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전쟁터를 누비던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은 의사가 됐다. 다시 조종석에 앉았고 마침내 지구를 떠나 우주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미 해군으로 돌아간다.
한국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조니 김의 이야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7일(현지시간) 김이 약 10년간의 NASA 생활을 마치고 해군 소령으로 복귀해 군 복무를 이어간다고 발표했다.
김의 이력이 특별한 것은 네이비실과 의사, 조종사, 우주비행사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단순히 거쳐간 데 있지 않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뒤에도 익숙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는 데 그의 삶을 관통하는 특징이 있다.
LA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네이비실로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김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2년 미 해군에 입대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미군에서도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해군 특수전부대 네이비실이었다.
훈련을 통과한 그는 의무병과 저격수, 항해사 등으로 활동하며 이라크를 비롯한 전장에서 100차례가 넘는 전투작전에 참가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은성훈장과 전투공로 ‘V’가 달린 동성훈장 등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전장에서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을 경험한 김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비던 특수부대원이 의사의 길로 방향을 돌린 배경에는 이런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의대로, 다시 조종석으로
김은 샌디에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네이비실이라는 안정된 경력을 뒤로하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의대를 졸업한 뒤에는 보스턴의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받으며 의사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군 조종사와 항공의무관 자격을 취득했고, 2017년에는 수많은 지원자가 경쟁하는 NASA 우주비행사 후보생으로 선발됐다.
특수전 경험과 의학, 비행 능력을 모두 갖춘 그의 경력은 우주비행사라는 또 다른 길에서 하나로 연결됐다.
마침내 우주로
오랜 훈련 끝에 김은 지난해 4월 러시아 소유스 MS-27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
약 8개월 동안 ISS 비행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기술개발과 지구과학, 생물학, 인간의 우주 적응 등에 관한 다양한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그가 우주에서 지구를 돈 횟수는 3920차례, 비행거리는 약 1억400만 마일에 달했다.
원정대 후반기에는 미국 운영구역 책임자를 맡았다. 로봇팔 ‘캐나담2’를 이용해 차세대 화물우주선 시그너스 XL을 포획하는 임무에도 참여했다.
NASA의 달·화성 유인탐사를 위한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우주비행사 후보군에도 포함되면서 미국 우주개발의 핵심 인재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주에서 돌아와 다시 해군으로
그런 김이 이제 NASA를 떠난다.
NASA는 그의 퇴직을 발표하면서 우주탐사와 과학연구에 남긴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제러드 아이작먼 NASA 국장은 김이 탐사의 한계를 넓히고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김 역시 NASA에서 보낸 시간을 “평생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선택한 다음 무대는 새로운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긴 여정이 시작됐던 미 해군이다. 해군 항공훈련 분야로 돌아가 지금까지 축적한 특수전과 의학, 비행, 우주 임무 경험을 군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조니 김의 이력을 네이비실·의사·조종사·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의 나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쟁터에서 시작된 경험은 의학으로 이어졌고, 의학과 군 경력은 항공 분야를 거쳐 우주로 연결됐다. 그리고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해군을 선택했다.
2002년 한 젊은 수병으로 시작했던 길이 20여 년 뒤 우주를 거쳐 다시 바다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조니 김의 다음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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