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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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올림픽 영광을 피멍으로... 레인보우합창단 무기한 활동 중단
    ▲ 세계인권선언 69주년 기념식 초청연주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다문화센터(대표 김성회)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이 21일(수) 오후4시 ‘고별연습’을 마지막으로 무기한으로 활동을 중단한다고 17일 밝혔다. 김성희 대표는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후원으로 꾸려가는 비영리 단체인데 MBC측의 충격적인 왜곡보도로 인해 더 이상 존속이 어려워 무기한으로 활동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3월 2, 3, 6일 총 세 차례에 걸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제창한 레인보우합창단이 ‘평창 참가비를 부당요청, 평창 패딩 부당회수’하였고 ‘아이들을 정치에 동원’하였으며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방송을 하여 의혹을 불러 일으킨바 있다. 2009년 창단한 레인보우합창단은 올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애국가제창, 2017년 한국 천주교 초청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공연, 2016년 뉴욕 UN본부 초청 ‘세계 평화의 날’ 기념식 공연 등 국내외 주요 무대에 서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어린이 민간외교사절단으로 활동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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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8
  • 옛 북경의 홍등가 - ‘8대 골목’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요즘, 옛 북경의 홍등가로 불렸던 <8대 골목>이 매체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식후 일담>으로 되고 있다. 옛 북경의 <8대 골목(八大胡同)>은 청국 청함풍(清咸丰)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광서(光绪) 시기에 와서 완성되었다. 광서시기에 와서 옛 북경의 기방(妓院)규모는 기본상 완정하게 형성되었으며 정부의 허가로 기방들은 4가지 유형에 따라 각각 문패를 내걸었다. 상류 급 기방은 <당(堂)> 혹은 <큰 지방(大地方)>으로 불렀으며 <청음소방(清音小班)>이란 명칭도 있었다. 이 중 <당>과 <큰 지방>이란 명칭은 명나라 시기부터 내려오던 것이었고 <청음소방>은 남방 상류기방의 이름을 따내온 것이었다. 다음 2류에 속하는 기방은 <당>, <큰 지방> 또는 <청음소방>보다 한 차원 낮은 2등 기방으로 <중간 지방>으로 불렸다가 후에는 <찻집>으로 개명되었으며 3류의 3등 기방은 <하처(下处)>로 불렸고 4류의 4등 기방은 <작은 지방>으로 명명되군 했다. 당시 옛 북경의 명기였던 색금화(赛金花)의 설법에 따르면 1류 기방의 기녀들은 반드시 <누회(楼会)>, <사범(思凡)>, <장정(长亭)> 혹은 <화접(化蝶)> 등 유형의 옛 곡조 한 곡씩 뽑아 부를 줄 알아야 했으며 2류 기방의 기녀들은 한 차원 낮아 곡조를 뽑을 필요는 없지만 차 문화만은 잘 장악해야 했다. 그리고 3류 기방과 4류의 기방은 <화연관(花烟馆)> 혹은 <야계처(野鸡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기녀와 기방들을 급별로 나누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또 정부측의 입장으로 보면 관리 및 세금표준을 정함에 있어서도 유리한 등 면이 있고 표객(嫖客)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돈지갑 사정과 신분에 따라 기녀를 선택할 수도 있으며 그 외 기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몸값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1등 기원은 강조되는 것이 많았다. 