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조선족 배우들을 만나게 된다.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채 중국인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때로는 현대극에서 사극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배우 김호진(金澔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4년 8월 8일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김호진은 조선족으로, 본명은 김흠(金鑫)이다. 중국에서 성장한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전문적인 연기교육의 길을 선택했고 2012년 베이징영화학원 연기과에 입학했다.
베이징영화학원은 중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재들을 배출해온 곳이다. 장이머우와 천카이거 같은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배우와 영화인이 이곳을 거쳐갔다. 배우를 꿈꾸는 중국 청년들에게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관문이기도 하다.
김호진의 출발도 눈에 띈다.
중국의 공개 인물자료에 따르면 그는 2012년 예술계 대학 입학시험에서 베이징영화학원 연기전공 2위, 중국전매대학 연기전공 1위의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학교 가운데 베이징영화학원을 선택해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았다.
대학 재학 중에는 후난위성TV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천천향상(天天向上)」 녹화에도 참여하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을 쌓았다.
웹드라마 성장기와 함께 시작한 배우의 길
김호진이 본격적으로 영상 작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6년이다.
당시는 중국 영상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달라지던 시기였다. TV 방송국 중심이던 드라마 시장에서 아이치이와 텐센트비디오, 유쿠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웹드라마가 새로운 배우들의 등용문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김호진 역시 이 흐름 속에서 기회를 잡았다.
아이치이의 범죄·추리 웹드라마 「멸죄사(灭罪师)」에서 저우하오천 역을 맡았다. 한국을 주요 배경으로 연쇄사건을 추적하는 작품으로, 그가 연기한 저우하오천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조선족이라는 자신의 실제 배경을 연기 전면에 내세운 역할은 아니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중국인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청자와 만났다.
같은 해에는 양룽과 바이위가 출연한 범죄·로맨스 웹드라마 「미인위함2(美人为馅2)」에서 팡쉬 역으로 출연했다.
청춘 캠퍼스 영화 「학장(学长)」에도 모습을 보이면서 활동 무대를 드라마에서 영화로 넓혀갔다.
현대극에서 중국 사극으로
김호진의 필모그래피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봉수황(凤囚凰)」이다.
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관샤오퉁과 쑹웨이룽 등이 출연한 고장극이다. 김호진은 극 중 모향 역을 맡았다.
중국에서 고장극은 현대극과 상당히 다른 연기 환경을 요구한다. 시대극 특유의 말투와 의상, 인물관계뿐 아니라 중국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웹드라마와 현대극에서 출발한 조선족 배우가 중국 전통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등장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은 그의 경력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가 맡은 배역만 놓고 보면 조선족이라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이 김호진이라는 배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작품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선족 배우’
중국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영화인들을 떠올리면 장률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경계인의 삶을 작품 세계에 적극적으로 담아낸 감독들이 먼저 알려져 있다.
배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주어진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 민족적 배경이 항상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 배우가 한족 인물을 연기하기도 하고 현대 도시의 청년이나 역사극 속 인물이 되기도 한다.
김호진 역시 ‘조선족 배우’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민족 역할만 맡아온 배우가 아니다.
길림성에서 태어난 조선족 청년이 베이징으로 향해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교육기관에서 다른 배우 지망생들과 경쟁했고, 이후 중국의 웹드라마와 영화, 고장극에 등장했다.
그 과정 자체가 중국 영화계에서 활동해온 조선족 배우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스타들 뒤에 남은 이름
다만 김호진의 공개된 주요 작품 경력은 2010년대 후반에 집중돼 있다. 최근 연예계 활동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자료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이력이 갖는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 영화와 드라마 산업에는 유명 감독이나 스타 배우뿐 아니라 수많은 조연과 신인 배우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에는 자신의 민족적 배경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작품 속 인물로 살아온 조선족 배우들도 있다.
우리가 중국 드라마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한 인물이 사실은 길림성에서 성장한 조선족 배우였을 수도 있다.
김호진의 길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 영화계에서 조선족의 흔적은 ‘조선족 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 뒤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고, 카메라 앞에서 중국의 수많은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도 있다.
그동안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이 다시 찾아 기록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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