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 김철균
 
1992년 3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서 승선할 때는 5명, 1994년 9월, 스페인 라스팔마스항에서 하선할시엔 3명… 한명의 친구를 진눈까비 흩날리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바다에 수장하고 또 한명의 친구를 태평양의 군도 - 싸이판의 유치장에 남긴채 환고향하는 학송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1
 부산항구, 제2부두
 
무역선이 오고 가는 배길 따라 원양송출선 “프리오이워니오”호가 고동을 뽑으며 부두에 닿은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부산, 꿈결에도 안기고 싶던 조상의 산천이다. 그 시각 중국 조선족선원인 학송이는 이름할 수 없는 정감세계에 사로 잡혔다. 고향인 경남 울산에도 가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를 대신해 이 땅을 밟는다는 행운이랄까? 그의 눈시울은 어느 덧 축축히 젖어 들었다.
 
학송이 외 기타 조선족선원들은 고국이고 뭐고 그닥 흥미가 없어했다. 흉터많은 얼굴에 항상 성난 표정인 “안도망치” - 덕수, 담배를 꼬나물면 한숨만 내쉬는 정택이와 용철이 그리고 총각인 봉남이, 그중 학송이와 함께 외출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용철이였는데 목적은 집에서 갖고 온 우황청심환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입항절차가 완료되고 모두들 샤와까지 마치자 1항사로부터 중국선원들만 식당홀에 모이라는 통지가 방송됐다.
 
1항사의 통지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교포친구들, 미안하군요. 회사본부로부터 교포선원들을 상육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아마 아르헨티나 탈출사건 때문에 이런 조치가 내려진 모양입니다.”
 
아르헨티나 탈출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중국선원 4명을 고용해쓰는 기름탕크선 한척이 아르헨티나의 어느한 부두에 입항, 그 이튿날 저녁 그 배의 중국선원들은 악덕 한국선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돈도 더 벌기 위해 선박탈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헌데 머리가 그토록 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글쎄 탈출한다는 친구들이 그까짓 옷과 비누와 라면따위를 놓은 보따리를 둘처메고 항구정문을 빠져 나왔으니 의심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행처는 야간 택시기사들과 연락하니 인차 드러났다. 결국 그들은 멀리도 가지 못한 채 어느 한 창녀촌에서 덜미를 잡혔다.
 
그런 전례가 있은 즉 회사에서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중국선원들이 상육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육금지에 애석해하는 선원은 2명, 한명은 고국정에 울고 있는 학송이었고 다른 한명은 우황청심환을 팔지 못해 속이 탄 용철이었다.
 
2
 
“자넨 인격도 없는 인간인가? 왜 그까짓 한국옷 때문에 치사하게 놀아! 그들이 싸구려옷들을 주면서 우릴 거지취급한단 말이야. 정신차려 이 친구야.”
“자네는 너무 자존심이 강해. 약하면 굽어들기 마련 아니야? 약소민족한테는 외교도 없다고 했어.”
 
한국옷을 놓고 바다에 처넣으러느니 못그러겠다느니 싱갱이질하는 학송이와 용철이, 그 광경을 차마 그냥 볼 수 없어 그 옷가지들을 확 나꿔채여 바다에 날려 보내는 덕수, 학송이한테는 말대꾸도 하고 제법 성낼줄도 알지만 덕수앞에서는 찍소리 한번 못하는 용철이다. 아니, 덕수란 이 “안도망치”앞에서는 감판장 김만길마저도 은근히 두러워 하는 편이었다.
 
포클랜드해상에서 전재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어창에서 뒤가 나오도록 긴장히 일하는데 덕수가 진짜 뒤를 보겠다고 간청했다. 이에 반신반의하면서 응낙하지 않는 갑판장.
 
“아이구, 갑판장님, 진짜 참을 수 없수다. 정 안되면 여기서 바지를 벗게 되겠는걸요.”
“그래 이 새끼야, 꾀부리는게 아니면 네 엉뎅이 한번 구경하자꾸나.”
 
