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을 이야기할 때 장률(张律)은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던 그는 마흔을 전후해 뒤늦게 카메라를 잡았지만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1962년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난 장률은 연변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소설을 쓰던 문학도였으며 정규 영화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처음 만든 단편 '11세'가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영화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당시', '망종', '경계', '중경', '두만강'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특히 조선족 여성의 삶을 그린 '망종'과 북중 국경지역을 무대로 한 '두만강'은 고향과 이주, 국경과 정체성이라는 장률 영화의 주요 주제를 보여줬다.
그의 영화에서 '공간'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중경', '두만강', '경주', '후쿠오카'처럼 지명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 많다.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는 장치가 된다. 조선족으로 성장하고 여러 지역을 오간 자신의 경험도 이러한 작품세계에 녹아 있다.
한국 영화계와의 인연도 깊다. 박해일·신민아의 '경주', 한예리·양익준·박정범의 '춘몽', 박해일·문소리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권해효·윤제문·박소담의 '후쿠오카' 등을 연출하며 한국 독립·예술영화계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장률의 촬영 방식도 독특하다. 그는 한 장면을 찍기 전 촬영 공간에 혼자 약 10분간 머물며 배우의 움직임과 카메라 위치, 빛과 소리를 떠올린다. 현장에서 발견한 우연도 적극 활용한다. '긴 고백'의 배 위에서 나오는 까마귀 이야기는 니니가 쉬는 시간에 들려준 실제 경험을 듣고 대사로 바꾼 것이다.
이런 즉흥성을 붙잡아주는 중심은 '감정'이다. 장률은 장면과 대사가 달라져도 표현하려는 감정을 놓치지 않으면 영화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본다.
니니·장루이·신바이칭이 출연한 '긴 고백'에서도 오래된 사랑과 재회를 다루면서 관계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실제 인간관계 역시 여러 사람의 감정이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관계라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장률에게 영화는 관객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작업도 아니다. 그는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만들기를 친구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지음(知音·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찾는 일에 비유했다.
그의 영화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백탑지광'은 2023년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2025년 '뤄무의 황혼(罗目的黄昏)'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문학도에서 늦깎이 감독으로, 다시 중국과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제로. 장률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사람과 공간에 남은 기억을 기록하며 자신의 영화를 알아볼 또 다른 '지음'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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