기방 대문은 일반적으로 정교한 벽돌공예로 장식되어야 하고 이름도 편액으로 되어야 했으며 문 위에는 기녀들의 <화명(花名)>이 적힌 게시판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전등이 없었을 시기에는 문 앞을 석유등 혹은 램프등 같은 것으로 밝혀야 했지만 광서 32년(1906년) 전등이 생겨서부터는 일률로 화려한 등불로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 1등기방은 매 기녀마다 독방이 있었고 그 독방의 시설도 매우 기녀의 신분에 맞게 꾸며졌으며 최초에는 붉은 나무 침대였다가 후에는 시몬스 침대가 주류를 이루었는가 하면 금동으로 된 침대와 조각으로 된 침대가 있는 기방도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런 기녀들의 방은 부잣집 규슈들이나 향수할 수 있는 침실을 방불케 하는바 방안의 분위기 또한 낭만적이어서 들어서자 인차 바지부터 벗는 하류 급 기방과는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 특점이었다. 일류 기방의 기녀들은 모두 <엄마>가 있다. 이 <엄마>는 전문 그녀들한테 밥을 제공하는 여인으로서 보모와 비슷하며 나이는 30-40대에 이르는 중년 여성들로서 이전엔 기녀로 있다가 연령이 많아지자 <2선>으로 물러난 여인들이며 기원의 규칙을 잘 알기에 눈치가 빠르고 손님과 기녀들의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한다. 이들 중 부분적 <엄마>들은 여전히 그제 날의 자태를 유지, 글짓기와 한 곡조 뽑기 및 서예와 비파연주 등에 능하여 하류 등급 기원의 기녀들과는 비길 바도 못된다. 그리고 2등 기방으로 불리는 <찻집(茶室)> 역시 어떤 기방은 근근히 작은 4합원(小四合院)으로 형성되었지만 어떤 기방은 서양풍미가 농후한 현대식 건물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단순한 급별로는 결코 무시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광서연간의 통계에 따르면 북경 <8대 골목>에는 도합 373개의 기방이 있었으며 이 중 일등기방과 이등기방이 178개 점으로 근 절반의 비율을 차지, 적지 않은 수자로 알려지고 있다. 북경 <8대 골목>의 기녀수자가 늘어남에 따라 무언중 이곳은 인기골목으로 거듭났으며 이 곳의 번영도 가속화되기 마련이었다. 한편 북경 <8대 골목>에서 처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남방의 기녀의 화명은 색금화(赛金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남방에서 온 기녀 소란(素兰)은 북경에서 유명기녀로 수많은 관신자제(官宦子弟)들이 그녀한테로 가서 즐겼지만 기실 소란보다 몇 년 먼저 북경에서 <남방 팀>을 선보인 것은 색금화였다고 소란 역시 인정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전하는데 따르면 당시 색금화가 북경에서 첫 선을 보일 당시 그녀를 수용한 기방에서는 동으로 만든 간판에 <남 팀 • 금화원(南班·金花院)>이란 글을 새겨갖고 내걸었으며, 그 날로부터 이 기방은 색금화를 찾는 표객들로 발길이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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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7
  • 시진핑 만장일치로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당선
    ▲ 3월 17일, 13기 전인대 1차회의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5차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시진핑(習近平)이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당선되었다. 사진은 시진핑이 헌법 선서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포투데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17일 시진핑을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오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5차 전체회의 표결에서 만장일치인 찬성 2970표를 받으며 재당선됐다. 국가부주석에는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규률검사위원회 서기가 선출됐다. 왕치산 전 서기는 찬성 2969표, 반대 1표로 리위안차오(李源潮)부주석 후임에 임명됐다.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에는 리잔수(栗战书)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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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7
  • 청년 취업 활성화에 취업역량전문가들 팔 걷었다!
