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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에게 증조부의 죄까지 물을 것인가

  • 김준하 기자
  • 입력 2026.08.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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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의혹과 관련해 고개를 숙였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고, 논란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논란은 하영이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자신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거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됐다.


비판할 부분은 분명하다. 가족사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증조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소속사가 논란 초기 충분한 검증 없이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가 입장을 정정한 대응 역시 아쉽다.


하지만 비판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


논란이 커지자 하영이 출연한 방송의 다시보기가 중단되고 관련 영상이 비공개 처리됐다. 하영을 모델로 기용했던 기업들도 광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으며 신작 관련 인터뷰까지 취소됐다. 약 100년 전 증조부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증손녀의 현재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증조부의 잘못까지 증손녀가 책임져야 하는가.


친일 행적은 역사적 자료에 따라 철저히 규명하고 평가해야 한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책무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영 자신이 친일 행위를 한 것도, 친일을 옹호한 것도 아니다. 증조부의 행적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미화했다는 사실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영에게 물을 책임 역시 자신의 말과 행동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가족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부주의는 비판할 수 있지만 증조부가 남긴 역사적 책임까지 증손녀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당사자의 잘못을 따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족과 과거까지 파헤쳐 또 다른 흠결을 찾아내는 온라인 여론의 방식이다. 검증과 비판은 필요하지만 당사자가 하지 않은 일까지 책임으로 연결하면 검증은 쉽게 여론재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우리 헌법도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물론 기업의 광고 판단이나 방송사의 결정, 대중의 비판을 법률상의 연좌제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이 잘못했으니 후손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된다면 법에서 사라진 연좌제적 사고가 사회적 여론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친일 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될 수도 없다. 사람은 혈통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오면서 내린 선택과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영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지켜볼 것은 증조부의 과거가 아니라 하영 자신의 앞으로의 행동이어야 한다.


친일의 과오는 잊어서도, 덮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연좌제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증조부 안상호의 삶은 역사 앞에서 평가하고, 배우 하영의 삶은 하영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하자.


그것이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의 사람에게 공정한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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