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는 긍지였던 민족의 이름…한국에서는 왜 나쁜 호칭처럼 여겨질까

"조선족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중국동포라고 불러야 합니다."
한국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조선족이라는 호칭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으니 중국동포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취지다. 차별을 줄이려는 마음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정작 조선족에게 물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에게 조선족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고 우리말과 글을 배우며 살아왔다.
우리말 신문을 읽고, 우리말 방송을 들으며, 명절이면 민족의 풍속을 이어갔다. 운동장에서는 우리말로 친구를 불렀다.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에도 그런 삶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리는 중국에서 조선족이라는 긍지를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 당당하게 사용하던 이름을 이제는 쓰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를 아주 나쁜 말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누군가 조선족이라고 부르면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바로잡기도 한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안 돼요. 중국동포라고 해야죠."
듣고 있자면 조선족이라는 이름에 무슨 큰 잘못이라도 있는 듯하다.
물론 한국에서 그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저 사람 조선족이래."
여기까지는 출신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뒤에 "그러니까 조심해야지"라는 말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족 명칭이 순식간에 경고문으로 바뀐다.
더 묘한 풍경도 있다. 중국동포가 좋은 일을 하면 '우리 동포'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범죄 사건에 연루되면 '조선족'이라는 출신이 강조되는 경우가 있다.
칭찬할 때는 동포, 비난할 때는 조선족.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선택적 호칭은 당사자에게 씁쓸함을 남긴다.
그렇다면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없애는 것이 해결책일까.
조선족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민족 명칭이고, 중국동포는 한국에서 중국에 거주하거나 중국에서 온 한민족 계통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두 호칭은 사용되는 맥락이 다를 뿐, 어느 하나가 반드시 더 존중하는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동포라는 호칭도 좋다. 같은 민족이라는 친근감이 담겨 있고, 실제로 그 표현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배려일까.
조금 짓궂게 말하면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당신을 존중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평생 사용해 온 이름은 이제 그만 쓰세요."
배려라기에는 좀 이상하다.
조선족 사회 내부에서도 생각은 다르다. 한국에서 겪은 경험 때문에 중국동포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는 한국인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다른 호칭을 강요할 이유도 없다.
차별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를 나쁜 말로 취급해서는 편견을 바로잡기 어렵다.
이름을 바꾼다고 편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조선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중국동포로 통일한다고 해보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라면 언젠가 중국동포라는 표현에도 같은 편견이 따라붙을 수 있다.
그때는 또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할까.
조선족이라는 이름에는 선조들의 이주와 정착, 민족교육과 문화, 여러 세대의 삶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 어떤 호칭을 사용하든 그 역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조선족이라는 말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나쁘게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마운 배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부끄러워한 적 없는 사람으로서 한마디는 하고 싶다.
"우리가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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