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행 비행기와 배에 몸을 실었던 중국동포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몇 년 고생하면 집을 사고 자녀를 공부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건설현장과 공장, 식당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여성들은 식당 주방과 가사·간병 일을 많이 찾았다. 일이 힘들어도 임금 차이가 컸던 시절이다.
“몇 년만 벌고 돌아간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 생활이 10년, 20년을 넘겼다. 돈을 조금 모으면 자녀 학비가 필요했고, 집을 마련하고 나면 결혼 비용이 기다렸다.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나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사이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40대였던 사람은 이제 70대가 됐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던 사람도 예전처럼 몸을 쓰기 어렵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식당 일도 버겁다.
젊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일자리와 체류자격이었다. 지금은 병원과 집, 생활비가 더 급하다.
한국에서 오래 일했어도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애초 한국을 평생 살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 돈은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고향의 집을 마련하는 데 들어갔다. 자신의 노후는 늘 뒤로 밀렸다.
그렇다고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20~30년이면 고향도 변한다.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형제자매는 흩어졌다. 자녀가 한국이나 중국의 대도시, 다른 나라에 정착한 집도 있다. 오랜 한국 생활 끝에 돌아가 보니 고향인데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부모가 한국에서 돈을 버는 동안 자녀는 중국에서 조부모나 친척 손에 자란 경우가 있었다. 부모에게 한국 생활은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자녀에게는 부모 없이 보낸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돈을 보내던 부모가 늙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가 됐다. 떨어져 살았던 가족에게 노부모를 누가, 어디에서 돌볼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한국 사회도 이들의 노동과 함께 변했다.
건설현장과 제조업체, 식당과 간병 현장에서 중국동포를 쉽게 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이 부족하고 한국인이 꺼리는 일자리의 빈틈을 이들이 메웠다. 일손이 필요할 때는 찾는 곳이 많았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 뒤의 삶은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었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도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외국인 노동자, 재외동포, 귀화자. 일상에서는 여전히 ‘조선족’이라는 한마디로 묶인다.
그러나 1990년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건너온 사람과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성장한 젊은 세대의 삶은 같지 않다. 국적이 같다고 경험까지 같은 것도 아니다.
첫 한국행 세대 앞에는 이제 돈을 버는 문제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 남았다.
한국에 남으면 주거와 의료, 돌봄을 걱정해야 한다. 중국으로 돌아가면 수십 년 동안 멀어진 생활 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어느 쪽도 30년 전 그들이 생각했던 귀향의 모습은 아니다.
코리안드림도 그렇게 달라졌다.
30년 전에는 물었다.
“얼마를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까.”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한다.
“나는 어디에서 늙어갈까.”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
그 이름 뒤에는 돈을 벌러 왔다가 한국에서 중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보다, 남은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연구자료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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