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부쩍 흔해졌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장관, 감사원장, 검사까지 탄핵 대상에 올랐다. 최근에는 대법원장을 둘러싸고 탄핵 이야기가 나왔고, 야권에서는 ‘이재명 탄핵’이라는 말도 거듭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최근 “국민이 가장 받고 싶은 추석 선물은 이재명 탄핵”이라고 주장했다. 25일에는 비무장지대(DMZ) 지뢰 추정 폭발 사고 대응을 비판하면서 “탄핵 사유만 추가될 뿐”이라고 했다.
야당 대표의 정치적 발언과 실제 탄핵소추는 다른 얘기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을 보면 실제 절차와는 별개로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탄핵이라는 말부터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실제 추진에는 거리를 뒀지만 한쪽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다른 쪽에서는 대법원장 탄핵을 말한다. 탄핵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정치권을 오가는 장면이 이제 그리 낯설지도 않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2024년 말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탄핵소추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듬해 3월 최 감사원장과 검사 3명의 탄핵심판을 모두 기각했고, 한 총리 사건 역시 기각했다.
헌재가 기각했다고 해서 당시 국회의 탄핵소추에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다. 국회는 나름의 사유를 제시했고 헌재가 이를 심리해 결론을 내렸다. 다만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 해당 공직자의 권한 행사는 정지된다. 몇 달 뒤 기각돼 업무에 복귀한다고 해도 그 사이 생긴 공백까지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서 탄핵은 애초부터 가볍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책을 놓고 크게 충돌하면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인사를 놓고 싸워도 탄핵이 거론된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부딪쳐도 마찬가지다. 정치 뉴스에서 ‘탄핵’이라는 두 글자를 보는 일이 너무 익숙해졌다.
한국은 탄핵에 재미라도 들인 걸까.
그렇다고 탄핵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직무 수행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이유도 없다.
하지만 탄핵을 입에 올릴 때는 최소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어떤 헌법이나 법률을 어떻게 위반했고, 그 잘못이 왜 파면까지 판단해야 할 정도인지 설명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일단 탄핵부터 외친다면 국민에게는 헌법적 절차보다 정쟁의 구호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탄핵만큼 강한 단어도 드물다. 뉴스가 되고 지지층이 반응한다. 상대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도 줄 수 있다. 그러니 여야를 막론하고 한번쯤 꺼내고 싶은 유혹이 있을 법하다.
문제는 너무 자주 쓰면 사람들도 익숙해진다는 데 있다. 요즘처럼 탄핵 이야기가 되풀이되다 보면 “또 탄핵이야?”라는 반응부터 나올 수 있다. 정말 심각한 헌법·법률 위반이 벌어져 탄핵이 필요한 순간에도 또 하나의 여야 싸움쯤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을 수 없고 대법원장도 마찬가지다.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와 헌법상 파면해야 할 정도의 잘못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탄핵은 필요할 때 제대로 쓰라고 만든 제도다. 정치권이 툭하면 꺼내는 말이 돼버리면 정작 필요할 때 그 무게를 잃는다.
요즘 정치권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들리는 게 불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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