    ▲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구리 프로젝트’ 취업 관계사 10개사 업무협약식 맞손 (뒷줄 왼쪽부터) 이희선 한국교육신문연합회장, 유종욱 컴테크컨설팅 이사, 이인용 샵네트웍스 대표, 주판준 한국강사연구소장, 최선희 HR비즈코리아 대표, (왼쪽 앞줄) 김연진 베트남어 동남아어 교육팀장(베트남어 강사), 정용희 NJ피플 대표, 이윤태 대한민국베스트브랜드협회 이사장, MJ플렉스 김시출 대표, 아들리안 유럽어 팀장(프랑스어 강사)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제자리를 밑도는 가운데 민간의 취업 관련 기업들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었다. 지난 14일 오후 강남르몽드어학원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이번 업무협약식(MOU)은 ‘개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교육신문연합회(회장 이희선)와 강남르몽드어학원(대표 이지하), 한국강사연구소(소장 주판준)가 주최·주관하고 (주)샵네트웍스(대표 이인용), (주)컴테크컨설팅(대표 유종현) (주)MJ플렉스(대표 김시출), (주)HR비즈코리아(대표 최선희), 대한민국베스트브랜드협회(이사장 이윤태), (주)MJ피플(대표 정용희), 교육그룹더필드(이훈민 교육본부장) 등 10개 기업이 참여했다고 15일 밝혔다.이날 업무협약식에서 이희선 한국교육신문연합회장이 국내외 청년 취업 시장 동향 과 활성화 방안의 필요성을 모두발언을 했으며, 이어 주판준 한국강사연구소장의 향후 업무협력 단체들과의 청년 취업 교육 캠프 및 해외 취업과 일자리 창출 상생방향에 대해 프로젝트 안을 발표했다. ‘개구리 프로젝트’는 겨울잠을 잔 개구리가 기지게를 펴듯 대한민국의 청년들도 그동안 잠들어있었던 역량을 겨울잠을 깨듯 취업의 봄으로 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케어하자는 의미다.컴테크컨설팅은 건설업 취업사이트 건설워커와 보건의료계 메디컬잡 전문사이트, 샵네트웍스는 매장관리와 판매직 채용정보 샵마넷, 화장품전문취업사이트 코스메잡 전문사이트, MJ플렉스는 언론·방송 전문취업포털 미디어잡, 디자인 전문 취업 포털 디자이너잡, MJ피플은 국내외 근로자 파견 전문회사로 현재 1000여명을 파견중이다. HR비즈코리아는 국내외 헤드헌터 전문 채용 대행 기업, 한국강사연구소는 국내외 HRD 기업 교육전문 강사 커뮤니티, 대한민국베스트브랜드협회는 기업체 제품 브랜딩 인증 사업, 한국교육신문연합회는 국내외 방송, 신문 50여 교육 관련 미디어 단체, 교육그룹더필드는 기업교육 HRD 컨설팅 및 해병대 캠프 극기훈련 행동훈련 전문업체이다. 한편 2001년 설립된 강남르몽드어학원은 프랑스어를 비롯해 베트남어, 독일어 등 15개 제2외국어 교육기관이다.인터넷취업연합회 이인용 회장은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필요하다며 또 추경(추가경정예산)을 검토하고 있다. 15일 조선일보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의 절반가량은 60~65세 노년층 일자리였고, 청년 일자리 창출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간 기업 부문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이 너무 부진해 관련 지원 예산 중 절반도 소진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청년 취업 부문에 민간 취업 관련 단체들이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간접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예산은 1조 8785억원으로, 이 중 1조 8454억원이 집행됐고 재정집행관리점검회의를 통해 재정집행실적을 매월 점검했다고 1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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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7
  • 천성적인 롱다리 여인 오늘날 인기 짱!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스웨리예의 한 여 모델이 한 쌍의 긴 다리로 하여 15만명에 달하는 팬을 갖는 인기인물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14일 영국 <데일리 메일(DailyMai)>이 보도했다. 올해 34살에 나는 그 여 모델의 이름은 이아이 오스터 그린(IaOstergren)으로 이미 두 자녀를 가진 여성이다. 그녀의 신장은 약 1.8미터로 이중 다리의 길이가 약 1미터에 달한다. 소시적, 남들과는 달리 롱다리(长腿)를 가진 이아이 오스터 그린은 그 다리로 하여 남들의 놀림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인스타 그램(Instagram)에 자기의 홈페지를 설치, 늘 자기의 롱다리 사진을 게시하군 하고 있으며 그 매 사진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네티즌들의 찬양을 자아내고 있다. 소시적 그녀는 자기의 롱다리로 하여 남들의 놀림을 당할 때마다 상심한 나머지 절로 <못생긴 새끼오리>로 생각하군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아이 오스터 그린이 자신의 생각을 바꾼 것은 2013년부터였다. 그때로부터 그녀는 자신의 롱다리를 사랑하기 시작했으며 매일 헬스방에 다니며 신체단련을 견지, 거기에서 헬스애호자인 토브욘 브롬달(Torbjorn)을 알게 되었고 또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가정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이아이 오스터 그린의 롱다리는 특히 러시아인들의 추종대상으로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인터넷에 사진을 올릴 때마다 러시아의 문자로 늘 사진설명을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네티즌들은 이아이 오스터 그린의 사진이 인터넷에 오를 때마다 앞 다투어 찬양의 댓글을 달고 있는 상황, 타샤젤 야드(tashageldard)로 자칭한 네티즌은 “이아이 오스터 그린, 그대는 슈퍼급으로 러시아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으며 그대의 롱 다리는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멋진 다리다”라고 했고 badbaddgal로 자칭한 네티즌은 “그대는 한명의 여신, 러시아인들은 그대를 사랑한다”라고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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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7
