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1919년 프랑스 파리.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전후 세계질서를 다시 짜기 위해 모인 파리강화회의에서 중국은 승전국의 일원이었지만 자국 영토 문제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중국 외교관 가운데 한 명이 웨이천쭈(魏宸组·1880 또는 1885~1942)였다.
후베이성 우창 출신인 웨이천쭈는 원래 이름이 웨이펑윈(魏丰运), 자는 주둥(注东)이었다. 출생연도는 자료에 따라 1880년과 1885년으로 엇갈린다.
그는 청나라 말기인 1903년 유럽으로 건너가 벨기에에서 공부했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익힌 그는 유학생활 중 혁명사상을 접했고 쑨원을 중심으로 한 혁명운동에도 참여했다.
신해혁명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외교무대에 뛰어들었다. 난징임시정부와 베이징정부에서 외교 관련 요직을 거친 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중국을 대표했다.
그의 이름이 중국 근대외교사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사건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였다.
당시 중국은 독일이 산둥에서 보유했던 권익을 중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강화회의에서는 독일의 산둥 권익을 일본에 넘기는 방향으로 결정이 이뤄졌다.
중국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여론이 폭발했고, 이는 5·4운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웨이천쭈는 루정샹(陆征祥), 구웨이쥔(顾维钧) 등과 함께 중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했다. 결국 중국 대표단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승전국 가운데 중국이 조약 서명을 거부한 이 사건은 열강 중심의 국제질서에 중국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상징적인 외교 장면으로 남았다.
웨이천쭈의 외교활동은 파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주벨기에 공사와 주독일 공사 등을 지냈고 국제연맹 관련 외교에도 참여했다. 중국이 유럽과 다자외교 무대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의 주요 외교관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25년 귀국한 뒤에는 철도 관련 업무를 맡았으며 1937년에는 다시 주폴란드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됐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까지 중국 외교의 현장에서 활동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상하이에 머물다 1942년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고향 우한으로 운구돼 웨이씨 집안 묘역에 안장됐다.
오늘날에도 그의 외교관 인생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해진다.
후손들이 기증한 유물 가운데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중화민국 외교관 공사 예복이 있다. 금실로 가화(嘉禾) 문양을 수놓고 단추에는 ‘중화민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예복으로, 당시 중국 외교관의 복식과 외교문화를 보여주는 자료다.
국제연맹 전권대표와 유럽 각국 공사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을 보여주는 임명장과 외교 관련 자료도 남아 있다. 고향 우한의 웨이천쭈 묘 역시 지역의 문물로 보호되고 있다.
웨이천쭈는 중국이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국제질서가 크게 재편되던 격동기를 유럽 외교현장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중국 대표단이 베르사유조약에 끝내 서명하지 않은 사건은 그의 외교관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열강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외교적 입지가 제한됐던 당시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권익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시대. 웨이천쭈의 삶은 그 변화의 한복판을 걸었던 중국 근대외교관의 궤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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