)의 후계자인 그는 대륙에 남겨둔 정보망을 복구하는 데 주력했다.
국민당은 푸젠성과 광둥성 연안을 중심으로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홍콩과 마카오를 경유하는 연락망도 활용했다. 이들은 인민해방군의 병력 이동과 해안 방어시설을 조사하고 현지 반공세력과 접촉했다.
그러나 대륙의 상황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 수립 직후부터 국민당 잔류세력과 지하조직을 색출했다. 1950년 시작된 반혁명 진압운동으로 단속이 강화되면서 비밀 연락망은 잇따라 무너졌다. 정보원 한 명이 체포되면 연결된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그해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장제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이 제7함대를 타이완해협에 파견하고 국민당 정권과의 군사·정보협력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1951년 CIA는 타이완에 서방기업공사(Western Enterprises Incorporated)라는 위장조직을 설치했다. 이 조직은 국민당 측과 협력해 정보 수집, 유격대 훈련, 대륙 침투작전을 지원했다.
당시 국민당은 대륙에 대규모 반공 유격세력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처음에는 이들을 활용할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실제 조직 규모와 활동 능력에는 상당한 의문이 있었다.
장제스와 미국의 계산도 달랐다. 장제스는 대륙 반격을 원했지만, 미국은 중국 공산당을 견제하면서도 또 다른 전면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
미국은 국민당과 별도로 중국인 반공세력을 활용하는 '제3세력' 공작도 추진했다. 1952년 중국 남부에 낙하산으로 투입된 첫 번째 공작조는 이후 연락이 끊겼다. 같은 해 7월 지린성에 침투한 또 다른 조직은 한동안 무전 연락을 유지했지만 결국 중국 측의 함정에 빠졌다.
그 결과가 11월 29일의 C-47 수송기 추락 사건이었다. 중국 측은 이미 침투조직을 장악하고 가짜 연락으로 항공기를 유인했다.
체포된 다우니와 펙토의 생존 사실은 약 2년 뒤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1954년 중국 법원은 다우니에게 무기징역, 펙토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펙토는 1971년, 다우니는 1973년에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을 국민당의 직접 지휘작전으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이 별도로 추진한 비밀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당 출신 인력과 중국인 반공세력을 활용해 대륙 내부의 저항을 일으키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장제스의 반격 구상과 맞닿아 있었다.
한편 중국 공산당도 타이완 내부에 정보망을 구축했다. 국민당 고위 장교 우스(吳石)가 공산당 측에 군사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1950년 처형된 사건은 타이완 역시 정보전의 안전지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장제스가 꿈꾼 대륙 반격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정보원들은 해협을 건넜지만 공산당의 통치체제를 흔들 만큼의 조직적 저항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1949년 국민당의 패배로 대륙의 국공내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타이완해협에서는 그 뒤에도 오랫동안 비밀공작이 이어졌다.
장제스는 대륙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반격 구상과 미국의 비밀작전에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이도 있었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도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역사에 남았지만, 이름 없이 사라진 정보원들의 삶은 오랫동안 기록 밖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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