  • 러시아 비행기서 9톤 되는 황금보석 땅에 뿌려져
    ▲ 사진 : 러시아 위성통신사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러시아 위성통신사에 따르면 지난 15일, 러시아의 비행기 한 대가 비행 중 화물칸 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특별귀중화물>이 땅에 뿌려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러시아 야쿠츠크 지구에서 발생, 사고 후 이 비행기 기조성원들은 야쿠츠크 비행장으로 귀환됐고 경찰 측에서는 비행기 수행 인원 및 기조성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번 비행을 책임진 기술엔지니어는 이미 구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지면에 뿌려진 이 <특별귀중화물>들은 9톤에 달하는 황금과 기타 보석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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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6
  •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2주 연속 목요일 밤 평정, 동시간대 시청률 1위
    ▲ 사진제공 :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2주 연속으로 목요일 밤을 평정했다.어제 밤 11시 10분에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1, 2부 시청률 평균 5.4%(닐슨 코리아, 수도권 기준)를 기록해 동 시간대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에 올랐다. KBS의 해피투게더는 1,2부 평균 4.7%, jtbc 썰전은 4.1%, 채널A 도시어부는 4.5%에 그쳤다. 이 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 소환 시점에 맞춰 측근, 가족 들의 구체적인 혐의와 함께 예상 형량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예상 형량에 대해 "가장 중한 범죄인 뇌물수수의 경우 최소 11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구형이 가능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100억이 넘어서 30년 구형, 최순실의 경우 72억에 20년 선고가 된 전례로 보아 25년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날 MB 패밀리들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부분은 6.5%의 분당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이슈벙커' 코너에서는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 관계를 국제적 관점에서 다루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방송에는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브 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지윤 MIT 정치학 박사,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가 출연해 모의 6자회담 형식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입장을 전했다.특히 안드레이 란코브 교수는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이 얻을 게 별로 없다."며 김정은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분석했다. 또한 그는 "북한의 경제는 지난 7년 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했다."며 새로운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도 "평양은 굉장히 많이 자본주의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 많이 나온다."며 그 의견을 뒷받침했다. 특히 안드레이 란코브 교수는 아직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대북 경제 제재가 6개월에서 1년 후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외교에 밝은 김정은이 사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관심을 모았다.매 회차 업그레이드 되는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시청자의 반응도 뜨겁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썰전에서 블랙하우스로 넘어갑니다.', '블랙하우스는 갈수록 꿀잼이네요.', '예능까지 더해진 유쾌한 시사프로', '수준 높은 대담과 고급 정보에 재미까지!'라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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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6
