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이름 아래 달라진 사람들…12회 연재를 마치며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중국동포들을 만나면 예전과 달라진 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일자리와 돈벌이가 화제였지만, 이제는 건강과 자녀,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갈지가 더 자주 이야기된다. 서로 살아온 형편도 달라져 한때 가까웠던 사람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같다.
조선족.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나 이곳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낸 사람이나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사람은 불편해한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 연재를 쓰면서 자주 떠올린 것은 거창한 사건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사람, 늦은 밤 가게 문을 닫는 사람, 쉬는 날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조선족이라는 이름은 일상의 전부가 아니다. 당장 내일의 일거리와 생활비, 자녀의 앞날이 더 절실할 때가 많다.
그런데 중국동포 이야기가 나오면 개인의 사정보다 출신과 국적부터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보다 어디에서 왔는지가 먼저 거론된다. 한 사람의 잘못이 같은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번지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 이름에는 중국에서 살아온 여러 세대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고향에서 배운 말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조선족은 자신의 뿌리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다만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까지 그 이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에게도 중국에 남겨둔 가족과 고향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생활했어도 명절이면 고향 생각이 날 수 있고, 중국에 다녀온 뒤에는 다시 한국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곳이 진짜 고향인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봤다. 고향을 떠날 때 품었던 생각과 지금의 삶 사이에는 적지 않은 세월이 놓여 있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까워졌지만, 오래 지내다 보면 출신보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12회에 걸쳐 글을 쓰면서도 마음에 남은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남을 도운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온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이나 실패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 조선족 사회가 어떻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려워진다.
연재를 시작할 때 제목을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라고 붙였다. 제목만 보고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글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놓고, 모두 같은 생각과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연재를 마치면서 한 가지는 더 분명해졌다. 그동안 내가 중국동포 사회를 이야기할 때도 혹시 사람들 각자의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한국에서 살아온 30여 년을 열두 편의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도 많고, 앞으로 다시 살펴봐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사람들. 나는 그 이름보다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BEST 뉴스
-
중국차는 꺼린다더니…테슬라·BYD·지커, 한국 전기차 시장 잠식
▲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테슬라 모델Y, 중국 BYD 씨라이언7, 지커 7X. 중국산 전기차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 (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자동차는 싸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한국 시장... -
북·중·러 경제협력의 실체…제재 속 돈과 물자는 어디로 흐르나
▲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전경. 북·중 교역 확대와 국경 물류망 변화의 핵심 기반시설로 주목받고 있다.(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국경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단... -
“동북항일연군은 심사 대상 아니다”…허성숙 서훈 막은 한마디
▲ 중국 지린성 연변 대사하전역기념관에 세워진 조선인 여성 항일투사 허성숙(1915~1939)의 흉상. 허성숙은 동북항일연군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했다.(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열다섯 살에 항일전선에 뛰어들어 기관... -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⑪…누가 당신에게 동포를 대표할 권리를 줬나
한국의 중국동포 사회에는 유난히 '대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정부기관과 만나도 동포 대표, 정치인과 자리를 함께해도 동포 대표다. 무슨 행사가 열리거나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면 동포 전체를 대표하는 듯 나서는 단체장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표로 뽑았다는 동포... -
공항엔 미사일, 회의장엔 투자자…사우디의 두 얼굴
▲ 미사일 공격으로 불안이 커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과 세계 투자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 현장을 대비해 표현한 이미지. 사우디가 안보 위협 속에서도 국제 투자 유치에 나서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했다. (자료 이미지·AI 생성, 실제 사건 현장 아님) [... -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⑨…코리안드림 세대가 늙어간다
▲ 한국에서 오랜 세월 일해 온 중국동포 1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주거·의료·돌봄과 귀향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에 맞춰 생성한 이미지. 1990년대 한국행 비행기와 배에 몸을 실었던 중국동포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