그러자 덕수가 정말 바지를 벗더니 똥 한무더기나 내 갈길줄리야. 순간 역한 구린내가 공기가 희박한 어창안에서 지독하게 풍겼다. 괄시당했다고 느낀 갑판장은 성이 나서 길길이 뛰였다. 거기에 동조하여 덕수한테 물매를 들이대는 한국선원들, “미욱하기로 돼지같다”느니, “인간성없는 빨갱이”라느니 하며 별의별 욕설이 다 튀여 나왔다. 하지만 이에 굴복할 덕수가 아니었다. 그가 물매속을 헤치고 고기박스더미위로 뛰쳐올라 갔을 때는 이미 옷도리를 팽개친 뒤였다.
 
“이 쥐불알같은 남조선 새끼들아, 내몸의 칼자리만 봐라. 언제 네깐놈들을 무서워한 나였더냐! 다 함께 덤벼들어봐라, 너 갑판장 네놈부터 내 손에 죽어봐라!”
 
덕수가 쇠갈구리 하나를 주어들고 생사결단하니 뒤걸음치는 건 오히려 갑판장과 한국선원들이었다.
 
“저 놈 완전히 미치고 돌아 버렸어. 관두자, 똥이 무서워 피한다더냐, 더러워 피하는거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갑판장이 덕수를 대하는 품이 어딘가 달라졌다. 덕수가 좀 아프다고나 하면 “응, 그래? 오전에 약 먹고 푹 쉬렴” 하기가 일쑤였고 술처먹고 근무해도 머리를 돌리며 모르는체 하기만 했다.
 
덕수가 이렇게 무법분자인가 하면 용철이는 그 정반대였다. 그는 말그대로 돈이라면 인격도 없는 인간이었다. 예하면 자기보다 손 아래인 한국선원들의 구두를 닦거나 빨래를 하여 풋돈벌이를 하는것이었다.
 
3
 
“배놈”으로 생겨 오입 한번 못해보면 평생후회라는 말은 선원들의 입에 오래전부터 굳어진 말이다. 그러건 말건 학송이는 승선한지 1년이 다 되도록 창녀촌출입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이성이 싫어났고 풍류세계와 담을 쌓은건 결코 아니었다.
 
네델란드 항구도시 로톨담, 지구촌의 수많은 항구에 가닿았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던 학송이가 로톨담에 입항한 그날 저녁 선참으로 외출하자고 했다. 그 것도 유럽미녀들만 있다는 “해상천국”이란 창녀촌에 가서 몸이나 풀자고 했다. 학송이한테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학송이와 동행한 사람은 용철이와 덕수였다.
 
그날 밤, 그들을 실은 택시는 항구주변을 요리조리 돈 뒤 다시 바닷가로 뻗은 방파제길로 몇분간 달리더니 바다가운데의 한 호화로운 건물앞에서 멈춰섰다.
 
“하와이유, 굳나인(인사말).”
계단앞에서 싸롱뽀이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은 3층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그들이 좌석에 둘러앉자 레지 한명이 메뉴안내서를 가져왔고 뒤따라 마담이 창녀들의 사진이 박힌 스크랩을 갖다 보이며 영어로 뭐라고 씨부렁댔다.
 
사달은 여기서 생겼다. 나름대로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흥정하는 용철이.
 
“아임 차이나맨 스몰머니 원 한드레딸라 오케이?(중국인 돼서 돈이 적으니 100달러면 되는가?)”
 
엉터리 영어구사였으나 마담은 알아듣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차이나맨? 노, 노, 스몰머니 노터치 우먼!(중국인?돈이 적으면 아가씰 못다쳐!)”
 
마담은 가차없이 축객령을 내렸다. 옆에서 웃고 떠들며 비꼬는 양코배기들과 일본인들…
 
그날 밤 선박으로 돌아온 학송이는 정신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노래를 불렀다.
 