  • 中 장쑤 여대생 전문 채용박람회 개최
    ▲ 여대생들이 원서를 내려고 채용업체 부스 앞에서 줄 서고 있다. [동포투데이] 지난 10일, ‘창업기업에 가담하는 여성 취업 지원활동, 즉 장쑤(江蘇)성 2018년 졸업 여대생 전문 채용박람회’가 난징(南京)에서 개최되었다. 채용박람회에 참가한 약 100개 기업은 여대생에게 적합한 3,100여 개 일자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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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6
  •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구성...위원장에 임종석 비서실장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청와대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총괄간사로 하는 등 총 8명으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6일 첫 전체회의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청와대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준비위원으로 포함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준비위원회 아래에는 의제 분과와 소통·홍보 분과, 운영지원 등 3개 분과를 뒀다 의제분과는 의제 개발과 전략을 수립하고, 소통·홍보분과는 홍보기획·취재지원·소통기획을 담당한다. 운영지원분과는 상황관리와 기획지원을 맡는다. 의제분과장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소통·홍보분과장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운영지원분과장은 김상균 국정원 2차장이다. 김 대변인은 “준비위원회는 정부와 청와대를 융합해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일을 추진하도록 했다”며 “2007년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가볍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직을 단순화했다”고 설명했다. 중요 사안을 결정할 준비위원회 전체회의는 주 1회 또는 격주 1회 열린다. 실무 논의는 주 3~4회 개최되는 분과장회의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분과장 회의에는 준비위원장과 총괄간사, 그리고 3명의 분과장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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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6
  • 20세기 초 중국 문화계의 여걸- 육소만
    [동포투데이] 육소만(陆小曼)은 중국 역사상 세기를 빛낸 여성으로 그 미모와 더불어 미술창작, 산문창작 및 연극창작과 번역창작 등 다 방면으로 재능을 과시한 중국문예계의 여걸이다. 육소만은 1903년 11월 7일, 상해에서 태어났고 1909년 모친과 함께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부친한테로 가게 된다. 그 이듬해 육소만은 북경 여자사범대학 부속 소학에 입학, 1918년 북경성심학당(入北京圣心学堂)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 해 부친 육정(陆定)은 어린 딸을 위해 전문 영국 여교사를 초빙해 영어를 가르치게 했다. 부친과 영국 여교사의 각별한 정성과 관심 그리고 자신의 총명과 노력으로 어린 육소만의 영어수준은 눈에 띄이게 향상되어 사회 각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으며 1920년에는 북양정부 외교장관 고유균(顾维钧)의 초빙으로 외교번역을 담당, 그 때로부터 육소만이란 이름은 북경 사교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 19살 천진난만한 소녀인 육소만은 부모의 뜻에 의해 성심학당을 그만 두고 왕갱(王庚)이란 남성과 결혼, 밀월을 마친 뒤 육소만은 비로서 자신이 행복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 3년이 되던 해, 왕갱은 하얼빈(哈尔滨)시 경찰국 국장으로 임명되었고 육소만은 왕갱을 따라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하얼빈으로 간 뒤 육소만은 한동안 당지 생활에 적응되지 않았고 왕갱 또한 사업과 전도에만 집착하면서 둘 사이의 사랑에는 무형의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육소만의 앞에는 서지만(徐志摩)이라는 젊은이가 나타났고 육소만은 그를 통해 진정한 애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육소만과 왕갱 사이에는 커다란 언쟁이 벌어졌고 이 날 왕갱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육소만을 욕해대면서 큰 창피를 주었다. 그 뒤 부친 육정은 왕갱한테 크게 실망하면서 딸의 장래를 두고 걱정을 표하군 했으며 19육소만이 이혼을 결심하자 뜻밖으로 이를 지지했다. 이렇듯 혼인풍파를 겪으면서도 1924년 육소만은 이탈리아 희곡작품 <신기루(海市蜃楼)>의 번역을 완성하는 재능을 나타냈다. 한편 1925년 왕갱과 이혼한 육소만은 인차 서지마와 열애에 들어갔으며 그 이듬해 10월 서지마와의 재혼에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육소만은 유해속(刘海粟) 화백을 스승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 이혼풍파 및 재혼생활 등 모든 것은 결코 그녀의 <학구열망>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어 육소만과 서지마는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갔고 거기에서 둘의 합작으로 된 희곡집 <변곤강(卞昆冈)>을 출판발행하게 되었으며 또한 상해에서 유명인사들인 옹서오(翁瑞午), 엽공작(叶恭绰) 등과 사귀기도 하였다. 