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중국을 풍미한 혁명영화…악덕 지주 황세인까지 재평가하는 인터넷 주장
[인터내셔널포커스] 1970년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백모녀(白毛女)’는 잊기 어려운 작품이다. 가난한 아버지가 딸에게 붉은 머리끈을 매어주던 장면, 산속으로 도망친 딸의 머리가 하얗게 변한 모습은 당시 영화를 본 세대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는 가난한 소작농 양백로(杨白劳)가 사실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으며, 악덕 지주 황세인(黄世仁)은 억울하게 악인으로 몰렸다는 주장이 거론되고 있다.
‘백모녀’는 1940년대 하북성 일대에 전해지던 백발의 선녀 전설에서 출발했다. 연안 노신예술학원 창작진이 이를 가극으로 각색해 1945년 무대에 올렸고, 1950년에는 흑백영화로 제작됐다. 가난한 농민의 딸이 지주의 횡포를 피해 산속에 숨어 살다가 백발이 된다는 이야기는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품이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것은 문화대혁명 시기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기존 영화와 연극의 제작·상영이 엄격하게 제한된 반면, 당국이 승인한 혁명 모범극인 ‘양판희(样板戏)’는 집중적으로 보급됐다.
1965년 등장한 ‘백모녀’ 발레극도 그중 하나였다. 1970년 발레극을 촬영한 영상물이 제작됐고, 1972년에는 컬러 발레영화가 개봉됐다. 문화생활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시절, 희아(喜儿)의 붉은 머리끈과 백발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미지가 됐다.
특히 발레극은 중국 전통 민간음악의 선율과 서양 발레를 결합해 독특한 무대를 선보였다. 희아가 붉은 머리끈을 매고 춤추는 장면은 작품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학교와 문화단체에서도 관련 음악과 춤을 접할 수 있었던 만큼 ‘백모녀’는 극장 밖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1970년대 관객들이 본 ‘백모녀’는 초기 가극과 내용이 달랐다.
1945년 가극에서 양백로는 황세인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이다. 밀린 소작료에 이자가 붙어 빚이 늘어나자 황세인의 하수인 목인지(穆仁智)가 딸 희아를 대신 넘기라고 강요한다. 절망에 빠진 양백로는 결국 간수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반면 문화대혁명 시기에 보급된 발레극에서는 황세인에게 저항하다 살해당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당시 혁명문예가 강조하던 저항정신을 부각하기 위한 각색이었다.
‘백모녀’는 농민의 비극을 그린 예술작품이면서 토지개혁과 계급투쟁을 선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국가가 공연과 영화 보급을 지원했던 정치적 환경도 작품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적 성취와 정치적 목적이 함께 존재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양백로가 도박꾼이었다는 주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주요 판본에서 그가 갚지 못한 빚은 소작료와 관련된 채무다. 도박으로 집안을 망쳤다는 장면이나 대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황세인 역시 특정 실존 지주의 행적을 그대로 옮긴 인물이 아니라 민간전설과 당시 농촌의 갈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중 인물이다.
중국인들에게 눈물과 분노를 안겼던 ‘백모녀’가 이제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논쟁거리가 됐다. 시대가 달라지면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해석에도 원작이라는 근거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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