… 돌아 보면 그다지도 먼길도 아닌데/ 저 멀리 솟는 해는 날보고 웃네/ 취한 김에 껄걸 웃지만 웃는 눈에 맺힌 눈물은/ 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의 눈물…
 
아, 돈! 그 돈이 그다지도 중하다더냐?
이튿날 저녁 학송이는 홀로 택시를 타고 “해상천국”으로 향했다.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은 뒤 미구하여 각양각색의 피부를 가진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 속에는 본선의 한국사관 몇명도 끼어 있었다. 이 때라 생각한 학송이는 마담을 불러 제일 몸값 높은 아가씨를 자기 옆에 앉게 했다.
 
두시간쯤 흐른 뒤, 아가씨의 팔을 끼고 다시 나이트클럽 공개홀에 나타난 학송이의 모습, 한국인들은 물론 내노라던 일본인들마저 눈알이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아가씨의 몸값은 2000딸라, 한국인 항해사의 한달 급여와 맞먹는 어마어마란 액수였다.
 
4
 
그들 일행이 “프리오이워니오”호에 승선하여 세상이 좁다하게 주름잡아 온지도 어언간 1년 6개월, 그 사이 조선족선원 거개가 정도부동하게 “중국똥포”란 딱지를 뜯을만큼 근사한 한국인으로 닮아갔는데 말씨부터 중국교포의 말씨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국에서 대학과정을 마친 학송이는 물론 정택이, 봉남이 그리고 “안도망치”덕수까지도 제법 선박생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해와 달이 바뀌도록 고약한 습관을 고치지 못한 인간은 용철이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다거나 한턱 술 사야 돈주머니를 풀어 놓는다거나, 그외 1년 넘도록 고향서 갖고온 엽초를 피운다거나 하는 걸 보면 같은 중국선원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깊은 밤, 갈매기도 지친듯 사라졌고 사위를 둘러봐도 어둠이 깔린 바다. 이 시각 “프리오이워니오”호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파도를 헤가르며 포클랜드군도를 바라고 배길을 재촉했다.
 
바로 이 때 웬 검은 몸뚱이 하나가 갑판에 나타나더니 살금살금 기름저장고 입구쪽으로 다가갔다. 용철이었다. 약 20분간 스파나로 싱갱이질한 끝에 뚜겅을 열어제친 그는 다시 한번 사위를 둘러보고는 그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기름저장고는 새기름을 넣기 위해 낮에 반나마 청리하다가 그만 둔 것이었다.
 
기름저장고 청리작업이란 공기가 희박한데다 기름 자체의 독성이 강하기에 일반적으로 선박에서는 방독면을 쓰고서야 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각 남몰래 기여드는 용철이한테 방독면이 있을지 만무했다. 낮에 작업할 때 한국인 3기사 김형모씨가 부주의로 손목시계를 기름깡치속에 떨어뜨렸는데 용철이는 그것이 탐나서였다. 이탈리아 로마제품인 그 시계는 순금이라 했다. 금시계란 말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용철이는 미처 모든걸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7시경, 짙은 안개속을 헤치며 배가 계속 항행하는 가운데 갑판으로 조깅을 나갔던 기관장이 급기야 소리치며 식당에 들어섰다.
 
“밤새 누군가 기름저장고 뚜껑을 열었어.”
 
선원들이 웬일이냐고 갑판으로 우르르 몰려가보니 열어 제친 뚜껑우에는 스파나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선원 3명이 방독면을 쓰고 그 안에 들어가 이미 숨져 굳어버린 용철이를 찾아낸 것은 그 때로부터 10여분 후였다. 용철이의 두손에는 손목시계와 그 때까지 켜진채로인 플랫시(손전등)가 쥐여져 있었다.
 
“쯧쯧, 그까짓 시계가 얼마나 욕심이 났으면… 가난이 원쑤야.”
 
선장과 기관장 지어는 3기사마저 죽은 이의 소행을 너그럽게 용서해 줬으나 학송이한테는 그 말이 매를 들이대는 것보다 더 옹이 막히는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값없는 죽음을 당했지만 선내에서는 고인과 그 가정을 위해 의연금을 모았고 장례까지 치러 주기로 했다.
 