이렇게 재혼 후 5년간 육소만과 서지마 간의 생활은 행복하고도 뜻 깊은 나날이었다. 둘은 지향하는 분야가 같았고 또한 부부 사이의 애정도 극진했으며 또한 착한 성품도 비슷하였다. 헌데 세상의 풍운을 예측할 수 없듯이 1931년 11월 19일, 서지마가 한차례의 비행기사고로 저 세상 사람으로 될 줄이야. 이는 28살 젊은 부인인 육소만한테 있어서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다. 남편이 사망한 뒤 육소만은 더 이상 사교계에 나가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외계의 질책과 루머에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서지마의 유작 정리에 착수, 1931년 12월엔 남편의 유작 <운유(云游)>를 정리해 발표했고 1933년에는 <미현쇄어(眉轩琐语)>를 <시대화보> 제 3권 제6기에 발표했으며 이 중 <미현쇄어>는 후에 육소만이 편찬한 <지마일기(志摩日记)>에 수록되었다. 또한 그 때로부터 육소만은 아예 거의 두문불출하고 저택에 묵박혀 있으면서 창작, 번역과 그림그리기에 전념, 1934년에는 <논어(论语)> 제38기에 <애미소찰(爱眉小扎)>을 발표했고 2년 뒤인 1936년에는 양우부흥도서회사(良友复兴图书公司)를 통해 <애미소찰>을 단행본으로 출판했으며 그 해에 중국여자서화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1941년 육소만은 상해 대신회사(大新公司)를 통해 개인 회화전(画展)을 개최, 성숙된 여류 화백임을 과시했고 1943년에는 양우부흥도서회사를 통해 단행본 <애미소찰>을 재판했으며 1947년까지는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한편 지속적으로 남편 고 서지마의 유작정리에 혼신을 쏟았다. 그것들로는 서지마가 1918년에 쓴 <서호기(西湖记)>, 1926년부터 1927년 사이에 쓴 <미현쇄어>와 <색깔이 없는 한권의 책(一本没有颜色的书)> 등이 있었다. 육소만으로 말하면 사생활이 비교적 복잡한 여인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처음의 왕갱과의 혼인은 봉건전통의 반강제적인 혼인이었다면 두 번째 서지마의 혼인은 서로가 사랑하였고 또한 봉건적 세속을 벗어난 자유적인 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지마와의 결혼 후에도 육소만은 옹서오(翁瑞午), 아부용(阿芙蓉) 등과 남다른 사이었으며 서지마가 사망한 후에는 더욱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달랠 길 없어 자주 이들과 <일야 애정(一夜班房)> 관계를 갖군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8년부터는 옹서오와 정식으로 동거생활을 시작, 그 때 육소만의 나이는 35살에 불과했다. 육소만의 두고 그 무슨 질책이나 비난에 앞서 그가 생활했던 시대의 배경을 보면 어느 정도 동정이나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우선 육소만이 젊은 시절은 중국의 봉건세습에서 갓 현대문명을 접하는 시대였던만큼 그런 사생활의 출현은 정상적이란 분석이며 거기에 당시 육소만은 절색의 미모인데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갖고 있었기에 쉽게 남의 말밥에 오르기도 했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시기, 육소만은 마음씨가 착한데다 신체가 허약했기에 남자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도, 또한 남자들의 보호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문스러운 것은 1938년 옹서오와의 동거를 시작한 뒤 20여 년간 여러 가지 애로와 풍파가 있었지만 육소만은 옹서오의 곁을 지켜주면서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55년 옹서오가 착오를 범해 모든 공직에서 해임돼 <백수>가 되었을 때에도 그랬고, 폐병으로 피를 토하며 고액의 의료비용이 들어갈 때에도 마찬가지었다. 당시 호적을 비롯한 육소만과 가까웠던 많은 인사들이 그녀더러 옹서오한테서 떨어질 것을 권고했으며, 그 중 호적은 이제 옹서오와 헤어지기만 하면 육소만의 모든 생활비용까지 자기가 부담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육소만은 생활형편이 극히 궁핍함에도 옹서오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남편도 아닌 이 <동거남>을 돌봐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다면 옹서오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왜 그와 정식 혼인은 하지 않았는지? 또한 혼인관계가 아니면서 왜 옹서오의 곁을 시종 지켜주었는지? 이러한 것들은 오늘까지도 일종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1956년 4월 육소만은 당시 상해시 진의 시장의 관심으로 상해시 문사관 직원으로 배치되었고 그 해에 중국 농공민주당에 가입, 1958년에는 상해 중국화원(中国画院)의 전직화가로 됨과 아울러 상해미술가협회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1959년에는 상해시 인민정부 참사실 참사(参事室参事)로 추대받았고 역시 그 해에 전국 미술가협회의 <3.8홍기수(三八红旗手)>로 평선되었다. 행운과 비운이 엇갈림 속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살아왔던 중국현대사의 여걸- 육소만은 1965년 4월 3일 상해 화동병원에서 52세의 아까운 나이로 자기의 인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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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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