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며 ‘기억의 책임’을 강조한 일본 외교관의 메시지가 온라인에서 뜻밖의 역사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이 유럽의 전쟁범죄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자국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성찰하고 있느냐는 비판이다.
최근 주이스라엘 일본대사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이스라엘 일본대사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한 사실을 전했다.
대사는 방문 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세계와 후세에 전할 책임이 있음을 깊이 느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겼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기억하고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 자체는 국제사회가 공유해온 보편적 가치다. 그러나 게시물이 공개되자 일부 해외 네티즌들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중국에서 벌인 학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731부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한 독일 네티즌은 아우슈비츠가 반드시 기억하고 애도해야 할 장소라면서도 일본 역시 아시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논란의 핵심은 아우슈비츠 추모 자체가 아니다.
일본이 다른 나라의 역사적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자국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어떻게 기억하고 가르치고 있는지가 일관되느냐는 문제다.
일본은 1930년대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쟁을 확대했다. 중국에서는 난징대학살을 비롯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으며, 731부대는 중국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세균전 연구와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 아래 많은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다는 사실은 일본 정부가 1993년 발표한 고노담화에서도 인정됐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은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과 우메즈 요시지로 참모총장이 일본을 대표해 서명했고, 연합국 측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과 각국 대표들이 서명했다. 일본의 패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8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의 전쟁 책임과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일본의 역대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담화 등을 통해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해왔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전쟁범죄를 연구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며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려는 학자와 시민사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사회 전체가 과거사를 부정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반성과 사죄의 흐름과 동시에 일부 정치인과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침략의 성격이나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축소하거나 기존 정부 입장을 흔드는 발언이 반복돼왔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일본 교과서 검정 때마다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를 어떤 용어와 비중으로 기술할 것인지를 놓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일본 내부에서 논쟁이 이어져왔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난징대학살 등을 다루는 표현이 축소되거나 모호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가 다시 국제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아우슈비츠 방문을 둘러싼 온라인 반응은 단순한 외교관 개인에 대한 조롱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강조한 ‘기억의 책임’이라는 말은 오히려 일본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기억하는 것과 아시아에서 벌어진 침략전쟁과 전쟁범죄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비극을 추모한다고 다른 역사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편한 역사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이어야 한다.
일본이 아우슈비츠에서 말한 ‘기억을 후세에 전할 책임’을 아시아의 역사에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을 때 그 메시지는 더 큰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소모적인 부정과 축소를 넘어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전후 81년을 맞은 일본이 국제사회와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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