장례식을 하던 날, 흐리터분한 하늘에서는 진눈까비가 지궂게 흩날렸다. 항행을 멈춘 선박이 한바다에 정박한 가운데 장례식은 기독교신자인 선장의 설교로부터 시작됐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 불쌍한 인간을 끝까지 구하지 못한 죄많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나이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하나님께서 부디 자선을 베푸시여 가는 이는 눈을 감게 하고 살아 남은 우리들은 죄를 피하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장례식은 별다른 절차없이 간단히 진행되었다. 선장으로부터 술을 붓고 절을 한 뒤 크레인을 리용해 고인을 수장하기로 되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돈과 재물을 탐내다가 숨진 현대의 “수전노” - 용철이, 카톤박스안에 포장된 그의 시신이 크레인에 의해 하늘 반공중에 떴을 때 브릿치에서는 세번 고동을 울려 애도를 표했다. 가련한 목숨, 가도 이렇게 가다니… 평소엔 그토록 괘씸한 용철이었으나 무정한 현실앞에서는 학송이도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인의 시신이 “철렁”하고 바다에 던져지자 그 것은 인차 파도속에 휘말려 들었다. 그 것이 다시 물우에 나타났을 때는 저 멀리 작은 점으로 되어 이리저리 표류했다. 그것도 잠간뿐, 미구하여 그 것이 끝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모든 것은 언제 그랬냐 싶게 원상태로 돌아왔고 선박은 다시 항행을 계속했다.
 
5
 
용철이가 죽은 뒤 겨우 심리균형을 찾고 안정됐던 덕수의 야성이 되살아 날 줄이야. 그 역시 용철이를 곱게 본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악덕 한국선원들이 용철이의 행위를 거론하면서 어진 정택이와 봉남이를 기시할 때면 가차없이 주먹맛을 보이군 했다. 이런 반상적 행위는 설사 그가 한국선원이라 해도 강제귀국범주에 속했겠으나 웬일인지 선내에서는 그한테 아무런 징계도 주지 않았다. 아마 오래잖아 근무만기가 되는데다 특히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선상에서 징계위원회라는 것도 그를 건드리기 싫어 내버려둔 모양이었다. 지중해와 수에즈운하 그리고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에 들어선 “프리오이워니오”호는 그 시각 싸이판을 바라고 항행하고 있었다.
 
싸이판, 일본군 점령지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학도병으로 말아 먹었고, 그 뒤엔 동맹군의 승리로 미국땅이 된 군도이다.
 
입항하던 날 저녁, 중국선원 4명은 집단적으로 외출길에 올랐다. 이제 싸이판을 떠나 다음 항구에 들어가면 근무만기가 될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야자수 우거지고 해풍이 가볍게 얼굴을 희롱하는 싸이판의 야경은 황홀했다.
 
에이젠트가 그들한테 알선해준 곳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모 디스코바였다. 깊은 밤이 아니어서인지 바홀안은 퍼그나 조용한 편이었다. 한국인 2남 2녀가 다정하게 소곤대고 있는외 필리핀선원 몇명이 들어오더니 한쪽 구석을 차지했다.
 
바의 댄서아가씨들은 일색으로 한국말에 영어가 짭뽕인 동양인아가씨들이었다. 오래간만에 상종하게 될 동질감을 느끼는 아가씨들이다. 일찍 한국이 가난하던 20여년전 일본선박에서 근무하던 반도의 마도로스들은 기시와 천대를 받을 때마다 섬나라 계집들을 정복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다. 하다면 오늘 학송이네도 반도계집들의 배를 타보는 것으로 지겹고 짜증나는 “배놈”생활에 종지부 찍는 것이 목적이었다.
 
학송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총각인 봉남이가 담도 크게 제일 이쁜 것들로 4명 골라잡고 끌고 왔다.
 
사내들한테 안기다 싶이 몸을 밀착시킨 여인들.
 
