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이 생겼다.
여권도 대한민국 여권으로 바뀌었다. 출입국 문제를 걱정할 일도 줄었다. 선거 때가 되면 투표소에 갈 수 있고, 서류의 국적란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적는다.
법적으로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묻는다.
“원래 조선족이셨죠?”
국적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기억까지 그날 함께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중국동포 가운데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정착한 사람들이 있다. 일자리를 찾아 잠시 머물 생각으로 왔다가 가족을 불러 함께 살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예 한국에 뿌리를 내린 경우도 있다.
귀화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선택 가운데 하나다.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국적법에 따른 요건과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허가를 받은 뒤 국민선서와 귀화증서 수여 절차를 마치면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
하지만 그날까지 살아온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중국에 부모와 형제가 남아 있을 수 있고, 명절이면 어릴 때 먹던 음식을 찾는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와 통화하면 자연스럽게 옛이야기가 나온다.
어려운 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일 수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 오래됐는데도 “중국 사람 아니냐”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과 직접 관계없는 일인데도 입장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반대로 중국 국적을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을 여전히 낯선 외국인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실제 생활은 그렇게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
아침이면 한국의 직장으로 출근한다.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들르고 자녀 문제로 학교에 가기도 한다. 주말이면 가족과 외식을 하고 가까운 공원을 찾는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흐른다.
지난 회에서 본 다음 세대는 이런 문제를 더 일찍 만난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함께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된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다. 그에게 귀화는 낯선 나라의 국민이 되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 이미 학교가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살아온 동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국에 들어온 중국동포들에게 가장 급했던 것은 일자리와 체류였다. 몇 년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한국 생활이 길어졌고 가족이 왔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예 정착을 선택한 사람도 생겼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주민등록증을 받고 한국 여권을 손에 쥔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어제 다니던 직장으로 출근한다.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하는 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감정도 남는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무조건 낮춰 말하거나 중국인 전체를 싸잡아 모욕하는 말을 접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자신이 태어난 곳이나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까지 함께 무시당하는 듯한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면 서운함이 쌓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두고 “한국에 귀화했는데 왜 중국 편을 드느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너무 단순해진다.
중국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와 자신이 태어난 나라, 가족과 고향에 대한 감정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고 자신의 과거와 가족까지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적을 선택하는 일과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지우는 일은 같지 않다.
그런데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귀화한 사람’이라는 설명은 쉽게 따라다닌다.
“귀화한 조선족”, “중국 출신 한국인”이라는 말이 계속 붙는다면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언제부터 그냥 한국 사람으로 불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
여권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시간은 그 사이 또 흘렀다. 1990년대 젊은 나이에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았던 사람들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공장과 건설현장을 다니며 돈을 벌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일자리보다 병원과 집, 연금과 노후가 가까운 문제가 되고 있다.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노년을 어디에서 보내게 될까.
다음 회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⑨…코리안드림 세대가 늙어간다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연구자료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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