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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에서 퉁소까지…윤용철, 40년 음악 인생에 전국 국악대회 은상

  • 허훈 기자
  • 입력 2026.10.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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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문공단에서 작곡·지휘까지…한국 정착 초기 건설 현장 거쳐 다시 음악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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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회 영덕국악제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윤용철 씨(오른쪽)가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있다. (사진=윤용철 씨 제공)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에서 문공단 연주자로 활동하고 한국에서 음악 제작과 동포사회 공연을 이어온 윤용철 씨가 제20회 영덕국악제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여러 악기를 다뤄온 그가 이번 무대에서 선택한 악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악기 퉁소였다.


연주곡은 '풍전산곡'. 오랫동안 플루트와 단소, 피리 등을 연주해 온 그는 퉁소의 깊은 음색이 이 곡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윤 씨가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열 살 무렵이다. 16세 때 화룡현 문공단의 김철호 선생에게 단소를 배웠고, 이듬해부터 플루트를 익혔다.


1984년에는 중국 지린성 이도백하 임업국 문공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플루트와 전자올겐을 연주하는 한편 작곡과 편곡, 악대 지휘도 맡았다. 연주뿐 아니라 무대에 필요한 음악을 만들고 악단을 이끄는 일까지 두루 경험했다.


기자는 앞서 한 중국동포단체 행사에서 윤 씨의 피리 연주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연주곡은 중국의 유명한 피리 독주곡 '양편최마운량망(扬鞭催马运粮忙)'이었다.


채찍을 휘둘러 말을 재촉하며 곡식을 나르는 분주한 풍경을 표현한 곡이다. 빠르고 경쾌한 가락이 이어지자 눈앞에서 말들이 달리고 사람들이 곡식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 펼쳐지는 듯했다. 연주를 듣는 동안 어느새 그 풍경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윤 씨는 1999년 중국 다롄의 음반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중국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미디(MIDI) 음악 제작이 확산하던 시기였다. 이후 베이징에 있는 한국 금영 노래반주기 회사의 중국 대리점에서 미디 제작 업무를 맡아 2011년까지 근무했다.


한국에 온 것은 2011년 3월이었다. 음악 관련 직장을 바로 구하지 못하면서 생활은 쉽지 않았다. 운전 일을 하기도 했고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다. 간간이 공연 무대에 서며 기회를 찾던 그는 반년가량 지난 뒤 음악 제작 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2016년까지 한국의 반주기 회사에서 미디 제작 업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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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회 영덕국악제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윤용철 씨가 전통악기 퉁소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윤용철 씨 제공)


그가 퉁소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2022년 무렵이다. 여러 관악기를 오랫동안 다뤘지만 퉁소에 대한 첫인상은 지금과 달랐다.


“예전에는 퉁소를 나이 드신 분들이 가끔 부는 악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연주해 보니 단소나 플루트, 중국 피리보다 소리가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퉁소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그가 이 악기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이유였다.


퉁소는 대나무로 만든 세로 관악기로, 낮고 깊은 울림이 특징이다. 때로는 구슬프고 때로는 부드러운 소리가 이어진다. 윤 씨는 여러 악기를 거쳐 퉁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또 다른 음색을 발견했다.


한국에서의 음악 활동은 동포사회와도 이어졌다. 그는 재한조선족연합회 등 중국동포단체 행사에서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고 연주를 선보여 왔다.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공연 요청이 있으면 시간을 내 악기를 들었다.


“제 연주를 듣고 동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힘이 납니다.”


무료 공연을 이어온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에게 동포사회 무대는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관객들의 반응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은상 수상에 대해서는 신광필 씨와 박봉해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그는 퉁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민족의 전통악기인 퉁소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열 살 무렵 음악에 흥미를 느꼈던 소년은 중국 문공단의 무대에 섰고, 음악 제작자로 일하며 한국에 왔다. 낯선 환경에서 운전대를 잡고 건설 현장에 나갔던 시절을 지나 다시 음악 일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2년 무렵부터는 퉁소 연주에 더욱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포들과 동료 예술인들에게 짧은 인사를 남겼다.


“모든 가정에 평안과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은상은 퉁소를 본격적으로 연주한 지 약 4년 만에 거둔 성과다. 피리로는 분주한 들녘의 풍경을 그려내고, 퉁소로는 깊고 구슬픈 가락을 들려주는 윤용철 씨.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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