“아저씨들 참 멋져요. 이 아저씬(덕수) 꼭 마치 야쿠자같아도 진짜 사내다와요.”
“임잔 숫총각인가베? 이것보지 이 누님이 오늘밤 사내로 만들어줄가베. 마이프런드 사랑해.”
 
세계를 메주밟듯 해온 “배놈”들보다도 한술씩 더 떳다.
 
술을 붓고 떠드는 혼탁한 무드속에 화제는 또다시 덕수한테로 돌아왔다. 그녀들은 덕수의 배가 크고 히프와 가슴도 커서 탐난다느니 하며 찧고 까불어댔다. 이에 흥이 나서 제딴에 우쭐대는 덕수.
 
“나 말이야, 못살고 가난한 중국서 왔지만 세상서 제일 멋진 마도로스란 말이야.”
 
그 말에 아가씨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됐다,
 
“쳇, 똥포들이구만. 그러게 어딘가 표가 난다 했지. 우리 이걸로 끝내는게 좋잖어? 얘들아, 자 일어들 나자.”
 
이렇게 자리를 뜨던 중 한 아가씨가 엉겁결에 “참, 썅디메이야”라고 지껄이였다.
 
“썅디메이(想得美)”란 한마디에 학송이는 문득 짚이는바 있었다.
 
“이 계집년들아, 흉내를 낼터면 근사해야지. 썅디메이가 다 뭐야? 네 년들이야말로 진짜 중국똥포년들이구나.”
“뭐야?”
 
죄꼬만 눈에 살기를 내뿜는 덕수, 싸이판이란 이 낯선 땅에서 같은 조선족년들한테서까지 “똥포”취급을 받다니
 
“펑”하는 맥주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아가씨의 머리에서 선지피가 콸콸 쏟아졌다. 이지를 잃고 칼날처럼 예리한 깨진 맥주병을 계속 휘둘어대는 덕수, 한국인 남자 둘이 말리려다가 둘다 덕수의 발길에 채이어 저만치 뿌리워 나가 뒹굴었다.
 
홀안은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다. 학송이는 어떡하나 덕수를 구슬려 피하려 했으나 녀석이 어찌나 기운이 센지 도무지 용빼는 수가 없었다.
어느 결에 경보를 울리며 들이닥친 경찰차,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덕수는 흑인경찰 2명이나 때려눕혔다.
그날 밤 그들 4명은 모두 경찰들한테 연행됐다.
 
2일 후 학송이,봉남이와 정택이는 풀려 나왔으나 덕수만은 예외였다. 맥주병에 얻어터진 아가씨가 출혈이 심해 병원에서 숨진데다 녀석이 경찰까지 때려 눕혔으니 옥살이를 면치 못하게 됐다.
 
배가 출항하던 날 덕수는 2명의 경찰한테 이끌려 부두까지 왔다. 죄수복에 수쇄까지 찼건만 겉으로는 여전히 개잡은 포수마냥 우쭐대는 덕수.
 
“학송형,나 한놈의 옥살이로 우리의 본때를 보여 줬으니 그래도 통쾌해 하하하…”
 
그러면서도 눈확을 적시는 억대우같은 사내의 눈물, 그 역시 참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닻줄을 거두어 들인 “프리오이워니오”호가 육지와 떨어지는 순간 덕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꿇어 앉으면서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가자. 왜 나 혼자를 두고 너희들만 가는거냐?! 엉엉… 이 괘씸한 녀석들아!…”
 
완전히 실성한 덕수, 그한테 무슨 위안을 해줘야 할지 학송이는 도무지 적절한 말구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두가 멀어지고 덕수의 모습이 하나의 점으로 가물거리다가 점차 사라지자 학송이는 재차 용철이를 보낼 때의 그 이상야릇한 감정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 × ×
 
1992년 3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서 승선할 때는 5명, 1994년 9월, 스페인의 라스팔마스항에서 하선할시엔 3명… 한 친구를 진눈까비 흩날리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바다에 수장하고 또 한 친구를 태평양의 군도 - 싸이판의 유치장에 남긴채 환고향하는 학송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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